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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과 용의 대격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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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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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과 용의 대격전
 
 
 

1 미리님의 나리심

 
 
3
나리신다, 나리신다, 미리[龍]님이 나리신다. 신년이 왔다고, 신년 무진(戊辰)이 왔다고 미리님이 동방 아세아에 나리신다.
 
4
태평양의 바다에는 물결이 친다.
 
5
몽고의 사막에는 대풍이 인다. 태백산 꼭대기에는 오색 구름이 모여든다. 이 모든 것의 모두가 미리님이 내리신다는 보고다.
 
6
미리님이 내리신다는 보고에 우랄산 이동의 모든 중생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부자와 귀자들은 물론 미리님의 입에 맞도록 중국요리·서양요리 등 갖은 음식을 장만하여 미리님의 귀에 흐뭇하도록 거문고·가야금·피아노 등 모든 음악을 대령한다. 그러나 가련하게 헐벗고 굶주린 빈민들은 미리님께 정성을 드려야 하나 아무 가진 것이 없다. 가진 것은 그 빨간 몸뿐이다.
 
7
이에 하릴없이 피를 뽑아 술을 빚고 눈물을 짜 떡을 만들어 장엄한 제단 위에 창피하게 모양 없이 벌여 놓고 미리님의 내리심을 기다린다.
 
8
일월 일일 상오 두시 첫닭이 홰를 치자 아무 기별도 없이 구름의 비행기 탄 미리님이 닥치셨다. 일반 부귀자들은 노래하며 춤추며, 거룩하신 미리님을 맞이하는데, 모든 빈민들은 일제히 땅에 엎어져 운다.
 
9
“님이시여 님이시여, 미리님이시여. 금년에는 세납이나 많이 안 물리도록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도조(賭租)나 많이 안 달라게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감옥 구경이나 않게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생활난에 철도 자살이나 없게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타국 타향에 비렁거지나 안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이 흥왕하게 하여 주옵소서.”
 
10
하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11
그러나 그 비는 소리가 미리님의 귀에는 들리지도 안하고 다만 그 가련하고 모양 없는 제물만 미리님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미리님이 골을 잔뜩 낸다.
 
12
“이놈들, 정성을 내지 않고 행복을 찾는 놈들 죽어 보아라.”
 
13
하고 아가리를 딱 벌린다.
 
14
아이구 어머니, 그 아가리가 놀부의 박이던가. 그 속에서 똥통 쓴 황제이며, 쇠가죽 두른 대원수며, 이마가 반지러운 재산가며, 대통이 뒤로 단 대지주며, 냄새 피우는 순사 나리며, 기타…… 모든 초라니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와서는 모든 빈민들을 모조리 잡아먹는다.
 
15
피를 짜 먹고, 살을 뜯어 먹고, 나중에는 뼈까지 바싹바싹 깨물어 먹는다. 먹히지 않으려면 탄알의 받이요, 감옥의 책임이다. 아, 지옥의 세계! 가련한 인민!
 
 
 

2 천궁의 태평연, 반역에 대한 걱정

 
 
17
죽음에 빠진 인민들의 애호(哀呼) 분규(憤叫), 그 소리가 구중천문(九重天門)을 진동하여 잠 깊었던 상제가 깜짝 놀라 깨었다. 그래서 이것이 웬 소리인가 알려 드리라고 천사에게 명령하였다. 천사가,
 
18
“이것은 미리가 생존을 요구하는 인민들을 죽이어 내는 소리올시다.”
 
19
고 회주(回奏)하니, 상제가 가라사대,
 
20
“어 ⎯미리는 참 총명한 현신이여! 요구가 세면 반항이 되고 반항이 세면 혁명이 되나니, 요구하는 인민을 죽여야지! 어 ⎯미리는 참 현신이여.”
 
21
하시고 미리를 불러 인민 죽이는 공으로 훈장을 주시며 작위를 높이신다. 그리고 천상의 모든 신선, 지상의 모든 귀신, 역대의 제왕·장상들을 소집하여 천궁(天宮)에서 태평연(太平宴)을 설(設)한다.
 
22
지상의 인민들은 배가 고파 죽는데 천궁의 연회에는 배들이 터져 죽을 지경이다. 상제가 뱃가죽을 틀어쥐고 모든 귀신들을 돌아보시며,
 
23
“인민들이란 것은 선천적으로 반역성을 타고나 툭하면 반기를 드나니 어쩌면 좋으랴? 공중에다 지구만한 대포를 걸고 통통 쏘아 모조리 죽이잔즉 전 지구가 파괴하여 인민들이 씨가 져서 우리들이 빨아먹을 피가 없어지리니 그것도 안 될 일이요, 그놈들의 자유해방을 허가한 즉 해방된 뒤에는 그 놈들이 우리에게 피를 빨리지 안하려 하리니 그것도 안 될 일이라. 어찌하면 고놈들의 반역성을 쏙 뽑아 내어 산송장을 만들어 놓고, 우리들이 아무 염려 없이 고놈들의 정수박이부터 발끝까지 깨물어 먹고, 거죽부터 속까지 빨아 먹고, 아비 자식부터 손자까지, 손자부터 그 몇 대 손까지 잡아 먹게 되랴? 너희 귀신들은 각기 그 방책을 올리어라!”
 
24
하시니, 천사가 여쭈오되,
 
25
“소와 같이 코뚜레하고 굴레하고 채찍질하여 끌읍시다.”
 
26
“하하 딱한 사람, 우리가 만든 정치 법률이 코뚜레보다 더 잔악하지 안하냐? 윤리 도덕이 굴레보다 더 흉참(凶慘)하지 안하냐? 군대의 총과 같이 채찍보다 몇만 배나 더 전율한 무기가 아니냐? 그래도 그 놈들이 반역을 도모하는구나.”
 
27
“그러면 일등 닥터를 불러 마취약을 제조하여 고놈들을 영원히 마취시키어 우리에게 잡히어 먹히는 줄 모르고 잡히어 먹히게 합시다.”
 
