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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의 어린 두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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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3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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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의 어린 두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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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우리들』 종간호에 「어린 두 딸에게」라는 소설을 쓴지 벌써 1년 반이 훨씬 넘었다.
 
3
아내가 두 어린 딸을 놓고 세상을 떠난 지 이럭저럭 2년이 가까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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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잡지 위에다 소설이라는 이름을 빌려 어미 잃은 두 딸의 기록을 실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각도로 그것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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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평가는 완전한 소설 월평가의 입장에서 정론적 색채가 희박하여지고 예술적 향기가 농후하여 가는 작가적 진보라고 이 소설 아닌 소설을 비판하였다. 또 어떤 비평가는 지사연한 태도라고 좀 이해하기 힘든 언구로 이것을 평하였다.
 
6
어떤 동무는 정면으로 그것을 욕설하였다. 애상적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동무는 나를 가리켜 체면도 아무것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애처가라 부르고 아내 잃더니 사람 버렸다고 말하였다. 시골서 평양만 나오면 만나는 동무마다 악수 뒤에 오는 말이 꼭 ‘아내의 묘참(墓參)인가?’였다. 심한 동무는 ‘나도 그런 효자 하나 뒀으면’하고 경멸의 표정을 눈자욱에 그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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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아는 동무들에게서 혹은 모르는 동무들에게서 오는 편지 속에 ‘어린 두 딸’의 이야기가 나올 때엔 이것이 또 나에 대한 야유나 아닌가 싶어 그 문장의 표리를 샅샅이 캐어 보게 되는 것이 상례였다.
 
8
그러나 나는 항상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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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사람의 생명이란 이렇게 하찮은 물건일런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하여 전 몸을 바치고 모든 희생을 감수한 한 개의 인간이 자기의 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없어졌을 때 20 전후의 나어린 청년의 마음이 수개월의 애상을 안을 만치도 그 생명은 가치 없는 물건일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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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달을 보고도 지나가는 안마쟁이의 피리 소리를 듣고도 가슴속에 애상을 안았다. 사람은 숨막힐 듯한 다방의 흐린 정조 가운데서도 속절없는 감상적 기분을 향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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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사랑하던 한 개의 인간과 그의 생명은 안마쟁이의 피리 소리나 한 달마다 솟아오르는 십오야의 달이나 카페와 다방의 흐린 공기보다도 하찮은 존재이고 그것은 청년의 마음에 순간적인 애상과 추억까지를 가져와서는 안되는 하루살이의 목숨일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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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웃고 나의 소설을 욕한 사람들 중에는 아직 아내를 가져 보지 못한 18 소년도 또는 아내를 가지고 자식을 기르는 30 장년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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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행복된 가정의 향락자가 자고 일어나 면도하고 낯 닦은 뒤 끝에 달랑 달랑 걸어와서 무릎에 안기는 자식의 볼 편에 입술을 대이면서 단 한번인가 이 애가 어미 없는 아이였다면 이 애를 낳고 열흘도 못 되어 제 어미가 세상을 떠났다면 어린것의 재롱이 자기의 마음에 지금과 같은 즐거움을 주었을 것인가 아닌가를 상상인들 해 보았을 것이냐!
 
14
보기에는 우스운 일이 당하고 보면 슬픔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흔하고 으레히 있는 일이 실상 당하여 보면 우울로도 되고 비애로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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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에게 어미 없는 두 딸이 있담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일 것이냐. 어린 두 아이에게 어미가 없다는 것 역시 세상에는 흔히 있고 으레히 있는 일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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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세상 사람이 비웃음이 나에겐 쓰라린 슬픔과 ‘애상’이 된 지 이미 두 해가 되려고 한다.
 
 
17
이러는 동안 두 아이는 점점 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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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나서 열흘도 안 되어 어미의 품과 젖을 잃은 둘째 딸이 한 돌이 지났을 때 벌써 나의 책상에 기어올라 ‘아버지’를 찾으면서 연필을 작란하고 턱아래 수염을 만져 보고는 아프다고 눈을 찡그리면서 방싯방싯 웃는 아이가 되었었다.
 
