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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조시대(白潮時代)에 남긴 여화(餘話) ◈
해설   본문  
1936년 9월
홍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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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조시대(白潮時代)에 남긴 여화(餘話)
2
― 젊은 문학도의 그리던 꿈
 
 

1. 1.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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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오시니 종로거리가 새파랗구려.” 이것은 방소파(方小坡)군이 그 어느 해 여름날 백조 동인들을 철물교(鐵物橋)에서 만나서 부러운 듯이 칭찬하는 말이었었다. 그 두터운 왜 수건으로 철철 흐르는 비지땀을 씻어가며 일부러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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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리울손 그 시절! 백조(白潮)가 흐르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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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稻香) 월탄(月灘) 회월(懷月) 빙허(憑虛) 석영(夕影) 노작(露雀) 십여 인이 그 떄의 소위 백조파 동인들이데 춘원(春園)이 제일 연장이요 가장 어리기로는 나도향(羅稻香) 군이었었다. 도향의 그 때 나이는 아마 열아홉 살이었던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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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전(雨田)은 키 큰 터수로 세상이 다― 아는 반나마이요 월탄은 짧은 외투도 길게 입기로 이름이 또한 높았다. 빙허, 노작, 석영, 월탄, 회월은 모두 스물한 두 살로 자칫 동갑들이었었는데 빙허, 석영을 부세(富世)의 미장부(美丈夫)라고 남들이 추어 일컬을 적이면 매양 새침하니 돌아앉아서 깨어진 거울만을 우드먼히 들여다보고 앉았던 도향은 그의 가는 속눈썹에 새삼스러이 몇 방울 맑은 이술이 하염없이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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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의 백조조(白潮潮)라 하면 대단히 빛나고 훌륭한 간판이었다. 그러나 어둠침침한 단간흑방(單間黑房)……. 방이라고 초라하기도 짝이 없었다. 방 안에는 ‘토지조사(土地調査)’ 화인(火印)이 찍힌 장사척여(長四尺餘) 광삼척(廣三尺)의 두터운 송판(松板) 책상 하나가 자리를 제일 많이 잡고 놓여 있었는데 헌 무명이불 한 채와 침의(寢衣)로 쓰는 헌 양복 몇 벌 원고용지 신문지 뭉치등이 도깨비 쓸개같이 어수산란하게 흩어져 잇으나마 그것이 방 안 세간의 대략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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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숙인은 매양 4~5인이 넘었었다. 자리가 좁으니까 모두 한 편으로 모로 누워자는 것이 취침 중의 공약이며 또한 공공한 도덕으로 되어 있었다. 만일에 누구든지 배탈이 나든지 하면 참말로 큰 탈이었으니 자다가 일어나는 것은 큰 비극인 까닭이었었다. 변소(便所) 같은 곳에는 가느라고 누구든지 한 번 일어만 나면 온 방중이 모두 곤한 잠을 깨이게 되거니와 또 다음의 침석(寢席)은…… 먼저 자던 자리는 그만 그야말로 죽 떠먹은 자리라 일어나 나갈 수는 잇었어도 다시 돌아와 드러누울 수는 없이 되어 버리니 참말로 대단하 낭패(狼狽)이다. 아무라도 한 번만 일어나갓던 이면 그만 그 뒤에는 하는 수 없이 실내공자(公子)들의 기침(起寢)하시는 기척이 계실 때까지는 그대로 방문 밖에 우드먼히서서 푸른 봄철 아지랑이 짙은 꿈 보금자리를 고이고이 수호하는 역군이 되는 수는 달라 아무러한 도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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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것도 모두 저절로 자연 도태가 되어서 그러하였든지 모두 자가(自家)에서 금의옥식(錦衣玉食)으로 호강할 적에는 아마 약채(藥債)가 생활비 보담은 더 예산이 되엇을 축들이건마는 한 번 이 흑방 속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만행(萬幸)으로 모두 건강하였었다. 배탈이나 감기 한 번 아니 앓고 혈색 좋게 뛰놀고 기운차게 떠들었었다. 내객(來客)이 있을 적이면 책상을 매양 진축(陳蓄)의 탑으로 대공(代共)하게 되었었다.
 
 
 

2. 2.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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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젊은이들이라 주야가 없이 만장(萬丈)의 기염(氣焰)…… 몹시도 잘들 떠들엇었다. 그러나 그들은 몹시 청빈한 살림살이를 하였었다. 불 안때인 냉돌(冷突)에서 포단(蒲團)도 없는 잠자리로 식사라고는 하루에 한 끼……. 그래도 모두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그리 구읍(拘揖)하지도 않고 잘 지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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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만이 득시글득시글 남들이 뜻없이 보면은 아마 차라리 난폭한 생활이라고도 일렀으리라. 영창(映窓) 밖에는 뒤숭 산란하게 진날 흙투성이 한 십여족의 헤어진 구두가 여기저기 발디딜틈도 없을만치 벗어져 있건마는 그래도 흑방 안에서는 목청 굵은 이야기와 즐거운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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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젊은 영웅들이요 어린 천재들이었었다. 새로운 예술을 동경하고 커다란 희망을 가슴 가득히 품은 이들이라 한 번 금방에라도 일편에 귀신 도울 만한 걸작으로써 담박 채쭉에 문단으로 짓처 달리려 하는 그런 붉은 야심이 성하게 북받쳐 불붙는 젊은 사나이들만이 모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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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 무르들이 스스로 형용하여 일컫기를 동인(同人)이라 하였었다. 어렴풋하고도 어수룩하게 동인이라 일컬음! 일컫기를 동인이라서 그러하였던지 개인끼리에는 아무러한 사적 간격도 없었고 도한 어떠한 이해적 타산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무슨 일에든지 덮어놓고 굳세인 악수로 융합뿐이었었다. 처음 나는 동인이라도 십 년 묵은 옛 벗과 같이 아무 가림이나 거리낌도 없고 아무러한 흉허물도 없이 그저 쉽고 즐거웁게 담소하고 논란하며 부르짖고 하소연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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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몹시도 숫되고 깨끗만 하였었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이야기로 떠들음이요 술이요 웃음이요 노래였었다. 인생 예술 그리고 당시 유행주의의 문제이었던 상징 낭만 퇴폐 회색 다다 등 그 따위의 이야기로 실증도 없이 열심히…… 밤이나 낮이나 잘도 떠들었었다. 그리고 또 그 문단에 나타난 신작의 비평 도색(桃色) 문예작가에 대한 평판…… 또 외국작가로는 ‘괴테’나 ‘하이네’니 ‘괠렌’이니 ‘모파상’이니 ‘로망롤랑’이나 ‘브라우닝’이니 하는 이의 이름이 그들의 논중인(論中人)이요 의중인(意中人)으로 영원 유구한 몽상 탑 그림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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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논담(論談)의 흥이 한창 겨워졌으니 저절로 몇 병 술이 없을 수 있으랴. 취기가 도연(陶然)하게 무르녹아지면 아까의 백면서생(白面書生)들이 금방에 홍안소년으로 돌변하여져서 고요히 짙어가는 장안의 봄밤 눈이 부시게 푸른 전등 빛 속에서 그들은 고함치듯이 부르짖듯이 떠들어대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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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들의 사상이나 행위나가 모두 엄청나게도 대담하였었고 또 혹은 일부러 대담한 듯이 차리기도 한 모양이었었다. 인습타파 노동신성 연애지상 유미주의…… 무엇이든지 꺼릴 것이 없이 어디까지든지 자유롭고 멋있게 되는대로 생각하고 그리고 행하자……. 그것이 그들의 한 신조였었다. 제 아무리 추하든지 밉던지 간에 그것이 우리 생의 현실이라면 하는 수 없는 일이리라. 왜 애써 꾸미고 장식하고 있으랴. 거짓말을 말아라. 형식을 취하지 말라. 덮고 가리지 말라. 어디까지든지 적나라하게…… 자유주의가 가리킨 이러한 주장은 그들의 뻗칠대로 뻗친 젊고 붉은 피를 힘껏 흔들어 솟구쳐 놓아서 뛰놀고 싶은 대로 뛰놀고 뒤높고 싶은대로 뒤높게 하는 형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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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밤으로 낮으로 지껄이는 소리가 그 소리건마는 그래도 그들은 날이 가고 때가 바뀔수록 이나마 무슨 새로운 흥취와 새로운 재미를 느끼던 모양이었었던지……. 그래서 담론의 흥이 한창 기울면 잇대어 술이요 한 잔 두 잔 백주(白酒)의 흥이 거의 고조에 사무치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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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순례다.” “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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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입에선지도 모르게 한 마디 소리가 부르짖으면 그들은 모두 분연히…… 실제 그것을 이렇게 밖에 더 형용할 수가 없었다……. 화응(和應)하여 자리를 박차고 우― 몰려 나서게 된다. 그래서 미인을 찾아 회색의 거리로 이리저리 수수께끼처럼 행진하였다.
 
