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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貧) - 제1장(第一章) 제1과(第二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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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9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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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貧[빈]…第一章[제일장] 第二課[제이과]
2
─ 젖
 
 
 

1. 1

 
4
유모는 몸뚱이며 얼굴이 물크러질 듯 벌겋게 익어가지고 욕실(浴室) 밖으로 나왔다.
 
5
오정때가 갓 겨운 참이라 욕실 안에서는 두엇이나가 철썩거리면서 목간을 하고 있고, 옆 남탕에서는 관음 세는 소리가 외지게 넘어와서 저으기 한가롭다.
 
6
제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주인 아낙네가 유모가 열고 나오는 문소리에 정신이 들어 싱겁게 웃어보인다.
 
7
유모는 수건을 둘러 중동만 가리고 체경 앞에 넌지시 물러서서 거울 속으로 뚜렷이 떠오른 제 몸뚱이를 홈파듯이 바라다보고 있다.
 
8
담숭담숭 물방울이 앉은 몸뚱이가 살결이 고와 기름이 듣는 듯하다. 팔다리도 거기 알맞게 몽실몽실, 그리고 소담스런 젖가슴과 푸짐한 방둥이가 모두 흐벅지다.
 
9
그는 왼눈을 째긋이 감으면서 쌍스럽게 두꺼운 입술을 벌려 빙긋 웃는다.
 
10
‘혼자 보기는 아깝다.’
 
11
그는 느긋이 만족하면서도 한편 섭섭해서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이다.
 
12
그새 문 밖에서 살 때는 그런 것 저런 것 알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석달, 유모살이로 들어와서 사는 동안 자주 목간을 다니면서, 겉으로 옷이나 잘 입고 훤치르해 보이는 여자들이며 기생들이며의 말라빠진 몸뚱이나 앙상한 얼굴을 많이 보아나느라니까, 그는 저의 탐스런 몸뚱이에 차차로 자긍이 생겨
 
13
“나도 이만하면……”
 
14
누구만 못할 게 없다고 어렴풋한 즐거운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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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방도 요즘 매일같이 주인아씨를 찾아와서 노는 ‘이주사’의 심상치 않은 말치며 눈치가 문득 생각이 나고, 그러자 온몸에 그 손이 와서 스멀거리는 듯 근질근질 근지럽고 비비 꼬여지는 것 같았다.
 
16
얼마를 그러고 섰었는지 겨우 입안이 텁텁한 게 담배 생각이 나서 체경 앞을 물러설 때는 몸에 묻었던 물방울이 제풀로 다 말라버렸다.
 
17
그는 옷장 앞 옷광주리에서 마코곽을 찾아가지고 창 밑 걸상으로 가서 한대 붙여물고는, 뼛속까지 스미게 깊이 흡연을 들이마신다.
 
18
오래 목간을 한 끝에, 담배 기운이 몸에 폭신 배는데, 겸하여 열어젖힌 창문으로 첫여름의 흔흔한 간들바람이 자리 안 나게 불어들어 알몸뚱이를 어루만져 준다. 그는 미칠 듯 길거리로 뛰어라도 나가고 싶은 것을 참다못해 눈을 스르르 감다가 그대로 힘을 불끈 두 팔을 벌리고 허공을 그러안는다.
 
19
부지직 기운이 솟아나고 사지가 뒤틀려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20
애기가 잠이 깨어 울고, 주인아씨가 악살이 나서 팔팔 뛰는 모양이 잠시 머리에 스치다가 말고, 그는 그냥 퍼근히 걸상에 앉아 목간 후의 피로를 맘껏 쉬면서, 연해 ‘이주사’ 등을 생각해보느라고 해망을 부린다.
 
21
그는 유모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새롭고 재미있는 생활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한번 두번 세번 혹은 매일같이 되풀이를 하는 동안 차차 먹히고 싫증이 났다.
 
22
끼마다 먹는 고기와 양즙이 싫어나고, 마코보다는 더러 눈을 기어 뽑아먹는 주인아씨의 피종이나 해태가 더 맛이 있어가고, 주인아씨의 간드러진 노랫소리가 귀가 아프고, 비록 남의 것이나마 처음 볼 때에는 제 것인 듯이 푸짐해 보이던 방안짐들이 인제는 시들하고……
 
23
그러나 한가지, 목간탕에 다니는 것 ─ 목간을 하고 벗은 몸을 맘껏 내놓고 앉아 노곤한 몸을 쉬면서 같은 여자들에겔망정 자랑을 하고 하는 것만 은, 하면 할수록 더 좋아 날마다라도 하고 싶었지 조금도 물리지는 않았다.
 
