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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삽화(戀愛揷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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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6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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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애삽화(戀愛揷話)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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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에 우리 학원으로 찾아온 여교원 마미령(馬美鈴)은 이상한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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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을 마치고 전문까지 다니던 여자라면 취직을 하여도 그리 눈 낮은데는 하지 않을 것인데 서울서 일부러 칠백 리나 되는 농촌의 개량서당인 우리 학원으로 그것도 자진하여 보수도 없이 왔다는데 이상히 아니 볼 수 없는 것이요. 스물여섯이면 여자로서의 결혼 연령은 지났다고 볼 수 있는데 아직 시집을 아니 갔다는 것이 또 한 이유이다. 이따금 정신없이 우두커니 서서 무엇을 심심드리 생각하다가는 긴 한숨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 더욱 그 여자를 이상하게 보게 만드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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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각하면 미령이가 우리 학원으로 오게 된 동기부터 이상한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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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일보 ‘독자 이용란’ 이라는 것을 통하여 하루는 농촌에 있는 사립 소학교로서 경비 부족으로 교원을 못 쓰는 학교가 많은 듯하오니 어디든지 기별만 하시면 원근을 물론하고 찾아가서 힘 가는 데까지 조력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하는 기사를 보고 때마침 교원 문제로 쩔쩔매던 우리 학원에서는 아직 학교로서의 양식조차 이루지 못한 존재였으므로 웬걸 하면서도 만일을 위하여 엽서 한 장을 띄웠더니 두말없이 승낙을 하고 찾아온 여자가 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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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학원에서는 무산 아동을 위하여 나선 여자라고 귀엽게 두렵게 우러러 그리고 감사하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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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산 아동의 교육을 본위로 나선 여자라면 학원의 설비 같은 것은 문제도 삼지 않을 것인데 걸상, 책상 하나 없고 삿자리만을 깔아 놓은 아무도 초라한 존재에 놀라며 공연히 찾아왔다고 후회하는 빛이 보일 때 학원을 위하여 짐짓 컸던 우리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며칠도 못 되어서 그는 다시 돌아가려고까지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 아니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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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도 비교적 거처에 편할 만한 곳을 택하여 우리 마을 잡고도 가장 깨끗하다는 집 사랑방을 한 채 얻어서 따로이 맡겼건만 2, 3일이 지나도 행리도 풀지 아니하고 이불만 뎅그러니 자고는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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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자기를 지성으로 대하는 학원의 정성에 감화되어 떠나지를 못하여 며칠을 지나는 가운데 이러한 학원의 존재로서는 너무도 지나칠 만큼 인격자들의 교원들임에 그는 놀라는 한편 여기에 마음이 기울어져 아주 있기로 마음을 재우고 행리를 풀어 놓았다는 것이 우리들의 추측에서뿐이 아니라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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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핑계를 대면 집으로 돌아갈까 궁리를 하던 끝에 미령은 자기의 집에다 아버지 병환이 위독하니 빨리 올라오라고 기별을 하여 달라고 편지를 붙혀 놓고서 회답이 왔으면 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교원들의 이력을 알게 되매 마음의 위안을 느끼어 급기야 받은 회답은 오히려 학원의 눈에 뜨일까 두렵게 찢어 버리고 그런 티도 없이 있었다는 것을 얼말 후 미령을 동무하느라고 같이 자며 묻혀 놓던 그 주인집 딸 신덕에게서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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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령이가 학원을 위해서 있었던 것이 아니요, 교원들이 인격자들이기 때문에 있었다는 그 이유가 어데 잠재해 있을 것인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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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령이가 우리 학원 꼴을 보아서 교원들만은 상당하다고 본 것은 그리 잘못은 아니었다. 오직 나자신만이 이 학원의 10년 전 야학 당시의 수료밖에 없는 미미한 존재이었을 뿐이고 그 밖에 세 분 교원은 모두 간판이 좋았다. H대학을 나온 서선생, S전문을 마친 이선생, 그리고 졸업까지는 못했지만 최선생도 M대학을 맛본 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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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용을 알고 보면 이들은 다 가사에 관계하는 분들이어서 교원이라는 명목만은 걸어 놓았으나 학원에 전력은 못 쓰고 틈 있는 대로 시간을 보게 되는 것이므로 열흘이면 닷새는 출근을 못했다, 더구나 손수 농사까지 짓지 않으면 먹고 지낼 수가 없는 처지이어서 이렇게 보는 시간도 겨울 한동안이었고 봄을 잡으면서 가을 추수 때 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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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 우리 학원에서는 전임으로 일을 보아 줄 의무교원을 구하여 오던 차 우연히도 이번에 마선생을 맞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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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급기야 마선생에게 학원의 전 책임은 맡겼으나 마선생은 학원을 위하는 빛은 조금도 없고 그저 월급에 뜻을 맨 교원처럼 상학종이 울리면 마지 못해 들어가고 하학종이 울리면 시원한 듯이 나오고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무엇엔지 일상 기분을 좋게 못 가지고 늘 우울한 태도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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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학이 되면 교원끼리 사무실에 모여 앉아 놀 때에도 마선생은 우울한 속에서 기분을 고쳐 즐기려 하였고 또는 어디까지든지 모든 것을 잊고 지내리려는 듯이 지나기로 애를 쓰는 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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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다가도 불현듯 우울한 기분에 잠기어 고개를 푹 숙이고 무엇인지를 심심드리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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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언제인가 한번은 서선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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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선생, 기분이 늘 좋지 못한 것 같으니 무슨 불편한 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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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요, 무슨…… 제가 머…… 그렇게 뵈세요? 저는 머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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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것은 천만의 소리라는 듯이 대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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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무슨 수심이 있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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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그렇다면 그것은 제 천성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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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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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서선생은 더 캐물을 수도 없어 잠자코 맡았거니와 그 후부터 마선생은 자기의 그러한 태도가 교원들의 이상한 주시를 받게 된 것 같아서 어디까지든지 자연한 태도를 취하려고 하나 그것은 언제까지든지 부자연한 태도로 나타나 우리들로 하여금 의혹해하는 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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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선생의 가정은 비교적 부유한 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의 식사밖에 용처 한푼 이렇다 인사에 간단한 우리 학원이었으나 그는 쓰단 말도 없이 매삭 2.30원씩의 용처를 집에서 가져다 썼다. 