 
 

3. 3. 상아탑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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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생애 그들의 종종상은 구태여 대강 여기에 적어보자 하니 애란시인(愛蘭詩人) 에이츠의 술회를 그대로 잠깐 이끌어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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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종족은 ‘현실적인 자연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자연 까닭의 자연 사랑을 가졌었으며 자연의 마술에 대한 싱싱한 감정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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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연의 마술이란 사람이, 자연을 대할 적에마다 그대로 저절로 알아졌으며 남들이 자기 기원이나 자기의 운명을 자기에게 말하여 들리어 주듯이 어렴풋하게 깨우쳐 지고 느끼어지는 그 우울도 섞이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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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마 공상과 몽환을 현실과 뒤섞어 착오해 보기에도 몹시 고달펐을리라.” 그래서 “고전적 상상에 그대로 견주어 본다면 백의족의 상상이란 진실로 유한에 대한 무한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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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 종족의 역사는 한 가락 길고 느릿한 상두꾼의 소리였었으니 애끓는 시름도 애오라지 이십여 년…… 옛날의 추방을― 동대륙(東大陸) 그윽한 땅에 남으로 남으로 반도의 최남단까지 자꾸자꾸 올망올망 한 걸음 두 걸음 뒤를 돌아보면서 유리(流離) 도망하여 내려오던 그 기억을 시방도 아직껏 짐작하고 있었다. 추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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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성질이 낙천적이라 순수하고 유쾌하고 상명(爽明)하게 보이는 적이 더러 있기는 있지 마는 곰팡이가 핀 묵은 시름의 하염없는 눈물을 금방 그 너른한 미소 속에 섞어서 지우는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리라. 멋없는 아리랑 타령을 얼마나 많이 불렀었던고, 즐거운 <쾌지나 칭층> 노래를 상두꾼의 구슬픈 소리로도 멕여 쓸 수가 있거든…… 넓은 땅 어느 종족의 애처로웁다는 노래가 이 겨레의 열두 가락 메나리 보담 더 다시 처량할 수가 있을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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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대한 부루의 정열이야 거의 자연의 ‘미’감 그것에서 보담도 시러금 자연의 ‘신비감’ 그것에서 물이 붙어오르던 것이며 자연의 후리는 힘과 마술 그것을 더 다시 불쏘시개로 집어넣고 부채질을 하던 것이였었다. 그래서 부루의 상상과 유울(幽鬱)과는 한결같이 사실의 전제에 대한 격렬하고 소란하고도 무엇으로 억제하기 어려운 한 반동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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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파우스트’나 또는 ‘베르테르’와 같이 ‘전혀 확정된 동기’에서만의 애울(愛鬱)이 아니라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대담하면서도 억세인’ 자기의 주위와 환경의 어떠한 무엇 까닭에 유울하여지는 것이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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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에 무너진 설움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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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울 오늘 밤도 머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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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음껏 흥껏 춤도 추고 뛰놀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부르짖기도 하여 보자. 내일 아침이면 쓸쓸한 단칸 흑방 침침한 구석에서 저 혼자만이 외롭고 쓸쓸히 우울과 침통…… 안타까웁고 애처로웁고 구슬픈 흥타령 잃어버린 희망 그리고 망자(亡者)……. ‘이 몸 한번 죽어지면 만수장림(萬樹長林)의 설무(雪霧)로구나…….’ 이 세상의 하염없음과 가시성을 넘어드는 죽음도 소리없이― 닥치어 올 것을…… 군소리 삼아 한 마디 기다란 노래가락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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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천재…… 그리고 확실히 불기(不羈)의 정서에 대한 갈망과 야생적인 우울 그것이 곧 그들의 예술이였었다. 자연적인 신비감에 도취하여 촤연적 의미 불가능의 예술미를 그러한 광란 상태 속으로 일부 뛰어들어가서 엿보고 있으려 하였었던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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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미의 정령(精靈)을 자유라고 일컬었었다. 전제(專制)나 혹은 유덕한 인사에게는 명령도 복종도 없는 바와 같이 이른바 이 세상의 모든 권위라는 것은 모름지기 그의 덕소(德素)를 그 미가 이르는 길목에서 지키고 서서 일부러 집어치워버린 까닭이며 또 미의 정령은 모든 것을 사랑에 의지하여 인도하나니 곧 사랑은 사상이나 모든 물건에 있는 그 미를 지각하고 있는 어련무던한 주인공이나까……. 그래서 영혼으로서 사상과 동작으로…… 영혼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사랑 그것이였었다. 미의 정령은 그들을 시키여 ‘일체만유 모든 물건에게 그들의 내심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그러한 물건을 불러 일깨우도록’ 만들어서 사랑에 의지하여 명령하고 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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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그들이 생존하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내부에는 미의 정령의 어여쁜 양자(樣姿)를 항상 갈망하는 것을 가지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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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고통이나 비애나 악이나가 함부로 날아들고 뛰어덤비는 일은 구태여 하지 않는다. 영혼의 정정당당한 거룩한 낙원에 굳은 울타리를 하고 있는 ‘미’ 그것쯤은 그들의 영혼 속에 깊이깊이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다시 풍부하게 소유하기 위하여 이 영혼을 수많은 거울에다 비추어 보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그들은 세계의 진보를 거칠고 무딘 노력에 의지하여서 구하려고도 않고 또 그들로서 악 그 물건에게 직접으로 저항하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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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소야(疎野한)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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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소택 진취불기 공물자당 흥솔위기 축실송하 탈모간시 단지단모 불변하시 당연적의 기필유위 약기천방 여시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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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性所宅 眞取不羈 控物自當 興率爲期 築室松下 脫帽看詩 但知旦暮 不辯何時 當然適意 豈必有爲 若其天放 如是得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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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달(曠達)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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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백세 상거기하 환락고단 우수실다 하여존주 일왕연라 화복묘첨 소우상과 도주기진 장려행가 숙불유고 남산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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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者百歲 相去幾何 歡樂苦短 憂愁實多 何如尊酒 日往煙蘿 花覆茆簷 疎雨相過 倒酒旣盡 杖藜行歌 孰不有古 南山蛾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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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글을 소리쳐 읊조리였었다.
 
 
 

