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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달소전(安達小傳) ◈
해설   본문  
1940.10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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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소전(安達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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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안달도 이 동네의 다른 열세 집과 같이 단양댁의 논 몇 마지기와 밭 몇 뙈기를 얻어부치어 권안달의 말을 본다면 그 덕으로 거미가 입에 줄을 못치고 있는 셈이다. 원래가 크지도 못한 키에다가 양쪽 어깨가 차악 내려앉고 그나마도 상반신에 비해서 하지가 짧은 편이라서 얼핏 보기에는 어딘지 생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니 자연 얼굴도 큰 편이 못되고 햇볕에 탄 황토색 살빛과 유난히 노란 수염이 그것도 이면치레로 몇 가닥 나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던히 옹졸한 인상을 준다. 만일 그의 눈이 가로 찢어지지만 않았더라도 그 왕방울 같은 두 눈이 초라한 체구와 옹졸한 얼굴이 주는 인상을 어느 정도까지는 보받침을 해주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눈이 다 바깥쪽으로 쪽 찢어진데다가 겉눈썹이 가지런히 곤두서서 푼더분하기는 고사하고 되레 삼한 인상을 준다. 이런 형의 얼굴이면 대개 콧마루가 날쌔고 아래턱이 빠른 것이 보통이지만 권안달은 콧마루도 날카롭지 않고 아래턱도 빠른 편은 못 된다. 그의 얼굴에서 좀 푼더분 ─ 까지는 못 가더라도 조그마한 후덕과 정다움을 느끼는 것은 그래도 역시 이 민춤한 턱의 덕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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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 지금도 갈려갔지만 시라가와라는 주재소 주임이 연말 경계로 이 동네에 왔다가 권안달을 보고는 전형적 조선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여 구장과 웃은 일이 있었는데 후에 구장한테서 그 말을 통역해 듣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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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부장이 잘 봤군. 버젓한 조선 양반을 갖다 되놈이나 양대인 같으다면 시비두 할 만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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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혼자서 온종일 뇌고 뇌고 했다지마는 역시 부장의 눈은 정확했다. 이모저모 뜯어놓으면 그런 줄을 몰라도 권안달은 척 대하면 역시 어딘지는 모르게 조선 농군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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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안달은 이 동네 ─ 좀더 자상히 말하자면 경성에서 백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군 ××면 ××리(××리는 옛날부터 궁말이라고 불러온다)에서도 맨 구석진 오봉산 기슭에 큰 잿더미만한 오막살이집에 산다. 원래는 이 근방에 흩어져 있는 권씨네의 산소들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세운 묘막이라고 한다. 건넌방에 석유 궤짝을 모아서 놓은 한 칸 마루가 있고 이 안채와 마주 향해서 포플러를 찍어 세운 헛간 두 칸 턱에 외양간이 한 칸 붙었다. 칸으로 치면 일곱 칸 턱이나 되는 셈이나 기실 그들이 거처할 수 있는 방은 안방뿐이었다. 이 칸반 턱도 못 되는 방에 권안달 내외와 열세 살 난 분이, 열 살, 일곱 살, 이렇게 다섯 식구가 끼여 자고 건넌방은 지난 봄에 맞아들인 새 며느리가 쓰고 있다. 그래서 권안달은 여름에는 바깥마당에 멍석을 펴고 자기가 일쑤고 날이 좀 선선해지면 요때기를 돌돌 말아 끼고는 구장집 사랑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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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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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녁들 자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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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벌써 눌 자리를 눈여겨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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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또 안달하네. 이 긴긴 밤에 언제 자면 못 자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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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느니. 건 자네들이 모르는 소리지. 자식하구 잠하구는 일찌감치 서둘러야 하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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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만한 대꾸를 하는 것도 대개 벌써 자리를 잡고 누워서였다. 검정인지 회색인지도 분간키 어려운 요때기를 둘로 접어서 발만 꾸리고는 드높은 목침을 베고 햇볕에 새던 새우처럼 꼬부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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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원, 그러지 말구 일어나라구, 밤두 길구 헌데 우리 한케만 늘굽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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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보지, 권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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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흘릴 때부터 같이 큰 친구들의 이런 권면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대꾸도 않고 생코를 드릉드릉 곤다. 그러다가 정말 코를 골고 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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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그, 안달! 저 사람이 몇 해나 더 살자구 저렇게 안달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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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핸 왜 몇 해? 뭐 그 사람 나이 환갑 진갑 다 지난 줄 알던가? 인저 마흔다섯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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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식이가 몇 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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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놈이 인저 갓스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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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긴 그렇구먼서두. 작자가 너무 안달을 해싸니까 얄미워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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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안달 타령을랑 쉬엄쉬엄 허구 어서 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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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안달의 본명은 ‘권중욱’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이 동네에서는 몇 없다 싶으리만큼 그의 별명은 오래된 것이다. 한동네에서도 젊은 아이들 축에서는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평생 땅만 파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도록 운명지어진 그들에게는 아무개의 성이 뭣이요, 아무개 아버지요, 아무개 할아버지인 것을 아는 것으로 족한 때문도 있기는 했지마는 권안달의 별명은 그만큼 유래가 긴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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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십 년 전, 그가 아직 이십오륙 세밖에 안 됐을 시절이다. 그 전전해 가을에 그는 지금의 처한테 장가를 들었다. 그제나이제나 남의 땅만 파먹고 사는 그들 처지에 삼십 전에 도령 소리를 면한 데서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궁말서 한 삼십리 떨어진 동네에 혼인한 바로 다음해 남편을 여읜 열 일곱 난 소녀 과부가 있었다. 권중욱의 아버지 권 생원은 자기도 이미 연로했고 가세가 하루 이틀 새로 펴일 리는 만무한지라 자식 장가도 못 들여놓고 죽을지도 모른다 해서 그 소녀 과부와 짝을 지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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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그렇지, 열일곱이니 뭘 알겠느냐. 네 다음이라두 아예 딴생각을랑 말구 네 댁을 아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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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생원은 아들을 불러앉히고 타이르고 타이르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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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생원은 일자무식이었다. 원래 뼈대를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집안은 아니었다. 생원이란 것도 동네 사람들이 그의 조상이 한때 이조 중엽에 떠들썩하던 권 승지였다고 해서 자진해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을 도리어 싫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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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 년 전에 벼슬한 것이 내게 하관인가. 양반이란 학문을 닦아야 양반이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위인이 그런 건 찾아 뭣하나. 오히려 부끄러운 노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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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권씨 집안으로는 궁말 근동에 두세 집에 있었다. 그 권씨들이 가끔 몇대조가 어떠니 몇대조가 뭣을 했느니 하면 그는 볼일을 보러 갔다가도 슬며시 돌아와버린다. 그가 젊었을 시절만 해도 조상만 들추고도 먹고 살 수 있을 그런 시절이었건만 그만은 오히려 숨어 살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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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조상이 잘났다는 것만 자랑하는 위인이니 저 못난 건 모르지. 그건 조상을 떠받치는 게 아니라 조상한테 욕을 먹이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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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 그렇게 믿었고 또 처세를 했다. 그는 어떤 편이냐면 좀 되바라진 자기 아들도 어려서부터 자기의 소신대로 길렀다. ‘사람은 제가 잘나야 대우를 받는 법이다. 