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창백(蒼白)한 얼굴들 ◈
카탈로그   본문  
1931.10.
채만식
1
蒼白[창백]한 얼굴들
 
 
2
웅성거리는 소리에 엷이 든 늦잠이 깬 K는 머리맡 재털이에서 담배토막을 집어 피웠다. 틉틉한 입안에 비로소 입맛이 든다.
 
3
창에는 맑은 햇빛이 가득 쪼인다. 파르스름한 연기가 천정으로 기어 올라간다.
 
4
K의 머리속에는 어젯밤 살롱 아리랑의 광경이 술취한 사람의 발길같이 돌아간다.
 
5
세상이 갑자기 놀란 듯이 뚜 오정 부는 소리가 들리며 뭇 싸이렌이 뒤미처 따라 분다.
 
6
S가 찾아왔다.
 
7
“일요일이라구 마구 넉장일세그려.”
 
8
“일쯕 일어나면 무얼 하나? 일요일인데 주머니는 텅텅 뷔고……”
 
9
S는 재털이에 있는 해태갑에서 담배를 꺼내어 성냥을 그어 피우고는 성냥 레테르를 들여다보며 “흥.”하고 싱긋 웃는다.
 
10
K는 그 말을 알아듣고 여전히 천정을 바라보며
 
11
“새로 세시까지 쫄딱 녹았네.”
 
12
“누구허구?”
 
13
“P허구 M허구 서이서.”
 
14
“일어나게 그만.”
 
15
“일어나 볼까…… 일어나니 뭘 허나!”
 
16
“놀러나 나가지.”
 
17
“불알 두쪽만 쥐고!”
 
18
“다 털어먹었구나?”
 
19
“그랬다네.”
 
20
K는 내키지 않게 기지개를 쓰고 일어나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
 
21
S는 책상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들고 뒤적거린다.-리카도의 지대론.
 
22
“요지음 독서허네그려?”
 
23
“흥…… 허기는 해야 할 터인데……”
 
 
24
두 사람은 거리로 나섰다.
 
25
S가 문즉 생각이 난 듯이
 
26
“평양 ××××사건 공판이 언제지?”
 
27
하고 묻는다.
 
28
K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29
“글쎄……”
 
30
“이번 평양 간 길에 좀 봤으면 좋겠는데……”
 
31
“공개허나?”
 
32
“허겠지……”
 
33
“참 이번엔 카푸 친구들이 단단히 당하는 모양이야.”
 
34
“뭘 아무것도 없다든데.”
 
35
“그렇지 않다든데……”
 
36
“아니야. 아무것도 없는데 모초롬 걸렸으니까 때려넣어 놓구는……”
 
37
두 사람은 안국동 네거리까지 나왔다.
 
38
“어데로 갈까?” 하고 K가 휘휘 둘러본다.
 
39
S는 입맛을 다신다.
 
40
“글쎄…… 전차삯이나 있어야지.”
 
41
“이 근처에 그 집 없나?”
 
42
“포?”
 
43
“응.”
 
44
“무엇 있나?”
 
45
K는 양복바지 앞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어 보며 씩 웃는다. S도 마주 웃으며
 
46
“입때 가지고 있으라고…… 갈 테건 왜×의 집으로 가세.”
 
47
“그래 ××들은 그래도 물건은 알어보니까.”
 
48
K와 S가 명치정으로 해서 진고개에 들어설 때에는 십원짜리 한 장이 전당표와 한가지로 K와 바지 뒤포켓 속에 들어 있게 되었다.
 
49
두 사람은 대판옥서점으로 가서 『개조』『중앙공론』『경제왕래』를 집어들고 목차도 뒤적거리고 그 중의 논문 한 절씩을 읽어도 보고 하다가 K는 『신청년』S는『킹』한 권씩을 사 들고 나왔다.
 
50
아까다마의 나마비루 석 잔씩이 두 사람의 기운을 도왔다.
 
51
“한강 갈까?”
 
52
“절로 가지.”
 
53
“요새는 한강이 나어.”
 
54
“아무려나.”
 
 
55
여름철의 한강은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 매우 고마운 것이다. - 왕복 찻삯 십 전을 낼 돈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 이상의 레벨에 속한 사람들-
 
56
철교 및 수영장에는 콩나물대가리같이 사람의 머리가 엉기어 있다.
 
57
아직 장마물이 빠지지 아니한 강물에는 보우트가 덮이다 시피 떠들고 그 사이로 심술궂은 모터보우트가 통탕거리고 달음질을 친다.
 
58
가마 뚜껑 같은 선유배에서는 쑥스런 장고에 맞추어 빽빽 지르는 기생의 소리가 졸음이 오도록 단조하게 울리어온다.
 