4. 4. 백조가 흐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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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들 이외에 매일 놀러 오는 손님으로는 마경주(馬耕宙) 이행인(李杏仁) 권일청(權一淸) 등 7~8인이였었다. 그들이 한번 모두 모이면 그 양산박(梁山泊)…… 아니 ‘압팟슈’는 금방에 더 한층 대성황을 이루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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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털웃음을 잘 웃는 도향은 그 때에도 지적으로는 나이 어린 늙은이였었다. 해골에 연색(鳶色)칠을 올린 듯 한 인상 길은 그의 얼굴까지도……. 우전(雨田)이라는 두 글자를 붙여놓으면 우뢰 뢰자(雷字)가 되나니 피근거리기는 효령대군(孝寧大君) 북가죽이요 늘어지기로는 홍제원(弘濟院) 인절미 같은 그의 성질도 한 번 들뜨기만 하면 그야말로 벼락불 같았었다. 본디 말이 가뜩이나 더덜거리는 데에다가 다소 흥분 좀 되면 굵은 목소리가 터질 듯이 한창 더덜거리며 갈데없는 우뢰소리 그대로였었다. 우뢰소리만 한 번 동(動)하면 남의 말은 옳건 그르건 ‘우르르’ 그 양산박의 번영과 존재 가치는 도향의 웃음소리와 우전의 우뢰 소리로 좌우하게 되었엇다. 더구나 모두가 스무살 안팎의 책상물림 도련님들 중에서는 연령으로나 경력으로나 우전이 오입판 문서에도 달사(達士)요 선배요 또한 능히 선도루 나서는 수령격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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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은 방랑적이고 그 센치멘탈한 성격에 자기 집도 훌륭히 있건마는 도무지 들어가 있기가 싫어서 고향에서도 일부러 타향살이를 하게 되니 그야말로 ‘부지하처시고향(不知何處是古鄕)’ 격이였었다. 그러자니 그 때 12년 전까지도 변변치 못한 하숙에서나마 대개는 다― 외상인지라 하는 수 없이 상(床) 밥집 봉로방에서 허튼 꿈자리…… 친지의 집발치 잠에 뜬눈으로 새운 적도 아마 많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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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운의 천재가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이후에 일약 문단의 중견 작가가 된 셈이였었다. 근본이 다작이요 또 달필을 자랑하던 터이라 일본의 菊池寬 을 닮았던지…… 얼굴도 근사한 점이 더러 있었지만…… 하루 동안에 백여 매(百餘枚)의 원고를 다시 한 번 추고도 없일 그냥 서내기만 하는 그의 문체가 다소 껄끄럽기도 하고 어색한 점도 더러 없지는 않았었으나 오랑캐꽃내 같은 그의 작풍(作風)은 돌개바람같이 한때의 창작계를 풍미하여 버리였었다. 문단의 수수께끼 같은 한 경이…… 초저녁 샛별같이 별안간 찬란하게 나타난 천재들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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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한창 유행하던 퇴폐주의…… ‘데카당’…… ‘데카당적’……. 회색 세계로 돌아다니며 유연황망(流連荒茫)히 돌아설 줄을 모르던 그들의 생활……. 그래서 기생방 경대 앞에서 낮잠에 생코를 골며 창작을 꿈꾸던 그러한 생활 그러한 방자한 생활……. 그러나 그것도 그들은 숭배하던 당시 소위 문학소년들의 눈으로 본다면은 결코 그리 싫고 몹쓸 짓도 아니였으리라. 차라리 그 ‘데카당’ 일파를 가리키어 불운의 천재들의 불기(不羈)의 용감으로 인습이나 도덕에나 거리끼지 않는 어디까지든지 예술가다운 태도나 생활이라고 찬미의 게송(偈頌)을 드리였을는지도 모르지……. 어떻든 그 파 일당의 방만한 행동은 당시 문단의 한낱 이야기거리였으며 영웅적 생애나 호걸풍의 방탕하던 꼴은 그들이 그때에 모두 신진화형(新進花形)들의 열이었으니만큼 저윽히 저절로 세인의 이목을 이끌어 기울이게 하였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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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를 믿고 혈기를 내어세우니 안하(眼下)에 무인이라. 당시 창조파이나 폐허파이나 하는 여러 선배들도 있기는 있었지마는 선배 그까짓 것쯤이 그리 눈결에나 걸릴 리도 없었다. 더구나 그 자파(自派)들 중에서도 승재(勝才)를 믿고 양양자득(揚揚自得) 하다가 서로 충돌이 생기는 일도 많았었으니까……. 그중에도 우전(雨田)과 도향(稻香) 사이의 충돌이 제일 번수가 많았었다. 일대충돌……. 그리고 충돌 직후 즉각부터는 도향의 웃는 빛도 못보고 우전의 우뢰 소리도 들을 수가 없어 백조(白潮)가 별안간 낙조가 되어 버린다. 황혼의 밀물이 쓸쓸한 가을 바람 속에서 슬며시 미루펄만 드러내일 뿐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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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웃고 떠드는 것이 생명이다. 적적료료(寂寂寥寥) 쓸쓸하면 살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 쓸쓸한 인위적 추풍기도 한두 시간밖에는 더 오래 존속할 수가 없는 일이라 얼마 뒤에면 다시금 봄바람이 건듯 낙조도 상조(上潮)로 밀어닥치게 된다. 잠시만 잠잠하고 있어도 서로 궁금하고 서로 쓸쓸하여 못견디는 불가사의한 서로의 애착에서 웃음소리가 먼저 터지거나 우뢰 소리가 먼저 터지거나 하기만 하면 금방에 춘풍이 대아(大雅)하야 웃음의 꽃이 만발하여진다. 그 훤소(喧笑)가 한참이나 고조해지면 또다시 금방 낙조이다. 기상관측의 보시(報示)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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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우전이 매양 평화주장자인 노작(露雀)과도 번개불이 이는 충돌이 있었었다. 해운(海雲) 이라는…… 백조파의 명호(命號)인데 우전의 임시 정신적 연인이었었다…… 기생을 서로 역성해주다가 우전이 다소 추태가 있었다 하여 노자의 강마른 주먹이 한 번 날으는 곳에 우전의 넓다란 얼굴에다 금방 독버섯만한 검푸른 군살을 만들어 놓았다. 노작은 데퉁적은 주먹질로 열쩍은 후회일 제 얼마 동안 엎드리여 쩔쩔 매고 있다가 부시시 일어나 껄껄 웃던 우전의 호걸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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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소. 그러나 또 울고 싶소. 맞은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노작으 고 가녈픈 주먹이 이 피둥피둥하고도 두터운 얼굴을 때리어 보기에 얼마나 힘이 들었겠소” 이튿날 술이 깨인 뒤에 우전은 그 광면(廣面)에다 손바닥만한 붉은 고기탈을 쓰고 앉았다. 하도 ‘그로테스크’ 한 일이라 노작이 “웬 일이요.” 물으니 우전은 천진스럽고도 무사기(無邪氣)하게
 
55
“날소고기를 부치면 멍든 것이 담박에 풀린대.” 그 소리를 들은 노작은 어찌나 마음 속 깊이 미안하고 딱하고 가엾고 또 보기도 싫었던지 “그게 또 무슨 추태야.” 소리를 지르며 이제는 소고기탈을 어울러 우전의 얼굴에다 또 한 대 주먹 당상을 올려부치었다. 그리고 그 길로 또 요정으로……. 그때 관철동에 선명관(鮮明館)이라는 조그마한 요리점이 있었는데 그들의 단골집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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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배반(盃盤)이 낭자(狼藉)하소 취기도 한창 도연정도(陶然程度)를 넘어 옥산(玉山)이 저로 거꾸러질 지경인데 그래도 술이 제일 억세인 우전을 벌거벗고 ‘사로에’ 춤 춤끝에는 ‘콘도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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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초로(草露)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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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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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붉은 그 입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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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기 전에…….
 
61
‘그 전날 밤’의 ‘엘레나’가 ‘콘도라‘ 강에서나 애졸이어 우는 듯이 자기의 광대뼈 뷔여진 큰 얼굴을 아양성스럽게 쓰다듬다가 그 큰 주먹으로 슬쩍 한 번 때리고 나서 또다시 그 일종의 호걸풍적 웃음. “기적이야. 참 기적이야. 노작의 그 마른 주먹이 그래도 제법 약손이거든! 이제는 이렇게 암만 때리어도 도무지 아프질 않은께.”
 
62
과연 노작의 손이 약손이였던지 날소고기의 특효가 있었던지 모르건대 아마나 그런 약물보다도 호방영락한 그의 성격에다 백약(百藥)의 성(聖)이라는 것을 또다시 가미하였었던 까닭이였겠지. 어쨋든 검푸르게 멍진 것은 씻은 듯이 가시어졌었다. 아무러나 그런 소리도 그 적의 한 가락 무기(無氣)하던 옛 꿈 타령이였었다.
 
 
 

5. 5. 잿빛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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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살림이 ‘빈한이라’ 일컬을지는 모르나 그래도 돈쓰기에는 그리 궁색이적었던 셈이였었다. 본래에 재리(財利)에 그리 욕심이 없었던 축들이라 동시에 물건에 집착이 그리 되지도 않았던 모양이었었다. 그래서 융착(融着)이 적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쓰기에도 쉽고 도 흔한 듯도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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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많이 마시었다. 요정에도 많이 가보았었다. 돈을 쓰다 모자라면 매양 빙허(憑虛)의 전가보(傳家寶)인 금시계…… 빙허 매부께서 일본공사로 가셨을 적에 사가지고 오셨다는 것인데 앞딱지가 있는 구식이라도 육~칠십 원쯤 융통은 매양 무난하였었다…… 가 놀아난다. 그러고도 또 모자라면 그어두거나 거어두려다가 정주인(亭主人)이 듣지 않으면 하는 수 없이 ‘居殘り’이라 매양 우전(雨田) 등 몇몇 사람이 며칠씩 돌려가면 ‘居殘り’를 살았었다. 우전은 도리어 ‘居殘り’를 즐겨 하는 편이였었다. ‘居殘り’ 핑계 삼아서 ‘居殘り’ 중에 또 먹고 또 먹고 ‘居殘り’ ……김초향(金楚香)이의 ‘居殘り’ 식전 아침 해성(解醒)소리가 구슬프기도 하였거니와 멋도 또한 있었었다. 어떠한 때는 한 번 ‘居殘り’ 가 십여 일을 넘기는 적도 있었다.
 
66
시절은 오월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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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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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그’의 학생…… 학생조합원들은 밤을 낮삼아 가면서 “‘밴트’를 매고서 ‘삐루’를 마시니”로 즐겁게 노래하며 놀았었다. 흑방공자(黑房公子)들도 날을 잇대어 마시고 즐겨하였었다. 도향(稻香)은 웃음도 많았거니와 눈물도 또한 흔하였었다.
 
