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점잖은 사람 명년에는 자네 논이나 몇 말지기 부치게 해주게.
5
점잖은 사람 남의 논 서른 말지기를 지어왔지만 비싼 도조를 치루고 남는 게 있어야지.
6
지주 버들골에 있는 열닷 말지기를 명년부터 부치게.
7
점잖은 사람 구(舊) 작인(小作人)이 말썽을 아니하겠지?
8
지주 내 논 가지고 내 마음대로 작인을 옮기는데 누가 말썽이야? 그새도 그러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일체 농군(農業勞動者)에게는 논을 아니 줄 테야…… 도조를 잘러먹고 간도로 달어나니까.
9
점잖은 사람 하기야 농군이 별로 논을 부치어보지도 못했지.
12
지주 평년작에 양석(150평 1두락에 2석)은 먹는 상답이니까……
14
지주 그새까지는 열일곱 섬을 받어왔지만 열석 섬만 치지.
15
점잖은 사람 농채(農業資金)도 좀 대어주게.
18
점잖은 사람 농사밑천에 쓸 것입니다. 백 원만 주시요.
26
농군 댁에서 명년부터 버들골 열닷 말지기를 부치신다지요?
29
점잖은 사람 자네 한 사람에게 열닷 말지기를 다 줄 수는 없어.
30
농군 박서방하고 최서방하고 얼러 쓰지요.
31
점잖은 사람 그렇다면 주지…… 모 심으고 초벌 두벌 세벌 매이고 소매거지 베이기 등짐(運搬)까지 일곱 벌에 일 원 칠십오 전씩.
32
농군 점심하고 술하고 담배는 댁에서 주시고……
33
점잖은 사람 담배는 빼이고…… 일 원 칠십오 전씩 열닷 말지기니까 이십육 원 이십오 전. 가져가.
35
점잖은 사람 하로 일에 품(勞動―勞動者)이 다섯씩은 나와야 해.
39
구소작인 이 논을 누구가 갈으래서 갈고 있소?
42
점잖은 사람 지주한테 부치기로 얻었으니까……
43
구소작인 이 논은 그새 내가 부쳐온 것입니다.
44
점잖은 사람 농사를 짓는데야 밑천이 없어 거름도 못하고 도조도 못 물면서 논을 부쳐서는 무얼 해?
45
구소작인 그래도 금년까지는 내가 이 논을 부칩니다.
46
점잖은 사람 생일꾼(勞動者)이면 생일(勞動)이나 해먹지 논을 부친다는 게 건방지다.
49
구소작인 안됩니다. 이 논을 못 부치면 우리 식구는 굶어죽어요.
58
점잖은 사람 이놈이 남이 일하는 것을 방해한답니다.
60
구소작인 저 사람이 남이 부치는 논을 갈고 있답니다.
61
점잖은 사람 나는 작년 가을에 ✕지주와 계약을 했읍니다.
63
구소작인 나는 발써 삼 대째 이 논을 부쳐옵니다.
69
지주 나는 몰랐고 사음한테 옮겼다는 말만 들었지.
70
구소작인 사음은 나리가 옮기섰다고 하든데요.
71
지주 누가 옮겼거나 그러니 어쩌란 말이야?
73
지주 낸들 어쩔 것을 아나! 생일꾼이니 품팔이를 해먹지.
75
지주 못 살어가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하나?
78
구소작인 그 논을 나리님 할아버지 때에 우리 할아버지가 얻어서 지금 삼대채 부치는 논입니다
91
농군 사람이 원체 귀해서 얻을 수가 없었읍니다.
93
농군 감작히 비가 와서 품 하나에 일 원이라도 살 수가 없답니다.
94
점잖은 사람 그거야 내가 아나! 자네들이 고지를 먹은 것이니까 일원 아니라 십 원을 주고 사서라도 일은 해주어야지.
95
농군 오늘 못다 심으면 내일까지 심으지요.
96
점잖은 사람 지금 늦비에 심으는 모가 하로면 어덴데 그래!
97
농군 늦게까지 부즈런히 심다가 못 심으면 내일 심는다는 말씀이지요.
98
점잖은 사람 안돼! 오늘로 다 심어노아야지…… 그렇다고 모를 드물게 심으면 다 뽑아바리고 다시 심으게 할 테야.
99
농군 네 염려 맙시요. 그 대신 술이나 많이 내보내 주십시요. 미리 쓰는 맛으로 이십오 전씩 얻어 쓰고 지금 일 원 하는 시절에 이 일을 하기는 억울합니다.
103
농군 넷이라도 매고 나면 해가 남겠읍니다.
104
점잖은 사람 무슨 소리야! 다섯이 매어도 빠듯할 터인데
106
점잖은 사람 어쨌거나 일쯕 매고 가면 오늘 다른 데 가서 일을 하겠나! 늦더래도 힘들여서 잘 매어주게.
107
농군 네. 그 대신 술이나 많이 내보내 주십시요.
110
점잖은 사람 애들 쓰네. 막걸리나 한 사발씩 먹고 하게.
112
점잖은 사람 농사짓는 사람이 그런 것 저런 것을 가릴 수가 있나! 다른 농군 올에 농사는 도장원하섰읍니다.
113
또 다른 농군 못 나도 마흔 섬은 넉넉하겠는걸.
117
점잖은 사람 빚을 얻어서 농사 밑천 들인 것은 생각하지 않고? 또 다른 농군 아직도 농사짓는 것밖엔 숱된 게 없어.
119
안해 오늘 버들골 열닷 말지기 멫섬 났어요?
122
점잖은 사람 도조 열석 섬을 제하면 스물석 섬이 남고 그놈 짓는데 도통 들은 것을 따지면 거름값까지 합해서 팔십 원…… 요지음 벼 한 섬에 칠 원 각수가 잽히니까 열두 섬…… 줄잡고 벼로 열 섬은 공것이다.
124
점잖은 사람 그놈으로는 영을 해서 집을 이고 겨울에 불도 때이고 남으면 팔고……
125
안해 다른 데 세 자리 논에서는 얼마씩이나 나겠지?
126
점잖은 사람 세 군데 합하면 도통 수무 섬은 온곳 떨어지겠지…… 올에는 농사지은 보람이 있다…… 서른 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