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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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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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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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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데없는 업둥이 (마나님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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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저 강원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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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라 하면 산 많고 물이 깨끗한 산골입니다. 말하자면 험하고 끔찍끔찍한 산들이 줄레줄레 어깨를 맞대고 그 사이로 맑은 샘은 곳곳이 흘러 있어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산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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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꼴이라는 조그마한 동리에 늙은 두 양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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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마음이 정직하여 남의 물건을 탐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새끼 한번 때려보지 않었드니만치 그렇게 마음이 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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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웬 일인지 늘 가난합니다. 그건 그렇다 하고 그들 사이에 자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오작이나 좋겠습니까. 참말이지 그들에게는 가난한 것보다도 자식을 못가진 이것이 다만 하나의 큰 슬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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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하루는 마나님이 신기한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가 누어 있는 옆 자리에서 곧 커다란 청용 한마리가 온 몸에 용을 쓰며 올라가는 꿈이었습니다. 눈을 무섭게 부라리고는 천정을 뚫고 올라가는 그 모양이 참으로 징글징글 하여 보입니다. 거진거진 다 빠져나가다 때마침 고 밑에 놓였던 벌겋게 핀 화롯불로 말미암아 애를 씁니다. 인젠 꽁지만 빠져나가면 고만 일텐데 불이 뜨거워 그걸 못합니다. 나종에는 이응, 하고 야릇한 소리를 내지르며 다시 한번 꽁지에 모지름을 쓸 때 정신이 고만 아찔하여 그대로 깼습니다.
 
9
별 꿈도 다 많습니다. 청용은 무엇이며 또 이글이글 끓는 그 화로는 무슨 의밀가요. 그건 그렇다 치고 다 빠져나간 몸에 하필 꽁지만 걸리어 애를 키는건 무엇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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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은 하도 괴상히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영감님에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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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듣고는 영감님마저 눈을 둥그렇게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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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있더니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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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불싸! 좋긴 좋구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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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입맛을 다십니다. 그 눈치가 매우 실망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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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루 태몽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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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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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나님이 되짚어 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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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날 꿈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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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다니? 낼 모레 죽을것들이 무슨 아들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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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러게 말이야- 누가 좀 더 일찌기 꾸지 말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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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영감님은 슬픈 낯으로 한숨을 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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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지음에 싸리문께서 꾕가리 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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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은 좁쌀 한쪽박을 퍼 들고 나오며 또한 희안한 생각이 듭니다. 여지껏 이렇게 간구한 오막살이를 바라고 동냥하러 온 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게 웬일입니까. 다 쓸어진 싸리문 앞에 서서 중이 꾕가리를 두드릴수 있으니 별 일도 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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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은 좁쌀을 그 바랑에 쏟아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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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쌀이 있었으면 갖다 드리겠는데 우리도 장 이 좁쌀만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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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저윽히 미안쩍어 합니다. 모처럼 멀리 찾아온 손님을 좁쌀로 대접하여서는 안 될 말입니다. 동냥을 주고도 그 자리에 그냥 우두머니 서서 마음이 썩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논밭길로 휘돌아 내려가는 중의 뒷모양을 이윽히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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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는 중도 별 중을 다 봅니다. 좁쌀이건 쌀이건 남이 동냥을 주면 고맙다는 인사가 있어야 할게 아닙니까. 두발이 허옇게 센 낏끗한 노승으로써 남의 물건을 묵묵히 받아가다니 그건 좀 섭섭한 일이라 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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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욱 이상한 것은 그 담 날 똑 고맘 때 중 하내 또 왔습니다. 이번에는 마나님이 좁쌀 한쪽박을 퍼들고 나가보니 바로 어제 왔던 그 노승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어제와 한가지로 묵묵히 동냥을 받아가지고는 그대로 돌아서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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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이 이렇게도 무뚝뚝할 수가 있습니까. 고마운 것은 집어치고 부드럽게 인사 한마디만 있어도 좋겠습니다. 허나 마나님은 눈쌀 하나 찌프리는 법 없이 도리어 예까지 멀리 찾아온 것만 기쁜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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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셋째번 날에는 짜장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똑 고맘 때 바로 고 중이 또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마나님은 동냥을 아무 군말 없이 퍼다주며 얼떨떨한 눈으로 그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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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그 무겁던 중의 입이 비로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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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 내 관상을 좀 할 줄 아는데 좀 봐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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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무심코 마나님을 멀뚱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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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은 너무도 반가워서 주름 잡힌 얼굴을 싱긋벙긋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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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디 은제 죽겠나 좀 봐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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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돌아가실 날짜를 말씀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장차 찾아올 운복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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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는 거반 다 살고 난 늙은이가 또 무슨 복이 남았겟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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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아무 대답도 하려 하지 않고 노승은 고 옆 괴때기 위에 가 덜썩 주저앉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찬 엽낭을 뒤적대더니 강한 돗베기와 조그만 책 한권을 꺼내듭니다. 돗베기 밑으로 그 책을 바짝 드려대고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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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 당신은 참으로 착하신 어른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전생에 지은 죄가 있어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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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중은 한 손으로 허연 수염을 쓰다듬어 내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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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제는 그 전죄를 다 고생으로 때셨습니다. 인제 앞으로는 복이 돌아옵니다. 우선 애기를 가지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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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대도록 호호 늙은이가 무슨 애를 가진단 말슴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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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망측스럽단 듯이 눈을 깜짝깜짝하다가 그래도 마음에 솔깃한 것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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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같은 늙은이에게도 삼신께서 애를 즘지해 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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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것이 아니라 현재 마나님에게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마나님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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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애가 지금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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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나님은 눈을 휑댕그러히 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승의 하는 말이 그게 온 무슨 소린지 도시 영문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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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째서 내 눈에는 보이지를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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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차차 보십니다. 인제 내 보여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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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은 이렇게 말을 하더니 등 뒤에 졌던 바랑을 끄릅니다. 그걸 무릎 앞에 놓고 뒤적거리다 고대 좁쌀을 쏟아넣던 그 속에서 자그마한 보따리 하나를 끄냅니다. 그리고 다시 그 보따리를 끄를 때 주인 마나님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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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으로 돌며 동냥을 얻어 넣고서 다니던 그 보따립니다. 그 속에서 천만 뜻밖에도 말간 눈을 가진 애기가 나옵니다. 인제 낳은지 삼칠일이나 될는지 말는지 그렇게 나긋나긋한 귀동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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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 이 애기가 바루 당신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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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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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나님은 얻어맞은 사람같이 얼떨떨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선 애기를 보니 반갑습니다. 두 손을 내밀어 자기 품으로 덥썩 잡아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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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 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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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눈에 눈물이 글성글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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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드리는것이 아니라 바루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혹시 요담에 와 다시 찾아갈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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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은 이렇게 몇마디 남기고는 휘적휘적 산모룽이로 사라집니다. 물론 이쪽에서 이것저것 캐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야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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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복된 가정 (마나님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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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님은 애기를 품에 안고서 허둥지둥 뛰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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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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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숨이 차 한참을 진정하다가 그 자초지정을 저저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들었는데 노승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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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가 정말 내 아들이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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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리 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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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영감님 역 좋은지 만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싸리문 밖으로 뛰어 나옵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심상치는 않는 중입니다. 직접 만나보고 치사의 말을 깍듯이 하여야 될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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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리를 삿삿치 뒤져보아도 노승의 그림자는 가뭇도 없습니다. 다시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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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 자꾸만 만지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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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다시 한번 애기를 품에 안아보았읍니다. 과연 귀엽고도 깨끗한 애깁니다. 어쩌면 이렇게 살결이 희고 눈매가 맑습니까. 혹시 이것이 꿈이나 아닐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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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은 손으로 눈을 비비고 나서 다시 드려다 보았습니다마는 이것이 결코 꿈은 아닐 듯 싶습니다. 그러면 그 노승은 무엇일가. 또는 어째서 자기네에게 이 애기를 맡기고 간 것일가. 아무리 궁리하여도 그 속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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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여튼 애기를 얻은 것만 기쁠 뿐입니다. 그들은 애기를 가운데에 두고서 해가 가는 줄도 모릅니다.
 
