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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4.4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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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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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로 돌아가서 인생의 출발을 고쳐 할 수 있다고 한들 나는 반드시 그 재출발의 길을 원하지 않을 듯싶다. 무수히 거쳐온 뭇 시험의 자취를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 학교시대의 입학, 학기, 학년, 각 시험을 합하면 아마도 거의 백번에 가까운 수효를 지나왔을 것이요, 중에는 충분한 자신과 자랑을 가지고 겪은 시험도 있기는 있으나 거개가 귀찮고 무거운 것이었다. 물론 그것으로서 인생의 시험이 끝난 것은 아니오, 앞으로도 수많은 시험의 고개가 등대하고 있을 것이나 붓대를 꼼지락거리며 답안지를 어지럽히기에 정신을 쏟거나 구술 시험원 앞에 서서 눈총을 맞는 행사는 평생에 두 번 다시 오지 말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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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원을 가진 몸으로 도리어 그 귀문인 시험관이 되어서 사람을 시험하게 된 모순을 생각하면 인간율의 풍자란 심술궂기 한이 없는 모양이다. 반생 동안 받아온 고달픈 시험의 분풀이로 요번에는 후생들을 마음껏 괴롭히고 복수해 보라는 자연의 명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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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동안의 교원생활로 허물없는 후배에게 괴롬도 퍽은 끼쳐 준 셈이나 다른 시험은 다 고사하고 입학시험 때 영어 문제의 까다로운 단어와 행문을 번역하면서 힘에 부치는 친구들은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를 생각하면 율연해진다. 학술시험 성패의 항의는 그래도 실력주의 본위를 방패삼아 물리칠 수 있으나 인물 시험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그 임(任)을 맡기에 자신있는 사람이 누구랴. 인물 시험의 시험관 된 것을 나는 대단한 불행으로 여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양하다 못해 하는 수 없이 주임교수와 수신교수 속에 한몫 끼어 시험실 소파 속에 폭신히 묻히게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현재 맡고 있는 어학의 교수가 정신교육, 정서교육의 계열 속에 섰다고 보여진 까닭에 참가를 권고받은 것이다. 조금도 고맙거나 자랑스러운 것이 없는 것은 영화회사의 여배우의 채용시험이란들 반반한 낯을 끌어낼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나 얼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보아야 한다는 입학시험에서 소홀한 인상 채점으로는 공정을 잃을 것이 첩경 쉬우니 말이다. 주임과 문답하는 수험생의 태도를 옆에서 보고 인물의 갑을 흑백을 숫자로 기입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이보다 어려운 일이 있으랴. 앞에 와 서서 부동의 자세로 명확하게 응답하는 그들의 태도는 일률로 다 조심성스럽고 겸손해서 그것과 이것과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이다. 그야 내 딴의 채점의 표준과 격식이 있기는 하나 그것으로 반드시 정곡을 맞췄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며 까딱하다가는 의외의 착오를 범할는지도 모른다. 제 요량대로 들여다본 심리란 소설 속에 우여곡절을 다해서 쓸 때 허물없는 것이지 입학 시험부 속에 기록할 것은 못되니 소설의 명장 모파상이나 도스토예프스키나가 반드시 명시험관이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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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의 인물 시험은 격렬한 투쟁이어서 속을 뽑으려거니 안 뽑히우려거니 긴장된 순간의 연속으로 해서 육신이 말할 수 없이 피곤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안계에 무수히 아물거리는 단정한 대상들의 초점의 착각으로 말미암아 채점이 준거가 뒤틀리고 표준이 어그러져 모두 착해도 보였다, 모두 악해도 보였다 하는 것이다. 시관(試官)의 말을 들은즉 그 중 아물거리는 착각에는 하는 수 없어 결국 문을 들어서는 수험생이 순간의 자세에다 준거를 두는 등 별별 고심을 다했다는 술회이다. 사람을 시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았으며 인생에 미흡한 몸으로서 그 임(任)에 당함이 얼마나 위험하고 부끄러운 일인가를 느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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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시험이라는 것이 현명하면서도 어리석은 것이어서 다만 국한된 부문 안에서 한 방편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지 시험의 결과 완전무결한 재단을 내리기는 인간 능력에 소속되는 것이 아닐 듯싶다. 급제의 판정이란 한 기회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요, 입학 인물 시험의 급락이 반드시 인간으로서의 급락은 못될 것이다. 사회의 급제생 속에도 기실 열등생이 많으며 낙제생 속에 도리어 얼마나 많은 뛰어난 사람이 있을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고식적인 방법에 지나지 못하는 시험의 관문을 들었다고 신입생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 못되며 낙제생이라고 슬퍼할 것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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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신보 1939. 4. 4
【원문】인물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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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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