쓸데없이 조상을 들추는 사람처럼 못난이는 없다. 조상을 들추지 말고 너 자신을 들출 수 있도록 해라. 제 성명 삼자도 못 알아보는 위인이 조상만 들추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권 생원은 오직 하나뿐인 아들 중욱을 이렇게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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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의 땅뙈기를 얻어부치면서도 중욱이를 글방에 보낸 것은 그때문이었다. 물론 「동몽선습」을 겨우 떼고 눈물을 머금으며 사랑하는 아들의 등에 지게를 지우기는 했지마는 권안달이 자기의 성명을 알아보는 것은 그 아버지의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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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이 처음으로 닳아빠진 낫 꼬랭이에 목다리 지게를 진 것은 어떤 늦은 가을 아침이었다. 그 해로 처음 살얼음이 잡힌 이튿날 아침이었던지라 그들 부자의 마음은 더욱 서글펐다. 된서리가 눈처럼 대지를 덮고 밭머리에 선 회초리만 남은 포플러 가지에 앉은 까치 소리도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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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기왕 땅을 파먹고 살았지마는 자식대에만은 아비 한 노릇을 안 시키리라고 굳게굳게 맹세했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가며 저 오봉산 기슭에까지 따라나오며 아들 몰래 눈물을 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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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욱아, 치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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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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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지. 부리나케 가서 한웅큼만 긁어가지고 온. 그동안에 아버진 얼른 저 자릴 마물러서 장에 갔다 올게니께. 너무 욕심 차리지 말구 조금만 뜯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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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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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린 속에두 아비가 원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아비 눈에서두 피눈물이 난다. 아빈들 왜 네 등에 지게를 지우고 싶으랴만… 허지만 중욱아, 아비는 무슨 짓을 하든지 네게만은 일평생 지게는 안 지우마. 무슨 짓을 하든지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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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소리가 점점 눈물에 지적지적해가는 것을 본 중욱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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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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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지게를 진 채로 털썩 주저앉으며 느껴 울었던 것이었다. 나이 어린 중욱이에게는 그것이 어떤 설움인지도 몰랐다. 책을 끼던 겨드랑에 지겟작대기를 끼고 붓을 쥐던 손아귀에 낫자루를 잡는 설움이 아닌 바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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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자기도 일평생 아버지와 같은 일생을 보낸다는 것을 막연히일 망정 의식 못한 바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설움은 오직 단순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본 데서 온 귀여운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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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 마라, 중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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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생원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그리고 손을 잡아 일으키다 말고는 그대로 자기도 주저앉아서 통곡을 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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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렇게 별렀더니만 네게다 또 지게를 지우다니… 아버지가… 아버지가 내 등에다 지게를 지우실 때도 그렇게 우셨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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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만 환장이 된 것처럼 마른 잔디를 벅벅 쥐어뜯으며 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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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중욱아! 가자! 내가 네 등에다 왜 또 지게를 지우랴! 자, 그놈의 지게를 이리 다우,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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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어린 아들의 등에 졌던 지게를 벗기더니 무서운 증오와 함께 땅에다 메어쳤다. 그러고는 마치 그 지게가 자기와 자기 아들의 운명을 뒤틀어놓으려고나 한 것처럼 다리를 번쩍 들어서 지게를 짓밟던 것이다. 바짝 마른 지겟발은 비명을 올리고 동강이 났다. 그는 아직도 분을 못 풀고 신이 나서 사그리 짓밟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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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가자! 네게다 왜 지게를 또 지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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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욱은 엉엉 울면서 집으로 끌려내려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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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다시 뚜덕뚜덕 어린 아들의 지게를 꾸미고 있는 권 생원의 꼴은 ─ 그러나 더욱 처참한 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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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중욱은 영영 지게를 벗지 못하고 말기는 했으나 그러나 아버지의 교훈은 뿌리깊이 그의 머릿속에 새겨졌었다. 그의 아버지는 손자놈의 백일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었다. 그때도 그는 모들뜨기 숨을 쉬엄쉬엄 쉬며 중욱이를 머리맡에 앉혀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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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욱아, 무슨 일이 있든지 창식이에게만은 지게를 지우지 말도록 해라. 너 할아버지가 하실려다 못하셨구 내가 할려다 또 못했지만… 너까지 그 뜻을 저버려야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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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 당부해가며 숨을 거두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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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욱에게 ‘안달’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아버지의 산 교훈의 덕택이었다. 중욱은 눈을 뒤집어쓰고 일을 했다. 소처럼 자고 소처럼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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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처럼 먹을 수만은 없었다. 먼동이 틀 때부터 이슥토록 소처럼 일을 하고도 그는 오직 토끼처럼 입만 놀렸다. 일년 가야 떡 한 조각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손장난하는 데는 더구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그의 말마따나 뭣이 뒤집어씌워서 한해 여름 팽이노름을 했다. 마침 백중이어서 장터에는 씨름판이 벌어지고 난장도 틔었었다. 동무들과 휩쓸려 나갔다가 권하는 바람에 일전 놓고 오전 놓고 하다가 일원 각수나 물리고 말았다. 오십전을 찾았다. 그 바람에 그는 남은 오십전을 마저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어 광목 끊으러 갔던 십원을 다 털고 말았다. 그것은 분명히 속임수였다. 그러나 다 잃고 난 후에야 그것도 깨달은 그였다. 그것은 피땀 ─ 아니 피눈물이 섞인 십원이었다. 한여름 동안 밤잠을 못 자고 원두막을 지키어 만든 십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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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 난생 처음으로 난가게 술집으로 들어갔다. 막걸리를 곱배기로 두 잔이나 거듭하고 흥분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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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손! 이놈의 손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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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팽이 돌린 손가락을 제 주먹으로 콕콕 조지어댔다. 이마빡을 뚫어도 노랑물 한 점 안 나오리라던 중욱이가 십원을 잃었다는 소문이 동네 사람들 간에 퍼지자 누가 보고 전했는지 손가락을 주먹으로 짓찧던 이야기가 퍼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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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 안달 해야 내 고런 놈 안달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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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건너고 두 입 건너서 그대로 안달이 되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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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시골 사람들에게는 ‘권중욱’이라는 이름보다는 권안달이 한결 부르기도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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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안달 안달 하구 그른 양 말하지만 그래두 그렇게 무섭게 한 덕으로 지금은 훨씬 셈이 폈을 께외다. 