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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인상(印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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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2.1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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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印象[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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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벌이를 쫓아서 어제는 서쪽으로 불리고 오늘은 동쪽으로 흐르게 되는 신세가 되니 가지각색의 고생도 고생이려니와 별별 흉하고 무서운 일도 많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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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쓰는 것도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목도한 사실인데 내가 본 여러가지 인상 가운데서 가장 무서운 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그때 그 광경을 목도한 친구들은 처음 보는 참혹한 일이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말이지 지금도 그 생각이 번쩍 하면 그때 광경이 뚜렷이 눈앞에 떠올라서 소름이 쪽 끼치면서 눈이 저절로 감기어집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그 때문에 세상에 기계라는 기계와 쟁기라는 쟁기는 다 미워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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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여러분도 아시는 일이라고 믿읍니다. 작년 이때 함경북도 ××역에서 콩을 쓸던 늙은 부인이 기차에 치어서 죽었다는 보도가 신문 지상에 굉장히 났던 것은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기 쓰는 것은 그것인데 그 광경을 나는 그때 ××역의 노동자로서 친히 목도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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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그 무섭기도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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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나는 ××역에서 수백명 노동자들과 함께 정거장 노동을 하였읍니다. 그래 매일 아침 일곱시나 일곱시 반에 정거장 넓으나넓은 폼에 나가서는 기차에 짐을 싣기도 하고 기차에서 짐을 풀기도 하여 ‘치기영’ 소리가 입에서 떠날 새 없이 부지런히 일하다가는 저녁에 해가 져서 하숙을 돌아갔읍니다. 이렇게 다니는 우리 노동자와 같이 정거장에 나다니는 일꾼이 있었읍니다. 그것은 ‘콩쓸이’ 들이었읍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역은 북조선 관문이 되어서 간도로부터 나오는 곡식이 전부 그리로 경유합니다. 그런 까닭에 가을 겨울 봄──한창 곡식이 나오는 때가 되면 간도서 마차에 실어내는 곡식이 ××정거장에 산더미같이 쌓이어서 발을 옮기어 디딜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터지는 곡식섬이 적지 않아서 조콩부터가 땅바닥에 수북이 흐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세상에는 밥 굶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거짓말같이 생각되지요. 어떤 때는 궂은 비 찬 눈을 맞아 가면서 목구멍 때문에 껄덕거리는 우리네 짓이 우습기도 합니다. 그렇게 땅바닥에 흐르는 곡식을 쓸어모으는 것이 ‘콩쓸이’ 의 직무입니다. 그것도 ‘콩쓸이’ 의 자유로 하는 것이 아니요 감독의 명령 아래서 움직이게 됩니다. 내가 ××역에 있을 때에는 김서방이란 자가 ‘콩쓸이’ 감독으로 있었읍니다. 그는 그때 삼십이 될락말락한 눈이 똥그랗고 얼굴빛이 거뭇하며 입술이 갈잎 같은 사람인데 곡식 장사와 정거장에 알랑거리고 지금 만호 장안을 들썩하는 부협의원 운동 이상의 운동으로 하여 ‘콩쓸이 감독’ 이라는 직함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콩쓸이 감독’ 의 사무는 아침에 일찍 나와서 곡식 도적놈이 없는가고 정거장을 돌아보고는 군졸 ‘콩쓸이’ 들이 콩쓰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는 노동자들이 모이는 청방에 자빠져서 불도 쪼이고 담배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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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 팥도 쓸지만 콩을 많이 쓸게 되는 까닭에 콩쓸이라는 이름을 가진 군사들 가운데는 늙은이 젊은이 어른 아이 계집 사내 이렇게 있는데 그네들은 헌 누덕을 등과 허리에 걸치고 시린 손을 혹혹 불면서 곡식을 쓸어서는 감독과 절반씩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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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콩쓸이 가운데 봉준 어머니라고 그때 칠십이 가까운 노파가 있었읍니다. 나이 어려도 반질반질해서 미동이 될 만하고 젊어도 좀 태도가 있고 외모가 똑똑하고 감독의 말을 잘 복종하는 계집이래야 콩쓸이 군사로서의 자격을 얻는 것이고 그밖에는 소개가 든든해야 늙은이가 들어가는 터이라, 이 봉준 어머니는 여러 노동자의 힘으로 삼 년 동안이나 무사히 콩쓸이 군사로서 감독에게 쫓기지 않았읍니다. 그는 퍽 침착하고 부지런하였읍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말이 많았읍니다. 그때 그의 머리는 백발이 성성한데 머리는 늘 체머리──흔들흔들 떨었읍니다. 그리고 주름이 그득한 낯에는 웃음이 흐른 때가 없었으며 눈이 어두워서 어떤 때는 돌을 콩이라고 주운 일이 있었읍니다. 몹시 추운 날에는 허리에 포대기를 두르고 손에 버선을 끼고 정거장으로 어청어청 나왔읍니다. 