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낙백불우(落魄不遇) ◈
카탈로그   본문  
1927.1
최서해
1927 문예시대에 발표된 소설
1
落魄不遇[낙백불우]
 
 
2
지난 늦은 가을 어떤 날 밤이었다.
 
3
전기불이 드는 때부터 낙엽을 몰아다가 창을 치는 바람은 깊어 가는 밤을 따라서 점점 심하여졌다.
 
4
나는 차디찬 구들에서 스러져 가는 화로를 끼고 아내와 같이 신문을 읽고 있다가,
 
5
“응, 저게 무슨 소리요”
 
6
하는 아내 말에 신문 읽던 소리를 뚝 그치고 귀를 기울이었다.
 
7
낙엽을 재촉하는 단풍떨이 찬바람은 창문을 들이치고 풍경을 쨍그렁쨍그렁 울리는데 어디서 울음 소리가 들려 온다.
 
8
“어디서 우는가 보구려!”
 
9
나는 아내를 치어다보면서도 그 소리를 가눠 들으려고 귀를 연방 기웃거렸다.
 
10
“이웃집에서 우는가”
 
11
하고 아내는 창문 고리에 손을 대었다. 때에 바람이 기다리고나 있는 듯이 창문을 몰아쳐서 모진 물결이 쳐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바람에 아내는 창문 고리를 놓고 다시 화롯가로 와 앉으면서,
 
12
“이웃집에서 우나 보오!”
 
13
“글쎄 어디서 누가 죽었나!”
 
14
나는 그래도 아내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서 귀를 기울이면서 뇌었다. 몰아치던 바람이 좀 잠직하는 때에 그 울음 소리는 더 높이 들렸다.
 
15
“으응응……윽……응응응……흑윽.”
 
16
차디찬 밤 차디찬 바람결에 흘러오는 울음 소리는 버선짝이나 토시짝으로 입을 틀어막고 우는가? 그렇지 않으면 목이 부었는가? 가슴이 막혔는가 어쩐지 마음 놓고 우는 울음이 아니오, 참으려고 하면서도 참지 못하는 울음이다.
 
17
“너무나 옳소! 이웃집에서 우는구려!”
 
18
아내는 제가 친 점이 그를 리 있냐는 듯이 의기양양한 소리이다.
 
19
“이웃집이라니?”
 
20
너무도 어수선한 울음 소리에 이마를 찡그린 나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21
“아, 저 행랑방 말이지―.”
 
22
아내의 눈초리는 번연히 아는 주정을 왜 하느냐는 듯하였다.
 
23
“그 집에서 왜 울까”
 
24
“글쎄.”
 
25
거기는 아내도 점을 칠 수 없었는지 확실히 대답이 없었다.
 
26
“누가 죽었나? 사내한테 맞았나”
 
27
“죽긴! 누가 죽어요! 사내도 퍽 말 없는 사람인데.”
 
28
아내의 말은 말 많은 나를 훈계나 하는 듯하였다.
 
29
“글쎄 왜 울까”
 
30
“어디 내 가 보구 올까요. 응”
 
31
아내는 또 일어서서 문고리에 손을 대었다.
 
32
“가 보구려!”
 
33
아내가 나간 뒤에 나는 혼자 화로를 끼고 앉아서 눈앞에 떠오르는 그네(행랑방)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34
우리가 여름에 이 사랑채로 이사온 지 사흘 만에 그네도 그 행랑방으로 이사를 왔다. 이 우리 집 쪽대문을 나서면 바로 왼채 집대문이고 그 대문에 이어서 왼채 집 행랑방이 있는데 한 달에 삼 원 오십 전씩 삭월세를 내고 그네들이 몸을 붙어 있는 판이다.
 
35
그네의 식구는 모두 셋이었다. 이십 남짓한 아내, 역시 이십 남짓한 남편, 세 살 나는 계집애─ 이렇게 세 식구인데 그 남편은 막벌이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막벌이도 맘대로 되지 않아서 어떤 때는 아내가 어디 가서 절구도 찧어 주고, 김장도 해넣어 주고, 얻어 오는 찬밥 덩어리로 배를 채웠다. 그것도 없는 때면 굶는다.
 
36
“에구 여보! 저 집은 또 굶는구려! 어른들은 괜찮은데 어린것이 배고파하는 꼴은 참 못 보겠어요!”
 
37
아내는 며칠에 한 번씩 이런 보고를 나에게 하면서 먹다 남은 밥이 있으면 갖다 주었다.
 
38
“한심한 세상이야! 우리게서두 얻어먹는 사람이 있으니!”
 
39
“참말 한심하우.”
 
40
어떤 때는 밥을 갖다 주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남의 신세 제 신세로 기막힌 웃음을 웃었다.
 
41
“에구 참 반가와합디다. 그 찬밥을 꿍꿍 먹기에 체하면 어쩔라구 하니, 체해나 봤으면 배나 고프잖으련마는 너무 내려서 걱정이오 하겠지! 히히, 그리고 반가와서…….”
 