71
이렇게 하여 얻은 것이 즉 두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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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날마다 애기를 키우는 걸로 그 날 그 날의 소일을 삼았습니다. 애기에게 젖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이가 이미 늙어서 마나님은 아무리 젖을 짜보아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하릴없이 조를 끓이어 암죽으로 먹일때 마다 가엾은 생각이 안 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영감님이 애기를 안고서 동리로 나갑니다. 왜냐면 애기 있는 집으로 돌아다니며 그 젖을 조금씩 얻어먹이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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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구가 없어 젖구걸을 다니건만 애기는 잘두 자랍니다. 주접 한번 끼는 법 없이 돋아나는 풀싹처럼 무럭무럭 잘두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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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상에는 이상한 애기도 다 있습니다. 열살이 넘어서자 그 힘이 어른 한사람을 넉넉히 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얼굴 생김이 늠늠한 맹호같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것입니다. 겸하여 늙은 부모에게 대한 그 효성에도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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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 어른들은 그 애를 다들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네끼리 모이면
 
76
“저 두포가 보통 아이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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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은근히 수군거리고 하였습니다.
 
78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를 극진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날이 달라가는 그 행동을 유심히 밝히어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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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 이 애가 보통 사람은 아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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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두 이상히 여기는 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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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늙은 두 양주는 두포의 장래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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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놀라운 재복 (도둑놈 칠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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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포는 무럭무럭 잘두 자랍니다. 물론 병 한번 앓는 법 없이 낄끗하게 자라갑니다.
 
84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나날이 달라가는 두포를 보는 것이 진품 그들의 행복이었습니다. 아들을 아침에 산으로 내보내면 저녁 나절에는 싸리문 밖에가 두 양주가 서서, 아들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하루의 그들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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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아니라, 두포가 들어오자 집안이 차차 늘지를 않겠습니까. 산밑에 놓였던 그 오막살이 초가집은 어디로 갔는지, 인제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가 고래등같은 커다란 기와집이 넓직이 놓여있습니다. 동리에서만 제일갈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으뜸이리라고, 다들 우러러보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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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떻게 하여 이토록 부자가 되었는지, 그걸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다. 그래, 어떤이는 사람들이 워낙이 착하여 하느님이 도와주신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혹은 두포의 재주가 좋아 그런거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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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무슨 재주가 좋아, 빌어먹을 여석의 거! 도적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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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뒤로 애매한 소리를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두포를 원수같이 미워하는 요 건너 사는 칠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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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태라는 사람은 동네에서 꼽아주는 장사로, 무섭기가 맹호같은 청년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번디 불량하여 남의 물건을 들어다 놓고, 제 것 같이 먹고 지내는 도적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짓을 하여도 동리에서는 아무도 그를 나무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면 너무도 힘이 세이므로 괜스리 잘못 덤볐다간 이쪽이 그 손에 맞아죽을지 모릅니다.
 
90
그리하여 칠태는 제 힘을 자시하고, 한번은 두포의 집 뒷담을 넘었습니다. 이집 뒷광에 있는 쌀과 돈, 갖은 보물이 탐이 납니다.
 
91
그러나, 열고 들어가 후려 내오면 고만입니다. 누구하나 말릴 사람은 없으리라고, 마음놓고 광문의 자물쇠를 비틀어 봅니다. 이때 이것이 웬 일입니까
 
92
“이놈아”
 
93
하고 벽력처럼 무서운 소리가 나자, 등어리에가 철퇴가 떨어지는지 몹시도 아파옵니다. 정신이 아찔하여 앞으로 쓸어지려 할 때, 이번에는 그 육중한 몸둥아리가 공중으로 치올려뜨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시 떨어졌을 때에는 거지반 얼이 다 빠지고 말았습니다.
 
94
허지만 힘꼴이나 쓴다는 장사가 요까진 것 쯤에 맥을 못 추려서야 말이 됩니까. 기를 바짝 쓰고서 눈을 떠보니 별일도 다 많습니다. 칠태의 그 무거운 몸둥아리가 두포의 두 팔에가 어린애 같이 안겨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집안에서 시작된 일이 어떻게 되어 여기가 대문 밖입니까. 이건 참으로 알수 없는 귀신의 노름입니다.
 
95
그러자, 두포는 칠태의 몸둥아리를 번쩍 처들어 무슨, 헌겁떼기와 같이 풀밭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두손을 바짓자락에 쓱 문대며,
 
96
“이놈! 다시 그래봐라. 이번엔 허릴 끊어놀테니.”
 
97
하고는 집으로 들어가버립니다. 그 태도가 마치 칠태같은 것 쯤은 골백다섯이 와도 다- 우습다냥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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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가만히 바라보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깐에는 장사라고 뽑내고 다녔더니, 인제 열댓 밖에 안된 아이놈에게 이 욕을 당해야 옳습니까.
 
99
그건 그렇다 하고, 대관절 어떻해서 공중으로 날아 대문 밖으로 나왔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하여도 두포의 재주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광문 앞에서 필연, 두포가 칠태의 몸을 번쩍 들어 공중으로 팽개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놓고는 그 몸이 대문 밖 밭고랑에 가 떨어지기 전에 날쌔게 뛰어 나가서 두 손으로 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않았다면 칠태는 땅바닥에 그대로 떨어져서 전병같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건 도저히 사람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100
칠태는 도깨비에 씨인듯이 등줄기에가 소름이 쭉 내끼쳤습니다 . 그리고 속으로 썩 무서운 결심을 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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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네가 힘만으로는 안될라! 어디 보자.”
 
102
이렇게 생각하고, 칠태는 도끼를 꽁문이에 차고서 매일같이 산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왜냐면 두포가 아침에 산으로 올라가면, 하루 온종일 두포의 그림자를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겨우 저녁 때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양 밖에는 더 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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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두포는 매일 어디서 해를 지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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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온 동리 사람의 의심스런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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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칠태는 제대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제놈이 허긴 뭘해 아마 산속 깊이 도적의 소굴 있어서 매일 거기가 하루 하루를 지내고 오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산으로 돌아다니면 언제든가 네 놈을 만날것이다. 만나기만 하면 대뜸 달겨들어 해골을 두쪽 내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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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태는 보름동안이나 낮 밤을 무릅쓰고 산을 뒤졌습니다 . 산이란 산은 샃샃이 통 뒤져본 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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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 두포의 발자국조차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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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칠태의 복수 (도둑놈 칠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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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하루는 해가 서산을 넘는 석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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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태는 하루 온종일 산을 헤매다가 기운없이 내려오려니까, 저 맞은쪽 산골짜기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힐끗합니다. 그는 부지중에 몸을 뒤로 걷으며 가만히 노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도 기뻐서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었습니다.
 
111
이날까지 그렇게도 눈을 까두집고 찾아다니던 두포, 두포, 흐응! 네가 바로 두포구나 이놈 어디 내 도끼를 한번 받아보아라.
 