28
“흥! 그 약도 내가 써보았지! 공자놈을 시키어 명분설(名分說)을 지어 ‘빈자·천자는 빈천의 천분(天分)을 안수(安受)하여 세력가의 명령을 잘 받아 충신·열사의 명예를 후세에 끼쳐라’고 속이며, 석가놈과 예수놈을 시켜 너희들이 남에게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것을 반항 없이 간과하면 죽어서 너희의 영혼이 천국으로, 연화대(蓮花臺)로 가리라고 속이었다. 이러한 마취약들이 또 어디 있겠느냐? 이천 년 동안이나 크게 그 약효를 보았더니, 지금에는 그 약효도 다하여 그놈들이 점점 자각하여 반역이니 혁명이니 하고 떠드는구나.”
 
29
“그러면 오늘은 과학·문학 등이 크게 위력을 가진 때니, 다수한 과학자·문학자들을 꾀어다가 부자·귀한 자 ⎯지배계급 ⎯의 주구를 만들어 학설로써 지배계급의 권리를 옹호하며, 시와 소설로써 지배계급의 장엄을 구가하면 될까 합니다.”
 
30
“오! 이것은 내가 방금 실시하여 비상한 효력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놈들이 간혹 나의 명령을 어기고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가 반역을 꾀하는 놈이 있구나.”
 
 
 

3 미리님이 안출한 민중진압책

 
 
32
이와 같이 상제께서 반역성을 품은 인민에게 대하여 무수히 걱정하시다가 한숨을 후 ⎯쉬며,
 
33
“인세(人世)에 백년의 장책(長策)이 없거든 천세(天世)에 어찌 만년의 장책이 있으랴! 술이나 마시고 고기나 먹고 그러그러 해를 보낼 일이지 걱정이 쓸데 있으랴.”
 
34
하고,
 
35
“천황당(天皇堂) 앞뒤 뜰이 무너진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엉켜진들 어떠하리.”
 
36
하는 염(斂) 없는 시조 한 장을 부르신다. 미리가 앞으로 나와 부복(俯伏)하고 여쭈오되,
 
37
“상제는 존엄하사 억만 중생이 첨앙(瞻仰)하는 바이올시다. 어찌 이같은 불상(不祥)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지상의 인민들이 비록 반역성을 가졌으나 이를 진압하여 영원한 활지옥(活地獄)에 가둘 수 있습니다.”
 
38
상제 가라사대,
 
39
“오! 미리야 너는! .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귀물이니 장책(長策)이 있거든 말하여라.”
 
40
미리가 다시 여쭈오되,
 
41
“지상의 민중을 대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일(一)은 강국의 민중이요 또 일은 식민지의 민중이올시다. 강국의 민중은 아주 그 타성적인 애국심을 가진 동시에 국가를 지배계급의 국가로 오인하여 지배계급의 세력을 확장 증진케 하는 일을 애국으로 오신(誤信)하여 그 애국심이 위애국심(僞愛國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즉 강국의 민중에게는 얼마큼 보통선거의 권리 같은 것, 노동 임금의 증가 같은 것이나 허하여 주고, 일면으로 그 위 애국심을 장려하여 약소국의 민중을 정복게 하며, 식민지의 민중을 압박게 하여 지배계급 ⎯자본주의 ⎯의 선봉이 되게 하면 저들의 고픈 배가 다시 이 이익 없는 허영에 불러져 우리가 비록 몇십 년 동안 저들의 피를 빨아먹어도 아픈지를 모를 것이요, 식민지의 민중은 그 고통의 정도가 다른 민중보다 만 배나 되지만 매양 그 허망한 요행심을 가져 굶어 죽는 놈이 요행의 포식(飽食)을 바라며, 얼어 죽는 놈이 요행의 난의(暖衣)를 바라며, 교수대에 목들 디민 놈이 요행의 생을 바랍니다. 그래서 반항할 경우에도 반항을 잘 못합니다. 그런즉 식민지의 민중처럼 속이기 쉬운 민중이 없습니다. 철도·광산·어장·삼림·양전(良田)·옥답(沃沓)·상업·공업…… 모든 권리와 이익을 다 빼앗으며 세금과 도조를 자꾸 더 받아 몸서리나는 착취를 행하면서도 겉으로 ‘너희들의 생존 안녕을 보장하여 주노라’ 고 떠들면 속습니다. 혁편(革鞭) · 철추(鐵椎) · 죽침(竹針)질 · 단근질 · 전기뜸질 심지어 구두(口頭)에 올리기도 참악한 ……(원문 여섯 자 탈락)…… 같은 형벌을 행하면서도 군대를 출동하여 부녀를 찢어 죽인다, 소아를 산 채로 묻는다. 전촌(全村)을 도륙한다, 곡식가리에 방화한다…… 하는 전율한 수단을 행하면서도 한두 신문사의 설립이나 허가하고 ‘문화정치의 혜택을 받으라’고 소리하면 속습니다. 학교를 제한하여 그 지식을 없도록 하면서도, 국어와 국문을 금지하여 그 애국심을 못 나도록 하면서도, 저들 나라의 인민을 이식하여 그 본토의 민중을 살 곳이 없도록 하면서도, 악형과 학살을 행하여 그 종족을 멸망토록 하면서도, 부어 터질 동종동문(同種同文)의 정의(情誼)를 말하면 속습니다. ‘건국’ · ‘혁명’ · ‘독립’ ·‘자유’ 등은 그 명사까지도 잊어버리라고 일체 구두(口頭) 필두(筆頭)에 오르지도 못하게 하지만, 옴 올라갈 자치참정권 등을 주마 하면 속습니다. 보십시오. 저 망국제를 지낸 연애문단에 여학생의 단 입술을 빠는 청년들이 제 세상을 자랑하지 안합니까 . 고국을 빼앗기고 구축(驅逐)을 당하여 천애(天涯) 외국에서 더부살이하는 남자들이 누울 곳만 있으면 제2고국의 안락을 노래하지 안합니까! 공산당의 대조류에 독립군이 떠나갑니다. 거라지 정부의 연극에 대통령의 자루도 찢어집니다. 속이기 쉬운 것은 식민지 민중이니, 상제시여 마음놓으십시오. 세계 민중들이 다 자각한다 하여도 식민지 민중만은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가 식민지의 민중만 잡아 먹더라도 몇십 년 동안은 아무 걱정 없을 것이올시다.
 