그러면서 그는 거기에게 그만한 물질로서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내세우고 스스로 높이 앉아 그것으로 자기의 인격을 돋우어 보이려고 하였다, 찬(饌) 같은 것도 우리 학원으로서 대접하는 이외에 쇠고기니 달걀이니 자기의 돈으로 실상 사 오며 그리고 농촌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라이스카레이니 돔부리니 하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선 때때로 우리 교원들을 청해다가 한배반씩 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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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그가 우리를 대접하기 위한 성의에서라기보다는 자기의 솜씨를 자랑하기 위한 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는 어디까지든지 우리로 하여금 고상히 보게끔 자신을 내세우기에 무척 애를 쓰는 빛이 보였다. 의복범절로 보더라도 값비싼 비단과 모물이 아니고는 입지 않았다. 이것도 한두 벌에 그치는 것이 아니요, 우리 학원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만 해도 수십여 벌이나 되어 버들고리 두 개가 모두 의복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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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선생은 이것으로 하루 걸러 옷을 바꾸어 입었다. 어떤 때는 하루에도 수삼차씩 바꾸기를 반복하는 적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가장 게을리하지 않는 일과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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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쑥덕거리기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은 마선생을 칠면조(七面鳥)라고 조롱 삼아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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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선생을 칠면조라고 부르게까지 되기에는 그 의복이 때때로 바뀌는 데서였지만 그렇게 불러 놓고 보니 왼쪽 눈초리를 기점으로 귀밑과의 사이에 조선의 지도형으로 생긴 꽤 커다란 허물이 칠면조의 아릇볕 모양으로 비하기에 적당하다 하여 손뼉을 치며 웃음으로 지어 놓은 이름이 그냥 굳어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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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말이지 이 허물은 참으로 그 여자로 하여금 치명적인 상처였다. 미인이라고는 볼 수 없으나 좀 길짓하게 생긴 혈색 고운 얼굴이 그 윤곽만은 수수하게 생겼는데 이 허물로 말미암아 미령에게서 여자로서의 미(美)를 절반이나 빼앗는 것으로 이는 보는 사람마다의 아까워하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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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생명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 얼굴에 이렇게 보기 흉한 허물이 그 자신으로서도 마음에 아니 거리낄 수가 없어 일상 화장을 짙게 하여 그 허물을 감추기에 애를 쓰나 그것으로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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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여자로서의 미령이가 여기에 번민을 갖는다고 보는 것도 무리한 추측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또한 그렇다고만 하기엔 미령의 수심은 보다 더 심한 상처에 있다고 하기에 족한 정도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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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미령의 태도에 있어서 까닭도 모를 수수께끼는 날이 갈수록 깊어 갔다. 그러면서도 미령의 인망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인근 일대의 양모를 한 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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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아동을 위하여 농촌으로 찾아왔다는 빛 좋은 간판이 인근에 왁자하니 퍼지어 본래 오십 명밖에 안 되는 학생이 배나 늘어 백여 명에 달하여 학교로서의 빛도 날 뿐 아니라 월사금의 수입도 전의 배나 늘게 되니 첫째 학교의 경비에 있어 군색을 어느 정도까지 벗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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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학원에는 정성 없는 그였건만 학교 당국으로서는 그를 허스러이 대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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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가운데 이 여자 때문에 우리 교원들은 전에 없는 특별한 정성으로 학원을 위하게 된 것이니 틈을 타서 가르치던 교원들은 미령이가 오게 되자 부터 알 수 없이 그것이 남자의 본능이라 할까, 하여튼 다른 아무 의미도 없으면서 여자와의 접촉을 즐겨하며 가사 이후에 학교이던 것이 하교 이후에 가사로 돌아졌던 것이다. 사십이 넘은 늙은 교장까지도 매일같이 출근하여 이 학기 초부터의 출근부는 예전에 없이 빨간 도장이 나란히 박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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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일상 교원이 모자라서 한 사람이 두 반 혹은 세 반을 맡아가지고 분주히 돌아가도 오히려 감당에 어렵던 것이 한두 사람은 늘 남아 돌아갔다. 그래서 이것을 본 동리 사람들은 마선생에게 모두 미쳤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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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원들은 이런 시비는 들은 체도 아니하고 밥숟갈을 놓으면은 그저 학원으로 기어 올랐다. 그리고는 하학을 하여도 헤어지지 않고 사무실에 모여들 앉아 쓸데없이들 시시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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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놀며 지나기를 미령이 또한 원하는 것이어서 그의 기분을 즐겁게 하여 항상 우울한 가운데서 미간의 주름을 못 펴는 그를 어떻게 해서라도 잊게 해 주려는 것이 교원들의 누구나 다 같이 애쓰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미령의 마음만을 즐겁게 하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요, 미령이가 즐거워하는 것을 봄으로 자기네들도 즐거움을 느끼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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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령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도 허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우울하여할 때마다 노래를 불러서 그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했다. 노해는 가장 나의 좋아하는 것으로 그렇지 않아도 늘 불러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미령을 위하여 노래를 부를 때 내 마음은 이를 데 없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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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이도 성대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노래는 퍽으나 좋아서 불렀다. 속된 유행가까지도 그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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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자가 함부로 노래를 부르면 자기의 위신에 관계되는 것을 꺼리는지 혼자로서는 절대로 입을 벌리지 아니하고 내가 시작을 하여야만 따라서 그리고 흥에 겨워 불렀다. 그리하여 우리 둘의 합창 소리는 사무실이 떠나갈 듯이 때로 불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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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교원들은 미령이와 내가 단둘이 늘 흥에 겨워서 부르는 노래를 싫어했다. 미령이가 즐거워하는 것는 싫을 이치가 없었지마는 내가 미령을 즐겁게 하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질투심을 일으키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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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교장도 마음에 걸렸던지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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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고성으로 창가를 사무실 안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은 주의를 해야 되겠네, 우선 동네 사람들의 시비도 시비려니와 학교의 체면으로서도 안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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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주는 주의도 받았지만 사실 동네에서도 꽤 떠든 모양이었다. 