112
칠태는 숲 속으로 몸을 숨기어 두포의 뒤를 밟았습니다. 그러나 두포에게로 차차 가차이 올쑤록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두포의 양 어깨 위에는, 커다란 호랑이 두 마리가 얹혀있지를 않겠습니까. 이걸 보면 필연 두포가 주먹으로 때려잡아가지고 내려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113
칠태는 따라가던 다리가 멈칫하여 장승같이 서있습니다. 아무리 도끼를 가졌대도 두포에게 잘못 덤비었단 제 목숨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이럴가, 저럴가, 망설이고 섰을 때, 때마침 두포가 어느 바위에 걸터앉아서 신의 들매를 고칩니다. 꾸부리고 있는 그 뒷모양을 보고는 칠태는 다시 용기를 내었습니다. 이깐 놈 거, 뒤로 살살 기어가서 도끼로 내려만 찍으면 고만이다. 이렇게 결심을 먹고 산 잔등이에 엎드려 소리없이 기어 올라갑니다.
 
114
등 뒤에서 칠태의 머리가 살며시 올라올 때에도 두포는 그걸 모른다. 다만 허리를 구부리고 신들매만 열심히 고치고 있었습니다. 칠태는, 허리를 펴고 꽁문이에서 도끼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때는 이때라고 온몸에 용을 써가지고 두포의 목덜미를 내려찍었습니다.
 
115
워낙에 정성드려 내려찍은 도끼라, 칠태는 저도 어떻게 된 영문을 모릅니다. 확실히 두포의 몸이 도낏날에 두쪽이 난 걸 이 눈으로 보았는데, 다시 살펴보니, 두포의 몸은 간 곳이 없습니다. 다만 바위에가 도낏날에 부딛는 탁소리와 함께 불이 번쩍나고 말았을 그 뿐입니다. 그리고 불똥이 튀는 바람에 칠태의 왼눈 한짝은 이내 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루 이상두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의 몸이 어떻게 바위로 변하는 수가 있습니까.
 
116
칠태는 두포에게 속은 것이 몹씨도 분하였습니다. 허나 어째볼수 없는 노릇이라, 아픈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터덜터덜 산을 내려옵니다.
 
117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여보니, 두포가 보통사람이 아닌 것을 인제 깨닫게 됩니다. 우선 두포의 늙은 부모를 보아도 알 것입니다. 그들은 벌써 죽을 때가 지난 사람들입니다. 그렇건만 두포가 가끔 산에서 뜯어오는 약풀을 먹고는, 늘 싱싱하게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 말고라도 동리 사람들 중에서도 금새 죽으려고 깔딱깔딱하던 사람이 두포에게 그 풀을 얻어먹고 살아난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118
이것만 보더라도 두포에게는 엄청난 술법이 있음을 알것입니다.
 
119
칠태는 여기에서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제 아무리 두포를 죽이려고 따라 다닌대두, 결국은 제 몸만 손해이다. 이번에는 달리 묘한 꾀를 쓰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120
칠태는 동리로 내려와 전보다도 몇갑절 더 크게 도둑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뒤로 돌아다니며 하는 소리가,
 
121
“그 두포란 놈이 누군가 햇더니, 알고보니 도적단의 괴수더구면.”
 
122
하고 여러가지로 거짓말을 꾸미었습니다.
 
123
동리사람들은 처음에 반신반의하여 귓등으로 넘겼습니다. 마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나종에는 솔깃히 듣고 말았습니다.
 
124
그리고 동리에서는 여기 저기서,
 
125
“아, 그 두포가 큰 도적이래지?”
 
126
“그럴거야, 그치 않으면 그 고래등 같은 큰 기와집이 어서 생기나? 그리고 아침에 나가면, 그림자도 볼 수 없지 않어?”
 
127
“그래, 두포가 확실히 도적놈이야. 요즘 동리에서 매일같이 도적을 맞는걸 보더라도 알쪼지 뭐.”
 
128
하고는 두포에게 대한 험구덕이 대구 쏟아집니다.
 
129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모이어 회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포네를 이 동리에서 쫓아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여 없애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30
우선 두포를 향하여 동리에서 멀리 나가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131
그때 두포 대답이,
 
132
“아무 죄두 없는 사람을 내쫓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133
하고는 빙긋이 웃을 뿐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나가 주지를 않습니다.
 
134
동리 사람은 그러면 인젠 하릴없으니, 우선 두포부터 잡아다 죽이자고 의론이 돌았습니다.
 
135
그래, 어느날 아침, 일찌기 장정 한 삼십명이 모이어 두포의 집으로 몰리어 갔습니다.
 
 

 
136
5. 두포를 잡으려다가 (마을 사람 + 도둑놈 칠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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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도 퍼지지 않은 이른 아침입니다.
 
138
동리 사람들은 두포네 대문깐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들 중에 가장 힘센 사람은 굵은 밧줄을 메고, 또 더러는 육모방망이까지 메고 왔습니다. 두포가 순순히 잡히면 모르거니와 만일에 거역하는 나달에는 함부로 두들겨 죽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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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들은 대문밖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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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포 나오너라. 잠잫고 묶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느 부모까지 해가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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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커다랗게 호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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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포는 손 등으로 눈을 비비며 나온다. 그런데 웬 영문인지 몰라 떨떠름이 그들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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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동리 사람 삼십명은 한꺼번에 와짝 달겨들어 두포를 사로 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팔을 뒤로 꺾고, 또 어떤 사람은 목아지를 밧줄로 얽어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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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포를 얽었을 때, 두포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습니다. 그냥 묶는대로 맡겨두고, 뻔히 바라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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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뜻밖에 두포를 쉽사리 잡은 것이 신이 납니다. 인제는 저 산 속으로 끌어다 죽이기만 하면 고만입니다. 제 아무리 장비 같은 재주라도 이판에서 빠져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개를 끌어다리듯이 두포를 함부로 끌어다렸습니다.
 
146
이때 묵묵히 섰던 두포가 두 어깨에 힘을 주니, 몸을 몇 고팽이로 칭칭 얽었던 굵은 밧줄이 툭툭 나갑니다. 그 모양이 마치 무슨 실나부랭이 끊는 듯이 어렵지 않게 벗어납니다.
 
147
동리 사람들은 이걸 보고서 눈들을 커다랗게 떴습니다. 어찌나 놀랐는지 이마에 땀까지 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체 이 놈이 사람인가, 귀신인가. 아무리 뜯어보아야 입, 코에 눈 두짝 갖기는 매일반이렸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놈인가.
 
148
이렇게들 얼이 빠져서 멀거니 서있을 때, 두포가 두팔을 쩍 버리고 몰아냅니다. 하니까 자빠지는 놈에, 어퍼지는 놈, 혹은 달아나는 놈, 그 꼴들이 가관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두포에게 욕만 당하고 왔습니다.
 
149
다시 생각하면, 이것은 동리의 수치입니다. 인제 불과 열다섯밖에 안된 아이 놈에게 동리 어른이 욕을 본 것입니다. 이거야 될 말이냐고, 그들은 다시 모여서 새 계획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이 새 계획이라는건, 두포는 영영 잡을 수 없다. 하니까 이번에는 그 집에다 불을 질러 세 식구를 태워버리자는 음모이었습니다.
 
150
하루는 밤이 깊어서 입니다.
 
151
그들은 제각기 지게에 나무를 한짐씩을 지고 나섰습니다. 이 나무는 두포의 집을 에워싸고 그 위에 불을 지를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불이 두포의 집으로 차츰차츰 번져들어가, 나중에는 두포네 세 식구를 씨도 없이 태울 것입니다.
 
