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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의 순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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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3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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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의 순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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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시 수필을 쓸 기회를 일부러 멀리하는 버릇이 있었다. 내 생각으론 수필은 상당한 연령을 거듭하여 인생에 대하는 태도가 확고불변해지고 세계에 관한 만반의 지식이 어떤 커다란 줄거리 위에 정비되어 장난삼아 하는 한 마디 농담이나 좌담에도 휘일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높은 견식이 나타나 오는 때에야 가히 근접할 수 있는 문학적 형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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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강남을 그리는 마음’이라는 수필 제목을 받고 나는 언뜻 최근의 신문 지상에서 매일 같이 보는 그러한 ‘강남’인가 하였다. 다시 말하면 양자강 이남의 지나! 생각해 보면 내 일찍이 남지나에 놀아본 일이 없으나 그곳을 동경할 수는 있는 터이라 혹 물정이 소란하고 포화가 드날리는 그 곳에 대한 그리움을 잡지는 기록하라 하는 것일는가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 나 또한 아직 시퍼런 청춘인지가 석탄재에 싸인 황혼의 겨울 거리를 할 일 없이 헤매이느니 훌쩍 몸을 떨쳐 강남의 전화(戰火) 속에 몸을 던지고 싶은 ‘그리움’도 없는 것은 아니나 역시 ‘강남’이란 두 자로 하여 이러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탈선이라 하고 이 글자 위에 새로운 해석을 붙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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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이란 어느 곳을 말함일까. 나는 이 글귀가 ‘강남 제비’나 ‘강남 갔던 기러기’니 하는 구절과 함께 6, 7세 시 어린 시절에 받아들인 숙어일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서도 역시 어의(語義)는 뚜렷하게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그것을 한강 이남으로 해석하고 아니 어느 곳이든지 좋으니 북방과 구별되는 남방이라는 뜻으로 작정해 놓고 이 수필에 붓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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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강남을 그리는 마음은 정히 북방인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동시에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마음일 것이다. 아니 그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에 만족치 아니하고 항상 이상을 좇아서 멀리 달아나려 하고 높이 솟아오르려 하는 청년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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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생각과 인연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삽화를 내 자신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의 ‘펜네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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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천(南天)’이란 이름을 처음 쓴 것은 스물 한 살 되는 해 정월이다. 신간회가 없어지고 예맹이 가장 정치주의에 빠져서 섹트적 과오를 범하던 시절이며 동시에 내 자신의 내의 모든 것을 정치의 위에 걸고 이 곳에 엄연한 역사적 판단을 구하려던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긴장하고 흥분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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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위하여는 예술을 버려도 좋다. 예술의 대가(大家)가 되는 것보다 정치의 병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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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입으로도 중얼거렸고 혼자 결심도 하였었다. 그러나 이 바쁘고 긴장한 시기에 나는 밤마다 틈을 타서 동경 하숙의 이불 속에 허리를 구부리고 조그만 이야기를 소설과 희곡으로 꾸미고 있었다(이 중의 하나는 「조정안(調停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밑에 서명을 할 때에 나는 ‘김남천(金南天)’이라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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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그 때에는 가명이 유행하고 별호가 행세를 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그것의 대부분은 ‘철(鐵)’‘철(哲)’‘맹(猛)’‘악(岳)’‘민(民)’‘건(健)’‘권(拳)’등등의 굿세고 씩씩하고 쇳덩어리 같은 글자를 쓴 것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외자의 이름들이었다. 그리고 그 글귀의 표현하는 바도 한결같이 민중을 사랑하는 극진한 애정이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사상과 의지의 굳건함이었다. 지금 문필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도 마치 영락한 귀족의 프록코트 모양으로 이 시대의 기념물로 그러한 이름들을 남겨 가지고 있는 것을 가끔 보고 나는 혼자서 감구지회(感舊之懷)를 깊게 하는 때가 있지마는 그 때 내가 새로 지은 이름은 몹시 섬세하고 문약(文弱)하다 하여 말썽까지는 안 일으켰으나 면대해서 ‘센티하다’느니 ‘문청(文靑)답다’느니 하는 조롱은 수없이 많이 받았었다. 그리하여 어째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가 하는 물음을 가끔 받으면서도 그대로 그 뜻을 설명하지 않고 표정의 어느 구석에 씽긋이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것이 당시의 나의 예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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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이러한 정경과도 흡사하다. 그 때 학생들 간에는 특히 문학을 애호하는 학생들 간에는 ‘괴테가 훌륭하냐 프로 작가가 훌륭하냐’ 하는 류의 의문이 퍽 많이 유행하였고 그것은 그대로 흘러서 ‘괴테가 위대하냐 내가 위대하냐’ 하는 의문을 스스로의 마음에 은근히 묻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대답은 직선적이다. ‘괴테보다 우리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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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서슴지 않고 대답해버리는 열오른 눈동자가 어떠한 ‘갭’을 자기의 마음속에 메워버리려는 거짓 없는 격렬한 호흡으로 질식할 듯할 때에 홀로 자기가 하나의 높은 허위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이 불쑥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어찌 나 혼자만의 일일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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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그대로 바쳐버려도 그리고 자기의 몸에 붙고 따르던 일체의 것을 그대로 던져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퍼나스틱한 열정은 이러한 리얼리스틱한 몽상의 소치일는지도 모른다. ‘예술을 버려도 좋다!’는 자기의 주체를 망각하여 높이 비상하려는 누를 수 없는 정치욕도 또한 이러한 강남을 그리는 마음의 소치는 아니었던가. 그리고 런던의 객사에서 방대한 저술에 종사하던 선구자들의 마음을 강렬하게 붙드는 것도 또한 이러한 순결한 몽상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입으로는 정치의 졸병을 자처하면서 밤깊이 돌아오는 외로운 추운 하수에서 적은 이야기를 꾸미고 그 곳에 센티멘털한 서명을 하는 20 후의 청년의 마음을 오락가락하는 따뜻한 혈조(血潮)의 고동과도 같지는 않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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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러한 강렬한 꿈이 깨어져서 내 홀로 종이 위에 이 글을 적으면서 아직도 생활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자기를 세워보려는 겸손하고도 결코 녹녹치 않은 하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끊임없이 강남을 그리워 머물 줄을 모르는 몽상의 순결성의 소치는 아닐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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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현실에 헛되이 비관하여 생활을 떠난 현실도피의 가운데서 하잘것없는 공상을 향락하든가 관념의 세계를 여행하는 로만티크의 몽상과는 판이하다. 겨울이 간 뒤에는 봄이 온다는 확고한 신념, 과거에 있은 것과 현재에 있은 것이 미래에 있을 것과 연관을 가지고 유구하게 흐르고 있다는 리얼리스트의 강렬한 역사적 인식의 위에 이 몽상은 건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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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강남을 그리는 마음은 나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청청한 젊은 사람을 ‘겨울’의 마음이요 동시에 얼음과 눈으로 쇄폐된 ‘북방인’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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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1938년 3월호, ‘강남을 그리는 향수’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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