42
아내는 밥을 갖다 준 뒤에 이렇게 회색이 만면해서 보고를 한다. 그러는 아내의 모양을 보는 때면 나는 그만 불쾌한 감정이 북받치어서 아내가 얄밉게 보였다 . 있으면 있는 날까지 서로 나눠 먹는 것이 사람─ 만물지중에 가장 귀하다는 사람의 할일이어늘 누구는 저렇게 황송한 마음으로 받아 먹고 누구는 저렇게 제가 가장 잘나고 관후한 듯한 웃음을 유쾌히 웃으라는 법이 있나? 뒤따라서,
 
43
“영감, 불쌍히 여기셔서 밥자리를 하나 얻어 주셔요.”
 
44
하고 어디 가서 머리를 수그리는 내 그림자와 함께
 
45
“으흠! 나두 큰 곤란인데! 아무쪼록 사람은 머리를 잘 숙여야 허허.”
 
46
하고 제 잘난 듯이 유쾌하게 웃는 배부른 사람들의 모양이 떠올라서 못 견딜 지경이다. 이렇게 되면 유쾌한 웃음을 해해거리는 아내를 차 버리고 싶으나 또 뒤따라,
 
47
“사유권 관념이 이 세상에서 그림자를 감추기 전에는 저 꼴(아내의 꼴 같은 것)은 늘 보리라! 흥.”
 
48
하는 생각에 나로도 알 수 없는 코웃음을 치고 만다.
 
49
나는 화로를 끼고 빈 방에 앉아서 이 모든 생각을 하니 그것이(행랑방의 울음) 남의 일 같지 않고 내 일같이 생각되어서 무어라 할 수 없는 허성허성한 느낌을 받았다.
 
50
이러는 때에 아내가 들어왔다.
 
 
51
“저 집 사내가 달아났구려! 저를 어쩌우”
 
52
들어온 아내는 아랫목에 자리를 깔면서 근심스럽게 뇌었다.
 
53
“달아나다니”
 
54
나도 미상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5
“지금 편지가 왔는데 달아났다오!”
 
56
“편지는 누가 한 편진대!”
 
57
“사내가…….”
 
58
하고 아내는 다시 화롯가로 오더니 말을 이어서,
 
59
“아까 편지가 왔는데 ‘나는(사내) 인제 더 어찌 할 수 없으니 당신(아내)은 당신 마음대로 하오. 나는 동경으로 가오. 나를 바라보고 배고픈 설움을 받지 말고 좋은 데 개가를 하오’하고 편지가 왔는데 그래서 저렇게 울고 있는데 에구 그 꼴은 차마 못 보겠어요.”
 
60
하고 아내는 전등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61
“흥.”
 
62
나는 코웃음을 치었다. 그런 일을 너무도 많이 보았고 또 내 자신도 그렇게 위태한 생활을 하고 있은 지 벌써 오래 되어서 마비된 내 신경은 그런 것이 그리 대단하게 보여지지 않았다.
 
63
“에이구 그 에미는 괜찮지만 그 어린것을……. 그러게 제 에미두 이 어린 거 어쩌라고 하면서 목이 메이게 꺽꺽 울어요.”
 
64
아내도 감정이 빠른 계집의 한 사람이라 그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 다시금 그리는 것 같다.
 
65
“하는 수 없지. 그렇게 되면…….”
 
66
나는 의미 없는 소리를 치었다.
 
67
“에구 그렇지만 그런 짓을 어찌 하오! 이 겨울에 저 어린것을 버리구가면……. 그런 도척 같은 짓을.”
 
68
아내의 인도주의는 또 흘렀다.
 
69
“나는 내 일 같소.”
 
70
“내 일은!”
 
71
“흥, 그 사람(사내)도 여북하면 그렇게 갔을라구! 그게 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72
쪼들리는 이 생활을 견디다 견디다 못하여 어떤 때는 아내까지 쳐버리고 뛰어가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이는 나로서는 그 달아난 사내에게 비난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편치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73
“당신은 별 말씀을 다하오. 우리 살림이 어째서!”
 
74
“흥, 생각해 보구려. 우리도 미구에 그 꼴이 될 것이오. 이러다가…….
 
75
지금 이 모양으로 나무니 쌀이니 하다가 정 못 견디게 되면……. 배가 고게 되면 이것저것 다 귀찮아지는 건데……. 그래서 저 꼴이 된다고 누가 그르다고 하겠오. 글쎄 벌구벌어두 못 먹게 되는 거…….”
 
76
“그래서 죽게 되면 같이 죽지.”
【원문】낙백불우(落魄不遇)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5
- 전체 순위 : 5968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765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낙백불우 [제목]
 
  최서해(崔曙海) [저자]
 
  문예 시대(文藝時代) [출처]
 
  1927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낙백불우(落魄不遇)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