아마 땅마지기나 좋이 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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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박봉으로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남들이 하듯이 나도 농사나 좀 지어볼까 하고 같이 회사에 있던 김모의 발련으로 이 궁촌으로 옮아온 지 얼마 안 되던 어떤 날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정 군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정 군은 김 군과 외사촌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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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권안달의 아들은 지금 어떻게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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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궁금했다. 삼대를 두고 이루려던 그 뜻이고 보니, ‘손자대에 와서나 이뤄지이다’하고 비는 마음도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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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한 일이나 그저 그 식이 장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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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지게를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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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수 있나요. 지금 농사랑 옛날과두 달러서 출몰은 늘어두 소출은 늘지를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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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담해져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필사코 아들에게는 지게를 안 지우려던 일생의 꿈도 헛되이 깨어지던 그날 아침처럼 서리가 오려는가 차차분한 찬 하늘에는 별 한 점 없다. ‘그렇듯이나 독실한 농군이 삼대를 두고 이루려 하고도 이루지 못한 그 꿈을 호밋자루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책상물림인 내가 어떻게 이루랴’하는 시커먼 불안이 권씨네 삼대가 걸어왔다는 길의 암담과 함께 가슴을 징커니 내리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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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권안달네는 전답이 얼마 가량이나 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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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서든지 이 가슴의 암담을 헤쳐줄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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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계량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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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요! 말하자니 땅이라지, 모르면 몰라도 논이 서너마지기에 밭이라야… 한나절갈이나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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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시가로 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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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두 건답이니까 한 오륙백원이나 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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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아서 그대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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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개소리도 겨울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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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걸을수록에 더 어두워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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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이후로 권안달의 가족을 대하는 것이 내게는 한 공포가 되고 말았다.안달의 그 퀭한, 어떻게 보면 삼각형으로도 보이는 그 눈 속에 눈물이 그득히 괴어 있는 것 같이도 보여진다. 그 눈물은 안달 한 사람의 눈물도 아니요, 그들 일가만의 눈물도 아니리라. 그의 아버지와 그의 할아버지와 그리고 대대로 올라가서 그들 권씨의 승지에 이르기까지의 몇십대조의 눈물이 되어 함께 이 권안달에게 유전이 된 것이리라. 아니, 그들 권씨 일가문에 그치지 않고 그와같이 남의 땅을 파먹는 궁말 십삼 호의 그리고 모든 그런 처지 사람들도 또한 권안달의 눈 속에 괸 눈물과 같은 비극의 주인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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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 속에 서린 설움은 이십 년 후 또 나의 눈 속에 서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식의 눈에 또 똑같은 설움이 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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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바라고 이 궁벽한 촌으로 기어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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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이렇게 반성해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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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들 시골로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소위 이르는바 ‘흙에의 환원’이라든가, ‘노동의 신성’이라든가 그런 값싼 명예에 동요된 것도 아니다. 시골로 와서 도시에서의 부채를 벗자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좀더 나 자신의 생활을 갖고 싶었다. 모자를 쓰고 넥타이를 매고 쓴 차를 비싼 돈을 주고 마시고 남의 눈에 보비위를 하기 위해서 쓰여지는 마음과 경제의 여유를 나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 쓰고 싶었다. 옷 한벌에 백여원씩, 헝겊 오라기 한 개에 이삼원씩 주고 사느니보다 모두 훌훌 벗어부치고 등걸잠방이에 짚신이나 꿰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남의 이목을 꺼릴 필요도 남의 눈에 보비위를 할 필요도, 그리고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문화인인 체 가장을 할 필요도 없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었다. 송아지가 아닌 바에야 멀쩡한 놈의 모가지에 헝겊끈을 잡아맬 필요가 어디 있으며, 옷은 사람의 살을 가리기에 족하면 그만이겠거늘 빛을 보고 천을 보고 모양을 보고 ─ 그러기 위해서 뭘 두 푼 내지 서 푼의 고리를 물고 그럴 필요가 어디 있더냐 했었다. 다 찌그러져 가는 오막살이집에서 자고 나오면서도 백만장자인 체해야만 하는 도시. 허위와 가식과 가장 훌륭한 생활방법이 되어있는 도시. 거기에 미련을 둘 필요가 어디 있느냐. 가도가도 끝이 없는 무한한 공을 손바닥만하게 줄여볼 까닭이 무엇이냐.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고 또 마음대로 누워서 창망한 대공, 흐르는 구름,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골, 호피 담요보다도 오히려 부드럽고 향기로운 잔디밭, 우거진 숲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는 신선한 공기. 무엇에 팔려서 이런 대자연을 두고 가로수의 빈약한 그늘 밑을 장 대고 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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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방편이 불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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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도시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도시는 생활방편이 지나치게 편한 폐단은 없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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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알지 못하는 세계란 아름다운 법이다. 나도 알지 못하는 농촌을 낙원처럼 여겼다. 아니 나의 단순한 성격의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파아란 하늘이 보고싶었다. 흐르는 구름이, 그리고 흐르는 별이 보고 싶었다. 숲속에 서려진 신비, 데파아트 대창살 속에 갇히어 있는 그런 새소리가 아니라 울창한 숲과 파아란 하늘과 흐르는 구름을 보고 진심으로 노래부르는 새소리가 무턱대고 듣고 싶었다. 미칠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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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권안달의 얼굴을 대할 때 나의 꿈은 너무나 처참하게도 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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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 앓은 아이가 침장이를 피하듯이 나는 내 마음속에 점점 커가는 응어리를 날마다 만져보면서도 기를 쓰고 권안달과 마주치기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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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히 나는 아침 저녁으로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입김이 내 얼굴에 와서 퍼질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마주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 군이 내 집으로 알선해준 집은 안달의 집에서 문 여닫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붙어 있다. 혹 정 군이고 누가 와서 날 찾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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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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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먼저 듣고서 전갈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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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늘은 피해 살 수는 있어도 삽짝을 나서면 그의 삽짝이 들여다보이는 이웃 사람을 피해 살 도리는 없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권씨로 해서 가슴속까지 불쾌한 전율을 느끼고야 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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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차차 나아가겠지. 길래 그럴래서야 산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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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심지어의 위안으로 나는 그날그날을 지기를 못 펴고 대공과 잔디밭과 숲을 즐기었다.
 
