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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창만필(秋窓漫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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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0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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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窓漫筆[추창만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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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自行車[자행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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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土城)서 예성강(禮成江) 나루터 벽란도(碧瀾渡)까지 안팎 사십리 길을 자행거(自行車)란 물건으로써 능히 왕복하여 근래 희유(稀有)의(보다도 생후 처음인) 자랑거리를 한 가지 장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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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행거라고 하는 것을 처음 비로소 알기는 이십오륙 년 전 고향에서, 만석군의 집 젊은 ×주사가, 그놈 바퀴가 번쩍번쩍 방울이 때르릉 때르릉 군항 ⎯ 군산항 왕래 팔십 리를 나는 듯이 오락가락 실로 호화롭기, 시방이라면 캐딜락을 능가하고, 경이롭기 고담(古談)의 천리마 이상이던 그 자행거이었으니, 하마 전설 같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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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자행거는 읍‧촌을 물론하고 버썩 퍼져 상투 짠 촌 매갈이 주사도 그놈을 달려 읍 앞 신작로로 해서 군산 왕래를 하고 여남은 살짜리 내 연갑 아이들은 저의 집 것이고 남이 잠깐 길 옆에 뉘어논 놈이고(그때 자행거는 무엇에 기대 세우지 않으면 뉘어놓기지 시방 같은 받침쇠는 없었다) 그저 끌어내다가는 가라쟁이 새로 잘쏙잘쏙 타고 다녔고, 그중에서‘양근쇠’가 제일 잘 탔던 줄로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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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되 나는 겁이 나서 한번도 감히 자행거 배우기를 생심을 못했었고 그러나 속으로는 노상 미망이 져서 가끔 그놈을 타곤 길이고 산이고 들이고 날듯 달리는 꿈을 꾸다가 깨어 혼자 섭섭해했었고…… 마침내 자행거를 탈 줄 모르는 채 장성하여 삼십이 다 되려는 연전에야 개벽사에 있을 시절인데 급사 아이들의 심부름용을 실례해다가는 그 옆 천도교회 마당에서 몇번 타보곤 한 것이 비척비척 겨우 앞대를 꼲을 정도에 이르렀었다. 마악 그저 나가 동그라지고 사람을 떠받고 하기 마침맞은 무렵이라 만약 (밤 새는 줄 모르는 푼수로) 맛을 더 들여 가두진출을 꾀했다가는 망신거리가 십상이겠기에 그만 작파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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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정한 학습을 가지고 그런데 이십리길 왕복 사십 리의 내왕을 시험하다께 대체 어디서 솟은 용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요행 길 옆 논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흙망태가 되지도 않았고 안고 동그라져 무릎이나 팔 오금탱이를 깨지도 않았고 더우기 길가는 사람의 가라쟁이 새에다가 앞 타이어를 처박아 과실상해의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고 했으니, 그만하면“나도 자행거(自行車)를 타고 사십 리를 타행(他行)했노라”고 자랑을 해도 방안 장담은 아닐테고, 따라서 그새까지 나를 자행거도 타지 못한대서 일종 불구자 내지 이방인 취급을 하던 친구네들은, 채모 만세! 까지는 허겁스럽다지만 어허 기특한지고! 하고 칭찬은 한마 디씩 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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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깨달은 바는 자행거란 나와는 도저히 연분이 두텁지 못한 물건이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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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심장이 약한 체질인 탓인지는 몰라도 동행의 소엽(沼葉) 군이나 수영(洙永) 군은 이런 건 고개(坂路[판로]) 축에도 안 간다면서 별반 힘도 쓰지않고 슬슬 저어 올라가곤 하는데, 나는 사뭇 숨이 차고 다리가 하박거려 할 수 없이 내려서 끌고 올라가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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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고개를 내려가는 맛이란 대단히 유쾌한 것이어서, 내가 만일 진시황이나 네로이었다면 천하의 길을 죄다 내리쏠리게만 만들게 해놓고 평생을 자행거만 탔으리라고 동행의 두 친구더러 농담을 할 지경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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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말고서 그 다음 겁이 나서 안된 것은 저 앞에 행인이 가고 있을 때, 그중에도 여인네를 만나면 방금 들이받고 세 덩치가 한데 나가동그라지는 것만 같아 간이 콩만하여 내가 지레 피하느라고 허둥지둥, 그러잔 즉 자갈이고 달구지 바퀴에 팬 자리고 상관없이 달려야 하니 가뜩이나 아픈 엉덩이가 그만 질색하게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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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덕을 보고도 마지막, 이상 몇가지 불평을 말했더니, 소엽군은 나더러 너무 귀골이라고 하는 데는 꼼짝도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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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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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다른 우편물로 더불어 충남 ××군 ××면 ××리 ×××이라는 그야말로 부지하수인(不知何誰人)의 엽서 한 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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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필은 아니라도 과히 어리뜨지 않은 모필(毛筆) 글씬데 어디서 알았는지 내 거처의 동명과 번지가 틀림없이 정확하고 성명 아래로는‘선생양(樣)’이라고 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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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면의 사연은 (연필로 썼는데) 그대로 옮겨노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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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계(拜啓). 