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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형근(池亨根)은 자기 집 앞에서 괴나리봇짐 질빵을 다시 졸라매고 어머니와 자기 아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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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마치 풀 접시에 말라붙은 풀껍질같이 쭈글쭈글한 얼굴 위에 뜨거운 눈물 방울을 떨어뜨리며 아들 형근을 보고 목메이는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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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성했으면 좋겠다마는 섬섬약질이 객지에 나서면 오죽 고생을 하겠니. 잘 적에 더웁게 자고 음식도 가려 먹고 병날까 조심하여라! 그리고 편지해라!”
6
형근의 젊은 아내는 돌아서서 부대로 만든 행주치마로 눈물을 씻으며 코를 마셔 가며 울면서도 자기 남편을 마지막 다시 한번 보겠다는 듯이 훌쩍 고개를 돌리어 볼 적에 그의 눈알은 익을 둥 말 둥한 꽈리같이 붉게 피가 올라왔다.
8
형근은 대답만 하면서 얼굴빛에 섭섭한 정이 가득하고 가슴에서 북받치는 눈물을 참느라고 코와 입과 눈썹이 벌룩벌룩한다.
9
동리 사람들이 그 집 문간에 모두 모여 섰다. 어렸을 적 친구들은 평생 인사를 못 해본 사람들처럼 어색한 어조로 인사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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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체면치레로 말 한마디 던져 버리고 그대로 돌아서 저쪽에 가 서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어떤 늙은이는 머리서부터 쓰다듬어 내려 마치 어린애같이 볼기짝을 두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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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잘 다녀오게,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오게. 허어, 기막힌 일일세. 자네 같은 귀골이 노동을 하려고 집을 떠나간다니 자네 어른이 이 꼴을 보시면 가슴이 막히실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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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두 눈에서는 진주 같은 눈물이 괴어 오르다가 흰 눈썹이 섬세하고 쌍꺼풀이 진 눈을 감았다 뜰 때 희끗희끗한 눈썹 위에는 눈물이 구을러 맺힌다. 노인이 우는 바람에 어머니와 아내의 울음 소리는 더 잦아지며 동리집 노파들도 눈물을 씻고 젊은 장정들은 초상집에 가서 상제 우는 바람에 부질없이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는 것같이 코들만 들이마시기도 하고 눈만 슴벅슴벅하고 있다.
13
형근도 눈물를 씻으며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다시 동리 사람을 향하여 작별을 하였다.
14
자기 아내는 도리어 보는 것이 마음을 약하게 하여 주는 것이며 장부의 할 만한 짓이 아니라는 듯이 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동구로 향하였다. 동리 늙은이와 자별한 친구들은 뒤를 따라와 주며, 어린아이들은 마치 출전하는 장군 앞에 선 군대들같이 앞에도 서고 뒤에도 서서 따라온다.
15
형근은 가다가 돌아다보고 또 가다가 돌아다보았다. 얼마큼 오니까 아이들도 다 가고 따라오던 사람들도 다 흩어지고 자기 혼자몸이 고개 마루턱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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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다보니 자기가 살던 이십여 호밖에 보이지 않는 촌락이 밤나무 느티나무 사이에 섞여 있다. 자기 집 앞에는 사람들이 흩어지고 어머니와 자기 아내만 여전히 자기 뒤를 바라보고 섰다.
17
그는 여태까지 나지 않던 눈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폭포같이 쏟아진다. 아침해가 기쁜 듯이 잔디 위 이슬에서 오색 빛을 반사하고 송장메뚜기가 서 있는 감발 위에 반갑게 튀어 오르나 그것도 보이지 않는다.
18
분홍 저고리에 남 조각으로 소매에 볼을 받아 입고 왜반물 치마에 부대쪽 행주치마를 입고 백랍 비녀에 가짜 산호반지를 낀 자기 아내 생각을 할 제 스물두 살 먹은 이 젊은 사람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19
그는 한 발자국에 돌아서고 두 발자국에 돌아섰다.
