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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12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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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가(牧歌)
 
 

1. 1

 
3
“이번에는 네 처까지 다 데리고 올라가게 하고 내려왔지?”
 
4
내가 집으로 내려온 날 밤에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앉히더니 이렇게 물으신다.
 
5
봄에 내려왔을 때 아버지가 이제는 돈을 아니 주시겠다고 하시므로, 이번까지 돈을 주시면 내 아내까지 다 서울로 데려다 살림을 하겠다고 굳이 졸라서 그때에도 또 돈 3백 원을 가지고 올라갔던 것이므로, 이번 내려오면 으레 이러한 말씀은 들으리라, 예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되지는 못하였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6
“네- 장차로는 그리 되겠습지요.”
 
7
할 밖에. 하니까 아버지는,
 
8
“무엇이! 장차라니.”
 
9
놀라신다.
 
10
“일이 아직 채 되지를 못해서 그럽지요.”
 
11
했더니,
 
12
“아니 일이라는 게 대관절 무슨 일이관데 그리 힘이 든단 말이냐? 어디 좀 자세히 알어나 보자. 이게 삼 년짼가 원 사 년짼가?”
 
13
아버지는 그 일이라는 것이 너무도 세월이 없는 듯이 이렇게 대들며 턱을 내미신다.
 
14
아니 게 아니라, 일이라는 것을 아버지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실에 있어서 나의 일이라는 것은 취직에 있었으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사 년 동안이나 취직을 못 하고 돈만 가져다 쓴다기는 너무도 창피하여 돈을 얻어내는 한 수단으로 회사를 하나 만든다고 거짓말을 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 일이라는 것은 내가 취직이 되어서 달리 거짓말을 꾸며대기 전에는 끝은 언제나 나지 못할 것이다.
 
15
그런 데다가 나는 이번에도 이러한 형편에서 또 돈을 가지러 내려 왔으므로 역시 그 뜻대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16
“글쌔 그 회사 때문에 그렇지요, 뭘-.”
 
17
“거 무슨 회사기에 그렇게 힘이 든다느냐?”
 
18
“한솟 다 되었는데 아직 돈이 좀 부족해서 그래요.”
 
19
아무래도 나는 돈 이야기를 또 꺼내야 될 것이었으므로 아예 이 기회에 대답 삼아 또 내다 붙었다.
 
20
“아니 뭐 뭣이! 또 돈?”
 
21
아버지는 인제 돈 소리는 듣기도 무섭다는 듯이 흠칠 하고 놀라시며 얼굴을 모으로 돌리신다.
 
22
내 일을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한 지가 벌써 사 년이나 넘었는데 취직을 못 하고 집에서 돈을 가져다 쓰자니 실로 아버지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것도 남과 같이 여유나 있는 돈이면 모르거니와 얼마 되지도 않는 전답을 팔아다 쓰자니 딱한 노릇이었다.
 
23
그러나, 집에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을 어찌하노. 오락기관이 있나, 이야기 동무가 있나, 이렇게 와서 며칠씩 있는 것도 참으로 참기 거북한 노릇이어늘…….
 
24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서울 같은 도시에 취직을 하고 살으려니까 좀처럼 되지를 않는 것이다. 됨네 하고 속아서 넘어가는 되지도 않는 취직에 운동비만 쓰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시켜 준다는 그 녀석들이 괘씸해서 그만 집어치우고 집으로 내려와 문화주택이나 하나 본때 있게 지어 놓고 라디오, 측음기나 쓱 틀어 놓고 앉아서 소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으나, 그러니 위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하나 못한다는 것은 자신으로서는 부끄러운 노릇이어니와, 우선 동네 사람들의 치소란 원 들을 수가 없었다.
 
25
속세(俗世)를 벗어난 성자(聖者)처럼 도시를 떠나 청아한 농촌에 파묻히는 것도 누가 그렇게 알아주기만 한다면 오히려 보다 더한 명예가 될는지도 모르겠는데 땅이나 파먹는 무지한 것들이란 이런 것을 알아주지를 못한다. 이건 바로 대학을 졸업하면 반드시 무엇든지 한 자리 해야 되는 줄로만 안다. 공부란 자기 수양을 위해 하는 것이지 취직을 위해 하나?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힐 지경이다. 더 참고 앉았을 수가 없었다.
 
