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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공(巡公) 있는 일요일(日曜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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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4
채만식
1
巡公[순공] 있는 日曜日[일요일]
 
 
2
일요일이라서 그쯤만 믿고 열시가 가깝도록 늦잠을 자다가, 어린 놈과 안해의 성화에 견디다 못해 필경 끄들려 일어나다시피 일어나서는 소쇄를 마친 후 마악 조반상을 물린 참이었었다.
 
3
다섯 살박이 어린 놈은, 새로 장만한 모자야 구두야 양복 등속을, 죄다 벌써 떨쳐 입고는 물병까지 둘러메고, 문간으로 마당으로 우줄우줄 뛰어다니면서 나더러도 어서 얼른 채비를 차리고 나서라고 재촉을 해쌓는 것이었다.
 
4
안해는 또 안해대로 부엌에서, 마지막 내가 물린 밥상을 대강 치우느라고 재빠르게 서두는 모양이더니, 이윽고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면서 나오는데, 입은 연방 벙싯벙싯 다물어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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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그러고 아까부터 신수가 화안하더라니, 자세히 보니, 모처럼 화장을 얄풋이 다스린 얼굴이요, 머리엔 아이롱 자죽까지 곱살했다.
 
6
명색이 주부에 식모 보모를 겸해, 일신삼역을 맡아 하자매 문앞 반찬가게와 목간 출입이 고작이요, 게다가 또 나라는 사람이 무던히는 범연하여 유진장 술이나 먹고 놀러다니기에 음악회 하며 영화구경 한 번인들 데리고 가 주는 법 없고 하는 터이라, 저로서는 오늘 같은 일가 단란의 행락이 십년일득인 양 즐거움직도 한 노릇이었고, 해서 아무려나 근경이 일요일을 당한 샐러리맨의 단가살림 가정답게 명랑한 아침인 법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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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만은 실상인즉 그와 정히 반대이어서, 요새로 바싹 더, 연일 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돌아다니던 끝이라, 사족이 무겁고 머리가 텁텁한 게 인제 목간이나 푸근히 한탕 하고서, 얼큰한 국물에다가 서너 잔 속이나 푼 뒤에 그대로 다시 자리에 누워 푹신 한잠 자고 났으면 거뜬 피로가 다 씻겨 내려갈 것 같고, 꼬옥 그랬으면 세상 좋겠었다.
 
8
그런데 그 연일 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돌아다닌 것이, 일면의 결과로는 가정에 등한하고 가족에게 불안을 끼쳐 주고 하여, 그들은 정당한 소득을 소득하는 대신 억울한 부담을 부담하지 않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은 거기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받아야 하겠다는 것이었었다. 그래 간밤엔 안해란 자가 어린 놈까지 꼬사를 시켜, 필경 나로 하여금 오늘 일찌감치 창경원에를 데리고 갔다가, 점심은 화신에서 내고, 다시 오후엘랑은 영화를 보여주고 하마는 언질을 두게 했었던 것이다.
 
9
안해는 안방에서 의걸이를 한참 여닫고 하더니, 미닫이를 지치는 소리가 들리는 게 마침내 옷을 갈아 입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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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왕 면하기는 그른 노릇이니 고이 차리고 나서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가을이라 어느새 햇살이 제법 기어오른 마룻전에 가 쪼글트리고 앉은 채 손끝 하나 꼼지락하기조차 싫었다.
 
11
“옷 안 입으시우?”
 
12
안해의 재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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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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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뿍 늘어진 대답이 듣기에도 딱했던지, 안해는 혀를 끌끄을 차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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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두, 쓴 약 먹기같이 싫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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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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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식이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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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밖에서 소리나는구면…… 그런데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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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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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띠렘마가 하나 생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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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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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 밤 늦게까지 술을 먹구 돌아다닌 그 사실 한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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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죄다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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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가만 있어…… 그래, 내 생리가 많이 피로하질 안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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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가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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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결과엔 아주 상극된 두 가지의 행동을 요구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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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면 알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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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를 나수어야 할 행동, 그러니깐 휴식, 그놈 하나하구…… 그러구 또 하나는, 피로를 되려 더하게 할 행동 즉 시종무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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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무관이면 나꺼정 영광이게요?”
 
30
“내 생리는 개인문제구, 가정두 집단이란 의미루다가 사회래서, 조직세포를 소모시켜 가면서라두 사회봉살 해야만 한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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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침 각을 하섰거들랑, 진작 일어서실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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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지…… 내가 이렇게 자꾸만 피로를 회복 못한 채 생리를 소모만 시키다가는 얼른 휘딱 늙어버릴 테니, 당신은 손실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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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은 푼시하믄 당신은 더얼 늙은 편이니깐, 어서 좀더 늙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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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편네, 입잣 고약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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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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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게 다아, 시어머니 밑에서 톱톱이 시집살일 못한, 요새 여편네들의 무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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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기가 그리 원통하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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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늙긴 정녕 늙었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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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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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안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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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어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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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옥, 연앨 갖다다 그놈, 멋들어지게 한번만 더 했으면 꼬옥 좋겠는데, 허어! 도무지 안돼진단 말야! 으응? …… 정녕, 늙은 표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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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저 뭣이냐…… 있잖우? …… 에미꼬라더냐? 애비꼬라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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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꼬, 애비꼬, 머어 수두룩한데, 글쎄 연애가 돼지질 않는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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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급은 여급이래두, 아마 날보담은 다아들 영리한 모양이죠?”
 
46
열시를 치는 소리가 들려, 게으른 기지개를 뻗히면서 겨우 마룻전에서 일어서는데, 마침 철그럭철그럭, 순사 하나가 환히 열린 일각대문 밖으로 언뜻 지나가다가 일단 지나쳐 놓고는 그제서야(생각이 났던지) 고개만 돌려 끼웃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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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합시요?”
 
48
하고 알은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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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그 순사다.
 
50
호구 조사도 오고, 청결 검사도 오고, 또 무엇무엇 분별도 시키러 오고 하여, 낯은 잘 알아도 성명은 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단지 ‘그 순사’일 뿐이었다.
 
51
“안녕합시요? …… 좀 들르십시요그려?”
 
52
내가 마룻전에 일어섰던 채, 인사말로 권을 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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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 일요일이라 한가하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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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마당으로 걸어들어온다.
 
55
나이 지긋해 서른댓이나 되었음직하고, 얼굴도 끔찍이 순량하게 생겼고, 그런 값을 하느라고 거들먹거린다든지, 딱딱거리거나 까다롭게 굴지도 않고, 하는 데에 자연 호감이 가고 무관한 생각이 드는 호인 타입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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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걸터앉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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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좋습니다…… 순을 돌든 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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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래두 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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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놓았던 미도리곽을 집어 내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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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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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사양하면서, 같은 미도리를 꺼내더니 성냥만 받아, 한 개 피워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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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악 그러자, 잠깐 보이지 않던 어린 놈이 대문 안으로 뛰어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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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아!”
 
64
하고 부르다가, 순사가 있는 걸 보고는 주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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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는 웃음이 가득 흩어지는 얼굴로, 비슬비슬 낯가림을 하는 어린 놈한테, 몸을 구부리고 들여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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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허 그놈, 자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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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양이, 제 부모더러 들으라는 인사성이라기보다도, 진정 아이가 귀여워 그러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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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딜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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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옹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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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옹물원! 으음……”
 
71
순사는 마당 가운데서 그대로 쪼그리고 앉으면서 커다란 손을 까분다.
 
