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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3.23~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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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작품]과 題材[제재]의 問材[문제]
 
 
2
붓을 잡고 원고지를 대할 때마다 제재로 한참씩 머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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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씀에 제재로 열심한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별로이 신기한 말이 아니다. 여기 지금 말하는 바 제재의 고심이라 하는 것은 이전에 보통 말하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4
무엇을 쓰랴 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쓰랴 하는 것보다도 그 쓴 것의 미치는 영향과 결과를 생각하는 데 고심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론 나 개인의 심경의 변화와 성격이며 취미의 변화에서 생겨난 변태적 결실이겠지만 현재의 내게는 소설의 제재가 극히 국한되었다. 세상 보통의 '소설'이라는 것은 쓸 흥미를 전혀 잃어버렸다. 천 편을 써도 그것이요, 만편을 써도 그것으로서 그것을 쓸 흥미도 잃어버렸고 쓸 가치도 인정되지 않는다.
 
5
어떤 사내가 있다, 어떤 계집이 있다, 아이도 있다. 무론 전혀 공상 중의 인물인 이 인물들을 소설에다가 등장시켜서 이야기도 시키고, 싸움도 붙이고, 연애도 시키고 여행이며 산보도 시킨다. 그러다가는 이렁저렁하여 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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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린애들의 소꼽놀이다. 달래로 머리 만든 어머니도 있고,옥수수 수염으로 머리를 만든 처녀도 있고, 수수깡이를 꺾어 수염을 그려 넣은 아버지도 있어서 이 자리로 옮겨 놓고 저 자리로 치워 놓는 어린애들의 소꼽놀이와 다른 데가 어디랴. 이것을 쓰느라고 애를 쓰고, 이것을 인쇄하고 책 만드느라고 힘들이고, 이것을 읽으며 울고 불고 하는 것이 마치 어린애들이 소꼽놀이를 벌여 놓고 이것을 잡수세요, 저것 마시세요, 뜨겁지 않아요? 하는 것과 다름없이 보여서 어떤 때는 스스로 정 떨어지는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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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피곤한 탓일까, 건강이 쇠한 탓일까.젊은 남녀가 연애를 하고 울고불고 다투고 속살거리고 하는 것은 더욱 우습게 보이고 그것을 읽고 感淚[감루]를 흘리며 혹은 분개하고 혹은 기뻐하는 것은 그러는 사람이 가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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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이 이렇게 변했는지라 전연 공상에서 나온 작품은 손을 대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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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부터가 연애소설은 쓰지 않았고 부득이 써야만 될 경우에도 할 수 있는껏 달콤한 공상적 전개는 피하여 왔지만, 심경이 이렇게 된 뒤로는 더우기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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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에 나서「부활」을 쓴 톨스토이를 생각할 때는 그 불로건장을 부러워하기보다 80까지 치기가 있는 것을 동정하고 싶다. 무론 「부활」의 전 목적이 치기에 있는 바는 아니겠지만 스스로 쑥스러워서 그런 소리는 차마 써지질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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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 조로인지도 모른다. 지금 겨우 40을 넘어선 몸으로서 웬만한 사람 같으면 계집을 뒤쫓아 다니기에 여념이 없을 나이에 벌써부터 마음속에는 노인이 들어앉아 있으니 조로를 지나쳐서 불구에 가깝다고 일컬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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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심경을 정직히 고백하자면 이상과 같다. 그리고 톨스토이와 같이 늙을 줄 모르는 심경을 부러워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간간 해보고 그 필요도 느끼지 않는 바 아니지만 이 소년 늙은이의 병적 심경은 제 마음과는 반대로 그렇게 생각먹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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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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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에 흔히 역사소설을 쓴다. 이것은 전혀 공상의 인물로 하여금 연애하고 울고불고 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 있다. 