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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유혹(誘惑)에 빠졌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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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6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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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誘惑[유혹]에 빠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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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으로 건너가던 해 첫겨울……이니 이럭저럭 벌써 십이삼 년이나 된 옛 이야기이다.(나도 벌써 옛이야기를 하는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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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일밖에 아니 되는 방학인지라 고향에 돌아올 생각은 먹지도 아니하고 시험이 끝난 시원한 마음에 하숙집 사조반 다다미방에 네활개를 내던지고 벌떡 드러누워 있는 판인데, 현관문 여는 소리와 함께 사이상을 찾더니 이어 주인노파가 전보 한 장을 올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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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관에 나가 있는 사람에게 전보같이 긴찮은 것은 없다. 더구나 연만한 노친을 둔 사람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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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얼핏 뜯어보니 불길한 예감은 다행이 비끄러지고 “여비 암만을 보냈으니 곧 다녀가라” 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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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짐을 챙겨가지고 동경역을 떠났는데 속 좁은 사람의 속같이 좁고 갑갑한 그 협궤(狹軌)열차에서 하관까지 이틀 밤 하루 낮을 시달리기란 지독한 감기 이상으로 고약한 것은 누구나 겪어본 사람이면 다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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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차가 그렇게 감기라면 내게는 관부연락선은 학질이다. 배 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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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까지 세 번 경험으로 보아 배를 타기 전에 음식을 먹으면 멀미가 더한 것을 안 때문에 일부러 저녁밥을 궐하고 연락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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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지나친 시장이 도리어 멀미를 더하게 한다는 것은 한 시간이 다 못해서 실지가 증명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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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깨끗하고 불이 밝고 듬성듬성 들어앉은 사람들도 모두 조용해 보이고 한 이등 뱃간 옆을 지나면서 몇번이나 칠 원 몇십 전을 더 내고 노리가에를 할 생각이 꿀안 같았으나 에라 눈 질끈 감고 여덟 시간만 고생하면(차라리 부산서 잠깐 동래온천엘 가서 잘 놀다라도 가지) 하고 그대로 삼등실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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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계를 삼등실로 내려서면 물큰하고 이 구멍이 왜 이리 좁으냐는 듯이 사뭇 밀려드는 그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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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부연락선을 몇번 타고 왕래하는 동안에 새 어휘 한 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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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취(貧臭) ── 가난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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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난함으로써 생기는 냄새니 가령 배의 삼등 하면 그것이 삼등인 때문에 기환작용(氣換作用)이 충분하지 못하고 값 헐한 페인트를 썼고 소제를 게을리하고 그리고 사람을 손님으로 탑재(搭載)시키는 것이 아니라 화물처럼 적재(積載)하고 그러한 때문에 그야말로 그 겉과 양이 다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는 굉장한 냄새가 발성이 되는 것이다. 만일 대륙 가까운 바다 위에 그러한 악성의 저기압이 발생이 되었다면 연전 대판의 붕수재 이상의 소동이 일어나지 아니하고는 못배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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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나는 위선 그 냄새에 반죽음은 되어가지고 그래도 이리저리 찾다가 겨우 한 자리를 얻어 몸을 가로 엎드렸다. 우주가 넓다고 말한 자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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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헌날을 많이 두고 바다는 마치 택일이나 한 듯이 이날 밤 풍랑이 높았다. 배가 물결 위로 쑤욱 올라갈 때는 그래도 괜찮다. 그러다가 그놈이 수렁(無底沼[무저소])을 디딘 것처럼 힘없이 쑤욱 내려갈 때에는 도무지 형언할 수조차 없이 고약스럽게 뒤집히는 속……사실 그 고약한 품이란 오장육부를 개복수술을 해서 따로 우편으로 부치고 빈 몸뚱이만 배에 올랐더라면 싶게 견디기가 어려웠다. 뱃속(腹中[복중])이 온통 좁은 목구멍으로 한꺼번에 넘어오려고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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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추한 말이지만 먹은 것이 없었으니까 아무리 욕질은 나도 소산(小産)은 없었다. 이 소산 즉 넘어오는 것이 없어서 남이 보기에나 또 당하는 나에게나 추한 것만은 면하였지만 그 대신 속이 빈 탓으로 멀미가 곱절이나 더했다는 것을 나는 그때까지도 깨닫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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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괴로와하니까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했던지 “토해보지요?” 하고 내가 돌아누운 등 뒤에서 알심을 부려주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 여자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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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아다보지도 아니하고 손만 홰홰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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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인단 드리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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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로소 돌아보았다. 하 젊은 여자다. 그리고 눈에 착 안기는 미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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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판에 미인이 하관이리요. 나는 고개를 도로 돌리면서 “고맙습니다. 좋습니다” 고 사절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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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까다 잇단노무또 도데모 다노시미니 나루노요네 하끼나사이.” (돌리고서 인단을 먹으면 한결 나아지는걸요. 네 돌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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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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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이렇게 성가시게 여기면서 이번에는 좀 까스랍게 손을 내저었다. 그랬더니 등 뒤에서 호호 웃는 소리가 들리면서 “고노각세이상 가와이 가시데이다까라 도데모 간지데네! 다닌노 도데노우르사가떼 하까리이데……(그 학생양반 예쁘장스럽게 생겼으면서 아주 고집불통이야! 