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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감(秋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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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0.16
홍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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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감(秋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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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을에 가을이 드는 당나라 시인 마재(馬載)가 누상추거(漏上秋居)를 읊조린 고언율시(古言律詩)가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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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풍우정 만견응행빈 낙엽타향수 기등독야인 공원백로적 고벽야승린 기와교비구 하년치차신(濡原風雨定 晩見應行頻 落葉他鄕樹 幾燈獨夜人 空園白露適 孤壁野僧隣 寄臥郊扉久 何年致此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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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모든 것을 새삼스러이 깨우쳐 느끼는 시절이다. 동산의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나 사리짝에 우짖는 귀뚜리 소리나 모두가 가을의 감상만이 짙어 들린다. 유현(幽玄)히 높은 하늘빛, 정명(情明)하게 개인 대기, 어느 것 하나나 애처로운 가을빛을 쓸쓸하게 지니지 않은 것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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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을 가을 자연의 호흡이며 쓸쓸한 가을이 하솟거리는 시의 마음이다. 오동잎에 밤비가 우짖을 때…… 무심한 잎사귀에 무심히 듣는 빗방울이건마는 그것도 봄과 가을을 가리어 그 정취가 전연 서로 다르다. 생성 번영의 봄과 여름의 천지가 수행하는 계제라구 일컬을 수 있다면은 가을과 겨울철은 아마 인생의 진의(眞義)와 실상에 투철한 보제(菩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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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스스로 가을 자체의 모양을 고요히 응시하여 명상하고 사색해 보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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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가을은 쓸쓸하고 조락(凋落)하고 구슬픈 시절이다. 애상의 눈물겨운 가을이다. 소리도 없이 실컷 울고 싶은 가을이다. 소림사(少林寺)에서 곡(哭)소리가 난다. 절에는 오늘 누구의 49일 영산재가 들었다 하더니 마지막 회향(廻向)으로 순당(巡堂) 도는 ‘나무아미타불……’ 구슬픈 범패(梵唄)에 따라 망자(亡者)를 극락으로 마지막 보내이는 효자 효손들의 추원감시(追遠感時) 고지호천(叩地號天) 애통망극한 울음이다.
 
8
그 망자는 어떠한 사람이었든지…… 어떻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한 번 죽음은 도무지 면할 수 없는 일이요 더구나 사바오탁(娑婆五濁)의 진세(塵世)를 훌쳐버리고 서방정토 구품연대(九品蓮臺)에 영불퇴전(永不退轉)으로 왕생할 것이며 대체로만 생각하면 가는 이나 보내는 이나 그리 슬퍼할 것도 없으련마는 그러나 저절로 슬퍼만 지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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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 인생이라고 예로부터 일러내려오던 말이지마는 정말 풀 끝에 맺힌 이슬 같은 것이 우리 인간의 목숨이며 가을바람에 지는 잎같이 하염없는 것이 사바 중생의 죽음이다. 꿈결 같은 한 세상…… 부싯불이나 번개보다도 더 덧없고 빠른 것이 인간의 수명인 것을 우리는 번연히 느끼며 알고 있거니……. 그러나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을수록 그 “알고 있거니” 하는 것이 도리어 끊으려 끊을 수 없는 한 가닥 굵다란 기반이 되며 집착이 되어서 허덕거리며 슬퍼하는 것이 우리 범부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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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얼마나 짧건, 모태에서 벗어나오는 길로 잠시 집자리에서 스러져 버리는 핏덩이도 있고 강보에 싸여 벙긋거리다가 덧없이 가버리는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웁게 짧은 목숨도 있건마는 길게 잡아 오십을 사나 백 살을 사나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더욱 섭섭하고 구슬픈 것이 인정이며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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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모두 허망한 욕심이니까…….” 하고 모든 것을 각오하며 단념해 버리려 하여도 여전히 섭섭한 슬픔만은 남아 있나니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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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바(娑婆)는 도무지 단념도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쳐서버리려 하여도 그것마저 끊어버려지지 않고 도리어 꼬리에 꼬리를 달아 나타나는 새로운 번뇌와 고민. “이렇게 해서는 정말 못 쓸 터인데……” 하며 혼자 걱정을 하면서도 끝끝내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범부들의 가엾은 정경이다. 그러면 그렇다고 사람이 턱없이 오래만 살고 싶으냐. 끝없이 오래만 산다 해도 그리 시원한 꼴은 물론 없겠지마는 하나 그래도 죽기는 도무지 싫다. 차라리 고생을 몹시 좀 하더라도 살아 있고만 싶지 편안하다는 죽음은 그리 원하지 않는다. 죽은 정승 부럽지 않고 살아 있는 개목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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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할 터이냐. 서릿바람에 나무잎 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 겨울만 지나가면 묵은 등걸에도 새싹이 눈 틀 새 봄 맞이를 어두움 속에서 꿈같이 그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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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에 떼울음소리도 이제 그만 그쳐버리었다. 만뢰(萬籟)은 죽은 듯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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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存子)들이여! 왜 목을 놓고 더 좀 울지 않느뇨……. 가을 동산에 지는 잎같이 쓸쓸히 돌아간 어버이를 부르며 속이 후련하도록 더 좀 실컷 울지 않더뇨. 가을밤에 쓸쓸히 들리는 깨어진 쇠북소리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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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38년 10월 16일)
【원문】추감(秋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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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사용(洪思容)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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