98
그러나 지나면 지날수록에 나의 공포는 커가는 편이다. 그후 나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권안달의 생활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일년내 고등어 꼬랑지 하나 사먹는 것을 못 보았다는 것이요, 닭을 십여 마리나 치면서도 오십 평생 달걀 단 한 개를 자기상에 놓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두번 장에를 가야 국 한 그릇 사먹는 것을 본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99
“그건 무서우니까! 기를 쓰고 맨입으로 오죠. 어쩌다 누가 끌어? 없죠. 경운 밝은 사람잉께. 남의 걸 얻어먹었으문 갚아야잖나요? 제 털 빼서 제 구멍에 박을 사람이닝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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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말을 내게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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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안달의 안달은 참 유명골자하니께. 보실라우, 박상. 요전에 읍에까지 고칠 바치러 갔군요. 갈 땐‘관에 칠원만 했으면 젠장 장국밥 한 그릇 사먹구 오겠구먼’, 가면서 그립디다요. 안달넨 칠팔 관이나 땄거든요. 그랬더니 웬걸요. 관에 구원 삼십전입디다요. 구원 삼십사전! 그래, 모두들 막걸리 사발이나 생긴다구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웬걸, 워낙 배는 고프구 하니까 동전 두 닢 주고 엿 한 가랠 사먹군 냉수만 들이켭디다요. 에이, 고런 놈의 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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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본받을 만한 장한 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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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듣다못해서 나는 석근이라는 그 젊은 친구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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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을 만한 일이군!”
 
