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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수선한 문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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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5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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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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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열아홉 살 적부터였으나 그때에는 무슨 소설로 일생의 직업을 삼겠다든가 문학적으로 인기를 얻어 세상에 양명을 해보겠다든가 그러한 욕심도 조금도 없었고 그저 막연하게 소설을 짓기가 재미있어 지었고 지은 것의 활자화를 보는 것이 또 까닭 없이 좋아서 학교 공부도 여차로 집어치고 그저 소설을 짓기에 타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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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로 말하면 아직 우리 문단 초창기이어서 우리 시골 문학청년으로 하여금 눈을 떠 우러러보게 만드는 이가 겨우 몇 분밖에 없었다. 소설로 이광수, 김동인, 나도향, 염상섭, 전영택, 현빙허 그리고 시인에 김억, 노자영, 김석송 등 제씨로 문단은 자리도 잡히기 전이므로 웬만치만 쓰면 발표가 문제가 없는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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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에 손을 대기 전 이태 동안 그러니까 열일곱, 여덟 살 적에 《조선일보》에 글(논문, 감상문, 시)를 투고 발표하기 거의 연일이어서 아마 내 이름이 문단 일우에서는 알리어지기도 했던 것이 소설 발표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아무리 발표가 쉬운 시절이라 하여도 일개 무명청년의 투고가 대잡지의 창작란에 당당히 발표됨을 볼 적에 나는 내 역량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만족해했다. 이것이 문단 진출에 커다란 지장이 되었던 것임은 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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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를 하면 영락없이 발표가 되니 내 역량도 인제 그만하면 전기 선배들에게 질배 없음을 알고 좀더 공부를 하여 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철없는 욕심이 붓대를 멈추게 하고 책만을 보게 만들었다. 아는 놈이 제일이다. 눈 딱 감고 오 년만 숨어서 공부를 해내여라, 연후에 다시 붓을 잡고 나오자, 그러자면 학교도 필요가 없다. 다니던 중학을 집어치우고 시골로 다시 내려가 두문불출, 머리를 싸매고 방안에 들어박혀 일과표를 작성하여 벽에 붙여 놓은 다음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침식을 잃고 씨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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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뿔은 단김에 빼야 된다고 단김에 내받아 문단에 이름을 못 굳힌 것이 나의 문단 진출에 영향이 컸다. 그대로 작품을 계속하여 발표해서 이름을 문단적으로 굴림으로 확호한 자리를 잡아 놓아야 득책일 것을 이렇게 침묵을 지키는 동안 한참 자라기 시작하는 문단은 우후죽순처럼 신인이 머리를 불쑥불쑥 들고 나와 문단의 인원을 불리고 수준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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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씨의 주재로 창간된《조선문단》에서는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 제씨가 당선을 거치어 나왔다. 평판들이 다들 좋다. 그대로 투고를 해서 발표하는 것보담 당선을 거치어 발표를 하는 것이 문단적으로 대우도 나은 것 같다. 대체 당선이라는 것은 얼마만한 실력이기에 대우가 좋을까 나도 그것은 한번 시험하여 자신의 역량을 문단적으로 저울질하여 보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책을 놓고 다시 붓을 들어 「상환(相換)」이라는 소설을 써서《조선문단》에 보냈다. 이 또한 염치없이 당선이 됨을 보고 나는 또 안심하고 독서를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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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지(該誌) 다음 호의 창작 합평회에 당선작의 평론이 좋지 못함을 보고는 내 실력이 그럴 수가 있을까 다시 딴 작품으로 호평을 받을 당선에의 욕심을 품고 「인두지주」「최서방」이 두 편을 써 가지고 「최서방」을 골라 또 해지에 응모를 하였다. 