20
멀리 보이는 자기 집은 아침해의 그늘이 비추인 산모퉁이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다.
23
“내가 계집에게 마음이 끄을려서 이렇게 약한 마음을 먹다니!”
24
그는 마치 번개같이 주먹을 내흔들었다. 그리고 벌건 진흙이 묻은 발을 땅이 꺼져라 하고 더벅더벅 내놓았다.
25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가슴을 내놓았다. 하늘은 한없이 높이 개었는데 넓은 벌판 한가운데 신작로로 나서니까 그 가슴속에는 끝없는 희망이 차는 듯하였다.
26
가면 된다. 이대로 가기만 하면 내 주먹에 지전 뭉텅이를 들고 온다. 그는 열흘 갈 길을 하루에 가고 싶었다.
27
그때 강원도 철원군에는 팔도 사람이 다 모여들었었다. 그 모여드는 종류의 사람인즉 어떠냐 하면 대개는 시골서 소작농들을 하다가 동양척식회사에서 소작권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면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허욕에 덤빈 사람들이었다.
28
그것은 철원에 수리조합이 생기며 그 개간공사로 노동자를 사용하는 까닭도 있지만 금강산(金剛山) 전기철도가 놓이며 철원은 무서운 속력으로 발전을 하는 데 따라서 다소간의 금융이 윤택하여지며 멀리서 듣는 불쌍한 사람들의 마음들을 충동이어 ‘나도 철원, 나도 평강(平康)’ 하고 덤비게 된 것이다.
29
노동자가 모이어 주막이 늘고 창기가 늘었다.
30
자본 있는 자들은 노동자가 많이 모여들수록 임금을 낮춰서 얼마든지 그들의 기름을 짜내었다. 그러나 그렇게 기름을 짜낸 돈은 또 주막과 창기가 짜내었다. 남은 것은 언제든지 빈주먹이었다.
31
평화스런 철원읍에는 전기철도라는 괴물이 생기더니 풍기와 질서는 문란할 대로 문란하여졌다.
32
그래도 경상도, 경기도 여기저기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불쌍한 농민들은 요행을 바라고 철원, 평강으로 모여들었다.
33
지형근도 지금 그러한 괴물의 도가니, 피와 피를 빨고 짓밟고 물어 뜯고 볶는 도가니를 향하여 가며 가슴에는 이상의 꽃을 피게 하고 있는 것이나 마치 절벽 위에서 신기루에 홀려서 한걸음 두걸음 끝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다.
34
그는 오십 리를 못 가서 발이 부르텄다. 그는 한 시간에 십 리를 걸었다 하면 지금은 그것의 절반 오 리도 못 걸었다.
35
그는 발 부르튼 것을 길가에 서서 지끗지끗 눌러 보며 혼자 속으로,
36
‘흥, 올 적에는 기차 타고 온다. 정거장에서 집까지가 오 리밖에 안 되니 그때는 잠깐 걷지…….’
37
그러나 그는 주머니 속을 생각하여 보았다. 발병이 나지 않고 그대로 줄창 잘 걸어간다 해도 닷새나 돼야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주머니에 있는 행자는 얼마냐? 빠듯하게 쓰고도 남을지 말지 하다.
38
해는 져간다. 가슴에서는 공연히 무서운 생각이 났다. 만일 발병이 더하여 길을 못 가게 되면 어찌하나.
39
그는 용기가 줄어들고 희망에 구름이 끼는 것 같았다.
40
그는 비척비척 맥이 없이 걸어가며 궁리해 보았다. 그는 자기가 가는 길가에 아는 사람의 집을 모조리 생각해 보았다.