42
상제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43
“아이고, 요 내 자식놈아. 나도 악독하지만 너는 나보다도 더 악독하고나. 네가 아니면 내가 어찌 이 자리를 보전하랴.”
 
44
하시며 미리의 등을 툭툭 두드리신다.
 
 
 

4 부활할 수 없도록 참사한 야소

 
 
46
“드래곤이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천국의 말일이다.”
 
47
아, 이 소리가 무슨 소리냐? 어디서 오는 소리냐? 상제가 미리님의 진주(陳奏)를 들으시고 심신이 상쾌하사 한참 뛰노는 판에 이 무슨 소리이랴 이 소리의 나는 곳을 빨리 알아들이라고 상제께서 동동걸음을 치시니, 미리 이하 여러 신들이 다 황공하여 사방으로 정찰하나 아무것도 보이는 것은 없고 다만,
 
48
“드래곤이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천국의 말일이다”의 그 소리만 어디서부터 꽝꽝 울리어 와서, 천궁의 벽·천장·문·창·기둥·마루·주초(柱礎)가 들먹들먹한다. 서천(西天) 불조(佛祖) 석가여래를 불러 온갖 축문 온갖 진언(眞言)을 다 읽어도 그 소리가 더욱 높아 가고, 천궁 전체가 더욱 들먹들먹한다. 상제께서 크게 불안하사 연회를 파하여 제신(諸神)들을 다 돌려보내고 궁녀들과 밤을 새우시는데 너무 초조하사 입에 침이 바싹 마르신다.
 
49
아니나다르랴? 그 익일(翌日) 새벽에 ‘호외! 호외! 호외를 사시오!’하는 소리에 천경(天京)의 수십만 귀중(鬼衆)들이 모두 단잠을 깨었다. 천사가 상제를 알현할 차로 오는 길에 그 호외를 사니, 곧 천경에서 발행하는 삼십 만 년의 노령을 먹은 《천국신문》의 호외이다.
 
50
벽두에 특호 대자로 ‘상제의 외아들님 야소기독(耶蘇基督)의 참사(慘死)라’ 쓰고, 그 곁에 2호 대자로 ‘드래곤의 선동이라’ 쓰고, 기사를 아래와 같이 썼다.
 
51
“상제의 외아들님 야소기독이 ○○○○ 지방의 농촌 야소교당에서 상제의 도(道)를 강연하더니, 불의에 동지방(同地方) 농민들이 ‘이놈! 제 아비 이름을 팔아 일천구백 년 동안이나 협잡하여 먹었으면 무던할 것이지 오늘까지 무슨 개소리를 치고 다니느냐’고, ‘일천구백 년 동안 빨아 간 우리 인민의 피를 다 어디다 두었느냐’고, ‘서양에서 협잡한 것도 적지 않을 터인데 왜 또 동양까지 건너와 사기하느냐’고, ‘당일 예루살렘의 십자가 못 맛을 또 좀 보겠느냐’고, 발길로 차며 주먹으로 때리며, 마침내 호미 날로 퍽퍽 찍어 야소기독의 전신이 곤죽이 되어 인제는 아주 부활할 수 없이 참사하고 말았다…… 야소기독을 참사한 하수인들은 민중이지만, 그 하수의 수범(首犯)은 드래곤이라 한다. 드래곤은 아직 출처가 불명한 괴물인데, 수일 전부터 동지(同地)에 와서 상제를 ‘잡아 먹어도 시원치 못할 악물’이라고 욕설하며, 야소기독을 ‘제 아비보다 더 간흉한 놈’이라고 배척하고, 상제 및 기독의 죄악을 열거한 90조의 격문을 돌리고 동일(同日) 마침 기독의 내림(來臨)함을 기회(機會)하여 민중의 선봉이 되어 이같이 기독을 참살하는 흉행(凶行)을 범한 것이다.”
 
52
하고 동지(同紙)에 다시 ‘부활할 수 없는 야소기독’이란 제하에 논설하여 가로되,
 
53
“야소기독은 그 성부(聖父)인 상제를 빼쏘듯 한 간악·험악한 성질을 골고루 가지신 성자(聖子)이었겠다. 그 출생 후에 성부의 도를 펴려다가 겨우 삼십이 넘어 예루살렘에서 유태인의 흉수(凶手)에 걸리었었다. 그러나 그때의 유태인은 너무 얼된 백성이었던 때문에 다 잡히었던 야소를 다시 놓쳐 십자가를 진 채로 도망하여 ‘부활’한다 자칭하고, 구주(歐洲) 인민을 속이시사 모두 그 교기하(敎旗下)에 들게 하셨다. 십자군 그 뒤에 ‘십자군 동정(東征)’·‘삼십 년 전쟁’ 같은 대전쟁을 유발하여 일반 민중에게 사람이 사람 잡는 술법을 가르쳐 주셨으며, 늘 ‘고통자가 복받는다. 핍박자가 복받는다’는 거짓말로 망국민중과 무산민중을 거룩하게 속이사 실제의 적을 잊고 허망한 천국을 꿈꾸게 하여 모든 강권자와 지배자의 편의를 주셨으니 그 성덕(聖德)과 신공(神功)은 만고역사에 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 참혹하게 피살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자각한 민중들과 비기독동맹의 청년들이 상응하여 붓과 칼로써 죽은 기독을 더 죽이니, 지금 이후의 기독은 다시 부활할 수 없도록 아주 영영 참사한 기독이다. 기독이 영영 참사하였은즉 노경에 참상을 본 상제의 신세도 가련하거니와 저 기독교인이 다시 누구의 이름으로 상제께 기도하랴…….”
 
54
천사, 그 호외를 보다가 종편(終篇)이 못 되어 안색이 토장빛이 되어 천궁으로 달리어들어가 손을 벌벌 떨며, 그 호외를 상제께 올린다.
 
 
 

5 미리와 드래곤의 동생이성(同生異性)

 
 
56
상제께서 그 호외를 보시고는 얼빠진 사람같이 물끄러미 마주 선 천사를 바라보다가 상상(床上)에 폭 엎어지신다. 천사가 달려들어 상제를 붙들어 일으키며,
 
57
“상제 폐하시여, 이같이 천국 존망에 관계되는 중대사건을 당하여 폐하께서 정신을 놓으시면 됩니까! 폐하 폐하…….”
 
