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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천 기생 초월 상소문(龍川妓生楚月上疏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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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초월(楚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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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천 기생 초월 상소문(龍川妓生楚月上疏文)
 
2
평양 용천 기생 초월의 나이 열다섯, 병오년(1846)에 상소하나이다.
 
3
가선대부(嘉善大夫) 승지 겸 예조참판 사간원 대사간 장흥늠제조(長興廩提調) 신(臣) 심 희순의 첩이요, 평양 용천 기생은 엎드려 아뢰나이다.
 
4
신(臣)의 운명이 기구하고 팔자가 궁박하여, 신의 어머니 뱃속에 밴지 일곱 달 만에 아버지가 죽고, 낳은 지 한 해만에 또 어머니마저 잃었습니다.
 
5
포대기에 싸인 알몸뚱이가 젖 맛도 모르고 형제도 없이 혈혈단신 외로이 혼자 몸이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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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외사촌 집에 수양자가 된 지 어언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7
그동안 어렵고 고생스러운 일은 말로 다 할 수 없으며, 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크게 지었기에 이승에서 이 같은 고생의 응보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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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가지 수심과 만 가지 한(恨)이 날로 사무쳐 몇 백억 번 마음에 죄어드는 아픔은 날로 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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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 깡에서 태어난 몸이라 ‘누구나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들이요, 담 밑의 꽃’이 되어 고을의 관청 문을 드나드는 일개 기생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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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없이 한(恨)도 모른 채 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나눌 제, 행실이 건방지고 오만하였으며 언사가 패악한 채, 가을 달, 봄바람, 꽃 피는 아침 달뜨는 저녁,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벗 삼아 술 마시고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며 시름을 잊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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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무정한 세월 속에서도 몸이 닦여져 온 터에 천만 꿈 밖의 일로, 저의 지아비 심 희순이 병오년 봄에 서장을 봉명 받사와 중원(中原) 땅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을 첩으로 삼아 가마에 태워 왔습니다. 신이 그 때 나이 열다섯 살로 백 가지 가운데 하나도 취할 것이 없고, 천 가지 가운데 웃지 않을 것이 하나 없으며 사람됨이 어리석고 미련하여 행실이 경망한 주제에 명문 가족의 가문에 몸을 던지게 된 것이옵니다.
 
12
신은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살게 되고 주란화각(朱欄畵閣)속에 노닐며, 능라금의(綾羅錦衣)의 비단옷에 온몸이 감겨, 수륙진미(水陸珍味)만 먹을 뿐만 아니라, 거처와 잠자리와 출입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편리하니 이것 역시 성은이옵기에 뼈에 사무치도록 망극하옵니다.
 
13
더욱이 전하께서는 스스로 여러 대신들의 시비에 무릅쓰고, 일개 기생의 몸에 성애(聖愛)를 과감히 내리시어 숙부인(淑夫人)이란 직첩(職帖)의 홍패(紅牌)마저 내려 주셨습니다. 신이 이를 받던 날 모골이 송연하고 먹고 자는 것이 모두 불안하여 마치 살얼음판을 밟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신의 몸은 시기와 박복으로 이루어진 터 이온데, 이렇듯 성은이 황공하매 두렵고 떨려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옵니다.
 
14
법전(法典)에 따르면 부인의 직첩은 곧 사족(士族)의 딸이요, 조가(朝家)의 처임이 당연하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신의 몸으로 천번만번 부당 하옵고 불가한 것이옵니다.
 
15
서울에서 먼 곳의 노는 계집 이었고, 또 몸에는 나라에 척촌의 공도 없이 전하의 물이요 전하의 흙인 조선 땅에 살고 있는 것만 해도 망극하온데, 직첩까지 내려주시니 신은 이 복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오리까.
 
16
전하께서 재삼 생각하시와 직첩을 다시 거두어 주시면 그 은혜는 이미 입은 것이오니 엎드려 따르겠나이다.
 
17
전하의 성은을 입는 데 어찌 남녀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18
군신·부자지간은 목 베는 도끼 앞에서도, 천지가 뒤집히는 일이 있더라도 매사를 깔아 문대서는 안 되오며 상세히 아뢰어야 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요, 직분이며 백성의 상정 아니오리까.
 
19
신은 분하고 억울함을 이길 길이 없어 1백 8조의 민간 병폐를 세세히 글씨로 박아 받들어 고함으로써 하늘과 땅, 부모와 해와 달 앞에 삼가 복망(伏望)하나이다.
 
20
전하께서는 그저 귀에 스치는 바람처럼 신의 말을 지나치지 마시기를 바라오며 먼저 신의 남편이 지은 죄부터 아뢰겠습니다.
 
 
21
※ 고대광실(高臺廣室) : 높은 누대와 넓은 집이라는 뜻으로, 크고 좋은 집을 이르는 말
22
※ 주란화각(朱欄畵閣) : 단청을 곱게 하여 아름답게 꾸민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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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라금의 [綾羅錦衣 : 온갖 비단으로 지은 아름다운 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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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륙진미(水陸珍味) :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차린, 맛이 좋은 음식
25
※ 숙부인(淑夫人) : 정 3품 당상관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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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첩(職帖) :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
27
※ 홍패(紅牌) : 문과의 회시(會試)에 급제한 사람에게 주던 증서. 붉은색 종이에 성적, 등급, 성명을 먹으로 적었다.
28
※ 사족(士族) : 선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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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가(朝家) : 조정의 집, 청와대, 임금이 나라의 정치를 신하들과 의논하거나 집행하는 곳. 또는 그런 기구
 

 
 

1. 미욱한 부군 (夫君)

 
31
재상의 손자요 사족의 아들로 사람됨이 미옥하여, 가난한 선비를 업수이 여기고 남을 냉대할 뿐만 아니라, 옛 글을 배우는 데 힘쓰지 않아, 보리와 콩을 구분 못하는 ‘숙맥’이요, 고기 ‘어(漁)자‘와 노나라 ‘노(魯)자’를 분병 못할 만큼 무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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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 없고 소견이 좁아 의사가 통하지 않으니, ‘밥 부대’나 다름이 없습니다. 밥그릇이 높으면 생일인 줄 알고, 동녘에 해가 뜨면 날이 가는 줄 겨우 알 뿐입니다.
 
33
이 같은 위인이 마음 둔 데는 높아 겨우 20여 세에 과거(科擧)의 등용문에 오르고 1백 일도 못 차서 대간(臺諫)과 옥당(玉堂)에 올라 천은(天恩)이 망극함에도 다만 국록만 탐내고 부모의 길러준 은혜는 돌보지 않으면서 축첩만 일삼아, 집안에 음률이 그치지 않고 건달 자객과 벗 삼아 낭자하게 술자리나 벌여 밤낮을 가릴 줄 모르옵니다.
 
34
코방귀나 텅텅 뀌고, 팔뚝을 쑥쑥 내밀며 큰소리나 치는 호기만 드높아. 옆에는 보이는 사람이 없고, 술잔이나 들면 방자하여 망측스럽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35
나들이에는 준마를 타고, 가벼운 비단옷을 들쳐 입어, 행색이 휘황찬란하니 거리의 시정배와 천한 백성, 벼슬하지 않은 가난한 선비들이 모두 부러워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손가락질을 하며 어찌 저럴 수가 있느냐고 하옵니다.
 
36
재상 심상규(沈象奎)의 손자로 벼슬이 하늘처럼 높으니, 아무도 감히 당해낼 수야 없지만 나라가 위태로운데 세간의 질고(疾苦)도 도무지 모르고,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일과, 옳고 그르고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고 굽고 곧고, 먼저 해야 할 일에 전연 몰지각하니 국룩을 축내는 큰 도적이 비단 이 한 사람이 아니고, 온 조정이 다 이 같으니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하겠습니까.
 