41
말할 만한 집이 하나도 없었으나 거기서 한 십 리쯤 샛길로 휘어 들어가면 거기 큰 촌이 하나 있었다. 그 촌 이름을 여기에 쓸 필요가 없으매 그만두지마는 그 촌에는 자기 아버지가 한참 호기 있게 돈을 쓰고 그 근처 읍에 이름 있는 부자로 있을 때 소작인으로 있던 사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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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를 자기 집 사랑에서 자기 아버지 앞에 황송한 태도로 앉아 있는 것을 보기는 보았을지라도 그의 집을 찾아간 일은 물론 없었다.
45
‘김서방을 찾아가면 얼마간이라도 돌릴 수가 있을 터이지, 거저 달래는 것인가? 돌아올 때 갚을걸!’
46
그는 김서방의 상전이란 관념이 있다. 옛날에 자기 아버지의 은덕으로 살아간 사람이니까 은덕을 베푼 자의 아들의 편의를 보아 주는 것도 떳떳한 일이라 하였다.
47
즉 자기 마음이 그러니까 남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하였다.
48
그는 허위단심 김서방 집을 찾았다. 그 집 앞에는 훤한 논과 밭이 있고 집은 대문이 컸다.
49
주인을 찾으매 정말 김서방이 나왔다. 김서방은 반가워하면서도 놀랐다.
51
김서방은 존대도 아니요 하대도 아니요 어리벙벙하게 말을 해버린다. 형근은 이것이 의외였다. 아무리 세상이 망해서 내가 제 집을 찾아왔기로 어디를 보든지 말버릇이 그렇게 나오지는 못할 것이었다.
53
이번에는 하게가 나왔다. 형근의 얼굴은 노래졌다가 다시 붉어졌다.
54
그는 대답이 없었다. 마당에 서서 해만 바라보았다. 해는 벌써 저쪽 서산 위에 반쯤 걸리었다.
55
그러나 그는 단념하였다. 자기가 노동을 하러 괴나리봇짐을 지고 나가는 이 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된다. 양반도 되고 남을 부릴 수도 있으니까 자기도 돈을 벌어서 다시 옛날의 문벌을 회복하고 남도 부려 보리라 하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숙명적으로 그는 자기가 이렇게 된 것이니까 단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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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문벌만 있으면 무슨 짓―---사람을 죽이고도 무사하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 지금은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지 괜찮다는 관념이 한층 깊어지며 그는 얼핏 목적지에 가서 돈을 벌어 가지고 오고 싶었다.
57
그는 분을 참고 그 집에서 잤다. 김서방은 옛날의 어린 주인을 잘 대접하였다. 그는 밥상을 내놓으면서도 웃고, 정한 자리를 펴주면서도 웃었다. 또는 떠날 때도 종종 들르라고 하면서 웃었다.
58
김서방은 지금처럼 만족하고 좋은 때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여태까지 자기가 깨닫지 못하였던 자랑을 깨달은 까닭이다. 즉 옛날에 자기가 고개를 숙이던 사람의 자식이 자기 집에 와서 숙식을 빌게 될 만큼 자기가 잘된 것에 만족한 것이었다.
59
형근은 또 주저주저하였다. 어젯밤부터 궁리도 하여 보고 분한 생각에 단념도 하여 보고 다시 용기도 내어 보던 돈 취할 일, 가장 중대한 일이 그대로 남은 까닭이었다.
62
하였다. 그는 목소리가 떨리며 자기가 얼마나 비열하여졌는지 스스로 더러운 생각이 났다.
63
말을 하였다. 김서방은 벌써 알아챘다는 듯이 또 웃으며 생색내고 소청한 돈의 삼분지 이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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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근은 그 돈을 들고 나오며 분개도 하고 욕도 하고 또는 홀연한 생각이 나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갈수록 그는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새삼스러이 느끼는 것 같았다.
66
형근은 다리로 자기가 걸어온 것이 아니라 팔과 머리로 다리를 끌어 온 것 같았다.