이런 소문이 어떻게 내 아내의 귀에까지 미쳤는지 본래 질투가 심한 내 아내는 폐결핵으로 3년째나 누워서 오늘 내일 하고 있는 목숨이 내가 학교로부터 돌아오기만 하면 뭘 하다 지금에야 오느냐고 꼬집어 물으며 자기 듣는 데도 창가를 좀 불러 달라고 물어뜯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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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나는 그 후부터 남들의 숙덕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고 또 내 아내의 심신을 괴롭히는 것이 병에 영향이 미칠 것이므로 나는 그 후부터는 일체 노래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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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날이 갈수록 낯이 익어져 농담 같은 것도 함부로 건네게 된 미령이는 부끄럼 없이, 거리낌 없이, 혼자 노래를 불러서 울적한 심사를 푸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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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노랫소리는 여전히 우리 학원 사무실 안에서 그칠 줄을 몰랐다.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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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학원의 화단에 만발하였던 코스모스도 된서리에 떨어져 후줄근히 늘어지고, 운동장에는 벌써 포플러 잎이 한 잎 떨어져 데굴데굴 굴며 마주치는 소리가 살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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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도 추수가 다 되고 농촌으로서의 한가한 시절은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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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원에서는 농한기를 이용하여 야학을 또 시작했다. 그래서 밤까지도 교원들은 부지런히 학원으로 모였다가는 헤어지지 않고 12시 까지 지절거리며 시간 가는 것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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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은 누구의 제의로이든지 하학 후에 조조(曹操)잡이를 시작하게 된 것이 미령이는 여기에 무한한 흥미를 느끼어 밤마다 조조잡이를 하자고 졸랐다. 우리들은 거기에 그토록 흥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었지만 미령이의 청이라 싫더라도 거역하지 못하고 조조잡이는 시행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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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나가기를 아마 한 보름이나 계속하였을까 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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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은 미령이가 특별히 나의 곁을 바투 당기는 눈치이더니 한번은 조조를 잡게 되었을 때 그때도 미령은 나와 바투 앉아서 눈을 델편델편 굴리며 찰색을 하더니 별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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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내놓세요(조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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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의 손목을 붙드는데 손 안에 조조패는 보려고도 아니하고 특별히 힘을 주어 손목만 잡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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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했다. 손목을 서로 붙들며 놀던 일을 볼 때 얼마 전부터 있어 오던 것이지만 어디인지 그 붙드는 것은 아무리 해도 그 의미가 다른 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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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아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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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관운장을 들고 있던 패를 내놓고 조조잡이에는 정신이 없이 여러 가지로 딴 생각을 해 보며 그의 태만 살피고 있노라니 재차 조조패를 잡게 되었던 미령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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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번에야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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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또다시 아까 모양으로 나의 손목을 잡아쥔다. 자기의 태도를 내가 몰라주는 것이 안타까운 듯이 열정에 타는 눈으로 이상히 나를 쏘아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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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나는 아하! 연애! 하고 뛰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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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집 안 가요. 독신으로 사는 게 얼마나 신성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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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서로 이야기하던 그의 말을 믿어서다 아니라 여자로서의 그 대담한 행동에 나는 짐짓 놀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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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여자의 나에게 대하는 대담한 짓이 좌중의 눈에 채이지나 않았나 무슨 죄나 범한 듯이 확확 달아 오는 얼굴은 느끼며 그 여자가 나의 팔목을 어서 놓게 하기 위하여 손에 패를 얼른 집어 던지려니까 조조를 들고 몸이 달았던 이 선생은 멋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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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조존 내게 있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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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시원한 듯이 웃음을 친다. 그러나 다른 군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도 하하 하고 부자연한 웃음을 맞받아 웃으며 패를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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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미령이가 아내 있는 나에게 연애를 걸다니 하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그에 대한 의문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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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지식을 가진 여성으로 더구나 도시에서 생장한 여자가 근 삼십이 되도록 독신으로 지내다가 아무러한 지식도 없는 한낱 농부에 지나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인 나에게 연애를 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모를 일인 것이다. 설혹 연애를 건다 하여도 우리 학원 가운데서도 학식은 물로 재산이나 인물에 있어서까지도 서, 이, 최 제 선생이다 나보다는 눈 높이 보일 것인데 하필 나를 골라잡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먼저 그러한 눈치를 주었다면 모를 일이어니와 이러한 태도는 도리어 서선생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의 아내가 불치의 병으로 누웠으매 으레 죽고 말 것을 짐작하여 나에게 넌지시 예비조건으로 눈치를 보여주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서선생도 아내는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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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연애란 참 이상한 것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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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밖에 더 결론을 지을 수 없는 나는 뒤숭숭한 생각에 그 밤은 밤새도록 잠을 못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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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떤 여자로부터 단 한 번의 추파도 주고받아 본 적이 없이 연애란 오직 활자 속에서밖에 구경해 본 일이 없는 내가 이제 난생 처음으로 그것도 대담하게 팔목을 붙들리고 보니 그것이 싫지는 않건만 어쩐지 두려웠다. 첫째 나에게는 아내가 있지 않나? 그리고 연애를 한다면 그것은 무슨 큰일을 저질러 놓는 것도 같기 때문에.
 
