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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금(昨今)의 신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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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2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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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昨今)의 신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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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 소설론을 위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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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연재되는 장편소설이 가는 방향을 찾아보려는 생각을 가진 지는 퍽 오래 전부터이어서, 그 때부터 될 수 있으면 빼놓지 않고 읽어 보려고는 하였으나, 여행도 하고 병도 앓고 하는 때문에 좀처럼 예정대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전부를 한 회도 뽑아버리지 않고 다 읽어야 할 것인데 이런 의미로서 통독을 하였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물론 없고, 작품에 따라서는 일주일쯤 버틴 것도 많고 전혀 못 읽은 것도 더러 있으니 아직도 내가 결론을 찾아보는 것은 조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사람인 이상에는 보다가 불쾌한 곳을 건널만한 기호(嗜好)의 자유는 용허(容許)될 줄로 생각하고 가끔 들고 보던 신문지를 내던진 적도 있고, 최근에는 나의 가정경제가 자못 위태한 때문에 『매일신보』처럼 학예면이 없는 신문을 사서 볼만한 여유가 없어져서 그리도록 인기가 있다는 박월탄(朴月灘) 선생의 연거푸 연재되는 소설도 못 읽어보았고 새끼 꼬는 기계처럼 술술 잘 써내는 방인근(方仁根) 선생의 글이나 요즈음 새로 싣게 된 나의 우인(友人) 엄흥섭(嚴興燮) 씨의 재미 있는 소설을 즐길만한 기회조차 놓쳐버리고 있다. 어디 『매일신보』 애독하는 집이나 사무소나 시골 갔을 때엔 구장댁 같은 데나 놀러갔을 적에 가끔 연재소설을 중턱에서 잘라서 한 회쯤씩 읽어보곤 하였으나, 내가 그런대로 소설이라고 그적거리는 덕분에 상상을 맹렬히 해가며 사랑을 속삭이고 알계(計計)를 거듭하고 원망하고 칼부림을 하고 하는 장면을 영화의 스틸을 보는 그대로 즐겨 보았는데, 그걸 갖고 독후감을 적는다는 건 요즈음 우리 문단에 횡행하는 귀재와도 달라 나 같은 둔한 자의 가히 할 바 못된다. 그러나 사실을 털어놓고 말하자면 비단 이 신문에 한한 것은 아니로되, 가금 읽어가다 이것이 10년 전의 낡은 신문지가 아니었는가 하여 일부(日附)를 보게끔 될 적이 많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그건 어쨌건 요즘 신문에 연재되는 장편소설을 범연(泛然)한대로 대충 분류해보면 순수소설, 순수와 통속의 얼치기, 현대 통속소설, 탐정소설, 영화소설, 야담소설 등등인데 순수 소설이라고 볼만한 것은 요즈음 없다시피 희귀해졌다. 어떤 것이 순수소설이냐 하면 물론 본격소설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신문사에서 10여 조목 조건을 내걸고 이런 걸 써달라고 하지 않았고 또 의식했던 안 했던 간에 작품을 보아 그다지 신문의 독자를 고려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정도로 말하는 것인데 얼마 전까지는 이런 류의 것은 퍽 많았다. 춘원이 『무정』을 쓸 때도 그러했을 것이고 상섭이나 동인이 과거에 신문에 연재했을 때에도 별반 그런 요구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춘원이 『동아일보』에 있을 때 사(社)에서 이순신(李舜臣)을 써라, 무얼 써라 하고 갑작스레 집필을 강요했다고 김동인 씨가 『춘원연구』에서 ‘문학을 모르는 『동아일보』’라고 욕설 비슷한 말을 한 것만 보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고 내가 눈으로 경험한 것만도 작자에게 신문사가 그다지 무리한 말을 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인 상싶으다. 벽초(碧初)의 『임꺽정(林巨正)』은 물론 아직도 사(社)의 압박 외(外)에 있는 것이 분명하고 채만식 씨의 『탁류』같은 것도 그랬음직하고 이기영 씨의 『신개지(新開地)』는 작자 자신의 입에서 들은 말이어니와 사에서 힘껏 마음놓고 예술소설을 쓰라고 했다고 하니 그것 역시 그러했고, 그러고 보니 이런 걸 써라 저런 걸 써라 하고 따져서 요구하기 비롯한 것은 최근의 일인 것 같고 또 그것도 사람 따라 다른 것도 같다. 