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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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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2월
김상용
生活(생활)의 片想[편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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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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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라도 ‘싸움’을 아니하곤 못 견데던 그 시절 생각하면 벌서 까마득한 옛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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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호 이웃이 모다 李門[이문]이다. 他姓[타성]으론 우리 외에 두 집이 있을 뿐이엇다. ‘추축’은 자연 李門[이문]의 애놈들과 된다. 놈들은 일가를 馮籍[빙자]하고, 떼가 된다. 그 새에 끼여 놀랴니 그 고독이 혜성같었었다. ‘떼를 믿는 놈들은 대개 經緯[경위]가 없다. 가끔 애놈들이 ‘떼’를 믿고 무경위한 짓을 훌뿌린다. ‘떼’는 ‘떼’요 경위는 경위다. ‘경칠놈’들 하고 놈들이 ‘떼’를 세고 나올 때 나는 경위를 따진다. 결국 충돌이 생긴다. 욕이 나오고 손지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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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지 않고는 살 수가 없던 그 시절이다. 놀 데란 산이 앞뒤를 막은 내동리 밖에 없다. 동모란 떼를 믿는 李門[이문]놈들 뿐이다. 싸움은 내 어릴 시절의 면치 못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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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하고 ‘싸옴’이 벌어진다. 고요한 전원의 공기에 이리해 그날의 파동이 일어난다. 싸옴의 중심은 물론 斯界[사계]의 小[소]‘카이젤’인내다.‘아버지’의 “×××야”불으시는 무서운 음성이 들린다. 또 큰일이다. 빈 주먹 하나로 능히 수십 頑敵[완적]을 대적하던 내 ‘쓸개’도 아버지의‘호통’엔 콩찌개로 급수축을 한다. 불문곡직하고 내가 그르시다는 것이다. 기막한 일이나 無可奈何[무가내하]다. 억울한 종아리를 맞는다. 차후엔 다시 아니하겠다는 다짐을 둔다. 순전한 국제연맹식 맹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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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짐은 하로를 못간다. 혹 半時[반시], 한 時[시]를 못 넘을때도 있다. 의례히 또 놀아야 하고 무경위한 일을 당해야 하고 경위를 따져야 하고 싸와야 하고 불러가야 하고 불러가선 종아리를 맞어야 한다. 이 때도 다짐만은 또 해야 한다. 종일을 싸와본 적이 있다. 그 때‘랜더-스’는 동네를 흘으는 적은 시내ㅅ가였다. 이 싸움통에 덤불 10여개가 결단이 났었다. 덤불의 처참하던 그때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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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 세 번을 싸오고 세 번 종아리를 맞어본 기록이 있다. 세 번 싸옴도 고달푼 것이다. 겸해 세 번 종아리를 맞고 나니 내 신세가 아닌게 아니라 꽤 ‘약약’하던 것이다. 열세살이 되던 해 봄에 학교에를 들었다. 이때 나는 동네 싸옴패들과 실질상 작별을 고하였다.내 전투열의 九分[구분]이 줄었다. 서슬이 퍼렇던 ‘매’도 그날부터는 高鳥飛後[고조비후]의 良弓[양궁]신세가 되야 못 우에서 몬지만을 뒤어쓰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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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나는 집을 떠났다. 소위 유학차로 서울을 왔던 것이다. 1년이 지난 다음에 마츰 추석이자 공일이었다. 佳節[가절]을 당해 어버이를 곱생각함은 고인의 일 뿐이 아니다. 토요일 오후 노비를 꾸어가지고 차를 탔다. 집까지 15리 남짓하다. 단숨에 ‘새점고개’를 넘어 洞口[동구]를 들어섰다. 아즉도 해가 있다. 간다는 소식을 미리 집에 傳[전]치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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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을 들어서며 “아버지”하고 불렀다. 사립문서 열 거름쯤 떠러저 건넌방 부엌이 있다. “ 아 - 너 왔고나!”하고 아버지께서 와락 건넌방 부억에서 나오신다. 부집갱이를 손에 드섰다. 건너방 아궁에 ‘북떼기’를 태고 게시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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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오면 그 曲直[곡직]을 뭇지 않고 종아리를 치시던 아버지다. 증이 큰 잘못에 한번 노해 매를 드시면 구렝이 같은 매ㅅ자죽을 내몸에 남겨 주시던 엄한 아버지다. 그 엄하신 아버지가 내 음성에 부집갱이를 드신 채 쫓아나오섰다. 그 위엄은 다 어찌하섰던고. 수염이 허연 어룬이 부집갱이를 드신 채 마조나오시던 그 모습! 근 20년이 지난 오늘 그 모습이 아즉 내눈에 완연하다. 백발이 날리시는 그 老顔[노안]에 반가움을 감추시지 못하시드란 말을 이곳에 적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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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나는 몇 사람을 맞났는고. 또 몇 사람을 작별하였는고.거의 무수한 逢[봉]과 別[별]을 지나왔다. 껴안어 나를 반겨준 친구를 맞어본적도 있다. 눈물로 보내주는 사람을 이별한 적도 있다. 나[亦[역]]가슴이 뛴 적 한숨을 지은 적이 있다. 무릇 무수한 종류의 무수한 逢[봉]과 別[별]을 지나 반생의 길을 걸어온 오늘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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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무수한 逢[봉]과 別[별]속에 그 반갑던 쓰라리던 옛 자최가 아즉 남은 逢[봉]과 別[별]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뭇 逢別[봉별]중에 須彌山[수미산]같이 뚜렷이 솟은 것은 “너 왔고나!”하고 부집갱이를 든채 맞오나오시던 아버지의 예 얼골이다. “아버지”하고 사립문을 들어서던 그때의 어린 나는 지금 어데 있는고. “너 왔고나!”하고 맞오나 오시던 그 어룬도 세상을 떠나신 지 이미 16년이다. 내가 燈下[등하]에서 이 글을 쓸 때 그 어룬이 게신 곳엔 솔새에 바람소리가 구슬푸고 새벽하늘에 별빛만이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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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하고 사립문을 들어서던 그 얼골엔 올해도 주름살 하나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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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東亞[신동아]」40권 2~5호, 1935년 2월 1일)
【원문】이미 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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