26
“이제 5백 원만 가졌으면……”
 
27
아버지야 놀라건 말건 나는 또 이렇게 내다붙였다. 아무리 해도 나는 그렇게 못 살 것이니까 아니 조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취직 운동비도 그렇거니와 우선 가을 양복도 또 한 벌 하여야겠고 겨울까지 서울서 나려면 아무리 절약을 하여도 그렇게 아니 가지고는 예산이 맞지를 않았다.
 
28
“아니 회사를 금으로 만드니 은으로 만드니?”
 
29
대답도 없이 앉았던 아버지는 입맛이 쓴 듯이 끙 하고 갑으며 한숨만을 남기시고 휙 나가 버리신다.
 
 
 

2. 2

 
31
“아버님! 어서 5백 원만 더 해주세요. 이번까지 주시면 제 손으로 벌어 쓰게 될 것입니다.”
 
32
그 이튿날 아침 나는 아버지를 붙들고 졸랐다.
 
33
“안 된다! 안돼!”
 
34
아버지는 이제는 도무지 안 주시기로 결심을 한 듯이 힘있게 막고 패를 주지 않으신다.
 
35
“그러니, 하던 일을 성사를 해 놓아야지 이제 다 된 일을 돈 5백 원 때문에 못 한다면 일을 하던 본위도 그렇거니와 어디 제 체면상이 되었습니까.”
 
36
“체면! 체면이 안 될 게 무엇이냐? 그러다 그 체면 더 버리지 말고 아예 그런 생각을 단념해 버려라.”
 
37
“그러면 그것두 안 하면 놀기야 어떻게 합니까?”
 
38
“놀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놀고야 밥을 먹나! 농사해야지 농사-.”
 
39
나는 이렇게 몰이해한 아버지인 데 자못 놀랐다.
 
40
“아버님! 그게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농살 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농살 한다면 그 치소는 뉘가 받습니까. 제 자신도 그렇거니와 그건 아버님께도 도리어 불명예에요.”
 
41
“치소는 엇놈이 한단 말이냐. 내 손으로 내가 일하는데……. 공부한 놈은 뭐 밥 안 먹구 산다듸?”
 
42
아버지는 비웃는 태도이시다.
 
43
“또 그뿐 아니라. 아버님 이거 보세요. 성자야 능지성인이라고 농촌에서야 사람을 알아주어야 안합니까. 그러니, 그 몰상식한 것들과 어떻게 밤낮 마주 앉아 살어요?”
 
44
“네가 그것부터 틀린 정신이야. 네가 공부를 하였거든 몰상식한 촌사람들을 가르쳐서 가히 이야기 동무가 될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네 자격이지 뭣이 어째? 어떻게 마주앉어? 난, 원, 요즘 놈들 알 수 없더라. 공부를 해가지고 와선 눈깔이야 높아 가지구 촌사람들을 무시하고 우쭐거리며 서울 서울…… 서울이 밥 먹여 주냐? 사람은 흙 속에서 향기를 맡을 줄 알아야 사는 게야 내 원 참, 응…….”
 
45
힘없이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는 재떨이에다 대를 탁탁 터신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버지가 나는 딱했다. 다시 더 말하고 싶지도 않으나 그것은 아무리 해도 내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잠자코 있을 수도 없었다.
 
46
“아버님! 그러야 어디 된 말씀입니까, 거 다 사람 나름으로 가는 게지요. 그리고. 또,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는 데도 분수가 있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것들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전문학교의 교수는 못 돼도, 적어도, 중학교쯤은 되어야지 우선 체면상이 안 그래요?”
 
47
나는 아버지가 너무도 나라는 인물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어처구니없는 듯이 픽 웃으신다. 하시고는 간지럽게 내 낯을 쳐다보신다.
 
48
나는 부끄럽담보다 불쾌했다. 아버지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다하여 한번 튀겨서 마음을 풀고 싶었으나, 아버지인지라, 아무리 불쾌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 뜻을 이루자면 또한 어디까지던지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사야만 되겠기에 나는 그대로 잠자코 말았다.
 
 
 

3. 3

 
50
그래서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뜻을 살꼬 하고 가가스로 궁리를 하며 며칠을 지나자니까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나를 건넌방으로 부르신다.
 
