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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言語)의 마술성(魔術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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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3
임화
1
言語[언어]의 魔術性[마술성]
 
 
2
‘태초에 말(言語[언어])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있었느니라’ 하는 類[류]의 전설은 물론 오늘날의 과학이 학문으로서 받어 들이지는 않는다.
 
3
그러나 비록 말이 하나님과 더불어 있지는 않었다 하더라도, 인간이 말과 더불어 있었다는 것은 긍정되어 족하다.
 
4
사실 말하지 않는 인간이라든가 자기의 말을 갖지 않은 인종이란 오늘날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말이란 다른 인간적 表徴[표징]과 더불어 인간의 최중요한 속성이다.
 
5
그래서 기독교에 의하면 인간은 神[신]이 창조하신 바이고, 말은 神[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귀한 보배의 하나라는 신화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세계의 創生[창생]과 더불어 인간이 있었다든지, 인간은 太初[태초]로부터 말을 가젔었다든가 하는 寓話[우화]는 人類學[인류학]이나 言語史[언어사]에 의하여 하나의 사실에 反[반]하는 허망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벌써 埋去[매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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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太初[태초]에 有言語[유언어]’ 云云[운운]의 神話的[신화적] 외관은 언어의 가진바 고유한 마술적 성질에서 온 것으로 오늘날의 ‘科學[과학]’ 위에 괄목할 만한 후일담을 남기고 있음은 역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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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들이 종사하고 있는 文學上[문학상]에 가장 현저한 예를 들 수 있다. 말이 없는 인간이 없고, 언어 없는 문학을 생각할 수 없다는 문학의 특질에 의하여 傳播[전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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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학이란, 말 없이 생각키는 곤란한 것이며, 분명히 언어를 유일의 表出手段[표출수단]으로 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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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인간과 더불어 太初[태초]에 말이 있고, 文學[문학] 그것은 太初[태초]에 말이 있어서 비롯하였는가 하면 역시 그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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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도 말했지만 文學[문학]은 어디까지든지 언어를 유일의 表出手段[표출수단]으로 한다. 그러나 언어는 어디까지든지 하나의 表出手段[표출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文學[문학]의 존재 그것이 有無[유무]를 제약하는 근원적인 무엇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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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문학에 있어 언어는 내용적인 무엇에 상응하는 表出[표출]의 手段[수단] 즉, 副次[부차]의 一屬性[일속성]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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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을 否定[부정]하는 것과 같은 다른 일련의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다름이 아니라, 언어 없이 문학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그 하나이요, 다음에 言語[언어]는 문학 없이 존재할 수가 있으나 문학은 언어 없이 존재를 긍정키 곤란치 않으냐는 의문이 그 둘째이다.
 
13
물론 이 두 개의 反問[반문]이 그 말 自處[자처]로 보면 모두 다 긍정될 事理[사리]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인 의문이 다시 한데 합쳐서 文學[문학]과 言語[언어]가 함께 유래하는 곳은 어디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文學[문학]이 좁고 言語[언어]가 넓은 통용범위를 가진 듯한 표면상 차이는 한개 형식적인데 불과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14
文學[문학]도 言語[언어]도 모두가 우선 인간의 所産[소산]이 아닌가? 보면 우월을 다루는 양자가 다 인간의 존재 없이는 상상키 어렵다.
 
15
결국 언어도 인간의 사회적 생활의 산물인 것이며, 반대로 언어의 마술적 성질이란 것도 인간의 성질에서 유래함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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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재를 그 무슨 마술적인 것같이 생각하는 見地[견지]란 곧 인간 일반의 입장, 다시 말하면 인간으로부터 구체적인 모든 속성을 捨象[사상]하고 막연하게 추상적 인간을 대치시키는 見地[견지]에 不外[불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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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상상으로서 언어가 문학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假想[가상]은 사실 불가능한 일로 언어 없이 문학의 존재를 생각할 수 없음과 동일한 것이다.
 