37
증자(曾子)에 이르기를 열 사람이 손가락질하고 열 사람 눈이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바로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아옵나이다.
 
38
저의 남편의 기군망상(欺君罔上)의 죄는 하늘과 땅 사이에 하도 커서 어떻게 처치해야 죌지 알지 못하와, 천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고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으며, 천 번 칼로 찌르고 만 번 귀양 보내어도 오히려 못 다할 듯 하온데 어찌하오리까.
 
39
엎드려 간절히 원하옵건대, 전하께옵서 부처님 같은 은혜로 지아비의 죄를 용서하신다 하더라도 삭탈관직하여 전리농토(田里農土)로 내쳐 10년 한정으로 두문불출케 하여 부지런히 성현(聖賢)의 글을 읽어, 스스로 몸을 닦게 하는 것이 신의 평생 소원이옵니다.
 
40
우리의 성스럽고 밝으신 임금님께서 미천한 계집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세세생생(世世生生) 축원하옵나이다.
 
 
41
※ 증자(曾子) : 중국 고전의 하나. 인간 행위의 근본을 ‘충(忠)’에 두고, 행위의 덕의 바탕을 ‘효(孝)’에 두었다. 18편 가운데 10편만이 남아 있다.
42
※ 기군망상(欺君罔上) : 임금을 속임
43
※ 전리농토(田里農土) : 전리 - 태어나서 자란 마을, 농토 - 농사를 짓는 데 쓰이는 땅
44
※ 세세생생(世世生生) : 몇 번이든지 다시 환생하는 일. 또는 그런 때. 중생이 나서 죽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형태이다.
 

 
 

2. 조정(朝廷)의 세태

 
46
대저 조정의 세태를 말씀드리오면 놀랍기 이를 데 없어 기강과 법례가 이토록 어지럽혀진 일은 이웃나라에서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47
백주에 강도가 나타나고 어두운 밤에 도둑이 있다고 합니다만 ‘좋은 얼굴을 한 큰 도적’이 조정에 가득하여 국사를 어지럽히니, 신하는 강도가 되고 백성은 어육(魚肉)이 되어 바야흐로 도탄에 빠져,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금심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48
이러고서 조선 강산의 종묘사직을 어찌 보전할 수가 있사옵니까. 범죄를 다스리지 않음은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웃물을 휘저어 놓으면 아랫물이 정갈하지 않은 법’이온데, 어떻게 남은 운수를 바라오리까.
 
49
임금이 밝고 신하가 곧으면 만사를 다 도모할 수 있는데 지금 형용(形容)이 걸·주가 기름 기둥에 사람을 태워 죽이는 것보다 더 심하옵니다.
 
50
돈을 받고 벼슬을 파는 법이 어느 임금 때에도 없었던 변고이옵고 역대 사기(史記)에도 볼 수 없는 일이온데, ‘내 3천(內三千)’ ‘외 8백(外八百)’ 직임(職任)을 사고파는 탐관 오리가 백성의 기름을 빨고, 좌수(座首) 아전이 나라 곡식을 훔쳐먹는 세상이옵니다.
 
51
감사(監司)는 5,6만 금(金)을, 수령(受領)은 큰 고을이면 적어도 6,7천 금(金)을 먼저 바치고 난 연후라야 망(望)에 올라 부임할 수 있으니 세상에 이런 망측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사오리까.
 
52
감사가 감영에 이른 뒤에는 여러 고을에 공문을 띄워 대여곡(貸與穀) 회수령을 내려, 흉년과 풍년을 가리지 않고, 저자의 물가가 열 배나 올라도 아랑곳없이 다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수십 년 전 아전들의 부정까지도 다 백성들에게 물려서 거둬들이니 몇 만 냥이 되는지 모르옵니다.
 
53
그 밖에 죄 없는 농사꾼, 선비, 장사치를 죄인으로 만들어 잡아 가두고 참혹한 형벌로 돈을 긁어모아 제 욕심 채우니 한 몫으로는 목전에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을 것을 마련하고, 또 한몫으로는 죽은 뒤 자손들의 생계까지 도모해 놓고, 우선 벼슬아치를 잘 섬기는 일로 뇌물을 실은 짐바리가 거리거리에 꼬리를 물고 있으니 이것이 곧 나라가 망하는 길이 아니옵니까?
 
54
백성은 나라의 근원이니 한번 민심(民心)을 잃으면 회복할 길이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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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고을 원이 부임해서 섣달이면 자리가 바뀌는데 먼저 뇌물을 바쳐야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전례가 되어 돈 모으기에 핏발이 서고 있사옵니다.
 
56
간악한 아전들이 그 외사촌까지 나서서 천태 만형으로 죽을 지경인 백성을 간계로 속여서 나라 세금을 납기 전에 미리 윽박질러 받아가고 오래지 않아 고을 원이 바뀌면 다시 거둬들이니 수령은 그 곡절도 모르고 하급 관리들을 내보내 성화같이 독촉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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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가 촌에 나간즉 초야의 춥고 배고픈 선비와, 오두막집에서 찢어지게 가난해서 죽을 지경인 백성들은 모진 범보다 더 무서워 겨우 탁주 서너 잔을 주선해서 대접하고, 굶으면서도 아침저녁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모아 차려 주고는 납기 연기를 무수히 애걸복걸하고, 간신히 변통해서 두 냥 돈을 그들에게 미리 주어서 미봉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팔을 휘두르고 발로 땅을 구르고 고함을 지르며 눈을 부라리고 이를 갈며 사정없는 매질로 피가 흘러 옷을 적시게 한 뒤에 묶어서 잡아가게 되옵니다.
 
58
고을 원은 이런 사정을 살피지 못하고, 크게 성을 내어 한마디로
 
59
“그놈을 매우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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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꾸짖으니, 애꿎은 볼기만 맞게 하여 큰 칼을 씌워 옥에 가두니, 오래 갇혀 있는 무리는 범같이 주리고 개같이 여위어 있는데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제가 물어야 하니 옥바라지 비용으로 드는 돈의 몇 배나 내라고 야단을 치옵니다.
 
61
이런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부엌의 밥 짓는 솥까지 팔아서 바쳐야 하고 그래도 만약 모자라면, 옷을 팔고 집을 팔아도 다 못 채우면 이웃은 물론 같은 면리방동(面里坊洞)에서 거둬들이고 이래도 부족하면 친척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미치니 이러고서야 가난한 백성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사오리까.
 
62
이런 폐단이 한두 고을뿐만 아니라 8도가 다 이 같으니, 위에는 어진 임금이 있고 아래는 착한 신하가 있다면 나라 법이 이토록 풀리고 쇠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63
위로는 형벌이 많고 아래로는 원성이 그칠 줄 모르니 이런 쓰라린 사정은 어디에다 하소연할 수 있사오리까. 신이 참으로 통곡하며 아뢰옵는 것은 이것이 그 첫 번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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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3천(內三千) : 중앙의 내직이 3천 명
65
※ 외 8백(外八百) : 외적인 수령 방백이 8백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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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수(座首) : 조선 시대에, 지방의 자치 기구인 향청(鄕廳)의 우두머리. 수령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가 향원(鄕員) 인사권과 행정 실무의 일부를 맡아보았는데, 고종 32년(1895)에 향장(鄕長)으로 고치면서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67
※ 대여곡(貸與穀) : 빌려주는 곡식.
68
※ 면리방동(面里坊洞) : 면, 리, 방 -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 동 - 조선 시대,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면을 이르던 말
 

 
 

3. 환곡(還穀)

 
70
환곡(還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나이다.
 
71
법전에 따르면, 절반은 민간에 나누어 주고 절반은 나라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오뉴월 즈음하여 뜻하지 않은 변고가 생기면 군량(軍糧)이나 휼량(恤糧)으로 삼아 온 나라의 아름답고 미더운 제도이옵니다.
 