51
건넌방 윗간에는 맏형님, 작은형님 두 분이 아버지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나는 내게 대해서 무슨 의논이 있나 생각을 하며 나도 한 켠짝에 치우쳐 앉았다.
 
52
“자! 내가 너희들을 다 청해 논 것은 다른 게 아니로다.”
 
53
아버지는 내가 들어와 앉는 것을 보시더니 말을 이렇게 꺼내신다. 우리 삼형제는 잠자코 들었다.
 
54
“인제는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55
다시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시며 나를 바라보신다.
 
56
“네 -.”
 
57
무슨 말인지는 모르면서도 나는 급한 마음에 얼른 대답을 했다.
 
58
“오늘 저녁 너희들의 세간을 아예 다 가르자. 그래야 되겠다.”
 
59
그리고, 우리 형제를 한 번씩 훑어보신다.
 
60
아버지의 이 계획은 나를 어디로 가지 못하게 살림살이를 맡겨서 붙들어 드려는 수단에서 나온 것임을 나는 짐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 소리가 어떻게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전권에 자유가 없는 나는 언제부터 속으로는 그리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으나, 아직 형도 세간을 안 났으므로 나부터 먼저는 내줄 수도 없을 것 같아서 말을 못 내고 있던 차이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하면 너무도 제 속을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61
“글쎄요.”
 
62
이렇게 시원치 않은 뜻을 보였다.
 
63
하니까, 아버지는 떨지해하는 대답인 줄만 알고 바짝 다지신다.
 
64
“글쎄요라니! 아예 오늘 저녁 제 몫금씩 다 가르자.”
 
65
이러한 아버지의 의견에 형님 두 분은 물론 동의였다. 그것은 자기네들은 돈 한 푼 쓰지 못하고 꾸덕꾸덕 일만 하는데 벌어 놓으면 내가 죄다 올가다 쓰는 것이므로 혹은 이것이 형님들이 간청으로 된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형님들은 나의 대답이 어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듯이 나의 얼굴을 쳐다보고들 있었다.
 
66
나는 할 수 없이 하는 듯이,
 
67
“글쎄요 아버님이 그렇게 하여야 되시겠다면 그리도록 합지요.”
 
68
하였다.
 
69
하니까, 아버지는 뜻대로 되는 것이 반가운 듯이 빙그레 웃으시며.
 
70
“한데, 세간은 이렇게 갈러야 되겠다. 너희들도 다 알지만 우리 논이 지금 남아 있는 게 꼭 1만 2천 평인데 큰집이 5천 평, 그리구, 작은 아 4천 평, 셋째 너는, 3천 평, 나는 벌써 속으로 다 이렇게 작정을 해놓았다. 셋째는 3천 평이 적다고 하겠으나 적은 게 아니야. 이렇게 해야 작은 아가 나무럽질 않어.”
 
71
계획적인 선언을 하신다. 나는 도무지 어째서 그런지 몰랐다. 그래 그 이유를 물으니까 하시는 말씀이 내가 공부를 하며 쓴 돈이 1만 5천 원이나 나마 된다고 하시면서 집안 돈을 혼자 썼으니 나의 목은 으레 적어야 옳다는 것이었다.
 
72
나는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세간 나는 것을 바라는 뜻은 갈라 놓은 후에는 그것을 내 임의로 팔아서 서울 올려다 집을 잡고 살려던 차이었다. 예산대로 제 몫 다 온다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는 수지가 틀리거니 이제 그나마도 못 되는 것을 나는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73
“그렇게 하시면 저는 세간 안 납니다. 단연히 안 납니다.”
 
74
나는 굳게 이의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한번 말씀을 내신 아버지는 종시 듣지 않으셨다. 형님도 그리해야 옳다는 듯이 모두 아버지의 편이었다.
 
75
나는 도무지 골이 나서 뛰어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태도는 강경하셨다.
 
 
 

4. 4

 
77
며칠이 지난 어떤 날 아침이었다. 나는 읍에를 좀 가 볼 일이 있어서 양복으로 옷을 바꾸어 입으려니까, 양복이 두었던 곳에 없었다. 어머니더러 물어보아도 모르신다 하시고 누이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아내가 어떻게 했을 것인데 세간을 갈랐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부터 아내는 기뻐서 벙글거리더니 오늘 아침은 일찍이 우리의 몫에 던져진 논에 새를 보러 나갔다고 한다.
 
