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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리는 소리에 엷이 든 늦잠이 깬 K는 머리맡 재털이에서 담배토막을 집어 피웠다. 틉틉한 입안에 비로소 입맛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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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는 맑은 햇빛이 가득 쪼인다. 파르스름한 연기가 천정으로 기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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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머리속에는 어젯밤 살롱 아리랑의 광경이 술취한 사람의 발길같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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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갑자기 놀란 듯이 뚜 오정 부는 소리가 들리며 뭇 싸이렌이 뒤미처 따라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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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쯕 일어나면 무얼 하나? 일요일인데 주머니는 텅텅 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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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재털이에 있는 해태갑에서 담배를 꺼내어 성냥을 그어 피우고는 성냥 레테르를 들여다보며 “흥.”하고 싱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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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그 말을 알아듣고 여전히 천정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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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내키지 않게 기지개를 쓰고 일어나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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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책상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들고 뒤적거린다.-리카도의 지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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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양 간 길에 좀 봤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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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번엔 카푸 친구들이 단단히 당하는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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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아무것도 없는데 모초롬 걸렸으니까 때려넣어 놓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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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로 갈까?” 하고 K가 휘휘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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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양복바지 앞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어 보며 씩 웃는다. S도 마주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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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때 가지고 있으라고…… 갈 테건 왜×의 집으로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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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들은 그래도 물건은 알어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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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S가 명치정으로 해서 진고개에 들어설 때에는 십원짜리 한 장이 전당표와 한가지로 K와 바지 뒤포켓 속에 들어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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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대판옥서점으로 가서 『개조』『중앙공론』『경제왕래』를 집어들고 목차도 뒤적거리고 그 중의 논문 한 절씩을 읽어도 보고 하다가 K는 『신청년』S는『킹』한 권씩을 사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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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다마의 나마비루 석 잔씩이 두 사람의 기운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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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의 한강은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 매우 고마운 것이다. - 왕복 찻삯 십 전을 낼 돈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 이상의 레벨에 속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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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교 및 수영장에는 콩나물대가리같이 사람의 머리가 엉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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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장마물이 빠지지 아니한 강물에는 보우트가 덮이다 시피 떠들고 그 사이로 심술궂은 모터보우트가 통탕거리고 달음질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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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뚜껑 같은 선유배에서는 쑥스런 장고에 맞추어 빽빽 지르는 기생의 소리가 졸음이 오도록 단조하게 울리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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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 위에는 일정한 정원이나 있는 듯이 양편 난간으로 사람의 줄이 벌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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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S는 선유배에 보우트까지 비끄러매어가지고 맥주를 사서 싣고 상류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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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 내외가 보우트에 마주 앉아 까드락까드락 저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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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다 둘러보아야 우리 팔자 같은 놈은 없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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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S가 일본 사람 내외의 보우트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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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년이 또 나왔네그려!” 하고 손으로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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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년이 짝패가 있더니 오늘은 혼자만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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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팔자가 어떻게? 전매국 담배봉지에서 썩는 것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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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묵묵히 맥주만 들이켠다. 한참만에 K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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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쯤 하여 택시가 얼큰하게 취한 두 사람을 싣고 정자옥 앞에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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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얌전한 여점원들을 아니 보는 체 할깃할깃 보면서 식당으로 올라간다.- 식당에서 먹은 것은 차이니스 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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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옥에서 나와 진고개로 다시 들어섰다. 두 사람의 앞에 신여성과 양복장이가 나란히 서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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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나 내나 요보가 진고개에 무슨 일이 있냐!” 하고 S가 픽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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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래도 나으이…… 상투쟁이래야 제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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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가 보니, 응 아닌게아니라 옷과 몸매가 모 · 보로 된 친구 하나가 쓱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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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보는 모 · 보야……단 조선놈 모·보는 Modern Yobo라는 모 · 보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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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염치 없는 너털웃음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눈이 뚱그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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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지치고 목이 컬컬한 두 사람은 메이지세이가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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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여기 있는 계집애 형제 보았나?” 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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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애 형제라니?” 하고 K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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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같은 계집애 둘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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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서서 S는 휘휘 사방을 둘러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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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왜저깔같이 종이봉지에 싼 빨대(吸管)를 집어들고 되작거려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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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하나에 사람의 손이 얼마나 갔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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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헌책전을 뒤지러 묵묵히 걷는 두 사람의 얼굴이 가다가 와사가등(瓦斯街燈)에 비칠 때에는 한층 더 창백하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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