19
저의 어미가 세상을 떠날 때에 어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울며 서두를 때에 자기도 따라서 둥그래진 두 눈에 눈물 방울을 그리고 자기에게 불행이 왔는지 슬픔이 왔는지도 분간하지 못하던 큰아이도 지금은 자기의 생각의 대부분을 말로 표현할 줄을 알고 서울과 평양, 아버지와 할머니를 분간할 만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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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자기의 엄마가 있었는지 또 엄마란 무엇인지 엄마의 살고 죽음이 자기에게 무슨 영향이 있는지 이것을 알지 못함은 물론이고 이것이 또한 그들을 안고 있는 주위의 사람들의 마음에 때로는 더 많은 슬픔을 때로는 혹은 보다 적은 슬픔을 주는 원인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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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빠와 엄마의 구별을 알게 되고 할머니와 외할머니를 알게 되고 자기를 낳은 것이 누구이며 그것이 지금은 팔절(八切)의 사진 외에 아무곳에서도 찾을 수 없음을 알게 되고 그것이 주는 영향을 느끼게 될 때에 나는 두려움을 가지고 상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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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때가 언제 올 것인가. 10년 후에 오기를, 20년 후에 오기를, 아니 영원히 오지 않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23
참말로 가지가지 일을 대할 때마다 이들의 얼굴에 적막이 떠돌고 그 적막이 모든 사회적 불만의 원인으로 환원되고 이 세상에 대한 불만, 이 시대에 대한 울분까지를 온전히 이 사실 위에다 덧씌우고 환원하려고 한다면 그 때 애비된 이 놈의 두뇌는 무슨 말로 이들을 지도할 수 있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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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때는 오리라! 내년에 올는지도 금년에 올는지도 알 수 없는 두려운 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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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못하던 아이가 말을 하게 되고 솜뭉치 속에 누워 있던 핏덩어리 같은 것이 지금은 커서 달랑달랑 걸어 다니는 데 불과 1년 반이란 시일밖에 소비하지 않았거늘 이들이 자기의 주위에서 지금은 완전히 흙으로 되었을 자기 엄마의 품을 찾아보는 날을 어찌 10년, 20년 후의 긴 햇수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냐! 이리하여 이들이 그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슬픔으로 생각하게 될 때를 절박을 가지고 느끼면서 지금 나는 두려움 외에는 아무 대책도 못 가지고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심장을 두드리는 격동만을 안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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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때는 또 이 날이 하루 바삐 속히 오기를 기다릴 때도 있다. 이들에게 있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세상일을 달고나하는 시절이 그것의 연장일 듯 생각키이는 때문이다.
 
27
어미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것에서 적막을 느끼게 되는 날은 줄곧 그 이해의 날과도 연결되었으리라. 이렇게 생각해 보는 때문이다.
 