 

4. 4

 
79
한 10일 후였다.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날 나의 아내는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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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때문에 나는 학원에를 못 가다가 7, 8일 만에 가니 미령의 태도는 전에 찾을 수없는 명랑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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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못된 얘기는 다 말할 수 없죠만 거 원참 그렇게도…….”
 
82
하고 미령은 고개를 숙인다.
 
83
“할 수 있습니까?”
 
84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85
“멀 - 이군이야(나) 땡 잡았지 더 고운 색시 얻을 텐데 -”
 
86
하고 서선생이 농을 붙인다.
 
87
“그럼요, 바루 말하면 남자들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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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령이는 가볍게 한숨을 쉰다.
 
89
색안경으로 늘 그를 비춰 보려고 해서 그런지 그 한숨 속에는 무슨 애수가 담기운 듯했다. 그러나 전날 쉬던 한숨보다는 퍽이나 가벼운 명랑성을 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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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난 어느 날 석양이었다. 그날은 마침 볼일들이 있다고 하학이 되자 교원들은 다 돌아가고 사무실에는 미령와 나와 단둘이만 남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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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하던 아이들까지 다 돌아가고 학원 안이 고요하여졌을 때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지 여백에다 쓸데없이 연필로 무엇인지 끄적이고 앉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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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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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반쯤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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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써 속으로 지난날의 조조 잡던 그날 밤 일을 연상하고 가슴이 뜨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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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선생님! 저는 그동안 선생님의 말씀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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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엄숙한 빛을 띤 얼굴에 열정에 타는 눈이 대담하게도 나를 쏘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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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에 궁했다. 나는 실상 나를 사랑하는 미령이가 싫지 않았다. 나도 그 동안 미령으로부터의 태도를 살피며 적지 않게 혼자 속을 태워 온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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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애를 한다면? 하고 뒤에 올 두려움이 사랑의 불길을 가로 막고서는 것을 얼마나 애달파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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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아내가 없는 나이다. 그 여자를 사랑하는 데는 얼마쯤 몸이 가벼워진 듯했다. 하나 무엇 때문인지 사랑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하면서도 내가 사랑을 받지 않을 때 그 여자는 얼마나 나 때문에 마음이 괴로울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이 끝날 때에야 그렇게 대답할 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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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선생만 저를 사랑하여 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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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상배한 지 한 달도 못 된 놈이 이 말 한마디가 죽은 아내에게 무던히도 미안스럽고 좀더 나아가선 무슨 죄까지 짓는 것 같아 소름이 쫙 하고 느끼어짐을 느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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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부터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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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숨었던 한숨이 밀려나오는 듯이 길게도 고이 쉬며 짓는 미소는 내가 미령이를 알게 된 후 처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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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면 미령이가 나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더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나는 그의 괴로워함만을 위하여 더 말할 용기가 없었다. 