72
“……일루 온?”
 
73
어린 놈은 낯가림하던 것은 그새 어디로 가고, 안심을 하고서 처억 순사한테로 가 안긴다.
 
74
이런 게 다(내 안해의 설명에 의하면) 애비 나를 닮아, 아이가 숫기가 없고 번접스러서, 아무하고도 잘 친하고 몸을 붙여주고 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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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머니하구 아버지하구, 널 데리구 동물원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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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77
“아, 저 자식 …… 응이 뭐야? …… 네에, 않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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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마디 탄하는 소리에, 순사는 껄꺼얼 웃으면서……
 
79
“거 아버지가 괘애니 꾸지람을 하시는구나! 안직은 그래야 하는 법인데, 허어허허허…… 그런데 참…… 승이 뭐라? ……”
 
80
“김가……”
 
81
“으음…… 그리구우, 이름은?”
 
82
“창식이……”
 
83
“으음, 김창식이! …… 그리구우, 본관은”
 
84
“김해……”
 
85
“어이꾸! 본관을 벌써 다아 알구…… 양반이루구나, 아주! …… 허어허허허…… 그리구우,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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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87
“으음, 다섯 살! …… 숙성한데!”
 
88
순사는 어린 놈을 내려놓고도 못 잊어운 듯 머리를 다시금 쓸어주면서 내게로 돌아선다.
 
89
“자제, 아주 자알 두섰읍니다!”
 
90
“웬걸요! …… 놈이 장난이 어찌도 심한지……”
 
91
“아 어려서는 장난두 해야지요! …… 아아주 실팍하구, 머어 대장감인데요? 허어허허허!”
 
92
순사는 한번 더 안아주고 싶은지, 그동안 토방으로 와 서 있는 어린 놈을 바라다보고 바라다보고 한다.
 
93
그래 내가
 
94
“댁에선, 자녀간에 몇이나 두섰읍니까?”
 
95
하고 물었더니, 쓸쓸히 웃으며 고개를 흔들면서
 
96
“없답니다! 한 개두……”
 
97
“네에! …… 건 참, 적적하시겠군!”
 
98
“그래, 남의 댁 애길 보면, 죄다 귀엽구 그래요! 허허…… 자아, 그럼……”
 
99
순사는 두 발을 모으고, 거수경례로 내 작별인사를 받고는 돌아서서, 철그럭철그럭 대문 밖으로 나간다.
 
100
나는 차차로 멀어가는 그 순사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를 두고서 다시(아직은 모를) 어떤 판단엘 도달하느라고 잠깐, 기둥에 기대어 섰는 채, 우두커니 잠심해서 있었던가 본데, 그동안 안해는 준비를 다 마치고 나오는 참이든지, 미닫이 여는 소리가 들리면서 연달아
 
101
“옷두 여태, 안 갈아 입으시구! …… 아마 당신은 사람 하나 잘 친하기룬 둘째 가라문 설어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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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오금을 박는다.
 
103
그때, 나는 나대로 마침 그 어떤 판단에로 진행되고 있던 생각이 비로소 도달점엘 도달했다.
 
104
문오(文五) 선생…
 
105
이, 문오선생이 생각나느라고 방금까지 나는 그랬던 것이고, 과연 그 순사와 문오 선생은 많이 비슷한 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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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순사 그의 걸거얼하니, 일변 모주꾼으로 생긴 것 같은 것은 차라리, 새색시처럼 수가 좁고 얌전하기만 하던 문오 선생에다 대면 오히려 정반대랄 수도 있기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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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딘지 그, 촌 학장 샌님같이 괴타분해 보이는 구식이라든지, 좀 만만할 만큼 사람이 순해 보이는 것이라든지, 또 점잖기는 점잖은데 그 점잔이 시체의 ‘신사적’인 점잔인 게 아니라, 석양 무렵에 크막한 삼각관을 쓰고서 낡은 비각(碑閣) 앞이라도 오락가락하염직하게, 하향 양반 쩨의 고취를 풍기는 점잔인 것이라든지, 이러한 점들은 엔간히 문오 선생인 듯 역력스러움이 있었다.
 
108
문오 선생과 그 순사……
 
109
역시 방불했다.
 
110
하나, 그렇지만 만약에, 순사 그가 순사가 아니요, 항용 여느 사람이었더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그의 풍모하며 성격하며가 비록 문오 선생과 근사함이 있다손치더라도 나는 거저 무심히 보고 말았기가 십상이지 궁벽스럽게 옛 글방 선생님이었던 한 촌샌님이 구태여 생각까지 나진 않았을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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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매양 결정적인 동기는, 그 사람의(즉, 그 순사의) 단지 비슷한 풍모 때문이었던 것이 아니라, 위선 무엇보다도 순사요, 순사인데, 그러자 또 생김새까지 방사한 데가 있고 하여, 그래 마침내
 
112
‘옳아! 참……’
 
113
하고, 문오 선생의 생각이 생각나기까지에 이르렀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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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그렇듯이, 순사라고 하는 특정한 조건이 따랐을 경우라야만 용이히 그를 생각하게 될 만큼 문오 선생에게는 순사 그것에 관련하여 졸연치 않은 한 토막의 에피소우드가 있었던 것이다.
 
115
시방으로부터 삼십 년 전, 즉 내가 낳던 해라니까 경술년이겠다.
 
116
그해에 처음, 우리 할아버지의 청을 받아 동촌에서 읍내(邑內) 우리 집 독서당(獨書堂)의 글방 선생님으로 들어온 문오 선생은 나이 그때가 갓스물다섯이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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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청춘이었고, 그 한참을 좋았을 청춘이던 무렵을 고패로, 오십까지의 반생 동안 이십오 년을(하니, 온꼿 사반세기를) 두고서, 그는, 시방은 남지도 않은 우리 고향집 사랑의 저편 옆채에 딸린 서당방 아랫목에 가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 할아버지의, 나를 맨끝으로 한 여섯 손자와, 그보다 많은 십여 명의 동네 아이들에게, 그러고 그 다음 대(代)인 우리 아버지의 이십 명 가까운 손자들과 역시 그보다 많은 여러 수십 명의 동네 아이들에게, 하늘천 따아지의 천자를 비롯하여, 사자소학이며 동몽선습, 통감, 맹자, 논어, 시전, 서전에 이르기까지, 뿐만 아니라 미구에는 보통학교의 교과서 복습까지, 그 밖에도 글씨쓰기와 풍월짓기까지, 이런 것들을 맡아, 그 춘풍추우 이십오 년을 하루같이, 밤이면 밤으로 낮이면 낮으로 정성껏 가르쳐 왔었다.
 
