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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意圖)와 작품(作品)의 낙차(落差)와 비평(批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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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4
임화
1
意圖[의도]와 作品[작품]의 落差[낙차]와 批評[비평]
2
── 특히 批評[비평]의 機能[기능]을 중심으로 한 감상 ──
 
 
3
藝術家[예술가]의 의도에 反[반]하여…… 라는 말은 물론 의도하지 않었던 결과가 작품 위에 나타난 다는 의미이다.
 
4
수학적 圖式[도식]을 빌면 작품에서 의도를 減[감]하고도 아직 한 뭉치의 剰餘物[잉여물]을 발견할 수 있는 상태다.
 
5
이 잉여물이 실상은 작품과 작가와의 사이를 갈라 놓는 것으로 작품을 중간에 두고 작가와 이 잉여물이 대립하게 된다.
 
6
그러면 이 잉여물은 어디서 생긴 것이냐 하면 먼저 우리는 작가의 의도란 것이 창작과정 가운데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아 볼 수 밖에 없다.
 
7
잉여물이란 글자대로 작가의 의도가 작품 형성 가운데 미치지 못한 틈을 타서 침입한 여분의 요소이니까.
 
8
意圖[의도]란 창작하는 주체가 작품을 통하여 표현할려는 특종의 관념으로 어느 작품에든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최대의 힘이다.
 
9
인물을 선정하고 시튜에슌을 배치하고 푸롯트를 만들어 작품의 구성을 디자인하는 것이 모두 이 의도의 작용으로 우리는 이 기능을 작가의 知性[지성]이라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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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의도를 창작과정 가운데 작용하는 작가의 지성적 한계 내의 것이라 하면 지성이 끝나는 데로부터 전개되는 感性界[감성계], 直觀[직관]의 세계란 것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11
문학이란 感性的[감성적] 형식을 빌지 않으면 안되는 지적 활동의 영역일뿐 아니라, 오히려 감성적 세계 가운데 지성은 자기를 용해함으로서만 형성하는 獨自[독자]의 세계다.
 
12
그러므로 의도하지 않었던 餘分[여분]의 요소가 작품 가운데 들어 오는 통로는 知性[지성]이 感性[감성]의 渦中[와중]을 통과할 때 생김을 상상할 수가 있다.
 
13
다시 말하면 작가의 지성과 감성의 차이를 잉여물이 생기는 契機[계기]라 할 수 있으며, 작가의 지성이 채 지배해 버리지 못한 感性界[감성계]의 여백이 곧 잉여물이 들어 안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14
양자의 차이는 각자가 대상(현실)에 대하여 가지는 바 관계의 특수성의 소산으로 지성이 간접적인 대신 감성은 곧 직접적이라, 감성은 直觀作用[직관작용]이고 지성은 思惟作用[사유작용]이다.
 
15
그러므로 의도란 말 자체의 뜻대로 작가는 창작 이전에 미리 만들어진 어떤 관념이나 사상을 가지고 대상을 직관하여 얻은 바, 잡다한 이메지를 예술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작품의 제작 과정이 된다 할 수 있다.
 
16
그러나 感性界[감성계]에 전개되는 諸相[제상]은 결코 작자가 머리 속에 지녔던 어떤 관념의 단순한 표현 수단만은 아니다.
 
17
마치 실생활에 있어 환경이란 개인의 倫理[윤리]나 信念[신념]을 전개해 나가는 用具[용구]의 집합이 아니라, 그 논리와 신념이 형성되고 굳어가며 또 변화하는 하나의 갈등의 세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直觀世界[직관세계]는 작가의 지성으로 작품 가운데 지배되는 세계임과 동시에 작가의 지성 자체 가운데 스며들어 그것을 내적으로 변화시키는 화학적 능력을 가진 물건이다.
 
