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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과 기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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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3.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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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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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것도 참외 먹기와 꼭같다. 칼로 배꼽을 베물어 보아 빨갛게 빛이 우든가 그러지 않으면 새파랗게라도 빛이 우든가 종류에 따라선 하얗게라도 익어 속이 배잦아든 놈이라야 구미가 동하지 빨갛지도 파랗지도 하얗지도 않고 퍼러등등한 살갗에 눈물만이 비죽비죽 내돋는 놈은 먹어 봤댔자 맛이 없을 게 빤히 내다보여 구미가 동하질 않는다. 구미가 동하질 않는 놈을 억지로 먹는 재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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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처음 서두를 베풀어 보아 단 한 줄에 벌써 그 작품의 가치는 인정이 된다. 문장이 멋들어지지도 않고 맵시도 없고 또 정확치도 못하게 씌어졌다면 이것은 구사능력 미숙의 반증이니 이 능력이 부족한 작가가 아무리 좋은 제재를 취급했댔자(취급할 관찰력도 없겠지만) 그 제재를 요리시킬 수가 없을 건 정한 이치일 것이다. 그 어떤 의무로서가 아닌 바에야 무엇을 보자고 이것을 읽어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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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은 이렇게도 말한다. 문장은 서툴러도 내용만 좋으면 살로 갈 수 있지 않으냐고, 그러나 아무리 좋은 종류의 참외라도 어느 정도까지 익지가 않으면 그 참외는 참외로서의 제맛을 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익는 데 참외가 참외로서의 가치를 지니듯이 작품도 익기 전에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못 지닌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못 지닌 작품이 무엇으로 살이 될 것인가. 작품에 있언 그저 기교가 절대한 조건임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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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라는 걸 사람으로 쳐 놓고 입은 옷에다 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기교가 내용을 만드는 것임을 모르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교중치(技巧重置)란 말은 좀더 말이 안 되는 말이 된다. 기교적일수록 그 작품에 생명은 붙게 됨으로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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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렇게 악문이라도 그 내용 때문에 오히려 문장이 유려한 투르게네프보다 세계적으로 더 명성을 사지 않았느냐고, 내가 노문(露文)을 읽을 힘이 없어 그 문장을 감상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을 살릴 만한 그만한 기교 정도는 되었기에 그 내용이 독자의 가슴에 충격을 주었지, 글을 만들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것이 읽혔겠느냐 말이다. 만일 토스토에프스키의 기교가 좀더 기교적이었더라면 좀더 높게 독자의 정신을 황홀케 하였을는지 몰랐을 것이다. 기교를 무시하고 좋은 작품을 말한다는 것은 한낱 망상이다. 기교라면 거의 세련된 문장 구성의 묘법이 혼연일치되어 표현되는 그 과정을 말하게 되는 것으로 이 과정이라는 것이 내용에 피가 되어 엮여 나가는 것이다. 여기엔 문장의 재주가 지대한 조건이 된다. 이렇게 절대적인 이 기교를 기교중치라고 하는 것은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는 말밖에 더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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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를 부리다가 제 재주에 넘었다는 말을 나는 어떤 평론가에게서 일간 들었다. 예술은 씨름과는 다르다. 씨름은 운동이니까 제 재주에 넘는 수가 있어도 작품은 예술이니까 절대로 기교에 실패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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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는 근일 출판한 전작소설 서문에서 ‘기교와 이데올로기로 좋은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이야기는 모든 기교와 이데올로기를 빼련다’고 말하였다. 기교를 무엇으로 아는 말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이 되게 써 놓은 그 글부터도 기교의 덕이다. 기교 없이 어떻게 말의 정리를 시키며 삼백여 페이지의 방대한 긴 글을 독자로 하여금 읽히게 끌고 나가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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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말이 씌어 있다. ‘신문기자가 기사를 쓰듯이, 사진사가 사진을 박듯이 아무 사정 없이 그려 보련다’고. 신문기자가 기사를 써도 기교를 요하여야 되고, 사진사가 사진을 박는 것도 기교를 요하여야 된다. 거리의 핀트, 광선의 주입 등 이건 다 기교가 아니고 무엇일까. 사진기만 가지고 사진을 찍는 수는 없다. 신문기자란 명목만 가지고 기사를 쓸 수는 없다. 쓸 줄은 알아야 하는 것이고 이게 다 실로 기교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사진을 박는다는 것, 신문기사를 쓴다는 것, 그것이 벌써 기술을 말하는 것이다. 기술 없는 사진사가 아무리 좋은 경처(景處)를 보고 흥이 나서 쩔걱쩔걱 셔터를 눌러댔자 그 경처가 제대로 찍혀질 리 만무할 것이다. 기교라는 것을 무슨 사실 아닌 것을 거품으로 꾸미는 것으로 아는 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작품 제작은 어디까지든지 기교를 요하게 되는 것이다. 문장에도 기교, 구성에도 기교, 내용에도 기교다. 정확한 관찰, 예술적 제재, 이것들의 보는 법과 취하는 그것도 일종의 작가적인 기교에서라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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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못 쓰는 글을 쓰는 것은 그건 무엇 때문일까. 글 쓸 줄을 아는 기교가 있기 때문이다. 남도 쓰는 글을 남보다 더 잘 쓰는 것은 그건 무엇 때문일까. 남보다 기교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기교란 위장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사실처럼 만드는 말하자면 피를 제조하는 심장으로서의 꼬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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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그것부터가 벌써 기교를 전제하고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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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백민(白民)》(1948. 3.)
【원문】작품과 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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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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