결국 요즈음의 대신문의 신문소설에 대한 방침은 일정한 것 같긴 해도 또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조선일보』같은 데는 신문 소설 심사위원회가 생겨서 이런 것에 퍽 유의할 뿐 외(外)라 조직적으로 기획하는 모양 같으나 그 구성위원이 보아하니 어디 신문소설이라고 제법 알 만한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어느 신문사에선가는 경판(京販)주임인가 소장인가 하는 자를 불러다 배달부의 말이 어떻드냐고 인기 있었던 작가를 물었다는데 대체로 이 인기란 게 망측하고 흉악해서 김말봉(金末峰)이나 한용운(韓龍雲) 같은 이가 척척 첫 손에 꼽히는 모양 같다. 때로는 윤백남(尹百南), 신정언(申鼎言)도 입에 오른다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김말봉의 소설을 보면 원체 주어, 술어가 안 맞는 것이 많고 좀 길다란 센텐스는 시작과 끝이 뒤틀린 것이 수두룩하다. 안회남 씨는 가끔 문장의 뒤틀린 걸 하나하나 세어도 보고 또 문장 취미를 아직 놓치지 못한 모모 씨 같은 분들도 이런 데 유의하는 모양이나 나는 물론 그러한 취미는 본시부터 없다. 읽어가다가 도무지 어이된 일인지를 모르고 허둥지둥하던 김에 발견하곤 하는 것인데 이것이 인기가 있다고 하니 인기가 있다는 말이 어느 정도 참말인지는 김여사의 단행본의 ‘매행(賣行)’이 점차 증명해 주겠지마는 어쨌든 인조견 유행의 시절인지라 과히 헛소리도 아닐 것 같다. 김여사와 더불어 인기 경주를 할 생각을 하면 어째 소설에 붓을 대었는가 하고 전생의 업원이 생각키인다. 한편 한용운 선생으로 말하면, 내의 알기엔 청렴하고 지조가 있고 사상도 퍽 고결하고 또 그밖에 우리들 시정의 청년배와 달라 무슨 대본산(大本山)인가의 성직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흑풍(黑風)」이든가 「박명(薄命)」이든가를 보아오면 도무지 어이된 평판(評判)인 걸 알 수 없다. 이야기즉슨 황당무계담과 권선징악담인데 이걸 그래도 현대소설이라고 쓰고 계시니 선생의 심장도 심장이려니와 우리 청년이나 또는 문단에 대한 모욕이 이만 저만치 않다. 물론 문학을 위하여 쓴다든가 인류문화를 위하여 쓴다든가 그런 생각은 없겠지만, 그렇다면 결국 생활을 위해 쓴다는 말밖에는 없겠는데 성직에 앉으신 이로서 생활을 위하여 소설을 쓴다는 건 이 또한 당치않은 말이다. 요즈음 흔한 파계승이라면 모르거니와 선생은 청렴하고 지조 높은 것으로 일세의 사표(師表)이다. 어이 문학을 모욕하고 예술을 유린하여 기성(旣成)의 인망을 팔아 김말봉 여사나 야담가와 어울려 시정의 인기를 다툰단 말인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의 하나이니 어느 누구든가 선생의 예찬자 한 분이 나서서 변명해 주길 바란다. 독자의 인기란 게 대개 이러한데 또 하나 좀 이상한 건 어느모로 보나 장백산처럼 높이 인기의 절정에 서있는 춘원의 일이다. 신문소설에 있어 선생의 인기는 누구보다도 가장 크다 하였는데 선생의 최근의 장편 『애욕(愛慾)의 피안(彼岸)』은 그렇게 장황스레 선전을 하여도 1년이 지나도록 재판 소실이 없는 건 어이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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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수상스러운 건 신문사 사람들의 말이 홍명희(洪明熹) 씨의 『임꺽정』이 시골서는 굉장한 인기라고 한 달에 두세 번을 내어도 좋으니 끊지만 말아달라고 한다니 대체 ‘인기’란 말은 해득해볼 길이 없다. 물론 이상 인기의 높고 낮다는 말이 각각 뉘앙스가 있어서 어떤 층의 인기인가를 가히 짐작할 수는 있으나 요즈음 신문소설의 심사자들은 ‘인기’의 최면술을 당하지나 않았는가 모르겠다. 좀더 ‘인기’가 정돈되었으면 좋겠는데 신문이 갖는 문화적 의의가 결코 이만저만치 않은 것과 조선에서는 장편소설이 신문밖에는 게재된 기관이 없다는 것과 (요즈음 전작 장편이 새로 나오기는 하나) 상업주의란 것도 좀더 냉정히 생각할 성질의 것이라는 걸 재삼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줄 안다. 누가 한마디 투서나 했다던가 배달부보고 지껄이기나 했다던가 지국(支局)기자의 취담(醉談)을 들어 갖고 전 독자의 인기를 속단함이 없도록 할 것이다. 대체 신문사로 투서를 한다든가 배달부에게 소설론을 한답시는 애독자란 게 어떤 부류이고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신문사의 밥을 먹어본 덕택에 잘 알고 있지만 이런 걸 상대로 인기를 운운한 게 도대체 저널리스트로서의 센스의 결핍에서 오는 수작이다. 이보다는 단행본 팔리는 걸 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하다 할 것이다. 신문이 기업화하여 전날처럼 희생적인 문화 비판, 계몽 기관이기를 그만두고 상업주의로 기울어지는 건 불가피한 추세라 치더라도 기업화면 기업화, 상업주의면 상업주의로 제대로 격이나 갖추면 제법일 것이 이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소설가를 자꾸 유행 가수와 함께 한마당에서 경주만 시키려드니 가탄(可歎)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음대로 쓰라고 한데도 마음놓고 쓸 수 없는 경향이 이래서 생겨나는 모양 같다. 