58
라고 목마친 말로 상제를 진정시키는 판에, 미리 이하 모든 귀대감(鬼大監)·귀영감(鬼令監)들이 상제를 위문하려고 차례로 들어온다.
 
59
천사가 미리를 보더니, 두 눈에 불이 뚝뚝 떨어지고 노기충천, 얼굴이 새빨개지며,
 
60
“이놈! 미리야. 네가 동양의 ‘똥똑’인가, 무엇이 되어 어떻게 인민을 잘 감화하였기에 이 같은 언어도단의 흉참한 사건 ⎯상제님의 외아들이신 지긋지긋하신 야소기독을 부활할 수도 없게 아주 죽여 버린 사건이 발생하도록 하였느냐. 이놈! 네 대가리에는 칼이 들지 않느냐…….”
 
61
하고, 주먹으로 천궁의 벽을 치며 미리를 질책하니, 미리는 아무 말 없이 냉가슴 앓는 벙어리같이 얼굴만 찌푸리고 앉았다. 이러는 판에,
 
62
“왔다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천국의 말일이다!”
 
63
란 소리가 또 천궁을 진동한다. 천사는 말을 뚝 그치고 미리는 눈만 둥그렇다.
 
64
혼절하셨던 상제가 상(床)에서 벌떡 일어난다.
 
65
“드래곤! 드래곤! 내 자식 야소를 죽인 드래곤! 그놈 드래곤을 잡아 바치라!”
 
66
고 풍전(風前)한 어조로 엄급(嚴急)한 명령을 내리신다. 이에 천경의 경찰대·정탐대가 총출동하여 야단법석을 떨지만, 다만 ‘왔다 왔다. 드래곤이 왔다……’의 소리만 사방에서 일고 드래곤의 정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67
이와 같이 천경의 경찰대·정탐대들의 대활동에도 아무 단서를 못 얻은 드래곤의 사진과 역사가 익일에 대지(大地) 동서(東西)의 유일한 민중의 신문으로 등(登)하는 《지민신문(地民新聞)》에 게재되었다. 그러나 ‘드래곤의 진영(眞影)’이란 한 장에는 다만 다수한 ‘0’을 그릴 뿐이요, 그 좌방(左方)에 5호 소자로 설명을 가하였다. 그 설명은 아래와 같으니,
 
68
“천국이 전멸되기 전에는 드래곤의 정체가 오직 ‘0’ 으로 표현될 뿐이다. 그러나 드래곤의 ‘0’ 은 수학상의 ‘0’ 과는 다르다. 수학상의 ‘0’ 에는 ‘0’ 을 가하면 ‘0’ 이 될 뿐이지만 드래곤의 ‘0’ 은 1도, 2도, 3도, 4도, 내지 십·백·천·만 등 모든 숫자로 될 수 있다. 숫자상의 ‘0’ 은 자리만 있고 실물은 없지만 드래곤의 ‘0’은 총도, 칼도, 불도, 벼락도 기타 모든 ‘테러’ 가 될 수 있다. 금일에는 드래곤이 ‘0’ 으로 표현되지만, 명일에는 드래곤의 대상의 적이 ‘0’ 으로 소멸되어 제국도 ‘0’ , 천국도 ‘0’ , 자본가도 ‘0’ , 기타 모든 지배세력이 ‘0’으로 될 것이다. 모든 지배세력이 ‘0’ 으로 되는 때에는 드래곤의 정체적(正體的) 건설이 우리의 눈에 보일 것이다.”
 
69
하고, ‘드래곤의 역사’란 제하에는 이렇게 썼다.
 
70
“드래곤은 무엇이냐? 상제가 태고 인민들의 미신적 추대를 받아 제위에 오르던 제5년에 허공중에서 탄생한 일태쌍생(一胎雙生)의 괴물이 있었던 바, ‘일(一)’ 은 드래곤이 곧 그것이요, 또 ‘일’은 곧 현금 천궁의 시위 대장으로 동양총독을 겸한 유명한 미리니, 미리나 드래곤이 한자로는 다 용(龍)이라 역(譯)한다. 그 뒤에 미리는 늘 조선·인도·중국 등의 나라에서 성장하여, 드디어 동양의 용이 되어 석가·공자 등의 소극적 교육을 받아 상제의 충신이 되어, 늘 복종을 천직으로 알으므로 지배계급 주구(走狗)인 종교가·윤리가들이 모두 미리를 인세(人世) 모범의 신으로 존봉(尊奉)하여 왔으므로, 조선의 신화에나, 중국의 유경(儒經)에나, 인도의 불경에 다 용을 비상히 찬미하여 상제에 배(配)하였다. 그래서 상제께서 미리를 발탁하여 동양진수(東洋鎭守)의 대임(大任)을 준 것이요, 드래곤은 늘 희랍·로마 등지에 체재하여 드디어 서양의 용이 되어 늘 반역자·혁명자들과 교류하여 ‘혁명’ · ‘파괴’ 등 악희(惡戱)를 즐기어 종교나 도덕의 굴레를 받지 않는 고로 서양사에 매양 반당(叛黨)과 난적(亂賊)을 드래곤이라 별명하여 왔었다.
 
71
근세에 와서는 드래곤이 또 허무주의에 침혹(沈惑)하여, 더욱 격렬한 혁명 행위를 가지더니, 마침내 야소기독을 참살한 흉범이 된 것이다.”
 
72
하였다. 이 신문을 받은 천국의 궁신들이 비로소 미리와 드래곤이 본래 형제임을 알고 놀라지 않는 이 없었다.
 
 
 

6 지국의 건설과 천국의 공황(恐惶)

 
 
74
미리가 비록 상제의 총신(寵臣)으로서 누천년 동양총독의 중임을 가져왔으나 이제 반역 드래곤이 , 상제의 애자(愛子)를 참살한 사실이 그 관리 구역내에서 발생하는 동시에 미리가 드래곤의 친형제인 증거가 민중의 신문에까지 발표됨에 천경의 여론이 모두 미리가 드래곤과 동당(同黨)이 아닌가 의심하며, 상제도 진노치 않을 수 없었다.
 