말없이 빗자루와 자루를 들고 어청어청 다닐 것 같으면 해가 어찌 가는 줄을 모르고 콩을 쓸지만 한번 퍼버리고 앉아서 먼산을 뚫어지게 보면서 무엇을 생각한다든지 또는 우리가 쉬는 청집에 들어와서 난롯불을 쬐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죽은 아들 이야기, 늙은 신세 타령에 시간가는 줄 몰랐읍니다. 이 때문에 감독은 은근히 이마를 찌푸리고 꿍얼거렸지만 여러 노동자의 입이 무서워서 봉준 어머니를 괄세치 못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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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 사나운 때면 노동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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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청방에 들어가서 불이나 쬐이고 쓰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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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직접 봉준 어머니에게 권하기도 하고 또 입살이 좀 뻣뻣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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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감독 나리 저 노친(함경도서는 늙은이는 사내나 계집이나간에 노친이라 함)을 좀 쉬이도록 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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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감독에게 톡 쏩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을 때에 그 노파가 눈에 띄면 나눠 먹는 것이 예사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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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노파는 황송무지라는 표정으로 불도 쬐이고 밥도 먹지만 어떤 때는 공연히 성이 잔뜩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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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누가 밥 먹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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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저편으로 갑니다. 그러는 때마다 노동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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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신 나갔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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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웃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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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이 있으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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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들은 다 그런 신세지, 별수가 있는 줄 아나, 허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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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로 기막힌 듯이 뇌이는 노동자도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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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가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의 소리인지 또는 봉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몰랐던 까닭에 그런 꼴을 보거나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별로 흥감이 없었읍니다. 그러다가 차츰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전하는 말을 듣고 또 직접 봉준 어머니가 미친 이처럼 지껄이는 모양과 말에서 봉준 어머니의 생애를 알게 된 뒤로는 그를 보는 때나 그의 말을 듣는 때마다 나로도 알 수 없이 가슴이 찌르르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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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내가 그의 말로(末路)를 끔찍하게 보게 된 것도 그의 생애를 안 까닭이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비참하고 무서운 그의 말로는 그가 밟은 쓰라린 사실이 있는지라 더 힘있게 나의 머리에 박히어서 좀처럼 잊혀지지 않읍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그의 말로를 쓰려는 데 이르러서 그것을 더욱 힘있고 인상이 깊게 하기 위하여 먼저 그의 지나온 일부터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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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괴롭다. 