118
하느라니, 첫째 왈, 먼지와 욕과 방구와, 이 석 섬도 착실히 많이 먹었고, 속은 썩을 대로 썩었고 치질은 평생 고질이 되었고, 그러나 백 명 가까운 제자를 길러냈으매 공로야 물론 큼이 있다 하겠고, 일변 월량(月糧) 외에 도조 물지 않는 우리 집 논을 가족들의 손으로 짓게 하여 한 사오십 석 추수를 할 전장도 장만을 했고, 또 그러고 자녀도 과히 섭섭치는 않게 셋을 두어, 다 장성을 해서 남혼여가를 시켰고……
 
119
하는 동안에 나이 어언간 오십을 맞아, 세계는 하나도 변함 없는 우리 집 서당방인, 여덟 자에 열두 자에 장방형으로 된 그 방인데, 인생은 놀랍게 변하여, 머리엔 백발이 하얗게 세었고……
 
120
한편 그러자, 우리 집이 몰락에 몰락의 한길을 밟아오다가, 지금으로부터 다섯 해 전까지엔 마침내 완전히 치패를 하여, 글방 하나조차 지탱을 할 여력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었고(사실 또 초등교육이 이미 그 내용이며 제도가 서당의 필요를 십중 팔구까지 해소시킨 지 오래어서, 한낱 복습소에 지나지 못하기도 했던 터라) 그래저래 글방은 문을 닫고 말았었고……
 
121
한 것을 기회삼아, 문오 선생은 영년의 훈장업을 영영 하직하고, 이내 본집으로 물러가, 촌살림으로 조금도 군색함이 없는 가계(家計)에, 농사를 전업하는 맏아들과, 면서긴지를 부업으로 다니는 작은아들의 봉양을 받으면서,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면서, 한가한 여생을 보내는 팔자 편한 영감님이 되었었고, 그러고 시방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지내되 아직 건재할 것이고……
 
122
이와 같이 무섭게 단순하고, 일종 자랑스럽기에 족할 만큼이나 평탄한 문오 선생의 후반생이었었는데, 그런데 그중에 꼭 한번, 자못 엉뚱하고 폭탄적인 사건이 한 가지 있었으니, 가령 입 험한 우리 할아버지의 형용을 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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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머리 깎고(혹시, 홧김에 중노릇을 갔다면 용혹무괴이거니와) 도무지 어디 당한 것이라고, 망칙하게스리 순검, 도둑놈 잡는 포리(捕吏)를 다닌……”
 
124
즉, 순사를 다닌(보다도, 다니다가 못 다닌) 그 사건이었었다.
 
125
물론 그것은, 일률로 순사라는 그 자체가 무슨, 나쁜 것이라거나 족히 다닐 게 못된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근본이 처지하며 인물하며 성격하며가 무릇 순사와는 인연이 면 문오 선생이었기 때문에, 그 거조가 놀라왔던 것이고, 따라서 그의 그렇듯이 평범한 생애 가운데, 단 하나의 요란스런 탈선으로서 형적이 영구히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질 못했던 것이다.
 
 
126
내 나이 아홉 살 되던 그 해 가을, 추석명절이 갓 지나고 난 초가을부터서야, 우리는 오래 오랜만에 문오 선생을 도로 맞아, 여러 달 동안 폐했던 글방 공부를 다시 시작했었다.
 
127
문오 선생은 그 안 해 섣달, 대목 임시에 항례대로 정월 파접이 되자 설 흥정을 한 것이며 세찬 받은 것이며, 이것저것 한 짐을 꽁꽁 우리 집 머슴에게 지워가지고 동촌의 자기 본집으로 나가더니, 그러고는 감감 소식이 없고 말았다.
 
128
정초가 지나도록 우리한테 세배를 받으러(실상은, 우리 할아버지한테 자기가 세배를 하러) 들어오지도 않고, 보름 명절에도 역시 들어오지 않고, 하다가 필경 스무날이 넘어, 그믐이 지나, 글방을 다시 차릴 때가 많이 늦었어도 종시 그는 싹을 보이지 않았다.
 
129
우리 집에서는 두루 궁금히 여기다 못해 마침내 하루는 할아버지가 기별을 주어 사람을 내보내 보았다.
 
130
했더니, 문오 선생은 바로 정초에 볼일이 있노라면서 타관엘, 어느 타관인지는 모르나 아뭏든 타관엘 나가고 집에는 있지 않더라는 것이었었다.
 
131
그 뒤에 며칠 안 있다가, 재차 또 사람을 내보냈으나, 역시 같은 소리요, 아직도 돌아오지를 않아서, 집안에서들도 근심으로 지낸다는 전갈이었었다.
 
132
우리 할아버지는, 대체 그 숙맥이 타관에 볼일이 있다니, 또 그렇기로손 한 달이 넘도록 나가서 소식이 없다니, 필시 이것은 병이 났던지 호식이 되었던지, 좌우간 무슨 탈이 단단히 붙은 거라고, 걱정이 이만저만찮았다.
 
133
그러나 우리 글방 축들은, 걱정은새로에 그 싫은 글잃기를 면하고 맘대로 노는 게 다행스러서, 문오 선생이 제발 더 더디 돌아옵시사고, 은근히들 축수를 했었다.
 
134
사실 어렸을 적 일로, 글방 공부같이 세상 싫고 귀찮은 노릇이라고는 없었을 것이다.
 
135
내가 처음 비로소 글방 도령이 되기는 그 전전해 즉 일곱 살 적이요 정월인데 하루는 아침에,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가 아니라 붙들어 가지고) 글방으로 나가시더니, 문오 선생 앞에다 앉히고는
 
136
“너, 영섭이 이놈, 인제는 한 살 더 먹었으니, 오늘버텀 글 배워!…”
 
137
하시면서 다시 문오 선생더러
 
138
“접장, 이놈이 천하 별종이요 고집불통이요 장난 괴순 줄 알지?…… 그렇지만 인제버텀은 말을 잘 안 듣던지 공부를 잘 못하던지 하거들랑, 응? …… 그저 걷어 세워놓구서, 피가 족족 나도록 종아리를 때려 줘! ……”
 
139
하고 일껏 엄포를 한번 하신다는 게, 마지막 가서는 고만, 허허어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쓸어주시는 것이었었다.
 
140
별명이(많은 중에도) 호랑이 영감님이요, 집안 사람에게나 남에게나 정말 호랑이같이 사납고 무섭게 굴곤 하기는 했지만, 한갓 재롱스런 막내손자 나한테만은, 둘도 없이 순하고 착한 할아버지시었었다.
 
141
나는, 첫째 왈 할아버지가, 누가 큰소리 한번이라도 할세라 위하고 떠받아 주시어, 할머니 역시 그러하시어, 아버지 또한 만득의 막내동이라고 귀애하시어, 이래놓으니 시방은 다 일찍 세파에 찌들어 속도 있는 대로 썩고 해서 어렸을 적의 소갈머리는 죄다 없어지고 거진 농판이 되다시피 했지만 그때쯤이야 집안에 무서운 사람이 없고, 밖에 나가면 망나니에 후레자식이요, 할아버지의 이른바, 천하 별종이니 고집불통이니 장난 괴수니 하던 소리는 오히려 칭찬으로 들어야 했었다.
 
142
그러한 애망나니였으매, 글방의 명색 없는 문오 선생 따위가 하나도 무섭거나 어려울 리가 없던 것이고, 그래 그날부터 소위 글공부라고, 하늘천 따아지를 배워 읽기 시작은 했으나 애초에 그게 장난인 요량이어서, 아무때고 싫증이 나면 뛰어나와 내 멋대로 딴 장난을 하고 놀고, 선생이 무어 좀 수틀리는 소리를 하면, 냅다 욕을 내깔리고는 안으로 달려들어가서 할머니한테 역성이나 청하고……
 
143
이렇게, 공부라느니보다는 흉내내기요, 놀기삼아 첫해 일 년은 그럭저럭 넘겼고, 그러나 그러면서도 천자와 동몽선습과 또 한가지 무엇이던가를 떼기는 떼었다.
 