75
그래서 미리의 동양총독의 직을 탈(奪)하고 천사로서 대(代)하여 즉일(卽日)로 임소(任所)에 치부(馳赴)하여 드래곤을 체포하고 반민(叛民)을 도살(屠殺)하라 엄명하셨다.
 
76
천사가 명령을 받아 천폐(天陛)에서 사은(謝恩)하고 발정(發程)하려 할 즈음에 천국 통신관이 할딱할딱하며 뛰어들어와 한 장의 지상통신(地上通信)을 상제께 올린다. 상제께서 받아 본즉 ○○ 민중들이 야소를 죽인 뒤 미구(未久)에 공자·석가·마호메트…… 등 종교·도덕가 등을 때려 죽이고, 정치·법률학교·교과서 등 모든 지배자의 권리를 옹호한 서적을 불지르고, 교당(敎堂) · 정부 · 관청 · 공해(公廨) · 은행 · 회사…… 등 건물을 파괴하고, 과거의 사회제도를 일체 부인하고, 지상의 만물을 만중(萬衆)의 공유임을 선언하였다.
 
77
모든 지배계급들이 반민을 정복하려 하여 군인을 소집하나 원래 민중의 속에서 온 군인들인 고로 다 민중의 편으로 돌아가 버리었다. 다수의 상금을 걸고 신군(新軍)을 모집하나 한 사람의 응모자도 없었다.
 
78
그래서 산포(山砲) · 야포(野砲) · 속사포(速射砲)…… 등이 산적하였으나 일환(一丸)도 발사할 수 없었다. 이에 지배계급들이 각기 자기들이 혈전하기로 결의하였으나 민중보다 너무 소수일 뿐더러 또 돈·계집 모든 소유를 가진 자로서 전사하기가 원통하여 모두 철옹성(鐵瓮城)으로 도망하였다가 민중의 포위를 입어 먹을 것이 없어 아사(餓死)하였다. 그러나 그 아사자들의 수중에는 평균 백만 원의 금전을 잔뜩 쥐고 죽었다. 지배계급이 이미 멸망하매 민중들은 이에 전 지구를 총칭하여 지국(地國)이라 하고 천국과의 교통 단절을 선언하였다고 하였다.
 
79
다른 사건이야 어찌 되었든지 가장 상제의 머리를 찌르는 것은 ‘천국과의 교통 단절’이라는 구절이다. 왜? 상제나 천사나 기타 천국의 귀중들이 몇 만 년 동안이나 아무 노동도 않고 지상에서 올리는 공물(供物)과 제물(祭物)을 받아 먹고 살아왔다.
 
80
그런데 이제 지국이 건설되어 교통의 단절을 선언하니, 공물 제물이 올 수 없다. 그러면 모두 귀중들이 아사할 것밖에 없다. 상제도 아사할 것밖에 없다.
 
81
상제가 이 통신을 모든 귀신들에게 돌려 보이니, 다 비상히 분격하여 즉일에 상제의 명령을 발하여 전국 민중을 다 박살하여 버리고자 주장한다. 하나 상제는 고개를 흔든다.
 
82
“민중이 우리를 믿던 때에 우리가 세력이 있었지 지금에야 우리가 무슨 세력이 있느냐. 세력 없는 우리로서 민중을 박살하려다가는 한갓 박살을 당할 뿐이니, 민중 박살 ⎯쓸데도 없는 말이다.”
 
83
이 말씀에 모든 불 같은 격분들이 푹 꺼지고,
 
84
“그러면 사자(使者)를 지국에 보내어 교통의 회복과 제물·공물을 여전진봉(如前進奉)함을 민중에게 간청하여 봅시다.”
 
85
한다. 그러나 인정 세태에 경험 많으신 상제는 공물이니 제물이니 하는 말도, 한갓 민중을 더 격노시킬 유해 무익한 말로 아시므로 이것도 불가하다 하신다.
 
86
“그러면 어찌하나요 ? 앉아서 굶어 죽을까요 ?”
 
87
상제가 한참 묵묵하시다가,
 
88
“인제는 한 가지밖에 없다. 무엇이냐 하면 곧 사자를 민중에게 보내어 우리 천국의 귀중의 수효대로 바가지나 하나씩 달라고 청구하자.”
 
89
“바가지는 무엇 하게요.”
 
90
상제가 눈물을 흘리시며,
 
91
“별도리가 있느냐. 우리들이 매일 민중의 문 앞에 가서 바가지를 두드리며, 민중 할아버지 밥 한 술 담아 주오 하지…….”
 
92
하고 목이 맺혀 말을 그치지 못한다.
 
93
“그것이야 어찌…… 저희들이야…… 하물며 존엄하신 상제…….”
 
94
하고, 모든 귀신들이 목을 놓고 운다. 신선의 바둑, 천녀(天女)의 거문고가 다 어디 가고 울음 소리가 천궁을 진동한다. 그러나 금일에 울고 명일에 울어 삼백육십오일을 울지라도 쓸데 있으랴. 마침내 울음을 거두고 바가지 청구의 발론(發論)이 가결되고 말았다.
 
 
 

7 미리의 출전과 상제의 우려

 
 
96
“그러면 바가지 청구의 사자로서 누구를 보내랴”
 
97
고, 상제께서 군귀(群鬼)에게 하순(下詢)하였다. 천사가 대답하되,
 
98
“이것은 미리가 가장 합당합니다. 신이 작일(昨日)에 확신(確信)을 들은 즉 민중들은 아직 그렇게 천국을 배척하지 않는데 원수놈의 드래곤이 민중의 머릿속으로 돌아다니며, 상제와 상제 이하 내지 인세(人世)의 지배계급의 세력은 모두 민중의 시인으로 존재한 것인즉 민중이 만일 철저히 부인만 하면 모든 세력이 추풍의 낙엽이 되리라고 자꾸 민중들을 꾀어 민중이 이같이 반란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 민중들이 금일의 드래곤을 전일의 상제보다 더 믿는다 합니다. 만일 드래곤의 동의이면 민중들이 우리에게 바가지 하나씩은 줄 듯합니다. 미리는 드래곤의 친형인즉 미리를 보내면 아마 드래곤의 동의를 얻기가 쉬울까 합니다.”
 
