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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9.6
김동인
1
대동강
 
 
2
그대는 길신의 지팡이를 끌고 여행에 피곤한 다리를 평양에 쉬어 본 적이 있는지? 그대가 만약 길신의 발을 평양에 들여 놓을 기회가 있으면 그대는 피곤한 몸을 잠시 객줏집에서 쉰뒤에 지팡이를 끌고 강변의 큰길로써 모란봉에 올라가 보라. 한 걸음 두 걸음 그대의 발이 구시가의 중앙까지 이르면 그 때에 문득 그대의 오른손 쪽에는 고색(古色)이 창연한 대동문(大同門)이 나타나리라. 그리고 그 문통 안에서는 서로 알고 모르는 허다한 사람들이 가슴을 젖혀 헤치고 부채로써 가슴의 땀을 날리며, 세상의 온갖 군잡스럽고 시끄러운 문제를 잊은 듯이 한가로이 앉아서 태곳적 이야기에 세월가는 줄 모르는 것을 발견하리라.
 
3
그 곳을 지나 그냥 지팡이를 끌고 몇 걸음만 더 가면 그대의 앞에는 문득 연광정(鍊光亭)이 솟아 있으리니, 옛적부터 많은 시인(詩人) 가객(歌客)들이 수없는 시와 노래를 얻은 곳이 이 정자다. 그리고 연광정 아래는 이 세상의 온갖 계급 관념을 무시하듯이 점잖은 사람이며, 상스런 사람이며, 늙은이며, 젊은이가 서로 어깨를 걸고 앉아서 말없이 저편 아래로 흐르는 대동강 물만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4
그들의 눈을 따라 그대가 눈을 옮기어 그 사람들이 바라다보는 대동강을 내려다보면 그대들은 조그만 어선을 발견하겠지. 혹은 기다란 수상선(水上船)도 발견하겠지. 그러나 그밖에는 장청류(長淸流)의 대동강이 있을 따름이리라.
 
5
거기 기이(奇異)를 느낀 그대가 목청을 돋우어서 그들에게,
 
6
“공들은 무엇을 보는가?”
 
7
고 질문을 던질 것 같으면 그들은 머리를 돌리지도 않고 시끄러운 듯이 한 마디로 대답하리라.
 
8
“물을!”
 
9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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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공들의 부엌에라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물이 그렇듯 재미있는가?”
 
11
그대가 만약 두 번째의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비로소 처음으로 머리를 그대에게로 돌리리라. 그러고는 가장 경멸하는 눈초리를 잠시 그대의 위에 부었다가 말없이 머리를 물 쪽으로 돌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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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커다란 호기심을 남겨 두고 그대가 다시 지팡이를 끌고 오른손 쪽으로 대동강을 내려다보면서 청류벽(淸流壁)을 끼고 부벽루(浮碧樓)까지 올라가 거기서 다시 모란봉으로 ―또 돌아서면서 을밀대(乙密臺)로, 을밀대에서 기자묘(箕子墓) 송림(松林)으로, 현무문(玄武門)으로―우리의 없은 조상을 위하여 옷깃을 눈물로 적시며, 혹은 회고의 염(念)에 한숨을 지으며, 왕손(王孫)은 거불귀(去不歸)라는 옛날의 시(詩)를 통절히 느끼면서 돌아본 뒤에 다시 시가로 향하여 내려온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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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대가 호기심으로써 다시 연광정 앞의 아까의 그곳까지 발을 들여놓으면, 그대는 거기서 아까의 그 사람들이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자리의 한 걸음의 변동조차 없이 아까 그 모양대로 앉아서 역시 뜻없이 장청류의 대동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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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집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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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점심을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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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처자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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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그 평범한 ‘물의 흐름’에 왜 그다지 흥미를 가졌나?
 
18
여기 평양 사람의 심정이 있다. 여기서 평양 사람의 정서는 뛰놀고, 여기서 평양 사람의 공상은 비약하고, 여기서 평양 사람의 환몽은 약동하고, 여기서 평양 사람의 노래가 읊어지는 것이다.
 
19
그대가 만약 이러한 사정을 알 것 같으면, 그 염증 없이 장청류의 대동강만 내려다보고 집안도 잊고 처자도 잊고 주림도 잊고 앉아 있는 허다한 무리를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하기는 커녕 일종의 존경의 염까지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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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19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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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1930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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