59
인도교 위에는 일정한 정원이나 있는 듯이 양편 난간으로 사람의 줄이 벌리어져 있다.
 
60
K와 S는 선유배에 보우트까지 비끄러매어가지고 맥주를 사서 싣고 상류로 올라갔다.
 
61
일본 사람 내외가 보우트에 마주 앉아 까드락까드락 저어 올라간다.
 
62
“사방을 다 둘러보아야 우리 팔자 같은 놈은 없고나!”
 
63
하고 S가 일본 사람 내외의 보우트만 바라본다.
 
64
K는 우두커니 한 곳만 바라보고 있다가
 
65
“저년이 또 나왔네그려!” 하고 손으로 가리킨다.
 
66
“무언데?”하고 S가 바라본다.
 
67
“칼멘 말이야.”
 
68
“전매국?”
 
69
“응.”
 
70
“저년이 짝패가 있더니 오늘은 혼자만 나와서.”
 
71
“네 팔자도!”
 
72
“흥, 팔자가 어떻게? 전매국 담배봉지에서 썩는 것 같을까?”
 
73
“나올 건 무언데!”
 
74
두 사람은 묵묵히 맥주만 들이켠다. 한참만에 K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75
“어떻게 될 거야!”
 
76
“무엇이?”
 
77
“이놈의 세상이……”
 
78
“이놈의 세상……”
 
79
“그래.”
 
80
“하긴 그래!”
 
 
81
석양쯤 하여 택시가 얼큰하게 취한 두 사람을 싣고 정자옥 앞에 대었다.
 
82
두 사람은 얌전한 여점원들을 아니 보는 체 할깃할깃 보면서 식당으로 올라간다.- 식당에서 먹은 것은 차이니스 런치-
 
83
정자옥에서 나와 진고개로 다시 들어섰다. 두 사람의 앞에 신여성과 양복장이가 나란히 서서 걸어간다.
 
84
어쩐지 얼띠어 보인다.
 
85
“네나 내나 요보가 진고개에 무슨 일이 있냐!” 하고 S가 픽 웃는다.
 
86
“그건 그래도 나으이…… 상투쟁이래야 제격이지,”
 
87
“저건 모 · 본데.”
 
88
S가 보니, 응 아닌게아니라 옷과 몸매가 모 · 보로 된 친구 하나가 쓱 지나간다.
 
89
K는 눈초리로 고소를 하며
 
90
“그래 모보는 모 · 보야……단 조선놈 모·보는 Modern Yobo라는 모 · 보야, 하하.”
 
91
“하하하하.”
 
92
“하하하하.”
 
93
두 사람의 염치 없는 너털웃음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눈이 뚱그래진다.
 
94
두 사람은 헌책전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95
그것이 두 시간이 걸리었다.
 
96
다리가 지치고 목이 컬컬한 두 사람은 메이지세이가로 올라갔다.
 
97
층계에서 S가
 
98
“자네 여기 있는 계집애 형제 보았나?” 하고 묻는다.
 
99
“계집애 형제라니?” 하고 K가 되묻는다.
 
100
“쌍둥이 같은 계집애 둘이 있는데……”
 
101
“그래……”
 
102
“미인이 아니야.”
 
103
“그게 어떻단 말이야?”
 
104
“그런데 좋거든.”
 
105
“흥.”
 
106
식당에 들어서서 S는 휘휘 사방을 둘러보다가
 
107
“없네그려.”
 
108
“무엇이?”
 
109
“그애들.”
 
110
“섭섭헌가?”
 
111
“응.”
 
112
두 사람은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였다.
 
113
K가 왜저깔같이 종이봉지에 싼 빨대(吸管)를 집어들고 되작거려 보다가
 
114
“이게 밀짚 빨대 대신인가?”
 
115
“그렇지.”
 
116
“이것 하나에 사람의 손이 얼마나 갔을꼬?”
 
117
“어데 우리 따져볼까?”
 
118
“무슨 재주로?”
 
119
“이게 이럴 필요가 어데 있누!?”
 
120
“먹는 사람이 좋으라는 것이겠지.”
 
121
“좋아? 좋긴 하겠지……만……”
 
122
“말세야.”
 
123
두 사람은 그곳을 나왔다.
 
124
다시 헌책전을 뒤지러 묵묵히 걷는 두 사람의 얼굴이 가다가 와사가등(瓦斯街燈)에 비칠 때에는 한층 더 창백하여 보인다.
【원문】창백(蒼白)한 얼굴들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6
- 전체 순위 : 2772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382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창백한 얼굴들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1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창백(蒼白)한 얼굴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