진실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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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사소설에 있어서도 '역사에 있는 사실' 그대로를 단지 묘사 형식으로 늘어놓는데 불과한 역사의 되풀이는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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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는 거지반이 곡필이 많다.그것을 상고하여 곡필로 된 듯한 데를 다시 들추어 내어서 진실을 찾아 보려는 데 비로소 흥미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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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사는 찾을 바이 없지만 신라초로 볼지라도 야사인「三國遺事[삼국유사]」와 金富軾[김부식]의「三國史記[삼국사기]」를 대조하면 신라 건국의 연대가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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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로 보아도 고구려의 건국이 신라보다 먼저이다. 그런데 신라 羅人[나인]인 김부식은 신라 건국을 고구려보다 먼저 되게 하기 위하여 계림 전설로 신라 초년을 잡아 麗[여]보다 수년 앞서게 하였고, 백제 회복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영웅 麉萱[견훤]을(신라의 원수인 까닭으로) 雄奸[간웅]으로 만들었고, 고려 말년의 역사는 이조에서 죄 다시 꾸몄으며 燕山[연산], 光海[광해] 등 폐왕의 史實[사실]은 폐왕한 신하들이 개조하였고 단종 세조 양조사는 南孝溫[남효온] 등이 개조하였고, 당쟁과 정쟁 등으로 왕이나 조정이 바뀌면 正實[정실]이 사책에 오른 적은 한 대도 없었으니 相違[상위]되는 데를 적출하여 소설화하는 것이 근년 역사소설에 위주하는 큰 원인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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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의 권한은 정사에 적힌 이상은 못 나아가지만 소설가는 자기의 주관에 따라서 사상에 간웅으로 된 사람을 영웅화할 수도 있고 역사 도덕으로 비난을 받을 사람도 찬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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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영웅을 간물로 취급하거나 사상의 충효를 낮추는 것은 법률로 금한 바니 못한다 할지라도 역사의 곡필로 억울한 욕을 본 사람의 원을 편다든가 하는 일은 행할 수도 있거니와 또한 근자에 그런 방면으로 취미가 돌아서 울고불고 하는 인조 비극보다 훨씬 더 소설화할 흥미가 있고 소설이 보여 주어야 할 인생의 一畫[일획]도 이런 곳에 더 많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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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독자 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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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쓰는 이야기는 역사에 없는 바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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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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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쓰는 소리는 역사와 반대다. 역사를 잘못 읽든가 똑똑히 못 읽든가 한 모양이다. 정신 차려서 잘 참고하여 쓰는 것이 옳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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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충고를 받는 일도 있지만 이것을 알고 쓰는 바라 대답할 필요도 없거니와 어떤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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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야담만을 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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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책망하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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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모든 것이 혼돈 천지인 조선에서는 옛날 이야기면 덮어 놓고 야담으로 아는 분도 꽤 있는 모양이다. 역사소설과 야담이라는 것은 전연 성질이 다른 것인데 그 점을 구별치 않고, 옛날을 쓰니 즉 야담을 쓰는 것이라 속단하는 페풍이 있다. 타락했다고 꾸중하는 이도 있고, 유끼 쯔마루(行き詰まる─길이 막히다) 했다고 타매하는 이도 있고, 궁했다고 비웃는 이도 있는 등 역사소설을 흔히 쓰는 데 대해서 가지각색의 폄이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은 타락했다고 낙심도 안하고 업 막혔다고 안타까와하지도 않고 궁했다고 탄식도 안하고 그저 나 갈 길을 갈 뿐이다. 내 심경이 언제 또 다시 변하면 울고부는 소설을 쓸 날이 또 올지도 그것은 예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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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으로 붓대를 놓은 지 만 2년─ 행여 좀 차도가 있을까 하여 반 년 남아를 기다리다가 종내 차도를 보지 못하고 「停筆錄[정필록]」의 一文[일문]을 초한 뒤에 아주 붓대를 던진 지 어언간 1년 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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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절망 상태였다. 