105
석근이는 숨을 콕 막혔다는 표정으로 날 멍하니 쳐다보더니,
 
106
“그래 박상, 돈 모으는 것두 좋긴 하지만 그래 사람이 살구 봐야지. 공돈이 이십여원이나 생겼는데 장국밥 한 그릇 안 사먹고 온단 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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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괜한 객돈 아뇨?”
 
108
“헤 참, 박상은 인저 박안달이라구 불러야겠수다. 온 그래,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서 말이외다. 처자는 굶기는 것두 죄라는데 제 배때기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제 창자를 굶긴단 말요? 오는데두 이눔의 창자가 쪼륵쪼륵 지렁이 우는 소릴 합디다요. 그래두 배가 무슨 큰 죌 졌다구 허리끈만 우찍우찍 조여 맵디다요. 그래, 것두 본받을 만한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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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그런 본을 받기만 했다간 영락없이 고택골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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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가 띄엄띄엄 하는 소리로 툭 한마디 던진다.
 
111
인제 남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어졌다. 나는 권안달의 생활을 아침 저녁으로 목도할 수도 있게 되었다.
 
112
내가 궁말로 내려온 것은 감나무잎 단풍이 한창일 무렵이다. 오십 년래의 대한이라는 가물로 해서 거둠새도 없고 농가에서는 비교적 한산한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 감잎이 다 떨어지고 진눈깨비가 푸슬푸슬 내릴 때까지 또 한번도 권안달이 한가히 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동네의 다른 사람들은 거의 다 한가했다. 낮에는 팔짱을 끼고 서성대다가 저녁이면 모여앉아서 화투도 치고 밤윷도 놀고 고누를 놓기도 한다. 그러나 권안달은 거름을 개지 않으면 도끼를 들고 산으로 간다. 점심도 안 먹는지 온종일 고주막 캐는 소리가 구슬프게 공복을 울린다. 하다하다 할일이 없으면 마당을 쓱쓱 쓸고 있다. 한번 내가,
 
113
“뭔 마당을 그렇게 여러 번 쓰시오. 내가 보기에두 오늘 벌써 두 번짼데… 농가란 너무 맑아도 보기 싫답니다.”
 