99
상제가,
 
100
“옳다.”
 
101
하시고, 즉일에 미리를 옥중에서 불러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102
“내가 생각지 못하여 하마터면 너 같은 현신(賢臣)을 죽일 뻔하였구나.”
 
103
하고 바가지 청구의 결의된 경과를 일일이 말씀하신즉,
 
104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바가지는 거지가 차는 것이요, 상제가 차는 것이 아니올시다. 거지가 바가지를 차고 민중의 문 앞에 가서 한 술 주시오 하면, 민중이 동정의 밥을 줍니다. 그러나 상제께서 차신다면 ‘야, 상제 거지, 전일의 존엄은 어디다 두었느냐’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올시다. ‘전일에 우리에게서 빨아 먹은 피를 다시 토하여 내놓으라’고, 주먹질이나 할 것이올시다. 바가지를 주기커녕 차고 간 바가지나 깰 것이올시다. 그리고 황송하올시다마는 상제의 이마까지라도…… 안 됩니다. 바가지 청구는 절대로 안 됩니다.”
 
105
고 미리가 울면서 간한다.
 
106
“그러니 어찌하잔 말이냐. 철도 자살이나 하였으면 좋겠다만 천궁에 어디 철도가 있느냐? 칼로 자살은 차마 못 하겠고…….”
 
107
“신이 입을 한 번 벌리면 제왕·통령(統領)·자본가…… 등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신이 지국에 내려가 또 입을 벌리어 보겠습니다.”
 
108
“오늘날에야 똥작대기만한 힘도 없는 제왕·통령 등물을 아무리 토하여 놓은들 민중이 무서워하겠느냐. 그것도 전날 말이지.”
 
109
“신이 지상에 내려가 강국 민중의 애국심을 고취하여 식민지 민중을 잡아 먹게 하고, 식민지 민중에게는 자치나 참정권을 준다고 속이어 강국 민중에게 잡히어 먹게 하며 민중이 상식(相食)하는 틈에 천국의 권리를 회복할까 합니다.”
 
110
“자각한 민중들이 그런 꾀임에 속느냐, 그것도 옛날이지.”
 
111
“그렇지만 상제께서 절대로 바가지를 차서는 안 됩니다. 하여간 신이 지국에 내려가 친히 실지의 정형(情形)을 정찰하고 돌아오리다. 싸울 만하면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천국 군신이 다 손을 잡고 아사할뿐이언정 바가지를 차서는 안 됩니다.”
 
112
하고 미리가 곧 상제께 하직하고 운차(雲車)를 타고 지국을 향하여 발정할 새, 상제·천사 이하 선관(仙官)·선리(仙吏)·선녀(仙女)·권속들이 모두 그 주린 가슴을 퉁기어 쥐고 운두(雲頭)까지 따라 나와 일제히 손을 들고 목마친 소리로 ‘미리님 만세!’를 부르니, 이 소리가 곧 천국의 흥망존폐를 한 등에 실은 미리를 전송하는 소리더라.
 
113
‘미리님. 내가 작일에는 천상의 미리놈이요 지상의 미리님이러니, 금일에는 천상의 미리님이요 지상의 미리놈이로구나, 천지의 위치가 이다지 변환하였구나.’
 
114
라고, 미리가 속으로 홀로 생각하고 눈물이 두 뺨에 젖는다. 반공(半空)에 이르지 못하여 천사가 헐떡이며 쫓아와서,
 
115
“다시 잠깐 돌아오시랍니다. 상제께서 할 말씀이 있다고 그럽니다 미리님.”
 
116
하고 부르거늘, 미리가 곧 회군하여 상제를 가본즉,
 
117
“오늘 격노한 민중을 위력으로 눌러서는 안 될 일이니, 아무쪼록 정리(情理)로 애걸하소. 이 말이 혹 내가 그대에게 주는 최후의 부탁이 아니 될까 …….”
 
118
하고 상제가 미리의 손을 잔뜩 쥔다.
 
119
미리가,
 
120
“예, 상제는 너무 우려치 마소서. 지국에 가서 신이 모든 일을 천사만사(千思萬思)하여 행하리이다.”
 
121
하고 다시 총총히 등차(登車)한다.
 
 
 

8 천궁의 대란, 상제의 비거(飛去)

 
 
123
미리를 발송(發送)시킨 뒤에 상제 이하 온 천궁 귀중들이 모여 앉아 운다. 이 울음이 미리의 떠남을 우는 울음이 아니라, 곧 천국의 멸망을 우는 울음이다. 천국의 멸망을 우는 울음이 아니라 각기 자신의 불행을 우는 울음이다.
 
124
그런데 가장 처참하게 우는 이는 상제의 가장 총애하는 선녀 ‘꼭구’다. 상제가 너무 ‘꼭구’ 에 대한 불쌍한 생각이 나서 자기의 울음을 그치고 귀를 기울여 ‘꼭구’ 의 소리를 가만히 들으니 우는 소리가 아니요 곧,
 
125
“왔다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천국의 말일이다.”
 
126
하는 저주하는 소리다. 상제가 대로하여,
 
127
“이년아, 드래곤이 오면 네게 시원한 일이 무엇이냐.”
 
128
하고 칼을 빼어 ‘꼭구’ 의 목을 치니, 아! 불쌍한 ‘꼭구’ , 목이 뚝 떨어져 죽는다. 상제가 ‘꼭구’ 를 죽이고는 다른 ‘년’ · ‘놈’ 의 울음 소리를 들은즉 모두가 ‘꼭구’ 다. ‘꼭구’ 와 같이,
 
129
“왔다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천국의 말일이다.”
 
130
하는 소리다.
 
131
“아. 이것이 웬일이냐. 천궁의 친속(親屬)들이 다 반(叛)하여 드래곤 당이 되었느냐?”
 
132
하고, 이에 자기가 울며 자기의 귀로 들어 본즉, 자기의 울음 소리도 울음 소리가 안 되고,
 
133
“왔다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천국의 말일이다.”
 