18
이론적으로만 아니라, 文化史上[문화사상]의 사실에 의하여도 언어와 문학과 그 외에 이것들을 가능케 하는 思惟[사유]하는 인간이 生物史[생물사] 가운데 성립함과 더불어 동시에 生誕[생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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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여러 개의 물건이 並存的[병존적]으로 成生[성생]하였다는 생각은 文學[문학], 言語[언어], 思惟[사유]를 그것들이 발달하여 개별화된 현대의 관념에서 類推[유추]하는 말이고, 太初[태초]의 상태는 三者[삼자]가(혹은 그 외의 것도) 하나의 端初的[단초적] 상태에서 渾一[혼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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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비록 인간의 사회생활의 오래인 과정 가운데서 그것은 서로 상이한 외형을 가진 영역에로 분리, 개별화 되었다 하더라도 언어 없이 문학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사실상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의 생활이 없으면 優劣[우열]을 相爭[상쟁]하던 이 兩者[양자]가 共[공]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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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많은 語學者[어학자]들이 高調[고조]하는 것과 같이 ‘말은 문화의 어머니’라든가 ‘말 없이 문화는 없다’는 類[류]의 말은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면서도 그 실은 인간생활의 하나의 관념적 산물인 언어를 가지고 문화와 생활 모든 것을 규정할려는 관념론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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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문화의 국한된 부분에서 나타나는 한개 형식상의 類別[유별], 차이를 언어 그것이 갖는 외관상의 魔術性[마술성] 위에서 고의로 확대, 과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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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이 일견 외견상에는 긍정될 것 같으면서도 그實[실] 허망함은 만일 ‘말’이 글자대로 문화를 가능케 하는 地盤[지반]이라고 언어만을 지키면 그 곳의 문화, 그곳의 생활이 안전할 것이라 하겠으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언어만 가지고는 문화와 생활은 결코 개선되지도 보장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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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語[언어]가 갖는 이 외관상, 형식상의 한 성질의 확대하여 모든 事物[사물] 위에 遍延[편연]시킴이 곧 언어의 魔物性[마물성]으로 온갖 사물의 내용상의 판단을 어둡게 한다. 이것은 마치 영혼설이 인간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를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밝힐 수 없는 卑俗[비속]한 조건 우에서 영혼의 實有[실유]를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虛亡[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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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만일 문학의 한 소재이고 속성이라면 문학은 다른 속성까지를 자기 가운데 종합 통일하고 있는 전체다, 즉 언어 이상의 무엇이다.
 
26
그러면 兩者[양자]가 다 그것으로 인하여 제약되는 근원으로서의 인간의 생활과 다시 문학과 언어 三者[삼자]의 관계의 고찰로 돌아 간다면 문학이란 언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생활 그것에 보다 더 제약되는 것이다. 문학 가운데 한 素材[소재], 属性[속성]으로 참여하는(그것이 암만 중요하든지 간에!) 때문에 언어란 문학을 통하여 작용하고 있는 문학화 된 생활적 조건으로 다시 한번 특수한 제약을 받게 됨이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27
문학은 통상으로 실재하는 언어 이상의 무엇이란 말은 문학으로 하여금 언어에 대한 우월한 몇 개의 자유스런 권리를 주게 된다.
 