24
더구나 목간탕은 누가 오든지 벗고 들어오는 알몸뚱이에 수건 한 개 그것 뿐이라, 그러니 그 속에서는 육집 좋고 얼굴 좋은 사람이 잘난 사람이요 뽐내는 판이다.
 
25
유모니 아씨니 해서 한팔 꺾일 일도 없고, 본견이니 인조견이니 하는 그런 안타까운 분별도 거리끼지 않을 수가 있는 곳이 목간탕 속이다.
 
26
이런 것으로 해서 유모는 더욱 목간탕 다니기가 좋았다.
 
27
마코 한 개를 대빨주리가 타들어오도록 다 피우고 나서, 유모는 가까스로 일어선다.
 
28
체경 앞에는 요전에 산, 골라잡아서 십전짜리 생철 목간대야가 놓여 있다. 그 속에는 눈먼 고양이가 조기대가리 아끼듯 아끼는 크림, 분, 연지 이런 것이 올망졸망 담겨 있다.
 
29
단장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30
숱이 짙어 부피 큰 쪽을 한번 더 치켜서 합성금 비녀로 꽂아놓고 크림으로 얼굴을 편다.
 
31
그 위에다 가루분을 약삭빨리 도닥도닥, 눈두겁과 볼에 연지칠, 동강난 루즈로 입술을 붉게……
 
32
이러한 화장법과 화장품들은 주인아씨의 수법(手法)과 아울러 쓰다 버린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화장품은 개중에는 주인아씨가 채 미처 다 쓰지도 않은 것을 그저 슬그머니 차지한 것도 있다.
 
33
단장을 한 얼굴은 좀 솜씨 있게 빚은 밀가루떡 쇰직하나 유모 자신은
 
34
“어따가 내놓아도……”
 
35
하는 흡족한 생각에 다시 한번 얼굴을 되들고 마슬러 본 뒤에 옷을 걷어입는다.
 
36
‘옷도 이 살결같이 보들보들한 비단옷이었으면.’
 
37
그는 주인아씨가 안팎으로 휘감는 비단옷을 시새워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2. 2

 
39
유모는 목간집 앞에 나서서 누구 지나가는 사내가 좀 치어다보아 주지 않나 하고 얼굴을 이리저리 두르다가 마침 길 건너편 반찬가게에서 바구니를 팔고 분댕이에 끼고 나오는 옆집 행랑어멈과 눈이 마주쳤다.
 
40
“또 목간허러 왔구려?”
 
41
“건 머유?”
 
42
둘이는 서로 알은체를 하면서, 마주 나와서 길 한복판으로 나란히 어께를 겯고 걸어간다.
 
43
“사뭇 훤허네! 어쩌믄 저렇게 좋게두 생겼을꾸?”
 
44
나이 사십에 이십 년 남의 행랑살이로 자식이 셋, 사내가 둘째라는 뻐드렁니 노마네가 같이 걸어가면서, 실상 유모의 얼굴은 자세 보지도 않고 입술 끝으로 추어넘기는 수작이다.
 
45
“누가 또 그런 소리 허랬나?”
 
46
유모는 짐짓 쌩똥거리나, 눈으로는 웃고 속은 더 좋아한다.
 
47
그러면서 그는 노마네가 으례껏 하는 행티로
 
48
“가만 있수. 내 인제 좋은 하이칼라상 하나, 응? ……”
 
49
하면서 눈을 찌끗찌끗하기를 기다렸으나, 원체 한길이라 그래도 조심을 하는 속인지 그 말은 나오지 않는다.
 
50
노마네는 그 대신
 
51
“무슨 목간을 그리 자주 다니우?”
 
52
하면서 시새워한다.
 
53
“자주가 무슨 자주? …… 이번은 엿새 만에 겨우 온걸……”
 
54
“제에기, 나는 일 년에 한번 얻어 허기가 고작인데……”
 
55
“아이, 그리구 어떻게 살어! …… 나는 사흘만 목간을 안허믄 몸이 사뭇 군시러서 못견디겠는걸……”
 
56
사흘만 목간을 안하면 군시러워 못견딘다는 말은 주인아씨한테서 배운 소리다.
 
57
유모가 처음 들어와서 목간을 자주 안하니까 주인아씨는 몸에서 냄새가 나고 그 냄새가 애기한테까지 밴다고 핀잔을 주던 끝에 한 말이다.
 