144
그러고는 이듬해 봄이자 통감을 시작하면서 일변 보통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이 그때부터서 비로소 공부의 압력과 선생 및 어른들의 단속이 차차로 무겁고 엄하여 곧잘 나의 응석으로는 바워내기가 어려워 갔었다.
 
145
또다시 일 년이 지나자, 그때엔 정말로 글방 공부가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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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둑어둑해 일어나서는 학교에 갈 조반 시간이 될 때까지 글을 읽어야 하고, 학교엘 갔다가 돌아오면 잠시도 놀 겨를이 없이 이내 글방에 들어박혀 앉아 글을 읽는다 글씨를 쓴다 하기를 해가 질 때까지 해야 하고, 겨우 저녁을 먹고 나서는 밤이 이슥해, 어느 때는 닭이 울 때까지 역시 그 짓을 해야 하고…… 그 졸려서 졸려서 눈이 실실 감기고 하는 깐으로는, 꼭 그대로 쓰러져 잤으면 사뭇 꿀맛 같겠다는 것을 감히 못하는 안타까움이더라고야!
 
147
날마다 날마다, 끝없는 날을 끝없이, 그 짓을 되풀이하되 일요일이나 축제일도 없고, 없는 게 아니라 있기는 있는데 학교엘 안 가기 때문에 온종일 글을 읽어야 하니 차라리 더 우울하고, 추석과 정월 두 때의 파접 외에는 방학도 없고, 일 년 열두 달을 다달이 보름과 그믐이면 강을 해야 하고, 하다가 잘못하는 날이면 종아리를 맞아야 하고……
 
148
해서, 도무지 기운을 펴지 못할 만큼 중압을 느껴, 줄곧 기분이 뜨악한 게 괜히 걱정스럽고 하던 그 글방 공부이었고 본즉, 선생이 더디 와 주어서 단 하루라도 더 마음놓고 놀게 되는 것이 기뻤을 거야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었을 것이다.
 
149
그래 아뭏든지 정월은 즐거운 채 무사히(진실로 무사히) 넘겼고, 그러고는 바로 이월 초생이자, 어디서 우러난 소리인지
 
150
“문오 선생이 전주(全州)로 순검 시험을 치러 갔다더라.”
 
151
하는 소문이 좌악 퍼졌다.
 
152
우리는 모두들 놀랐고, 한편으로는 곧이가 들리지를 않았다.
 
153
원, 하고많은 사람에 하필 그 문오 선생이 순검을 다니러 가며, 대체 그이가 어떻게 순검을 다니느냐는 것이었었다.
 
154
그러나 좌우간 그랬다면 우리는 앞으로 다른 새 선생이 올 때까지는 마음을 놓고 놀 터이어서 다행이요, 제발 그게 사실이기를 바랐다.
 
155
했더니, 뒤미처 연해 새 소식이 들리는데……
 
156
“문오 선생이 순검시험을 쳐서 합격이 됐다더라.”
 
157
“문오 선생이 교습소에서 순검 복장을 입고 환도를 차고 총을 메고, 게를 하고 있다더라.”
 
158
“누구는 전주엘 갔다가, 문오 선생이 순검 복장을 입고, 환도를 차고 길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더라.”
 
159
드디어 사실은 사실인 듯싶었다.
 
160
그러고 그제서야 생각을 하니 문오 선생이 얼마 전부터 『무선생 일어자통』이라는 책을 구해다 놓고서 아이우에오(アイウエオ)를 비롯하여 곤니찌와(コンニチワ) 곤방와(コンバンワ)를 열심으로 공부하던 것도 다 딴속이 있었거니 하는 짐작이 갔다.
 
161
그것을, 우리 할아버지 이하 우리들이며 또 다른 사람들은 다같이, 문오 선생이 글방 아이들 가운데 학교엘 다니는 아이들의 학교 과정을 보살펴 주자면 자기가 깜깜속이어서는 안되겠으므로 그러한 필요를 느껴 국어의 만학을 시작했거니 했을 뿐이지, 설마 그와 같은 의뭉스런 궁량이 있었던 줄이야 눈치인들 채었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162
물론 그의, 한 일 년 동안 자습을 한, 국어의 학력이란 자못 민망한 바 있을 만큼 빈약한 것이었었다.
 
163
가령, 할아버지의 서사로 있는 김서방이 더러
 
164
“아, 여보 접장? …… 밥 먹었냐구, 그 인사를 일어루는 무어라구 허넝그라이우?”
 
165
하고, 지성으로 물은다치면 문오 선생은, 소처럼 씨익 웃으면서
 
166
“메시다베마시다까, 그럴 테지……”
 
167
하고 대답을 하고……
 
168
또 어느때는
 
169
“잘 잤느냐는 인사는 일어루 무어라고 허넝그라이우?”
 
170
한다치면
 
171
“요꾸네마시다까, 그럴 테지……”
 
172
하고, 대답을 하고……
 
173
이렇게, 시방 생각하면 매우 딱한 국어의 학력은 학력이었으나, 그러나 그때 당시만 해도, 속에 한문장이나 들고 한 사람으로, 고만 정도의 국어면 순사로 뽑히기에 또 다니기에 그다지 부족은 없을 시절이었었다.
 
174
그후 다시 얼마가 지나, 이월 보름 그 무렵인데 하루는 우리 할아버지가 드디어 적실한 사실을 아셨던지
 
175
“허! 그런 번괴라니! …… 원 제가 순검이 다아 어디 당한 것이라고! …… 선비 자이 포리가 어디 당한 것이여! 미쳤어! …… 미쳐! …… 안 미치고서야 그럴 리가 있나……? 미쳤어! 아까운 사람 버렸어!”
 
176
하고, 미운 소리 고운 소리 험구에 걱정에 해싸시는 걸 듣고서야, 우리도 마침내 그를 사실인 줄로 믿게 되었었다.
 
177
삼월에는, 바로 초생에 문오 선생의 대거리로, 역시 동촌에서 새선생이 들어와 우리는 다시 글을 읽어야 했다.
 
178
그러나 선생이라는 그 영감이 어떤고 하니 나인 칠십에, 귀는 절벽이요 정기라고는 다 빠지고 없고, 게다가 우리가 학교의 과정을 복습할라치면, 그런 글은 애여 들여다보지도 말라고 꾸중꾸중이고, 모든 것이 문오 선생에게다 대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179
그러한 몰골이니, 가뜩이나 성미 유난스런 우리 할아버지의 눈에 고였을 리가 없는 노릇이어서 필경 한 달이 다 못하여, 도로 쫓겨가고라야 말았다.
 
180
그 며칠 동안을 우리는, 글방 부엌 아궁 위에다가, 헌 빗자락 못댕이를 거꾸로 세워놓고 절을 하면서
 
181
“늙은 백여수, 어서 나갑시사! 늙은 백여수, 어서 나갑시사! 늙은 백여수, 어서 나갑시사!”
 
182
하고 세 번씩 부작을 외어, 선생 쫓는 ‘뱅에’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서로 번갈아가면서 하곤 했는데, 마침 일이 그렇게 되니까 이건 정녕 ‘뱅에’의 영검이 난 것이라고 좋아들 했었다.
 