18
실제로는 대개 直觀世界[직관세계]가 知的世界[지적세계]의 대립물로 등장하며 창작과정은 양자가 갈등하는 심리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19
그러므로 직관세계는 지성이 만들어진 애초의 근원임과 동시에 지성을 발달시키고 풍부히 해 주고 또한 그것을 不絶[부절]히 更新[갱신]하는 활력소다.
 
20
지성에 대하여는 언제나 感性[감성]이란 새롭고 신선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21
왜 그러냐 하면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지성이 항상 感性[감성]이란 베일을 통하여 대상과 관계하고 있는 대신, 感性[감성]은 不絶[부절]히 새로운 대상과 직관적으로 맞붙어 있는 때문이다.
 
22
마치 반숙한 게란이 열탕에 직면한 외곽만이 익고 아직 내부는 액체대로 남아 있다가 서서히 전부가 익어버리듯이, 대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성이란 대상과 直面[직면]한 감성이 외계의 영향을 받은 다음에 뒤늦게야 서서히 感性[감성]에 전파된 외계의 영향을 받게 된다.
 
23
따라서 인간의 인식작용 ── 예술적 창조란 그 특수한 일종이나 ── 가운데로 반숙한 계란처럼 내부 즉 노른자위는 液狀[액상]대로 있음에 불구하고 외부 즉 흰자위가 벌써 굳어버린 상태가 때때로 있을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대범하게 말하여 知的[지적] 진보 ── 그것은 인식 활동의 연속적 의미나 ── 지만 실상 이런 상태의 不斷[부단]한 계속, 혹은 반복이라 할 수가 있다.
 
24
흰자위가 익은 다음 노란자위마저 익고 노란자위가 겨우 익었는가 하면 인젠 다시 흰자위가 새로 변화하여 또 나중엔 노란자위까지 변화케 하는 연속적 과정이 인간 내부의 지적 역사라 할 수 있다.
 
25
역사상에 不絶[부절]이 수립된 사상은 이러한 直觀[직관]과 感性界[감성계]가 外界[외계]로부터 받은 영향의 결과나 그것이 차례로 互解[호해]되고 새 물건으로 更生[갱생]함은 또한 변화한 환경이 感性界[감성계]에 파급한 영향이 지성의 내부까지도 파고 들어온 결과라 할 것이다.
 
26
그러므로 인간의 지성이란 어떤 것이고 이미 인식된 직관의 결과, 感性界[감성계]의 産物[산물]을 조직화한 것이고 直觀[직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전체의 윤곽을 알게끔 도웁는 直觀[직관] 이상의 작용에까지 승화됨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운 대상에 보낸 直觀[직관]의 결과, 感性界[감성계]에 변화로 말미아마 互解[호해]되는 것이다.
 
27
그러므로 이 과정을 주의해 보면 지성과 감성은 순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양자는 시간의 차이를 표시한다. 즉 感性界[감성계]는 언제나 보다 더 새로운 데도 불구하고 知性界[지성계]는 언제나 보다 더 낡다고 할 수가 있다.
 
28
그러므로 창작 과정 가운데 나타나는 양자의 갈등은 시간적 대립, 新[신]과 舊[구]의 충돌이라 볼 수 있다.
 
29
즉 지성 가운데 의미된 내용은 이미 과거의 것으로 소멸된 感性界[감성계]가 ── 直觀[직관]은 항상 순간적이고 그것이 지속적 의미를 취득하는 곳이 지성이다 ── 가져 온 낡은 세계이고, 感性界[감성계]는 늘 지성 가운데 정착한 낡은 세계와의 판이한 생성의 新世界[신세계]로 형성되는 것으로!
 
30
지성과 감성의 갈등이 의미하는 新[신]과 舊[구]는 실상 낡은 세계와 새 세계의 대립이다.
 
31
이 새 세계의 관한 直觀[직관]의 결과가 새 지성 가운데 조직화 되고 구지성이 아직 세력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지성과 지성과의 대립, 즉 한 시대에 볼 수 있는 정신적 갈등이 나타난다.
 