134
하는 저주가 되고 만다. 상제가 하릴없이 이에 자기의 울음을 그치고 곧 엄혹한 명령을 내리어 천궁 안에 만일 우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리라 한다.
 
135
“그러나 내가 왜 평생 애인인 ‘꼭구’ 를 죽이었느냐? 미리의 회보가 왜 없느냐? 천국이 망하면 내가 어찌 되랴?”
 
136
하며 회한과 우울과 고통이 자꾸 상제의 머리에로 올라와 견딜 수 없는 두통이 생긴다. 상제가 손으로 그 머리를 받치고, 지통(止痛)할 약을 좀 달래려 하여 약실(藥室)에를 들어간즉, 아! 참 기괴하다. 약실 안에는 우는 이도 없건마는,
 
137
“왔다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천국의 말일이다.”
 
138
란 소리가 맹렬하게 인다.
 
139
상제가 매우 의혹하여 그 소리나는 곳을 가만가만 찾아본즉 초강수(硝强水)의 병 속이다. 상제가 대로하여 칼을 빼어 초강주 병을 치니 초강수는 어디 가고 불칼이 번쩍 나와 천궁의 들보를 친다, 기둥을 친다, 지붕을 친다, 주추를 부순다 하여, 뚝 ⎯ 딱 ⎯ 꽝 ⎯ 딱 ⎯ 와르르 우르르 ⎯ 천궁 전체가 불지옥이 되었다.
 
140
상제께서 ‘비가비[雨神]’를 불러 비를 좀 주어 불을 끄라 하시더니, ‘비가비’는 아니 오고 ‘바람가비[風神]’가 달려들어 냅다 맹풍(猛風)을 불어 불이 더욱 만연하여 천궁부터 천경까지를 소탕(燒蕩)한다. 대세가 가고 보니 위권이 행할쏘냐. 상제가 하릴없이 불을 피하여 궁문으로 나아가다가 맹풍의 휩싼 바 되어 어디로 날아가 버린다.
 
141
천사가 상제를 구하려다가 바람이 너무 세므로 어찌하지 못하여,
 
142
“인제는 천국의 말일이로구나.”
 
143
부르짖는다. 그러나 천사는 상제의 충신이라 어찌 시세를 따라 방향을 바꿀쏘냐 흥하나 망하나 , 상제를 따르리라. 천상에서 또 천상, 지하에서 또 지하를 갈지라도 내가 기어이 상제를 찾으리라 하고, 이에 조선의 행객(行客)같이 짚신 감발을 차리어 중국의 쿨리[苦力]같이 노동복을 입고, 상하 팔방으로 돌아다니며 상제의 계신 곳을 탐문한다.
 
 
 

9 천사의 행걸(行乞)과 도사의 신점(神占)

 
 
145
천사가 ‘상제를 찾자면 먼저 독일무이(獨一無二)하고, 전지전능한 상제를 잘 찾던 구미 각국으로 가보리라’하고 런던이니, 파리니, 로마니, 베를린이니, 뉴욕이니…… 하는 유명한 도시를 다 지나 보았다.
 
146
그러나 신부나 목사 등물만 눈에 뜨이지 안할 뿐 아니라 곧 황제대왕이니, 대통령이니, 국무총리니…… 하는 명사도 들을 수 없고, 은행이니, 회사니, 트러스트니…… 하는 건물도 볼 수 없고, 풍속이나 풍관(風慣)이 하나도 옛날 것대로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천사는 상제를 찾기에 다른 것을 알은체 하지 못하고, 모두 주마간산격으로 지날 뿐인 고로 그 상황은 알지 못하였다. 예루살렘을 지나다가 파울(사도 바울, 또는 바오로)을 만나, ‘파울은 독신한 상제의 신도니 상제의 계신 곳을 알리라’하여,
 
147
“파울아, 상제가 어디 계시냐?”
 
148
고 묻다가 파울이,
 
149
“이놈, 미친놈! 지금에도 상제를 찾는 미친놈아!”
 
150
하고 천사의 뺨을 쥐어지르는 통에 천사가 뺨이 퉁퉁 부어 달아났었다.
 
151
중국 북경에를 들어와 정양문(正陽門) 밖 십 리 허(許)에 잣나무밭 속 천단(天壇)을 지나니, 면류관에 곤룡포 잡수신 대청국(大淸國) 대황제가 천제(天祭)를 올린다고 구경꾼이 모여든다.
 
152
“허허, 그래도 중국이 거룩한 나라여, 부벽(復辟이 또 되어 제천례(祭天禮)를 회복하였구나.”
 
153
하고 천사가 달려들어 상제를 찾더니, 웬 사람이 손바닥을 보기 좋게 짝 펴들고,
 
154
“이놈아, 꿈꾸지 말아라. 이것은 민중경축절의 연극이다. 상제가 무슨 똥 쌀 상제냐!”
 
155
하고 또 천사의 뺨을 내갈긴다. 아, 상제의 충신 노릇 하느라고 천사의 뺨에 부기가 내릴 날이 없다.
 
156
천사가 아픈 뺨을 만지며 천교(天橋) 천단(天壇)의 서(西)를 향하여 나오니 길가에 머리를 쫒고 도건(道巾)을 쓰신 노도사(老道士)가 점상을 받쳐 놓고 상 위에는 ‘有問必答禮金十枚[유문필답예금십매](묻는 것엔 반드시 답합니다. 복채는 열 닢입니다)’의 여덟 개 대한자(大漢字)를 써 붙인 것을 보고,
 
157
‘하, 저 노도사 참 희귀한 노인이다. 오늘까지 머리도 깎지 않고 복희씨(伏羲氏)의 팔괘를 신봉하는구나. 예금(禮金) 십 매(十枚)라니 불과 동전 열 닢이면 상제 계신 곳을 물어 보겠다.’
 
158
하고 주머니를 뒤져 본다. 하나 ‘동전 열 닢은 그만두고 귀 떨어진 엽전 한 푼도 없다’고 주머니가 방귀를 픽 뀐다.
 
159
이 지경에는 천사도 눈물을 안 흘릴 수 없다.
 
