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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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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철포·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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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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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을 구제함이 선이라 하면, 선의 소극방면, 곧 인을 구제치 안 함이 악이며, 인을 살해함이 악이라 하면, 악의 소극방면, 곧 인을 살해치 안함이 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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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구하려면 금전의 힘이 최대니, 그러면 적극적으로 선을 하든지 소극으로 악을 함이 오직 금전의 힘을 가진 자의 일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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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살해하려면 철포(鐵砲)의 힘이 최대이니, 그러면 적극적으로 악을 하거나 소극으로 선을 함이 오직 철포의 힘을 가진 자의 일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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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이나 철포의 힘이 없는 자이면, 적극으로 선을 할 수 없는 동시에 소극의 악은 명사도 붙일 데 없으며, 적극으로 악을 할 수 없는 동시에 소극의 선은 명사도 붙일 데가 없으니, 이것이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유가(儒家)의 그 소위 ‘선천(先天)’의 사람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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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도 악도 할 수 없는 선천적 무력자는 그 결과가 저 선도 하고 악도 하는 금전과 철포를 가진 유력자의 노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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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도 사람이냐? 일반 노예들이 선을 베풀면 코가 땅에 닿도록 백배 치사(致謝)하며, 악을 사하면 손이 발이 되도록 복지(伏地) 애걸(哀乞)하나니, 아으, 이것이 과거 인류의 역사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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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자가 평시에는 매양 금전의 힘을 활용하여, 무력자는 교육도 못 받도록 상공업도 못하여 먹도록 하고는, 백방으로 그 피를 빨아먹으며 살을 긁어 가지고 반항하면 철포의 힘으로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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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불굴(不屈)하면 철포의 힘을 실행한다. 그리하여 여자들은 과부 되고, 남자들은 환부(鰥夫)되고, 아이들은 고아 되어 각종의 비극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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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가 사람은 아니나 사람의 영성은 가졌나니, 설혹 유력자가 항상 선을 베풀지라도 노예된 비극이 없지 못하려든, 하물며 전술함과 같이 악을 사(肆)하여 비극을 연(演)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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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일반 노예들이 각기 무력의 힘을 다하여 유력자의 금전과 철포를 대항하는 방법을 안출하니, 이른바 ‘저주’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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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란 무엇이냐? 갑이 을에게 심수가 있어 이를 갚으려 하면 힘이 부족하고, 그만두려 하면 마음이 불허하는지라. 이에 그의 화상에 향하여 그 눈도 빼어 보며, 그 목도 베어 보고, 혹 을(乙)의 이름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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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에 죽어라, 괴질에 죽어라, 벼락에 죽어라, 급살에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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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등의 저주이다. 얼른 생각하면, 백 년의 저주가 저의 일발(一髮)을 손(損)하지 못할 듯하지만, 그러나 1인 2인…… 100인 1000인의 저주를 받는 자이면 불과 몇 년에 불그을음이 그 지붕 위에 올라가며, 새파란 칼날이 그 살찐 배때기를 찔러 신음할 사이도 없이 사망하나니, 거룩하다 저주의 힘이여, 약자의 유일 무기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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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철포의 힘이 클수록 그를 대항하는 저주의 힘도 대(大)하여, 왕왕 인인지사(仁人志士)들이 저주사(咀呪師)로 현신(現身)하여 억조의 민중을 지도하여 적을 저주할새, 철학으로 그 저주의 근거를 세우며, 문학으로 그 저주의 현상을 그리어, 그 결과에 저주의 불길이 운소를 충(衝)하였는데, 《민약론》《자본론》 등은 노골적의 저주문자거니와, 입센의 《해(海)의 녀》,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 같은 것도 은봉적의 저주문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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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에 망한 자를 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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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도 저주에, 나폴레옹 2세도·3세도 저주에, 메테르니히도 저주에, 윌리암 2세도 저주에, 니콜라이 알렉산더 2세도 저주에, 애친각나씨도 저주에, 원세개도 저주에, 기타 금전·철포의 대력을 가지고 저주에 망한 자가 몇몇이더냐? 장래에 저주에 망할 자가 몇몇이냐? 백만 천만의 인중의 혹열(酷烈)한 저주 끝에야, 금전도 쓸 데 없고 철포도 쓸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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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다. 저주의 힘이여, 약자의 유일 무기가 아니냐. 저주!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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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우리 조선 사람은 왜 그리 저주성이 부족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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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往史)를 돌아보건대, 명분으로 우리들을 속박하면 그 속박자에 대하여 찬미한 이는 있지만 저주한 이도 있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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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로 우리들을 살육하면 살육자에게 대하여 애걸한 이는 있지만 저주한 이도 있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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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여자의 한봉에 대한 회답이 저주 없는 음읍이 아니었더냐? 가난하고 천한 자의 이 세상에 대한 불평이 저주 없는 자탄이 아니었더냐.
 
27
금일에 같은 연애소설을 볼지라도 저의 연애소설은 화산아 터져라, 홍수야 밀리어라, 그리하여 유래(由來) 부패한 사회의 압력을 격쇄(擊碎)하라는 백열의 저주가 지상에 활약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진지무사한 정검(情劒)으로 허위의 장식인 우상을 참작할까 하는 침통한 저주가 지면에 은현하거늘, 저 연애소설은 살이 녹도록, 뼈가 저리도록, 남녀 학생이 두 입을 마주 물고 요런 재미가 있느냐고 부르는 구가(謳歌)의 소리가 귓가(耳邊)에 들리는 듯하다. 어느 시대 무슨 구가던지, 구가는 반드시 권력자의 살을 찌우는 비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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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왕이 주(紂)에게 잡히어 미리옥(美里獄)에 갇히어 자기의 애자의 고기로 끓인 국까지 먹고 요행히 살아 나왔었는데, 이에 당(唐)의 한유란 문사가 지은 미리조(美里操)에 ‘臣罪當誅兮天王聖明[신죄당주혜천왕성명]’의 구가 있다.
 
29
송의 주자(朱子)가 그 구를 찬하여 가로되 ‘이는 문왕의 심사를 그리어 낸 글’이라 하였다. 사람이고야 어찌 자기의 애자(愛子)를 삶아 국을 끓여준 주(紂)를 〈성명(聖明)하신 천왕성명〉이라 공덕할 심사가 있으리오.
 
30
이 글을 지은 한유도 광망(狂妄)하거니와 이 글을 칭찬한 주자도 얼마나 괴벽(怪癖)하뇨. 주자 평생의 논법이 모두 이러한데, 조선에서 주자학을 숭상하였으므로 성(城)내의 저주성이 소멸하고 송덕풍이 치성(熾盛)함이 아니냐?
 
31
종래로 우리 사회에 출현한 논문·선언문 등이 매양 애걸이 아니면 풍간(諷諫)이요, 그렇지 않으면 기도이라, 하나도 저주에 상당한 문자가 없었도다.
 
32
저주는 무력자의 행복을 구함이 아니라 유력자의 불행을 축(祝)하는 것이니, 거룩한 저주는 금전의 농락에 빠지지 아니하며, 철포의 위협에 물러서지 안 하고 목적을 이룬 뒤에야 그 소리가 그치느니라.
【원문】금전·철포·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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