32
그러므로 이야기를 돌려 다시 작품 가운데 나타나는 지성과 감성의 대립, 그것으로 말미암은 잉여의 영역은 실상 작가에게 형성된 지성이 채 정복할 수 없는 새 세계의 一幅[일폭]이라 할 수 있다.
 
33
이것은 오래지 않어 새 지성의 母胎[모태]가 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지성과 정면에서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34
그러므로 잉여의 영역이란 작가의 의도에 反[반]하는 것이며, 의도의 意識性[의식성]에 비하여 그것은 無意識性[무의식성]을 띄운다.
 
35
다시 말하면 작가가 무엇을 욕구하던 간에 작품이 感性界[감성계]의 신선한 요소로 形象[형상]을 만들려는 限[한] 잉여의 세계는 강력히 자기 존재를 인간의 지성과 문학에 대하여 주장할려는 새 세계의 선명한 姿態[자태]다.
 
36
그러므로 ‘발자크’ 와 같은 작가, ‘고고리’ 와 같은 작가, ‘톨스토이’
 
37
와 같은 작가, 즉 新舊世界[신구세계]가 격렬한 상호 갈등 속에 교체할려는 과도기의 예술 위에 이 특성이 가장 뚜렷한 제 烙印[낙인]을 찍었다.
 
38
실상은 의도와 결과와의 모순, 잉여 세계의 중요성이 발견된 端初[단초]도 이런 작가들의 과학적 연구로부터 발견된 것이다.
 
39
이러한 특성이 좋은 의미에서 작품의 내적 조화를 어그러트려씀에도 불구하고 결과로선 그 작가들의 偉大性[위대성]의 標徴[표징]이 된 것은 잉여의 세계 그것이 새 세계와 탄생할 立證者[입증자]가 된 때문이다.
 
40
그러므로 이것은 작가의 의도에 反[반]하여 작품 가운데 偶發[우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神聖[신성]한 剰餘物[잉여물]’이라 불러지는 것이며, 사실은 작가가 목적할 진정한 예술적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41
‘발자크’ 에 대한 이런 견해가 홀로 ‘캬피탈’ 의 著者[저자]에게서만 아니라 작품에 충실한 여러 비평가 ── 나는 ‘라브린’ 이나 ‘시몬스’ 를 잃는 것이나 ── 에게서도 발견됨은 흥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42
적어도 이 사실은 잉여의 세계란 것이 문예 작품의 결과라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임을 짐작케 하는 것으로, 나는 이것을 작가의 의도와 대등하는 하나의 獨自[독자]한 사상이라 평가한 일이 있다.
 
43
그것은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작가의 의도와 비교되고 그것과 대립할 수 있는 새 지성의 端初[단초]란 의미에서만 아니라, 먼저 의도된 작품 세계에 대하여 하나의 독립한 질서를 형성하는 데 고유한 의미가 있다.
 
44
즉 작가의 의도란 것이 작품 가운데서 현실을 구성하는 하나의 질서 의식이라면, 잉여의 세계란 작품 가운데 들은 작가의 직관작용이 초래한 현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질서 자체란 의미에서이다.
 
45
단지 그것이 작가의 의도하려는 질서와 다른 점은 후자가 작가에 의하여 의식되지 않었다는 것 뿐이다.
 
46
그러나 하나의 질서로서 의미를 갖는 현실의 一幅[일폭]이란 이미 직관 이상의 것이며, 세계에 대한 새로운 觀念體系[관념체계]의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다.
 
47
의식된다는 한개의 사실만을 통과하면 벌써 잉여의 세계는 잉여의 세계임을 지양하고 그 자신 首尾一貫[수미일관]한 사상이 되는 것이다.
 
48
다시 말하면 작가의 의도에 反[반]하여 작자 위에 偶發[우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하여 의도되고 작가의 합리적 구조의 필연한 결말로 나타나는 것이다.
 
49
그러나 그것이 아직 잉여의 세계로서 작자 가운데 偶發[우발]되는 限[한] 어디까지든지 작가에 의하여 의식되지 않고 작가 가운데 은폐된 새 사상의 片鱗[편린]에 불과하다.
 