다시 붓을 잡을 가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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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겨울에 중환을 앓았다. 때는 마침 日支事變[일지사고] 최고조에 달하여 漢口[한구], 廣東[광동] 모두 우리 손에 들어오고 국민의 애국세는 그칠 바 모르게 올라가서 황군에게 대한 감사의 염과 격려의 誠[성]이 激又激[격우격]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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起動[기동]할 수 없는 중병에 누워서 매일 신문을 보면서 여기 微助[미조]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이 여기고 자탄하기 마지않았다. 더우기 각 단체각 층이 앞을 다투면서 위문이라 헌금이라 할 때에 문사 층에서 잠자코 있는 것이 부끄럽기 한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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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13년)에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보행은 아직 불능하지만 3,4분간은 起坐[기좌]할 수가 있게쯤 되었다. 즉시로 총독부로 택시로 달려갔다. 學務局[학모국](문사 감독 관청)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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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의 내락만 있으면 문사 가운데서 대표 몇 사람을 뽑아서 현지에 보내서 황군 노고와 忠勇[충용]의 實情[실정]을 조사하여 조선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다. 영어를 모르는 다대수 민중은 간단한 신문 보도 이상의 실정은 모르는 배니 이 불철저를 해소하고 싶다.─이렇게 원하였더니 당국(당국이라기보다 그때 응대한 개인의 의사겠지만)에서는 대답이, 지금 위문이라 시찰이라 너무 많이 가므로 현지 군에서도 매우 귀찮게 알고 또 그 보호의 폐가하도 군 행동에 방해되어 가급적 막는 형편이다. 전일에도 모 실업자 단체가 거절당한 일이 있으니 다시 생각하여 중지하도록 하라. 또한 그대네가 재정상 여유 있는 사람들이 못 되니 위문품도 빈약하여 도리어 그대네의 직업상 까미시바이(かみしばる─紙芝居[지초거]─그림연극) 같은 것을 창작하면 어떠냐. 매우 효과적인 것이고 이것이면 후원도 하고 재정상 보조까지라도 할 수 있다. 그대네가 수인쯤 간댔자 浪花節[낭화절]이나 漫方[만방]에 능한 사람이 있단 말도 못 들었고 다수인이 가려면 경비가 태과하려니 그다지 찬성할 바가 아니며 좀 실례일지 모르나 놀러 가는 것이나 비슷하니 우리로서도 찬성키 힘들다. 까미시바이 창작에나 어디 유의하여 보자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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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리의 생각과는 어긋나는 대답이므로 그냥 물러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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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상태가 아직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었지만 이 일 때문에 무리하게 일어났었는지라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병석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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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락이 있으면 그때 비로소 구체적으로 방침도 세우고 인선도 의논하려고 단 2· 3의 우인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이 뜻을 전한 일이 없는지라 이 문제는 유야무야중에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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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약 2개월 뒤에 이 문제는 갑자기 다시 일어났다. 2· 3문사가 이 생각이 나서 경무국 도서과로 가서 그 의향을 말하였더니 도서과에서는 이전의 학무국과 달리 대단히 찬성을 하여 도서과에서 적극적으로 알선을 하고 군 당국에도 도서과에서 주선을 하여주마 하고 어서 구체적으로 의논을 해서 결정을 지으라고 재촉까지 하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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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일단 꺼졌던 불은 여기서 再燃[재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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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표면화하였다. 인제는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가 없을이만치 문제는 결정적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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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본시의 계획은 中支[중지]로 들어가서 漢口[한구]까지 갔다가 도로 돌아서서 濟南[제남], 山西省[산서생], 天津[천진], 北京[북경]으로 하여 만주를 돌아 귀성하려던 것이었다. 건강 문제로 단 1일이라도 의사 없이는 못 지내는 나는 무론 안 갈 예정이었다.
 