183
할아버지는 또다시 선생을 물색하기는 하는가 본데, 선뜻 마땅한 잡이가 없었던지 우리는 사월부터 눌러 오월 육월 칠월 팔월…… 팔월 추석까지 넉 달 넘겨 다섯 달 가까이를, 선생이 또 생기나, 매일같이 마음은
 
184
조마조마하면서도, 성가신 글은 읽지 않고 그날 그날을 놀며 지낼 수가 있었다.
 
185
그리고, 어쩌면 이럭저럭 해서, 글방 공부의 고역을 영 아주 면하게 되지나 않나 싶어, 후련한 안심이 들기도 했었다.
 
186
하는 동안에 추석을 당했고, 추석이매 한결 더 즐겁게 놀았고, 하다가 송편도 엔간히 동이 날 무렵인 스무닷새 그 어림이었는데……
 
187
누가 꿈에라도 그 생각인들 했을세말이지!
 
188
천만뜻밖에 문오 선생이 돌아오지를 않았느냐 말이었다.
 
189
이웃 골, 곰개라는 포구에서 처억, 흰테 두른 모자에 복장을 떨쳐 입고 환도 차고 구두 신고 철그럭투드럭 뽐내고 돌아다니면서 도둑놈이 있으면 예끼놈! 붙잡아 포승으로 꽁꽁 묶어 가막소로 보내고, 이렇게 한참 거드럭거리고 순검을 다니며 있을, 그 문오 선생이 아니더냐 말이었다.
 
190
그런데 글쎄, 깎은머리에다가 탕건 받쳐 갓만 썼을 뿐, 전과 다름 없는 문오 선생인 채로, 별안간 아뭇 소리도 없이, 하물며 다시 우리들의 글방 선생님으로다가, 땅에서 솟은 듯이 불쑥 나타나지를 않았더냐 말이었다.
 
191
깜박 놀랐고, 이마에 가서 하얀 망건 자죽만 남고는 박박 깎은 머리 위에 상투가 없어져버린 그의 풍모는 보기에 자못 기물스럼이 있었고, 선뜻은 죄끔 반가왔으나 글 읽을 일이 아득하여 정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일변 어째 순사를 그만두었는지, 그 속이 수월찮이 궁금했고……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죄다 이러한 마음자리였었다.
 
192
그중에도 특별히, 글방의 문제 인물이었던, 내 끝엣삼촌 태규(씨) 같은 군은, 고만 낙담실망이 되어 퉁퉁 부어가지고는
 
193
“대체 무슨 일이여!…… 웨, 고이 댕기던 순검이나 댕겨먹덜랑 않구서 어쩌자구 으실렁으실렁 도루 와? 오기를…… 내 참, 폭폭헐 노릇두 다 보겄당개!”
 
194
하고 혼자 두런거려쌓기를 마지않았다.
 
195
이 폭폭할 노릇이란 소리가, 우리 다른 축들도 축들이려니와, 당자인 그에게는 진실로 적절한 심경의 폭백이 아닐 수 없었다. 서당꾼은, 내 이 알량한 끝엣삼촌 태규, 그가 오직 하나의 대가리 굵은 군이요, 그 다음이 내 바로 손위의 다섯째형에, 마침 고 또래의 열너댓살박이 동네 아이가 둘, 그러고 나…… 이렇게 도합 다섯인데, 그중에서도 글읽기가 제일 고역인 것이─특히 밤 깊도록 밤글 읽기가 큰 고통인 것이 누구냐 하면 역시 태규삼촌이었던 것이다.
 
196
본디 학문이라는 것에 뜻이 없고, 재주는 소 이상으로 둔하여, 여덟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은 온꼿 열두 해를, 전혀 한문만 읽었다는 양이, 인제 빠듯이 맹자 양혜왕장을 들여놀 만큼 더딘 진보이었고 보매 제발 다시는 모면을 했으면 싶었던 그, 지긋지긋한 글방 공부를, 웬걸! 도로 또 시작하는가 할진대, 작히 가슴을 쾅쾅 찧고 싶도록 폭폭하기는 폭폭할 근경이었었다.
 
197
그는 그렇다고, 한편 가만히 생각을 하면 문오 선생의 돌아옴이 우리들한테나 돌연이요 의외이지, 적어도 우리 할아버지하고는 단 이삼 일만이라도 앞당겨, 사전(事前)에 서로 연락과 타혐이 있었던 게 분명하고, 사실 또 그러했어야 당연한 순서일 것이었다.
 
198
한 것을, 짐짓 암말도 않고 있다가 느닷없이 변(진실로 변)을 만나게 하여, 선생이 없더라도 그새 배운 것이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루 한 차례씩 글을 들 좀 읽어라 읽어라 해싸시는 걸 막무가내로 펀펀 놀아먹기만 했던 그 벌역인 듯이, 한바탕 착실히 우리를 갖다가 골탕을 먹인 할아버지 영감님의 심술도 꽤 어지간한 것이었었다.
 
199
하옇든 아무리 싫고 불평이어도 절대로 피하는 도리는 없는 것…… 하릴없이 우리는 당장 그날로 문오 선생 앞에서, 그동안 여러 달 중단을 했던 글방 공부를 다시금 시작했다.
 
200
시작한 지 그러고, 한 사오 일 가량 지난 어느날 밤인데, 계제가 우연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궁금거리이었던 것으로 문오 선생이 어째 무엇 때문에 순사를 그만둔 그 내력을 비로소 이야기 들을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201
초가을이라지만 아직은 늦은여름이요 길지 못한 밤이라, 저녁 후의 마지막참으로 읽는 세쨋번 참이 거진거진 끝나갈 무렵엔, 하마 오래잖아 첫닭이 울게 밤은 이슥하니 깊었다.
 
202
그러느라매, 모두들 졸음이 쏟아져 눈은 시일실 감기고, 안개속같이 몽롱한 정신에, 끄덱거리는 몸은 맥 하나도 없이 시들부들, 이 모양들을 하고 앉아서 마지못해 다뿍 갈린 음성으로 히잉하앙 읽는 시늉만 하는 글소리하며…… 남이 본다면 작히 민망스런 꼴이 아닐 수 없었다.
 
203
단 한마디
 
204
“고만들 읽어라!”
 
205
하는 영이 똑 떨어졌으면, 단박 퍼뜩퍼뜩들 살아날 것 같은데, 보아야 문오 선생은, 발 따악 개키고 앉아 흔들흔들하면서 오다가다 정신 차리란 소리만 지르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청을 돋구어
 
206
“孟子對曰何必曰利[맹자대왈하필왈리]니꼬, 只有仁義矣已耳[지유인의의이이]니이다.”
 
207
하고 태규삼촌의 얼림글을 읽어주는 것이었었다.
 
208
문오 선생은 청이 맑고 보드라와 글소리 좋고 잘 읽기로 이름난 선생이었고, 해서 그이가 얼림글을 내면은 우리는(제 글이 아니라도) 저절로 흥이 나서 운덤에 모두들 글이 잘 읽어지곤 했었다.
 
209
그래, 그때도(요새 말로 하자면) 소위 『라스트 헤비이』랄까, 우리는 새로 기운을 내어, 얼마 동안 보암즉하게 한바탕 글을 읽었고, 그러자 이윽고 문오 선생은 자기가 먼저 읽기를 그치더니
 
210
“그마안들 읽어라!”
 
211
하는 영이 내렸다.
 
212
영이 떨어지자 마자들, 한꺼번에 글소리를 뚝 그치고는, 없던 정신이 번쩍 들어 책을 덮어다가 치운다, 물러갈 채비를 차린다 한참 부산했다.
 