78
나는 아내의 심사에 더할 수 없이 불쾌했다. 세간을 꼭같이 갈라주지 않으면 끝내 안 난다고 졸라야 할 것인데 아내는 그것으로도 만족해서 새까지 보러 다니는 것이다. 양복 건도 물어볼 겸 나는 담박 들로 나가서 끌어 들여오고 싶었으나 차시간이 급해서 그리 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저녁때 돌아와서 톡톡히 알아듣도록 일러야겠다고 머릿속에다 불쾌한 금을 빡 긋고 할 수 없이 두루마기를 떨쳐입고 떠났다.
 
79
그러나, 저녁때에 돌아오자던 것이 하루를 묵어서 그 이튿날도 저녁때에야 나는 돌아왔다.
 
80
뒤란에서 넘어진 바주를 세우시던 아버지는 내가 주의를 벗고 나오는 것을 보시더니,
 
81
“얘!”
 
82
부르신다.
 
83
“금년에 참 벼는 잘 됐느니라. 이삭이 막 방망이 같두나. 어제 종일 벌을 한 반퀴 돌아보니까 우리 벼가 제일이드라.”
 
84
나더러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고 나시더니,
 
85
“너 고래에 나가서 새 좀 봐라. 저녁때가 되면 참새 때문에 얼마나 축이 나는지, 내 뒤란에 바주 마저 세우고 나갈게 좀 나가 봐라.”
 
86
이르신다.
 
87
나는 그것이 어지간히 싫었지만 대답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네 논에 새를 보아라 하고 따지어 이르신다면 그것은 볼 수 없었지만 따지지 아니하고 보라는 데는 마달 수가 없었다. 할 것도 없으니 나는 산보 겸 나갔다.
 
88
집에 내려온 지가 십여 일에 나는 이 고래트리를 처음 나왔다.
 
89
벼는 내 소견에도 참 잘 된 것 같았다. 알이 뚜굴뚜굴한 것이 다닥다닥 붙은 참된 이삭이 논배미마다 즈런히 깔려서 바람이 스칠 때마다 굽십굽실 파문을 놓으며 우쭐거렸다.
 
90
이 1천 5백 평이나 되는 고래트리를 주위로 내 몫에 갔다는 한쪽 구석의 논배미에는 허재비 하나가 위풍 좋게 작대를 들고 섰는데 작대 끝에 매달린 산산히 찢어진 타울이 바람에 풍겨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펄럭거렸다. 소를 먹이려 타고 나가는 마을 아이들 서넛이 지나가며 이 허재비를 보고 노래 격으로 다음과 같이 부르며 지나간다.
 
91
누른 논에 허재비 우습고나야
92
양복쟁이 허재비 신사허재비
 
93
이 소리를 듣고 보니 그것은 과연 양복쟁이 허재비였다.
 
94
비가지로 그린 박첨지 상에다 맥고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앞가슴을 턱 잡아 젖히고 서 있었다.
 
95
순간, 나의 마음은 나도 모르게 산뜻하였다. 그 양복은 빛이 심히도 나의 것과 같았음이다. 그것이 양복이 될 이치는 물론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미안쩍어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분명한 나의 양복이었던 것이다.
 
96
나는 이것이 아버지의 소위일 것을 짐작했다.
 
97
전답을 꼭 같이 주지 않으면 세간을 아니 난다고 고집을 하여도 듣지 않고 건넌마을에 내 집까지 사 놓고 내 뜻에 맞게 수리를 하려고 하는 것을 굳게 듣지 않았더니, 아버지 역시 굳게 나의 발목을 잡아매려고 양복을 버렸는가보다 짐작되었다. 그러나, 양복을 감춘다면 모르지만 저렇게 버리게 만드는 것은 너무 과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98
나는 입맛이 쓰담보다 골이 났다. 그것은 갓 지은 것임에 아깝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도무지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보니 나더러 새를 보라고 한 것은 허재비를 보라고 고의로 이른 말인지도 모를 것 같았다.
 
99
대체 아버지는 양복이 왜 저리 미우실까.
 
100
나는 볼이 부어서 집으로 달려 들어왔다.
 
 
 

5. 5

 
102
“너 왜. 벌써 들어오니? 지금이 한참 새들이 모여들 땐데……”
 
103
하시다가 아버지는 나의 통통히 부은 볼을 살피시고는 어쩐 일인지 몰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신다.
 