72
한데, 근년에는 흉년이 들면 환곡을 곡식으로 주지 않고, 한 섬에 한 냥씩서 돈씩 돈으로 내어 주는데, 면임(面任)이 미리 수수료로 떼어 가고, 창고지기가 축난 것을 채운다고 제하고, 방장(坊長) 풍헌(風憲) 따위가 교제비라 해서 제각기 떼어 가고, 그 나머지는 왕래 여비 잡비 술값 밥값으로 다 날리니, 환곡을 타러 갔던 이는 거의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실정이옵니다.
 
73
집에 있는 아낙들은 솥을 씻어 놓고 눈이 뚫어지게 기다리다 어이없이 주저앉고 마니 이 같은 눈 감고 아웅하는 격의 환곡은 차라리 주지 않는 것보다 못하옵니다.
 
74
또한 풍년에도 박아들일 때에는 소 말 사료 값을 엄청나게 떼어 갈 뿐만 아니라, 원곡(元穀) 열너 말에 장리(長利)를 덤으로 떼 붙여 스물여덟 만을 받으면서, 나눠줄 때에는 일곱 여덟 말 밖에 안 되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나라 창고 감독에 농간이 극심하고 고을 원이 도둑질한 것이 많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75
대저 8도의 환곡 총 수가 1억 9만 섬이 온데 그 중에 수령과 아전들이 가로챈 수가 몇 천만 섬이 되는지 모르오니 이는 법에 없는 일이옵니다.
 
76
백성들이 환곡을 갚아야 할 수자는 상농(上農)이 6,70섬, 중농이 5,60섬, 하농이 스무 남 섬이나 되고 심지어 곁방살이까지도 여덟아홉 섬씩이 되는데, 이 가운데에는 곡식을 갖다 먹지 않았는데 문서에만 오른 사람이 태반이 넘으니, 이것은 벼슬아치의 친척 사돈들이 갖다 먹는 것까지 덮어씌운 것으로 원성이 드높은 것을 신이 직접 또 허다하게 눈으로 보아 온 것이옵니다.
 
77
가로챈 환곡의 결손 가운데 3분의 1은 장부에서 결손 처분해 버리고, 또 3분의 1은 군기(軍器) 보수비로 썼다고 꾸미고, 나머지 3분의 1만 가지고 실제 출납을 하면서, 그나마 일부는 이자 없이 환납한 것으로 꾸며서 거의 전부 벼슬아치들이 사복을 채우고 있나이다.
 
78
이 어찌 백성의 시름을 덜어 주는 일이 되옵나이다.
 
79
결복(結卜) 또한 기가 막히옵니다.
 
80
흉년 풍년을 가리지 않고 홍수로 논밭이 다 떠내려가 시내 바닥을 이룬 것도 헤아리지 않고 장부만 보고 수만 채워다 받아가서는, 고을 원이 흉년이라 다 받지 못했다고 영문(營門)에 보고 하면, 감사(監司)는 문서대로 눈감아 주고 이런 연유를 조정에 장계(狀啓)하옵니다.
 
81
전하께서는 그것을 믿고 수백 결(結)의 결복을 탕가해 주고 마옵니다.
 
82
이것은 감사와 부사 목사 군수 현령 현감의 횡령을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83
영문(營門)은 각 고을의 강도요, 고을 원은 민간의 화적이온데, 전하께서는 마냥 너그럽기만 하사 이런 폐단을 알지 못하오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옵니다.
 
 
84
※ 환곡(還穀) : 예전에, 각 고을에서 흉년이나 춘궁기에 빈민에게 곡식을 대여하고 추수기에 이를 환수하는 제도나 그 곡식을 이르던 말
85
※ 휼량(恤糧) : 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주는 곡식
86
※ 면임(面任) : 조선 시대, 지방의 면에서 호적과 공공 사무를 맡아보던 사람
87
※ 결복(結卜) : 농지세
88
※ 영문(營門) : 감영
 

 
 

4. 군정(軍丁)

 
90
군정(軍丁) 을 말씀드리면 아직 어미 뱃속에서 예닐곱 달 밖에 안 된 핏덩이와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와 심지어는 옛 무덤이 된 백골(白骨)에까지 베를 바치게 하니 이는 중앙에서 온 원들도 세세히 모르는 일이고, 풍헌(風憲)과 약정(約正) 따위가 입으로 쪼는 바이옵니다.
 
91
군포(軍布)를 받아들일 날짜가 되면 독촉이 성화같아, 만약 징수 성적이 나쁘면 고을에서 나온 관리가 면임(面任)의 머리에 큰 칼을 씌우고 손에 독촉장을 쥐어 마을을 돌리면서 행패를 부리니 그 행악을 이루다 형언할 수가 없사옵니다.
 
92
훤하게 밝은 대낮에 분명하게 죽은 사람도 죽었다고 인정해 주지 않고 헛 이름을 장부에 올려, 죽은 송장에까지 군포를 거두어 가니, 초야의 백성들은 탐관오리들이 피와 기름을 빨아도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보냐고 쑥덕거리기만 할 뿐이니, 이런 관가의 세력을 누가 당해내겠사옵니까.
 
93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이라 방을 타서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다른 고을로 도망질하지만 어디는 살기 좋고 어디는 살기 나쁜 곳이 따로 있사오리까.
 
94
심지어 오도 가도 못하고 원통한 노래와 원망스러운 소리가 천지에 가득해 열 집 마을에 아홉 집이 비고, 만일 달아난 곳을 알면 본관이 그 고을의 원에게 공문을 띄워 되돌려 보내게 하니, 양쪽에서 다 곤욕을 당하고 뜯길 대로 뜯기니 양손에 든 떡을 다 놓친 격이 되고 마옵니다.
 
95
이와 같이 풍년에도 시달려 백성이 떠나고 흩어져서 사방을 떠돌아다니며 얻어먹으니, 하물며 흉년을 당하면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사오리이까. 이것은 다른 까닭이 엇고 임금의 법이 밝지 못한 때문이옵니다.
 
96
옛말에 “온 하늘 아래 임금의 땅이 아닌 곳이 없으며 온 땅 백성이 임금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97
한 치 땅도 전하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한 사람의 백성도 전하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사해(四海) 팔방의 억조창생(億兆蒼生)을 굽어 살피소서.
 
98
흉년이 들면, 주리고 목마른 것이 뼈에 사무쳐 얼굴이 퉁퉁 붓고 가죽이 누렇게 들떠 염치 불구하고 문전걸식을 하여도, 제대로 얻어먹을 수가 없어서, 길에는 굶어죽은 주검이 엎어져 있고, 들과 구렁에는 송장이 널리었으며, 들것이 잇달아 보이는 것이 신이 본 읍에서 여덟 살 때 경자년 흉년에 눈으로 직접 본 바이옵니다.
 
99
그래도 그때에는 간혹 인심이 순박하고 두터운 곳이 있었는데, 이 제와서는 풍년을 당해도 세태가 너무 변해서 각박해지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있는 자는 더욱 가멸 해지고[富益富], 없는 자는 자꾸 더 가난해지니[貧益貧], 이는 전하께서 혼미하고 어두워서 밝지 못한 때문이옵니다.
 
100
양반도 10대 동안 드러난 벼슬이 없으면 군적에 입적을 해야 하는 일이온데, 반상(班常) 없이 돈만 있으면 토반(土班) 행세를 하니, 이런 거짓 양반으로 면역된 상민(常民)을 다 골라내어 군적에 다 체운 다면, 군포 징수하는 폐단이 백골(白骨)에 까지 미치지는 않을 것 이온데, 이것이 신이 통곡하는 바의 두 번째이옵니다.
 