152
그래 그들은 소리 없이 자꾸만 자꾸만 나무를 져다 쌉니다. 얼마를 그런 뒤, 이제는 너희들이, 빠져 나올래도 빠져 나올 도리가 없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데 사방에서 일제히 불을 질렀습니다.
 
153
워낙이 잘 마른 나무라 불이 닿기가 무섭게 활활 타오릅니다. 나종에는 화광이 충천하여 온동네가 불이 된 것 같습니다.
 
154
그들은 멀찍암치 서서 두포의 집으로 불이 번져들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155
“인젠 별수 없이 다 타 죽었네.”
 
156
“그렇지, 제 아무리 뾰죽한 재주라도 이 불 속에서 살아날 수는 없을 것일세.”
 
157
이렇게들 서로 비웃는 소리로 주고 받고 하였습니다. 그런 동안에 불길은 점점 내려쏠리며 집을 향하여 먹어 들어갑니다. 인제 한식경 좀 있으면 불길은 완전히 처마끝을 핥고 들겝니다.
 
158
그들은 아기자기한 재미를 가지고 구경하고 서있습니다. 그러나 불길이 두포네 집 처마 끝을 막 핥고들 때, 이게 웬 조화니까. 달이 밝던 하늘에가 일진광풍이 일며, 콩알같은 빗방울이 무데기로 쏟아집니다. 그런지 얼마 못가서 두포의 집으로 거반 다 타들어왔던 불길이 차차 꺼지기 시작합니다.
 
159
그들은 하도 놀라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마른 하늘에 벼락이 있다더니, 이게 바루 그게 아닌가. 그들은 은근히 겁을 집어먹고 떨고 서있습니다.
 
160
“이건 필시 하늘이 낸 사람이지 보통사람은 아닌걸세.”
 
161
“그래 그래 애매한 사람을 죽이려 드니까 마른하늘에 생벼락이 안 내릴가.”
 
162
하고, 한 사람이 눈살을 찌푸릴 때 고 옆에 서있던 칠태가 펄꺽 뜁니다.
 
163
“천벌은 무슨 천벌이야. 도둑놈을 잡아내는데 천벌인가?”
 
164
하고, 괜스리 골을 냅니다.
 
165
그러나 칠태는 제 아무리 골을 내도 인제는 딴 도리가 없습니다. 동리 사람들은 하나 둘 시납으로 없어지고, 비는 쭉쭉 내립니다.
 
 

 
166
6. 이상한 노승 (도둑놈 칠태 시점)
 
 
167
칠태는 두포 때문에 눈 한짝이 먼 것이, 생각하면 할쑤록 분합니다. 몸이 열파가 날지라도 이 원수야 어찌 갚지 않겠는가 마음대로 된다면 당장 달겨들어 두포의 머리라도 깨물어 먹고 싶은 이판입니다. 칠태는 매일과 같이 두포의 뒤를 밟았습니다. 언제든지 좋은 기회만 있으면 해치우려는 계획입니다
 
168
그러나 어쩐 일인지 중도에서 두포를 잃고 잃고 하였습니다. 어느 때에는 두포의 걸음을 못 따라 놓치기도 하고, 또 어느 때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도 목전에 두포가 어디로 갔는지 정신 없이 두포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169
이렇게 하여 칠태는 근 한달 동안이나 허송세월로 보냈습니다.
 
170
그러자 하루는 묘하게도 산 속에서 두포를 만났습니다. 이날은 별루히 두포를 찾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다만 나무를 할 생각으로 산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 피곤하여 어느 나무뿌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졸고 있을 때입니다.
 
171
칠태가 앉아있는 곳에서 한 이십여간 떨어져 커다란 바위가 누워 있습니다. 험상스리 집채같은 바윈데 그 복판에가 잦나무 한주가 박혀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어렴푸시 보자니까, 그 바위가 움즉움즉 놀지를 않겠습니까. 에? 이게 웬일인가. 이렇게 큰바위가 설마 놀리는 없을텐데-
 
172
칠태는 졸린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똑똑히 보았습니다. 아무리 몇번 고쳐보아도 분명히 바위는 놉니다.
 
173
그제서야 칠태는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고 숲속으로 몸을 숨기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뜨고는 그 바위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더니, 집채같은 그 바위가 한복판이 툭 터지며 그와 동시에 용마를 탄 장수 하나가 나옵니다. 장수는 사방을 둘레둘레 훑어보더니 공중을 향하여 쏜살같이 없어졌습니다.
 
174
이때 칠태가 놀랜 것은 그 장수의 겨드랑이에 달린 날개 쪽지였습니다. 눈이 부시게 번쩍번쩍하는 날개를 쭉 펴자, 용마와 함께 날아간 장수. 그리고 더욱 놀란 것은 그 장수의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두포의 얼굴과 똑같은지 모릅니다. 혹은 이것이 정말 두포가 아닐가, 또는 제가 잠결에 잘못 보지나 않았는가, 하고 두루두루 의심하여 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지켜만 보면 다 알 것입니다. 오늘 하루해를 여기서 다 지우더라도, 확실히 알고 가리라고 눈을 까두집고는 지키고 앉았습니다.
 
175
이렇게 하여 대낮부터 앉았는 칠태는 해가 서산에 질려는것도 모릅니다. 그러다 장수와 용마가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칠태는 정신없이 그 관상을 뜯어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것은 분명히 두포의 얼굴입니다.
 
176
장수는 그 먼젓번 나오던 바위로 용마를 탄 채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쭉 갈라졌던 바위가 다시 여며져 먼젓번 놓였던대로 고대로 놓입니다. 그리고 조금있더니 그 바위 저쪽에서 정말 두포가 걸어 나옵니다 . 그리고 그 뒤에 노인 한분이 지팡이를 껄며 따라 나옵니다. 그 모습이 십오년 전 바랑에서 두포를 꺼내던 바로 그 노승의 모습입니다.
 
177
노인은 두포를 껄고서 고 아래 시새 밭으로 내려오더니, 둘이 서서 무어라고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노인은 지팡이로 땅을 그어 무엇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두포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무어라고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그럴때마다 두포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듣습니다.
 
178
칠태는 열심으로 그들의 얘기를 엿듣고져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너무 사이가 떠, 한마디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저 노인은 무언데, 저렇게 두포를 사랑하는가, 아무리 궁리하여 보아도 알수 없는 일입니다.
 
179
그러자 두포가 노인 앞에 엎드리어 절을 하고 나니, 노인은 그 자리에서 간 곳이 없습니다. 그제서야 두포는 산 아래를 향하여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180
칠태는 두포의 뒤를 멀찌기 따라오며 이 궁리 저 궁리 하여봅니다. 또 쫓아가 도끼로 찍어볼까 그러다 만약에 저번처럼 눈 한짝이 마저 먼다면 어찌 할겐가. 그러다 사내자식이 그걸 무서워해서야 될 말이냐-
 
181
칠태는 또 도끼를 뽑아들고는 살금살금 쫓아갑니다. 어느 으슥한 곳에 따라가 싹도 없이 찍여 죽일 작정입니다.
 
182
두포와 칠태의 사이는 차차 접근하여 옵니다. 결국에는 너댓걸음 밖에 안될만치 칠태는 바짝 붙었습니다. 이만하면 도끼를 들어 찍어도 실패는 없슬 것입니다.
 
183
두포가 굵은 소나무를 휘돌아들 때, 칠태는 도끼를 번쩍 들기가 무섭게
 
184
“이놈아! 내 도끼를 받아라”
 
185
하고, 기운이 있는대로 머리깨를 내려찍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칠태는 어그머니,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가 나둥그러지고 말았습니다.
 