104
생각하면 말도 하기가 싫어서 나는 잠자코 앉아 있었으나 아무래도 그대로는 견딜 수가 없어 말을 꺼냈다.
 
105
“제 양복 간수 안 했나요? 아부님.”
 
106
“머 논에서 못 봤니?”
 
107
“논에서 보다니요?”
 
108
“왜 그 허재비를 논에서 못 봤어?”
 
109
“아부님 망년이세요? 일부러 그리셨어요?”
 
110
“아니, 난 또 그건 못 쓸 게라고? 걔가 양복으로 허재비를 만들어 세우더니 그게 그럼 쓸겐가? 난 모르겠다. 네 아낙이 어제 아침에 내다 세웠으니.”
 
111
아버지는 도리어 의아한 눈을 동그랗게 뜨신다. 나는 그제서야 그것이 아내의 장난인 것을 알고 세간을 나서 농사를 해먹자고 밤낮 조르더니 필야엔. 하고 생각을 하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112
“내 양복 어쨌니?”
 
113
나의 이 말에는 날이 서 있었다.
 
114
“제발 이젠 양복 생각은 말으세요 좀.”
 
115
아내는 미안한 듯이 머리는 못 들고, 그러나 반은 아양에 가까운 목소리로 어른다.
 
116
“양복 어쨌나 하는데......?”
 
117
“글쎄 일하실 데야 양복해서 멀 하우, 고운 옷을 입으시문 손에 흙 묻히기가 싫은 거애요.”
 
118
“이년은 계집년이 멀 안다구 밤낮 벙벙? 이년아! 양복을 어쨌어?”
 
119
나는 참을 수 없어 소리를 높였다.
 
120
“아이구 글쎄 참 그 허재비 같은 양복쟁이라구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손꾸락질하는 꼴은 참 전 부끄러워 못 보겠어요.”
 
121
나는 창피하여 더 말을 못했다. 과연 동네에서들은 이렇게 까지 수군거리는 것인가 하니 한껏 벼르고 있던 나의 주먹은 그만 힘없이 떨렸다.
 
122
“글쎄, 고 열 마지기로 농사나 지어먹어야지 서울 가서 계시면 몇 해에 없어지겠어요. 그거마자 팔아먹으면 불쌍한 건 나에요. 그래 제 것 없으면 어딜 가 밥을 빌어먹어요?”
 
123
나는 아내가 그 열 마지기에 만족해하는 데 그렇지 않아도 치부해있던 그어 넣었던 금이 갑자기 불룩하고 일어섰다.
 
124
“이년아, 너는 똥을 줘도 그저 좋아서 먹겠구나. 그 논 열 마지기가 그렇게 귀하니? 다시 그 논에 새 보러 다녔단 봐라.”
 
125
핀잔을 주었더니,
 
126
“아이구 그래서 당신은 봄에는 내 노리개까지 살살 긁어 올려다 다 팔아먹었군. 안 속아요, 글쎄 이전.”
 
127
톡, 쏜다.
 
128
아버지가 뒤란에서 이 소리를 듣고 히죽히죽 하고 웃으신다.
 
129
뽐내던 애 위신에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등골에서 땀이 오싹하고서리 우며 낯이 확확 달아왔다.
 
130
그러니, 뱉아 놓은 말이라. 다시 틀어막을 수도 없고, 손을 한 개 대서 창피한 꼴을 자위라도 시키자니 북처럼 치면 더 큰 소리만 날 것 같아서 흥분에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눈을 흘겨서 그러지 않아도 어느새.
 
131
“그리구…….”
 
132
하고, 뒷말을 꺼내는 아내의 주둥이를 틀어막으며 문 밖으로 나왔다.
 
133
누른 논에 허재비 우습고나야
134
양복쟁이 허재비 신사허재비
 
135
소를 먹여가지고 고래트리로 들어오던 아이들이 그 허재비를 보고 또 이렇게 노래 격으로 건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136
이제 와서 이 소리를 들으니 나를 두고 하는 소리인 것처럼 부끄럽다.
 
 
137
〔발표지〕《신인문학》(1935. 12.)—원제는 ‘신사 허재비’
138
〔수록단행본〕*『병풍에 그린 닭이』(조선출판사, 1944)
【원문】목가(牧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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