101
시골 백성이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 읽으며 간신히 피땀으로 농사를 지어서 간신히 풍년을 맞아도 군포(軍布)로, 결복(結卜)으로, 환곡으로 한몫씩 나가고, 또한 관수미(官需米), 방적수렴(房籍收斂), 관부역전(官賦役錢)으로 뜯기어 나갑니다.
 
102
그뿐만이 아니라 감사(監司)의 순역(巡役) 때 길 닦는 비용이다, 다리 놓는 비용이다 하여 거둬가고, 신임-전임- 관리 이-취임 때 말 갈아타는 비용으로 한몫씩 나가고, 그 다음에는 동네 당산제, 중 시주(施主), 무당, 점장이, 날받이, 상장이, 편수, 사당, 풍각쟁이에다 심지어는 뱃사공에 이르기까지 문전에서 손을 벌리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사옵니다.
 
103
더욱, 진사(進士) 문과(文科)와 선달(先達)에 오른 사람이 도문(到門)할 때 광대(廣大)에 풍악을 잡히고 거리 행진 하는 데도 돈이나 곡식을 내지 않을 수 없으니, 이런 백성의 정경이 어지 안타깝지 않사옵니까.
 
 
104
※ 군정(軍丁) : 역사 군적(軍籍)에 있는 지방의 장정.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정남(丁男)으로, 국가나 관아의 명령으로 병역이나 노역(勞役)에 종사하였다.
105
※ 약정(約正) : 항약 단체의 임원
106
※ 선달(先達) : 무과
107
※ 도문(到門) : 과거에 급제하여 백패나 홍패를 받아 집으로 돌아옴
 

 
 

5. 송사(訟事)

 
109
송사(訟事)에 대하여서 말씀드리겠사옵니다.
 
110
본관(本官 : 자기 고을의원)의 재판이 분명치 못할 때에는, 분하고 원통한 일이나, 묏자리 다툼과, 곤을 주고받는 시비와, 친척의 세금을 부당하게 징수당한 억울함을 영문(營門)에 가서 다시 상소하게 되옵니다.
 
111
그러면 영문에서는,
 
112
“증거를 충분히 조사해서 원통한 일이 없게 하라”
 
113
고 본관에 되돌려 보내는 판결만 내리니, 오히려 본관은 감사(監司)의 지시는 들은 체도 않고 송사한 백성을 잡아다가 불문곡직하고 모질게 형벌만 주고 마옵니다.
 
114
원통함을 이기지 못해 비국서(備局司 : 당상관 이상의 관원들이 모여 정사를 의논하는 곳)에 상고하면, 유사(有司) 당사관이 속 시원한 판결은 해주지 않고, 다시 영문에 공문을 보내 “잘 다스리라”고만 합니다.
 
115
할 수 없이 서울로 다시 와서 대신(大臣)이 출입할 때 길을 막고 엎드려 하소연해 봐도 시비는 가려주지 않고 무엄함 백성이라 구종 별배 하인들에게 덜미 잡혀 내어 쫓기고 마옵니다.
 
116
마지막 수단으로 전하께서 ‘거둥’ 하실 때 징을 쳐서 아뢰어도 정원(政阮 : 승정원, 즉 왕의 비서실)에서는 들은 척도 않고 가로막아 버리지, 천리 머나먼 길을 온 백성이 헛되이 울면서 돌아가고 마옵니다.
 
117
이러하니, 감사-수령은 무엇하고 있으며 비국사-대신-정원은 무슨 일이 이보다 더 긴급 하옵니까.
 
118
백성이 원통해 울부짖는 일이 전하께 품달되지 않으니, 해를 타고 하늘에 올라 옥황상제에게 하소연하란 말이 옵니까.
 
119
이것이 신이 통곡하며 아뢰온 바 세 번째이옵니다.
 
 
120
※ 본관(本官) : 자기 고을의 원
 

 
 

6. 어사출도(禦史出道)

 
122
어사출도(御史出道)에 대해서 말씀드리옵니다.
 
123
어사란 해진 옷을 입고 찌그러진 갓을 쓰고 곳곳을 몰래 다녀 종적을 감추고 숨어서 탐관오리가 백성의 피와 기름을 빠는 것과 향임(鄕任)과 간사한 아전이 국곡(國穀)을 도둑질 하는 것을 밝혀서 처단하여야 하는 직책이옵니다.
 
124
아울러, 젊은이가 노인을 업신여기는 것과, 불효하고 우애 없는 것과, 그른 일로 송사를 일으키는 것과, 터무니없이 이득을 노린 장사치와 노름꾼, 불량배를 낱낱이 살펴서 출도 후엔 죄줄 것은 죄주고 벌줄 것은 벌줘서 큰 죄인은 먼저 베고, 쥐에 보고를 올리는 것이 당연한 법이었사옵니다.
 
125
그러나 요즘의 어사는 역마를 타고 포졸을 거느리고 마패를 노출시키고 본색을 드러내 뭇사람이 알도록 하옵니다.
 
126
강산(江山)의 누각과 기암 절승지와 이름난 절간을 찾아 네 활개를 펴고 놀이를 일삼으니, 가는 길목마다 그 고을에서 금방 알아차리고 극진히 대접하니, 이런 어사는 보내지 않는 것보다 못하고 백성들에게는 도움은커녕 해만 끼치옵니다.
 
127
고을의 일만 번거롭게 만들고 볼기나 때려 본관으로 데려간다고 으름장이나 놓아 재물을 빼앗으며 정작 억울한 일이 있어도 송곳 꽂을 땅도 없이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사옵니다. 큰 허물이 있어도 일백금만 가지면 죽을 사람도 살려낼 길이 곧 어사로 통한다는 것은 상식이옵니다.
 
128
부자는 면죄되고 가난한 자만 재앙을 입게 되니 이런 원통한 일이 있사옵니다.
 
129
그리고 충신, 효자, 열녀, 효부, 정녀(貞女),와 결백한 관리 등 훌륭한 일들을 어사에게 알려도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나라에 보고하지 않고, 한 도 생기지 않는 일이라 귀찮게 여기옵니다.
 
130
그러니 어사는 고을의 도둑이요, 일도(一道)의 강도이니, 법을 잡고 있는 이가 먼저 범하고, 법을 아는 자가 의롭지 못한 일을 손수 저지르니, 신이 통곡하며 아뢰는 바 네 번째이옵니다.
 

 
 

7. 책실(冊室)의 횡포

 
132
전하께서 갑오년(1835년)에 등극하신 이래 상소(上疏), 장계(狀啓), 초기(草記), 상언(上言), 격쟁(擊錚) 등의 내용을 세세히 살펴보면, 조정의 사모(紗帽) 쓴 벼슬아치 들은 다 용렬한 도적이옵니다.
 
133
조그마한 나라의 위엄으로 큰 나라 사치를 다한다면 조선창생(朝鮮蒼生)을 슬하에 엎드리게 하여 위로는 하늘 뜻에 따르고 아래로는 신민(臣民)을 통솔하여 요-순 임금처럼 착한 정치를 베풀 수 있을지…. 미물 같은 창녀(娼女)가 하늘과 땅을 두려워하지 않고 간곡히 여쭈오니, 심사숙고하옵소서.
 
134
여자의 행할 길이란 부모형제를 멀리 떠나 시집와서, 바느질과 길쌈이 위주요,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온데, 국사를 간여하는 일이 긴치 않사오나, 민폐가 극심해서 이 하찮은 창녀로 하여금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하리만큼 심각하기에 간곡히 아뢰는 바이옵니다.
 
135
임금이 요·순 같고, 신하도 악도(樂陶)와 직설(稷楔)과 같은 세상을 소망하옵는 까닭에 함부로 자라, 문자를 겨우 통하면서 외람되이 대역무도한 말이 지나쳐 신의 죄는 죽어도 모자라고 목 베어도 아깝지 않사옵니다.
 
