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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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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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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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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올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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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論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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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이 넘어 수염에 흰 물이 들기 시작하는 내가 당신에게 연정을 느낀다면 "아이 영감두! 무슨 망녕이야!" 하고 어처구니없어 쓴 침을 삼키며 치맛귀를 되사리고 돌아앉을는지 모르나, 논개! 나이는 나이대로 먹을수록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피는 한층 더 줄기차게 뛰놀음을 억제할 수 없으니 내 정신만은 결코 당신의 사랑을 받들기에 부끄러울 것이 없을 줄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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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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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이처럼 사랑하는 것은 무슨 당신의 그 까만 눈동자라든가 웃을 때마다 연지 뺨에 오목하게 폭 패이는 우물이라든가 이런 그 당신의 가진 대로 가진 젊은 여성으로서의 미모에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은 너무도 아니오. 불행히도 어려서 안팎 부모를 다 여의고 하는 수 없이 기생의 몸으로 낙적(落籍)은 되었을망정 추호도 변함이 없는 순결한 당신의 그 마음씨에 내 마음은 흔들린 것이오. 그렇다고 이것은 무슨 스물이 갓 넘은 여자로서의 한참 시절인 더구나 기생의 몸으로 술만 취하면 야심꾸러기가 되는 뭇 사 내를 다 대해 내면서도 이렇다 소문 한 번 남기지 않은 그 순결에서가 아 니라 당신의 연연한 그렇게도 고운 몸덩어리가 4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내려오는 맑고 깨끗한 조상의 피 그대로인 것임이 내 마음을 흔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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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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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다 빨간 수건을 동이고 술잔이나 부으면 족하던 연약한 그 하이얀 손이 쳐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힘에 넘치는 무쇠 방망이를 들고 조약돌을 까 모으던 그 애국심, 그러나 논개! 그것은 당신만이 하던 일이 아니 었소. 여자면 누구나 다 할 줄 알던 애국심이오. 솥에다가 백비탕을 끓이고 마른 풀에다 화약을 찍어 말리는 역할도 당신만이 한 일은 아니었소. 그러 나 논개! 당신 같은 젊은 기생까지 이렇게 동전이 되어 막아도 막아도 승승장구로 쳐들어오는 외적은 이미 부산(釜山)· 동래(東萊)를 함락하고 상주 (尙州)로 올라오는가 하면 또 다른 한 패는 어느새 언양(彦陽)을 지나 충주(忠州)· 안성을 지러밟고 김해(金海)· 마산(馬山)을 들부신 또 다른 한패 와 합세를 하여 서울을 향하고 진주(晋州)로 쳐들어올 때 진주까지 빼앗기면 대세는 기울어지는 날이라. 나라를 위하여 몸을 떨치고 진주에 나서는 당신의 남다른 끓는 피를 나는 장하게 아는 것이오. 비봉산(飛鳳山) 숲 속 에 깃을 들였던 까마귀들도 왜병의 총소리에 놀라 자리를 못 붙고 촉석루 (矗石樓)를 아끼는 듯이 싸고돌며 까왁까왁 우짖는 구슬픈 소리에 정신없이 들으며 우탄이 퍼내리는 속에서 조약돌을 치맛자락에다 한 아름 싸고 적진으로 솔선하여 나서서 다만 한 사람이라도 막아 본다고 팔매질을 한 것도 당신이었고 성문에다 사다리를 놓고 개미떼처럼 까맣게 기어오르는 적병에게 펄펄 끓는 백비탕을 내려 부어 막아낸 것도 당신이었소. 그러나 중과부 적 3천8백 명으로 수만의 적병을 당해낼 길이 없어 하늘같이 믿었던 명장 김시민(金時敏)이 그만 적탄을 받고 마상(馬上)에서 순사하였을 때 누구보 다도 먼저 머리에 동였던 붉은 수건을 풀어 시민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씻으며 애통을 한 이도 당신이었소. 그러나 논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나라 백성으로 이만한 의무쯤은 누구나 다 가질 법한 일이오. 하지만 기생의 몸으로 지분도 다스리지 아니한다는 것은 그리고 가무(歌舞)도 일체 응치 아니한다는 것은, 그리하여 마치 상제나처럼 베적삼 베치마로 담소하 게 소복으로 단장하고 다달이 초하루 보름이면 잊는 법이 없이 불피풍우(不避風雨) 시민의 무덤으로 나아가 머리를 숙이고 분향까지 하였다는 것은 논개! 보통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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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시민과 논개와는 남몰래 정분을 통하고 있었던 게야!" 하고 뭇 기생들이 만나기만 하면 숙덕이는 이야기도 나는 들었소. 그러나 나라와 같이 믿었던 시민이었음에 그 충혼을 나라와 같이 섬기는 것이 예의라는 충의에서 나온 숭고한 당신의 마음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것은 아마 모름지기 나만이 아는 사실이 아닐는지 모르오. 논개! 그러기에 기생들이 숙덕이는 잡음도 그렇게도 시민을 못 잊어 하는 당신인 줄을 알면서도 나는 오히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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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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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함이 잘못이리이까. 잘못이라면 그 죄는 내가 다만 조선 사람이라는 죄밖에 없을 것이오. 논개! 당신이 김시민의 상복을 입을 때보다 그 상복을 벗을 때의 그 억제치 못하는 비장한 결심에 나는 실로 조선 사람으로서 아니 울 수 없었소. 의병 대장 김천일(金千鎰)이 그만 마 저 전사를 하고 진주성이 함락됨에 치욕으로 살기보다 죽음으로 생을 바꾸겠다는 고결한 마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분연히 상복을 벗게 하고 다시 지분으로 얼굴을 다스리는 한편 비단으로 몸치장을 하지 않았소. 그리하여 적장 모곡촌육조(毛谷村六助)를 술로 꼬여 등에다 둘러업고 촉석루 위에서 굽어 만 보아도 오력이 저린 천길 낭떠러지로 뛰어내려 곤곤히 흐르는 남강(南 江)의 푸른 물속에 말 없이 잠긴 그 장함 ―어찌 내 당신에게 연정을 느낌 이 무리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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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참으로 나는 그때부터 당신에게 향한 정을 잊을 길이 없었던 것이오. 그러나 논개! 당신의 그 고결하기 눈보다도 더 흰 마음이 내 마음을 받아 줄는지 몰라 거연히 말을 내지 못하고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으로만 세소위 짝사랑으로 가슴을 태여 오던 것이 숨김없는 고백이오. 그런데 논개! 나 혼자만이 가슴속 깊이 이렇게 지니고 있는 이 비밀을 ‘신인(新 人)’ 은 어떻게 알았는지 당신에게 편지를 쓰면 전해 준다고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가슴을 태우지 말고 부디 쓰라는 호의에 나는 이제야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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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수염에 흰 물이 들기 시작했다고 나를 망녕으로만 돌리지 마시오. 내 혈관 속에서 뛰는 피를 나는 자랑하고 싶소. 논개! 내 당신에게 연정을 느낌이 당신의 미모에서가 아니거든 당신 역시 내 용모에서만 나를 평가하지는 않을 줄 믿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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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그러면 부디 한 번 만나 주시오. 나는 다만 당신과 만나서 당신의 그 고결한 마음의 혼과 더불어 영원히 살고 싶은 그러한 정뿐이오. 사랑하는 논개! 부디 한 번 만나기로 약속해 주시오. 속단은 주제 넘는 일 같으나 꼭 오실 줄 믿고 기다리기로 하오.
【원문】논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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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