67
그는 예정보다 사흘이 늦어서 철원에 도착하였다. 그는 한 다리를 건너면서 두 팔을 벌릴 듯이 반가워하였다. 그는 자기더러 오라고 편지를 한 동향 친구를 찾아가서 지금까지 지고 온 봇짐을 벗어 놓을 때 그는 모든 괴로움과 압박에서 벗어나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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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짐을 벗어 놓은 것은 어깨를 가볍게 함이 아니라 그 위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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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 친구를 찾았을 때 여간한 환멸을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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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가 있는 집이라는 것은 마치 짐승의 우릿간과 같은데 거기서 여러 십 명 사람들이 도야지들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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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고 서까래를 버틴 후 그 위에 흙을 덮고 약간의 지푸라기로 덮어 놓은 것이 그들의 집이다. 방 안에는 발에는 감발이며 다 떨어진 진흙 묻은 양말조각이 흐트러 있고 그 속은 마치 목욕탕에 들어간 것같이 숨이 막힐 듯한 냄새가 하나 가득 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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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광선이 잘 통할 리가 없었다. 캄캄하여 눈앞을 잘 분별할 수 없는 그 속에는 사람의 눈들만 이리 굴고 저리 굴고 하였다. 그는 손으로 더듬어서 그 속을 들어갔다.
73
발길에는 사람의 엉덩이도 채어지고 허구리도 건드려졌다. 그럴 적마다 그들은 굶주린 맹수 모양으로 악에 바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74
그는 친구의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75
새로이 온 사람이라고 여러 사람들은 절을 하다시피 반가워하였다. 저 구석에서 다섯 직째나 학질을 앓던 사람까지 일어나 인사를 하고 눕는다. 그들에게는 이 새로이 온 친구가 반가운 동무라고 함보다도 다시없는 미끼〔餌〕였다.
76
그들은 새로 온 사람의 노자냥 남은 것을 노리어서 그것으로 다만 한때라도 탁주 몇 잔, 육회 몇 접시를 토색하기 위하여 자기네의 갖은 아첨과 갖은 친절을 다하는 것이다.
77
어떠한 사람은 동향 사람이라고 가까이하려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동성동본이라고 친절히 하였다. 또 어떠한 사람은 어려서 자기 아버지와 형근의 아버지와 친하였다고 세교라고 늦게 만난 것을 탄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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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형근은 처음 이 움 속에 들어올 적에 느끼던 환멸이 어느덧 신뢰하는 마음과 이상과 기쁨으로 가득 차버렸다. 그날 저녁에 노자푼 남은 것으로 그 근처 선술집에서 두서너 사람과 탁주를 먹으려 편지하던 친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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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모으지는 못하였네. 그러나 인제 수 생길 일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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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당장에 수만금 재산을 한손에 움켜쥘 듯이 말을 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아직까지도 황금덩어리가 멀지 않은 장래에 자기 손 속에 아니 들어올 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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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천 리 타향까지 나왔다가 맨손 들고 들어가겠나? 지금은 좀 고생이 되지마는 그래도 잘 부비대기를 치면 돈 몇백 원쯤이야 조반 전에 해장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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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근은 또 가슴속이 든든하여지며 이번에는 걸쭉한 막걸리는 그만두고 입 가볍고 상긋한 약주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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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저러나 여러 형님네가 저를 위해서 어떻게 힘을 좀 써주셔야겠습니다. 형님들은 저보다야 경험도 많으시고 또 그런 데 길도 좋으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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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근은 눈이 거슴츠레해서 안주를 들며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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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염려 마시우. 내나 그 형이나 이런 데 와서 고생하기는 마찬가진데 서로 형제나 친척같이 생각할 것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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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머리 깎고 지카다비 신고 행전 친 노동자가 대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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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그는 여러 가지 진기한 것을 보았다. 