42
그런데 군에서는 中支[중지]는 그만두고 北支[북지]만 運城[운성]까지 다녀오라 하고 내가 中止[중지]하겠다는 것은 군과 총독부에서 다 불허하여서 하릴없이 가기로 하였다. 전장에서는 불행의 율이 적으나 내 건강 상태로는 무사하기가 난망이었다. 남보기에는 알기 힘들지마는 내 신경 상태는 좀 생활의 급변이 생기면 보전키 힘들 지경이었다. 후사가 근심되어 생활 보험에 가입하고 가족 몰래 재산 정리까지 하여두었다 하면 내 건강을 짐작할 것이다.
 
43
北京[북경]으로 石家莊[석가장]으로 太原[태인], 臨分[임분], 運城[운성]에 이르기까지 가기는 무사히 갔다. 그러나 그 回程[회정] 제1일에 종내 혼도하였다. 북경으로 돌아오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없다. 그저 이 문화 미개한 땅에서 병들었으니 죽었구나 하는 생각과 친구들이 부축해 주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북경서 제2차의 혼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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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서 경성까지의 만리길을 하도 몸 아프고 정신 없어 끝끝내 눈을 감고 왔다. 죽지 않고 돌아온 것이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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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하여 수일 후 요양차로 있던 온천에 갔다. 대체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어졌다. '야마히오모시(ヤマヒオモシ一病重)' 라고 집에 전보를 치려고 글자를 생각다 못해서 야(ヤ)자 마(マ)자 무슨 자고 한 자도 생각나지 않아 여관 주인에게 써 달라고 부탁을 하고 우리 집 번지가 종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여관의 客譜[객보]를 상고케하여 간신히 전보를 쳤다. 어려운 자보다 쉬운 자와 수자가 더 생각 안나고 계산 등은 하나도 할 수 없고 일력을 하루에 십여 차례를 보아도 며칟날인지 기억이 안 되고 간단한 글자는 가나(カナ)인지 한글인지 영문인지까지도 알 수 없고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한참을 수작하고서야 비로소 알아 내고 머리가 어찌 둔해졌는지 상대자가 보통 속도로 이야기할지라도 내 머리는 그 말을 따라가지 못하여 간혹 가다가 한마디씩을 겨우 이해하고 옷 입은 순서도 통 잊어서 다시 벗고, 다시 입고 수차를 이렇게 하여서야 간신히 옷을 입고 바지 즈봉쯔리(ヅボンツリ - 즈봉 멜빵)를 한 번 떼었다가 어떻게 달아야 되는지 몰라서 진일을 바지를 벗고 지낸 일도 있고 담배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성냥만 긋고 그 뒤의 할 일을 몰라서 쩔쩔 메다가 손을 데기 부지기수요, 무엇을 생각하려면 앞이 딱 막혀서 생각나지 않고 지난 일은 방금 지난 것도 벌써 잊어버려서 순서며 체계를 찾을 수가 없고, 음식을 대하여도 어떤 찬구를 가지고 어떻게 하여야 옳게 되는지 알 수 없어서 남 보는 앞에서는(과자 등 손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것 외에는) 손을 대지를 않고 더우기 공중식당 같은 데는 절대로 안 들어가고 사실 度[도]할 수 없는 바보였다. 어느 여름날 빙수가게 앞에 큰 휘장이 걸리고 거기는 청색으로 무슨 글자가 두 자 쓰인 것이 보였는게 상식으로 보아 '빙수'이겠지만 아무리 보아도 '빙수'는 아니요 생각하고 생각하여 보니 윗자는 '얼'자이므로 아랫자는 '음'이리라 하고 다시 보니 과연 '음'자로서 두 자 합하여 얼음이었다.
 
46
40년을 글로 살아 온 사람이 지금 이 꼴이 되고 보니 참으로 한심하고 민망하였다. 도저히 회복될 날이 있음직도 하지 않았다.
 
47
소설은 '쓰는 것'이냐 '짓는 것'이냐.
 
48
이상의 문제는 '소설'이라는 것이 '문학'이라는 자리의 한구석을 차지하게 될 때부터 논의된 것으로서 스티븐슨 같은 사람은,
 
 
49
대체 소설은 그 첫머리를 쓸 때는 내가 내 뜻으로 쓰기 시작하지만 첫머리만 시작해 놓으면 그 뒤는 소설 중의 인물이 홱 뛰쳐나와서 작가인 내 지휘에 복종치 않고 제 자유로 행동하여 작자인 나는 다만 그들(소설 중의 인물)의 언행을 전 열성과 전 속력으로 따라다니며 필기하는 데 지나지 못한다. 즉 그때는 벌써 그들은 내 작중 인물이 아니고 제각기 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된다.
 
 
50
고 하여서 소설이란 것은 그 첫머리를 작자가 짓는 것이지만 그 첫머리만 지나면 짓는 것이 아니고 '쓰는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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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진리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요, 오히려 이쯤 말씀으로는 미흡하지 않을까 ‘소설 중의 인물의 언행을 전 속력으로 따라다니며 필기한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리 전 속력으로도 따르지 못하지 않을까 한다. 작자의 붓은 '이 장면을 쓰는데 소설 중의 인물은 言[언]하고 行[행]하고, 또 언하고 행하고 하여, 작자의 기록보다는 백 보 천 보 전방에 가 있었기 때문에 작자는 현재 작중 인물이 가 있는 곳과 소설 필기상의 도달처와의 중간 이하로 떨어져서 그 양자를 合處[합처]케 하고 연결케 하기 위하여 고심치 않을까.
 
52
소설을 써 나아가다가 붓대를 멈추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전도를 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머리 가운데의 인물이 벌써 통과하여 멀리 앞서 가 있는 그 現在所[재현소]와 붓대가 지금 겨우 따라간 곳과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다시 머리를 逆廻程[역회정]시켜서 양자의 중간을 메우는데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거기 무용한 시간도 걸리는 것이다. 역로를 더듬으면서 거기 소설로서의 무리가 있든가 모순이나 불합리가 있으면 그때에 그것을 다듬고 손질을 하는 것이다.
 
53
그런지라 좀체 휴지가 생기지 않는다. 벌써 한 번 다듬고 손질한 것이라 두번째 버릴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
 
54
소설을 쓰렬 때는 그 소설의 진행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미리 생각을 하였다가는 그 생각에 지배되어 소설의 진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자연스럽지 않아 무리히 언하고 행하여 부자연한 자취를 남기게 된다. 소설중의 인물로 하여금 자유로 언행케 하여야 한다. 이렇던 것이 연전 大炳[대병]에 한때 두뇌의 건강과 건전을 죄 잃어버렸다.
 