69
사비수(泗沘水) 나리는 물
70
석양이 비낀데
71
버들꽃 날리는데
72
낙화암(落花岩)에 난다
73
철모르는 아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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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만 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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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있는 나그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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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자를 끊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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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낙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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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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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은 가사를 잊었는데 대개 그런 뜻의 노래를 도향은 매양 술만 치하면 잘불렀었다. 애조……. 좌중의 청삼(靑衫)을 적시우는 그 애처로운 ‘멜로디’ 매양소리 없는 웃음과 함께 하염없는 눈물을 지었었다. 도향은 회향병적(懷鄕病的) 연정아(軟情兒)이면서 유울(幽鬱)한 염세관의 시인이였었다. 그의 웃음 속에도 깔금거리는 조소와 고달픈 회의의 사이에 고요하고도 넌지시 봄꽃내를 불어 품기는 산들바람같이 가장 보드랍고 가녈픈 숫되고도 깨끗한 서정적 향내가 나는 감상의 시인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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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웃음과 눈물을 따르는 ‘센치’…… 언제인가 하루는 도향이 멍하니 앉았다가 하염없는 눈물을 지운다. 노작이 “왜 그러오.” 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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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데 설화(雪花)라는 기생…… 여주인공을 어떻게 죽여야 좋을는지…….” “왜 그 기생과 무슨 원수진 일 있소?” “아니 설화가 죽기는 꼭 죽는데…… 저절로 죽게 할는지 자살을 시켜 버릴는지…… 무슨 아름답게 죽일 약이나 좋은 수단이 없을까요.” 그래서 “먹으면 죽을 수 있는독한 향수가 없느냐.” 또는 “동양화 채색의 녹청이 독약이라는데.” 하며 다소 주저하다가 결국은 폐병으로 시들어 죽게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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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기(石頭記)」의 대왕(垈王)은 박명을 읊조린 시고(詩稿)를 불살러 없애고 역시 시들어 스러졌으며 송도의 황진이는 일부러 청교(靑郊) 벌판에 쓰러져 운명할 적에 “이 몸이 죽거든 염(殮)도 말고 묻지도 말어. 그대로 썩어서 오작(烏鵲)의 밥이나 되게 하라.” 하였더니 도향은 설화(雪花)의 애달픈 일생을 묘사하는데 “눈물에 어릉진 유서까지 불살러버리고 시들푼 인생에 아무러한 애착도 없이 저 혼자 저절로 스러져버리게.”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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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천재는 예언자라’ 더니 아마도 도향의 「환희(幻戱)」일 편은 자기의 애달픈 최후까지 미리 적어 놓은 일장만가(一章輓歌)가 아니였던지……. 월탄(月灘)은 술이 취하면 팔때짓 팔때짓이 지치면 <방아타령>이요 빙허(憑虛)는 불호령 호금이 끝이면 반드시 남도단가(南道短歌)이다. “객사문아흥망사(客事問我興亡事) 소지노화월일선(笑指蘆花月一船) 초강어부(楚江漁父)가 부인배 자라등에다 저 달을 실어라 우리 고향 함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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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가락은 모두 빙허의 독안독락(獨安獨樂)아니마 그래도 기운차게 떼를 써가며 잘도 불렀었다. 노작은 이백의 「양양가(襄陽歌)」를 득의(得意)라 하였엇다. 석영(夕影)은 “저녁 안개를 달빛을 가리고…….” 성악으로는 제일 수재였엇다. 또 그들은 남의 눈으로 언뜻 잘못 보면은 아마 모두 몹시 열광병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극도의 신경질로도 보였으리라. 조금만 건드리어도 당장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날 듯이……. 그러나 실상 그들에게는 천진이 흐르는 우활(迂闊)과 소취(疎脆) 무사기(無邪氣)에서 빚어지는 골계와 ‘유머’도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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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때 노작은 수원 고서(故棲)에 잠시 귀성하여 있을 적인데 때마침 권일청(權一淸)군이 출연하는 민중극단이 수원 공연을 하게 되였었다. 흑방(黑房)의 일동은 그 때 어느 요정에서 술을 마시다가 문득 떨어져 있는 노작이 새롭게 그리웠던지 누구의 입에선지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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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순례다.” “수원으로 순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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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청, 석영, 도향 우전 네 사람은 경석역두(京城驛頭)에서 무지개와 같이 나타났다. 7색 ‘스펙트럼’ 같은 그들의 행색. 언소자약(言笑自若)한 건방진 태도. 우전은 자의장(自意裝)으로 기괴한 복색. 일동의 초생달을 장식한 토이기모(土耳其帽) ‘루바시카’ 홍안장발에 어느 것 하나 남의 눈에 얼른 서투르게 띄이지 않을 것이 있었으랴. 그래서 역으로 순찰하던 어떤 경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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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어디서 오셨소?” “문안 서 나왔소.” “아니 어디를 갔다가 오지 않았느냐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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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으러 갔다가 나왔소.” “허! 어디를 가시오” “연극 구경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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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수원으로.” “수원? 원적이 어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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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의 우전이 숮가(酬酌이 더 다시 걸작이였었다. 그 거대한 장군두(將軍頭)의 화로 보금이 같은 머리털을 어색하게 극적극적하면서 대단한 낭패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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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이를 줄 알았더면 찾아볼 것을.” “무엇을 말이요.” “사글세 집으로만 하도 많이 이사를 다니였으니까 호적이 어디로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구료.” 경관도 어이가 없어서 픽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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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현주소는?” “그건 낙원동 파출소에서 잘 압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요.” “우리가 파출소 뒷집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경관이 낙원동으로 조회하여 보니 낙원동서도 확실하고 친절하게 잘 신원보증을 하여주었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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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리고 일당이 모두 수원으로 날이 풀리었으니 백조사(白潮社)는 문호개방한 무주공청(無主 空廳)이 되였을 것이다. 그래서 문 앞 파출소 경관이 경성역 조회 전화를 받고 나서 애써 짖궂게 창호(窓戶)를 닫아주고 하루 이틀 3~4일을 두고 빈 집 수위까지도 취체를 당하였다는 이야기를 그 뒤에 고소(苦笑)에 섞어서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튼 그밖에서 그 때 낙원동 파출소에는 든든한 보호와 고마운 신세를 퍽 많이 받고 끼치고 하였었다.
 
 
 

6. 6. 네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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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전, 석영, 도향, 노작 이 네사람은 동인이요 또는 한방에서 기와(起臥)를 같이 하는 이만큼 여러 동무들 중에서도 제일 뜻도 맞고 교분도 더욱 두터웠었다. 연령순으로는 우전이 첫째요. 노작이 둘째 석영이 셋째 도향이 끝이였었다. 우전과 석영은 미술인이요 도향은 창작가로 노작은 시를 썼었다. 정열저기요 앙분(昻奮)하기 쉬운 우전과 석영. 냉정하고도 깔끔거리고 이지적이요 또 내성적인 도향과는 그 각자의 다른 성격과 다른 견지에서 가끔 논란이 상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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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은 말주변도 없거니와 이름까지 한때는 ‘소아(笑啞)’라고 지칭하던 인물인지라. 매양 잠잠히 그들의 시비하는 꼴을 보고 듣기만 하고 앉았는 일이 많았었다. 그러다가도 또 어느 틈엔지 모르게 저절로 그 과권(過卷) 속으로 끌리어 들어가서 얼굴에 핏대를 올리여가며 떠들게 되는 일도 있었다. 하다가 그들의 앙분이 극도에 달하면 감정적으로 돌러부터 매도적인 구각(口角)에 게거품이 일도록 그렇게 격렬하게 훤소(喧騷)하는 것쯤은 매일 과정의 항다반례사(恒茶飯例事)인지라 그리 괴이할 것도 없거니와 그리 야릇하게 여기지도 않었었다. 아무튼 철없는 아기들같이 매일 아무 악이없이 싸우기도 잘 싸우고 풀리기도 일쑤 잘 풀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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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논란하는 제목이 매양 정해놓고 인생이니 현실이니 ‘내츄럴리즘’ 이니 하는 모두 막연한 문제뿐만이니만큼 귀에 대면 귀걸이 코에 대면 코걸이 격으로 논담(論談)이 어디까지 이르더라도 도무지 모지고 다―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떼를 쓰며 고집하고 주장하는 격론 그 가운데에도 그 무슨 조건을 또렷이 논란 하였었던 것인지 그 목적점까지 잊어버리고 거저 덮어놓고 떠들어대기만 하다가 결국은 “우리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 말까지 나왔지?” 하는 허튼 수작이 나오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색한 웃음을 터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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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제는 새 시대이다.” “‘톨스토이’의 인도주의도 늙은 영감의 군수작이요 ‘투르게네프’의 「그 전 날 밤」도 너무나 달착지근하여 못쓰겟다. 마찬가지로서 아면은 ‘이리키‘나 ’안드레프‘이다. ’안드레프‘의 「안개」같은 것은 참으로 심각하고 훌륭하지 않은가. 우리들의 예술도 어서 그러한 길을 밟아나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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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영혼 속 깊이 사무쳐지는…….” “아무튼 시방 이때 일 초 일 각까지 모든 시대는 지나갔다. 지나간 시대이다. 그까진 지나간 시대를 우리가 말하여 무엇하랴. 우리의 시대는 앞으로 온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시대이다. 내 세사이다. 젊고 힘 있는 시대이다.” “우리 앞에는 백조가 흐른다. 새 시대의 물결이 밀물이 소리치며 뒤덮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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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이 기염(氣焰)을 토하는 이 샛별 같은 눈을 반짝이는 이 우뢰처럼 소리쳐 들리이는 이……. 네 사람은 그런 수작으로 서로 지껄이고 떠들다가 까닭없이 흥분해 버린다. 그리고 그 흥분을 더 돕기 위하여 혹은 가라앉히기 위하여 좋은 약으로 역시 술을 마시게 된다. 그래서 취흥이 그럴듯만 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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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가자.” “그렇지 순례다.” 그들은 제 주창에 스스로 동의하고 대찬성을 하며 나선다. 아릿한 향내 쓸쓸한 웃음 보랏빛 환락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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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일부러 음탕을 취하여 그러는 것은 아니였었다. 다만 젊은이의 호기심에 몰리어 풀어놓은 생명체가 천연으로 분일(奔逸)함에 지나지 아니하였었다. 그리고 또 그러한 것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얼리고 붙들고 달래 가라앉히고 위안할 수가 없는 초조가 있었고 불안이 있었고 공허가 있었고 적막도 있었던 것이였었다. 그리고 또 그런 것이 한편으로는 그때의 한 시대상이였었다고도 이를 수 있을는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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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도가 갓 부서진 그 사회이지마는 규방(閨房)은 여전히 엄쇄한 채로 있었으니 한창 젊은이들로서 이성을 대할 곳이라고는 화류촌(花柳村) 밖에 다른 데가 없었던 것이였었다. 그래서 술 석 잔, 시조 삼장(時調三章), 기생을 다루는 멋있고 도띄인 수작, 그것을 모르면은 당세의 운치있는 풍류사로는 도저히 행세할 수가 없었던 것이였었다.
 