186
왜냐면, 도끼를 내려찍고 보니 두포는 금새 간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도끼를 허공을 힘차게 내려와 칠태의 정강이를 퍽 찍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리에서 시펄건 선혈이 샘같이 콸콸 쏟아집니다.
 
187
그리하여 칠태는 그 다리를 두 손으로 부등켜 안고는,
 
188
“사람 살리우-”
 
189
하고, 산이 쩡쩡 울리도록 소리를 드리 질렀습니다. 그러나 워낙에 깊은 산속이라 아무도 찾아와 주지를 않았습니다.
 
 

 
190
7. 이상한 지팽이 (도둑놈 칠태 시점)
 
 
191
아무리 사람 살리라는 소리를 쳐도 그 소리를 이 산골짜기 저 산봉우리 받아 올릴뿐, 대답하고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192
정말 칠태는 큰일 났습니다. 해는 저물어 점점 어두어가고, 도끼에 찍힌 상처에서는 쉴새없이 피가 흐릅니다. 저절로 눈물이 펑펑 쏟아지도록 아프다. 하지만 칠태는 아픈 생각보다는 이러다가 고만 두포 이놈의 원수도 갚지 못하고 어찌되지 않을가 하여 눈물이 났습니다.
 
193
그나 그 뿐이겠는가, 벌써 사방은 컴컴하고 거츠른 바람이 첩첩한 수목을 쏴아 쏴아. 그리고 이따금씩 어흐응 어흐응 하고 산이 울리는 무서운 짐승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호랑이인 듯 싶습니다. 그 소리는 칠태가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옵니다. 바루 호랑입니다. 엄청나게 큰 대호가 소나무 숲사이에서 눈을 번쩍번쩍 칠태를 노리고 다가옵니다.
 
194
꼼짝 못하고 칠태는 이 깊은 산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호랑이 밥이 되고 말가봅니다 걸음을 옮기자니 발하나 움직일 수 없고 팔 하나 들 수 없는 칠태입니다. 아무리 기운이 장하다기로 이 지경으로 어떻게 호랑이같은 사나운 맹수를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195
그래도 칠태는 사람을 불러 구원을 청해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
 
196
"사람 살류, 사람 살류.”
 
197
그리고
 
198
“아무도 사람없수.”
 
199
그러자 어디선지
 
200
“칠태야.”
 
201
하고,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두포의 음성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도 많습니다. 부르는 소리만 나고 두포도 아무도 모양을 볼 수는 없습니다.
 
202
두리번 두리번, 사방을 돌아보는 칠태의 눈에 이것은 또 무슨 변입니까. 금방 호랑이가 있던 자리에 호랑이는 간데가 없고 뜻하지 않은 백발노승이 긴 지팽이에 몸을 실리고 섰습니다.
 
203
칠태는 그 노승에게 무수히 절을 하며 이런 말로 빌었습니다.
 
204
“산에서 나무를 하러 왔다가 못된 도적을 만나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제발 저를 이 마을 아래까지만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205
그러나 노승은 잠잠히 듣고만 섰습니다. 그러더니 문득 입을 열어
 
206
“무애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 하면 도리어 자신이 해를 입게되는줄을 깨달을 수 있을가?”
 
207
하고, 노승은 엄한 얼굴로 칠태를 내려다 봅니다. 하지만 칠태는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도 깨닫지 못하고서 그저
 
208
“그럴줄 알다말구요, 알다 뿐이겠습니까.”
 
209
“그렇다면 이후로는 마음을 고치어 행실을 착하게 갖을 수 있을가?”
 
210
“네 고치고 말구요, 백번이래도 고치겠습니다.”
 
211
하고, 칠태는 엎드리어 맹세를 하는 것이로되 그 속은 그저 어떻게 이 자리를 모면할 생각 밖에는 없습니다. 노승은 또 한번
 
212
“다시 나쁜 일을 범하는 때는 네 몸에 큰 해가 미칠줄을 명심할 수 있을가?”
 
213
하고, 칠태에게 단단히 맹세를 받은 후
 
214
“ 이것을 붙잡고 나를 따라 오너라.”
 
215
하고, 노승은 지팽이를 들어 칠태에게 내밀었습니다.
 
216
참 이상한 지팽이도 다 있습니다. 칠태가 그 지팽이 끝을 쥐자 금새로 지금 까지 아픈 다리가 씻은듯 났고 몸이 가벼웁게 공중을 날듯싶습니다.
 
217
아마 노승도 이 지팽이 까닭인가 봅니다. 허리가 굽고 한 노인의 걸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빠르기가 젊은 사람 이상입니다. 그렇게 바위를 뛰어넘고 내를 건너뛰고, 칠태는 노승에게 이끌려 그 험한 산길을 언제 다리를 다쳤드냐 싶게, 내려갑니다.
 
218
어느덧 칠태가 사는 마을 어구에 이르러 노승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219
그러더니 또 한번
 
220
“애매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다가는 먼저 네 몸에 해가 돌아갈것을 명심해라.”
 
221
하는, 말을 남기자마자, 노승은 온데 간데가 없이 칠태의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222
세상에 이상한 노인도 다 보겠습니다. 칠태는 사람의 일같지가 않아, 정말 여기가 자기가 사는 마을 어구인가 아닌가, 눈을 비비며 사방을 돌아본다. 틀림없는 마을 어구, 돌다리 앞입니다.
 
223
그런데 이것이 웬일일까. 돌아서 걸음을 옮기려 하자 갑자기 발 하나를 들 수가 없이 아픕니다. 조금전까지도 멀쩡하던 다리가 금새로 아까 산에서 처럼 피가 철철 흐르고 그럽니다.
 
224
고만 칠태는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225
“사람 살류, 사람 살류.”
 
226
하고 , 큰소리로 마을을 향해 외쳤습니다.
 
227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나 났나, 하고 이집 저집에서 모여나와 칠태를 가운데로 둘러싸고는
 
228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된 일이야.”
 
229
하고 모두들 눈이 둥그래서 궁금해합니다. 그러자 칠태는,
 
230
“두포, 그 도적놈이.”
 
231
하고, 산에서 자기가 노루 사냥을 하는데 두포란 놈이 숨어 있다가 불시에 돌로 때리어 이렇게 다리를 못 쓰게 해놓고 자기가 잡은 노루를 도적질해 갔노라고 꾸며대고는, 정말 그런 것처럼 칠태는 이를 북북갈았습니다.
 
232
동네 사람들은 모두 칠태를 가엾이 여기어 쳇쳇 혀끝을 차며 두포를 나쁜 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칠태를 자기집으로 업어다 주었습니다.
 
 

 
233
8. 엉뚱한 음해 (도둑놈 칠태 시점)
 
 
234
마을에는 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밤이면 마을 이집 저집에 까닭 모를 불이 났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날마다 밤이되면 정해논 일처럼 “불야. 불야.”소리가 나고, 한 두 집은 으레 재가 되어버리고 합니다.
 
235
이러다가 마을의 성한 집이라고는 한채도 남아나지 않을가 봅니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까닭으로 밤마다 불이 나는 것인지 몰라 서루 눈들이 커다래서 걱정입니다.
 
236
그리고 어찌해야 좋을지 그 도리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누구는 “분명 이것은 산화지. 산화야.” 하고, 산에 정성으로 제를 지내지 않은 탓으로 그렇다 하고, 지금으로 곧 산제를 지내도록 하자고 서두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또 한 사람은
 
237
“산화가 뭔가. 도깨비 장난일세. 도깨비 장난야 .”
 