55
재기불능의 소리가 우인 중에도 높았거니와 나 자신으로도 재기를 예상치 않았다. 이것으로도 한때 몹시 고심하고 번뇌하였다. 글자까지 통 잊었는지라 문장이 생각날 리 없고 더우기 창작 등을 예상도 할 수 없었다.
 
56
병이 平癒[평유]에 가까와 비로소 誠筆[성필]로 몇 매의 글을 만들어 무난히 성공했을 때의 驚喜[경희]는 그냥 잊히지 않는 바이다. 아직도 머리의 속력은 옛날을 따르지 못한다. 머리가 붓보다 천백 보를 앞서 달아가던 것이 지금은 간신히 양자 동행하는 쯤이다.
 
57
그러나 나날이 회복되어 가는 것이니 멀지 않은 장래에는 옛날은 넉넉히 따를 줄로 믿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58
내게는 커다란 채무가 있다. 즉 文債[문채]다. 재작년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北支[북지]까지 다녀온 것은 단지 단순한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한 위문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59
다녀와서 거기서 본 바─ 星軍[성군]의 무쌍한 忠勇[충용]과 헌신적 고로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듣고 그것을(귀성 후에) 문으로 만들어서 조선 동포에게 보고하는 것─ 이것이 임무였다. 이것은 의무감에서 행하는 바도 아니요, 우리의 진심의 적성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60
그러나 그때 귀성 도중 두뇌의 활동성을 잃어버리고 두뇌의 작용력을 잃어버린 나로서는 생각은 간절하면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61
이것으로 퍽 번민하였다. 귀향 10개월 후에 간신히 쉬운 글자를 이해하게 쯤 되어서 스스로 뒤가 달음을 참지 못하여 군으로 찾아가서 "전일의 기억은 죄 잃었으니 다시 한번 현지 관찰을 하고 싶다"고 통하였더니 군에서는 그런 염려는 하지 말라 그런 근심을 하는 것은 더욱 몸에 해로우니 그 일은 다 잊고 어서 건강 회복이나 꾀하라 위로하여 준다. 그래서 다시 도서과로 갔더니 거기서도 매일반으로 내 건강을 퍽 걱정해 주고 다른 생각은 일체 멈추고 건강 회복에나 위주하라 한다.
 
62
그러나 일자가 지나면서 건강도 日復日[일부일] 快方[쾌방]에 향하는 것과 동시에 그 문채는 다시 차차 무거워지는 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63
시필 수삼 회, 인제는 넉넉히 집필의 자신이 생겼으니 오래 묵은 채무를 인제 이행하여야겠다.
 
64
그러나 그때와 온갖 사정이 전혀 달라진 지금에 있어서 그 날의 기억만을 되풀이한다면 이것은 한 개 희극일 것이다.
 
65
그때 실지로 보고 듣고 한 그 기억을 기초삼아서 한 개의 새로운 창작을 산출하여야 할 것이다.
 
66
이것은 지난의 사이다. 단지 견문 한 번에다가 약간 문식을 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새로운 창작을 한다 하는 것은 손쉽게 될 일이 아니다. 반도에 태어난 불행으로 군대 생활이며, 군인 심리며, 군인 처사 등에는 전연 무지이다. 창작(단순한 기행이나 견문기가 아니고)인 이상은 이 점도 알아야 할 것이다. 상상만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67
장차 오랜 채무를 이행하렴에 있어서 이 점이 적지 않게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경건한 마음과 진실한 태도로서 作[작]에 임하면 어떻게든 될 듯 싶다. 23,4년간 문필 생활은 이런 일에서 비록 자신이 실지로 경험하고 겪고 한 일이 아닐지라도 어떤 정도까지는 그다지 난점은 보이지 않을─그런 것을 저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68
문학에는 '진실한 태도'라는 것이 가장 요건이다. 진실한 태도로 작에 임한다면 약간한 흉이 있을지라도 용서받을 것으로 믿는다.
 
69
붓을 던진 지 만 2년여─ 시필 數枚[수매]로서 다시 문필의 자신을 얻고 그 자신으로 오랜 채무를 벗게 된다면 이 위에 다행은 다시 없을 것이다. 다시 붓을 놀리자, 職城[직성]으로 이외에는 봉공할 만한 다른 기능이 없는 나는 이 단 한 가지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껏 살리자─ 이것이 현재의 심경이다.
 
 
70
(〈每日新報[매일신보]〉, 1941.3.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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