50
이러한 思想[사상]은 실상 작자의 형식적 구조 가운데 담겨진 것이 아니라 작품 현실로부터 새여 나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작가의 意圖[의도]한 것 보다 작품이 짜 놓는 객관적 결과를 중시한다면 잉여의 세계를 가진 작품은 ‘베라스케스’의 畵面[화면]과 같이 작품의 中核[중핵]이 작품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밖에 있게 되는 것이다.
 
52
그러나 작품을 읽을 때 항상 그 내부에 들어 있는 중심을 읽는 것이며, 의도를 따라 작품을 해석하고 享受[향수]하는 것으로 작품 구조와 의도와의 모순된 관계로 말미아마 외부에 결과된 또 하나의 핵심을 파악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53
그것은 벌써 하나의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발견은 극히 소수의 우수한 감수력과 투철한 지성을 가진 독자만이 가능한 것이다.
 
54
실상은 이런 작품 외에 中核[중핵]을 발견함과 동시에 독자는 작가와의 別離[별리]하게 되고 작품을 단순히 享受[향수]하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55
여기서부터 비평의 영역이 시작되고 비평의 기능이 작용하게 된다.
 
56
훌륭한 비평이란 언제나 훌륭한 작품과 같이 새 세계를 발견하고 새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의 발견이나 창조는 작품의 발견이나 창조와 당초부터 다른 점이 있다.
 
57
작가는 광막한 현실 가운데서 아직 문학세계가 찾아내지 못한 처녀지를 발견하여 제 예술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나, 비평은 대상이 문학 작품이라는 한계내에 국한되어 있다.
 
58
즉 비평의 창조적 기능은 이미 만들어진 작품 가운데서 작가의 의도나 독자의 향수가 채 알아내지 못하고 放棄[방기]해 둔 未耕[미경]의 沃土[옥토]를 발견하여 새 가치를 부여하는 데 있는 것이다.
 
59
또한 이 발견과 새 가치의 창조때문에 비평은 단순한 작품의 享受[향수]나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 제 獨自[독자]의 세계를 건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이 끝나는 곳으로부터 비평은 시작된다고 말할 수가 있다.
 
60
즉 작품의 의도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비평은 자유인으로서 제 意思[의사]를 행사할 수가 있게 된다.
 
61
요컨대 비평은 작가의 의도를 넘어섬으로써 벌써 작품 현실의 구속을 떠나 비평가가 제 자신을 이야기하는 경지로 들어 가는 것이다.
 
62
타인의 작품을 빌은 자기 자신의 표현, ‘상트 부브’의 말을 빌면 작품 가운데 자기를 숨김으로서 자기를 표현하는 美妙[미묘]한 轉身[전신], 그러므로 아무리 작품에 충실한 비평가라 할지라도 타인의 材木[재목]을 가지고 제 가옥을 짓는 독특한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63
작품은 벌써 비평적 창조의 소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비평의 자유란 것은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그 창조의 소재인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구속을 받는 것이다.
 
64
비평이 남의 작품을 가지고 어떤 세계를 창조하느냐는 비평가에게 허용된 진실한 자유의 天地[천지]나 그 작품이 초래하지 않는 다른 材料[재료]를 가지고 제 자유를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65
만일 비평이 그 작가의 작품이 제공한 재료를 전연 脱却[탈각]하여 비평의 세계란 것을 의도한다면 그것은 벌써 작품의 비평이란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66
요컨대 새 작품의 창조이거나 문학 이외의 다른 用具[용구]를 가지고 제 思想[사상]을 표현하는 어떤 학문에 불과하다.
 
67
그러므로 비평의 독자성의 남의 재료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제 世界[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는 것이나, 작품이 아무런 가치나 제시하지 못한다면 비평의 창조는 성립하지 않는다.
 
