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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왕사(無學王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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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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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學王師[무학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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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이르러 西域[서역]으로서는 指空[지공]이니 그 제자인 懶翁(나옹)이니 하는 이와, 또 중국에 가서 권위 있는 道統[도통]을 받아왔다고 크게 명성을 얻은 太古普愚[태고보우]니 하는 이들이 대개는 술법으로써 그때 조정의 寵遇[총우]를 받은 이들이니까, 다른 때 같으면 그네들이 또한 이인이나 신승으로서 일세를 풍미하였을 것이지마는, 그네들이 다 한때는 기세가 있다가도 반딧불같이 금세 빛을 잃어버리게 됨은 역시 五[오]백 년 전에 죽은 道詵[도선]의 위력에 눌리기 때문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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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고려에는 신라 말년의 道詵[도선]이란 이 한 분이 절대 전제의 이인으로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역시 말씀해야 할 것은, 고려 太祖[태조]의 왕업 開創[개창]에 대하여는 또 한 사람 전설의 이인이 있은 것입니다. 〈高麗史[고려사]〉에 ── 太祖[태조]가 즉위하던 해 三[삼]월에 泰封國[태봉국] 서울, 시방 鐵原[철원]의 장거리에서 唐[당]나라 商客[상객] 王昌瑾[왕창근]이라는 이가 한 노인을 만나니, 狀貌[상모]가 드럼차고 鬚髥(수염)이 하얗고 머리에는 옛날 관을 쓰고 몸에 도포를 입고, 한 손에는 목기 셋을 들고, 한 손에는 方一尺許[방일척허]쯤 되는 古鏡[고경]하나를 들고 있다가 王昌瑾[왕창근]을 보고 사라 하거늘, 昌瑾[창근]이 二斗米[이두미]를 주고 거울을 산대, 그 노인이 쌀을 받고, 거울을 주고는 그 쌀을 거리에 있는 비렁뱅이들에게 나눠 주고, 그만 회오리바람에 쏠려 가듯 간 곳이 없어졌는데, 王昌瑾[왕창근]이 그 거울을 저잣집 벽에 걸어 놓았더니, 은은히 글자가 있는 듯하므로 가만히 본즉 細字[세자] 一四七[일사칠]자가 있으되, 그 뜻은 松嶽郡人[송악군인]의 龍字[룡자] 이름 가진 이가 먼저 신라를 얻고, 다음 북방을 평정하여 아무 해에는 국내를 통일하리라는 것을 수수께끼식으로 글을 만든 것인데, 과연 그 글대로 되니라 하였읍니다. 이 거울을 판 백발 노인은 물론 세상의 임박한 것을 민중에게 알리기 위하여 나타난 이인입니다. 이것은 고려 太祖[태조]의 나라 배포가 사람의 뜻이 아니라 실상 하늘의 명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道詵[도선]이라는 중의 외에 또 한 사람 중 아닌 이인을 내세운 것이겠지요. 여하간 특수한 필요를 느낀 이러한 때는 예외거니와, 이 뒤 근 五[오]백 년간에는 국정 이인·관선 예언자인 道詵[도선] 외에는 다른 예언자나 이인이 고개를 들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말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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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道詵[도선]의 예언이란 것에 의하여, 앞서서는 西京[서경]을 平壤[평양]에 두고 후에는 南京[남경]을 시방 京城[경성]에 두고, 또 중간에는 江華[강화]·長湍[장단] 등지에 松都[송도]의 地力[지력]을 돋우어 주는 방술을 행하여 가는 등으로써 나라의 운명이 쇠하지 않기를 힘썼읍니다. 그러나, 道詵[도선]의 법도 이미 無靈[무령]할밖에 없는 다른 시운으로 들어왔든지, 王[왕]씨 조정에는 李[이]씨가 무서워하던 예언을 지팡이로 짚고서, 北道[북도] 출신의 무인인 李太祖[이태조] 일당의 사이에 엄청난 음모가 차차 익어 갔읍니다. 大義[대의]의 崔都統[최도통]이 앞서서 거꾸러지고 孤忠[고충]의 鄭侍中[정시중]이 마지막 넘어지면서, 三角山[삼각산] 남편에 새나라 이씨 조선이 대궐 문을 열게 되었읍니다. 王[왕]씨로부터 李[이]씨로 넘어가는 경로에 허다한 話材[화재]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시방 논제의 외에 속하거니와, 이 동안에 우리의 주의를 끄는 일은 고려 太祖[태조]의 창업에 대하여 신승 道詵[도선]이란 이가 예언적 지도의 소임을 맡았던 것처럼, 李太祖[이태조]의 창업에도 홀연 또 신승 하나가 帷幕[유막]의 최고 기밀에 參劃[참획]하고 나섰다는 일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無學大師[무학대사]라고 부르고, 이름을 自超[자초]라고 하는 懶翁[라옹]의 제자라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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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전하기를, 太祖[태조]가 아직 마음은 있으되 뜻을 정하지 못한 때에 無學[무학]이 여러 가지 예언과 술법으로써 혁명 계획의 결심을 시키고, 또 漢陽[한양] 도읍을 정하고, 대궐 이하 중요한 건물터를 잡아놓고, 이 밖에 剙業守統(창업수통)에 관한 필요한 지도를 하였다 합니다. 無學[무학]이 어떻게 얼마만큼 잘난 어른이었음은 모르되, 太祖[태조]로 더불어 특별히 深密[심밀]한 관계를 가지고 즉위하신 전후를 통하여 매우 융숭한 대우를 받았음은 〈太祖實錄[태조실록]〉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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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申年[임신년] 七[칠]월에 李太祖[이태조]께서 왕에 오르셔서 一○[일공] 월에는 이미 僧[승] 自超[자초], 곧 無學[무학]을 대하여 왕사를 삼으셨으며, 이로부터 가끔 그를 궁중에 불러 들여 담론을 들으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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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든지 太祖[태조]의 寵遇[총우]를 물을 이유 있는 것만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無學[무학]이란 이가 거죽으로 알아 볼 공부가 갸륵할 것 없음은, 太祖[태조]께서 왕사를 봉하여 가지고 수일 뒤에 그를 궁중으로 불러들여서「說禪[설선]」을 시키시고, 內殿[내전]에서까지 발을 늘이시고 들으시는데, 自超[자초](곧 無學[무학])가 제법 宗旨[종지]를 해설하지를 못하니, 陪席[배석]한 허다한 승도들이 咄嘆(돌탄)하였다는 기사가 〈實錄[실록]〉에 있음으로써 이를 짐작할 것입니다. 필시 地術[지술]이나 다른 무슨 수단으로써 太祖[태조]께는 매우 신뢰를 받았지마는 학력은 변변치 못하였던 것이지요.
【원문】무학왕사(無學王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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