 
 

7. 7. 순례(巡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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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기생! 연애! 그런데 그들의 까닭없는 결벽…… 철저한 금욕 생활은…… 연애는 반드시 성욕과 분리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었다. 도리어 “남녀의 성교는 일부러 지극히 더러운 것이라” 쳐버리는 동시에 연애에서 정신적 그것만을 쏙 빼내어 깨끗하게 성화(聖化)를 하려고 애를 써보았었다. 말하자면 인간의 애를 천상으로 끌어올려다 놓고 거룩히 치어다만 보자는 것이 그들의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행동 모든 용어까지도 몹시 정화하고 성화하느라고 고심을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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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조선일보 기자 몇몇 사람 사이에는 기생집에 가는 것을 ‘돌격’이라 일컬었고 그 일행을 ‘돌격대’라고 불렀었다는데 백조파는 그것을 ‘순례’라 일컬었고 그 일행을 ‘순례단’이라 불렀었다. 순례! 순례! 그 얼마나 거룩한 일컬음이랴. 또 ‘돌격’이라는 수라살풍적(修羅殺風的) 전투용어보담은 ‘순례’ 그것이 얼마나 운아(韻雅)하기도 청한(淸閑) 한 일컬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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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밀실지신(密室之神)’ 누구는 ‘순례지성(巡禮之聖)’ 신자(神字) 성자(聖字)도 모두 가관이려니와 도향의 ‘소정지옹(笑亭之翁)‘ 이라는 ’옹‘도 본다는 신선이라는 ’선(仙)‘ 자였었는데 ’선‘은 ’운율이 너무 떨어지고 또 함축이 그리없다‘하여 일부러 ’옹‘자로 고치어 불렀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도향은 늙은이였었다. 이성관으로도 모인 중에서는 제일 몹시 숙성(夙成)하였었다. 아무려나 그들은 청춘의 정열을 순결 경건한 예술의 법열로 전향해보려고 궃이 애쓸고 있었던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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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기생들은 지조와 범절이 있었다. 왕자의 권세로도 빼았을 수 없고 만종(萬鐘)의 황금으로도 바꾸지 못할 것은 전아하고 청기(淸寄)한 그 몸에 고고하고 기일(羈逸)한 그 뜻이였었다. 미색이야 어디엔들 없으랴만 다만 범골(凡骨)로서는 도무지 흉내도 내어 볼 수 없는 것이 그의 천여 년 간의 묵은 전통을 가진 지조의 꽃과 전형의 미였엇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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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라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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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심절벽에 낙락장송 내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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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아래 초동(樵童)의 접낫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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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거볼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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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松伊)는 이렇게 읊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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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비록 천인이나 마음에 일정 결단 남의 부실가소(副室可笑)하고 노류장화불원(路柳墻花不遠)하니 말씀 간절하시오나 시행은 못하오니 단념하옵소서.” “행모육례(行謀六禮)없는 혼인 다정 해로할 양이면 이도 또한 연분이라 사양지심(辭讓之心넌)은 예지단(禮之端방)이나 잔말 말고 허락하라.“ ”소녀를 천기라고 함부로 연인(緣因) 맺자 마음대로 하시오나 저는 약간 작정이 있어 도고학박(道高學博)하여 덕택이 만세(萬世)에 끼치거나 출장입상(出將入相)하여 공업이 일대에 덮일만한 서방님을 만나 ㅍ여생을 바치려 하오니 이 뜻은 아무라도 굽히지 못하올지라. 여러 말씀 마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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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떤 계집 아이인데 장부 간장을 다 녹이나니 네 뜻―이러하면 우리같은 아이 놈은 여어보지 못할소냐. 그런 사람 이외로도다―. 같은 아이 우리둘이 양양총각(兩兩總角) 놀아보자.” “진정의 말씀 하오리다.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기(賤妓)오니 지금은 아직 일시 정욕으로 그리 저리하였다가 사도(使道)가 체수(遞帥)하실 때에 미장가 전(前) 도련님이 헌 신 벗듯 버리시면 소녀의 팔자 돌아보오. 청춘시절 생과부되어 독수공방 찬 자리에 게발 물어 던진듯이 안진(雁盡)하니 서난기(書難寄)요 수다(愁多)하니 몽불성(夢不成)을 한술질로 홀로 앉아 눌 바라고 살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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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常談)에 이르기를 노류장화(路柳墻花)는 인개가절(人皆可折)이요 산계야경(山鷄野驚)은 가막능순(家莫能馴)이라 하더니 너와 같은 정(貞)과 열(烈)이 고금천지 또 있으라. 말마다 얌전하고 기특하다. 글랑은 염려말라. 인원을 맺어도 아주 장가 처(妻)로 믿고 사도고만(使道苽滿)은 있다고 하여도 너를 두고 어찌 가리. 조금치도 의심마라. 면자 적삼 속고름에 차고 간들 두고가며 품고 간들 두고가며 이고 간들 두고가며 협태산이초북해(挾泰山以超北海)같이 끼고 간들 두고가며 우리 대부인은 두고 갈 지라도 양반의 자식되고 일구이언한단 말인가. 데려가되 향정자(香亭子)에 배행(陪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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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도 양정자라오.” “아차 잊었다. 쌍가마에 뫼시리라.” “대부인 타실 것을 어찌 타고 가오릿가.” “대부인은 집안 어른이라 허물없는 터이니 정― 위급하면 아무것인들 못타시랴. 잔말 말고 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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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춘향과 이도령이 탁문군(卓文君)의 거문고에 월모승(月?繩)을 맺어두고 인간의 백년 기약을 둘이 정하려 할 제 맨 첫 번의 이식다니 일ㅇ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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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절(三絶) 황진이(黃眞伊)나 의암 논개(義岩論介)나 계월향(桂月香)이나 옥단춘(玉丹春)이나 채봉(彩鳳)이나 부용(芙蓉)이나 홍장(紅粧)이나가 다―같이 청구명기(靑邱名妓)의 전형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나 옛날로는 「옥루몽」]의 강남홍(江南紅)이나 벽성선(碧城仙)이나 근자로는「무정」의 월화나 월향이나 빙허 「타락자」의 춘심이나 도향「환희」의 설화나 가 모두 다 명기적 전형의 꽃을…… 향내를…… 일면이라도 그리어 보려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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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첫째가 지조요 둘째가 가무요 셋째가 물색이라 하였었다. 지조가 굳고 의협이 많고 비공리적 행동에라면 발벗고 나서며 부귀에도 굴하지 않고 권세도 아첨하지 아니하여 자기의 의지를 기어히 관철하고야마는 그러한 기이 비상한 점으로만 보아서는 너무도 시대와 세속을 떠나서인 듯한 느낌도 없지는 않으나 그러나 미인박명이라는 그러한 정신적 방면의 논제들도 다― 거기에서 맺혀 우러나오는 것이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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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러한 특점(特點)이 호방불기(豪放不羈)한 백조파의 낙양 과객(洛陽過客)들과도 기백이 서로 통하고 홍서(紅犀)가 서로 비추이는 한 둘레의 마음의 달이었던 것이다. 