58
그때는 그 말이 고깝게 들렸으나, 차차 지나나가노라니까, 목간을 안해서 몸이 근시런 줄은 모르겠어도, 말을 그렇게 하면 아주 귀골다운 것 같아, 지금은 유모 제가 걸핏하면 써먹기까지 하던 것이다.
 
59
서로 주거니받거니 주인네 흉아작을 한바탕 늘어놓는 동안에 중학다리 개천가의 유모네 집 문 앞에 당도했다.
 
60
안에서는 아니나다를까 아이가 떼를 쓰고 우는 소리가 왁자 들려나온다. 유모는 그러나 심상히 돌아서서
 
61
“놀러오우?”
 
62
하고는 노마네의 대답까지 기다린다.
 
63
“손인지 발인지 들끓어와서 야단법석을 내서 틈이 나야지.”
 
64
노마네는 연신 고갯짓을 하면서 마땅찮게 제 집을 돌려다본다.
 
65
“벙뗑하지 머. 아이, 참.”
 
66
유모는 소리를 죽여 소곤소곤
 
67
“나 목간허구 오믄 권번(券番)에 간다구 그랬으니깐, 응? 좀 있다가 오우. 우리 같이 즘심 먹게.”
 
68
노마네는 얼른 반가와하다가
 
69
“글쎄……”
 
70
하면서 망설이더니
 
71
“그럼, 내 눈치 봐서 빠져나오께……”
 
72
하고 총총걸음을 쳐서 바로 웃집 대문으로 들어가다가 해뜩 돌아다본다. 유모는 그제서야
 
73
“이거 또, 재랄깨나 하겠구나!”
 
74
속으로 뜨윽해서 주춤주춤하다가 아주 바쁘게 돌아오는 듯이 안마당으로 쑥 들어선다.
 
75
주인아씨는 방금 볼때기가 터질 듯이 성이 나서, 마루에 가 퍼버리고 앉았고, 어린아이는 내동댕이를 친 채로 그 앞에 가 누워 발버둥을 치면서 울고 있다.
 
76
주인아씨는 항용 하는 버릇으로 아이가 자고 깨어 우니까, 나지도 않는 빈 젖을 물려 달래다가 그만 파깃증이 나서 홧김에 볼기짝을 찰칵찰칵 붙여 밀어던지고 있는 판이다. 그는 유모가 돌아온 줄 번연히 알면서 눈도 거듭떠보지 않고 있다가, 울던 아이가 놀라 울음을 뚝 그칠 만큼 곧은 목청으로 한마디
 
77
“무슨 놈의 행사야!”
 
78
소리를 치고는 독살이 올라 더 말은 하지 못하고 색색 숨만 가쁘게 쉰다.
 
79
그러자 꽥 지르는 소리에 잠깐 울음을 그쳤던 아이가 다시 와 우니까 냅다 발목을 잡아 젖히더니 입을 악물고 여지없이 볼기짝을 한번 따악 붙인다.
 
80
“뒤어져버려라, 이놈의 자식! 누가 생겨나랬더냐? …… 되지두 못헌 소갈머리……”
 
81
쏘아붙이고는 벌떡 일어서서 허리춤을 치켜 내놓았던 젖가슴을 다스린다.
 
82
유모는 주인아씨의 첫마디 뜯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어금니에 밤을 물고 건넌방 툇마루 앞에 가 돌아서서 젖은 수건만 만진다.
 
83
“에이! 아니꼬운 놈의 꼴 보기 싫여!”
 
84
주인아씨는 뇌꼴스럽다고 씹어뱉으면서 파라솔을 집어들고 마당으로 내려 선다.
 
85
“원, 아무리 남의 밥으루 살기루서니, 고따우루 얌체없는 보짱머리가 있더람? 내가 무어랬어, 그래! 그만침 떠먹듯이 일렀으면 한뼘 얼굴 대접을 해서라두 냉큼 다녀와야지…… 목간이 아니라 그 잘난 놈의 몸뚱이를 그래 깝질을 한벌 벳기나! …… 흥! 되지두 못헌 게 게다가 단장헙신다구 그렇게 더디 왔지 머…… 세상이 망헐랴니까 원 꼴 아닌 꼴을 다아 보구 살어…… 젖이 아니면 제 따우가 어디 가서 찬밥 한술이나 얻어먹어? 참 어림없지……”
 
86
나가다가는 돌아서고 돌아섰다가는 되돌아서고 하는 동안 마지막 말은 대문간에서 사라진다.
 