역시 당선이 되고 선자의 평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이 당선이 나로 하여금 도리어 위신상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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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씨라든가 김동인 씨라든가 이런 문단적으로 뚜렷한 선배의 고선(考選)이 아니고 해(該)《조선문단》이 이광수 씨의 손을 떠나서 경영자가 바뀌는 바람에 그 편집을 맞게 된 최서해 씨의 고선이었던 것이니 해씨는 나와 같은 투고객으로 《조선문단》창간호에서 당선이 되었던 불과 몇 호 전의 선배라기보다 동배격인 인물에게 고선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모욕을 당한 것 같아 몹시 불유쾌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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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는 이런 위신에 관계되는 장난질은 하지 않으리라 작심을 하고 이왕 썼던 것이니 「인두지주」나 처리하자고 《조선지광》에 투고 발표를 하고는 종시일관 마음먹었던 대로 5년 동안을 줄곧 방 속에서 책을 안고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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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5년 동안에 나는 읽을 만한 책 이름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소설을 써야 할 계제였으나 좀더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욕망에서 한 5년 동안의 계획을 다시 세우고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대학에다 학적을 두고 문단과는 전연 인연을 끊고 책으로만 씨름을 하다가 돌아오니 문단에서는 내 명함 같은 것을 받으려고도 아니했다. 그렇게 문단은 건방져 있었다. 이태준, 이효석, 유진오 등 제씨가 새로이 나와서 패권을 잡고 있다시피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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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문단에 아는 이라고는 별로 없고 작품을 투고 발표하기는 싫고 하여 작품 발표의 방도를 강구하는 일편 서울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위하여 취직처를 찾는 동안, 나는 술집의 출입을 배웠다. 이때가 바로 서울에 한참 카페가 번성하던 시절로 이 카페는 청춘의 마음을 여지없이 유혹하고 있었다. 이 유혹에 나는 점점 빠져들어갔다. 밤이고 낮이고 네온싸인의 청등 밑에서 푸른 술잔으로 청춘을 즐기지 않고는 넋을 풀 수가 없었다. 밤낮이 없이 꼭 석 달을 이렇게 청춘을 위하여 술로 살고 나니 가슴이 거북하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웬일인가, 의사의 진찰을 받아 보았더니 각기라고 하면서 서울에 있지 말고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가서 정양을 하라는 것이다. 의사의 가르치는 대로 고향으로 내려가 복약 치료를 하였으나 좀체 낫지 아니하고 심장에까지 병세는 범하여 숨이 하루에도 수삼차나 멎는 때가 있었다. 글을 생각할 계제가 아니었다. 술, 독서, 집필을 일절 끊고 생을 붙잡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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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동안 문단은 점점 활기를 띠고 자라남을 따라 그 진출에 야심을 품고 덤비는 신인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였다. 이때는 어느 정도 문단도 자리가 잡혀 기성문인이 개척하지 못한 새로운 제재를 들고 나오든가 그렇지 않으면 어떤 권위 있는 기관의 당선을 거치든가 하지 않고는 문단은 쾌히 신인에게 등용의 자리를 허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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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등용이 어려워지니 출세에 위급한 문청들은 기성문단에서 화제가 되는 인기작가나 새로이 나오는 신진을 위로 아래로 돌아가며 필봉을 휘둘러 갈기는 한편 자가 선전의 깃발을 높이 들고 북을 울리어 자기의 존재를 굳히려는 공작, 잡지 편집자나 신문의 문화면 담당기자와 친분을 맺어 웬만한 글이라도 자꾸 발표하여 이름을 굳힘으로 존재의 인정을 받으려는 공작, 또는 잡지를 자영하여 자작을 발표 선전하는 일방 그 기관으로 기성문인층을 매수하여 자작에의 악평을 방지하므로 성가를 높이려는 공작 등등 이런 공작으로 등용문을 두드려 열려는 공작대가 자꾸 늘었다. 이 공작에 매수를 당한 문단의 등용문은 뒤로도 열리게 되어 앞으로도 뒤로도 신인을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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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나는 이러한 공작을 할 생각도 뱃심도 없었거니와 건강이 허치 않는 몸이어서 이 향기롭지 못한 문단의 공기를 웃음으로 넘겨다보며 속수방관을 하고 정양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어느 해 겨울, 미지의 석인해 형에게서 동인잡지 발간 종용의 편지가 왔다. 그때 좋다는 의향을 표했더니 그 이듬해 봄, 해(該) 석형은 정비석 형으로 더불어 같이 나를 찾아와 동인잡지의 발간을 실현시켜 보자는 논의였다. 이리하여 당시 그 주위에 있던 문학청년으로 석, 정, 양씨 외에 채정근, 김재철, 장일익, 허윤석 등 제씨를 동인으로 잡지 《해조(海潮)》를 서울서 발간키로 하였다. 동인잡지의 성질이 그렇듯이 우리도 이 《해조》를 통하여 있는 대로 제각기 실력을 문단에 정정당당하게 묻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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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약속했던 자본주의 불신으로 잡지는 사전에 유산이 되고 동인들은 제멋대로 제각기들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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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해조》 발간 준비의 소식이 어떻게 서울까지 전하여졌는지 당시 《조선문단》을 인계 발간하던 이학인 씨에게서 《해조》에 발표 하려고 썼던 원고를 보내 달라는 청이 있어 「백치 아다다」를 보냈다. 그리하여 「백치 아다다」가 발표는 《조선문단》에 되었으나 그 실은 《해조》가 만들어 준 나의 재출발기의 첫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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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는 「마을은 자동차 타고」라는 작품을 썼다. 