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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批評)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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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5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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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評[비평]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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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떤 개인인 비평가에게 주는 것은 아닙니다. 비평가 전체, 또는, 조선 문예 감상가 여러분에게 지금 조선 비평계에 너무 그릇된 것이 많기에 한낱 注意[주의]거리로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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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기, 비평이라 하는 것은, 사회비평을 말함도 아니고 문명비평을 말함도 아니고, 다못, 문예비평― 창작비평에 대하여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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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있어서 “조선에 비평가가 있느냐” 고 물으면 나는 거기에 대답 못하겠읍니다. “있으면?” 이리하여 쓰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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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비평의 존재할 필요는 무엇일까요? 비평은 그 비평을 받는 작자를 지도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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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여기, 비평으로 말미암아 좌우하는 작가가 있다 하면, 그 작가는, 자기의 표준이 없는 작가이니까 존재할 필요가 없는 작가입니다. 확호불변의 푯대가 있는 작가는, 천만 사람이 부르짖더라도 움직도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비평’ 은, 작가를 지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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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민중을 지도합니다. 감상력이 부족한 민중에게 감상법을 가르치는 것― 이것이 비평의 직책이요, 비평의 존재할 필요입니다. 그러면, 비평가는 가장 침중한 태도로 작품에 접하여, 모든 결점 선점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평가의 상대자가 그만 한낱 작가면 좀 그릇 평하는 점이 있어도, 작가에게는 푯대라는 것이 있으니까 괜찮아도, 그 상대자가 전 민중일때 ―그것도 문예 감상력에 부족한― 는 비평가의 일언일구는 전 민중의 머리에 반향되는 것이니까, 자동차 운전수 이상 긴장된 마음으로 비평치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창작보담 비평이 어렵다’ 는 말까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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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가 비평을 하렬 때는, 先入主見[선입주견]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선입주견이 있을 때는, 그 비평은 공평치가 못하게 됩니다. 이런 말을 쓰는 나를 바보라 할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조선 일류의 비평가(라 자칭하는 사람) 가운데, 선입주견으로써, 이 작품은 어떻다 저 작품은 어떻다 하는 사람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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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 A의 신봉자인 ‘비평가 갑’이 있다 합시다. 또, 사조 B의 신봉자 ‘작가 을’이 사조 B를 주지로 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합시다. 그러면, 비평가 ‘갑’이, 자기의 푯대인 사조가 A라고 B를 배척하여 평한다 하면, 그것이 공평한 평이 될까요? 또, 자기와 같은 A라고 그것을 칭찬하면, 그것이 될까요? 주조뿐 아니라, 작법에든 묘사법에든 선입주견으로 평하면, 그것은 공평치 못한 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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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이전 어떤 신문에 ‘비평가에게 ‘권리’라는 것은 없다. 비평가는 작가에게 대하여는 아무 권리 의무가 없다. 따라서, 재판관과 같이 작가를 탐힐치는 못한다. 다만, 활동사진에 대한 활동사진 변사와 같이 진실히, 경건한 마음으로 관객과 같은 민중에게 該作品[해작품]의 조화 정도를 설명할 것뿐이다’ 하는 글을 썼읍니다. 거기 대하여, 이번 〈廢墟[폐허]〉 2호에, 제월 씨가(문자대로는 아니나) 신성한 문예비평가를 활동사진 변사에게 비하는 것은 안 된다 하였읍니다. 성경에, ‘땅을 두고 맹서치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足臺[족대]니라’ 한 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이 제월씨의 글을 보고도 웃으리라. 예술비평가가 신성하든 어떻든, 비하는 데야, 똥에 비하여선들 무엇이겠읍니까? 나는 제월 씨가 그런 도학자이었던 줄은 아직 몰랐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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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거니와, 비평가는 선입주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다만 작품의 조화된 정도― 다시 말하자면, 그 작품에, 작자가 나타내련 기분이 나타났나 안 나타났나― 또 다시 말하자면, 그 작품이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뿐을 볼 것이지, 거기 나타난 사상이 자기의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것은 평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그 작품을 쓰게 된 동기며, 심지어, 인신공격은 용서치 못할 죄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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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비평가는 작가에게 대하여는 아무 권리도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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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은 쓰기도 싫거니와, 비평가는, 작가에게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감정을 가지고 비평하여서는 안 됩니다. 감정을 가졌으면, 그 비평이 공평하지를 못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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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었읍니다. A라 하는 사람이 〈학지광〉 편집원 시대에, B라 하는 사람이 〈학지광〉에 투서를 하였읍니다. 그 글을 A가 가치 없는 것으로 인정을 했던지? 내지 않았읍니다. 그 뒤 몇 달 지나서, 그 〈학지광〉 편집원이던 A가 〈現代[현대]〉에 어떤 소설을 내었읍니다. 이것을 본 B는, 그 소설 비평을 하여 현대사에 보냈는데, 첫머리에 이런 말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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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내가 〈학지광〉에 투서를 하니까 A가 내 글을 퇴하였기에, A는 얼마나 잘 쓰나 생각하였더니 A의 소설을 보니까 이렇다 운운.’ 이 句[구]는 편집인인 C군이 삭제를 하여서, 세상에는 발표 안 되고 암암리에 없어져버렸지만, 비평가 가운데, 이런 사감정으로 비평을 하려고 들어 붙는 이가 있으니까 한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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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까운 예로, 李基世[이기세]가 「玄堂劇談[현당극담]」에 대하여 평한 ‘所謂玄堂劇談[소위현당극담]’이란 것도 그것입니다. 현당극담에 대하여 평하려면 그것만 할 것이지, ‘현은 소위 美顔術[미안술]이라는 것을 선언하여 여자의 피부를 버려 주었다. 운운’ ‘현은 여사여사하지만, 비용 관계로 조선서는 잘 연습할 연극은 못한다. 운운’으로, 인신공격과 자기 변해뿐으로 평이라고 하니,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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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의 작품은 비평할 수 없다 합니다. 이것은, 얼마간 양보한다는 뜻도 있겠지만, 아는 사람의 작품을 비평하려면, 작품에 대한 비평보담, 비평하려 할 때에 눈에 걸핏걸핏하는 그 작품 작가의 인격의 평이 섞인다 하는 뜻입니다. 하물며, 감정을 가진 사람의 작품을 비평하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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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로서 어떤 작품을 비평하려면, 그 작품 작자와 같은 기분 아래 자기를 두고, 그 작품을 觀[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見[견]하는 것이 아니고 觀[관]하는 것입니다. 고어에 왈, 觀者不見[관자불견]이라, 견만 하여가지고는 비평은 못합니다. 마음의 눈으로써 보는 것이 관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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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평가의 대개는 작품을 본 감상문을 評[평]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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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과는 엄연한 구별이 있읍니다. 감상에는 자기의 의견이 존재할 여지가 있지만, 평에는 절대로, 자기의 의견이라고는 있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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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하니 이 작품은 글렀다’ 하는 것을 의견으로 해석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은 내리찍는 비평이지 의견은 아닙니다. ‘만인이 수긍할 의견’이 평이요, 자기 한 사람의 의견이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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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범한 글을 쓴다고 흉볼 이도 있겠지만, 이런 평범한 일도 모르는 이가 많은 우리 사회에는, 한낱 자극이 될까 하여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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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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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造[창조]〉 제9호, 1921.5)
【원문】비평(批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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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창조(創造) [출처]
 
  192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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