114
이렇게 말을 걸었다.
 
115
“모르시는 소리시죠. 우리네가 마당이 깨끗하라구 비질을 하나요.”
 
116
“그럼요.”
 
117
나는 말뜻을 채 알아채지 못했다.
 
118
“농가야 그야말루 좀 어지러우면 어떤가요. 허지만 한번 쓸면 그만큼 밑거름이 생기거든요. 이 나뭇잎이 거름새기는 덴 좋습넨다.”
 
119
밤에는 이슥하도록 자리를 맨다. 어쩌다 잠이 안 와서 밖을 나서면 고드랫돌 맞부딪는 소리가 댈그락댈그락 문 틈으로 새어나온다.
 
120
반 남아 찢어진 달이 감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나는 공포와 함께 말할 수 없는 애정을 권안달한테 느끼기 시작했다.
 
121
“여태 안 주무십니까?”
 
122
“박상이슈. 들어오시오.”
 
123
우리는 장시간이나 농사 이야기를 했다. 내년 봄에 파종할 순서며, 여기의 토질 잔손질하는 묘득, 이런 것을 두서없이 묻는 대로 대답을 하다가,
 
124
“거 큰일이시오.”
 
125
한다.
 
126
“뭣이가요?”
 
127
“시골이란 제 손으루 꿈지럭거려야 하는 법인데 박상야 어디 뭐 해보았겠어요. 어떻든지 다른 도릴 해야지 농사란 그렇습넨다. 제 털 빼서 제 구멍에 박아야 하는 건데, 그게 지금야 어디 그리 쉰가요. 허구 농사란 제가 제일 허구 저한테 품삯받는 셈인데 박상이야 어디 그렇소. 일두 남을 줘야지 품삯도 남을 줘야지. 거 아닌말루 배주구 뱃속 벌어먹는 푼수가 되기 쉬우리라.”
 
128
그밖에도 그는 여러 가지로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이런 말은 동네지간에 할말은 아니로되 아무개 아무개는 사람의 속이 맑지 못하고, 또 누구는 사람이 안팎이 다르고, 누구는 입이 싸고, 누구는 얌치가 없고 하니 내색을 할 것은 아니나 그런 줄이나 알라고 하고는,
 
129
“권××은 나와도 척분간이 되지만 시비를 가리는 데야 척분이란 게 하관인가요. 사람이 좀 박합니다. 그 사람이 글자나 배웠죠. 그게 탈이야. 글을 배울 땐 남 모르는 걸 뜅겨주자구 밸 겐데 이건 남을 속여먹는 데 쓴단 말야. 까막눈이야 속인들 뭐 아나요. 속은 소경이 그른가, 속여먹는 눈뜬 놈이 그르지.”
 
130
이른 봄날처럼 땀구멍이 간질도록 따스한 날 한낮이다. 나는 뒷산 부리 전나무가 두어 주 선 옆 묘 앞 잔디에 번듯이 누워 있었다.
 
131
정말 농촌에서 생계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이 새삼스러이 불안을 가져온 것이다. 아쉬운 대로 논마지기와 밭뙈기라도 얻었으면 했으나 책상물림한테 전답을 내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몇 푼 안 되던 퇴직금 끄트러기도 이제는 거의거의 동이 날 지경이다.
 
132
‘저 무한대한 푸른 하늘만 바라보아서는 배도 안 부른가보구나… 그렇겠지. 사람은 푸른 하늘을 먹구 사는 것은 아니니까…’
 
133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134
“뭘 허슈?”
 
135
하구 권안달이 나뭇지게를 내려놓는다.
 
136
“살 궁릴 하구 있습니다.”
 
137
“살 궁리?”
 
138
“살 궁리를 하자면 사람은 궁합넨다.”
 
139
“그럼요.”
 
140
“죽을 궁리를 해야지.”
 
141
재미있는 말이라고 혼자 감탄하고 앉았는데 그는 푸슬푸슬 이야기를 꺼낸다.
 
142
듣건데 그의 최대 희망은 논 열 마지기와 밭 이틀갈이라 한다. 공부공부했으니 지금 세상 형편 돌아가는 것을 보니 공부만으로도 먹구살 수 없고 보니 자식들한테 꽂아 먹을 것이나 물려주면 싶다는 것이다.
 
143
“정말입넨다. 내 그 이상 더 바란다면 죄를 받지요. 아버지두 논 열 마지기가 소원이었습넨다. 그래저래 그게나 갈아서 연명이나 하면 살죠. 재산이란 덜컥 있어두 걱정이지. 단양댁 보시지요. 영감님은 일년 가야 동전 한푼 쓰지두 못하면서 어떤 자식이 돈을 훔쳐내나 어떤 손자놈이 땅문설 빼내나, 어디 사음이 바가질 안 씌우나, 그저 날이 새나 잠이 드나 이게 근심이라오.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더러 팔자가 늘어졌다지? 괜헌 소립넨다.”
 