136
엎드려 원하오니, 신의 죄를 결정지어 네 수레에 팔다리를 매어 찢어 죽이는 거열(車裂) 형벌을 내려, 종로 큰 길 위에 조리 돌려 만 사람이 한마디로 죽여 마땅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한 연후에 서소문(西小門) 밖에서 능지처참하여 만 사람의 칼머리 아래에 놀란 혼이 돌아보지 않게 하옵소서.
 
137
고을 원의 책실(冊室)이 본관(本官)보다 한층 더 심하게 굴어, 아전들도 부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을 정사를 임의로 처결하니, 신이 통곡하며 아뢰옵는 바 다섯 번째이옵니다.
 
138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139
“땅에 금을 그어놓고 옥(獄)이라 해도 들어가지 않고, 나무를 깎아서 벼슬아치라 해도 모두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140
요즘 각 고을 향장(鄕將), 사령(使令)의 무리들이 너무 많아 그 10분의 1만 가려서 줄여도 문서(文書)를 거짓으로 꾸미는 폐단과 국고를 축내는 폐단이 훨씬 줄어들 것이옵니다.
 
 
141
※ 책실(冊室) : 조선 시대에, 궁중에서 편찬과 인쇄를 맡아보던 관아. 세종 때에 두었다.
142
※ 상소(上疏) : 임금에게 글을 올림
143
※ 장계(狀啓) : 감사 등 지방 관원이 왕에게 서면으로 보고하는 것
144
※ 초기(草記) : 관아에서 정무 상 중요하지 않은 일을 간단히 임금에게 적어 올리는 문서
145
※ 상언(上言) : 백성이 임금에게 글월을 올림
146
※ 악도(樂陶) : 요 임금의 어진 신하
147
※ 직설(稷楔) : 순 임금의 어진 신하
148
※ 격쟁(擊錚) : 징을 쳐서 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
 

 
 

8. 임금의 酒色

 
150
“술은 몸을 망친다.”라고 공자가 말했고,
151
주자는 “탁주 석 잔에 사람이 위태로워진다. 하였으며,
152
범문정공(梵文正公)이 아들을 경계 훈계에,
153
“광약(狂藥 : 술)은 독이 된다.” 고 했습니다.
 
154
우(禹) 임금은 그의 첩 의적(儀狄)이 처음 술을 빚은 것을 마셔보고,
 
155
"후세에 이것이 나라를 망칠 원인이 되겠구나.”
 
156
라고 했으니, 성현(聖賢)의 말씀 천 마디 만 마디가 두강 (杜康) 이후의 근심을 경계하지 않은 것이 없사온데, 전하께서 술 마시기로 일을 삼으니, 어찌 슬프지 않사오리까.
 
157
전하께서는 임금의 자리에 않아서 밤늦게 술을 마셔 눈이 게슴츠레하고 옷고름을 매지 못할 만큼 몸을 가누지 못하며, 익선관도 벗어 버리고 왼손으로 창녀의 치맛자락을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난간에 기대서서,
 
158
“사대부집 조선 대사마 대장군(朝鮮大司馬大將軍) 여기 있다”
 
159
라고 노래를 부르니, 전하의 출신이 사대부 집안에서 난분보다 못해서 하시는 말씀이옵니까?
 
160
이런 전하의 해괴한 노래는 아무도 말을 전하지 않아도 저절로 풍편으로라도 알려지니, 이 같은 예(禮)를 잃고 면목이 없는 처사를 신이 통곡하는 바 여섯 번째의 일이옵니다.
 
 
161
※ 범문정공(梵文正公 ?) : 중국 송나라 어진 신하
162
※ 두강 (杜康) : 술을 처음으로 잘 빚은 고대 사람

 
 

9. 기생 총애

 
164
망령은 집을 어지럽히는 근본이요, 색은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옵니다.
 
165
하(夏)나라 걸왕(桀王)은 말희(末喜)가 망쳤고, 상(商)나라 주왕(紂王)은 달기(妲己)가 망쳤고, 주(周)나라 유왕(幽王)은 포사(褒姒)가 망쳤고, 당나라 명황(名皇 )은 양귀비(楊貴妃)가 망쳤는데, 어찌 전하는 하늘에서 비가 오려 하면 습기가 먼저 땅에 젖는다고 한 말을 듣지 못했사옵니까.
 
166
평양 기생 윤희는 만고의 요물이라 말이 간악하고 능란해서, 겉과 속이 달라 구미호(九尾狐)나 다를 바 없소. 말쑥한 태깔과 구슬 같은 얼굴, 향기로운 모습에 살포시 팔자(八字) 눈썹을 찡그린 앵두 같은 입술이 반쯤 벌려 석류같이 이를 내보이며 천태만상의 교태로 전하를 사로잡으니 망측스럽기 한량없사옵니다.
 
167
신이 전에 서울로 오는 도중에 평양에서 며칠을 머물렀기에, 운희를 만나 수작을 해 보았는데 인정이 철철 넘치기에 경계해서 고향을 떠나지 말고 스스로 분수를 지켜 규중에서 자녀나 평생토록 기르는 것이 상책이고, 그렇지 않으면 원통하게 비명에 죽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사옵니다.
 
168
그랬더니 천만 뜻밖에 전하를 모시고 조정을 어지럽게 하고 있으니 이런 변고는 나라가 불행한 일일 뿐 아니라 백성의 운수가 기박하게 느껴지옵니다.
 
169
중니(仲尼)가 이르기를,
 
170
“나라가 흥하려면 반드시 착한 신하가 나고, 망하려면 꼭 요망한 계집이 생긴다.”
 
171
하였는데, 이런 요사스러운 계집은 죽여 마땅하옵니다.
 
172
운희의 본바탕은 전하께서도 모를 것이오나, 남 병철(南秉喆)이 먼저 좋아하던 나머지이니, 전하와 남 병철은 친 동서간이 되는 셈이요, 군신(君臣)의 체면은 고사하고 사갓집에서도 이런 해괴한 변이 어디 있겠으며, 옛 글이나 지금 글에도 본 적이 없사옵니다.
 
173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에 한 번 놓치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에 한번 얻는 바가 있다고 하고, 성인(聖人)도 미치광이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고 했사오니, 전하께서는 허물을 뉘우쳐 평양 기생을 본 읍(本邑)으로 돌려 보내고 다시 만나지 않으면, 대궐 안의 괴상한 말들이 사갓집에 번지지 않을 것이 오니, 이것이 통곡하여 아뢰는바 일곱 번째의 일이옵니다.
 
 
174
※ 말희(末喜) : 걸왕의 왕비
175
※ 달기(妲己) : 주왕의 왕비
176
※ 포사(褒姒) : 유왕의 왕비
177
※ 중니(仲尼) : 공자의 자
 

 
 

10. 교졸(校卒)의 행패

 
179
감사, 병사(兵使), 목사(牧使), 판관(判官), 부사(府使), 군수, 현령, 현감, 찰방(察訪), 영장(塋將), 중군(中軍), 우후(虞侯), 첨사(僉使), 만호(萬戶), 별장(別將), 권관(權管)등이 보낸 뇌물이 전부 다 총위영(總衛塋)으로 들어가니 곳집에 쌓인 돈 3백 70만 냥의 재물을 어디에다 쓸 것이옵니까.
 
180
그래도 모자라 종로 예순 여덟 가게와 각사(各司)의 서리, 관방(官房)의 공인(工人)과 심지어 다섯 나루터 사공의 무리에까지 매일 서푼 변을 놓아 폭리를 취하고 만일 기일이 넘으면 교졸(校卒)을 풀어 위세를 부리니 누가 감히 감당하오리까.
 