87
이 가시 같은 정가가 그러나 살 두꺼운 유모의 신경에는 그다지 아프게 찔리지 않았다. 그는 맨처음
 
88
“무슨 놈의 행사야!”
 
89
하는 한마디에 그저 타성적으로 볼때기를 처뜨리고 뚜하니 이짐을 부리기는 했으나 실상 성이 난 것은 아니다. 보나 안 보나 주인아씨가 그렇게 해 퍼붓고 나간 뒤에 바로 누구 말동무라도 있으면 그는 영락없이 해해하고 웃었을 것이다.
 
90
주인아씨가 멀리 갔음직해서 유모는 마루로 올라가서 세수대야며 수건이며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경대 앞에 가 주저앉아서 화장품을 이것저것 꺼내어 얼굴을 덧칠을 한다.
 
91
울고 누웠던 아이가 비로소 유모를 보고 엉금엉금 기어오면서 울먹소리로
 
92
“음마.”
 
93
부른다.
 
94
유모는 밉살스럽다고 한참이나 눈을 흘기다가
 
95
“배라먹을 아이! 왜 벌써 깨서 그 재랄발광이냐?”
 
96
하면서 아무렇게나 아이를 잡아 끌어다가 젖을 불쑥 물려준다.
 
97
아이는 아무 상관도 않고, 그저 울음을 뚝 그치면서 고사리 같은 두 주먹으로 젖통을 움켜다가 쭉쭉 빨아들인다.
 
98
“망헐 집 아이!”
 
99
유모는 볼기짝이라도 한번 훔쳐 갈기고 싶어 내내 구박이다.
 
100
아이는 오래 울던 끝이라, 가끔 학학 느끼면서 아직 눈물 어린 눈으로 말끄러미 ‘젖어미’를 올려다만 본다.
 
101
마침 젖살이 올라 흰떡으로 빚은 듯 볼때기 팔목 주먹 아랫도리 모두 부옇고 토실토실하다.
 
102
처음 넉 달 있다가 나간 유모에게는 그런 줄 저런 줄 모르더니, 이번 이 유모한테는 아이가 바싹 낯을 익혀가지고 여간만 따르는 게 아니다.
 
103
“왜 또, 큰소리가 났수?”
 
104
마침 옆집 노마네가 안대문으로 기웃이 들여다보더니, 유모 혼자 있는 것을 보고 활갯짓을 하면서 안마당으로 들어선다.
 
105
유모는 아니나다를까, 해해 웃다가
 
106
“이, 방정이 재수없이 잠이 깨애가지구는 재랄을 해서 그랬다우.”
 
107
하면서 아이한테 주먹질을 하다가
 
108
“손님네 갔수?”
 
109
“간 게 머유! 시방 한창 법석인걸……”
 
110
노마네는 마룻전에 걸터앉아 괜히 사방을 둘러본다. 어서 먹자던 점심이나 먹었으면 하는 속이다.
 
111
“같이 즘신 먹읍시다…… 먹을 건 없지만서두……”
 
112
하는 유모의 권념에
 
113
“안 먹으면 어때! 난 어여 가봐 주어야지.”
 
114
하면서도 일어서지는 않는다.
 
115
그는 유모가 ‘심부름 같지만’ 하면서 시키는 대로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상을 차려가지고 나온다.
 
116
고기 구워 둔 것은 아침에 군 것이라고 맛이 나갔대서, 곰국은 식어서 기름이 엉긴대서, 장조림은 너무 짜대서 유모는 모두 젓가락도 대지 않고 그 덕에 노마네만 목구멍의 때를 벗긴다.
 
117
유모는 젓가락으로 밥을 께지럭께지럭 먹는 체 마는 체
 
118
“무어, 밥 먹을 것이 있어야지! …… 저는 밤이나 낮이나 나가서 처먹는다구, 제 자식 젖 먹여 기르는 사람두 좀 생각해야지! 걸핏하면 꼬라지는 나서 생지랄은 허믄서……”
 
119
한바탕 강 건너 눈흘기기로 욕먹은 앙갚음을 심심풀이삼아 씹어놓는다.
 

 
 

3. 3

 
121
점심 뒤에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누워 잠이 들었던 유모는 남편이 가만가만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깨기는 했다. 그는 왜 또 찾아들어왔나 하고 아예 마땅치 못해서, 잠이 깨어서도 짐짓 눈을 뜨지 않고 한참이나 자는 체 누워 있다가 마지못해 푸스스 일어나 앉는다.
 