 
28
제 머리 만한 큰공을 굴리고 달랑달랑 마당을 뛰어가는 작은애를 마루에서 보면서 늙은이들은 이제는 다 기른 아이라고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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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엄마의 젖 한 모금을 못 먹고 독수리표의 ‘밀크’와 ‘암죽’으로 공을 따라 뜰을 뛰어다니게 될 줄 누가 생각인들 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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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죽으면 어미 없어 죽은 건 아니니라’ 이 말도 결코 헛말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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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뒤이어 늙은이들의 말은 으레히 고것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할머니에 대한 감사말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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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없는 걸 집에서 기르느라니 고생인들 오죽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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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를 기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몸이 아파 울 때에 물려 줄 젖조차 없는 어린것을 기르기란 상상 이외의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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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약해서 그런지 사흘을 잘 놀지 못하고 감기에 걸리거나 설사를 하거나 하였다. 좀 몸이 튼튼한가 하면 곧 종두니 홍역이니 백일해이니 하여 아이는 다시 여의고 말라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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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의 되풀이와 번복과 순환의 그들의 생장의 기록이 전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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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작년(갑술〔甲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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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를 지나 더위는 서국(西國)의 냇물 위에도 닥쳐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위선 개일 줄 모르는 보슬비로 전주를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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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갔던 장모와 큰아이가 작은애를 보겠다고 내 집에를 왔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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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가 가까워 왔다고 밤 고기 사냥을 나갔다가 나는 늦게야 자리에 누웠으므로 그 이튿날 아침은 일어나서 낯만 닦고 뜰안을 공연히 왔다갔다 하였다. 어젯밤 먹었던 소주가 머리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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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도 먹기 싫어 아이를 안고 풀이파리를 뜯어서 들려주면서 뜰안을 왔다갔다 할 때에 대문 안에서 나를 찾는 정복(正服)의 소리에 새벽부터 재수없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무슨 비오다 멎은 날 청결을 하라는가 하고 그의 앞으로 가까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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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청결 통지도 주사 맞으란 통지도 아니었고 전주서 나를 데리러 왔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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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의외였으나 오라면 가지 않아선 안 될 길이다. 그러나 전주라면 천리길, 관서의 일읍에선 말만으로 휴우 한숨 나올 만치 참빗장수로나 알려져 있는 곳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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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덤비지 않으려 애썼다. 어머니와 가족들 보는 속에서 붙들려 가기는 처음이므로 그 곳에서 내가 갈팡질팡하고 낯색을 달리한다면 어른들이나 동생들이 나를 뭣으로 볼 것인가 하는 악착스런 생각도 안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가 아니라 순검의 아들에 대한 ‘엄격’한 태도를 완화해 보려곤지 어머니가 일생 써 보지 않은 공손한 태도로 방석을 권하며 부산을 떠는 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44
‘어머닌 떠들지 말구 가만 들어와 있수 좀’ 하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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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 들어온 어머니는 다시 ‘조반’‘밥상’하고 아래 윗방을 갈팡질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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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주에 뗑 해지고 수면 부족에 흐려진 속이 본래부터 식욕이 날 리가 없었는데 눈앞에 기다리는 사람을 세워 놓고 밥이 목구멍을 넘어갈 리가 있을 것인가. 양복과 달걀 두 알을 내 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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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걀을 천천히 깨뜨려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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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린애는 하나는 나의 옷자락을 쥐고 멀즘이 문 밖에 선 순사의 칼과 얼굴을 바라보았다. 작은것은 외할머니에게 안겨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뒤숭숭한 사람의 동정만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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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복을 입고 모자를 올려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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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별일 없을 거외다. 염려하지 말우’ 그리고 장모에게 향하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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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더 쉬어 가시죠’
 
52
하고 그대로 순사를 따라 나섰다.
 
53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바깥 대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 속으로 묵묵히 들어가 앉았다.
 
54
그리고 언뜻 쳐다보는 눈에 어른들에게 안긴 두 어린것의 눈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발견하고 못 볼 것이나 본 듯이 얼굴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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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의 머리에도 기억은 안 남았으리라마는 그는 나서 한 돌이 되어갈 때 형무소에서 제 엄마에게 안겨 나와 면회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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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작은아이는 나서 반년밖에 안 되었다. 제 형이 형무소 그 어두컴컴한 면회실에서도 가질 수 있었던 명랑한 안색을 이 어린것에서 찾을 수 없고 무슨 일인지 알 리야 없으련만 경관에게 끌려가는 애비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말할 수 없는 적막을 발견할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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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것이 어미 없는 자식의 표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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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어 나는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곁으로는 순사와 운전수와 승객들과 큰소리를 하며 웃어대었으나 자동차가 비내리는 비류강의 나루를 건널 때엔 가슴이 막히는 것 같고 목구멍에 몽둥이 같은 것이 치밀어서 눈물을 깨물어 치우기가 곤란하였다.
 
 
59
내가 5월달에 시골서 서울 와 있게 될 때 큰아이는 외할머니를 따라 서울 올라 와 있었다. 그리고 지금 겨우 ‘아버지’‘밥’같은 몇 개의 단어로 자기의 의사의 전부를 표현하던 어린것은 내가 자동차로 떠날 때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선뜻 인사를 하였다.
 
60
큰아이는 첫여름까지 서울 있는 동안 내 하숙을 가끔 찾아왔다. 하루도 몇 번씩 아버지한테 가자고 못살게 군다고 하면서 외할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내 방을 찾아왔다. 그리고 시골 있는 작은것의 소식의 대부분 나를 통하여 왔으므로 제 동생의 안부를 물으려고도 늘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61
‘동생 잘 있대?’
 
62
이렇게 큰것은 나에게 물었다.
 
63
이런 물음도 어째 그런지 평상스런 마음을 가지고 대답할 수 없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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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잘 있다는데 네 이름두 부른다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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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답은 하면서두 나는 아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를 못하였다.
 
66
8월달에 시골을 가니 작은것은 생각던 것보다는 충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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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보구 절 안 하니?’
 