213
하는데, 그때 마침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할아버지가 앞마루에서 빙그레하니 방안을 들여다보고 서서 있었다.
 
214
노인이라, 초저녁에 살폿 한잠을 두르고 나서는, 잠이 안 올라치면 더러 글방으로 내려와 글 읽는 것도 보고, 우리들과 얼려 풍월도 짓고 문오 선생과 이야기도 하고, 하던 끝엔 밤참도 내오게 하고 하는 걸로 적잖이 심심파적을 삼아오던 터이었었다.
 
215
해서, 그날 밤에도 진작부터 내려와 문오 선생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계셨던지 천천히 방으로 걸어 들어오면서
 
216
“아 접장, 거 글을 너머 멋지게 읽어서 못쓰겠네! 으응! ……동네 어디 과부가 있으까 무서! ……”
 
217
하고 실없는 소리를 하여, 그를 구슬려 주는 것이었었다.
 
218
문오 선생은 부끄럼을 타 외면을 하고 빙긋빙긋 웃으면서, 아랫목 자리를 피해 이편짝 뒷곬으로 비껴 앉고……
 
219
할아버지는 아랫목으로 가 앉더니
 
220
“……응…… 그렇게 글두 잘 읽구, 다아 저렇게 얌전헌 선비가……”
 
221
하시다가, 마침 동네 아이 둘이 문오 선생과 할아버지한테
 
222
“선생님 알량이 주무세요!”
 
223
“알량이 주무세요!”
 
224
하고 돌아갈 인사를 하는 것을
 
225
“느덜, 게 있거라, 게 있어……”
 
226
하면서 불러앉히고는, 태규 삼촌더러, 안에 들어가서 무어나 밤참을 좀 하고, 마른 안주에 술을 몇 잔 내오게 하라고 시키는 것이었었다.
 
227
우리는 도로들, 무릎을 꿇고 주욱 앉았다.
 
228
할아버지는 빙긋이 한참이나 문오 선생의 그 망건 자죽만 하얀 ‘중대가리’를 건너다보다가……
 
229
“저게 무슨 망신이람! 으응? 저 중대가리 좀 보아!……”
 
230
문오 선생은 자꾸만 더 고개를 돌리고, 우리는 웃음이 나오지 못하게 입술을 다물어야 했다.
 
231
“……선비가, 선비허구두 점잖구, 다아 저렇게 얌전헌 선비가, 으응……? 머리 깎구…… 깊숙한 산중으루 중노릇이나 갔다면 혹시 몰라두…… 생판 순검을 댕겨? …… 포리! 도독놈 잡어서 주리 틀구 허는 포리! 그걸 댕겨?! 으응? …… 허어허허허. 여보게 접장??”
 
232
“………”
 
233
“사서삼경, 어디 가서 그런 대문이 있지? 선비는 머리를 깎구 포리를 댕겨야 허느리라…… 이런 대문이 어디 가서 있지?……”
 
234
“………”
 
235
“허어허허허…… 그런디 참…… 여보게 접장?”
 
236
“아아니, 날 좀 보아?”
 
237
“예에!”
 
238
문오 선생은 외면을 한 채, 겨우 대답이었다.
 
239
“내가 꼬옥 한가지 궁금헌 일이 있는데, 날 속 좀 시원허라구, 그 대답 좀 히여 보소 응?”
 
240
“………”
 
241
“대체, 기왕 한번 댕겨보자구 시작헌 노릇을, 그만두기는 어찌서 그만두었넝고? …… 어찌서 제에우 보름인가 스무 날인가 댕기구는 그만 두었넝고?”
 
242
“………”
 
243
“뭣이냐, 거 자네가 내게 헌 간찰 사연대루, 거 원, 젊은 놈이 평생 고리타분허게 훈장질이나 하여 먹을 일을 생각허닝게 답답허구 한심히여서, 그래서 한때 미친 맘에 그걸 가 댕겼다구…… 그러면 말이지, 응…… 여섯 달이나 그렇게 고생을 히여 가면서 순검 공부를 히여 각구서나, 옳게 순검이 되였거던, 아 웨 좀, 한 일 년이구 몇해구 눌러 댕기는 것이 아니라…… 응? 어찌서 이내 그만두었어?”
 
244
“………”
 
245
“응?”
 
246
“………”
 
247
“응? 어찌서 그리 쉽게 작파를 하였어?”
 
248
“당하여 보닝개, 못 댕기겄더만이요!”
 
249
졸리다 못해, 문오 선생은 겨우 입이 떨어져 한마디 대답이었었다.
 
250
“허어허허허! ……”
 
251
할아버지는 한바탕 유쾌하게 웃고 나서……
 
252
“……그래, 못 댕기겄넝가?”
 
253
“예에!”
 
254
“도독놈 못 잡겄넝가?”
 
255
“………”
 
256
“도독놈 못 잡어보았넝가?”
 
257
“예에!”
 
258
“못 잡었어!? 그럼…… 누구 뺨싸대기(따구)라두 더러 때려보았넝가?”
 
259
“어떻게 때려요!”
 
260
“아, 저런 놈의 알량헌 순검 좀 보소! 순검허구는 참 데데허네…… 뺨싸대기두 못 때렸어?!”
 
261
“………”
 
262
“도독놈두 못 잡어보구, 어떤 놈 뺨싸대기두 한 번두 못 때려보구…… 그러구서 무얼루 순검 댕겼다구 허넝고? 응? …… 단 보름이라두, 명색이 순검은 순검인디…… 복장 입구 환도 차구, 말이지…… 그런디 통히 아무것두 못 히여? 참말잉가?……뺨싸대기 한 번두 못 때려보구…… 도독놈두 못 잡구……응?”
 
263
“………”
 
264
“나는 자네 믿구서, 밤인다치면 대문 단속두 잘 않구 그맀더니, 인제 보닝개 큰일날 뻔히였구만 그리여! 으응…… 그런 놈의 알량헌 순검이 어디가 있어…… 아아니 허다 못해서 눈먼 노름꾼이라두 한 놈 잡어보았어야지? …… 참 순검허구넌!”
 
265
노름꾼이란 소리에, 문오 선생은 웬일인지 혼자서 자꾸만 피씩 웃어 쌓는 게 눈치가 좀 달라보였다.
 
266
할아버지는 그 기수를 채고서
 
267
“그럼, 노름꾼은 잡어보았넝가?”
 
268
하고 딱지를 떼듯 묻는 것이었었다.
 
269
문오 선생은 그러나 더 웃기만 하지, 대답을 못하는 것을 할아버지는 바싹……
 
270
“노름꾼은 그리두 잡어보았지?”
 
271
“………”
 
272
“응?”
 
273
“………”
 
274
“잡어보았넝가?”
 
275
“………”
 
276
“잡어보았지? 응?”
 
277
질지심스럽게 캐고 드는 것을, 문오 선생은 드디어 나가 드러눕듯이
 
278
“잡다가 말었답니다!”
 
279
“뭣이? 잡다가 말다니……”
 
280
할아버지의 그, 놀라면서 허겁을 떠는 엄살이라니……
 
281
“그럼, 꽁지만 잡었던가?……”
 
282
우리는 고만 참을 수가 없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들, 킥킥 웃어야 했다.
 
283
“……대체 원 어떻게 히였길래 그놈을 꽁지만 잡구 말었단 말인가? 응?”
 