122
어느 모로 보든지 남편질을 하지 못하는 남편이겠다, 찾아온 것이 반갑지도 않은데, 영락없이 무어 또 돈이나 조르러 왔을시 분명한 거라, 그는 왔느냐는 말도 안하고 소 닭 보듯이 멀거니 치어다만 보다가 그나마 외면을 해버린다.
 
123
안해라는 유모에 비하면, 남편 최서방은 판판 약질이다. 어떻게 보면 글방 서방님이 아니면 포목전의 젊은 점원 같다.
 
124
그래서 막벌이 노동자지만, 함부로덤부로 아무 일이나 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사흘에 한번이나 나흘에 한번 일이 얻어걸리기가 어렵다.
 
125
그래도 더러는 밥을 먹는다. 그 ‘더러는 먹는 밥’ 이 태반은 누구의 덕이냐 하면, 안해가 유모로 들어와서 받는 월급 십오 원에서 십 원씩 떼어주는 그 돈 덕택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제네들의 어린 것이 젖을 뺏긴 그 덕이다
 
126
본시 나약하고 또 무른 성미에 가뜩이나 폴폴하고 기승스런 안해에게 얻어먹고 살다시피 하니, 그 앞에 나오면 자연 기가 죽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127
“아, 어린 것이!……”
 
128
최서방은 시방 안해가 제가 돈이라도 뜯으려 들어온 줄로 지레짐직을 하고서, 그렇게 찌르투룸해서 있는 눈치를 아는 터라, 어린 것이…… 하고 말을 운만 따다가, 우정 끝을 흐리던 것이다.
 
129
어린 것이라는 게, 난 지 석 달 만에 에미가 이 집으로 유모살이를 들어오느라고 시모와 남편의 손에서 길리는 제네들의 소생이다.
 
130
“어린 것이?”
 
131
유모는 막상 돈 이야기가 아니고, 불쑥 어린 것 말이 나오니까, 제사 싱겁던지 낯꽃이 조금 누그러진다.
 
132
“응…… 뒤어질라구 그러는지, 원……”
 
133
최서방은 속이야 어디로 갔던지, 안해의 비위를 거슬러주지 않으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남의 이야기하듯 뚱긴다. 유모 역시 남의 일처럼
 
134
“앓는다우?”
 
135
“응”
 
136
“제, 바래지두 않는 게 왜 생겨가지굴랑 앓기는 또…… ”
 
137
유모는 제풀에 심정이 나서 혀를 차다가
 
138
“언제버틈?”
 
139
“한 댓새 되나?”
 
140
“뒤어지믄 제 팔자 좋지 머…… 그대루 자라믄 별수 있을라구……”
 
141
최서방은 더 말을 못하고 끄덕끄덕 앉았다가
 
142
“인주어, 담배나 있거들랑 한 개……”
 
143
하면서 손을 내민다.
 
144
유모는 옆에 놓았던 마코곽에서 한 개 꺼내어 볼품 사납게 홱 던져준다. 최서방은 검다 희다 없이 집어서 피워 물고, 우두커니 한눈만 팔고 앉았다가 혼잣말같이
 
145
“그거 참…… 병원(病院)이라두 좀 데리구 가볼래두, 어제 그저끼 일두 못해설랑 삯이나 받은 게 있어야지!”
 
146
그러나 이렇게 말을 비추는 눈치를 저편이 모를 턱이 없다.
 
147
“별, 옘병헐 소리두 다아 듣겠네! 무슨 돈으루 벵원인지 급살인지를 데리구 가는구? 내버려두믄 제 명이 있으믄 살아나구, 그렇잖으믄 벵원 아니라 천하 없는 디를 데리고 가두 뒤어질걸…… 남은 속상해 죽겠구만, 귀인성없는 소리만 투웅퉁 허구 있어!”
 
148
최서방은 그만 질끔해서 덜미가 보이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담배만 빤다.
 
149
유모는 싹 돌아앉아서 한참이나 있다가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제 손그릇을 뒤져 십전짜리 한푼 오전짜리 한푼을 골라가지고는 도로 마루로 나오면서 남편에게 댕그랑 던져준다.
 
150
“옜수. 벵원인지 지랄인지 그런 소리는 내지두 말구, 그걸루 약이나 한 첩 지어다 먹이우…… 오전을랑 담배나 한 곽 사구……”
 
151
최서방은 구멍박이 두푼을 집어들고 머뭇머뭇하다가
 
152
“있거들랑 오전만 더 주어.”
 
