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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續) 여백록(餘白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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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2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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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餘白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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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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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주(崔泳住) 우(友)가 『박문(博文)』의 출판을 주간하게 되자, 역시 일을 정밀하게 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그의 성미겠지, 상재(上梓)하는 저작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했던 스크랩이면 반드시 원고지에다가 다시 복사를 시켜가지고 작가의 퇴고(推敲)를 거쳐서 비로소 공장으로 넘기기로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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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이번 그곳서 상재하기로 된 졸작『탁류(濁流)』도 예대로 복사를 시킨다고 하더니, 오늘 상경한 길에 들려본즉, 그것이 완료가 되었다고, 1천 매가 넘는 호대한 원고 뭉텅이를 내놓으면서 한시름 던 것을 못내 기뻐하는 양이 미로소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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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알았지만, 이 복사라는 것이 졸연찮아 맹랑스런 말썽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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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채자 같은 것이야『천변풍경(川邊風景)』의 예를 보더라도 사흘이면 끝이 나는데 복사는 『탁류』만 해도 꼬박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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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시일도 시일이요 또 가외의 비용 드는 것도 드는 것인데, 게다가 한글의 정확한 것 등, 이편의 주문에 맞는 사자인(寫字人)이 드물어 더 우기나 곤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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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바삐 인쇄에는 붙여야 하겠는데, 그 준비 수속상 가장 성가시고 손 더딘 관문을 벗어난 것이겠으며, 당사자로 앉아서는 한시름 놓은 줄로 기뻐하는 근경도 그럼직한 노릇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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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자신도 그동안 더러 겪어보는 불편이지만,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했던 스크랩을 그대로 놓고 앉아 되고를 하기란 도무지 옹색스러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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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마 안되는 여백에다가 수정질을 하자면 첫째 마음부터 한심해, 옹당 붓을 대야 할 곳도 그냥 넘기게 되고, 그렇게 대강만 하고서도 들여다보면 군색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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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도 나는 원고지에의 복사를 위선 작자의 입장에서 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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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쇄능률인데, 옹색스런 스크랩에다가 그대로 군색스럽게 퇴고를 한 것보다는 채자가 편해, 조판이 편해, 행의 오꾸리가 별로 없게 되니 교정 때에 사시가에가 편해, 뭐 두루두루 편해서 인쇄능률이 놀랍게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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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복사를 하느라고 시일이 걸리고 비용이 먹고 한 것이 결국은 채자 ․ 조판 ․ 교정 때에 가서, 제값을 더하고서 빠지게 되고, 동시에 인쇄물 자체도 보다 더 정확 정갈하고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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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실(實實)이기 십상일 것이고, 그렇다면 시방 조선의 출판이 채자를 비롯하여 교정에 이르기까지 매우 말이 아닌 형편이니, 나는 그것을 시정하는 한 방도로다가, 특히 자기 전용의 인쇄소를 갖지 못한 출판인에게는 더욱이나 이 ‘원고복사(原稿複寫)’ 의 법을 취택하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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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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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시 오늘 대동(大東)에 들렀다가 복사를 이야기하던 끝의 소감인데, 그 자리에 마침 『탁류』의 복사의 수고를 해준 분이 내참(來參)하여 있었고, 그분의 말이,『탁류』에는 복사를 하면서 보니까 모를 말이 퍽 많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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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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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찍이 동작(同作)이 발표되고 있을 무렵에, 김남천(金南天)씨도 그와 같은 말을 이야기로 했던 듯하고, 또 홍기문(洪起文) 씨는 용어의 불안정이란 말로써 그것을 지적해 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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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세분들의 지적을 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을 하고, 그리고 그 병통을 내가 어휘에 몹시 주의를 하기 시작한 것이, 미쳐 말을 휘어잡아 마음대로 구사하지를 못하고서 도리어 말에게 잡치어 지낸 데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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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말’ 의 자유로운 구사가 작품의 윤기를 내는 데 중요한 것쯤 오히려 작문의 ABC에 속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과거에 있어서 작품의 외식(外飾)과 더불어 ‘말’도 매우 등한히 해오다가, 병자년간 소위 재출발을 하면서부터 ‘말’에 대한 것도 한가지로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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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욕심은 그러했어도 첫째 조선말 그것이 문학적으로 충분한 세련을 겪지 못한 것인데다가 내가 가진 ‘말’은 더욱이나 (이를테면 신개지 풍경같이) 어설프고 사개가 잘 맞지 않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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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왈, 어느 사물에 대하여, 그것과 꼭 들어맞지 않는 말을 갖다가 억지로 쓴 것, 이것이 용어의 불안정이요, 이왈, 지방어를 (중앙 표준어로 고쳐 쓰지 못하고) 그대로 쓴 것, 이것이 모를 말이 많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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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간혹 몇 개, 버젓한 중앙말이로되, 또는 중앙말로는 없는 말이기 때문에, 보는 이가 궁벽스럽게 여길 뿐, 몰라본 것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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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아무려나 이번에 퇴고를 하게 되면 되도록 예의 용어의 불인정을 안정하게, 지방말을 중앙말로 고쳐놓으려고 벼르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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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십분의 완전은 기하기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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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에 시끌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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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절의 뒤를 이어 또 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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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있어서 (위정 지방어로 써야 할 회화의 경우 말고) 말의 중앙 표준어화는 물론 당연 이상의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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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표준어화에 있어서 실제의 곤란을 더러 당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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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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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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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눌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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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남방에서, 논에서 벤 벼를 논두덕에 가릴 때 그 선후와 형식에 따라 이름하는 각각 다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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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정된 표준어에 그것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 또 들어 있다면 어떻게 취급이 되어 있는지, 거기까지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으나 아마 중앙에서는 쓰이지도 않거니와 알지도 못하는 성부르다. 사실 논의 벼를 보고 와서 ‘쌀남구’를 구경했다고 했다는 경인(京人)에게 그러한 어휘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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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렇다면 그 ‘별가리’ 며 ‘새별가리’ ‘벼눌가리’ 를 그대로 쓰는 수밖에 없는데, 모를 말이 많다는 소리도 그 어느 적은 일부분은 그런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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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보다 더 쉬운 ‘데데’ 하다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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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데하다는 것은 요새 말로 하면 소위 껄렁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중앙에서도 많이 쓰고, 개성 등지에서도 쓰는 것 같다. 전라도에서는 물론 많이 쓰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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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러 물어보면 ‘데데하다’ 를 모르는 이가 많고, 또 비교적 좋은 편이라고 하는 문세영(文世榮) 씨의 사전에도 ‘데데하다’ 는 빠지고 없고, 이극로(李克魯) 씨더러 물어보았더니, 표준어의 사정에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당석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시방 나로서는 적선(赤線)을 그어둔 채로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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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한두 개의 예를 든 것이요, 찾아내자면 수월찮이 있는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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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만큼 때로는 곤란을 느끼는 적이 많다. 그렇다고, 가령 김남천 씨의 주장대로, 상관없이 지방어를 막 대고 쓰겠느냐 하면 그도 못할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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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학이 아직도 문학이 아니고 작문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것쯤 당연한 불비라 하겠지만, 아무려나 그런 것이 아마 정리는 결국 문학의 손으로 해놓아야 할 것이며 자연 주의가 가지지 않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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