160
‘드래곤이 오기 전 내가 상제의 좌우에서 시종할 때에는 내 손이 한번 주머니에 들어가기만 하면 금강석도, 홍보석도, 백금도, 황금도, 미국의 달러도, 법국(法國)의 프랑도, 원세개(袁世凱: 중국의 은전)의 대가리도 나오라는 대로 나오더니, 오늘에는 동전 열 닢에 주머니의 퇴박을 만났구나 …….’
 
161
그러나 천사가 점쳐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미소를 띠고 노도사 앞에 허리를 굽히며,
 
162
“여보 도사님, 점 한 괘 쳐주시오, 내가 지금에 돈이 없습니다마는 일후에 돈이 생기거든 예금 십 매는 말고 천 매, 만 매라도 바치지요.”
 
163
“그러시오. 오늘은 돈이 쓸데가 없는 세상이지만 나는 애전(愛錢)의 구습(舊習)을 잊지 못하여 장난으로 하는 것이올시다. 하나 예금이 무슨 관계 있으리까. 점을 쳐드리이다. 대관절 점은 무슨 점입니까!”
 
164
천사가 ‘상제를 들추다가는 또 뺨이나 맞을까’싶어 한참 머뭇머뭇 하다가,
 
165
“예, 다른 점이 아니라 상전을 찾는 점이올시다. 우리 상전이 어디 가신지 몰라서요…….”
 
166
“허허 요새 세상에도 상전을 찾아 다니는 이가 있단 말이오? 당신은 참 충노(忠奴)올시다.”
 
167
하고 점통을 흔드니 건지둔괘(乾之遯卦)기 나온다. 도사가 대경하여,
 
168
“아 ⎯어 ⎯건(乾)은 천(天)이니 곧 상제요, 둔(遯)은 도망(逃亡)이니 당신이 상전을 찾는 노자(奴子)가 아니라 도망한 상제를 찾는 천사인가 봅니다.”
 
169
천사는 이 말에 놀라지 안할 수 없다. 그래서 두 무릎을 꿇고 공손히,
 
170
“상제의 계신 곳을 가르쳐 달라.”
 
171
하니 도사가 물어 가로되,
 
172
“건괘 초효(初爻)의 ‘자(子)’가 둔괘 초효의 ‘진(辰)’으로 변하고 ‘진’이 회두(回頭)하여 ‘자’를 극(克)하였습니다. 진은 용이요 자는 쥐니, 상제가 용(드래곤)의 난에 도망하여 쥐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고어에 ‘천개어자(天開於子)’라 하더니 오늘은 ‘천폐어자(天閉於子)’ 올시다. 쥐구멍에 가서 상제를 찾으시오.
 
 
 

10 × × ×

 
 
174
천사가 상제를 찾을 마음이 바빠 즉시 도사를 배사(拜謝)하고 쥐구멍을 찾아간다. 쥐구멍을 찾아가 의외에 용신묘(龍神廟)를 발견하고 천사가 대경하였다.
 
175
‘용은 미리의 별명이니 미리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하고 묘중(廟中)에 들어가 보니 과연 미리가 있기는 있다마는 석일(昔日)에 풍·우·뇌(雷)·정(霆)의 조화를 부리던 ‘미리’가 아니요, 일개 토우상(土偶像)의 미리이다. 귀가 떨어졌고, 눈이 빠졌고, 이마가 깨어졌다. 그 앞에는 한 접시 제물도 놓이지 않았으니, 드래곤에게 패전하고 이곳에 와서 퇴거한 것이 명백하다.
 
176
“미리야. 이놈, 상제는 어디다 두고 너 홀로 여기에 와 있느냐? 나는 상제를 잊지 못하여 이렇게 찾아 다니는 길이다…….”
 
177
고 천사가 미리를 대책(大責)한다.
 
178
미리는 냉소한다.
 
179
“천사야, 이놈 상제는 찾아 무엇 하느냐? 천궁이 있던 때에 상제이지 천궁이 깨어진 뒤에도 상제가 있느냐. 상제가 있다면 죽은 상제이다. 죽은 상제는 산 쥐새끼만도 못하다. 말하자면 상제도 멸망하여야 옳지, 기실 내나 네나 상제가 모두 상고 민중의 일시 미신의 조작이 아니었더냐. 민중의 조작으로서 얼마나 민중에게 해를 끼쳐 왔느냐. 상제 자신만 호강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제의 제물·공물이다 핑계하고 민중의 돈을 협잡한 놈이 없었더냐. 상제의 명을 봉승(奉承)하였다 하며 세세 황제로서 행악한 놈이 없었더냐? 최근 세계대전에 다수한 민중을 죽이어 낸 각국 제왕·원수·총사령관들이 모두 상제의 이름으로써 하지 않았느냐? 남의 나라를 먹고 그 나라의 유민(遺民)의 뼈다귀를 녹이는 놈들도 또한 상제의 뜻이라 하지 않았느냐 오늘은 미신이 깨어지니 상제도 또 깨어졌다. 상제에 부속하였던 네나 내가 안 깨어질쏘냐. 억만 민중들은 고양이가 되고 과거 모든 세력자는 쥐가 되었다. 상제를 찾으려거든 쥐구멍으로 가보아라.”
 
180
천사가 미리의 말을 듣고 괘씸히 생각하였지만, 그 마음이 벌써 상제에게 떠나 돌릴 수 없는 바에야 다언(多言)이 쓸데 있으랴. 상제나 찾아가리라고 묘문(廟門)을 나오니 서역방지(鼠疫防止)를 위하여 쥐를 박멸하려고 출동한 민중들을 만났다. 천사 문득 도사의 점에 상제가 쥐구멍에 있으리란 말을 생각하고 울면서,
 
181
“여보시오. 쥐를 잡지 말으시오. 쥐는 곧 하늘에서 도망하여 온 상제올시다.”
 
182
하나 이 말에는 대답이 없고 다만,
 
183
“왔다 왔다, 드래곤이 왔다. 인제는 쥐의 말일이다.”
 
184
하는 소리만 사방에 일 뿐.
 
185
(一九二八[일구이팔], 自北京寄[자북경기] 燕市夢人[연시몽인])
 
 
186
(『단재신채호전집』,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1979)
【원문】용과 용의 대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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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채호(申采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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