사람은 무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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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은 누구나 항례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때에는 이 말을 그리 큰 느낌 없이 말하지만 한번 괴롭고 쓰린 환경에서 헤아릴 수 없이 변하는 물결에 쪼들리는 인간을 볼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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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괴롭다. 사람은 무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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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입으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몸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일 우리와 처지를 같이한 사람이면 그 느낌은 더 굳세어져서 바로 내가 당하는 듯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봉준 어머니를 생각하는 때마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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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 어머니는 그때 ××역에 간 지가 열 한 해나 되었읍니다. 그는 본래 강원도 어떤 산골 사람이었읍니다. 그가 삼십이 가까와서 봉준이라는 아들을 낳았읍니다. 그 아들 봉준이가 여덟 살 났을 때에 그의 남편 즉 봉준 아버지가 역에 가서 노동판에 있었읍니다. 그러나 봉준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농사도 짓고 닭도 쳐서 겨우 살아가면서 한 달에 한두 번씩 오는 남편의 편지를 무상의 기꺼움으로 받으면서 살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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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간다, 봄에는 간다 하였더니 가을이 되고 봄이 되어도 바라는 돈은 손에 들어오지 않는구려. 그래도 그립지 않은 바는 아니나, 봉준의 생각이 가슴에 맺히어서 참말 한시가 새롭소. 여름은 어떻게 지내었으며 겨울은 어떻게 나는지 천리에서 돌아가는 구름에 맘만 죄일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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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때는 한푼이라도 모아서 남의 빚을 갚고 그놈의 돈단련 없이 편한 백성이 되렷더니 어디 그렇게 되야지요? 아무쪼록 봉준이를 데리고 과히 걱정치 말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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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 어머니에게 가는 봉준 아버지의 편지는 대개 위와 같았읍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돈도 몇 원씩 보내었읍니다. 돈이 오고 편지 올 때마다 봉준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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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버지 계신 데는 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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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읍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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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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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봉준이가 귀여워서 웃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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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 어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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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저 백두산 있는데…… 아주 하늘 지경 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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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를 찾아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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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끝에 이러한 어린 봉준의 말이 나오는 때마다 그 어머니는 한숨을 지었읍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의 남편 그리는 맘은 얼마나 하겠읍니까? 눈이나 뿌리는 때면 남편이 춥게나 자지 않는가? 비오는 때면 남편이 옷이 젖지나 않는가? 갈바람 낙엽 소리에도 남편이 오는가 잠을 깨고 달밤 기러기 소리에도 눈물로 밤을 새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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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사이에 흐르는 물같이 가고 올 줄 모르는 세월은 오 년이나 되어서 봉준의 나이 열 두 살이나 되었읍니다. 이렇게 봉준이가 열 둘 나던 해 봄이었읍니다. 닥쳐오는 불행한 운수는 드디어 큰 자국을 내었읍니다. 그것은 봉준 아버지가 관격이 되어서 죽었다는 부고였읍니다. 모든 괴롬과 억울을 참으면서 오직 그 남편의 금의환향을 바라던 봉준 어머니의 가슴은 어떠하였겠읍니까? 두 모자는 소슬한 가을 바람 속에서 쓸쓸히 부딪치는 낙엽같이 서로 잡고 울다가 두 모자는 빌어먹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나서 일 삭 만에 ××역으로 갔읍니다. 