238
하고, 정말 도깨비 장난인걸 자기 눈으로 보기나 한것처럼 말하며, 시루떡을 해놓고 빌어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판수를 불러다가 경을 읽게 하여 도깨비들을 내쫓거나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주장입니다.
 
239
이렇게들 각기 자기 말이 옳다고 떠드는 판에 칠태가 썩 나섰습니다. 그리고
 
240
“산화는 다 뭐고 도깨비 장난은 다 뭔가?”
 
241
하고, 자기는 다 알고있다는 얼굴을 하는 것입니다.
 
242
“그럼 산화가 아니면 뭔가?”
 
243
“그럼 도깨비 장난이 아니면 뭔가?”
 
244
하고, 사람들은 몸이달아 칠태 앞으로 다가서며 묻습니다.
 
245
“그래 자네들은 산화나 도깨비 생각만 하고, 두포란 놈, 생각은 못하나?”
 
246
하고, 칠태는 그걸 모르고 딴 소리만 하는것이 가깝하다는듯이 화를 벌컥냅니다.
 
247
그리고 두포가 자기 집에 불을 논 앙갚음으로 밤마다 마을로 내려와 불을 놓은것이라고 하고, 그 증거는 보아라, 전일 두포 집으로 불을 노러거던 사람의 집에만 불이 나지 않았느냐 합니다.
 
248
따는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두포 집으로 불을 노러가던 사람의 집은 모조리 해를 입었다. 마을 사람들은
 
249
“아, 저런 죽일 놈 보아라.”
 
250
하고, 아주 두포의 짓인 것이 판명난 것처럼 주먹을 쥐며 분해합니다.
 
251
그러나 실상은 칠태의 짓입니다. 칠태가 밤이면 나와 절룩절룩 처마 밑에 불을 지르던 것 입니다. 그 이상한 지팽이를 가진 노승이 다짐하던 말이 무서웁기도 하련만 웬체 마음이 나쁜 칠태라 그런 말쯤 명심할 사람이 아닙니다. 머리에는 어떻하면 눈 하나를 멀게하고 다리까지 못쓰게 한 두포 이 놈의 원수를 갚아보나 하는 생각뿐입니다. 하지만 기운으로나 재주로나 도저히 두포와 맞겨눌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뒤로 다니며 불을 놓고 하고는 죄를 두포에게 들씨웁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두포를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칠태는 가만 있어도 원수를 갚게 되리라는 생각입니다. 그 속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두포를 다 죽일 놈 벼르듯 합니다.
 
252
“저 놈을 어떡헐가.”
 
253
하고, 모이면 공론이 이것입니다.
 
254
그러나 한 사람도 어떻게 할 도리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포의 그 엄청난 기운과 재주 앞에 섯불리 하였다는 도리어 큰 코를 다치지나 않을가, 은근히 겁들이 났습니다.
 
255
그래서 이런 때에도 “어떻했으면 좋은가.” 하고, 칠태의 지혜를 빌어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256
칠태는 그것을 기대리었던 같이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고 수군수군 무슨 짜위를 하였습니다.
 
257
그리고 사람들은 얼굴에 자신 있는 웃음을 지으며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 쾡이, 부삽, 넉가래, 같은 연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날이 저물자 그 사람들은 마을 옆으로 흐르는 큰 냇가로 모이더니 말 없이 그 내 중간을 막기 시작합니다. 떼를 뜯어다가 덮고, 돌을 들어다가 누르고, 흙을 퍼다가 펴고, 그러는 대로 냇물이 점점 모이기 시작합니다. 날이 밝을 임시에는 그 큰 내의 물이 호수와 같이 넘쳤습니다.
 
258
이제 일은 다 되었습니다. 산밑, 두포 집 편을 향한 뚝 중간을 탁 끊어 놓았다. 물은 폭포와 같이 무서운 기세로 두포 집을 향해 몰려갑니다.
 
259
마을 사람들은 언덕 위에 올라서서 그 장한 모습을 매우 통쾌한 얼굴로 보고들 섰습니다. 인제 바루 눈 깜작할 동안이면 물은 두포 집을 단숨에 묻질러 버릴 것입니다. 제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두포기로 이번엔 꼼짝 못하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물끝이 두포집 근처에 이르자 마치 거기 큰 웅뎅이가 뚫리듯이 물이 자자집니다. 마침내 물은 냇바닥이 들어나도록 자자지고 말았습니다.
 
260
하두 어이가 없어서 마을 사람들은 서루 얼굴을 쳐다보다가는 한사람 두사람 슬슬 돌아가고 언덕 위에는 칠태 홀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섰습니다.
 
261
그러나 이것으로 고만둘 칠태가 아닙니다. 밤이 되면 칠태는 더욱 심하게 마을로 다니며 도적질을 하고 불을 놓고 합니다. 점점 거츠러져 이웃 마을이나 또 먼 마을에 까지 다니며 그런 짓을 계속한다. 그럴수록 두포를 원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를 없새버리려는 마음이 커갔습니다.
 
262
마침내 관가에서도 그 일을 매우 염려하여 누구든지 두포를 잡는 사람이면 상을 준다는 광고를 동네 동네에 내돌렸습다.
 
 

 
263
9. 칠태의 최후 (도둑놈 칠태 시점)
 
 
264
마을 사람들은 둘만 모여도 두포 이야기로 수군수군합니다
 
265
두포를 잡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금을 준다는 광고가 붙은 마을 어구 게시판 앞에는 몇날이 지나도록 사람이 떠날새가 없이 모여서서 그 광고를 읽고 또 남이 읽는 소리를 듣고 합니다.
 
266
그러기는 하나 한사람도 두포를 잡아보겠다는 생각조차 못합니다. 무슨 힘으로 두포의 그 놀라운 술법과 재주를 당할 엄두를 먹겠습니까.
 
267
“두포는 하늘이 낸 사람인걸. 우리네 같은 사람이 감히 잡을 수 있나.”
 
268
“그렇지 그래. 그 술법 부리는 것 좀 봐. 그게 어디 사람의 짓야. 신의 조화지.”
 
269
하고 , 모두들 머리를 내졌습니다.
 
270
그러나 칠태는 여전히 큰소리입니다.
 
271
“술법은 제깐놈이 무슨 술법을 부린다고 그러는거여. 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걸 가지고,”
 
272
그리고 칠태는 벌컥 불쾌한 음성으로 좌우를 돌아보며,
 
273
“그래 당신들은 왼 마을 왼 군이 두포 놈으로 해서 재밭이 되어버려도 가만히들 보고만 있을테여.”
 
274
하고, 연해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두포를 잡으려는 욕심을 도둘 일이 생기었습니다.
 
275
그때 마침 나라 조정에서 무슨 벼슬인지 벼슬하는 사람들이 손수 수레를 타고 팔도를 돌며 어떤 사람 하나를 찾았습니다.
 
276
그 수레가 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읍에도 나타나서 이런 소문을 냈습니다.
 
277
누구든지 이러이러하게 생긴 사람을 인도해오는 사람에게는 많은 재물로 대접할뿐더러 높은 벼슬까지 내린다는것입니다.
 
278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 찾는 사람의 모습이 바루 두포의 생긴 모습과 한판같이 흡사한 것입니다. 나이가 같은 열다섯이고, 얼굴 모습이 그렇고, 더욱이 이마에 검정 사마귀가 있는 것까지 같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두포를 눈앞에 놓고 말하는듯이 같을 수가 있을가. 의심할 것 없는 두포입니다.
 
279
대체 두포의 내력이 어떻한 사람이길래 나라 조정에서 일개 소년을 많은 상금을 걸어서 까지 찾을가.
 