누가 성가시게 구느라고 그러나바서……) 하고 악의 없이 쫑알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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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마사까 무나시쯔바노 이부꾸로 하끼다스오께니와……” (그렇다고 텅빈 위를 토해낼 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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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짜증이 나서 남의 호의는 젖혀놓고 이렇게 해부딪다가 문득 너무 지나침을 뉘우쳐 고개를 돌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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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도 노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안한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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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은단을 주고 자기의 차그릇에서 차를 따라 먹여주고 퍽 곰살갑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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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내가 배멀미가 무서워서 그날 점심도 조금만 먹었고 저녁은 통히 먹지 아니했다는 말을 듣고 깔깔 웃으면서 그랬기 때문에 멀미가 더한다고 이 담에는 적당하게 밥을 먹고 배타기 한 삼십분 전에 수면제를 먹으면 배에 올라서 바로 잠이 드니까 퍽 효과가 있다고 잘 알으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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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의 나의 여인에 대해서 가진 지식으로는 그 여자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 팔삭동(八朔童)이는 아니지만 고향에서나 또 중학시절에 여자와의 교제며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의 내가 가진 여인에 대한 예비 지식은 아주 제로에 가까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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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생각하니까 소위 시로도는 아니었다고 어렴풋이 기억하지 그때는 그저 일반적으로 남에게 친절한 그곳 여인들의 하는 일례이니라만 여겼을 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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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기는 어떻게 생겼던가 하면 그냥 놓고 그냥 보았자 툭 뛰어나게 ‘미인’ 인 것이 아니라 얼굴이 어딘가에 비극스러운 음영이 그림자져 있는 듯 싶은…… 그래서 퍽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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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볼때기가 도도록해서 귀인성이 있고 그리고 그러한 얼굴에 항용 따르는 어글어글하게 눈 크고 둥근 그러한 여인의 얼굴이 미상불 좋은 것은 아니나 나는 어느 편이냐 하면 차라리 선(線)이 이성적으로 되어 굳은 개성을 숨겨 가진 심각한 얼굴에 더 많이 흥미가 끌리는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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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에’ 상 그 여자의 이름자도 말하자면 그러한 부류에 속한 타입이었었다. 나이는 스물은 넘었고 둘 아니면 셋이나 되었었을까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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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아니한 호강을 하면서 괴로운 배멀미의 칠팔 시간이 지난 뒤에 이튿날 아침 부산에 내렸을 때 그리고 그 큼직하고 시원스러운 놈이 등대고 있는 기차 안에 올라앉았을 때에는 정말 댓 직이나 앓던 학질이 떨어진 것만큼이나 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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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에상도 물론 마주 앉았다. 그새까지는 그가 주인 셈이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지리적으로 보든지 또 간밤에 신세를 진 것으로 치든지 내가 주인이 되어 그를 대접할 판이다. 나는 그것을 과히 섭섭지 않게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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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심심찮고 무료찮게 오다가 차가 삼랑진쯤 왔을 때에 후미에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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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까지 인제 몇 시간이나 더 가요?”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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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서 호남선을 갈아타야 할 나와 그대로 하얼삔까지 가야 할 후미에상과 갈려야 할 그 대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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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나는 깊이 관심도 아니하고(누구야 이 멍텅구리! 하고 웃는 게) 오후 한시쯤이라고 대답하니까 그역 무심하게 듣고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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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또 조금 가더니“중로에 어디 온천 없어요”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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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온천에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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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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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그러셨으면 바로 부산 내려서 얼마 안되는 동래온천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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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하는 후미에상은 확실히 애석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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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나갔으니 할 수 없고 이 앞으로는 어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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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대전서 자동차로 한 삼십분 가는 유성온천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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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대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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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담 말을 더하기 전에 후미에상은 기뻐서 이렇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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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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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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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는 못했지만 좋다나 보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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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을 거진 당도했을 때 내가 짐을 챙기느라니까 후미에상은 나를 유심한 시선으로 보고 있더니 “저, 나는 몸이 퍽 피곤하고 또 앞으로 여러 날 더 차를 타야겠으니까 대전서 내려서 그 유성온천이라는 데 가서 하룻밤 쉬어가고 싶은데요……”하고 내 의견을 묻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러지 말라고 말릴 턱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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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세요. 원채 그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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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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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좀 원망스러운 눈으로(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그의 눈은 퍽 다한스러웠던 것 같다) 나를 치어다보면서 묻는 말에 나는 비로소 조금 눈치를 채었다. 그러나 그러한 눈치를 채고 보니 마음이 내킨다느니보다 슬그머니 무서운 생각이 앞을 섰다. 아무 무서워할 며리도 없으면서 여자에게 적극적 모션을 받고 무서워하는 것이 말하자면 깨어나지 못한 햇물붕어의 비애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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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얼굴이 뻘개가지고 어물어물 하니까 후미에상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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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아다시 히도리자 쯔마라나이와.”(그렇지만 나 혼자야 무슨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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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고향에서 급한 전보가 왔기 때문에 이번 방학에는 돌아오지 아니할 것을 이렇게 부랴부랴 오는 터이니까 중로에 충그릴 수가 없다고 거짓말 섞어가며 그 좋은 유혹에서 도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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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서 내가 사다주는 과실과 벤또를 차창으로 받으면서(후미에상은) 그러나 조금도 노여워한 내색을 보이지 아니하고 여전히 곰살갑게 작별인사를 하여 주었다. 나도 그가 차창으로 얼굴을 내어놓고 나를 바라보는 것을 차가 멀리 가서 보이지 아니할 때까지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돌아설 때에 나는 나도 모를 한숨을 내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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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光[조광] 1936년 6월호>
【원문】고운 유혹(誘惑)에 빠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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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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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