만일 이때에 교장만 들어서지 않고 단둘이 있데 맡기어 두었던들 나는 얼마나 대답에 땀을 흘렸을지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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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후부터 나는 미령이와 단둘이 있어지는 기회를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고 했다. 미령이가 싫지는 않으면서도 아니 사랑한다고 내 마음조차 허락하면서 그 마음을 똑바로 밝히기가 두려워 퍽이나 괴로웠다. 학교 일도 집안일도 마음이 들떠서 아무런 성의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교원들은 미령이와 나와의 관계를 무엇에선지 눈치를 챈 듯했다. 이것을 보니 나는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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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미령이와 영원히 살진댄 모르지만 그렇게 못 될 바에야 이런 시비 저런 시비 남의 눈치 위에서 돌아갈 필요도 없고 또는 우리가 아동의 교육을 이하여 데려온 여자를 교원 중의 한 사람인 나로서 관계를 갖는다. 내 자신으로서도 그렇거니와 같이 있는 교원들의 체면, 좀더 나아가선 학교라는 덩어리를 위하여서의 불명예라는 것을 생각하면 단연히 관계를 끊고 이 경계선에서 어서 벗어나 바른 길로 내 몸을 이끌어 가야 할 것이 무엇보다의 급무 같았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소위 현대 인텔리 여성이 손톱만큼도 필요한 점이 없었다. 나는 놀로 먹을 처지가 못 된다. 내 아내 될 사람은 나와 같이 농사꾼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종아리를 에어내는 눈석임물에 들어서 씨를 뿌려야 하고 숨이 막히는 햇볕 아래서 김을 매야 한다. 그리고 가을에는 그것을 베어서 등짐으로까지 져 들여야 한다. 미령은 그것을 과연 감당할 것인가? 아니다, 미령의 손은 너무도 보드랍고 옷가지는 너무도 사치하다. 만일 미령이가 나의 아내로서의 이러한 조건에 마음을 굳게 갖는다 하더라도 이런 고통을 이겨낼 만한 억센 힘은 이미 배양조차 못한 그이다. 나의 아내로서의 자격은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그 힘이 내 마음을 위로하지 못할 때 그 사랑은 걸지 못한 땅위에 선 꽃나무와 같이 이글이글하는 원만한 꽃송이를 피워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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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연히 미령이를 잊지 않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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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마음이 알 수 없는 그 무슨 힘으로 인지 이끌어 그렇게도 나에게 바치는 열렬한 사랑을 나는 모릅네 하고 새파랗게 금을 그어 놓음으로 괴로워할 미령의 마음을 헤아려 볼 때 차마 꼬집어서 나의 태도를 밝히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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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나에게 바치는 미령의 사랑은 점점 둥그러만 가는 것 같았다.
 
110
“제기 이 학원으로 오게 된 것이 우연한 기회에서는 아닌 것 같애요.”
 
111
이렇게 주는 말에도 대답에 간난을 보는 것이
 
112
“수교 씨! 저 밭을 한 뙈기 살래요. 사과 재배에 적당한…….”
 
113
이러한 말까지 받게 됨에랴! 어느덧 선생에서 수교씨로 나를 부르는 대명사는 바뀌어졌고 그리고 은근히 살림 차비까지 의논하여 보는 것이 아닌가!
 
114
“이 지방은 사과에 의토가 못 됩니다. 질땅이어야 되는 것인데 여기는 전부가 모래땅입니다.”
 
115
“양계는 어떨까요?”
 
116
“더구나 양계! 그것은 판로가 있어야 아니합니까?”
 
117
나는 요리조리 핑계를 하여 넘으며 공연히 나의 태도를 똑바로 밝히지 못하고 미령이로 하여금 나를 이렇게까지 믿게 만들어 놓은 것을 후회하여 마지 않았다.
 
 

5. 5

 
119
겨울방학이 되자 낮에는 비교적 한가하였다.
 
120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오랫동안 아내의 누어서 앓던 방을 좀 수리해 볼 양으로 하루는 벽에다 신문을 바르고 있노라니 누이동생이 신문지에서 그림을 구경하노라고 신문지를 뒤지고 앉았더니 별안간
 
121
“오래비!”
 
122
하고 부른다.
 
123
“왜?”
 
124
나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125
“여기 마선생이 있어. 이게 웬일이야!”
 
126
하면서 신문지 한 장을 들어 보인다.
 
127
“뭐야?”
 
128
나는 신문에 풀칠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보니 눈에 뜨이는 타원형의 한 개 사진은 참으로 마선생과 비슷했다. 아니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흡사했다. 만일 신문에 미령의 사진이 있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았던들 단박에 그라고 아니 할 수 없을 정도의 미령 그대로였다.
 
129
그러고 보니 그 신문지를 그대로 놓고 말게끔 부질없는 생각은 두지를 않아 그 사진의 임자를 더듬어 찾아 보니 ‘馬美龍[마미룡](假名)[가명]’ 이라고 썼었다. 그리고 현재의 미령의 집 주소에서 글자 한 자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것이 마미령의 가명이라고 아니 볼 수가 있으랴!
 