284
“………”
 
285
“허어허허허 어허허허…… 그래, 여엉 못하여 본 것보다는 그리두 더얼 섭섭허겠네. 꽁지라두 잡아보았으닝개…… 허어허허?”
 
286
할아버지는 여지껏 참고만 있던 웃음을 한꺼번에 실컷 다 웃고 나서는 다시 또
 
287
“그래 그런디이…… 원 어떻게 허다가 잡을 뻔은 히였으며, 어떻게 허다가 놓치기는 히였던가?”
 
288
“………”
 
289
“응? …… 그 이얘기나 좀 히여보소?”
 
290
“………”
 
291
“그 이얘기를 좀 히여보라닝개? …… 어쩌다가 그맀어?”
 
292
“아실 것 없어요…… 괘애니 그저……”
 
293
“아아니 자네가 암만 히여두 눈치가 노름꾼을 잡다가 놓치구서 그 얼루 순검을 못 댕기구 쫓겨왔넝개비네…… 그렇지? 매양……”
 
294
“쫓겨오던 안 히였어두……”
 
295
“그럼?”
 
296
“지가 내놓구 왔어요.”
 
297
“노름꾼 잡다가 놓친 것이 무렴히여서?”
 
298
“그런 게 아니라……”
 
299
“그럼?”
 
300
“한 놈을 잡어서 묶어놓았더니……”
 
301
“잡었어? 묶었어?”
 
302
“그놈이……”
 
303
“도망을 갔어?”
 
304
“도망을 간 게 아니라……”
 
305
문오 선생은 마침내 할아버지의 유도(誘導)에 넘어가 부처님같이 어렵던 입이 겨우 조금 떨어져 가지고는 뜨문뜨문 이야기 대답을 하고 있었다.
 
306
우리는 잠은 죄다 달아나고 모두들 그리로 귀가 바싹 기울어져 있었다.
 
307
그러자 마침 밤참이 나와 마악 재미있으려는 대목에서 잠깐 이야기는 중단이 되었다.
 
308
속이 한참 출출했던 판이라 찐 송편이며 밤 풋대추 감 등속의 과실이며가 수북수북 쟁반에 담겨 두 쟁반이나 앞에 와 놓였을 때에는 얼른 손을 내밀고 싶게 구미가 당기었다.
 
309
할아버지 앞에는 조그마한 술반에다가 차린 조촐한 술상이 따로 놓이고……
 
310
“어서들 먹어라!”
 
311
할아버지는 우리를 건너다보면서 그러시고는 또
 
312
“……잘 자리니 과식을랑 허지들 말구……”
 
313
하고 신칙까지 하신 뒤에
 
314
“……접장은 일러루 오소…… 나허구 두어 잔씩만……”
 
315
하면서 태규삼촌이 붓는 잔을 당신이 먼저 주욱 마시더니 손수 한잔을 쳐 문오 선생을 권한단 말씀이……/
 
316
“이게 무슨 술인고 허니 점잖은 선비가 머리깎구서 순검 댕긴 벌주닝개그리 알구서 먹소오?”
 
317
술상 모로 나앉은 문오 선생은 싱그레 웃으면서 잔을 받아 훨씬 외면을 하고는 쓴 약 먹듯 가까스로 술을 마시는 것이었었다.
 
318
우리는 떡이야 과실이야 지딱지딱 째금째금 맛있게들 먹으면서도 아랫목의 동정을 살피기에 정신은 한 가닥 가서 깔려 있었다.
 
319
할아버지는 문오 선생이 되부어 드리는 잔을 받아 드시면서 환갑에 아직도 저엉정한 이로 일변 문어발을 기운 좋게 씹으면서……
 
320
“게 그리서…… 묶어놓았더니 도망을 간 게 아니라…… 어찠다? 그 이얘기 좀 마자 듣세?”
 
321
“건 머얼, 들으실 것이 있다구! ……”
 
322
“자아…… 아까 그 잔은 벌주요, 시방 이 잔은 상주네 상주! 꽁지만 잡었어두 아무턴지 노름꾼 하나 잡을 뻔한 그 상주네!”
 
323
“지는 인재 더 못허겠읍니다!”
 
324
“잘 자리닝개 두어 잔 히여두 괜찮네…… 어서 마시구…… 그래 그리서 어찠다?”
 
325
문오 선생은 쓴 술맛에 오만상을 찡그렸다가 도로 펴고는 잔에 술을 또 부으면서……
 
326
“아 하루는 밤이 늦어서 비가 처얼철 오는데……”
 
327
“으응 그리서?”
 
328
“순을 돌러나갔더니……”
 
329
“순행을! …… 그리서?”
 
330
“외딴 주막집이서 불이 반짜악 반짝 허길레……”
 
331
“안 무섭던가?”
 
332
“가까이 가 보닝개 돈 소리가 나구 우세두세……”
 
333
“노름들을 허더라아?”
 
334
“쫓아 들어갔더니……”
 
335
“그리서?”
 
336
“죄다 풍겨버리구는……”
 
337
“한 놈만 잡혔단 말이지이?”
 
338
문오 선생은 싱긋이 웃고 대답을 못하는 것을 할아버지는 재촉하듯……
 
339
“그리서……”
 
340
“묶어놓았더니……”
 
341
“도망갈라구 안 부수대구 가만히 있던가?”
 
342
“묶어놓구 보닝개루……”
 
343
“그놈 참 못난 놈이던개비네! 눈먼 쇠경(장님)이던지……”
 
344
“앉인백이어요!”
 
345
“뭣이?! 앉인백이? ……”
 
346
문오 선생은 대답 대신 뒤통수로 손이 올라가고, 할아버지는 몸을 커다랗게 흔들면서
 
347
“허어허허허! 허어허허허! 게 그리서? 학장님 순검이 앉인백이 노름꾼을 묶어놓았넌디이…… 그러구는?”
 
348
“살려달라구 빌어쌓는데……”
 
349
“빌더라? …… 그리서?”
 
350
“가만히 서서 제 몰골허며 신세를 생각허닝개……”
 
351
“앉인백이 노름꾼을 붙잡어서 처억 묶어놓구 섰는 순검 자네 몰골허며 신세를 한번 생각히여 보았단 말이지이……? 거 그럴 듯헌 말이구만! 그레 생각을 허닝개?”
 
352
“기가 맥히구……”
 
353
“그렇기두 히였을 티지! …… 그리서?”
 
354
“허허어, 웃어 버리구서……”
 
355
“허허어, 웃었다? …… 허어허허허! …… 어허허허허! …… 게, 그러구서?”
 
356
“풀러놓아 주구서, 그 질루 바루……”
 
357
“작파를 허구 말었다? …… 허어허허허! 어허허허!”
 
 
358
나는 마루에 기둥에 가 지어 선 채, 그때 그날 밤, 할아버지의 술상머리에 앉아서, 단 두잔술로 홍당무우같이 빠알간 얼굴에, 웃지도 못하고 빙그레하니, 말이라야 뜨뭇뜨뭇
 
359
“풀어놓아 주구서 그 질루 바루……”
 
360
순사를 작파했노란 대답을 하고 있던 문오 선생의 그 모습과 더불어 한편 어떤 봉놋방에서 앉은뱅이 노름꾼 하나를 꽁꽁 포승으로 묶어놓고는 놈이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 것을 정복 정모에 칼을 차고 순사로 차린 문오 선생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섰다가 고만 기가 막혀─ ‘허허어!’ 하고(울지 못해) 웃으면서 놈을 도로 풀어놓아 주는 그 장면이 마치 ‘필름’의 이중노출처럼 눈에 어리어 입가로 절로 미소가 드러남을 깨닫지 못했다
 
361
토방에서 구두를 제해 내해 늘어놓고 손질을 하느라 분주하던 안해가 재촉삼아 고개를 쳐들다가 문득 내가 혼자서 웃고 있는 것을 보았던 모양으로
 
362
“순사친구 하나 또 사귄 게 퍽이나 재미는 나시나 보군요? …… 워너니 그 사람두 술은 좋아허게 생겼읍디다!”
 