181
소위 공금을 거둬들인다고 빙자해서 여염집에 뛰어들어 옷가지-솥-놋그릇 등 쇠붙이를 다 빼앗아 가며 마음대로 사람을 두들겨 패고 대낮에 안뜰에까지 침입해 유부녀를 능욕하니 이런 법은 천고에 듣지 못한 일이옵니다.
 
182
교졸(校卒)들이 대신(大臣) 앞에서도 ‘소인(小人)’이라 일컫지 않고 절도하지 않으니 이것은 임금도 없고 어버이도 없는 짓이옵니다.
 
183
나라 창고는 텅텅 비도록 벼슬아치들이 나눠가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니 통곡하며 아뢰는 여덟 번째 일이옵니다.
 
 
184
※ 교졸(校卒) : 조선 시대에, 군아(郡衙)에 속한 군교(軍校)와 나졸(羅卒).
185
※ 판관(判官) : 관찰부사 유수영 및 주요 주(州)-부(府)의 속관으로 민정의 보조 구실을 맡은 종 5품관
186
※ 찰방(察訪) : 각 도의 역마-우편을 맡아 보던 외직의 문관
187
※ 영장(塋將) : 진영의 장수
188
※ 중군(中軍) : 군영의 대장
189
※ 우후(虞侯) :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 다음 벼슬
190
※ 첨사(僉使) : 절도사 관할에 딸린 군직
191
※ 만호(萬戶) : 각 도의 진에 딸린 4품 군직
192
※ 별장(別將) : 별군의 장교
193
※ 권관(權管) : 변경 작은 진에 두었던 종 9품 무관
194
※ 총위영(總衛塋) : 현종 12년 총융영을 고쳐 만든 군영
 

 
 

11. 임금의 陣놀이

 
196
선조(宣祖)때 영위청(榮衛廳)을 설치했으나, 백성을 괴롭히는 폐단이 적지 않아 없애버린 것을 전하께서 다시 만들어, 몰지각하고 분간 못하는 풋내기 아이들을 총위영 교졸(校卒)로 뽑아 놓고 춘당(春堂) 앞에서 한 달에 대여섯 번씩 진 치는 놀이를 하옵니다.
 
197
전하께서 스스로 대장이 되고 서 의순(徐儀淳)을 부장(副將)으로 삼고 이 흥식(李興植)으로 중군(中軍)을 맡게 해서, 기치와 창검이 휘황찬란하고, 말 달리고 다투는 소리가 궐문 밖까지 들리니, 거리의 남녀노소 들은 서로 숙덕거리기를,
 
198
“오늘은 전하 편이 이겼다고들 하니 무슨 전쟁이냐…, 병자호란이냐 임진왜란이냐…”
 
199
고들 하옵니다.
 
200
신이 알기로는 역대 군왕은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성현의 가르침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야 할 일이온데, 몸소 말을 타고 칼을 휘둘렀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사오니 통곡하여 아뢰는바 아홉 번째의 일이옵니다.
 
 
201
※ 陣놀이 [진잡이놀이] :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두 편이 진을 치고 서로 상대편의 진지를 공격하고 막는 놀이
 

 
 

12. 통금(通禁) 순라꾼

 
203
순라(巡邏)꾼은 각 영문(營門)의 큰 근심이옵니다.
 
204
본래 도둑을 예방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고 가끔 위반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온데 백면서생(白面書生)이 혹 순라꾼에게 잡히면 해당 관청에 넘겨 죄가 있으면 법대로 귀양을 보낸다면 그것은 온당한 일이옵니다. 근래에는 총위영 순라꾼들이 임금의 전교(傳敎)를 빙자해서 붙잡기만 하면 묶어서 영내로 데려가 볼기를 열 대씩 때리고 일곱 냥의 돈을 줘야 놔 보내오니 신이 통곡하여 아뢰는바 열 번째 이옵니다.
 
205
그리고 6백50간의 집은 무슨 소용으로 짓사옵니까. 재원(財源)을 마련하는 데는 한정이 있고 쓰려면 한량이 없는데 공연히 흔전만전 헤프게 쓰는 끝을 모르겠사옵니다.
 
206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이르기를,
 
207
“집을 이을 아이는 똥을 황금같이 여기고, 집을 망칠 아이는 황금을 똥같이 여긴다.”
 
208
고 하니, 중심(中心)이 허랑하여 규모 없이 마구 쓰면 반드시 재앙이 오는 법이옵니다.
 
209
서울의 가난한 백성들을 마구 불러다가 일을 시키고는 하루 서 돈씩 밖에 일삯을 주지 않고, 연장에 다그치거나 대들보에 깔려 눌려 몇 사람씩 죽으니 얼마나 불쌍하며, 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원통하겠사옵니까.
 
210
대궐 문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211
“궁궐 안에는 사람을 죽이는 곳집이 있다더라.”
 
212
라고 수군거리니 듣기에 놀랍기 그지없사옵니다.
 
 
213
※ 순라(巡邏) : 도성 안에 야간 통행금지 후에 순찰하는 군대
 

 
 

13. 중전(中殿) 박대

 
215
“시경(詩經)”에 “요조숙녀는 군자(君子)의 좋은 반려라” 했고, 송홍(宋弘 : 중국 한나라의 굳센 신하)도 “조강지처는 존중하고 대우를 해야지 당하(堂下)로 끌어내릴 수가 없다.”하였습니다.
 
216
위로는 천자(天子)로부터 아래로는 뭇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남자는 장가 들고 여자는 시집가서 정답게 사는 것은 군자(君子)나 소인(小人)이나 마찬가지인데, 전하께서는 홍 중전(洪中殿)을 죄 없이 홀대하니 까닭을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217
홍 중전은 덕행이 임사(姙姒)와 같사옵고, 친정 부모를 떠나 깇은 궁궐로 들어와서 전하를 섬기고 아랫사람을 거느림에 예절을 다 갖추고 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멀리 하시는지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218
부부인(府夫人) 안(安)씨가 천지신명과 부처님 전에 전하와 홍 중전이 화합해 금실의 낙을 즐겨 동궁세자(東宮世子)를 탄생하게 되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빌고 있으니 이 어찌 뼛속에 사무치지 않사옵니까.
 
219
신의 평생소원은 성자신손(聖子神孫)이 이어져 종문에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는 것이옵니다.
 
220
세상 공론이 부원군(府院君) 홍 재룡(洪在龍) 부자는 뼈다귀처럼 되어 있다고 이르니 이것이 신이 통곡하며 아뢰는 열한 번째이옵니다.
 
 
221
※ 임사(姙姒) :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로 태교로 유명함
222
※ 부부인(府夫人) : 중전의 친정어머니

 
 

14. 과거(科擧) 부정

 
224
과거(科擧) 제도의 폐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사옵니다.
 
225
자-오-묘-유년을 지정해서 정기적으로 보이는 식년과(式年科)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보이는 증광과(增廣科), 성균관 공자 사당에 배알하고 보이는 알성과(謁聖科), 무과(武科), 잡과(雜科), 등은 예조(禮曹)에서 기안하여 관상감(觀象監)에서 날짜를 정하여 품신한 후에 각도와 고을에 공문을 보내 알립니다.
 
226
이러면 시골 선비들이 과거령(科擧令)을 듣고 행장을 꾸려 천 리 길을 달려 모여드는데, 그 고생스러운 모양이 기막히옵니다.
 
227
가난한 선비의 아낙은 닭이 우는 꼭두새벽부터 베틀에 올라앉아 온종일 삼베나 무명 한 두필을 짜서 시장에 내어 팔아 너덧 냥을 겨우 마련해서 행장을 꾸려 주옵니다.
 
228
책 보따리를 등에 지고 지팡이로 절룩거리면서 먼 길에 날짜를 꼽으며 서울에 온 선비는 숙소를 정해 놓고 여비가 모자라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내다 파는 지경이옵니다.
 