130
나는 기사로 눈을 옮겼다.
 
131
‘무엇이 그 여자를 그렇게 만들었나?“
 
132
라는 커다란 활자로 된 기역자 형의 제목을 읽고 다음 순간 놀람을 마지 못했다.
 
133
그 옆의 ‘자살을 도모하기까지의 경로’ 라는 소제목을 찾을 수 있었거니와 이 기사는 소설식으로 4,5회를 계속하여 내던 것으로 4년 전 봄에 신문이 배달되기가 바쁘게 주워 일고 그 여자로 하여금 세상을 저주하지 아니치 못하게 된 동기에 눈물겨워 동정하는 맘으로 일시는 우리 학원 안에서도 커다란 화제가 되던 그 기사였다.
 
134
하니 이제 그 주인공이었던 여자가 우리 학원의 교원으로 아니 나를 사랑하는 여자가 되어 있는 것을 알 때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135
나는 신문 뭉치를 5회까지의 기사를 찾아내려고 산산히 풀어헤치고 뒤졌으나 이미 나선 ‘1’밖에 찾을 수가 없었다.
 
136
그러나 그때의 묵은 기억으로서도 그 기사의 문면은 아직도 머리에 새롭다.
 
137
세 번의 실연 - S여고보 3년 때 어느 동무의 오빠의 동무라는 동경 유학생으로 첫사랑의 꽃이 1년을 남아두고 피어 오다가 철석같은 언약으로 남자의 간절한 청을 차마 거역하지 못한 그 일순간이 다음 순간에는 남자로서의 한낱 향락의 도구로서밖에 지나지 못하였던 것을 알았다.
 
138
그리하여 처녀로서의 생명을 잃은 미령이는 남 모르게 혼자 애를 태우며 눈물을 삼켜 오다가 모든 것을 단념하고 오직 공부에 전심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그 학교를 졸업하고 전문으로 들어가 꾸준히 학업을 계속하여 오다가 졸업을 전후해서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전문학생과 교제를 하여 오던 것이 그 학생에게서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찾게 된 것이 모르는 사이에 지난날의 상처는 잊은 듯 사랑의 움이 싹뜨기 시작하여 스위트홈의 꿈속에서 청춘의 피는 끓을 대로 끓어 그야말로 그 학생을 순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139
그러나 그 학생에게서 찾을 수 있던 미점은 역시 일시에 불타는 욕심에 미령을 끌기 위한 가면 속에서의 짓인 것을 다시금 경험하고 났을 때 미령이는 모든 남성을 저주하는 나머지 세상을 비관하게 되었다. 학교도 집어치우고 두문불출로 1년을 방구석에서 히스테리에 가까운 상태에서 빚어낸 온갖 공상이 그 여자로 하여금 전율할 생의 변화에로 이끌어 냈다.
 
140
현대의 모든 남성을 저주하고 세상이 비관될 때 여자로서의 자기의 존재도 그것을 상대로서밖에 더 나아가서는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치욕의 생과 영예의 사(死) 두 갈래 길에서 방황을 하였으나 오늘까지 받아온 수양이 자리잡고 앉은 양심은 차마 치욕의 생을 찾을 수가 없어 일시는 영예의 사를 바른 길로 자살을 꾀하여 오다가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받는 능욕이 너무도 분하여 살진댄 복수라도 하여 보자는 무서운 생의 힘이 머리를 들고 서둘러 마침내 몸을 카페에 던져 문명의 세례를 받고 젠체하는 모든 남성을 줌 안에 넣고 자기의 에로틱한 웃음에 머리를 숙여 가며 침을 삼키고 날뛰는 그들을 봄으로 행동을 일삼아 왔다.
 
141
그러나 미령은 여자였다. 그리고 아직 20이라는 청춘의 끓는 피가 혈관을 뜨겁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악마 같은 사내들이 추악한 존재이었으나 그 추악한 속에서도 이성으로서의 알 수 없는 매력이 안타깝게도 끌어 사람으로서의 본능인 청승맞은 사랑의 얄궂은 새는 미래를 부르게 되었으니 자기를 천사같이 따라다니던 어떤 시인을 못 잊는 것이었다.
 
142
그러나 그 시인은 카페의 여급이하는 성질에서밖에 더 나아가서 미령을 대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143
그래서 세 번째 실연을 당한 미령이는 자기 역시 사람이요, 여자인 것을 이제 쫓아 깨닫고 지난날 꾀하던 자살의 쓸데없는 연장이었던 것을 뉘우침과 동시에 이 현실에선 죽음이라는 데 대하여 한 점의 미련도 없이 바야흐로 봄이 무르녹기 시작하는 잔 물살 위에 황혼의 그림자가 신비롭게 물든 한강의 푸른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144
그러나 세상은 이름 그대로의 고해였다. 이것이 그만 용산서원의 눈에 띄어 즉석에서 구호선을 저어 경찰은 기어코 성공을 하고야 말았다.
 
