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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약(破約)의 비애(悲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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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9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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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約[파약]의 悲哀[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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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煙[단연]을 결심한 나는 그 결심을 다시금 단속하였다. 결심이면 족하지 결심을 다시 단속하는 것은 우습기 짝 없는 일이나 전과가 있는 나는 나로서도 내 결심의 결과를 의심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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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하고 약속을 하였다가도 그것이 틀어지는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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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믿지 못할 것은 남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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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탄식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세상에 못 믿을 것은 남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동부터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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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煙[단연]의 결심은 이번뿐이 아니다. 그것은 2, 3차만도 아니다. 스러져간 연기와 같은 과거의 기억이라 또렷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미미한 것만 손꼽아 보아도 10차요 또 남음이 있다. 처음 결심에는 그러지 않았으나 初約[초약]을 깨뜨린 뒤로 再約[재약]부터는 다시 파약하면 어떻다는 맹세까지 하였었던 것이다. 그리고도 그 맹세가 식기도 전에 파약을 감행하였었다. 이렇게 전과를 지은 나는 이번 단연에도 맹세가 없을 수 없었다. 그 맹세는 이전의 형식과는 딴 판으로 공공연히 하였다. 내 혼자 내 가슴속에 하는 것보다 공공연히 표시하면 남의 조소가 부끄러워서라도 파약을 못 하리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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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煙[단연]! 再吸則非人間也[재흡칙비인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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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지도 못한 한문 지식을 가지고 이렇게 朱書[주서]하여서 벽에다 붙이었다. 문자를 解[해]치 못하는 집사람들은 그 뜻을 물었으나 나는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결심이 과연 굳었다면 나는 주저치 않고 대답하였을는지? 그러나 대답 않는 것부터도 우스운 일이다. 그렇다면 공공연히 써붙인 본의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한 나는 용기를 진작하여 가지고 그 글의 의미를 해석하였다. 그것을 들은 집사람들은 서로 보면서 싱긋 웃었다. 식전에 찾아온 김군도 그 朱書[주서]를 보고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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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 세수 뒤에 한 대 피우고야 아침을 먹던 나는 이날 아침에는 한 모금도 빨지 않고 조반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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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에 第一味[제일미]인 담배의 향취는 조반 후의 내 구미를 못 견디게 굴었다. 그래도 나는 꾹 참고 먹지 않았다. 솔직한 고백을 한다면 그것은 먹지 않은 것이 아니라 먹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호주머니 속에 돈푼이나 들어서 절렁거릴 때에는 단연이란 염두에도 두지 않다가도 호주머니가 배가 주려야 단연의 酬酌[수작]이 발작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단연의 이유는 순전히 그런 것이다. 담배 한 개의 煙毒[연독]으로써 참새 열 마리인지 열 두 마리인지를 죽일 수 있다는 무서운 독을 생각하고 나의 생을 걱정한다거나 담배를 먹으면 방안이 지저분해진다고 청결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순전히 돈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이렇게 돈! 돈 하니까 담뱃값을 조선은행이나 광화문국에 저금하였다가 殖利[식리]에나 쓰려는 모리배의 생각으로 그러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나는 그네들과 같이 이해에 눈이 밝지도 못하거니와 이때까지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차라리 그런 것이나 생각했다면 내 일생에 밥 걱정이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단연을 하더라도 일국의 흥망이니 일민족의 성쇠니 하는 관사를 반드시 붙여 가지고 선전하는 단연가들의 열에는 불행히 끼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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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말하면 이번 단연의 동기도 그 안날부터 호주머니가 空乏[공핍]하였던 것이다. 먹지 않으면 만사가 휴의되는 밥을 굶고라도 남의 앞에 손 내밀기가 어려운데 생명과는 큰 관계도 없는 담뱃값 1, 20전 때문에 남의 앞에 손 내민다는 것은 그래도 대장부의 기개에 許[허]할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煙慾[연욕]’까지 참아 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참기는 고사하고 그는 기세를 더 올린다. 호주머니 속에 담배값이나 들앉아서 供養[공양]의 만족을 기다리고 있는 때면 ‘연욕’도 느긋해져서 점잔을 빼지만 주머니 속에 흐르는 바람만 차게 되면 ‘연욕’의 화염은 온몸을 불사를 듯이 일어난다. 여기서 장부의 기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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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못 먹으면 죽나! 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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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계엄령을 내린다. 그러나 연욕의 기세는 그 계엄령에 복종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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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싸움은 벌어진다. ‘이성’과 ‘감정’의 투쟁은 여지없이 폭로된다. 그 전술과 전력은 막상막하해서 승부는 얼른 결단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고집은 감정 편이 더 센 듯도 하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막다른 문제는 돈이다. 그것을 해결할 돈 없는 것을 느끼는 때면 연욕도 머리를 숙이고 이성에게 복종한다는 것보다 가담하게 된다. 형제가 墻內[장내]에서는 싸워도 밖으로는 적을 함께 막는 격과 비슷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어서 ‘斷煙[단연]! 再吸則非人間也[재흡칙비인간야]’라는 주서가 벽에 붙게 된 것이었다. 