이렇게 작년으로부터 십 일 년 전에 ××역으로 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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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 부푸는 물과 같이 열도가 극하면 전후를 헤아리지 않고 끓어오르다가도 한번 어떠한 정도에 이르러서 떨어지게 되면 그만 식어져서 전후를 돌보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맘이라고 할는지요. 처음에는 그립고 아쉽고 원통한 맘에 설움이 극도로 복받쳐서 죽기살기를 잊어버리고 두 모자는 빌어먹으면서 ××역까지 갔으나 정작 다달아서 무덤을 보니 눈물밖에 별 수가 없었읍니다. 생활이라는 무서운 위협은 뒤를 이어서 두 모자의 머리를 굳세게 눌렀읍니다. 물정에 서투른 봉준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그 남편이 일하던 노동판을 찾아가서 여러 가지로 사정한 결과 봉준이를 노동판에 넣기로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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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봉준이는 처음에는 장정들의 심부름으로 지내다가 차츰 세월이 가서 열 육칠 세가 되면서는 장정들과 같이 곡식섬을 메었읍니다. 처음에는 퍽 괴로와하여서 하루 일하고는 하루씩 몸살을 하였으나, 점점 단련이 되어서 일을 곧잘 하였읍니다. 원래 위인이 순박하여서 퍽 부지런하고 영리하며 말을 잘 들었으며 또 어머니도 여러 노동자들께 친절해서 봉준의 모자는 노동자의 후대를 입었읍니다. 겨울에 날이나 추운 때면 봉준 어머니는 늘 토장국을 끓여다가 노동자들께 권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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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내다가 봉준이가 열 아홉 살이 되어서 겨우 온전한 일꾼이 되고 또 그 어머니의 팔자도 피일 만하게 되었을 때였읍니다. 하루는 이른 봄 아직도 겨울 추위가 남았는데 노동자들은 영림창 서편 두만강 가으로 나무 심으러 갔읍니다. 물론 봉준이도 그 축에 끼었읍니다. 여러 노동자들은 트럭을 밀어다 놓고 산더미같이 쌓아 놓은 ‘무투’ 를 목도에 떠서 트럭에 실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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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기영, 치기여, 영치기, 영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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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여러 노동자들은 두서 발 되는 아름드리 나무를 목도에 떠메고 미끌미끌하고 휘청휘청하는 높다란 발판으로 올라가서 트럭에 길이로 탕탕 실었읍니다. 이렇게 목도를 (커단 나무 양옆에서) 메인 것을 보면 지네나 노래기의 발같이 사람이 조르르 선 것이 재미있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우리네처럼 직접 당하게 되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휘청거리는 발판으로 올라갈 때면 아주 다리가 떨리어서 칠성판에 선 것 같읍니다. 그저 돈이지요. 돈! 돈! 돈! 그놈의 것 때문에 죽을 줄 알면서도 동지 섣달 찬바람에 얼어서 발붙일 수 없는 발판으로 크나큰 나무를 둘러 메고 항항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오릅니다. 우리의 주인공 봉준이도 이렇게 목구멍이 포도청으로 잔약한 어깨에 그것을 메고 올라갔읍니다. 그때 봉준이와 같이 일하던 친구의 말을 들으면 그렇게 발판으로 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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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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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가 나자 치기영 소리가 뚝 그치면서 어깨에 붙었던 목도채가 뒤통수를 짝근 후리는 바람에 그만 미끄러지고 쓰러져서 그 높은 발판에서 떨어졌읍니다. 아마 누가 실수를 해서 한 사람이 쓰러지는 바람에 모두 쓰러지었는가 봅니다. 워낙 목도라는 것은 그렇게 위태한 것입니다. 한 사람만 발을 잘못 디디어도 모두 휘우뚱거리게 되고 한 사람만 실수해도 자빠지고 부러져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단속을 하고 서로 값없이 떠다니는 그 목숨이나마 주의를 합니다. 우리네가 치기영 부르는 것은 무슨 기꺼운 노래가 아니라 발맞추는 행진곡이며 서로 힘을 돋우는 구령입니다. 이렇게 목도꾼 놈의 노래도 알고 보면 의미가 심장하지요. 요리집이나 강당에서 편안히 앉아서 부르는 노래보담도 나은 때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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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러 노동자가 발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그 크나큰 나무도 꽝하고 언 땅에 떨어졌읍니다. 아아 나무가 떨어지는 곳에는 금방 발판으로 그 나무를 끄집어 올리던 노동자가 넷이나 치었읍니다. 둘은 허리가 끊어지고 하나는 가슴이 부서지고 하나는 다리가 부러졌읍니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은 곧 병원으로 보내었으나 그것도 돈 없는 탓으로 치료가 불완전해서 사흘 만에 죽고 가슴 부서진 사람과 허리가 끊어진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했읍니다. 그 가운데는 과부의 외아들인 봉준이도 끼었읍니다. 그는 허리가 부러져서 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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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다른 친구가 할 때면 괜찮지만 봉준 어머니──그 늙은 노파가 체머리를 흔들면서 눈물이 글성글성해서 목메인 소리로 말할 때면 참말 들을 수 없었읍니다. 그는 그 아들의 죽던 전말을 이야기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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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하누님도 무정하시지 글쎄 내 외아들을……. 제발 여보소……. 당신네들은 이 일을 마시우! 휴…… 이게 아니면 굶어 죽겠오? 