이태준 씨 같은 이는 영리한 분인지라 나를 갖고 말하려면 단편만 갖고 평가하라고 씨의 장편을 온통 신문사의 책임으로 돌려 미는데 그렇게까지 말한다고 하여도 물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멍텅구리 비평가는 없을 것이지만 이무영(李無影) 씨 같은 이도 『명일(明日)의 포도(鋪道)』를 쓰면서 어지간히 고충을 맛보는 모양 같았다. 박태원 씨를 시골 갔다와서 만나 “요즘 퍽 노력하시더군”했더니 “아주, 쩔쩔 맨다는 말이지”하면서 공연히 손을 대었더니 아주 죽을 지경이라 한다. 대체로 문학이 일상성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나 오입(誤入)이 아닐 것이다. 아카데미즘이 시사성이나 일상성을 배격하는 것은 자신이 학문과 진리의 영역에서 멀리 떠나 학문 봉쇄나 진리 유린에 이르러 있는 것을 말함에 불과할 것이다. 일상성이나 시사성을 떠나는 데서 문학이 융성하는 것도 행복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일상성과 시사성의 가운데 침투하여 대중의 생활 속에서 비판력과 정서를 배양해주고 진정한 향락을 누리게 하는 것만이 문학의 본래의 정신이다. 불행은 그러므로 이 일상성과 시사성을 그릇되게 피상적으로 오해하는 데 유래한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진정한 시사란 비판이나 변별이 서지 않은 곳엔 없는 것이며, 일상성이란 것도 역사의 동향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이 서지 않은 곳엔 있을 수 없는 것인데, 이곳에선 시사성이나 일상성을 국한된 일부의 저급한 독자의 취미나 기호를 추수하는 곳에 성립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사적 흥미나 일상성이란 것이 오히려 추잡하고 우연적이고 엽기적이고 감상적이고 색정적인 것을 물리치는 가운데서야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신문 당국자나 신문소설 집필자나 한가지로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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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도 진(盡)해가고 또 『비판(批判)』지가 내게 요구한 것이 무인(戊寅)년에 실린 신문 연재소설의 총평인 것도 같으니 총평은 현재 한창 연재되고 있는 놈을 이러니 저러니 분석하는 것도 허사이고 이미 끝난 것은 하나하나 스크랩에 따둔 것도 없고 하니 이 역시 평세(評細)한 비평이 불가능하고 또 첫 회에서 마감 회까지 한번도 빼지 않고 읽었다는 자신이 서지 않아 부득이 할 수 없겠으니 그런 대로 대충 단평 혹은 단상을 적어보는 정도로써 책임을 모피(謀避)할까 한다. 그래서 별로 고증이나 조사를 하지 않고 기억과 인상에 남은 대로 요즈음 연재된 것의 독후감을 적어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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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봉 여사는 작금 『동아』, 『조선』양대 신문에 『찔레꽃』과 『밀림(密林)』을 썼고 현재 『밀림」속편을 쓰고 있는데 불행히 나의 붓은 아직 인조견의 재단도(裁斷刀)가 아니고 또 나 자신도 이렇게 무책임한(?) 글을 쓰고 있기는 하나 인조견 두루마리의 재봉사는 아니므로 이 대 장편의 분석의 노(勞)는 다른 분에게로 넘기고자 한다. 이원조 씨 같은 이는 「신문소설 분화론」과 「김말봉론」에서 이 작가를 중시하였는데 아마 우리 문단치고 이렇게 처음부터 스푸도 못되는 인조견을 금점꾼 모양으로 번지르르하게 감아두르고 나선 분은 하나도 없다는 의미에서라면 나도 김여사를 중시할 아량이 있기는 하나 그러지 않아도 우리 우인(友人) 작가들이 신문소설에 희생되어 아까운 청춘을 낭비하는데 이 이상 더 그런 것에 관심을 환기시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오히려 이런 류의 소설이 청산되어야 신문 독자의 건전한 취미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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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씨는 말하자면 김여사나 한용운 선생 같은 인기에 자꾸만 밀리는 축인데 그래서 씨와는 다소 체질에 맞지 않는 「어머니」를 『조선일보』에 썼다가 적잖이 땀도 흘려보았다. 다행히 『동아일보』의 「신개지」에서 씨는 다시 씨의 본토로 돌아왔는데 「신개지」를 읽은 뒤 말해보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나 한 가지 이곳에서 경향문학 당시의 유물인 집단 묘사가 소설 구성을 해체하고 있다는 점만 들어서 말해보고 싶다. 「고향」도 집단 묘사라면 집단묘사인데 이것이 구성의 골격을 상실치 않은 것은 그 소설을 관류하는 사상적인 색채에 의한 것이었으나. 