144
“지금 댁에 닷 마지기가 있다죠?”
 
145
나는 정 군의 하던 말이 생각나서 그의 나이를 따져보니 이 농부의 삼대째의 기원이 언제나 이루어질까를 손꼽아보는 것이다.
 
146
“말은 닷 마지기죠. 허지만 그게 논인가, 천수답이지. 아예 인전 생각지두 않소. 내 나이 오십이 가까웠고 세태는 변했어. 뭘루 열 마지길 채우겠소. 있는 거나 안 팔아먹으면 다행이지.”
 
147
권안달은 긴 한숨을 쉬며 지겟목발에 두 어깨를 디어미는 것이었다.
 
 
148
3
 
 
149
눈 한 점 없는 강추위가 달포를 두고 잇대었다.
 
150
나는 내 처와 어린것들과 같이 마치 개구리처럼 방 속에서 과동을 했다. 아스팔트 바람에 약할 대로 약해진 나의 몸은 저항력을 잃고 있었다. 처도 아이들도 가쁘게 기침만 하고 어떤 밤은 거의 새웠다.
 
151
나는 권안달의 얼굴을 보는 것도 하루에 한 번이 아니었다.
 
152
그러나 하루는 날이 좀 풀리는 듯해서 몸이 뒤룩거리도록 껴입고 여러 날만에 정군을 찾아갔다. 양계니, 양봉이니, 포도, 삼, 약초, 복숭아 ─ 이런 부업의 이야기가 벌어졌으나 결국은 내게는 화중지병이었다.
 
153
나의 저금통장에는 삼십원 미만의 돈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154
“에이, 인저 돈 얘긴 그만둡시다. 우린 그러다 굶게 되면 서울로 기어올라가지?”
 
155
무슨 배참이나 하는 것처럼 이렇게 무지르니까 정 군도 무색한지 잠시 말이 없더니,
 
156
“참, 권안달 말요. 잘하면 심평이 좀 펼걸.”
 
157
“뭬 존 수가 있나요?”
 
158
“수랄 건 못 되지만 그래두 삼사백원 생길걸.”
 
159
“허,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160
하고 나는 곧 토지 중개를 했는 게다 했다. 사실 가을이라도 경기 일대는 토지 브로커로 들썩했다. 어차피 풍선경기겠지만 이삼십전의 밭이 1원 심하면 2원까지도 호가가 되고 또 매매가 된다. 심한 것은 궁말 근방의 야산들이 평당 3,4전 하던 것이 일 약 1원 2,3십전에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려나가는 것이다. 궁말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 토지 소개에 발벗고 나섰다는 것은 들어서 아는 터다.
 
161
내가 그렇잖으냐고 하니까 정 군은,
 
162
“소갤 한 게 아니구 소갤 당했답니다.”
 
163
하고 웃는다.
 
164
“근방에 권씨네 종중산이 있지요. 그리 큰 산은 아니나 전 같으면 사오백 원밖에 못 나갈 것이 요번통에 6천여원에 매매가 되지요. 권안달두 권리가 있으니까 아마 한 3,4백원 몫이 차지될 겝니다.”
 
165
나는 사실 나 자신에게 그만 돈이 떨어진 것만큼이나 기뻤다.
 
166
“거참, 기쁜 소식입니다.”
 
167
내가 다시 이렇게 되풀이하자,
 
168
“헌데, 권안달하구 또 한 사람이 몹시 반댈 한다더군요.”
 
169
“왜 그럴까요?”
 
170
“그 산엔 권씨네 묘들이 많거든요. 그러니 제 조상의 해골을 팔아먹는 셈이 아니냐구 펄펄 뛰더래요.”
 
171
“허!”
 
172
나는 어쩐지 그 이상 더 말을 해서는 안 될 것같이만 느끼어져서 그대로 함구를 하고 말았다.
 
173
그러나 그런 지 며칠 안 가서 권씨네의 종중산은 드디어 팔리고 말았다. 그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권씨의 심정이 짐작되어 나는 거기에는 한 번도 스치지 않았다. 그도 종중산에 대해서는 일언반사가 없었다. 그래저래 나도 그 일은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다.
 
174
다시 달포가 지나자 나는 정말 갈 데까지 가고 말았다. 음력 정월인지라 햇볕도 훨씬 따스했고 오후면 마루에 볕이 들어서 어린것들과 나와 앉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어떻게든지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창망한 대공과 폭신한 잔디밭을 마음껏 즐길 수는 있었다. 그러나 석유 궤짝으로 짜놓은 쌀그릇은 거의 밑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부처는 어린애들을 하나씩 데리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창망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175
하늘과 같이 허망된 심경이었다.
 