153
하면서 뒤통수로 손이 올라간다.
 
154
“없어요! 내가 무슨 돈이 있다구 그러우? 내가 사주전을 맨드나? 어디 가서 서방질을 허나? 그저 육장 와서 입 벌인다는 게 돈, 돈 허니……”
 
155
“없거들랑 고만두어…… 난 이놈으루 십전은 약이나 한 첩 지쿠, 오전만 더 보태서 마암거리나 한줌 얻어가지구 갈려구 그랬지.”
 
156
유모는 통통거리고 도로 방으로 들어가더니, 오전 한푼을 더 찾아다 준다.
 
157
그의 손그릇에는 파라솔을 사려고 아껴둔 일원짜리 두 장과 잔돈이 몇 십전은 더 있었다. 최서방은 오전 한푼을 민망하게 더 받아들고
 
158
“쥔아씨헌테 말이나 허구서 잠깐 나와서 안 굽어다볼래여?”
 
159
실상은 이 말을 하자고 들어온 것이다.
 
160
“내가 나가본다구 죽을 게 살어나우?”
 
161
유모는 여전히 보풀스럽게 머쓰리고 나서
 
162
“한 달에 하루 다녀오는 것두 속으루는 찜찜해허는 걸, 무척 나가보라겠구먼.”
 
163
“참, 어디 갔어?”
 
164
인제 그만하면 볼일은 다 보았으니 일어서서 나갈 일이로되, 그러나 그냥 주저앉은 채 최서방은 히죽이 웃으면서 유모가 거처하는 건넌방을 넌지시 넘겨다본다.
 
165
그 눈치를 알아챈 유모는 저도 잠깐 속으로 망설이다가
 
166
“얼른 나가보기나 해요! 괜히……”
 
167
하고 쏘아버린다.
 
168
마루에서 딩굴던 아이는 다시 유모에게로 기어올라 부우연 젖통이를 하나는 물고 하나는 움키고 쭉쭉 들이빤다. 최서방은 제게서 안해를 또 죽어가는 자식에게서 기름진 젖꼭지를 뺏어간 이 조그만한 폭군에게 대해서 아무런 적개심도 가질 줄 모르고 그냥 돈 이십 전만 손에 쥔 채 돌아서 흐느적 흐느적 대문간으로 나간다.
 

 
 

4. 4

 
170
최서방 살고 있는 집 ─ 집이 아니라 세로 들어 있는 건넌방은 대낮이면서 앞으로 좁다란 문 하나밖에 나지 않은 방안은 눈 어둔 노인같이 침침하다.
 
171
방안에서는 노파가 꼬부라진 허리를 더욱 꼬부리고 앉아, 다 닳은 촛불같 이 목숨이 가물거리는 손자를 들여다보면 연신 한숨을 쉬곤 한다.
 
172
아이는 울 기운도 다 빠져, 대창같이 야윈 눈뚜껑을 감고서 가끔가다가 꽁꽁 앓는 소리만 낸다. 여섯 달이라면서 몸피와 키는 갖난아기만도 못하고, 주먹이며 팔다리는 야위다 못해 배배 꼬여 붙었다.
 
173
난 지 석 달 만인 지금부터 석 달 전에, 그 좋던 어미 젖을 놓치고 이내 고무 젖꼭지로 빨아먹은 것이라고는 좀 낫다는 것이 할머니가 쑨 미음이요, 그것조차 한 달에 태반은 동네 집에서 얻어온 밥물로 때워오곤 했었다.
 
174
해서 제 젖을 먹고 자랐으면 지금쯤 젖살이 복술복술 올라 ‘떡애기’ 라고 마침 탐스러울 판이요, 벙싯벙싯 웃기도 하고 설설 기어다니고 할테련만, 닷새 전 병이 날 때까지에 겨우 사람 되는 시늉이라고는 누운 자리에서 엎치는 재주 하나를 배운 것뿐이다.
 
175
그래도 할머니는 그것이 신통해서(어미 젖을 뺏기고, 그러나마 그렇게 살아서 자라기는 하는 것이 더욱 애처롭고 신통해서) 남의 할머니다운 애정으로 기뻐도 하고 귀애도 하고 해왔었다.
 
176
그러던 끝인데, 아이가 체를 했는지 달리 무슨 병이 났는지 몸이 불덩이같이 덥고 가시같이 보채면서, 고무 젖꼭지를 물려주어도 혓바닥으로 밀어내고 통히 먹지를 않았다.
 
