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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가을이면 도토리나무엘 올라가서 도토리 열매를 따먹고, 배야 터지거나 말거나 실컷 따 먹고 또 따먹고, 그러면서 간간이 한번씩 땅으로 투욱 떨어져 보고 떨어져 보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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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마침내 살이 질 대로 져서 암만 떨어져 보아도 아픈 줄을 모를 정도가 되면, 그제야 굴속으로 깊이 들어가 삼동 내내 발바닥을 핥으면서 그 한겨울을 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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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미련한 놈이지만, 그것 한가지만은 대단히 부러운 재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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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이렇게 철 좋은 시절만 살고서 가을이거들랑 도토리 열매나 배불리 따 먹으면서 가끔 땅 위로 떨어져 보기나 하면서 살을 지어 가지고는 겨울 한철일라컨 추위 모를 굴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심심풀이로 발바닥이나 핥고…… 그게 인간으로 치면 발바닥을 긁는 요량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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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이윽고 봄이 오게 되면 기지개나 불끈 켜면서 도로 기어나오고…… 참으로 팔자 하고는 곰의 팔자가 천하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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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이건 나 혼자를 두고 말인데) 어떻게 곰처럼 혹은 또 개구리처럼 아주 입을 봉해버리고서 겨울 한철을 동면을 하는 재주를 부리는 재주는 없는지, 엄동의 무서운 발자국 소리가 차차로 가까이 들림을 따라 요새는 그게 실없이 연구거리가 되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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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올 여름이 몹시 더웠으니 겨울은 몹시 추우리라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해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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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내게는 세상 무거운 게 겨울이요 추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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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살아보지를 못한 탓인지 풍랑의 무서움이 어떤가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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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서 나지 못한 덕에 동물원엘 가면 호랑이가 테리어만큼 만만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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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이 들입다 어흥! 소리를 치면서 주홍 같은 입을 벌리고 달려들어 인간을 해하다니, 괜한 거짓말…… 아, 그러거들랑 발길로 칵 걷어차든지 몽둥이로 한대 갈기면 고만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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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여지껏 병화(兵禍)를 겪은 일이 없고 더구나 근대전에 있어서 후방의 비전투원에게 가장 전율을 준다는 공습도 천행으로 런던이나 파리의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시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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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물론, 무엇이냐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꼭 그 격이지만, 아뭏든지 그래서 시방 깐으로는 천하에 무서운 건 추위요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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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시작하여 섣달 정월 이월 그리고 삼월까지는 추위한테 몰려 옴짝 못하고서 달달 떨어야 할 이 삼동이, 바라다보기만 해도 큰 준령이 앞을 막는 듯 기가 딱 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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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마 금년 겨울을 죽는 시늉하면서 가까스로 치르고 나면 명년엔 또 명년 겨울이 있고, 내명년엔 내명년 겨울…… 내내명년엔 내내명년 겨울…… 아아! 생각하면 머리가 득득 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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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두고 해마다 한번씩 의무처럼 그 곡경을 치르느니 차라리 어디 사시 온대로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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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동 남 서 삼면과 지붕을 자외선 초자(硝子)로 인 집을 한 채 널찍하게 지어놓고 그 속에서 겨울을 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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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도저도 못할 형세니 궁리한다는 게 동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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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을 안한다는 건 인류의 지행(至幸)일는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아무래도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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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39.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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