176
울고 싶은 심경이었다. ─ 아니 나중에 보니 아내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177
“별수 있소. 당분간 당신은 친정에 좀 가 있어주.”
 
178
“어린것들은?”
 
179
“당신 가면 걔들두 같이. 호라비가 어린것들을 데리구 있은들 어쩌겠소.”
 
180
“당신은?”
 
181
“나야 또 서울루 가서 직업을 얻어보는 게지. 죽기보다도 싫소만…”
 
182
나는 또 원망스럽게 창망한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다.
 
183
아내도 나와 똑같은 심경이었던지 시선을 멀리 치보내고 앉아 있었다.
 
184
아내는 어린것들을 데리고 친가로, 나는 다시 서울로, 이렇게 농촌의 꿈이 깨어지자 우리는 서서히 이반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동안에 서로 음식도 나누어 먹을 만큼 되어 있던 터라 아내는 그러 이야기를 하니까 공부만 해두 쓸데없다고 권안달 댁이 그러더라고 분한 듯이 와서는 한숨만 쉬고 앉았다.
 
185
나는 우선 이반과 아내 차비만이라도 있어야 할 판이다. 그날로 몇몇 친구한테 편지를 띄우고 우두커니 배달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186
정말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187
닷새가 지났다. 친구한테서는 이렇다는 엽서도 없다. 인제는 가서 떼라도 쓸밖에 없다. 주섬주섬 집어치웠던 양복을 꺼내 입고 신발끈을 매는데,
 
188
“박상.”
 
189
하고 누가 찾는다.
 
190
“누구요?”
 
191
“납니다.”
 
192
권이었다.
 
193
나는 아내의 고무신짝을 찔찔 끌고 나갔다.
 
194
“우리 걔 어미한테 얘긴 들었소만, 거참.”
 
195
하고 입맛을 쩍쩍 다시고 섰더니,
 
196
“낼 오시나요?”
 
197
“글쎄올시다. 낼 아마 못 오게 될지두 모르겠습니다만.”
 
198
“허, 그럼 안됐는데…”
 
199
하고 딱해하는 표정이다.
 
200
“왜요. 낼 뭔 일이 있습니까.”
 
201
“다른 게 아니라요. 낼 내가 잔칠 좀 하기루 하구 돼지를 한 마리 잡았는데 박상이 안 계시다면 섭섭해 됐나요.”
 
202
“잔치라께요?”
 
203
의외였다. 권안달의 집에는 잔치를 할 만한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204
“다른 게 아니라요. 허, 이걸 어떻게 얘길 한담… 내게 요번 우스운 돈이 한 삼백원 들어왔죠. 그래서 동리 사람들하구 한번 차려놓구 먹어나 보자구…”
 
205
도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다.
 
206
안달은 창피한 노릇이라고 외면을 해가며 종중산이 팔린 경과를 길게 설명을 한다. 역시 그는 끝까지 반대를 했던 모양이나 다수가결로 매도증서에 도장이 찍히고 어제 그 분배액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207
그러나 이만 정도의 설명만으로는 잔치까지는 이해가 어려웠다. 그래서 의아해하니까,
 
208
“기실인즉슨 이렇습니다. 이 돈은 어차피 내게 당한 돈두 아니구,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돈이거든요. 조상의 뼈를 판 돈이 아닙니까. 그래서 난 생각다 못해서 내 몸엔 안 지니기루 했지요. 얼마 빼서 같이 코흘리구 자란 친구들과 돼지나 한 놈 잡아서 술이나 받아서 먹구 나머진 박상하구 의논껏해서 좋도록 하려구요.”
 
209
“거 그 큰돈을 그렇게 재롱이 헌 칼 쓰듯 하시려오.”
 
210
하고 나는 억지로 농담을 꾸미려 했으나 나 자신이 지금 궁한 나머지 비굴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던 차니만큼 그것은 농담도 되지 못했다.
 
211
“잘 쓰는 게죠, 잘. 내가 친구들한테 신세를 졌으니 갚아야 하고 동리 덕으로 살았으니 그 은공도 잊어서 안 되고… 내 아버지 말씀이 늘 그랬죠. 의 아닌 돈을 몸에 지니면 사가 붙느니라고… 그럼 낼 꼭 내려오시겠지요.”
 
212
“네, 꼭 오겠습니다.”
 
213
“암, 와야지. 하룻밤에두 만리성을 쌓는다는데 행인처럼 그대루 헤어져서야 되겠소.”
 
214
나는 친구를 찾아갈 용기도 없어 며칠을 뒹굴고만 있었다.
 
 
215
〈「조광」60호,1940년 10월〉
【원문】안달소전(安達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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