그날도 예와 같이 출근이랍시고 社[사]를 찾아들어간 나는 하루의 소임을 다하고 오후에 還家[환가]할 때까지 담배라고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러나 담배를 잊어 본 적은 없었다. 곁에 앉은 사원들이 피는 그 푸르고 흰 연기의 향취는 평시보다도 異樣[이양]의 매력을 가지고 나의 취각을 간지리었다. ‘그만 것을 못 참어!’ 나는 향취가 진동하는 때마다 흐트러지려는 취각을 단속하였다. 나는 妓家[기가]의 문전에서 斬馬[참마]하던 김유신의 결심도 생각하고 극도의 渴氣[갈기]에 몰린 쏘크라테스가 睨流醫渴[예류의갈]하던 극기법도 생각하였다. 극도로 몰리는 담배의 인을 물리치고 앉아서 그런 것을 생각하니까 나도 김유신이나 쏘크라테스 같은 위인이나 성인에 가까운 듯도 하였다. 그처럼 나는 괴로운 것을 참았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이란 결국 자기가 느끼는 범위내의 괴로운 것을 가장 큰 괴로움으로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괴로운 일을 감행하는 나를 남들이 신기롭게 보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다시 남의 칭송을 받으려고 단연하였던가? 하는 이성의 비판을 받는 때 전비를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결심의 결과도 逆睹[역도]할 수 없는 나는 곁에 친구가 주는 담배를 받아들면서도 단연이란 말을 차마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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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어떻게 아픈지 담배 생각도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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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그 담배를 책상 서랍에 넣었다. 석양에 뒷 숲에서 흘러내리는 서늘한 매미의 소리를 들으면서 社門[사문]을 나선 나는 心獨喜自負[심독희자부]를 마지않았다. 어느 때 같으면 하루 동안 정력을 뽑히고 社門[사문]을 나선 나는 亂麻[난마]같이 된 걸음으로 쓰러질 듯한 몸을 겨우 지탱하였을 터인데 이날은 아주 딴 판이었다. 목구멍까지 치밀고 머리끝까지 뻗친 그 연욕을 참고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까지 범칙 없이 지낸 것을 생각하니 무슨 승리나 한 듯한 만족이 온 血管[혈관]에 흐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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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 방안에 드러누었던 나는 여러 번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밖을 내다보다가는 도로 누었다. 호주머니 속에 돈푼이나 들고 보니 좀 숙어지었던 연욕의 머리는 또 들린 까닭이었다. 나는 담배를 사오라고 누구를 부르려다가는 다시 朱書[주서]를 생각하고 드러누우면서 내 결심의 박약을 자조치 아니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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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다 못해서 책을 집어들었다. 무엇을 쓰려면 붓으로 쓴다는 것보다 담배로 쓴다고 할 만큼 안 피우고는 견디지 못하지만 독서는 종일하면 종일 담배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도 神効[신효]치 못하였다. 독서를 본위로 독서할 때에는 담배가 잊어지더니 정작 담배를 잊으려고 독서를 하니까 어떻게 궁금한지 담배 생각은 더 몹시 난다. 그 집착력은 그처럼 굳세었던가를 나는 다시금 느끼었으나 그것도 무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4, 5세시의 흉내내던 담배가 그대로 연장되었으니 담배와 친한지도 인제는 20여 년이라 소학교 시대와 글방 시절에 벌을 서기도 하고 종아리를 맞아가면서까지 금치 못하던 것을 아무 외부적 구속이 없는 오늘에 스스로 구속을 지으려니까 용이히 될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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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친구나 찾아가서 궁금증을 잊어볼까 하고 밖으로 나갔으나 내 발길은 나로도 모르게 담배 가게 앞에서 멈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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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斬馬巷[참마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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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유신의 斬馬[참마]를 생각하고 돌아서다가 그만 일에 斬馬巷[참마항]까지 생각하는 나의 망상을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오다가 安洞[안동] 네거리에서 아침에 찾아왔던 김군을 만났다. 군은 모 잡지사에서 급료 비슷한 것 ─ 없는 것을 받았는데 한턱 한다고 잡아 끈다. 고료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이없이 ××園[원] 이층 선풍기 앞에 앉으니까 그만해도 고열을 잊기에 족하겠거든 하물며 얼음이 바삭바삭거리는 찬 삐루가 두 사람 사이에 놓였음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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濃郁[농욱]한 알콜향의 자극을 받은 신경은 더욱 변태적 자극를 욕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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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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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잊었던 담배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내 손을 김군의 앞에 놓인 담뱃갑으로 끄집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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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煙[단연]! 吸則非人間也[흡칙비인간야]라면서!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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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의 소리에 내 손은 주춤하였으나 철면피를 뒤집어쓴 나의 결심은 산산이 부스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윽히 부끄러움을 깨달으면서도 심심하니깐이라는 방패로써 변명을 하였더니 김군은 하하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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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3년간만 술 안 먹는다고 개아들 맹서를 하고 나서 술을 먹기에 그의 친구가 반박을 하니까 ‘하루 건너서 한 번씩 6년간만 먹으면 3년은 斷酒[단주]되는 것이 아닌가’하던 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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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에 나도 무류한 대로 웃었다. 내 가슴은 나로도 잡을 수 없는 생각에 묵직하였다. 그 자리에서 또 한번 뉘우치고 결심하고도 집으로 돌아오다가 잠이 들은 담배 가게 주인(밤 열 두시가 넘었으니까)을 불러일으켜서까지 담배를 사서 호주머니에 넣는 때 나는 또다시 나라는 박약한 존재를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1로써 10을 추측할 수 있다고 이 한 가지로써 내 인격의 여하를 여지없이 타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밟아서 개굴창에 쓸어넣고 싶었다. 오오 좀 굳센 자가 될 수 없을까?
【원문】파약(破約)의 비애(悲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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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2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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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