280
그것은 여차하고, 자아 두포를 잡기만 하면 관가에서 주는 상금은 말고도 나라의 벼슬까지 얻게 될 것이니 그게 얼마입니까. 가난하고 지체 없던 사람이라도 곧 팔자를 고치게 될 것입니다.
 
281
여기에 눈이 어두워 더러 큰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82
“두포란 놈이 정 아무리 술법이 용하다기로 열다섯 먹은 아이놈 아니냐, 아이놈 하나를 당하지 못한데선.”
 
283
하고, 팔을 걷어붙이기는 마을에서 팔팔하다는 젊은 패들입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사람들은
 
284
“술법을 부리는 놈을 잡으려면 역시 술법을 부려잡아야 하는거여 .”
 
285
하고 그 술법을 자기는 알고 있다는 듯 싶은 얼굴을 하기도 합니다.
 
286
그러나 정작 자신있게 나서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섯불리하였다가 도리어 큰 화를 입지나 않을가 하는 여기가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그런 변 없이 깜짝같이 올개미를 씰 묘책이 없을가, 하고 그 궁리에 모두들 눈들이 컴컴해 질 지경이었습니다.
 
287
그 중에도 칠태는 더욱이 궁리가 많습니다. 그로 보면 이번이 두번 얻지 못 할 기회입니다. 이번에 두포를 잡으면 눈 한짝 다리 하나를 병신 만든 원수를 갚게 되기는 물론, 제물과 공명을 아울러 얻게 될것이 생각만 해도 회가 동합니다.
 
288
(어떻하면 두포 이놈을 내 손으로 묶을 수 있을가.)
 
289
그러나 칠태는 자기 재주로는 도저히 두포의 그 술법 그 기운을 당해낼 게제가 못 됩니다. 그게 어디 사람의 일일세 말이지. 어떻게 인력으로 마른 하늘에 갑자기 비를 만들고 그 숫한 물을 금새 땅 밑으로 슴이게 합니까. 이건 사람의 힘이 아니다. 반드시 두포로 하여금 사람 이상의 그 힘을 갖게 한 무슨 비밀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다가 문득 칠태는
 
290
“ 옳다. 그렇다.”
 
291
하고 무릎을 탁치며 일어섰습니다.
 
292
그 날부터 칠태는 두포의 뒤를 밟아 그의 행적을 살핍니다 . 두포는 매일 하는 일이 날이 밝으면 집을 나가 산으로 갑니다. 칠태는 몸을 풀잎으로 옷을 해 가리고 슬슬 그 뒤를 딿습니다. 두포가 가진 그 알수 없는 비밀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293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눈을 밝혀 뒤를 밟아도 어떻게 중도에서 두포를 잃고 잃고 합니다. 그리고 번번히 잃게되는 곳이 노송 나무가 선 바위가 있는 근처입니다. 마치 그 바위 근처에 이르러서는 두포의 모양이 무슨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294
사실 그렇다. 두포는 바위 근처에 이르러서는 자기 몸을 아무의 눈에도 보이지 않게 변하는 것입니다.
 
295
그 다음부터는 칠태는 근처 풀섶에 몸을 숨기고 앉아 그 바위를 지킵니다.
 
 
296
그러자 전일 칠태가 보던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두포가 그 바위 앞에 이르러 무어라고 진언 한마디를 외이자, 집채같은 바위가 움질움질 놀더니 한가운데가 쩍 열립니다.
 
297
그리고 두포가 들어가고 바위가 전대로 닫아졌다가는 얼마후 다시 열릴 때에는 새하얀 용마를 탄 장수가 나타나 눈부시게 흰 날개를 치며 공중으로 사라집니다. 놀랍습니다. 그 용마를 탄 장수가 바루 두포입니다.
 
298
아무래도 조화는 이 바위에 있나 봅니다. 그러지 않아도 전부터 병 가진 사람이 빌면 병이 떨어지고, 아이 없는 사람이 아이를 빌면 태기가 있게 되고 하는 신통한 바위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으로 어떻게 그런 조화를 부리겠습니까.
 
299
이제야 칠태는 두포의 그 비밀을 깨달은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아주 희색이 만면해서 산아래로 내려갔습니다.
 
300
아마 칠태는 무슨 끔찍한 흉계가 있나봅니다. 칠태는 그 길로 산 아래 자기 집으로 가더니 부엌으로 광으로 기웃거리며, 쇠망치, 정, 또는 납덩이, 남비, 숱덩이 이런 것을 끄집어 내온다. 그걸 망태에 담아 걸머지더니 역시 히색이 만면해서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두포가 자기 집에 돌아와 있는 기색을 살피고는 곧 산으로 치달았습니다.
 
301
마침내 바위가 있는 곳에 이르자 망태를 내려놓고 칠태는 망치와 정을 꺼내듭니다. 그리고 잠시 사방을 돌라보며 무엇을 조심하는듯 주저하더니 이내 바위 한복판에 정을 대고 망치를 들어 뚜드르기 시작합니다.
 
302
그러면서도 무척 겁이 나나 봅니다. 연해 칠태는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돌라보며 합니다. 아무도 없다. 다만 정을 따리는 망치 소리만 산골자기에 울릴 따름입니다.
 
303
그래도 마을에서는 장사라는 이름을 듣는 칠태입니다. 더구나 힘을 모아 내리치는 망치는 볼 동안에 한치 두치 정뿌리를 바위에 박습니다. 점점 정은 깊이 들어갑니다. 세치 네치 한자에서 또 두자 길이로, 그리고 한 옆에는 시뻘겋게 숯불을 달아놓고는 납덩이를 끓입니다.
 
304
마침내 서너자 길이의 구멍이 바위에 뚫리자 칠태는 매우 만족한 웃음을 한번 허허허 웃습니다. 그리고
 
305
“네놈이, 인제두”
 
306
하고, 벌써 두포를 잡기나 하듯 싶은 기쁜 얼굴로 이글이글 끓는 납을 그 구멍에 주루루 붓는 것입니다 .
 
307
그러나 칠태의 얼굴은 금새로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 끓는 납을 바위 뚫린 구멍에 붓자마자, 갑자기 천지가 문어지는 굉장한 소리로 바위와 아울러 땅이 요동을 합니다. 그나 그뿐입니까. 맞은편 산이 그대로 칠태를 향하고 물러오며 덮어내립니다. 그제야 칠태는 자기가 천벌을 입은 줄을 깨닫고
 
308
“ 아아, 하느님 제 죄를 용서하십시사.”
 
309
하고, 비는것이나 이미 쏟아져내리는 돌 밑에 뭍히고 말았습니다.
 
 

 
310
10. 두포의 내력 (마을 사람 + 노승 시점)
 
 
311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두포를 잡을 궁리를해도 도리가 없습니다. 모두 답답한 얼굴을 하고 만나면 서로,
 
312
“자네 어떻게 해볼 도리좀 없겠나.“
 
313
하고들 묻습니다. 마는, 한사람도 신통한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한 자가 무릎을 탁 치며,
 
314
“옳다. 이럭하면 좋겠네.”
 
315
하고, 여러 사람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316
“뭐 별수 없네. 두포 놈의 늙은 부모를 잡아다 가두도록 하세. 그러면 두포 그놈이 제 애비 에미에게는 효성이 지극한 놈이니까 우리가 애써 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무릎을 꿇고 기어들걸세.”
 
317
그 말이 과연 옳습니다. 가뜩이나 부모에게 효성스런 두포가 자기로 말미암아 연만하신 아버지 어머니가 옥에 가치어 고생을 하는 것을 알고는 가만히 있지않을 것이 물론입니다.
 