28
첫째 문학은 周知[주지]와 같은 모든 언어를 채택할 의무를 負[부]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문학적 창조과정에서 언어는 피동적이고 문학은 능동적이다. 문학은 자기의 내용의 표현에 있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언어를 언어 가운데서 자유로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29
다음으로 무수한 언어 가운데서 예술적 표현 가운데로 선발된 光榮[광영]을 얻은 언어는 原語[원어](보통으로 실재한 말을 이리 부른다면)보다는 특별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예술적 건축 가운데 참여하는 것으로 우리는 우선 이것을 原語[원어]로부터 文學語[문학어]라고 구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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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語[원어]로부터 문학이 자기의 말(文學語[문학어])을 구별하는 가장 현저한 영역은 詩[시]다. 이곳에는 각 언어가 독특한 음향적인 고려를 지내 결합되고 語法[어법]도 그 시의 고유한 의미내용, 어감, 음향, 구성의 강약 등의 고려 가운데서 분해되고 재결합되어 일상 원어와는 전혀 다른 것 같은 외모를 呈[정]하게 까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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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原語[원어]의 갖는 의미라든가 語法[어법] 등은 의연히 원상대로 詩[시] 위에서 보존되는 것으로, 일반 언어학이나 문법상의 법칙에서 보면 普通語[보통어]와 원리에 있어 조금도 다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詩[시] 위에서 이 원칙은 단지 외관상 형식적인 흔적을 남김에 자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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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일상 原語[원어]로 이야기하거나 기록할려면 훨씬 길고 또 듣기에는 美感[미감]이라든가 감명을 전하지 못할 것도 훌륭한 詩的[시적] 언어로 再[재] 구성될 때 그것은 엄청나게 짧고, 아름답고, 단지 이야기 되는 사실을 이해시킬 뿐만 아니라, 강한 정신적 충동을 주면서 잊지 않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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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지 언어의 변화의 힘만이 아니라, 물론 시의 내용이 된 생활적 내용에 의하여 언어가 精鍊[정련]당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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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용은 그 차이가 현저한 시의 영역 뿐이 아니라, 그 다음에는 우선 희곡, 그리고 소설 등에서도 다 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일한 선택과 精鍊[정련]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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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문학상의 언어는 사실 그 外形[외형]에 있어서만 原語[원어]와의 상이점을 가질 뿐으로 그 實[실]은 별개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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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文學語[문학어]가 별개의 언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原語[원어]보다도 더 많이 감동적이고 더 잘 이해되는 까닭은, 문학 그것이 광범한 의미에서 보면 ‘生活[생활]의 言語[언어]’의 특수한 일종이라는 데서 日常語[일상어] 그것의 현실성을 부정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 ‘엣센쓰’라고 보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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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학이 原語[원어]를 가지고 자기의 고유한 연금술에 의하여 정련하는 것은 대단히 다양한 것으로 그것을 제약하는 조건은 문학 가운데서 그 표현이 요구되고 있는 생활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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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문학이 體現[체현]한 바의 생활과 의욕하는 바 방향은 스스로 역사적으로 다르며 사회적 계급적으로 틀리는 것으로 언어의 文學語[문학어]도 이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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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데’는 자기 시대의 이태리말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으며 ‘호메로스’역시 당대의 ‘기리사아’말로 밖에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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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古詩歌[고시가]의 일종인 신라의 鄕歌[향가]는 이 역사적 차이를 보여 주는 好例[호례]로서 우리는 그 기록된 문자 뿐만 아니라 해석된 말도 現代語[현대어]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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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회적, 계급적 구별이라는 것은 역사적 차이를 믿는 사람들도 때로는 긍정치 않는 바로 약간의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42
복잡성이란 다름이 아니라 그 차이가 同時代的[동시대적]이라는 데 원인하는 것으로, 卑近[비근]한 예를 들면 뿌루조아’가 ‘달’이라는 것을 ‘푸로레타리아’는 ‘달’이라고 안 그러느냐 하는 식의 반박이다.
 