68
하면서 윗방으로 밀어 올리는데 아이는 곁눈으로 살짝 보곤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아랫방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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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오믄 과자 먹는다드니 아무것도 안 사 와서 애 노한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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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윗방에서 양복을 벗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과자 봉지라도 사 가지고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나, 생전 안 하던 버릇을 딸이라고 사다 준다는 비평도 듣기 싫었고 또 허구많은 조카와 동생들을 빼고 제 자식에게만 사 가지고 다닐 수도 없었다.
 
71
그래서 아이가 서운해 할 줄은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빈손으로 다니는 데서 마음의 안심을 찾으려 하였다.
 
72
하루를 묵어도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으므로 어린것과 대할 기회는 무척 적었다.
 
73
그런데 그 곳을 떠나는 날 낮에 밖에서 세수를 하는데 어머니와 어린것이 마루 끝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에 나는
 
74
‘행길에 나가자우 할머니!’
 
75
하는 어린것의 조르는 소리에 씻던 낯을 번쩍 들고 고것의 입을 바라보았다. 말을 한다! 사실 나는 고것이 이제는 제법 쉬운 말을 한다는 편지를 누차 받으면서도 그것을 마음으로 느껴 본 적은 없었었다. 그래서 아직도 몇 개나 되나마나 한 단어로 자기의 의견을 표시하리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것이 이야기를 한다.
 
76
어린것은 내가 쳐다보는 바람에 낯을 숨기고 할머니의 가슴으로 머리를 묻었다. 나는 묵묵히 다시 두 손에 물을 움켜 가지고 얼굴을 문대었다. 어쩐지 마음이 저리고 눈자욱이 뜨거워 왔다.
 
 
77
이 즈음 나는 두 아이들에게서 각각 소식을 받았다. 작은것은 말과 재롱이 늘어간다는 소식이었는데 큰아이는 감기 기운이 있다는 편지였다. 그리고 한가지로 아버지 언제 오나? 하는 말을 자꾸 어른들에게 물어서 성가시게구니 한번 다녀가라는 것이었다.
 
78
더구나 큰것은 이 즈음 어려서 자기를 안고 찍은 제 엄마 사진을 보면서
 
79
‘엄마가 얘기를 안고 사진 박았어?’ 하고는
 
80
‘애긴 난데 엄만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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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82
제 어미가 죽어서 2년이 흘러 그는 지금 엄마의 소재에 의문을 가지기 비롯한 것이다. 외할머니는 이 물음에 무어라 대답할지를 몰라 한참 잠잠히 있다가
 
83
‘엄마는 먼 데 갔다’
 
84
고 대답하였더니 그 다음엔 뭘 하러 갔는가? 아버지 하구 동생하구 엄마하구 언제 다 함께 사는가?를 연달아 질문하여 그만 어린것을 안고 울어 버렸다는 것이다.
 
85
나는 이 편지를 안고 한참 어쩔지를 몰랐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는 한 번도 자기를 찾아 주지 않는 엄마와 그리고 무한히 친하고 가까워야 할 아빠와 동생들과 한 자리에 모여서 웃고 먹고 놀기를 얼마나 희망하고 있을 것이냐. 그는 남들의 엄마와 아빠에게 끌려서 동생들과 함께 들로 거리로 쏘다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부러움이 어린 가슴을 복받칠 것이고 다시금 그 즐거움을 가지지 못하는 자기에게서 적막을 찾을 것이다.
 
86
그러나 만일 찾고 부르는 자기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엔 대체 무엇으로 그를 위안하며 무슨 말로 ‘죽음’ 이란 것을 설명해 줄 것인가!
 
87
그리고 그것에서 올 모든 즐거움과 기쁨과는 영원히 격리된 거리에서 자기네 형제의 외로운 그림자를 찾아 낼 때 나는 이들에게 그 대신으로 무엇을 들려 줄 것인가!
 
88
나는 편지 조각을 두 손으로 쥔 채 묵묵히 두 어린것의 얼굴을 종이 위에 그려 보았다.
 
89
웃는 얼굴, 우는 얼굴, 노할 얼굴, 그리고 놀라는 얼굴, 그러나 그 모든 표정의 구석에 흐르고 있는 적막, 어미 없이 자라나는 어린것들의 애수를.
 
90
(을해〔乙亥〕12월)
 
 
91
(『중앙』, 1936년 3월호)
【원문】그 뒤의 어린 두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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