「신개지」는 이 사상이 없고 그대로 집단이 개(個)와 사회와의 빈틈없는 성찰에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구성이 몹시 흩어진 감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문학 당시 집단묘사라는 걸 감히 제창하고 실천해 보았는데 이것을 재검토하고 이 재검토를 갖고 장편소설 개조론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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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신개지」를 나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위 신문소설로서는 성공했는지 못했는지 나의 분석할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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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섭(朱耀燮) 씨의 「길」을 『동아일보』에서 읽으면서 나는 누차 의심했다. 십여 년 전 중학생 때에 나는 씨의 「개밥」이란 단편을 『동광(東光)』에서 읽은 일이 있는데 「길」의 수법은 그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태호가 음악회장에서 나와서 이전(梨專) 선생인 우인(友人)과 이전 학생과 이야기하는 대목이라던가 태호가 산등에 올라가서 과거를 회상한다고 하면서 비로소 소설의 상반을 구성해보려는 이러한 진부한 수법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생각하면 희한(稀罕)도 한 일이고 더욱 탄복도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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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적 어휘의 부족으로 인한 섬싹하고 김빠진 묘사에다 인물창조라던가 성격을 형성시키는 태도가 여간 관념적이고 노둔(老鈍)하질 않으니 어디에 현대인다운 센스가 엿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 보는 턱까지에는 한 장면도 한 인물도 가상(可賞)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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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玄鎭鍵) 씨의 「무영탑(無影塔)」은 연애담이라는 게 오히려 가당할 것이다. 대체 춘원, 상섭, 동인, 빙허 이렇게 대가라는 이를 생각해보면 빙허는 그중 빠지는 편이고 그 중에도 묘사술을 전혀 갖지 않은 분같이 생각키인다. 아직 『조선문단』에서 보던 때와 같은 미문(美文) 취미를 버리지 못했다는 건 씨의 관록으로 보아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일이고 역사적 자료에서 취급하면서 만년연애형을 되풀이하는 건 현대소설의 세련을 덜 받은 무엇보다도 큰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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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야 씨가 「이야기에서 로만에」라고 장편론을 썼는데 한용운의 「박명」과 아울러 빙허의 「무영탑」은 설야 씨의 이른바 이야기에 속하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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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는 박태원 씨의 「우맹」과 벽초의 「임꺽정」과 한용운 씨의 「박명」이 연재되고 있는데 박씨의 「우맹」은 일 년간의 노력만을 헛되이 빼앗은 데 지나지 않았다. 체질을 무시하여 힘써본 결과가 이러하니 우리 청년 작가들에겐 좋은 교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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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의 「임꺽정」이 역시 위대한데 이에 대하여 따로이 이야기해볼 기회도 있을 듯하여 이 자리에선 언급치 않겠다. (戊寅[무인]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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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제52호, 193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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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