43
그러나 이러한 의문이란 학문상으로 취할 바 되지 못하는 것으로 그런 사람들은 文學史[문학사]의 사실에 無知[무지]하거나 혹은 고의로 그것을 무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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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민계급의 문화적 支配樹立[지배수립]에 있어도 그들의 민족국가의 확립과 한 가지 民族語[민족어]의 통일 ── 표준어의 확립, 봉건적 隔離[격리]의 유물인 方言[방언]의 소멸 ── 을 성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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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統一語[통일어]──標準語[표준어]란 그 實[실]은 시민 자신의 계급적인 언어를 일반국민의 형식으로 일반화 시킨데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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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방언이라든가 독특한 언어 ── 특히 獨自[독자]의 語彙[어휘] ── 는 그것 아니고는 시민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은 시민적 언어에 압박되어 소멸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同化[동화]──訛傳[와전]── 되어 버리거나 혹은 그 지방, 그 산업부분에만 통용하는 隱語[은어]로 化[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문학상에 반영되지 않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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卑近[비근]한 예를 또 구한다면, 작가가 알고 있는 語彙[어휘]의 국한성에 이것은 명료히 나타난다. 도시생활만 아는 작가라면 농촌의 생활을 모를뿐 더러 농촌에서 쓰는 말의 지식이 도시적으로 국한됨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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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근면하고 재질이 있어 농촌의 생활과 언어를 硏究學得[연구학득]하면 그 범위가 훨씬 확대될 수는 있으나 농촌 출신의 작자와 전혀 동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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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때로는 농촌의 무지한 부인의 會話[회화]를 도시 행낭어멈투로 말을 시킨다든가, 그렇지도 못하면 ‘인테리’적 어조 그대로 이야기시키는 수가 무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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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는 각개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거개가 그 시대 지배계급의 언어로 특징화 되어 있어, 우선 조선의 사실만 해도 時調[시조]에 씌어진 말과 그때에 口傳[구전]되던 민요에 씌어진 말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51
한편은 양반의 말이고, 한편은 常民[상민] 勤勞人民[근로인민]의 말로 불러졌기 때문에 동시대의 문학이 이만치 다른 언어로 형상화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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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政治史[정치사]의 지배자란 항상 思想文化上[사상문화상]에서도 자기 지배를 수립하는 것으로 時調[시조] 등속은 기록되어 있어 마치 그것이 그 시대의 유일한 朝鮮語[조선어]인 것같이 생각되고, 민요란 구전되는 중 혹은 소멸하고 또 시대를 따라 언어도 변화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一見[일견]해서는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53
이 사실은 마치 조선의 모든 婦人[부인]은 양반에서만 났고 그들이 가장 위대치 조선인인 듯싶게 역사상에 남았음에 반하여 民謠[민요]의 주인인 사람은 이름도 없이 역사상에 매몰되어 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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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언어가 정치상 사정을 반영하는 사실은 오랫동안 중국에 정치적 문화적으로 종속되었던 조선이 한문으로 모든 것을 기록한 관계상, 과거 조선인의 초라한 지위와 같이 朝鮮語[조선어]는 제법 똑똑히 기록상, 문학상에 올라 보지도 못한 채로 매몰되고 와전되고 해온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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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更張[갑오경장] 이후 朝鮮文[조선문]의 기록, 출판, 조선어에 의한 문학창작의 簇出[족출]도 역시 조선인의 생활에 새로운 조건이 형성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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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少年[소년]」, 「青春[청춘]」 등 잡지에 실린 최초의 新詩[신시]라는 六堂[육당] 崔南善[최남선]의 시를 보면 이 곤란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케 하며, 또 春園[춘원], 東仁[동인] 등 작가들의 고백에서도 신문학이 純朝鮮語[순조선어]의 표현을 발견키에 얼마나 노력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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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과거의 方言[방언]의 존재라든가 統一語[통일어]의 미확립은 朝鮮語學會[조선어학회]와 같은 단체가 일직 先覺[선각]하여 標準語[표준어]를 査定[사정]치 않은 때문도 아니고 전혀 생활상 이유에 依[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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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朝鮮語學會諸氏[조선어학화제씨]의 가치있는 과학상 勞力[노력]을 조곰치라도 얕게 평가하려 함이 아니요, 그것을 錯雜[착잡]된 방침(標準語[표준어] 査定[사정]과 같은) 이나, 有害[유해]한 환상 ──(언어는 문화의 母[모]이다 등)으로부터 명확히 구별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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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史上[문학사상]의 사정은 더 한층 똑똑히 이 상태를 반영하고 있어 20년대의 新文學[신문학]이란 이 언어상 무질서에 완전히 구속되어 그 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후배로서 배울 바를 그들이 뚫고 나간 곤란에 비하여 너무나 적게 밖에 남기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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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문학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고 비시민적인 신문학이 文學語上[문학어상]의 시민적 혁명을 수행치 못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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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文學[신문학]은 朝鮮語[조선어]의 美[미]라든가 풍부성이라든가 고도의 합리성이 라든가를 발견치 못하고 때로 부분적인 성과도 통일적으로 달성되지 못하였다.
 