229
이렇게 고생스러이 과장(科場)에 입장하면 소위 삼시관(三試官)이 의젓이 벌여 앉은 뜰아래 무수한 사람들이 시제(詩題)가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려 자리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그러면 포교들이 돌아다니며 장내를 어지럽히는 자를 잡는다고 빙자하고 시골 선비만 끌어내어 큰 칼 씌워 시관(試官) 앞에 꿇어앉혀 여러 사람에게 보이니, 국법에 이런 조문이 있사옵니까.
 
230
또한 시관 밥상 드나드는 편에 쪽지를 들여보내고, 남의 글을 빈 차작(借作)으로 참방(參榜)에 오른 사람들은 다 권문세가(權門勢家)의 자제들과 수령(守令)의 아들-사위-동생-조카와 시관의 일가친척-처가-외가-사돈이나, 의주(義州)-송경(松京)의 부자 집 자식들로 뇌물을 흠뻑 바친 자들이옵니다.
 
231
뛰어난 글 솜씨와 충성스러운 선비는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마니, 과거란 평생 힘을 다해서 정성들여 공부한 것을 이날 하루에 펼쳐보려는 것인데, 선비들에겐 얼마나 원망스러운 일이겠사옵니까.
 
232
과거장(科擧場)이 그토록 어지러운 것은 선비들 틈에 자리 잡아 주고 심부름을 하는 상사람이 절반이나 섞여 있는 탓이옵니다.
 
233
초시(初試)의 응시자의 명단을 영문(營門)에 보내고 영문에선 초시에 합격명단을 서울로 보내서 과거장 문 밖에 점고(點考)해서 입장시키면 상사람의 무리가 감히 들어가지 못할 것이옵니다.
 
234
근래에 자칭 선비랍시고 과거 보러 서울에 온 사람 중에는 그 근본이 각 읍(邑) 아전 사령의 자식들이 수없이 많으니 이들이 등과(登科)를 한다 해도 다 쓸 수 있겠사옵니까.
 
235
사관의 직분을 맡은 자 중, 이 목연(李睦淵), 조 두순(趙斗淳)과 조 인영(趙寅永), 홍 재철(洪在喆) 등을 빼놓고 그 나머지는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 사람 얼굴에 짐승의 마음이라, 국록이 아까울 뿐이오니 이것이 통곡하여 아뢰는바 열두 번째이옵니다.
 

 
 

15. 휴가(休暇) 남용

 
237
‘팔도’의 수령(守令 )들이 무단히 관혼상제(冠婚喪祭)를 빙자해서 삼사에게 말미(휴가)를 얻어 서울에 와서 딴 일로 세월을 보냅니다.
 
238
달이 바뀌도록 근무지를 이탈하니, 만약 그 고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일시의 겸관(兼官)에게 죄 없이 크나큰 봉변을 당하고 마옵니다.
 
239
고을 관장(官長)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고을의 모양이 말이 아니게 되고, 백 가지의 폐단이 다 이로부터 일어나며, 아울러 관속(官屬)들이 모두 게으르고 태만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옵니다.
 
240
감사가, 봄에는 밭 갈고 씨 뿌리는 것을 살핀다고, 가을에는 지은 농사 거둬들이는 것을 살핀다고 순역(順逆)을 하지만 민간에게는 아무 이익이 없어 해만 끼치고 있사오니, 도내 별다른 큰 일이 없다면 감사 호사를 시키기 위한 시찰은 없는 것이 제일 상책일 줄 아옵니다.
 
241
신이 간곡히 고하옵는 바는, 대저 전하께서 대궐 안을 출입하실 때에 옥교(玉橋)를 타시지 아니하고, 조그마한 수레에 단촐 하게 앉으시어,
 
242
“에라 게 섯거라”
 
243
하며 잡인의 접근을 막는 벽제(辟除)소리와 위의(威儀)가 판서의 나들이보다 못한 행색이오니 신이 통곡하여 아뢰옵는바 열세 번째이옵니다.
 
244
※ 겸관(兼官) : 한 고을의 원이 자리를 비웠을 때 이웃 고을의 원이 임시로 겸하여 사무를 맡아봄
 

 
 

16. 동요(童謠)는 民心

 
246
도하(都下)에 동요(童謠)가 유행하고 있는데, 거리에서 장사꾼까지 불러대는 것을 분간해 보면,
 
247
“오늘 아프도록 술을 마셔 마음껏 즐겨보세. 내일 무슨 일이 있어 나도 당하게 될지…”
 
248
라고 하고, 먼 시골 나무꾼이나 목동도 말하고 있기를,
 
249
“생각지도 않던 일이 별안간 생기면 저도 죽고 나 또한 죽어 일시에 다 멸망하는 지경이 된다.”
 
250
고 하며 탐관오리가 백성의 피를 빨고 기름을 짜는 일을 빗대어 말하고 있사옵니다.
 
251
괴상한 풀이의 말이 사방에서 번지고 있사온데 이것을 옮겨보겠사옵니다.
 
252
“일사양두월, 이중일각시, 일팔용구왕, 시월중중심
253
(一巳兩頭月, 二中一角時, 一八用口王, 十月中中心).”
 
254
이 말은 전하께서 잘 살펴볼 만한 일로 생각이 되옵니다.
 
255
신이 이것을 억측해서 파자(破字)해 본즉,
 
256
‘일사(一巳)’는 취음(取音)해서 ‘사(四)’로 보고, ‘양두(兩頭)’는 윤달 ‘윤(閏)’자로 보아 ‘윤사월(閏四月)’이 됩니다.
257
‘이중일각시(二中一角時)’는 ‘십칠일(十七日)’로 보겠습니다.
258
‘일팔용(一八用)’은 ‘너 이(爾)’자로, 볼 수밖에 없으며,
259
‘구왕(口王)’은 ‘국(國)’으로, ‘시월(十月)’은 ‘有’로 보며,
260
‘중중심(中中心)’은 ‘患’으로 풀이하여,
 
261
“윤 4월 17일 신축일에 너희 나라에 근심이 있다”
 
262
하고 됩니다. 이 뜻에 모두 놀라고, 모두 해괴한 일로 여기고 있사옵니다.
 
263
이 말을 조작한 자는 함경도 영흥 하사리(下四里)에 사는 운흥(雲興)이란 놈인데, 명년에 나이 18세이고, 입은 크고 코는 모났으며, 눈은 달처럼 가로 찢어졌으며 얼굴빛은 철색(鐵色)이고, 신장은 6척이나 되고 흉터가 많다고 하옵니다.
 
264
포도대장에게 전교를 내려 잡아다가 하옥시켜 가두어 두고, 그 날짜를 기다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살피시되, 먼저 비밀에 붙여 다른 죄목으로 잡아들여야지 탄로가 나지 않을 것이옵니다.
 
265
그렇지 않으면 게를 잡아 물에 놓아 보내는 격이요, 호랑이를 길러 산으로 되돌려 보내는 격이 됩니다.
 
266
대궐을 출입하는 내직에 있는 관리들에게 이 말을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하여도 자연히 알게 되어 소문날까 걱정이 되옵니다.
 
267
나라의 운수가 쇠약하고 줄어들어 도덕심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이 세상이 오래 가지 않아 망하리라는 것을 징험해 주고 있는 줄 알아야 하옵니다.
 
268
우리 태조께서 등극하신 지 4백 50년…, 조선 강토 3천리와 3백 61주(州)의 창생이 모두 전하의 대에 와서 전하의 다스림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망하게 된다면 이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통곡하며 아뢰옵는 바 열네 번째이옵니다.
 

 
 

17. 억울한 귀양

 
270
전하께서 등극하신 지 10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경자년(현종6년)에 흉년이 들어 경향 각지에서 굶어죽고 얼어 죽은 사람이 몇 만 명이 되옵니까?
 
