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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있어서 위대한 나라로 온 세계에 알려진 아메리카를 겨우 19일간의 체재로서 더욱이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의 일부의 도시만을 본 필자가 운위한다는 것은 지극히 난센스한 일이다. 그러나 19일간이나 단 하루일지언정 나에게는 내 스스로의 인상과 감명이 있을 것이며 10년이나 20년을 지나도 진실한 아메리카의 진상을 파악하기 힘이 든다면 차라리 단기간의 견문이 다른 각도의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된다. 솔직한 말로서 나는 아무 계획도 기대도 없이 ‘남해호’라는 배로 떠났다. 시를 쓴다는 것이나 영화평론을 한다는 일이 이 나라에서는 생활적인 직업이 되지 못하여 나는 대한해운공사의 그늘진 책상 옆을 몇 개월간을 나갔다. 물론 고정된 수입도 없이 막연히 생활은 어떻게 되겠지 하며 친우들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월급의 날을 기다렸다. 그러한 어느 날 별로 일 같은 일도 하고 있지 않았던 나에게 배를 타고 아메리카를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는 사장의 말이 떨어졌다. 꿈같은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우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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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선의로 해석하자는 것이 나의 금년에 들어서의 신조였다. 회사에 하루 종일 나가 있는댔자 신통한 일도 없고 잠시나마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별로 불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면 떠나자. 여기저기서 빚을 얻어가지고 몇 푼의 미화로 바꾸고 3일 후인 3월 5일에는 부산항과 작별을 했다. 그 익일인 6일에는 일본 고베항에 기항 9일 야반에 내가 탄 배는 태평양으로 나갔다. 14일간을 고독과 풍랑과 싸우며 나는 나로서 22일 아침에 워싱턴주의 수부(首付)인 올림피아의 거리를 바라다볼 수가 있었다. 어찌된 셈인지 어떤 목적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메리카에 오고 배의 한 인원이 된 의무로서 그 후 기항한 터코마, 에버렛, 아나코테스, 포트엔젤, 포틀랜드와 그 부근의 도시, 부락 10여 개소를 구경했다. 교통비가 비싸서 먼 곳은 갈 수도 없고 세부에 걸쳐 관찰한다는 것은 내 자신이 피하고 말았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메리카의 도시의 성격이나 구조는 인구의 비례에 따라 참으로 균형되어 있다. 터코마는 시애틀의 축소판이며 건물의 높이가 인구를 말할 뿐이다. 도심지대에는 회사와 백화점이나 극장이 있고, 그 테두리에는 공장과 학교, 교외로 나가면 주택지, 이러한 구조가 어느 곳이나 단일한 성격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여하튼 이런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입으로 우리나라에 이미 전해지고 있고 제약된 매수로 상식적인 이야기는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 좋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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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놀라운 것은 산이 푸르다. 우리나라와 같이 붉은 산만 보던 나로서는 무서울 정도로 산의 수목들이 무성한 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헴록 hemlock, 유 yew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 북서부의 수목들은 거대한 아메리카의 자원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들이 싣고 온 것도 결국 재목이었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가는 곳마다 삼림의 바다였다. 웨스턴유의 평균 길이는 40피트이며 100피트의 헴록은 온지대(溫地帶)에서는 200피트에까지 이르고 있다. 아나코테스에서 약 10여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워싱턴주립공원의 삼림의 아름다운 우아한 모습은 참으로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가 본 어떠한 도시의 대부분도 거의 재목공장이 아니면 펄프제작회사의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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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생각되는 것은 오늘의 아메리카의 원동력은 삼림에 있지 않는가 느껴지는 것이다. 최근의 아메리카 영화가 사진(砂塵)의 서부극에서 삼림과 하천의 서부극으로 옮겨진 것과 같이 재목은 집을 만들고 예전의 다리가 되고 철도의 침목이 되고 지류(紙類)로 변했다. 건물과 철도와 신문 서적은 문명국으로서의 아메리카와 결행시킬 수 있으며 오늘의 서부영화가 도달한 풍물도 이러한 데 있지 않은가 한다. 창해와 같은 삼림은 아메리카의 웅대성을 말하는 동시 그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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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자유와 질서의 발달을 의미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과연 어느 정도의 자유가 아메리카에 보장되어 있는지 단기간의 견문으로서 나는 알 수 없으나 그 질서의 확립에는 확실히 동의하는 바이다. 자동차가 보행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지나간다든가 오전 2, 3시 보행하는 사람이나 달리는 차 하나도 없는 교차점에서 두 가지의 신호등을 지킨다는 것도 쉽게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질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일상의 어느 한 잠시간도 마음의 질서를 버리고 사는 것 같지 않다. 판매원이 없어도 그 대금을 놓고 신문을 들고 가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자가 시간을 조금도 어기지 않고 작업에 열중한다는 것도 질서의 정신이다. 백화점은 개점시간이 단 1분이 지나도 어떠한 고가의 물품도 판매치 않으며 버스의 출발은 시간의 단 1분도 늦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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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은 필히 배워야 될 일이다. 나는 내가 머무르고 있는 동안 매일 신문을 샀으나 단 하나의 범죄기사를 보지 못한다. 영화나 책에서 보고 들은 범죄의 나라 아메리카와는 판이할 지경이다. 백화점과 귀금속상 그리고 은행의 문이 철문을 내리고 있는 것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며 겨우 조그마한 열쇠로 짤깍 잠글 뿐이다. 쇼윈도에는 많은 물건을 그대로 진열해 놓고 낮보다도 밝은 전등을 조명시키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사람도 유리를 깨뜨리지 않고 그저 보고만 갈 뿐이다. 거리의 청결도 그들의 질서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가는 곳마다 벽에 포스터가 더럽게 붙어 있으나 아메리카에서는 한 장의 광고 포스터도 보지 못했다. 겨우 영화 포스터가 그 극장 쇼윈도에 몇 장 걸려 있을 뿐이지 참으로 거리의 벽들이 깨끗하다. 이러한 예는 아메리카의 자랑이며 그들이 여러 면에서 질서의 관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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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로 상류계급에 속하는 인사들과 접하지 못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런 여유와 환경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배에 나와서 작업하는 노동자, 식당 주인, 서점의 주인, 자동차 회사의 세일즈맨, 중학교의 선생, 도서관장, 오일회사의 사무원 등 중류계급이 아니면 하류에 속하는 사람들밖에는 모른다. 