귀하의 고명(高名)은 이미 천하에 전파되었삽는데 이같이 조문학(朝文學)에 대한 일대쇄신을 주시는 것은 감하천만(感荷千萬)이오이다. 생(生)은 일상 소설을 탐독하옵는데 조선의 단어를 부지한 점이 많아 귀하께 질의하오니 허서(許恕)하시옵. 좌기 하답을 복망(伏望)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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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음, 아양진, 아담, 오로지, 서글푼, 고달푼, 애달푼, 처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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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시(詩)에 많이 보는데 사색에 힘쓰나 암암하여 미각(未覺)인 데 많사오니 상세한 해석을 하시어 엽서 일매에 기송(記送)하여 주셨으면 생의 숙망(宿望)을 풀까 하나이다. 끝으로 선생님 기체 안녕하심을 복기(伏祈)하옵고 차흘실경(此迄失敬)합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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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일편의 엽서일망정 아무려나 사신인데, 그것을 당자의 승낙도 받지 않고 이처럼 공개함이 부덕한 짓일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본의가 결코 남을 우롱하자는 것이 아니요, 이것을 한‘독자의 소리’로서 일반 문단동인에게 하나의 참고를 위하여 중계하려는 성의임을 당자 ×××부터라도 우선 양해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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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게(上揭) 사연문 가운데 맨끝에‘차흘실경’하나가 소학교를 갓 마친 요새 소년들의 문투(文套)라면 그렇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첫째 ‘에’와 ‘의’를 뒤바꾸어쓰지 않은 것이라든지‘을’과‘를’을 혼동치 않은 것 이라든지, 또 글씨가 나이 들어 보이고 문맥이 선후가 닿기는 닿고 하는 여러가지로 미루어 순전한 어린애의 짓으로 보아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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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설이고 시고 달게 읽다가 모르는 말에 다들려 혼자서 생각을 하다하다 못해 거기 누구 아무나 한 사람 문단인에게 ‘질의’를 할 정성이 있는 바엔 벌써 문제의 대상이기에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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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우리 문단 동인은 이‘수집은’ ‘아양진’등의 말조차 모르는 독자를 어떻게 처치를 해야 할 것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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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록 일상어가 된 말조차 모르는 사람이야 시나 소설이 언해(言解)가 아닌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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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거기에 동감이어서 그‘수집은’‘아양진’등속을 모르는 독자는 아직 시며 소설을 읽기 이전 사람으로 치지도외(置之度外)하는 수밖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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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번 돌이켜 생각하여 문학이 문학 본연의 가치 이외에 때와 경우를 따라선‘말’의 교사 노릇도 해야 할 부담을 가질 수 없지도 않는 것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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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 ×××와 같은 일군의 사람네가 시나 소설에서 말고는 아무데서고 말을 배울 ⎯ 훈련시킬 ⎯ 곳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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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들은 문학이라는‘말’의 교사에게까지‘말’가르쳐 줌을 거절당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후예에게 역시‘말’을 물려주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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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말’의 사멸은 걱정하지 만다고 하더라도‘말’이 사멸하자 그 말로 씌어진 문학이 읽는 사람을 가지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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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후세의 고고학자의 머리나 아프게 하자는 기념비문이 되지 않기 위해선 아무리 생각해도 부담이야 과하다고 하겠지만, 역시‘말’교사 노릇도 해야 할 것같이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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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39. 10. 5, 6>
【원문】추창만필(秋窓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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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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