제발 이 일을 마우……. 사람이 죽어도 좋은 죽음을 해야 하지 그 몹쓸 봉준이 죽은 것을 보던 일을 생각하면(그는 눈앞에 그때가 보이는 듯이 몸소름을 치면서)…… 에구 끔찍두 해서……. 내가 평생 남에게 못할 짓을 안 했는데 내 아들은 그렇게 죽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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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울었읍니다. 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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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두 거짓말이야.……우리 남편이 객사(客死)를 하구 내 아들이 그렇게……. 그저 돈이야 돈! 나두 돈만 있어서 전장이나 많이 가지구 편안히 있었으면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있오. ……휴 …… 제발 당신네는 그저 처자와 부모를 생각하거던 이 일을 하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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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우리더러 극히 권하였읍니다. 나는 그때 그 노파를 보고 그 노파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보지도 못한 봉준의 그림자──커단 나무에 치어서 북국의 찬바람에 시멘트같이 언 땅에 뜨겁고 붉은 피를 흘리고 허리 끊어져 죽은 봉준이의 그림자가 보이었읍니다. 지금도 보이는 때가 있읍니다. 그러다가도 그 그림자가 봉준이가 변하여 내가 그렇게 치인 듯이 보이는 수가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 노파같이 헌 누더기에 싸이어서 울고 다니실 우리 어머니의 그림자가 눈앞에 떠오르는 때, 나는 그만 소리를 치고 하루바삐 그 위태로운 노동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싶었읍니다. 그러나 하는 수 있어야지요. 밥이라는 시퍼런 위협을 무슨 수로 면하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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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노파의 내력을 안 뒤로는 나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그 노파를 무심히 보지 않았읍니다. 그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무심히 보지 않으리라 해서 무심히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노파를 대할 때면 나의 핏줄같이 켕기었읍니다. 이것이 처지를 같이한 까닭이겠지요. 다시 신식말로 하면 무산자(無産者)가 무산자에게 대한 자연적 의식에서 흘러나오는 정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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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봉준의 그림자는 나의 그림자 같고, 노파의 운명은 우리 어머니의 늘그막 운명을 가리키는 듯해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식을 새가 없었읍니다. 이것은 나뿐이 아니라 나와 같이 일하던 친구들은 늘 그러한 감상을 말했읍니다. 그러다가도 술을 마시고 유곽의 붉은 등 아래 붉은 웃음에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았읍니다. 그밖에는 그네의──즉 우리 노동자의 위안거리가 없으니깐요. 우리들은 가난한 가정에서 상놈이라는 명명 아래서 큰 까닭에 공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학교 문앞에도 못 가 보았읍니다. 우리는 무슨 주의가 무엇인지 신문 잡지가 무엇인지 강연회 기도회──그런 것은 모릅니다. 모르니 취미가 붙어야지요? 그저 술을 마시어야 세상이 팥알 같고 괴롬이 스러지며 늘 향긋한 계집의 살이 그립습니다. 언제 돈을 벌어서 소위 신식 양반들처럼 연애를 해 보고 신가정을 이뤄 보겠읍니까? 구가정도 못 이루는 우리는 유곽밖에……. 등심이 빠지도록 번 돈으로 한 시간이나 하룻밤 동안 계집을 사는 수밖에 도리가 없읍니다. 저축! 그것도 먹고 남아야 하지요. 금색! 그것도 내 여편네가 있고서 할 일이겠지요. 그렇구 말구요. 제 계집을 두고 유곽을 찾으며 첩을 두는 것이야 마땅히 금할 일이구 말구요. 그런데 그네들이 도리어 우리를 경계하고 가르칩니다. 세상은 거꾸로 되는 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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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너무 왼길로 들어갔읍니다. 이제는 봉준 어머니의 약력을 대강 썼으니 그의 말로를 쓰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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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음력으로 구월 스무날이라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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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는 잠잠하던 일기가 해돋이부터 바람이 나고 일기가 흐리기 시작하였읍니다. 소 대가리가 터진다는 ××역 바람은 간도를 거쳐서 나오는 바람이라 한번 일기 시작하면 우르릉우르릉 하는 것이 천지가 금방 무너지는 것 같읍니다. 게다가 눈까지 뿌리게 되면 바람발에 날리는 눈발이 낯을 쳐서 눈코를 뜰 수 없이 됩니다. 가고 오는 마소까지 문득 서서는 뿌연 서리를 훅훅 뿜습니다. 그래도 말이나 소는 주인이 있어서 죽이라도 뜨뜻이 쑤어 주고 등에 덤치라도 걸쳐 주지만, 우리네 노동자야 담박 눈바람에 거꾸러진 대야 뜨뜻한 물 한 술인들 그저 먹을 수 있어야지요. 눈이나 오고 바람이 불면 곡식이 젖어서 돈이 손해 난다고 눈을 쓸리고 ‘가방’을 씌우고 하여 우리네는 더 일하게 됩니다. 돈 아는 이들이야 우리네 목숨보다도 콩 한 섬을 더 중히 아는 터이니 물론 그러겠지만 사람이 쓰려고 사람이 지어논 돈에 사람이 부리이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네 입에서 저주가 안 나올 수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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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때에도 그 눈보라를 무릅쓰고 축은축은한 콩섬을 메어서 한 쪽에서는 도루꼬에 싣고 한 쪽에서는 철도 창고에 들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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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가까와서였읍니다. 