177
할머니는 밤잠도 자지 못하고 밤낮으로 아픈 허리를 꼬부리고 안았다가 뉘었다가 하면서 그 복대기를 다 치르었다, 아비는 있대야 새벽 어둑하니 나가면 벌이야 있건 없건 저물게 돌아와서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자느라고, 그저 자식이 앓는 줄이나 알았지 성화는 먹지 않았었다.
 
178
그러는 동안에 아이는 울고 보채고 하던 것도 이제는 그나마 기운이 죄다 빠져, 목숨은 겨우 숨통에만 남은 듯이 빨딱빨딱 가늘게 가쁜 숨만 쉬고 있다.
 
179
“에구 가엾저라! 무엇하러 생겨났더냐!”
 
180
할머니는 질적거리는 눈에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넋두리를 내놓는다.
 
181
“가난이 원수지! 그 좋던 어미 젖을 뺏기굴랑, 쯧쯧…… 에구 불쌍헌지구. 이러다가 그냥 뒤어지면 어쩐단 말이냐! 어미 젖이나 한 모금 얻어먹구. 뒤어져두 뒤어져야 헐디. 그냥 뒤어지면 배가 고파서, 쯧쯧 배가 고파서 어쩐달 말이냐! 에구 불쌍헌지구.”
 
182
그새 몇 번이나 두고 안 듣던 아비를 졸러 어미를 데리러 보내는 놓고도 오리라고는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183
아이는 다시 부대끼느라고 손과 발을 가느다랗게 바르르 떨면서 모기소리만 하게 앵앵 사라질 듯 운다.
 
184
할머니는 밀려내린 누더기를 덮어주면서
 
185
“오오냐, 오냐.”
 
186
하고 다독거리나 그래도 울기만 한다. 행여 좀 빨아들일까 하고 식어빠진 밥물에 잠근 젖줄을 아이의 입에 대어주는 것이나, 아이는 입술만 조금 놀리다가 도로 밀어낸다.
 
187
“오오냐, 오냐. 인제 에미가 와서 네 젖 주지 잉…… 오오냐 오냐, 우지마라. 쯧쯧! 이왕 뒤어질려거든 부대깨지나 마라!”
 

 
 

5. 5

 
189
닷새가 지나간 음력 그믐날.
 
190
유모는 곱게(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는다) 단장을 하고 옷도 차곡차곡 해두었던 것을 싸악 갈아 입고 집에를 나갈 양으로 나섰다.
 
191
오늘은 월급날이요, 겸해서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타는 날인 것이다.
 
192
그는 오늘 아침에 받은 월급 십오 원에서 이 원은 전에 쓰다가 둔 이원과 한테 합쳐서 손그릇에 두어두고 십삼 원과 잔돈을 지니고 나섰다.
 
193
나서던 길로 맨먼저 들른 곳이 샌전 모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잡화점이다. 이 잡화점 진열창에 내놓은 파라솔 하나를 그는 십여일째 두고 눈총을 들여오던 참이다.
 
194
처음 그놈이 진열창에 내놓였을 때, 그는 대번 눈에 들어서 값을 물어보았다.
 
195
삼 원 이십 전.
 
196
일 원 한 장만 더 보탰으면, 그때 시재로 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주인아씨와 이웃에 말을 해보았으나 되지 않아서 오늘까지 속을 태우면서 미뤄왔던 것이다.
 
197
어느 날 밤 꿈에는 그 파라솔을 펴 받고 어떻게 된 셈인지 놀음에 불려서 인력거를 타고 종로 한복판을 지나가 보기까지 했었다.
 
198
그렇게 미망이 졌던 것인지라, 마침내 돈을 주고 사서 활짝 펴들고 상점 앞을 나서니 어떻게도 좋은지, 파라솔 그것처럼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199
그는 등 뒤에서 젊은 점원이 싱긋 웃으면서
 
200
“아주 썩 잘 얼리십니다! 그럴 듯헌데요!”
 
201
하고 실상은 조롱을 하는 것도 정말 칭찬으로 들리어 몸뚱이가 근질근질했다.
 
202
그는 그 길로 다시 ××백화점에 들렀다. 위아래층을 골고루 다니면서 많이 구경을 하고, 마침내 설탕 한 근을 사가지고 전차 안전지대로 나섰다.
 