지조와 처신이 기생의 기치를 좌우하는 것이매 기생으로서 품위가 일이류에 이르자면은 그동의 청절고행(淸節苦行)이 여간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일단 일류만 되면 생활에나 용돈에는 저절로 그리 군색이 없어진다. 그래서 물적 부자유가 없으니까 돈을 그다지 중하게 여기지도 않는 듯하거니와 다만 돈만 가지고 달래어 보려 덤비는 표객(標客) 쯤은 도리어 비할 수 없는 모욕까지 씌워 쫓아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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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적 문제에도 탐화광접(耽花狂蝶)이라니 흘레개같이 몰리어드는 소위 미남자……. 그것도 그리 문제로 삼지 않는다. 다만 지심소원(至心所願)과 일념소원(一念所願)은 정말의 참된 사랑 그것뿐이리라. 이것은 화류계(花柳界) 일반을 통한 보편적 정세이리니 아마나 모르건대 춘향과 이도령의 역사적 존재는 이 세상에 기생의 종자가 존속되는 그 동안까지는 길이길이 그의 가치를 잃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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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 바닥으로 유산(遺散)하는 인사들이란 대개가 소위 ‘지각 났을 연령’이요 상당한 지위와 부력도 가진 이가 많으리니 따라서 그 나이까지에 고기덩이의 방자(放姿)만을 기르는 동안에 오입도 많이 하여 보았고 치가(置家)깨나도 할만한 편의도 많은 터이매 벌써 예전에 색계(色界)판으로는 다―닳은 대갈마치요 오입 속으로는 백 년 묵은 능구리들이라 별안간 새로이 풋오입쟁이의 정열을 가질 수도 없고 또 도섭스럽게 숫되고 알뜰한 채 ‘사랑이 어떠러냐 둥그러하냐 모지더냐…….’ 할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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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들은 어색(漁色) 이외에는 그리 정신적 귀한 것을 갖지도 않았거니와 또한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화대(花代) 만 행하(行下)하면 향락을 맛볼 수가 있다’고……. 수작이 쉬울손 추태만 자르르 흐르고 계집 앞에서만 저 잘난 처 뽐내이고 있으니 “네가 잘라 내가 잘라 그 누가 잘라 구리 백동(白銅) 은전(銀錢) 지화 제 잘났지”가 되며 또 아무리 사랑을 한다 하더라도 순정한 연인으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높아야 돈 주고 사온 천물(賤物)로밖에 더 다를줄을 모르니…… 굳고 무뚝뚝하고 인색하고 물정도 모르거니와 기력도 없고 또는 우굴쭈굴 늙은 영감태기요 그렇지 않으면 무식무뢰한 팔난봉…… 넓은 천지 많은 인간에 한 군데인들 뜻 가는 곳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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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생의 팔자는 앞서서 간다.” “조득모실(朝得暮失)하는 신세.” “장림(長林) 까마귀 학이 되며 영문(營門) 기생 열녀될까.” 이런 소리도 모두 일면으로는 참사랑을 만나지 못하는 그 환경 안타까움에서 저절로 비지어진 기생의 인생관이며 연애관일 것이다. 그러한 속에서 시대적 굴레를 벗은 근세의 기생들은 얼마나 많이 참사랑에 주리었으며 인생 생활의 이섬나 사회교양적인 일에 얼마나 기갈의 애졸임을 품고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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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 직후에는 사회 각층이 한창 버석거리며 변환하던 시국이라. 화류계에도 각성이 있었고 변혁이 있었다. 시대적 비분에 유미(柳眉)를 거스린 미향난(美香蘭)은 단발남장으로 거리에 나서서 부르짖었다. 강명화(康明花)는 손가락을 자르고 머리채를 베어 버리고 안타까웁게 붉은 눈물을 흘리며 하연하다가 나중에는 애인의 이름만 하염없이 부르면서 꽃다운 목숨까지 끊어버리었고 문기화(文琦花)는 애닯고 시들푼 세상살이를 해처로이 음독으로 자결해버리었다……. 그들의 애인도 모두 추후정사(追後情死)를 하였다는 것도 전고(前古)에 못들은 새로운 보도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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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으면 기둥서방의 착취는 당연한 것으로 또 그렇게 밖에는 더 생각하지도 못하였을 터이지만은…… 근대의 기생들은 그런 것쯤은 훌륭히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강제 매음의 불유쾌, 자기 장래의 생활…… 더구나 계급적 천시와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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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나이 이십이 넘으면 환갑이라니…… 그들은 이십 전후의 나이 ‘멱‘이 점점 차질수록 저절로 누구보담도 대단한 흥미도 가지고 희망도 갖고서 자기 사정의 동감 또는 동정하는 듯하는 그 이야기면은 몹시 들으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훌륭한 남편이 될 만한 사람…… 만약 그렇게 못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일평생 굶기지나 안을 이…….” 이런 것을 그들의 대다수가 진심으로 몹시 갈구하고 있었던 것도 또한 사실이리라. 그러니 그러한 그 때가 흑방순례패들에게는 천재일우의 다시 없을 시절이였었던 것이다. 예전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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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 몇살이시요.” “열네 살일세.” “너무 이르지 않소?” “저녁 먹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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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있는 수작을 내놓아 겨우 그윽한 지취(旨趣)를 허락받았다는 어떤 어린 귀공자도 있었다지만은……. 아무튼 그렇게 어렵고 거북한 판국에야 백조파 순례패 같은 서투른 오입장이 쯤으로서는 도무지 명함도 내놓지 못하게 수줍었을 것이언마는 다행히 시절이 바뀌인지라 제법 번쩍 좋게 회색거리에 순례하는 행자(行者)로 대도(大導)의 법을 설(說)하게까지 되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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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소위 일류의 기생쯤은 대개가 일 개월의 화대로 2~3백원의 수입을 있을 터이니까 돈쓰기로는 그리 큰 걱정이 없었고 다행히 이른바 ‘새서방’이라는 것이나 하나 생기면 시량(柴糧) 의복 차 화장품까지도 의례히 기증을 받는 별수입이 있을 터이니까…… 생활 경영만 될 수 있다면 이 방면의 일은 저절로 그리 중시하게 되지는 않는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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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참 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다.” 라는 생활론 연애론 내지 예술론까지를 아무쪼록 아름다운 수사로 알아듣기 쉬웁고도 자세하게 순례패들은 법을 설하여 준다. 그러면 그들은 평소 적에는 어찌 형용할 수도 없던 속깊은 사정 그 불행불평이 그만 일시에 열연히 대각(大覺)하게 되었으며 알 수 없던 일이 모두 저절로 알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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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야기가 그쯤 이르면 그들은 반드시 제 신세타령을 숨김없이 풀어 늘어놓게 된다. 그러면 그러할수록 순례행자들은 그의 사연을 따라서 신문지의 인사(人事) 상담 이상으로 때로는 꾸짖기로 하고 또 어떠한 때는 선동을 시키여 가며 아무쪼록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면 어느 틈엔지 그들에게는 이 서생(書生)들이 아마 그저 부랑자나 오입쟁이가 아니라고 정말 ‘선생님’ 혹은 ‘의중인(意中人)’ ‘미래의 애랑’ 처럼 저절로 그립고 정다워지게 된다.
 
135
그래서 한창 시절에는 백조사 흑방으로 매야(每夜) 새벽 두세 시쯤이면 파연(罷宴) 귀로의 3~4 미인이 손에 손목을 서로 이끌고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니 흑방 동인들도 날마다 순례로 찾아가는 곳이 40~50처나 되였었다. 그러나 순례란 본디 신성도 하거니와 또한 아무러한 공리적 야심도 없는 청청담당(淸淸淡淡)한 걸음이라 순례의 대상은 만나건 말건 그리 든든함도 없거니와 또한 아무 섭섭함도 없는― 다만 다리 가고 달프도록 몇몇 집을 찾아 휘돌면 그만인 애틋한 허튼 길이였었다.
 
 
 

8. 8. 흑방비곡(黑房秘曲)

 
137
누항에도 봄이 드는 우중충한 흑방 속에 몇 떨기의 ‘시름꽃’이 대없이 웃게되었었다. 그들만이 지어 부르던 이름으로 채정(採艇) 설지(雪枝) 해운(海雲) 단심(丹心) 설영(雪影) 등― 서로 오고가고 하는 동안에 모두 저절로 그리운정이 짙어지니 정이 짙어진 한쌍 남녀를 남들이 구태여 ‘연인’이라고 일렀었다.
 