62
시민적 문학으로서 가능한 달성이란, 첫째 시민계급이 사회생활에서 표준어 ── 근대적 統一語[통일어]── 를 획득할 지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고, 또 표준어의 확립 없이는 개개의 작가의 개척도 비통일적 분산적이어서 어떤 작가도 보다 소시민적이고, 또 인테리적이며 때로 封建[봉건] 농민적으로 개별화 되는 것이다.
 
63
想涉[상섭], 春園[춘원], 素月[소월] 등은 前記[전기]의 계급의 언어상의 영향을 개별적으로 받었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은 언어의 혼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이다.
 
64
그러므로 조선어의 完美[완미]한 문학적인 開花[개화]는 前日[전일] 別稿[별고]에서 말한 바와 같이 次世代[차세대]의 문학, 새 문학에 부가되어 있는 것으로 그 임무는 市民文學[시민문학]이 해결해야 할 것까지 이중으로 가지고 있는 형편이다.
 
65
이러고 보면 문학이 조선어에 대하여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 現今[현금] 일부의 작가 시인들에게서 보는 바와 같이 특별한 언어상의 用意[용의]를 표시함은 정당한 것이다.
 
66
그러나 적어도 문학적으로 사유한다는 사람들이 朝鮮語學會流[조선어학회류]의 관념론을 믿는다든지 문학상 직접의 이해에 무관심하고 無定見[무정견]하다면 文學實際家[문학실제가]의 한개 치욕이 아닐수 없다.
 
67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조선문학 가운데 조선어에 대한 태도에 있어 2,3의 상이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68
春園[춘원]이라든가 野談[야담]으로 돌아서는 金東仁[김동인], 尹白南[윤백남] 등이라든가 六堂[육당], 李秉岐[이병기], 鄭寅普氏[정인보씨] 등의 時調作家[시조작가]들이 어떠한 조선어를 문학창작상에 선택하는가를 특징적이다.
 
69
말할것도 없이 氏[씨] 등에 있어서는 가장 노골히 復古主義[복고주의]로 나타나 진부한 古語[고어]를 強制[강제]하고 死語[사어] 발굴 등에 열중하고 있다.
 
70
물론 특별한 의미에서는 古語[고어], 死語[사어] 등의 과학적, 체계적 研考[연고]는 朝鮮語[조선어]의 독자적 발전상 유익한 것이나 아이들에 있어서는 그냥 독자에게 기억을 강요하고, 모든 가치있는 新語[신어]는 거부되어, 오로지 아이들의 언어는 전통주의 사상을 설명함에 적응할 뿐이다.
 
71
다른 하나는 문학을 기교로 환원시키는 藝術至上主義[예술지상주의]의 一群[일군]으로서 春園[춘원] 등의 문학은 종교다 하는 대신에 문학은 언어의 기교이다 라는 명제가 대치된다.
 
72
그러므로 어떠한 의미에서 보면 朝鮮文學[조선문학] 諸流派[제유파] 가운데 이 경향의 작가들이 언어에 그 중 관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3
그들의 특색은 그 예술상 입장과 같이 언어를 언어 자신의 美感[미감]에만 치중한다. 즉 언어가 갖는 합리적 의의보다는 그 외형적 美感[미감]만을 第一義[제일의]로 삼고 자기의 文學語[문학어]를 선택하는 언어상의 裝飾主義[장식주의]── 형식주의가 지배적이다.
 
74
무엇보다도 그들은 언어의 음향적 방면에 기준을 두어 이 말의 語音[어음]이 고우면 그것을 택하고, 그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며, 나쁘면 그 외의 모든 이유를 돌아보지 않고 放棄[방기]한다.
 
75
문장의 아름다움은 첫째 합리적인 것보다 音結[음결]의 妙[묘], 그 다음은 隱喩[은유]의 교묘한 구사와 결합으로 구조된다.
 
76
전자는 鄭芝溶[정지용], 李泰俊氏[이태준씨]의 작품, 후자는 金起林[김기림], 李箱[이상], 朴泰遠氏[박태원씨] 등의 시, 소설이 대표하는 경향으로 이 양자는 약간 별개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77
裝飾的[장식적] 唯美的[유미적] 경향, 즉 음향 좋은 말을 택하고 나쁜 말을 버리는 데서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새로운 함축성이 강한 언어라도 음향이 나쁘면 버리고, 이미 안쓰는 과거의 말이라도 음향이 좋으면 택하게 된다.
 