지금까지 써 놓은 가운데서 제일 힘을 들인 작품으로 꽤 자신있게 자랑을 하였다. 이것을 쓰므로 나는 10여 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한 보람의 결정이라고 스스로 자위도 해 보고 자만심도 가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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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명인의 이 작품은 영업잡지에선 그리 신통한 작품이 될 리 없었다. 안서 선생의 힘으로 모 영업잡지에 소개는 되었으나 영업 정책상 무명인의 창작보다 지명인의 창작이 우선권이 있는 것이었다. 차호에 차호에 하고 해 영업지는 발표를 미루다가 원고를 잃었다는 기별이었다. 하도 기가 막히어 다시는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얼마 동안 책도 붓도 들지 아니하고 빈둥빈둥하다가 《조선문단》에서 소설을 다시 청하므로 광 속에서 해원고의 초고를 뒤져내어 절반이나 잃어진 것을 다시 생각을 더듬어 성고를 시키어 보냈더니 가운데 부분으로 200자 두 장이 검열에서 삭제처분을 받고 이 부분을 어떻게 좀 고쳐 달라는 기별이 있어 그것을 또 검열에 맞도록 고쳐 보냈더니 이번에는 전편이 통으로 삭제의 인주가 찍히어 반환이 되어 왔다. 그리하여 내 자신 역작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을은 자동차 타고」는 마침내 발표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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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는 조선사람으로 글은 도저히 쓸 수 없는 것임을 알고 문학을 집어치울 생각이 불현듯 났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이런 생각은 굳어만져서 붓대와는 차차 인연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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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빚을 지고 살던 내 가정은 濱口首相[빈구수상]의 긴축정책에 몰락을 당하여 내 손으로 밥을 벌어먹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졌다. 그해 중학에 입학을 하여야 할 자식의 학비 때문에 서울로 쫓아 올라와 이왕 배운 글이니 잡지 기자나 하여 먹으리라 《조선일보》출판부에 취직을 하고 거기서 나오는 박봉으로 학비를 대이며 먹고 살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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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직업이 잡지쟁이가 되고 보니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잊었던 창작욕이 되살아올라 「백치 아다다」 이후 틈틈이 써서 시골집 장 속에 처넣어 두었던 원고뭉치를 우편으로 부쳐다가 《조광》《여성》에 발표를 하는 한편, 제3차 출발을 꾀하고 다시 창작의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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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에 있어 뺄 수 없는 이야기 한 가지가 있다. 《조광》에 처음으로 발표한 「청춘도」는 내가 이 출판부에 입사하기 바로 몇 달 전 모씨의 손을 거쳐 《조광》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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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서를 당한 그 작품이었다. 그랬던 이 「청춘도」가 이제 같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잘 썼다는 칭찬을 받으며 인쇄의 광영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이 편집자의 태도로 보면 모씨의 손을 거쳤을 땐 무명인의 것이라 읽어 보지도 않고 몰서를 하였던 것이 빤히 드러나 무명작가의 설움을 나는 여기서 더한층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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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는 내가 글을 발표할 때마다 내려깎고 욕을 하고 문제시하지 않던 어떤 비평가는 나를 알게 되자(내가《조광》과《여성》에 관계하는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작품을 가르쳐 우리 문학의 재산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별안간 비평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고 나는 그 후 그 평가의 비평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놓았대도 곧이듣고 싶은 생각이 도무지 없어졌다. 잡지에서뿐이 아니라 비평가의 붓끝에서도 유명, 무명의 구별이 이렇게 있고, 지면 무면의 구별이 이렇게 있고 그 작가의 취직 여하에 따라서도 작품의 평가에 이러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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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枚數) 제한 때문에 세밀히 이야기를 못 하고 껑충껑충 뛰어 넘어와서 이제 붓을 놓으려고 하니 뛰어넘고 온 그 자욱이 너무도 성기어져서 이 글 본래의 주문 성질에 충실하지 못한 것 같아 적이 미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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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민성(民聲)》제5 ․ 6호 (194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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