138
그러나 당자끼리는 너짓한 ‘키스’ 한 번도 없는 ‘정신적 연인’들……. 도향은 단심과 석영은 채정과 우전은 해운과 노작은 설지와…… 그래서 남화(南畵)에 명제하듯이 ‘도향단심’ ‘석영채정’ ‘우전해운’ 설지노작‘ 이렇게 불러보았었다. 그런데 연애의 결과로는 도향 단심이 가장 실질적이였었다. 석영 채정은 저녁노을같이 잠시 잠깐 반짝하다가 어느덧 사라졌을 뿐이고 우전 해운은 뜻도 얼리기 전에 일진광풍에 그만 멋없이 흩어져버리었고 설지 노작은 반딧불같이 아무 열없는 목숨이 몹시 외떨어져 아르르 떨다가 그만 불행하여 버리였다.
 
139
꿈이면
140
이러한가
141
사랑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허튼주정
142
아니라 부서버리자 종이로 만든 그까짓 화환(花環)
143
철모르는 지어미여 비웃지 말라
144
날더러 안존치 못하다고?
145
귀밑머리 풀기 전 나는
146
그래도 순결하였었노라
 
147
연애 삼매도 하염없는 허튼 꿈자리였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섭섭하고도 하염없고 시들푼 세계였었다. 다만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이란 있기가 스른 푸른 늪 속에 깊이깊이 들어가 잠기여 거기서 떠오르는 모험과 불가사의의 야릇한 향기에 영원히 도취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색가(漁色家)가 아닌 순례패들은 어떠한 여성을 대하던지 두긋기고 아껴함이 넘치는 안타까운 정성으로 사랑을 한다. 한 송이의 어여쁜 꽃으로 사랑하려고 하였다. 꺾지도 말고 맡아보지도 말고 다만 고이고이 모시여 간직해 놓고 고요히 쳐다만 보려고 하였던 것이였다.
 
148
기생으로 연인…… 시간적으로 설혹 상대녀에게 어떠한 옛 기억이 있던지 또 현재에 아무러한 사실이 흑막 뒤에서 진행이 되든지 그것을 알려 할 까닭이 없다. 다만 일순에서도 영원 그것이 있을 뿐이였었다.
 
149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도려내어
150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151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비구비 펴리라
 
152
하루 저녁 한 시간이면 어떠하랴. 그렇게 만나는 것도 사랑이거든…… 사랑이란 신성하다 이르거니 물적 영구라는 그따위의 말까지도 더러운 누더기의 군더더기리라……. 하물며 변전무상하는 이 세상 일이랴. 한 시간 전에는 누구하고 놀았거나 또한 한 시간 뒷일을 누가 알 것이랴. 다만 현각일초(現刻一秒)의 순간이라도 거짓없는 속삭임을 서로 꾸어본다면 여기에도 유구신성한 꽃다운 향내가 떠돌음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였던 것이였었다.
 
153
단심(丹心)은 그리 미인은 아니었다. 또 당시의 일류도 되지 못하였었으며 의려유한(倚麗幽閑)한 성격자도 아니었다. 다만 가진 것은 밤비 속에 저절로 부여진 광대버섯같이…… 벌레 먹고 농익은 개살구 같은…… 얼른 말하자면은 말괄량이요 요부적 ‘타입’이였었다. 체구가 장부가 부럽지 않게 거대하였고 주먹힘도 쌔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때 벌써 네 살 먹은 아들의 재롱을 보고 있는 아기 어머니였었으니 나이도 도향보다는 훨씬 위였었다.
 
154
채정(採艇)은 청초하고도 정열 있는 가인이였었다. 신세를 자탄하는 까닭인지 처리즐 비관하는 탓인지 그리 현세를 원한하는 것도 같지 않건마는 어딘지 모르게 수심가(愁心歌) 그대로의 일맥의 애수를 항상 띠고 있었었다. 풍정이 가미로운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매양 청량하면서도 저윽이 그윽한 봄시름을 자아내였었다. 흑방을 맨먼저 찾아간 이도 채정이였었다. 해운(海雲)은 녹발(綠髮) 명모(明眸) 호치(晧齒) 단순(丹脣) 모두가 신구(新舊)를 통하여 아무렇게 치든지 미인이였고 또 여걸이였었다. 어떤 결혼 피로연에 초빙이 되어갔다가 명예와 지위가 높다는 그 신랑이 몹시 아니꼬웁다고 당장에 따귀를 올려부치어 일시 화류계에 신기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였었다.
 
155
설지(雪枝)는 험구인 회월(懷月)의 첫인상이 ‘眼りの女‘이였었다. 眼りの女! 아무려나 일타수련(一朶垂蓮)이 버들 낙지(落枝) 속에서 가녈픈 시름 가벼운 한숨으로 고요한 졸음을 흐느적거린다면 그의 윤곽 일부를 그럴듯이 상징한 말이라 이를 수도 있으리라. 해운을 미인이라 이른다면 설지는 애오라지 여인격(麗人格)이였었다.
 
156
우전은 소같은 사람이였었다. 마음이 눅고 또 어질었었다. 모든 것에 저절로 주의요 그리 강작강행(强作强行)을 몹시 싫어하는 편이였었다. 그리고 또 그리 호색아도 아닌 모양이였었다. 다만 싫지는 않으니까 미색을 보면 멋없는 웃음을 웃기는 하였었다. 또 어떠한 여자에게든지 일부러 악마의 제자가 되어 잔혹히 미워하거나 경멸이 다르거나 억압하거나 유린하려드는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157
그래서 모든 여자가 애(愛)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모두 쓸쓸한 남이였었다. 여자의 마음 속에 들기 위하여 여자를 쫓아다니지는 아니하였고 또 그것을 포로로 정복하기 위하여 나닿지도 아니하였었다. 다만 간투(看套)와 오입(娛入)식이 그의 연애관이 된 지라 ‘여자란 일시적 위안의 도구 아름다운 장난감…….’ 그래서 그는 고결이나 청초를 구태여 탐하지도 않았지마는 또 미추고 그리 가리지 않는 편이였었다. 여자는 그저 여자 그대로면 고만이였었다. 그러나 그의 오입판의 수완이나 방식은 매우 능숙하고 놀랍게 세련되였었지마는 그것도 그만 흑방 행자의 계행(戒行)을 지키느라고 한 번 마음대로 행사하여 보지도 못하였었다. 은인자중(隱忍自重)…… 그러는 동안에 여러 번의 웃는 꽃은 그만 가버리고 말았었다. 첫번에는 고계화(高桂花)요 둘째번에는 김해운(金海雲)이였다. 셋째번에는 김난주(金蘭珠) 넷째번에는 신소도(申小桃) 모두 왔다가는 실없이 웃고 돌아가버리는 가시찔레꽃뿐이였었다.
 
158
“님 향한 일편단심 앙굿방굿 웃지를 말아…….” 이것은 노작이 『개벽』 ‘가십’에 쓴 도향 소식의 일절이었었다. 도향은 그만 새침하나 ‘육(肉)’ 을 탐하였다 파계를 하고 흑방서 내쫓기어 버리였다. 따라서 단심도 오지를 못하고 다른 곳 가나안 복지 그윽한 보금자리에서 도향과 밀회를 하게 되였었다.
 
159
성지는 그만 더럽히여졌다. 실내의 공기는 부정하여졌다. 소독! 소독! 그러나 이미 더럽혀진 사랑의 영혼 임금(林檎)을 잃어버린 마음의 성단(聖壇)을 여간 냄새나는 시속의 약물쯤으로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무슨 보람이 있으랴.
 
 
 

9. 9. 우전(雨田)의 음울(陰鬱)

 
161
어저 내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162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163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164
내 언제 신(信)이 없어 님을 언제 속였관대
165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
166
추풍(秋風)에 지는 잎소리야 난들 어이 하리오
 
167
연애 삼매의 흑방비곡…… 여기에도 그나마 정신 연애에도 실연만 맛보는 우전은 파계행자인 소정지옹(笑亭之翁)까지 잃어버리고 저절로 우중충 우울하게 흐리쳤었다. 고립! 고독! 오― 얼마나 쓸쓸한 형용사이냐. 계행을 지키는 명예의 고립! “벗이 없는 인생은 사막이라” 하거니 실연만을 당하면서도 계행은 묵수하는 명예의 고림!
 