그 몹시 불던 바람은 잠적하였으나 눈은 점점 더 퍼부었읍니다. 삽시간에 세상은 뿌연 안개 속에 잠기었읍니다. 이렇게 되니 차츰 뼈까지 사무치던 찬기운은 풀리고 날씨가 푸근하여졌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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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에 청방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머리도 없고 끝도 없는 이야기를 여전히 중언부언하는데 어떤 친구가 큰일이나 난듯이 뛰어들어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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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사람 죽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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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읍니다. 그 바람에 수수하던 청방 안은 금시로 물이나 뿌린 듯이 고요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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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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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뛰어들은 친구의 낯을 보았읍니다. 그 묻는 사람들의 낯빛은 놀라웁다는 것보담도 호기심에 흐리었읍니다. 나도 그 죽음이 예사의 죽음은 아니라고 직각은 하였지만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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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저기서 지금 기차에 치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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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들은 친구는 찬바람에 언 뺨을 만지면서 무슨 자랑 비슷하게 말하면서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읍니다. 그 바람에 모두 우우 일어나서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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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발 같은 눈은 점점 퍼부어서 그새 오륙 치나 쌓이었읍니다. 천지는 눈안개 지척을 가릴 수 없다시피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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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방에서 나서면 바로 정거장 폼이외다. 눈 때문에 고요하던 넓으나넓은 마당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모이어 들어서 버글버글 저편에 있는 창고 앞으로 몰려갑니다. 그 앞은 바로 철길입니다. 그것을 본 나는 여러 사람과 같이 뛰어갔읍니다. 창고 앞에 거의 다다르니 어느새 모자에 금줄 두른 역장이며 전철수(轉轍手)며 종차수며 순사가 죽 모이어 섰읍니다. 그것을 볼 때 내 가슴은 무슨 불안이나 닥치어오려는 때와 같이 두군두군하고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걸음이 떠지었읍니다. 그러면서도 돌아가기는 싫었읍니다. 그래 천척 절벽 끝에나 나서는 듯이 엉금엉금 나서는데 귓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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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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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가 들리자 내 가슴은 쿵하면서 두군두군하였읍니다. 무엇에 쫓긴 듯도 하고 무서운 동굴에나 이른 듯도 하면서도 호기심이 바싹 났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쓰레기 노친’ 할 때 봉준 어머니의 그림지가 눈 앞에 언뜻하던 것입니다. 나는 창고 앞 여러 사람들 틈에 끼어 섰습니다. 바로 일번선(一番線) 선로였읍니다. 거기에는 무참히 죽은 시체가 놓였읍니다. 지금도 그때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머리로부터 어슥이 왼가슴까지 찻바퀴에 치었읍니다. 그 전에는 차에 치이면 도끼나 작도로 뭉턱찍어논 듯이 된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때 그 시체는 그렇지 않았읍니다. 절구통에 집어넣고 짓찧어 놓은 듯하였읍니다. 머리는 부숴져서 두부를 짓이긴 듯한 얼굴이 흩어진데 끊어진 가슴으로 콸콸 흐른 검붉은 피는 수북이 내려 쌓이는 눈을 물들이고 녹이었읍니다. 그렇게 흐르는 피는 벌써 들어서 ‘들죽’ 처럼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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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누구인가? 쌓이고쌓인 원한을 가슴에 품고 한 알 두 알의 콩을 쓸어서 남은 삶을 이어가던 ‘봉준 어머니’ 였읍니다. 찬바람을 막노라고 허리에 두른 누더기와 찢기고 때오른 의복에는 붉은 피가 점점이 묻었는데 사정 없이 내리는 눈발은 그 위에 쌀쌀히 뿌리었읍니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한시도 놓지 않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는 선로 저편에 뿌리어서 눈에 반이나 묻히이고 선로에 가로놓인 콩자루는 찢기어서 누런 콩알이 미죽이 흘렀읍니다. 시체의 차디찬 손은 그 찢어진 자루의 한 끝을 꼭 쥐었읍니다. 그것을 볼 때──그 자루 쥐인 손을 볼 때 먹음〔食〕이란 그렇게도 굳세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읍니다.