318
마을 사람들은 그 생각이 옳다고 모두들 찬성입니다. 그리고 당장에 일을 치러버릴 생각으로 앞을 다토아 두포집을 향해 몰려갑니다.
 
319
그러나 두포 집 근처에 이르러서는 호기있게 앞서가던 사람들이 문득 걸음을 멈춥니다. 먼저 두포가 훼방을 하지나 않을가 걱정이 되는 까닭이다 마는 그들은 그 일로 오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320
누구 생일 잔치에 청하거나 하는듯이 노인 내외를 슬며시 불러내도 워낙이 착한 노인들이라 응치 않을 리 없을 것입니다.
 
321
마을 사람들은 더욱 신이 나서 두포 집으로 웃줄거리며 갑니다. 마침내 두포집 문전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322
그런데 그 집 밖앝 마당에 어떤 소년 하나가 제기를 차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두포와 같애 마을 사람들은 무춤하였습니다. 그러나 얼굴 모습은 두포와 같애도 표정이나 하는 행동은 두포가 아닙니다. 제기를 차다 말고 자기 둘레로 모여드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이사람 저사람 쳐다보는 눈은 예사 열다섯이나 그만 나이의 소년의 겁을 먹은 상입니다. 전에 보던 그 용맹스럽고 호탕한 기상은 조금도 없고 귀엽게 자라난 얌전하고 조심성 있는 글방 도련님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어떻게 이 소년을 그처럼 놀라운 기운과 술법을 부리던 두포라고 하겠습니까.
 
323
마을 사람은 하두 이상스러워서 한참 아래 위를 훑어보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324
“넌 뉘 집에 사는 아인데 여기서 노니?”
 
325
“저는 이집에 사는 아이예요.”
 
326
“그럼 이름은 뭐냐 ?”
 
327
“이름은 두포라고 합니다.”
 
328
“뭐, 두포.?”
 
329
하고 마을 사람들은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났습다. 두포라는 그 이름보다는 어쩌면 두포가 이처럼 변했을까 싶어 더 한칭 놀라웁니다. 딴 사람이 아니고 이 소년이 바루 두포일진대 그의 늙은 부모를 갖다 가둘건 뭐 있고, 두려워할건 뭐 있겟는가. 그대로 손목을 이끌어간데도 순순히 따라올 상싶습니다.
 
330
도대체 이 착하고 약해보이는 소년이 무슨 죄 같은 것을 범했을가도 싶습니다. 그리고 어른된 체면에 이 어린 소년에게 손을 대는것부터 어색한 생각이나서 마을 사람들은 서루 벙벙히 얼굴만 바라보고 섰습니다 . 그러다가 그 중에 두포를 잡아 상을 탈 욕심으로 한 자가 앞으로 나서며 이렇게 딱 얼렀습니다.
 
331
“네 놈이 바루 두포라지.”
 
332
“ 네 지가 바루 두포올시다.”
 
333
“그럼 네 이놈 네 죄를 모를가.”
 
334
“지가 무슨 죄를 졌다고 그러십니까.”
 
335
“네 죄를 몰라. 모르면 가르켜 줄테니 이걸받아라.”
 
336
하고, 그 사람은 굵은 밧줄을 꺼내들며 막 얽으러 덤비었습니다.
 
337
이러할 때, 건너편 큰 길에서 앞에 많은 나졸을 거느린 수레가 이곳을 향하고 옵니다. 나라 조정에서 내려와 읍에 머물고 있던 일행임이 분명합니다. 아마 두포를 잡으러 오는 것이겠지. 마을 사람들은 두포를 남기고는 양편으로 쩍 갈라섰습니다.
 
338
수레가 그 집 어구에 이르자 멈추고는 그 안에서 호화로운 예복을 차린 벼슬하는 사람이 내려와 두포가 있는 앞으로 옵니다. 그러더니 신하가 임금에게 하는 법식으로 공손히 절을 합니다. 그리고 어리둥절하는 두포를 부축여 뒤에 또 한채 있는 빈수레에 오르기를 권합니다.
 
339
죄인으로 다시리기는 사려 임금이나 그런 사람으로 모십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도 뜻밖에 일에 놀라 버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340
그러나 더욱 놀라기는 그 집 양주입니다. 어떤 영문은 모르면서 그저 지금까지 친아들로 여기고 살던 두포를 잃은 줄만 알고 얼굴에 울음을 지으며 벼슬하는 사람의 옷깃에 매달리어 두포를 자기네들 곁에 그대로 두어주기를 애원합니다.
 
341
그러나 언제 왔는지 긴 지팽이를 짚은 노승, 십오년 전에 그들 노인 양주를 찾아와 두포를 맡기고 가던 그 노승이 나타나 그들을 반가히 맞았습니다.
 
342
“으지없는 갓난아기를 오늘날 이만큼 장성하시게 하긴 오로지 그대들의 공로요.”
 
343
하고 노승은 치사의 말을 하고는
 
344
“그대에게 십오년 전에 맡기고 간 아기는 바루 이 나라의 태자이시던거요. 이제야 역신을 물리치고 국토가 바루 잡혀서 다시 등극하게 되었으니 기뻐는 할지언정 아예 섭섭해 하지는 마시오.”
 
345
하고 그대로 두포와 떨어지기를 섭섭해 하는 노인 양주를 위로하였습니다.
 
346
그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십오년 전 당시 나라 임금께서 믿고 사랑하시던 신하 한 사람이 뱃심을 품고 난을 일으켜 나라 대궐까지 처들어왔습니다. 그런 위태로운 중에서 그 때 정승 벼슬로 있던 지금 노승이 어린 태자를 품에 품고 겨우 난을 벗어나 태자를 기를만한 사람을 물색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강원도 산골에 극히 가난하고 착하게 사는 노인 양주를 매우 믿음직하게 여기어 아이를 맡기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머지 않은 산 속에 머물러 있어 난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한편 태자로 하여금 일후 영주가 되시기에 합당한 모든 것을 가르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늘날 역신을 물리치고 나라가 바루 잡히며 비로써 태자는 임금으로 등극하시게 되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노승은 매우 섭섭한 얼굴을 합니다.
 
347
그것은 한 달포동안만 더 도를 닦았다면 태자로 하여금 하늘 아래에 제일 으뜸가는 군주가 되시게 되는것을 고만 칠태로 말미암아 십년의 공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348
만약에 칠태가 그 바위에 납을 끓여붙지만 않았더면 두포는 어깨가 날개가 돋친 장수로 온갖 도술을 부릴수 있겠으니 그런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의 장래가 어떠할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349
그러나 좋습니다. 태자는 그런 놀라운 기운과 술법을 잃어버린 대신으로 끝 없이 착한 마음과 덕기를 갖출수있어 이만해도 성군이 되기에 넉넉합니다.
 
350
다만 죄송스럽기는 마을 사람들입니다. 그런것을 모르고 칠태의 꼬임에 빠져 외람되게도 태자를 해코저 하였으니 그 죄가 얼마입니까. 백번 죽어도 모자라겠다고 모두들 업드리어 울면서 빌었습니다.
 
351
그러나 너그러우신 태자는 노엽게 알기는 사려 모든것을 용서하시고 또 그 마을에는 십년 동안 나라에 받히는 세금을 면제해 주시고 수레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352
그후 두 양주는 태자가 물리고 간 그 집과 재산을 지니며 오래 부귀와 수를 누리었습니다.
 
353
지금도 강원도에는 그 바위가 그대로 남아있어, 일러 장수 바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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