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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양의 조기회(早起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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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9.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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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의 早起會[조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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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도 모르는 산간에 언양이라는 땅이 있고 거기에 소년단이 있어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는 조기회(早起會)를 한다 하는 소식은 벌써 작년 봄부터 그 곳 어린이 독자인 신고송(申孤松) 씨 외에 여러분으로부터 지어 보내는 작문과 편지를 늘 보고 나는 재미있게 여겨 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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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쁜 일로는 내가 이번에 그 곳에 강연갔던 길에 그 재미있는 조기회에 참례하고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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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은 퍽 좋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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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본부에서 자동차를 타고 태화강 옆으로만 50리를 끼고 올라가니, 언양이 가까울수록 강물이 더 맑고, 경치가 아름다운데 씻은 듯한 산 속에 태화강 흘러내리는 옆에 언양의 깨끗한 동리는 평화롭게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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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돌멩이 많은 시골이 어디냐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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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언양’이라고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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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개성도 돌이 많고, 황해도 해주도 돌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그것은 바위를 깨뜨려 내는 모양 없는 돌이지마는 언양은 참외나, 호박만큼한 작고, 어여쁘고 물에 씻은 듯이 깨끗한 돌멩이가 강에나 길에나, 마당에나 어디 없는 곳 없이 가득가득 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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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별도 많다 하지만 언양에는 별보다도 돌멩이가 몇 갑절 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담을 싼 것도 돌멩이뿐이고, 벽을 쌓은 것도 돌멩이뿐이고, 방축을 쌓아도 돌멩이뿐이고, 땅을 파도 돌멩이뿐이고 아주 흙이 귀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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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좋고, 바람 좋고 땅 좋고 물맛 좋으니까, 곡식이 좋아서 여기 물, 여기 쌀로 주는 밥맛이 어떻게 그렇게 좋은지 놀래었습니다. 돌멩이 많고 밥맛 좋은 곳이 어디냐 하거든 경상도 언양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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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 맛있는 저녁 밥을 한 사발 다 먹고, 공립 보통 학교 강당에 가서, 세 시간 동안 강연을 하고, 그 곳 여러 어른과 여관에 돌어오니, 시간이 자정 후 새로 두 시가 되었는데, 그 곳 어른들이 새벽 다섯 시 소년단 조기회 시간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기 시작한 까닭에 나는 반가워 조기회 일을 자세히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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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에는 언양 소년단과 불교 소년단의 두 소년단이 있는데, 두 소년단에서 모두 다른 곳 소년회와 같이 공일날 마다 모여서 토론도 하고, 동화회도 하는 외에 한곳에 모여서, 행렬을 지어 동리 바깥까지 구보(달음질)로 다녀와서 식전 운동을 하고 헤어진다 합니다. 겨울에나 여름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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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벽 다섯 시만 되면, 먼저 임원이 일어나서 나팔을 불고, 그 나팔 소리를 군호삼아 골목골목 집집에서 어린이들이 이불 속에서 튀어나오는데, 원래 조그마한 시골 읍이라 나팔 소리가 이른 새벽 공기를 헤치고, 온 시골집마다 들리므로 소년 단원 아닌 어린이나 늙은 노인까지라도 일제히 잠이 깨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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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일제히 일어나는데 우리가 늦게까지 자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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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모두 일어나게 된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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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 좋은 이야기를 듣는 내 마음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야기만 듣고도 내 가슴에 기쁨이 넘쳐서 머리끝까지 우쭐우쭐 커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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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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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얼른 자고, 다섯 시에 일어나서 조기회에 참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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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몇십 명의 소년 단원들뿐 아니라, 온 시골 모든 사람을 일제히 일으키는 그 거룩한 어린이의 나팔 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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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 피곤한 밤, 꿈도 없이 고단히 자던 내가, 언뜻 눈이 뜨이면서 고개가 들렸습니다. 