 
73
곁에 선 순사며 역장은 이마를 찡기고 서서 무어라 중얼중얼합니다.
 
74
나는 표적이 드러났건마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읍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봉준 어머니인 것은 더 말 없으나 아까 금방 그 노파를 보고 이제 그런 일을 볼 때 어쩐지 그와 같이 믿어지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것이 속일 수 없는 봉준 어머니라고 믿을 때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의 심장을 만지려고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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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니 그는 기차에서 흐른 콩알이 선로에 있는 것을 보고 내리어가서 쓸다가 ‘이리까에(入換[입환])’ 하는 때에 치었다 합니다.
 
76
넓으나넓은 세상에는 그를 위해서 그의 시체에 손 대주는 이가 없었읍니다. 모든 사람은 고요히 그것을 보면서 눈을 맞고 있었읍니다. 순사와 역장들도 시체쳐낼 일꾼을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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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어 섰던 우리 노동자들은 그의 끝을 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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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짐들 실어. 무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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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감독의 모진 소리에 다시 폼에 돌아와서 짐을 메기 시작하였습니다.
 
 
80
그 이튿날 들으니 봉준 어머니의 시체는 철도국에서 묻었읍니다. 그리고는 별일이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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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 있으면 위자료 삼백 원은 줄 터이나 없으니 그 대신 우리가 장래를 훌륭하게 지낸다.”
 
82
하고 역장인지 조역인지가 의기양양하게 말하더랍니다. 삼백 원! 사람의 목숨이란 참 싼 것입니다.
 
83
그 뒤로부터 나는 이상스러운 병이 생기었읍니다. 공연히 기차가 무섭고 싫었읍니다. 그놈이 푸푸 뚤뚤 굴러가고 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진저리가 납니다. 그 바퀴에 내 머리와 가슴이 버석버석 짓이겨지는 듯한 동시에 봉준 어머니 같은 그림자가 알 수 없이 눈앞에 선히 떠오릅니다. 어떤 때는 그 그림자가 나 같기도 합니다. 그래 일하러 나간 때마다 기차를 보게 되는 것이 싫어서 그 담부터는 정거장 일을 버리고 이렇게 치도(治道)판으로 돌아다닙니다.
 
84
그러나 치도판에 와도 나의 맘은 조금도 편치 않읍니다. 거기도 역시 기차와 같은 것이 있어서 못 견디겠어요. 그것은 길바닥을 다지는 ‘로울러’ 인데 그 커단 바퀴가 굴러오는 것을 보면 역시 나의 뼈와 고기가 거기에 바짝 깔리는 것 같읍니다. 그뿐만 아니라 점점 다른 기계까지 미워지고 무서워서 삽이나 곡괭이를 보아도 그놈이 모가지나 허리를 찍는 듯이 아심아심합니다. 심지어 면도칼까지도 쓰다가 서랍 속에 깊이깊이 감추어 두지 않으면 반짝하는 빛이 이상하게도 눈앞에 떠올라서 잠을 못 잡니다.
 
85
이렇게 모든 것이 처음에는 무서워지더니 다음에는 미워지고 미워지는 것이 심하여지더니 나중은 그만 부숴 버리고 싶읍니다. 그래서 지금은 ‘로울러’ 나 기차는 더 말할 것 없고 조그마한 기계를 보아도 그만 부숴 버리고 싶어서 이가 갈리고 주먹이 쥐어집니다.
 
86
그럴 때마다 내 눈앞에는 내 앞길이 보입니다. 노동자로서의 내 앞길이 활동사진같이 살아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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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붉은 나의 피여!
【원문】무서운 인상(印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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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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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4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