아메리카인들은 독서를 하는 것 같지가 않다. 신문을 사도 겨우 1면(정치, 해외, 외교, 그 외 오스카상 수여식 같은 톱뉴스가 게재된다)을 훑어보고 대부분은 광고란을 보는데 그것은 물가의 저락과 생활품의 변동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관심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새 지식이나 문학 또는 철학에 정신을 돌리지 않아도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대와 생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상의 생활이 빈곤하고 항상 마음의 불안이 있는 곳에서는 국민이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든가 소설을 보고 하면서 자기의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다시 없는 즐거움이 되는데 그들은 이에 반하여 아침 일어나면 좋은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좋은 자동차로 각자의 직장에 나가 즐겁게 일하고 하루의 일이 끝나면 친구들이나 가족과 춤을 추든가 영화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집에 들어오면 텔레비전의 음악 소리를 보고 들으면 잠잘 시간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것은 너무도 평면적인 관찰이고 예에 불과한지 모르나 아메리카인은 여하튼 상식적인 것밖에 모르고 사는 것이다. 상식적이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상식에서 어떤 정신적 연령을 찾지는 못할 것이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것 외에는 알 필요도 없고 그 외의 더 이상의 것을 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정신의 소화(消化)이다. 나는 그들이 정신적으로 연령이 어리다고 여기서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 한국의 어떤 일부의 대표적인 사람과 그곳 일부의 동일한 자격의 인간을 비한다면 오히려 우리들이 정신적으로 지식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물론 아메리카 전반의 대가(大家)의 문화수준은 우리와 비할 수가 없으나 그러나 우리들이 조금도 정신적으로 뒤떨어져 있다고는 믿고 싶지가 않다. 그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할 때 우리들은 열심히 지식을 흡수한다면 아메리카 문화와 다른 새로운 문화가 우리나라에 생기고 사회와 가정의 생활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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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마다 한국과 미국 사람은 ‘주검의 친우’라고까지 해서 나는 참으로 감격하고 말았다. 더욱이 내가 간 워싱턴과 오리건주는 태평양 연안인 관계인지 몰라도 거의 대부분의 청년이 지난번 싸움에 출정했었다. 현재 트럭 운전수가 된 R이라는 청년은 서울에서 온 나를 만난 것이 기쁘다고 함께 술을 나누었다. 그리고 돌아가면 ‘YEONGDEUNGPO’에 사는 어떤 여자를 꼭 찾아가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고 전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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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다시 나가게 되고 그 여자를 만날 수 있는데…… 그러나 사실은 전쟁은 싫다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휴전이 되어 얼마나 좋으냐고 물으나 내가 우리나라의 통일은 북진하는 길밖에는 없고 전쟁만이 한국을 완전한 통일된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하는 데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아메리카는 근래 수년간 몹시 물가가 앙등되었다 한다. 그 원인은 한국전쟁 때문에 세금TAX이 많아진 까닭이라고 한다. 지극히 피상적인 생각 같으나 사실일 것이다. 거기에 전쟁에 나간 청년은 많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 청년의 가족, 친척, 지기들, 거의가 다 이곳 주민들이다. 다시 전쟁이 없으면 하고 원하는 사람은 나와 만난 사람의 전부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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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인 나와 그들 간의 의견이 오직 하나의 중대한 차이는 ‘전쟁’에 관한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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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동양인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인과 일본 사람과 중국인이다. 내가 간 지방에는 일본 이민이 많이 살고 있으나 한국인은 별로 많지가 않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한국 사람이다. 함께 전쟁을 했다는 것도 그 원인이 되어 있고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진 국민은 동양에서 제일 행복하고 좋은 민족이라고 한다. 일본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2차전 때의 적개심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포틀랜드의 어떤 고물상에서는 일본 선원에게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는 데가 있다. 우리들도 간혹 일본인인 줄 알고 멸시에 가까운 시선을 받은 적이 있으나 한국 사람이라고 안 후부터는 많은 환대를 받았었다. 중국인은 미국 사람의 관념으로서는 전부 공산주의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사실 대만에 사는 수백만과 그외 외지에 나가 있는 천여 만의 화교들이 자유진영에 남아 있으니 그렇게도 생각할 것이다. 일본서 온 이민들은 종전이 되자 수용소에서 나와 당분간을 고생했으나 재빨리 그전의 토지와 가옥을 찾고 사업에 종사한 관계상 지금 그들의 생활은 많이 향상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어떤 억압을 그들에 주고 있지는 않으나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의연히 나쁘다는 것은 일본인 전체가 그리 좋은 민족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 기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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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9일간의 아메리카를 보고 더욱 수매의 글로 적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몹시 위태로운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메리카에는 많은 선량한 사람이 좋은 나라와 화회(和會)를 만들기 위하여 살고 있으니 그러기 위한 첫걸음으로 서로 즐거운 개인과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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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55. 5. 1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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