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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이야기를 한번 더하라고요? 그럼 그럽시다. 본전은 좀 비싸지만서도……아마 여러분도 장난은 퍽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아니, 글을 좋아하는 셈이지요. 김삿갓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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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것은 김삿갓이가 혼나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글 잘하고 장난 잘 하고 호활한 즉 자기밖에는 세상에 글쟁이도 없고 장난꾼도 없다는 듯이 간 곳마다 팔을 뽐내며 붓대 춤만 추던 이 난봉시인도 그만 한번은 욕을 당하고 혀를 내두르며 달아난 적이 있습니다. 산골 총각 훈장 놈에게 "선생님!" 하고 항복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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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크다란 삿갓을 썻것다요. 막대기를 휘휘 내두르며 정처 없이 길을 떠났겠다요. 밥 얻어먹는 데는 산골이 제일이라고 산골로 들어섰것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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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놈의 곳에 가서 어떤 놈보고 수작을 걸어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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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면서 한 곳을 다다르니까 산 밑 솔밭 속으로서 글 외는 소리가 들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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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 이놈의 곳에도 글방이 있구나. 들어가 한번 떠보고 가리라. 이까짓 산골 훈장 놈이 야 더군다나 똥을 열네 말 쌔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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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글방을 찾아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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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글방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더벅머리 아이들이 주먹으로 코를 씻으면서 흥얼흥얼 하며 글을 짓고 있던 모양입니다. 어떤 놈이 훈장인고 하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훈장 비슷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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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애가 코를 훌쩍하고 들이마시더니 먹과 땀 묻은 손으로 이마를 타 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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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선생님이요? 계셔요. 이 어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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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랫목에 앉은 25,6세쯤 된 총각을 가리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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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 총각 훈장이로구나! 요놈 똥 좀 싸볼래!' 하고 삿갓을 벗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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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인사를 청했습니다. 총각 훈장은 그 딴에 그래도 선생이라고 좀- 건방을 피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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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요놈 보아라. 두메 강아지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고 요놈 참 맹랑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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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짓습니까. 문제는 무언가요? 저도 한 귀 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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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훈장은 같이 글 짓자는 바람에 다시 한번 거들떠보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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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 짓습니다. 문제는 '화삼월불멸(火三月不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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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三月不滅'이라는 것은 불이 석 달 동안 그치지 않았다는 말인데 이 말은 옛적 동양에 유명하였던 진시황의 아방궁을 역발산기개세(力發山氣盖世)하든 항우가 불을 질러 태워 버리는데 어떻게 굉장히 큰집이었던지 불길이 석 달을 가도 그치지 않았다는 유명한 역사적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 다음 기회 있는 대로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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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것 봐라. 글제는 제법 큼직하게 내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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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비비고 들어앉았습니다. 그리자 어떤 노랑대가리 물렛줄 상투 새 서방쟁이가 코를 골작골작하며 눈이 말똥말똥하여 글을 생각하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안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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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오. 손님. 글 잘 지으실 줄 아시면 나 첫 귀 하나만 불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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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위수탕탕동류거하니 강동어부습증어(渭水湯湯東流去 江東漁父拾蒸魚)'라고 단바람 한귀 불러 버렸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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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 물이 꿇고 끓어 동편으로 흘러가니 강동 땅에 고기 잡는 지아비가 찐 고기(삶은 고기)를 줍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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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말입니다. 즉 아방궁 붓는 불이 석 달이나 계속하니까 위수라는 강물이 끓고 끓어 자꾸 동으로 흘러가니까 강동 땅 고기잡이꾼들은 찐 고기를 주울 밖에 있습니까. 이 글을 부르자마자 모든 학동들은 눈이 둥글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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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그 손님 보기와는 다르다. 삿갓은 쓰고 다닐망정 제법 하는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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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던 총각 훈장은 가장 건방을 피며 픽 웃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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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그렇게 약해서 무엇에 쓴단 말이냐. 내 한 귀 부를게 받아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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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 귀 부르는데 이야말로 김삿갓도 똥을 스물네 말이나 싸리 만치 엄청나게 뛰어난 글입니다. 무어라고 불렀는고 하니 '화염이직상구만리하니 상제무문왈열열(火焰直上九萬里, 上帝撫臀曰熱熱)'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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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곧추 구만리나 올려 찌르니 상제가 볼기짝을 어루만지며 에 뜨겁다! 에 뜨겁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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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입니다. 즉 아방궁 불길이 어찌 맹렬한지 구만리나 올라 찌르니까 옥황상제가 ‘에 뜨거워! 에 뜨거워!’ 하면서 볼기짝을 만지며, 일어섰다 앉았다 하드라고 했으니 얼마나 씩씩하고 기운 뻗친 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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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것 봐라. 이놈 참! 어른 잡아먹고 똥 쌀 놈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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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인사도 못하고 삿갓을 집어 들고 그만 달아나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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