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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六月)의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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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6
채만식
1
六月[6월]의 아침
 
 
2
모처럼 아침 산책을 하느라 막대를 끌고 나섰다.
 
3
밤을 샌 전등이 그대로 선하품을 자아낸다. 다섯시 반이길래 나만 부지런한 줄 알았더니 해가 벌써 한 뼘이나 솟았다. 장으로 묵이라도 팔러 가나보다.
 
4
머리에 광우리를 인 동리 여인의 걸음이 바쁘다.
 
5
서늑서늑할 만큼 아침 기운이 시원하고 맑다. 송도는 분지(盆地)라 공기가 침탁하다지만 아침만은 좋다.
 
6
밭 가운데로 길이 난 고구마밭의 고구마 덩굴이 인제는 제법 탐스럽게 엉켰다. 잎사귀에 이슬이 함빡 젖어 비맞은 뒤같이 윤기가 있다.
 
7
건너다보이는 언덕비탈은 잎과 가지가 한참 피어오르는 능금밭…… 서향이라 무긋한 음영이 드리웠다.
 
8
바라보고 올라가는 용수산 기슭으로는 아침 안개가 엷게 덮여 있다. 차차로 더워오던 날세가 오늘은 더럭 더 더우려나 보다.
 
9
‘가죽바우’의 우물은 가물어도 언제고 이렇게 곤곤히 넘쳐흐른다. 우물 깊이라야 반 길도 될락말락, 바닥의 바위 깔린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우물, 우물이라기보다는 산 밑에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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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우물 하나로 온 동리 수십 호가 다 먹고 우리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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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두던으로 맑게 넘쳐흐르는 양이, 그도 보는 기분 나름이겠지만, 낮이나 오후보다 아침에 보면 더 신선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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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둔 바가지로 한 바가지 휘젓고 퍼서 먹어본다. 단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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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원 둘레로 앵도나무에 새빨간 앵도가 대래대래 익었다. 곧 손이 가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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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결에 앵도가 이렇게 익었는고, 서울 같으면 성북동으로 앵도를 먹으러 갈 철이거니 싶어, 불현듯 서울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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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동산의 밤나무는 아직 입도 어리고 꽃도 피지 않았다. 새달이면 꽃이 피어 그 그윽한 향기를 풍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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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해, 이 밤나무동산에를 매일같이 밤꽃의 향기에 흘려 올라오곤 하던 게 아마 칠월이던 성부르다. 올에도 그때까지 머물러 있어 이 밤나무동산을 소요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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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면은 저기 아직 덩굴만 조금 뻗은 딸기도 새빨갛게 익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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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깎은 잔디밭에 들석죽이 종긋종긋, 붉은 꽃잎을 한 개씩 벌리고 섰다. 이쁜 꽃이다.
 
19
여기도 한 포기, 거기도 한 포기, 따라가면서 꺾는다. 책상의 꽃병에 꽂을 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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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들석죽을 꺾다가 보니 보랏빛 도라지도 갖에 피었다. 빛깔이 잘 얼린다.
 
21
그놈도 한 포기 또 한 포기 욕심 사납게 꺾어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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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동산을 지나고 나서는 솔밭, 송진 냄새가 정신이 들게 떠돈다. 솔새가 솔방울 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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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 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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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글게 지저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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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 등성이 너머로는 퍼져내려간 밭에 밤마다 장다리가 피어 홀란한 꽃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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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랭이는 배추장다리, 연보라는 무장다리……그리고 잎은 연두빛……
 
27
가까이 보이는 데서는, 흰놈 노랑놈 나비가 꽃과 분간할 수 없이 요란히 날고 있다.
 
28
고개 들면 한없이 퍼져나간 꽃밭이 영롱한 채색 안개 같다.
 
29
송도는 자래(自來)로 채종이 많이 나는 곳이라, 이때면 장다리꽃이 또한 버리기 아까운 풍치다.
 
30
장다리를 보고 어린 적의 고향을 생각한다.
 
31
“공자리밭에 영계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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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들을 한다. ‘공자리’는 장다리요, 영계는 병아리다. 삼사월 장다리가 파릇파릇 연두빛 잎이 필 때면, 정월 맏배로 깬 병아리가 거진 자라, 제법 우는 흉내를 낸다. 이때다. 봄 치고는 한참 좋은 때다. 진달래가 온통 산으로 가득 피는 남산으로 화전놀이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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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릇푸릇 봄배차 나부 오기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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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뻐꾹새가 그능히 울고 들어가는 앞산으로 등걸나무를 하러 간다. 내려올 때 보면, 수건으로 테머리를 한 머리를 철쭉꽃이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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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라야 그리 향수가 깃든 것도 아니지만 절기절기 근사한 풍경을 대하면 문득 소년 적의 그때 그때가 생각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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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코스대로 한 바퀴 돌아, 능금밭 옆을 지나면서 보니, 능금이 벌써 굵은 대추알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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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테리야가 괜히 심술이 나서 짖는다. 지난 겨울 아이들한테 바구니를 들려가지고 능금을 사러 갈라치면, 몹시 텃세를 하던 고놈이다. 아마 그때의 화풀이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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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밭 주인 애꾸눈이 영감이 강아지를 나무란다. 이웃이라서 돈어치보다 능금을 많이 주던 영감이다. 애꾸눈만은 안 부러워도, 이렇게 과원을 차려놓고 과원 가운데 정한 외딴집에서 한가로이 살아가는 살림은 언제 보아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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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여성』지의 최우(崔友)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원이란 마치 갓난애기 같아, 성미 급한 사람은 거천을 못 해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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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실패할값에 한번 해보고 싶다. 일을 얼마큼씩 해서 몸의 건강도 얻으려니와 생활의 방도도 거기다가 의탁을 하고, 그래가면서 유유자적 좋은 정력과 내키는 흥으로 붓을 들어, 팔기 위한 원고 말고 일년에 단 한 편이라도 자신있는 작품을 써보았으면 한다.
 
41
물론 내게는 턱도 안 닿는 공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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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반 길이나 훨씬 솟아, 넓은 마당에 곱게 깔린 클로버의 이슬방울을 오색으로 영롱하게 빛내준다.
 
43
인제는 녹음도 거의 짙은 포플라가 미풍을 받아 탐지게 흔들린다. 까치 한 마리가 앉았다가 까악까악 짖고 날아간다. 오늘은 무슨 반가운 일이 있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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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性[여성] 3권 6호, 1938. 6>
【원문】6월(六月)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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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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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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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