145
“저, 절, 그대로 버려두세요. 저를 살려내 가지고는 또 짓밟아 주렵니까, 남이 아파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렇게도 즐겁습니까? 놔요. 놔.”
 
146
하면서 발버둥치는 것을 마침내 배 위에다 끄집어 올려 놓으니
 
147
“놔요, 놔요, 저 악마들! 이 악마들! 이 악마쌈지들!”
 
148
하고 이를 악물고 손을 뿌리쳐 왼쪽 눈초리를 손톱으로 박아쥐고 당기어 제 손으로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다.
 
149
이까지 묵은 기억을 짜내던 나는 그제서야 마선생의 눈초리 뒷허물을 연상하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비친 현실은 얼마나 그 여자의 마음을 괴롭히며 있었더라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그리고 그 여자의 마음을 괴롭히며 있었더라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150
그리고 그 후 4년 동안에 있어서 그 여자의 생활이 어떠하였는지는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오늘까지의 비관하는 태도로 우울한 속에서 날을 보내던 그 심전이 이 사실에 관련해서일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151
무산 아동을 위해서는 아닌 여자가 일부러 시골의 보잘것없는 우리 학원으로 찾아오게 된 것도 이 사실에 관련된 것 같고, 더욱이 나를 사랑하는데서? 하고 생각할 때 그 여자는 4년 전 카페에 들어가던 그 때의 심리와 같은 동기에서 남성에의 복수를 위하는 수단에 내가 걸린 것은 아닌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아니 해 볼 수 없었다.
 
152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여자의 사람이 참으로 열정적인 것에서 다시금 저울질해 볼 때 아무리 해도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사람으로서의 본능을 버리지 못하는 데서의 순진성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러리라고 단정하고 싶었다. 만일 다른 의미에서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젠체하는 도회심에 물들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본의일 것이나 눈치를 달리 가지는 서선생같은 이는 꿈도 안 꾸고 나에게 사랑이 쏠리는 것을 볼 때 나에게 구하는 사랑만은 그런 의미를 참으로 넘어선 순진한 사랑이라고 아니 볼 수가 없었다.
 
153
그리고 생각하면 미령이가 우리 학원으로 찾아왔다는 동기도 다른데 있을 것이 아니요, 비교적 현대 문명에 물들지 않은 농촌의 웬만한 순진한 지식 청년으로 사랑의 대상을 찾는 데 있다고 아니 볼 수 없다. 이제 생각하면 미령의 모든 행동이 그렇게 비치었거니와 첫째 우리 학원의 존재를 보고 다시 돌아가려던 것이 지식 청년들이 교원들이었음에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하는 것이요, 그리고 그 근본 방침에의 성공을 위하는 것이 칠면조라는 이름까지 듣게 행동을 가졌다고 보여지는 것이었다.
 
154
이렇게 미령을 만들어 놓고 보니 나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농촌으로 찾아오기까지 그리고 나를 사랑하기까지에는 얼마만한 심뇌가 숨어 있었던 것일까?
 
155
그러나 나는 그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그의 사랑을 거부함으로 나는 미령에게 사령을 내리는 잔인무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으나 미령을 위하여 나는 내 생할의 태도를 그릇 가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6. 6

 
157
봄을 잡으면서 나는 김자수 딸과 약혼을 하여 놓았다.
 
158
아내를 묻은 지도 몇 달 되지 않았을뿐더러 그럭저럭 미령의 마음도 늦구어 줄 겸, 한 1년쯤은 지나서 재취를 하리라 하였으나 금년 농사할 생각을 하면 아내 없이는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년에도 아내의 병으로 여름내 삯김을 처매게 되어 빚을 지게 되었거니 마침맞은 혼처가 나면 이 자리를 나는 놓칠 수가 없었다.
 
159
그리하여 슬그니 혼사를 지어 놓고는 얼마 동안이라도 미령의 귀에 소문이 들리지 않도록 입을 봉해 오며 미령에게 장차 어떻게 말을 하여야 될고? 만단으로 궁리를 하여 오던 차 어느 날 미령이와 나는 단둘이 사송정으로 산보를 할 기회가 지어졌다.
 
160
무슨 불편한 일이 있는지 사흘째나 또 우울한 속에 서 한숨을 쉬던 미령이는 조용히 무슨 할말이 있는 듯이 애써 나를 사송정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한껏 두려우면서도 장가들 날도 앞으로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그 전으로 솔직하게 미리 사정을 말하는 것이 좋을 듯도 싶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잡아 가며 잔디밭을 거닐었다.
 
161
“당신 같은 재사(才士)는 전 처음 보았세요.”
 
162
배래바위 밑까지 오르자 미령은 뚝불견 이런 소리를 하며 곁을 바투 든다.
 
163
나는 내 자신이 특별히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일반은 나를 재사라고 불러 주는 것을 나는 듣거니와 무슨 점이 이제 이 여자로 하여금 내가 재사로 보였는고? 이렇게 생각을 해 보며 나는 되물었다.
 
164
“왜요?”
 
165
“글쎄 학교도 안 다녔다시는 분이 모든 방면에 남만 못한 게 계세요? 재 사는 참 생이지지하나봐!”
 