271
재작년 갑진년(1844년 : 현종10년)에는 홍역이 번져 수많은 어린아이가 비명에 죽어 갔는데 그 숫자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사옵니다.
 
272
그 다음해 작년에는 돌림병(전염병)이 돌아 남녀노소가 떼죽음을 당하였습니다.
 
273
이런 변고가 잇달아 일어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백성이 귀의해야 할 곳은 전하이옵니다. 그런데 전하는 배우기를 게을리 하고 덕을 쌓지 않고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인정(仁政)을 펴지 못하여 인심이 화합하지 못하니 어찌 망국의 징조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274
한 아녀자가 원망을 품고 있으면 5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옛 말을 깊이 새겨 둘 일이라 생각아하옵니다.
 
275
진주 땅 유 의직이 올린 상소문은 만고에 없는 충절로서 비분강개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열 가지 조목을 들어 품달했던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70 노신(老臣)에게 죄를 내리어 5영(塋)이 진을 치고 백관이 보는 앞에서 엄한 형벌을 내리게 한 뒤 여흥 땅으로 귀양을 보내었습니까. 그는 중도에 죽고 말았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사옵니까.
 
276
제갈 량의 ‘출사표(出師表)’에 이르기를,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배는 멀리하는 것이 국가를 흥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충성을 다한, 바른 말 한 신하를 죄 없이 먼 곳에 귀양 보내는 것은 만도에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277
죄 없는 사람은 귀양 보내고 나라에 충성은 커녕 강도 같은 신하들만 거느리고 있는 전하의 마음이 두렵기 그지없사옵니다.
 

 
 

18. 감사(監司) 학정

 
279
3정승 6판서로부터 문무백관 미관말직에 이르기 까지 문무 제신들의 행각을 낱낱이 밝혀서 고하겠나이다.
 
280
영부사(領府事) 조 인영(趙寅永)은 기해년에 이조 판서로 있을 때 전라도 임실(任實)땅에 거주하는 창녀의 자식에게 돈 1만 냥을 요구하여 받은 뒤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 참봉을 시켜 주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281
또 부원군 조 만영(趙萬永)은 완악하고 거만하여 조정의 크고 작은 일을 간섭하지 않은 일이 없었고, 어떤 물건이든 보면 탐하고 욕심내어 8도에서 바치는 뇌물을 마다않고 다 받아들여 그 수량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데도 그것마저 모자라, 의주 압록강에서 건너오는 물건들, 또는 함경도 두만강 쪽에서 건너오는 물건까지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일본 대마도에서 건너오는 물건과 제주도 한라산에서 오는 물건까지도 그 집의 곳집으로 다 들어가옵니다.
 
282
그의 일족이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 선화당(宣化堂)에서 죄인의 발목을 묶어 주리를 틀었고 시체가 즐비하여 도민들이 동요를 지어 부르기를,
 
283
“宣化堂위에 先禍當
284
趙其永은 早起令
285
樂民褸 아래에 落民淚
286
咸鏡道民 咸競逃
287
(선화당 위에 먼저 화를 당하고
288
조 기영은 일찍 일어나 명령하며
289
낙민루 아래에 백성의 눈물 떨어져
290
함경도 사람은 다 다투어 도망가네)”
 
291
라고 하였고 이 노래를 비국(備局) 대문 밖에 써 붙였던 것입니다.
 
292
조 병현(趙秉鉉)은 만악(萬惡)을 고루 갖춰 사람을 상하게 하고 물건을 해롭게 하지 않는 것이 없는 위인입니다. 임진년 충청감사[錦伯] 시절에 죄 없는 관노 세 사람을 때려 죽였습니다. 또 경삼감사[嶺伯]로 있을 적엔 영남 관찰사는 수청기생 나이 열여덟의 애기(愛妓)를 별안간 잘잘못도 물어보지 않고 안반으로 쳐서 죽였습니다.
 
293
김 난순(金蘭淳)은 바다의 큰 도둑이며 관서 지방의 강도로서 국가에는 대역무도한 자이옵니다.
 
294
김 응근(金應根)은 성품은 묵직하나 정신이 혼미하여 방금 들은 말도 잊어서 소송을 처리하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앞뒤를 가리지 못하며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할 줄도 모르옵니다.
 
295
김 대근(金大根)은 강원 감사 때 3년 동안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뒷전이고 주색에 빠져 도민의 원성이 자자하였습니다.
 
296
김 주근(金朱根)은 충청 감사 때는 각 고을에서 올라오는 보고문(報告文)을 살피지 않을 뿐 아니라 밤낮으로 향락만 즐겨 아침에는 아전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가 저녁에는 기생의 갈비뼈 밑으로 들어가는 추태를 부렸사옵니다.
 
 
297
※ 선화당(宣化堂) : 각 도 감사가 집무하던 경청
 

 
 

19. 6조 판서

 
299
이조 판서 조 최년(趙崔年)은 얼굴 좋은 도적으로 풍채가 좋아 대장부라 할 만합니다만 평양에 있을 때 부당하게 허욕을 부려 여러 고을로부터 뇌물을 받아들여 민심이 분분할 뿐더러 원망이 하늘에 닿습니다.
 
300
병조 판서 조 기영(趙基永)은 전하에게는 아주 비위를 잘 맞추옵니다.
 
301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보면 얼마나 역겹겠습니까. 죽어도 아까울 것 없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옵니다.
 
302
형조 판서 이 세득(李世得)은 사람됨이 활달하고 성품이 물 흐르듯 하여 송사(訟事)를 처리함이 원만하였으며 평생 시와 술이 취미였습니다.
 
303
호조 판서 심 학성(金學成 )은 재물을 엄격히 처리하며 청렴하여 신하의 도리를 다하니 우국 충신임에 틀림없사옵니다.
 
304
훈련대장 이 응식(李應植)은 나쁜 소문이 들리지 않아 가문을 깨끗하게 보존하였음에도 더 벼슬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305
금어(禁漁) 대장 신 실우(申實祐)는 지극히 사치스럽고 교만 방자하지만 공문(公文) 처리에는 막힘이 없고,
 
306
금어 별장(禁漁別將) 윤 치겸(尹致兼)은 오언시(五言詩)는 지을 줄 몰라도 육갑(六甲)은 짚을 줄 아는 인물로서 사람됨이 보잘것 없으며,
 
307
우포장(右捕長) 등은 성격은 패악하여도 도적 다스리는 데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또 오로지 정신이 주색에만 있고 일신의 정력이 허욕에만 가득 찼으며, 더러는 본래 무식하여 어디에도 불필요한 인물이옵니다.
 
308
그 밖에 양주 목사, 전라 병사. 제주 목사. 북병사, 남병사, 교동 수사, 강원 감사, 함경 감사, 홍문관 부제학, 대제학 등 20여 명은 충과 효를 겸전한 사람으로서 나라가 어지러우면 우선 전하를 등에 업고 난리를 막을 사람이옵니다. 이들 모든 신하들의 능·불능(能不能), 당·부당(當不當)을 잘 가려서 어진 신하들이 가까이서 전하를 모시도록 하옵소서.
 

 
 

20. 두 老處女

 
310
남대문 밖 한림원에 두 처녀가 있는데 언니는 나이가 40세나 되고 동생은 나이가 30세라고 합니다.
 
311
이들은 대신 김 아무개의 현손녀(玄孫女)인데 조실부모하고 남자 동기간이 없을뿐더러 일가친척도 없으며 외가의 겨레붙이마저 없어 백척간두에 놓인 신세로 무너진 3간 초가집에서 비바람도 가리지 못한 체 서로 의자라며 시집도 가지 못했다 하옵니다.
 
312
전하께서 이들의 혼처를 주선하게 해주시면 혼수는 신이 마련하겠사옵니다.
【원문】용천 기생 초월 상소문(龍川妓生楚月上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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