203
그는 사람마다 다 저를 유심히 보아주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204
남편은 벌써 줄맞은 병정이 되어 오늘은 일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모는 애초에 오늘 집에를 나가지 말고 있다가 남편이 기다리다 못해 저녁때 어슬렁어슬렁 차자 들어오거든 돈이나 주어 보내고 말까 하고 두루 망설였었다. 구접지근한 그 동네 그 집에를 나가기가 싫던 것이다.
 
205
그러나 그래도 저으기 마음 한편 구석에 아직 조금만 걸리는 구석이 있어 마지못해 나오고 마는 제 자신이 차라리 이상했다.
 
206
시어머니는 마침 어디 나가고 없고, 남편이 어린 것 옆에 가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207
유모는 먼지가 묻고 구기고 할까봐서 우선 치마와 단속곳을 벗어 한편으로 개켜놓고야 어린 것을 그러안는다.
 
208
“어쩌믄 이것이 이 꼴이 됐수!”
 
209
가시에다가 양초를 살폿 입혔다고나 할는지, 오목가슴이 발딱거리지만 않으면 죽었는가 싶게 산 기운이 없어보이는 어린 것의 입에다가 흐뭇진 젖퉁이의 젖꼭지를 물려주면서 애꿎게 남편을 칭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디 다운 애정이 금시로 솟아나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210
“좀 낫다는 게 그 모양인걸……”
 
211
최서방은 안해의 눈치를, 오늘은 돈을 얼마나 내놀려노? 저녁은 지내고 들어가려나? 해서 슬금슬금 눈치를 살펴가면서 건성으로 대답이다.
 
212
미상불 어린 것은 제 어미 말대로, 제 명이 길어서 그랬든지 닷새 전에 죽을 고패를 넘기고는 차차 나아가는 참이었었다.─ 몸이 좀 식고 밥물도 빨아먹고 그리고 잠도 편히 자고.─
 
213
그래서 어미가 젖꼭지를 물려 줄 때도 마침 잠이 들었을 때라, 젖꼭지가 입술을 근질르니까 힘없이 눈을 뜨고 서투르게 두어 모금 빨더니, 제깐에도 이상했던지 잠시 입을 오물거리고 고갯짓을 하다가 비로소 다시 파고들어 빨아먹기 시작을 한다.
 
214
최서방은 안해의 비끄러맨 손수건을 풀어 담뱃곽을 꺼내다가 같이 싼 돈을 좌르르 흩뜨리고는 무렴해서 쩔쩔맨다. 일원짜리가 수북하고 또 잔돈도 오붓해서, 그런 중에도 그는 속으로 느긋했다.
 
215
유모는 잔돈을 젖혀놓고 일원짜리를 다 집어 준다.
 
216
“옜수. 이게 구 원이니 가지구 가서, 쌀 대두 한 말 허구 좁쌀 한 말만
 
217
사가지구 오우. 남구도 좀 사구…… 그리구 반찬거리랑 또 고기두 한 근만 사구……”
 
218
지천도 안 먹고 돈은 듬뿍 나오고 해서, 입이 헤벌어진 최서방은 돈을 받아들고 일어서서 아까 풀다가 무렴을 볼 뻔하던 안해의 마코곽에서 한 개 꺼내 붙여 문다.
 
219
“어머니는 어디 갔수?”
 
220
인제 생각난 것은 아니다, 지나는 말로 남편더러 물어보는 것이다.
 
221
“응. ”
 
222
“어디?”
 
223
“마암거리가 하나두 없어서…… 아마 동네 집으루 밥물을 얻으러 가신다구 나가셨지……”
 
224
“양식이 그렇게 한톨두 없었수?”
 
225
“응.”
 
226
최서방네 모자는 어제 아침에 좁쌀죽 한 보시기씩을 먹고 이내 굶으면서, 문안에서 나오기만 까맣게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다.
 
227
사온 양식으로 밥을 짓고, 고기로 반찬을 하고 해서 시어머니와 내외 세 식구가 석유등잔불 밑에 앉아서 저녁밥을 달게 먹고 있을 때 어린 것도 모처럼 얻어먹은 기름진 모유(母乳)에 취했는지 가끔 바르작거리면서 괴로와는 하나 색색 잠을 자고 있다.
 
228
그러고 그 뒤에 어린 것은 그런 대로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바스락 바스락 자라났다.
 
229
그 ‘뒷이야기’는 다음에 다른 데서 하기로 한다.
 
 
230
〈新東亞[신동아] 1936년 9월호 ; 채만식단편집, 1939〉
【원문】빈(貧) - 제1장(第一章) 제1과(第二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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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