68
비평도 창작과 같이 無[무]로부터 무엇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작품이 비평적 창조의 좋은 대상이 될 수는 있다.
 
69
여기서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 라는 비평의 세계와 ‘작가의 의도에 反[반]하여……’ 라는 잉여의 세계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70
다시 말하면 비평하는 職能[직능]의 한계는 작가의 의도가 의식하지 않고 직관으로 초래한 잉여의 세계, 만일 그것이 의식된다면 작가에 의하여 부정될지도 모르는 새 세계를 작품으로부터 분리하여 그것의 독립적 가치를 승인하고 나아가 그 존재와 성장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데 있을 것이다.
 
71
비평가는 그러므로 직접으로는 작가와 대립하나, 그 작품이 생산된 地盤[지반]인 현실과 밀착하고 잉여의 세계를 의도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승인하는 기준을 또한 그 현실에서 끌어내는 것이다.
 
72
이 사실은 비평과 작품의 창조적 대상의 차이를 말살한다.
 
73
즉 작품의 외부는 현실 세계이고 비평의 외부는 작품이나 잉여의 세계의 원천인 현실 가운데서 다같이 제 세계를 창조하게 된다 할 수 있다.
 
74
그러므로 비평의 기능이 작품의 잉여세계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긍정할 능력이 되려면 적어도 새로운 세계와의 共感力[공감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75
바꿔 말하면 잉여세계와의 일치와 작가의 의도와의 대립에서, 비평은 비로소 제 獨自[독자]의 가치 있는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76
또한 비평이 문학의 창조와 더불어 문학사 위에 창조적인 공헌을 하는 것도 이러한 발견 때문이다.
 
77
비평의 이러한 발견은 곧 이러한 잉여의 세계가 작가의 의도를 넘어 偶發[우발]될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의하여 의도될 신성하고 가치있는 세계란 것을 지시함으로써 새로운 문학이 창조될 지반을 작가 앞에 닦어 놓는 것이다.
 
78
즉 새로운 현실과 모순하는 낡은 지성의 무가치를 선언하고 그 互解[호해]를 촉진시킴으로서 새 현실에 적합한 가치 있는 지성의 체계의 형성을 돕는 것이다.
 
79
이것은 비평이 창작과 더불어 한가지로 가치 있는 창조적 예술이며, 작품의 단순한 판단자가 아닌 산 증거이다.
 
80
그러므로 이곳에서 생각할 것은 창조적 원천으로서만 아니라, 비평적 원천으로서의 현실의 再吟味[재음미]가 아닐 수 없다.
 
81
현대와 같이 착잡한 시대에 작자가 의도에 反[반]하여 잉여의 세게를 결과하고, 그것의 가치를 의식함으로서 제 의도를 改變[개변]하는 것이 현실의 직관이라면, 의식되지 않았던 것을 의식화 하고 직관 내용에 불과하였던 것을 지성 가운데 정착하는 비평의 職能[직능]도 실상은 이 현실 가운데 淵源[연원]한다.
 
82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 비평가는 부단히 이 잉여의 세계를 탐색하고 잉여세계의 의식화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改變[개변]할려는 작가의 노력을 돕는데 커다란 임무가 있다.
 
83
비평은 적어도 잉여의 세계를 사상의 수준으로 앙양함으로서 작품의 의도와 결과와의 대립을 형성하고, 잉여의 세계란 작가의 주체를 互解[호해]로 밀치면서까지 제 존재의 가치를 위협적으로 是認[시인]해 달라는 새 세계의 현실적 힘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84
이런 의미에서 잉여의 세계를 앙양함은 작가의 정면에서 대립하는 것이며 사상적으로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85
그러나 작가에 있어 내적 대립에 불과하였던 것이 비평의 영역에선 외적 형식으로 轉化[전화]된 데 불과함을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86
현대는 비평의 이런 직능의 자유스런 發揚[발양]을 가장 엄격히 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87
(1938.3)
【원문】의도(意圖)와 작품(作品)의 낙차(落差)와 비평(批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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