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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가일기(山家日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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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노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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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家 日 記[산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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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산사]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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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금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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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사(山寺)에 온지도 벌써 두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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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에 목련(木蓮)이 피었다. 백주(白珠)의 이슬이 청엽(靑葉)위에 대글거리고, 무한의 순결을 자랑하는 하얀 꽃봉우리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피어 오른다. 하늘빛 잎사귀, 눈빛 봉우리, 아름다운 조화 위에 자랑스러운 호화의 기세. 나는 아침 뜰앞에 서서 그 꽃봉우리를 여러번 만졌다. 그리고 떠나기 어려운 듯이 그 꽃밑에서 한 시간이나 머뭇거렸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자랑이 여기보다 나은곳이 또 있을까? 신의 거룩한 표정! 모두 성스러운 최고의 미! 첫 여름에 피는 목련(木蓮)은 이와같이 아름답다. 로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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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떨기의 꽃 아래 머리를 숙여 본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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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말을 다시금 생각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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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송림속 검은 바위 위에서 새의 울음을 들으며 먼 산을 바라본다. 송림 사이에 이는 미풍은 서늘하고 신비스럽다.
 
9
밤에는 촛불 밑에서 옛 여인의 얼굴을 여러번 그렸다.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손으로 가슴을 만지는 이 마음이여, 동구 밖에서 울려오는 산개 소리가 꿈 깊은 산곡(山谷)을 이따금 깨운다. 예이츠 시집을 들고 속으로 몇 구절을 여러번 되풀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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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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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우는 산새가 정답다. 내 창 밑에 밀어를 보내는 그 마음이여! 오늘의 행복을 약속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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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나 뒷산을 바라보니 북악산에는 엷은 안개가 그 산의 얼굴을 얄밉게 가리우고, 산 밑 밤나무에는 이 산의 척후(斥候)인 까치가 산곡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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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에 내려가 손을 씻고 가래나무 밑에서 나무 그늘의 향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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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침상에 누워 명상의 실마리를 몇번이나 감고풀고 하였다. C가 왔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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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가는 비가 소녀의 눈물과 같이 부드럽게 내린다. 보슬보슬 마른 땅을 적시는 부드러운 촉수(觸手)! 대지에 기름을 붓는 네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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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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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시냇가 바위 옆에 등의자를 놓은 후 고요히 앉아 귀를 귀울인다. 잎파리와 잎파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느다란 파동! 비단같이 매끈하고 부드러운 음향의 촉수! 아, 녹음의 서늘한 촉각은 녹슬은 내 마음에 창문을 두드린다. 푸른 잎의 영원한 젊음! 녹향청훈(綠香靑薰)의 부드러운 촉수. 여름은 젊어지라는 계절! 아, 생의 한 시각인들 무색하게 지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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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더워 부채로 하루를 보냈다. 항상 누워있어야 할 몸이니 평안은 하지만 너무도 지리하지 않는가? 평안과 휴식도 도를 넘으면 고통이 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종일 누워만 있으면 괴로울 것이다. 그런데 병에 약한 나는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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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해가 창문 위에 한 줌의 정열을 펼쳐놓고 쓸어지다. 서늘한 저녁 밤에는 수분을 담은 서늘한 달빛! 산곡에 숨은 이 암자에는 은회색 안개가 부드러운 자욱으로 대지를 덮고, 그 위에는 영롱한 흰달의 서늘한 빛이 내리지 않는가? 뜰앞 가래 나무는 달빛에 젖어 은편(銀片)을 역어놓듯 푸른 솔잎도 은침으로 변하고 목련은 깊은 성의 공주같이 방긋이 입을 벌린다. 나무들의 속삭이는 부드러운 여음! 그리고 땅에 가로 누운 검푸른 나무 그늘! 달의 촉수는 모든 것을 평화의 고대(高臺)로 낚아 올린다. 흰빛 모래 땅을 고요히 밟으며 묵화같은 나무 그늘을 손으로 만져보는 내 마음이여. 은빛 촉수가 외로운 내 마음의 실마리를 이렇게도 풀어 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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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푹 젖은 떡갈나무 잎 위에 저녁 이슬이 굴러 내릴듯이 빛나고, 나무그늘 속에는 이 절의 고양이가 누구를 기다리는듯이 고요이 쪼그리고 달빛을 본다. 북쪽 골짜기에서 쑥쑥새 우는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이 산곡은 은색의 장막을 펴고 누구의 죽음을 고대하는듯 산곡의 밤은 이렇게도 고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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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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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산곡(山谷)도 속인의 자취도 어지러워진다. 이 절에는 재가 들어서 일찌기 보지 못하던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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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일간 뒷산 산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후 좌우가 송림으로 둘리고 멀리 남쪽을 향하여 옛성이 구렁이 같이 긴 몸뚱이를 산정에 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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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산당마루에 누워서 하늘을 본다. 별(別)하게도 높고, 별(別)하게도 넓은 것 같다. 새삼스럽게 몇 만리가 되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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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광장(廣長)을 헤아리는 네 마음이여, 차라리 너는 한덩어리 구름으로 그 하늘에 쓸어져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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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글귀을 생각하여 보았다. 송림 사이에 산비둘기가 가끔와서 뭐라고 부르다 간다. 노랗고 파란 산비둘기! 그의 지순한 마음과 부드러운 음향, 그의 부르는 소리. 언제나 벗이여! 하고 내 영혼을 그의 왕좌 푸른 송림 사이로 끌어내는듯 하다. 비둘기와 송림이 융화된 부드러운 녹색의 촉수(觸手). 그는 내 병든 몸을 갱생의 샘물에 적셔주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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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산당에서 혼자 잘려니 잠이 오지 않았다. 솔잎 위로 별들이 자기말고 일어나라는 듯이 나를 부르고 있다. 천정이 몇천칸이나 되는 중력을 가지고 내려누를 것 같다. 누구라도 한 사람 옆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였으나, 솔잎에 흔들리는 바람소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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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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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산산한 바람이 분다. 뒷산 골짜기에서 들국화 한 송이를 꺽어 왔다. 하얀 봉우리 ── 세상의 모든 정결과 성스러움을 가진듯한 그 표정! 아, 강한 자여! 네 지존(至尊)에는 내 마음이 움직인다. 거룩함과 높음과 깨끗함을 파는 모든 사람. 아! 그대들은 이 들국화 꽃 잎 앞에 발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적이 있는가?
 
30
한 떨기를 화병에 꽂고 고요히 눈을 감다. 아! 주여, 나의 영혼에 저 꽃을 삭여 주소서. 하늘은 높고 구름은 희다. 산새들이 요란스럽게 속삭인다. 모든 나무들이 가벼운 발자국으로 하늘을 향하여 승천할 것 같다. 음류(淫流)하는 파란 상처를 속삭인다. 은령(銀鈴)의 바람은 솔잎을 안고 골짜기 안에 퍼진다.
【원문】산가일기(山家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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