363
하면서 끄은히 오금을 박는다.
 
364
하는 소리에 나는 방금 문오 선생에게 대한 그 이중노출 위에 가서 또다시 아까 그 순사의 영상이 한 개 더 곁들여 삼중노출로 얼씬거리면서 그러면서 한 재미스러운 한 개의 구상이…… 그 순사도 저어 시골(가령 충청도) 어디 촌 학장 샌님네 집안 태생으로 삼십이 가깝도록 상투나 탄탄 짷고 지나다가 요행 국어 마디나 아는 덕에 하루 아침 뛰쳐나와 순사를 다니는 참이고, 맨처음 누구를 포박했을 때에는 역시(고만두진 안했어도) 기가 막혀서 허허어 한바탕 웃었을 것이고…… 이렇게 영락없이 문오 선생과 죄다 꼬옥 같은 경력이요 인물이거니 하는 상상을 고의로다가 구상하기가 웬일인지 무척 재미스러웠다.
 
365
그래 나는 한번 더 빙긋이 웃으면서
 
366
“그 순사가 꼭 우리 문오 선생님 같다!”
 
367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겨우 기둥으로부터 물러났다.
 
368
하는 것을 안해가 별안간
 
369
“아이 참! 내 정신머리 좀 봐! ……”
 
370
하면서 문간으로 부산히 나가더니 그러다가 잠깐 돌려다보면서
 
371
“그…… 문오 선생님이라는 글방 선생이 정(丁)씨우? 정문오(丁文五)라구?”
 
372
하고 묻는다.
 
373
“그래서? 왜?”
 
374
“아아니 그이가 돌아갔다구 부고가 온 걸 고만……”
 
375
“머어?!”
 
376
내 스스로도 의외일 만큼 나의 놀람은 호들갑스럽다. 결코 여느 다른 날 문오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면 나는 거저
 
377
“아, 돌아가셨나!”
 
378
“그렇지만 육십도 아직 못 됐을 텐데!”
 
379
“오랜 훈장질로 모진 치질이 생겨 늘 고생을 하더니……”
 
380
“아무려나 몇해 더 편안히 사시다가 한갑이나 지난 뒤에 천천히 돌아가시들랑 않구서! ……”
 
381
이쯤 태연한 가운데 좀 섭섭해하기나 했을 따름일 것이었었다. 그러므로 놀란 것은 하상 문오 선생이라는 옛 글방 선생의 궂김이 무슨 나에게 아플 무엇이 있었던 때문이 아니요 계제에 우연히 나의 정신이 시공(時空)을 떠나 그의 생애의 회상에 가서 마침 집중이 되어 있었던 차라 별안간 들리는 현실의 음향 즉 부고란 소리가 방심한 신경을 그렇듯 푼수 이상으로 놀라게시리 확대되어 들린 것이었었다.
 
382
그러나 경위가 그런 줄은 알았으면서도 그래도 한편으로는, 자아 때마침 공교로이 문오 선생 그와 비슷한 어떤 안면 있는 순사 하나가 집 문앞을 지나다가 잠깐 들어와서 그 순사를 두고서 문오 선생의 ‘순사 있는 에피소우드’를 생각해, 하던 참인데, 그러자 또 그의 부고가 와서 있다고해…… 했으니 암만해도 이건 무엇이 씌워댄 노릇인 성만 싶어 도무지 어떻다고 형용을 할 수가 없이 마음이 섬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383
안해는 대문 밖으로 나갔다가 이내 검은 테가 둘렸어 보이는 엽서 한 장을 들고 왔다.
 
384
그는 명색이 신교육을 적잖이 받느라고 받았으면서 자라기를 내내 낡은 집안에서 자란 탓인지, 부고라면 기어코 집안에다가 들여다두지 않는 미신이랄까 결벽이랄까가 대단했었다.
 
385
“아 어제 오후에 온 걸 고만…… 허긴 당신이 너무 늦어서 들오시기두 했지만……”
 
386
이런 발명을 하면서 주는 엽서를 받아들고 보니……
 
387
“學生丁公文五以宿患於今月×日別世[학생정공문오이숙환어금월×일별세] 玆而訃告[자이부고].”
 
388
갈데없는 문오 선생의 부고요, 어제로 벌써 장례는 지나갔었다.
 
389
“거 참 별일두 가다간 있는걸따!”
 
390
결국 한 개의 우연한 일치일 따름인 것을 끝끝내 거기에 신경을 쓰잘며리가 없는 것이어서 웬만큼 불관심에로 처리를 하느라 혼자 한마디 뇌고는 돌아서는데
 
391
“왜애? 무엇이 어쨌수?”
 
392
하고 안해가 등 뒤에서 딸듯이 묻는다.
 
393
“아아니 글쎄, 그이 비슷헌 순사가 마침 오구…… 와이샤쓰 빤 거 하나 주구려? …… 아, 그래서 방금 그이 생각을 허구 있는데 돌아갔다는 부고가 와서 있었으니!”
 
394
“제자라구 혼백이 부고에 묻어 왔던 게지요?”
 
395
“글쎄에…… 그렇지만 이 제자가 머어 그대지 알뜰헌 제자라구!”
 
396
“와이샤쓰가 모두 에리가 해지구 헌 걸, 미처 손을 못 댔는데에! ……”
 
397
안해는 안방에서 장롱을 여닫다가 맨손으로 나온다.
 
398
“……오늘이나 그거 그대로 입으시우?”
 
399
“새까맸는데?”
 
400
“여엉 더러워요? …… 어디? ……”
 
401
안해는 들여다보면서……
 
402
“……아직 괜찮구먼 그러시우!”
 
403
“내야 괜찮지만, 아씨가……”
 
404
“내가 어때서요?”
 
405
“드런 와이샤쓸 입구서 양주 같이 나가면 남들이 보구서, 저 여편네 저는 말쑥허게 빼떼리구서두 사낸 저 꼴을 시켰단 말이냐구 욕헐 게 아니요?”
 
406
“것두, 당신 밤낮 떠받구 나오는 춘추필법이라더냐, 그 논법이시우?”
 
407
“방불허지!”
 
408
돌아서서 넥타이를 매느라니까 문지방을 짚고 섰는 안해의 얼굴이 거울 속의 어깨 너머로 내다보인다.
 
409
“노파가 이뻐졌네! ……”
 
410
빈말이 아니고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411
“……새루 연앨 해야 헐까 바!”
 
412
“당신허구?”
 
413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414
“또 결혼해야 허게? 당신허구……”
 
415
“걱정스러?”
 
416
“하마, 오정 불어요!”
 
417
“훠얼씬 장정이랬으면 더 좋겠다!”
 
418
이런 아무 쓰잘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동안에 나는 어느덧 문오 선생과 그에 대한 일은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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