어두운 방 속에서 시계가 몇 시나 되었는지 모를 때, 멀리서 씩씩하게 시원스럽게 들려 오는 나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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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하고, 소리치면서 나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창 바깥은 그 때에 겨우 밝아 가느라고 동편 하늘이 환해지는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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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 소리도 나지 않는 꿈나라 어두운 데서 땃다다, 땃다다 다아 ─ 하고 끝을 길게 끌면서, 기운차게 들려 오는 소리는 기어코 방 속에서 고단히 자고 있는 모든 사람을 깨웠습니다. 안 떨어지는 눈을 비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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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팔 소리가 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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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억지로라도 모두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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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팔 소리는 두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옷을 입고, 단장을 짚고, 나팔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까, 길거리 다리목 넓은 마당에 벌써 20여 명의 어린 단원이 모여 있어서,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뛰어오는 동무를 반겨 맞고 있었습니다. 여기의 패가 불교 소년단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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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팔을 부는 소년! 그 중에 큰 소년이 부는 것인줄 알았더니, 간신히 12, 3세밖에 안 되는 조그만 조그만 아주 조그만 어린 소년이 다리 위에 서서 힘을 들여 열심으로 불고 있었습니다. 몹시 몹시 그의 나팔 부는 어린 맵시가 용감하고 쾌활하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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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또 저편 보통 학교 앞에서, 언양 소년단에게 부는 소리를 듣고, 발을 옮기어 그 편을 찾아가니, 이 언양 소년단은 보통 학교 앞 청년 회관이요, 소년 회관인 자기네 회관 마당에서 나팔을 불어 단원을 깨어 모으고 있고, 한편에는 벌써 일찍 모여 온 단원들이 운동장의 잡풀을 열심으로 뽑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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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 좋은 때 일어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요, 더구나 공공한 생활을 위하여 운동장을 정리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벽마다 모일 때마다 조금씩 뽑은 것이 지금은 훌륭히 테니스(정구) 운동장만한 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새벽 노동의 소득이라 생각하면 기념할 운동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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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의 새벽은 두 소년단의 나팔 소리에 밝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집집에 들창과 문이 열리고, 날이 투철히 밝았을 때, 두 소년 단원은 소년 회관 마당으로 한데 모였습니다.(날마다 따로따로 모이는 것인데 내가 온 것을 기회삼아 두 소년단이 오늘 처음 한 마당에 모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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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 이는 모두 60여 명, 그 중의 한 분 학생의 호령으로 대를 지어가지고, 구보(달음질)로 한길로 나아가 동리를 꽤 돌고, 하낫 둘, 하낫 둘 소리를 내면서 읍 바깥 퍽 먼 곳까지 끝끝내 달음질로 뛰어가는데, 그 중에 7세 8세의 어린이들까지 뒤떨어지지 않고, 달음질해 가는 것을 볼 때 어떻게 씩씩하고 든든하여 보였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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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창 달음질로 날마다 가는 예정의 곳까지 다녀와서 아침 교련 운동을 마치고, 그냥 그대로 마당에 선 채로 나에게 이야기를 청하므로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또 외국 소년들이 자라는 이야기와 조선 소년들이 어떻게 커 가야 할 것을 내 정성껏 간단하나마 간절하게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이 후부터 어느 때든지 두 단체가 연합하여 한데 모여서 하는 것이 좋을 뜻을 말하였습니다. 그 때에야 아침해가 동편 산머리에 솟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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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 돌아오니 아침에 큰 일을 한 가지 마치고 온 것 같은데, 그래도 시간은 다른 때 같으면 일어날 때도 멀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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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도 또 다섯 시 나팔 소리에 모여서 전날 같은 일을 마치고 내가 새로운 훈련 유희를 알려 드리고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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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모두 쇠잔한다 하여도, 온갖 것이 모두 망한다 하여도 언양에는 새로운 싹이 잘 큰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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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이 뛰면서 커 간다 할 것입니다. 언양의 모든 사람에게 새벽마다 새로운 기운을 넣어 주고, 격려하면서 씩씩하게 장성하소서. 당신네의 다섯 시 나팔은 지금도 내 귀를 울리면서, 내 마음을 자주 채찍질해 주는 것을 감사 감사히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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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1925년 9월 1일〉
【원문】언양의 조기회(早起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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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