168
그것을 그 헐렁이가 엄연히 지키고 있었던 것은 순례성단에 한 기적이였거니와 당자 자신으로도 아마 지극한 곤란이였으리라. 다만 그림자만 남은 한 자락 단골의 ‘콘도라’ 노래만은 여상(如常)히 그의 거칠은 성대가 의미 있는 듯이 무거웁게 떨리고 속깊이 울리어 나왔었으니 그것은 소정이 떠나간 고독의 구슬픈 소리였었다. ‘님향한 일편단심’이 무더웁게 흑방 속에서 소정지옹을 녹이여 낼 적에도 “인생은 초로 같다 사랑해라 소녀를” 순례의 일행의 회색가로 걸어나갈 적에도 “연붉은 그 입술이 사위기 전에” 하던…… 그저 밤이나 낮이나 “인생은 초로 같다……” 그 ‘콘도라’의 그리움이여…… 탈선 무규(無規)한 그들의 생활도 세월이 짙었으니 불규(不規) 그대로가 항례가 되어 기계적으로 매일 되풀이 하여졌었다.
 
169
원고쓰기 담론 음주 연담(戀談) 수면으로 한 해 두 해 매일같이 그대로 되풀이만 하는 회색 생활 속에서 다만 우전의 ‘콘도라’ 노래 한가락만이 시감(時感)을 따라서 높혔다 낮았다 빨랐다 느렸다 하여 일상의 단조를 저으기 깨트리고 있을 뿐이였었다. 그는 일곡(一曲)의 ‘콘도라’ 가운데에도 울적하고도 무한한 청춘의 희망을 사랑을 고적을…… 굵은 목 가득히 내뿜어 쓸쓸한 만호장안(萬戶長安)에 임자없이 떠도는 저녁안개에 끝었이 하소연하는 것이 유일의 위안이며 예술이였던 것이였다.
 
170
그러나 인생이란 매양 모순과 갈등이 많은지라 백조사 대문 안에는 계림흥산(鷄林興産) 회사(會社)라는 한 고리대금의 흑마원이 세를 들고 있었었다. 주야로 복리계산의 주판질 착취하려는 밀담 등……. 더구나 거기에는 ‘위의(威儀)’가 가난한 이를 다루는 데에는 한 커다란 권위적 도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옆방에서는 밤낮으로 “인생은 초로 같다 사랑해라 소녀들” 하고 무디게 소리를 지르니 아마 그들의 심장을 송곳으로 쑤시고 체질하듯 몹시 흔들어 놓았으리라. 그래서 하루는 그 회사 전무취제역이라는 자가 급사(給仕)를 시키여
 
171
“의무상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보다 매우 곤란하니…… 그리 무리한 청이 아니다 될 수 있으면 회사 전원이 퇴근한 뒤에 좀 떠들든지 노래를 하든지 마음대로 하시요.” 하는 전갈을 보내었었다. 그 기별을 들은 우전은 전갈 온 급사가 채 돌아서기도 전에 거칠은 성대를 더 다시 박차고 억세이게 내질러서
 
172
“인생은 초로 같다―” 그 때는 아마 계림회사 전무는 커넝 사장 이하로 빚 얻으러 온 손님들까지도 모두 초풍을 하여 달아날 지경이였으리라. 그해 9월에 있던 동경진재(東京震災)가 또 이른 것이 아니면 ‘뢰(雷)’자 그대로 천동지동(天動地動) 청천벽력이나 아닌가 하고……. 우전으로 보아서는 그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였었다. 다만 한 가락의 위안인 그 쓸쓸한 노래에다까지 그러한 제한과 제재를 씌워주는 것은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너무나 지독한 일이였었다.
 
173
우전은 성이 났었다. 우뢰 소리가 터져나왔었다. “인생은 초로 같다…… 인생은 초로 같다.” 그러나 이제는 그 노래에는 예전과 같이 청춘의 오뇌를 품은 애조는 영영 사라져버리였고 다만 불붙는 분노와 타매(唾罵)가 뒤틀어져 쏟아지는 우뢰 소리뿐이였었다. 무섭고 거칠은 우뢰 소리는 계림회사에 대하여 도향 단심에 대하여 더 다시 인생에 대하여…….
 
174
우전은 가끔 아마 어두운 가슴을 어루만지며 아릿한 후회도 하리라. “그렇게 너무 데퉁지고 멋없이 좀 말고 조금만 안존한 온정으로…… 도향처럼 그렇게 달갑게 굴지는 않더라도 조금 벌달은 취급 남다른 접대만을 하였었더라도…….” 하고 또 흑방 이외의 다른 동무들도 다소 느긋한 유감이 있었으리라. 그 때는 모두 선머슴이요 도련님 풍월이라 높기는 높고 맑기는 맑았지마는 아름다운 이성(異性)을 웃는 꽃을 미(美)를…… 꽃 그것이 곧 인생이건만…… 보는데에 반드시 유독 남다른 각도에서 떨어져서 보아야 한다고 일부러 인생의 현실을 도피하여 무슨 때 나물들세라 무슨 허물이나 있을세라 허둥지둥 ‘포즈’를 고쳐놓기에만 분망하였고 직접으로 가까이 가서 좀더 가치 있는 것을 발현하는 것을 한각(閑却) 해버리였으니까……. 월탄의 오뇌심하다 하던 「2년 후」의 황경옥(黃璟玉)이나 빙허(憑虛)가 애처로이 보던 가엾은 순희(純姬)나 회월(懷月)의 꿈으로 그리던 Y양이나…… 모두 싱싱하고 꽃다운 생화를 일부러 종이로 만든 가화(假花)로만 대접하였던 것이 아니랴. 그들의 인생의 실패는 말하자면 인생의 속에 들어서서 사철 그 꽃다운 꽃의 본질미를 향수할 수 있는 그것을 차마 해보지 못하였었다는 그 침묵에 있었다고 새로금 느끼여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향은 확실히 ‘옹’은 ‘옹’이였었다. ‘선(仙)’이 아니라 ‘옹’이였었다. 발재인 선수였었다. 걸음 빠른 선진이였었다. 이성삼매의 그 어려운 업을 어느 틈에 일찍이 수득성취(修得成就)한 셈이니까…….
 
175
“봄은 오더니만 그리도 또 가더이다.” ‘하이델베르그‘의 ’삐데이‘는 나이를 먹었다. 점잖아진 공자를 다시 만나서 서러웁게 서러웁게 느끼어 가며 울었다. “몇 해 전의 봄철은 참으로 즐거웠어요.” 하면서……. 우전은 우뢰와 같은 그 정열로 인제는 ’콘도라‘의 붉은 입술과 함께 살아서 아무러한 탄력도 없이 근자까지는 조극문간(朝劇門間)에서 졸고 앉았는 것을 보았었는데 그나마의 조선극장도 봄불에 다― 타버리였으니 이제는 어디로 가서 또 우중충하게 쭈그리고 앉았는지? 아마 과음의 탓인지 근년에는 위궤양으로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일금(一禁)을 하여버리였다 하니 그의 성격 그의 생활에 아마나 더 다시 몹시도 쓸쓸하고 우중충할 것이다.
 
176
도향은 23세 청춘을 일기로 하고 요절하여버리었다. 일대의 수재로 풍염한 미래의 꽃다운 희망을 가슴 사득히 품은 채 초라하게 저승의 길을 떠날 때 도향은 아마 몹시 울었으리라. 다정다한한 그의 일평생 그것을 온통 궂은 눈물로 바꾸어 가지고 거리거리 인정을 써가며 가기 싫은 황천길을 걸어갈 적에 아마나 눈물빛 도가(都家) 지장보살께 정그이 안타까운 사정은 그리 적었으려니……. 동인 생활 삼 년 간의 옛날 교의(交誼)와 우정 그것이 하염없이 을씨년스런 추억으로 뇌여질 적에 애끊는 구슬픔을 새록새록 느끼는 산 사람들……. 정말 그것도 숙연인지 기우였던지 도향이 작고한 지도 벌써 열두 해이었거만 그의 음용(音容)은 방불하여 시방도 아직껏 어제인 듯하다.
 
177
“새파랗다”고 칭찬하던 방소파(方小坡)군도 벌써 다섯 해 전 이맘 때엔가 불귀의 손이 되었으니 아마나 이제는 가을 바람 남북으로 유리영산(流離零散)한 이 꼴을 그리 탄식이나 해 줄 이도 없을 터이지……. 낙원동의 경관 파출소도 치워버린 지가 이미 오래나 흑방 옛품에 꽃피는 봄이 다시 돌아든들 그리 알뜰히 두긋겨 보호해 줄인들 또 어디 있으랴.
 
178
오! 그리울손 백조가 흐른던 그 시절
179
병자(丙子) 여름 궂은 비 훌쩍이는 밤에
180
나이 먹은 순례지성(巡禮之聖)은
181
파석(坡石) 두메 외따른 초암(草庵)에서
182
아릿한 옛노래를 이렇게 적노라
 
183
(『朝光』제2권 9호, 1936년 9월)
【원문】백조시대에 남긴 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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