166
애교에 가까운 미소를 미령은 입가에 보인다.
 
167
“비행기 태웁니까.”
 
168
“아녜요. 비행기는 누가…… 아이 참 야속한 게 간판이지 당신같이 풍부한 학식으로 ‘간판’ 만 가졌으면…… 간판을 얻으세요, 일본 같은 곳으로 가셔서.”
 
169
“허! 요것이 원수랍니다.”
 
170
나는 두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보였다.
 
171
“생각만 계시다면 그야 걱정될 게 뭐 있어요, 그만한 거야 뭐 저래도.”
 
172
나는 놀랐다. 이런 말을 하려고 나를 재사라고 어두를 꺼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173
“말씀만 해도 고맙습니다. 그러나 어디 돈만 가지고 공부를 합니까?”
 
174
“왜요?”
 
175
“못해요.”
 
176
“사정이 계세요.”
 
177
“네.”
 
178
“사정이 있을 게 뭐예요. 떠나면 그만이죠. 그렇게만 하신다면 저도 따라가서 밥을 지어 드릴 테니깐. 얼마 안 가지고도 됩니다. 네? 봄으로 떠나게 하세요. 학비 걱정은 마시고요. 네!”
 
179
나는 땀을 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얼른 담배를 내어 입에 물고 그것을 붙이는 것으로 핑계 삼아 어물어물하다가 아무래도 한 번 비극은 일어나고야 말걸 하는 생각에서 이 기회에 말을 시원히 하여 버리리라 마음을 단단히 조려잡고
 
180
“저 저를 잊어 주세요.”
 
181
하고 말을 꺼내 버렸다.
 
182
미령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린다.
 
183
“저는 사실 마선생을 사랑할 자격이 없습니다. 마선생 자신의 명예를 이하여 저를 잊어 주시는 것이 행복이오리다. 초로에 묻혀 사는 일개 농군에게 출가를 하셨다면 세상은 선생님을 무엇으로 볼 것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184
고개를 숙인 채 까딱 아니하고 서서 듣던 미령이는 물송진 같은 하얀 눈물이 두 눈에 맺히며 잔디밭 위에 쓰러진다.
 
185
“여 -여 -여 -여-보- 미- 미령 씨.”
 
186
나는 미령의 팔을 붙잡았다. 미령은 흑흑 느낀다.
 
187
“일어나세요. 뭘 이러십니까. 사람들이 봅니다.”
 
188
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고 미령은 더욱 소스라쳐 울 뿐이다.
 
189
“여 여보 마선생. 마음을 돌리셔요. 저는 농사꾼입니다.”
 
190
“저 저는 순진한 당신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저는 선생님이 얼마만큼 저를 사랑하여 주시는 줄은 잘 알아요. 저를 버리는 선생님을 저는 원망하지 않으렵니다. 그저 사랑만으로는 원만한 가정을 이룰 수 없는 그 처지를 저는 저주할 따름이에요.”
 
191
한참 흐느끼고 나서 다시
 
192
“선생님! 저는 필경 이렇게 될 줄을 미리 알았어요. 사흘 전 저는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의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세요. 걸지 못한 땅위에 선 꽃나무에는 이글이글하는 원만한 꽃송이는 피어날 수 없다고 적힌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어디로 갑니까? 흐-흐 흑흑 -”
 
193
미령은 목까지 놓고 운다.
 
194
나는 미령의 손을 잡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정신없이 있었다.
 
195
한참이나 흐느끼던 미령은
 
196
“선생님! 마지막으로 불쌍한 저를…….”
 
197
하고 말끝을 못 마치며 미령의 머리는 땅에 박은 채 내 손에 잡히운 팔을 끌어 당긴다. 나는 팔목을 놓지 못하고 자석에 끌리는 한 개의 쇠못같이 가볍게 달려갔다.
 
198
그 순간 나는 아무런 의식도 몰랐다.
 
199
무엇에 놀랐는지 푸득 하고 머리 위를 날아 넘는 비둘기 스치는 소리에 놀라 눈을 주위에 살폈을 때에야 나는 내 무릎 위에 눈물 어린 미령의 얼굴이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200
그러나 미령은 그냥 울고 있었다.
 
201
언제까지라도 그칠 줄을 모를 듯이 그냥 그냥 울었다.
 
 
202
그 후 미령은 몸이 괴롭다고 사흘째 학원에 나오지를 않고 자기 방에서 뒹굴더니 닷새 만엔가 우리 학원을 영원히 떠나갔다.
 
203
학원 안에서 교원들은 물론 온 동네에서까지라도 미령의 갑자기 떠나가는 그 연유를 몰라서 궁금해 하며 종래의 의문에서 풀 수 없던 수수께끼는 더욱 얼크러져 모여 앉으면 그 여자를 두고 수근 거렸다.
 
204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는 체 누구에게도 나와의 관계는 물론 그 여자의 경력조차도 일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205
〔발표지〕《신가정》(1935. 6.)
206
〔수록단행본〕*『현대한국단편문학전집』제8권(문원각, 1974)
207
『학원한국문학전집』제12권(학원출판공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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