78
이 결과는 그들의 현실에 무관심한 예술적 태도와 지식의 한계가 보다 더 많이 과거에 연접되어 있다는 두개 사실로 인하여 전통주의적 言語觀[언어관]에 통하는 가능성이 열리어 있다.
 
79
후자, 語音[어음]보다도 語句[어구]의 은유적 결합, 분리에 더 많은 흥미를 가진 이들은 무엇보다 日常語[일상어]로부터 자기의 언어를 隔離[격리]시키어 지극히 기괴한 문장을 만들어 소시민적 獨善主義[독선주의]에 蟄居[칩거]하여 새로운 가치 있는 언어도 氏[씨] 등에 있어서는 독자의 이해를 도웁는 대신 그것을 阻害[조해]하고 嫌惡[혐오]하게 만든다.
 
80
그러나 경향문학은 民衆[민중]의 言語[언어] 위에 선다. 그러나 그것에 추종한다는 것은 이 문학의 高調[고조]하는 교육적 의의와 모순하는 것이다.
 
81
民衆[민중]의 말 가운데는 옛날 양반이라든가 비속한 상인들의 언어보다는 그 가치에 있어, 美感[미감]에 있어 월등한 것이었다. 우리는 민중의 언어 가운데는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허접쓰리가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82
例[예]하면 소설이나 희곡 가운데서 方言[방언]을 무질서하게 쓴다든가, 그리 필요도 하지 않은데 쌍욕을 亂用[난용]한다든가는 美感上[미감상]으로만 아니라 교육적 의미에 있어서도 옳지 않은 것이다.
 
83
우리는 약간의 작품 가운데서 방언이나 좋지 못한 말을 조장하는 것과 같은 감을 금치 못하게 하는 분이 있음을 본다.
 
84
과거의 문학 뿐만 아이라 신인 가운데서도 ──例[예]하면 韓泰泉氏[한태천씨]의 「토성랑」 등의 희곡, 金裕貞氏[김유정씨]의 소설 ── 이러한 亂用主義[난용주의]는 노골화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85
이러한 追隨主義[추수주의]는 民衆語[민중어]를 쓴다!는 구실, 즉 ‘푸쉬킨’은 乳母[유모]한테 그 말을 배웠다든가, 白樂天[백낙천]은 村婦[촌부]에게 自作[자작]을 읽혔다든지, 하는 고전작가들의 태도를 잘못 배우는 것이다.
 
86
그러나 ‘푸쉬킨’은 그 이상으로 신중히 露西亞語[노서아어]의 實庫[실고]로부터 전형적인 아름다운 필요한 언어를 골라 내인 것이고 결코 닥치는 대로 골라 잡은 것은 아니다. 이 불굴의 노력으로 전형적인 것을 면밀히 선택하여 그 총명한 牟鈍性[모둔성]을 창조 하였다 (팡페로프)는 것이다.
 
87
그러므로 언어적 창조 가운데 典型性[전형성]이란 언어의 합리성 가운데 審美性[심미성]을 통일하는 것으로 그것은 다시 문학 자체가 그러함과 같이 창조적, 교육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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例[예]하면 자기 妻[처]를 부를 때 경상도 方言[벙언]이 ‘봐라! 물 좀 떠오니라!’하는 것은 명백히 낡은 家長制[가장제] 農村[농촌]의 遺習[유습]을 표시하는 語法[어법]이다. 문학은 이것을 긍정 조장할 것이 아니라 새로히 이야기 되는 ‘여보 물 좀 떠 오소’로 교육할 줄 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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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새로운 언어를 높은 文化語[문화어]로 문학 가운데 살리고 해석함은 잊어서는 아니된다.
 
90
언어는 가장 풍부히 사회생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작가는 그 먼 미래를 보는 1人[인]이어야 한다.
 
91
(1937.2)
【원문】언어(言語)의 마술성(魔術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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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林和) [저자]
 
  193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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