번화한 시가도 보고 또 술 파는 어여쁜 계집도 보았다. 그리고 여기서 쓰는 말이며 습속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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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리둥절한 가운데에도 속이 느긋하고 만족하여 그대로 하루 저녁을 그 움 속에서 자고 났다. 그는 고린내 나는 발이 자기 코 위에 올려 놓이고 허구리를 장작개비 같은 발이 들이 질러도 그것이 화가 나지 않고 그 여러 사람을 오히려 동정하고 불쌍타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이들도 지금에는 이렇게 고생을 하지마는 나중에는 모두 돈들을 벌어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호강할 친구들이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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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새벽 다섯시가 되더니 그 같이 자던 사람 중에서 서너 사람은 눈을 비비고 어디로인지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제 자기가 올 적에도 보지 못한 사람이요, 또는 어느틈에 들어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가 나갈 적에 누구 한 사람 인사하는 일도 없고 눈 한 번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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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나갈 적에 부산한 바람에 옆엣사람들이 잠을 깨었다가 그들이 다 나가는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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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나웨자식들, 나가면 곱상스리 나갈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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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투덜대는데 그의 눈은 무서웠다. 마치 뒀다 만나자는 원수를 벼르는 것 같았다. 형근은 그것을 보고 그와 눈이 마주칠까 보아서 눈을 얼핏 감고서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그러할 리가 없었다. 자기에게는 그렇게 친절히 하던 사람들로는 결단코 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는 그 노동자의 질투를 몰랐으므로 이런 의심을 품었었으나 누구든지 이러한 사회에 있으면 그렇게 험상스럽게 될 수 있을 것을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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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실눈을 뜨고 방 안을 슬그머니 둘러볼 적에는 젖뜨려 놓은 싸리 거적문으로 아침 햇발이 붉은빛을 띠고 들이비치는데, 그 해가 비치는 싸리 거적 위에서는 아까 그 불량한 노동자가 코를 땅에다 대고 코를 고는 바람에 땅바닥의 먼지가 펄썩펄썩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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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 어저께 그 지카다비 신고 각반을 쳤던 노동자가 형근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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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수 옹배기에 물을 떠서 움 밖에 놓았었다. 형근은 황송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세수를 하였다. 그리고 아침 먹는 곳을 물었다.
101
형근은 자기 친구(편지한 친구)를 찾으려 하였으나 그자의 수선 바람에 그대로 끌려갔다.
102
술집에 가서 해장술에 술국밥을 먹었다. 시골서는 먹어 보지도 못하던 것인데 값도 꽤 싸다 하였다. 물론 돈은 형근이가 치렀다. 인제는 주머니 밑천이라고 은화 이십 전 하나하고 동전 몇 푼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내일은 일구멍이 생기겠지 하였다.
103
돌아오는 길에 그자는 형근의 행장에 무엇이 있는가 물었다. 그는 조선무명 홑옷 두 벌과 모시 두루마기 두 벌과 삼승버선이 한 벌 있다 하였다.
104
그것은 자기 집안이 풍족할 때 자기 아버지가 장만하여 두고 입지 않고 넣어 두었던 것을 이번에 자기 아내가 행장에 넣어 주었던 것이라 그것이 그에게는 다시없는 치장이요 또는 문벌 자랑거리였다. 그자는 그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웃으면서 형근을 비웃었다.
105
“그까짓 것은 무엇에 쓴단 말이오, 여보!”
106
형근이 자기 속으로는 무척 자랑삼아 말한 것이 당장에 핀잔을 받으니까 무안하기도 한 중에 또 이상스러웁고 놀라웠다. 이런 곳에서는 그런 것쯤은 반푼 어치의 값이 없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자기의 말한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이제는 자기가 무슨 사치하고 영화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나 보다 할 때 즐거웠다.
107
그날 저녁에 형근은 지카다비 신은 사람에게 끌려 나왔다.
108
그가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자 하면서 끝엣말에다가,
111
형근은 막걸리 서너 잔에 얼근하였다. 두 사람이 술집에서 나와서 서너 집 지나오다가 그자는 형근을 툭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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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렇게 쉽게 알으켜 주겠소? 한턱 쓰소.”
116
형근은 좋기는 좋지마는 한턱 쓰라는 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만,
118
하고 반벙어리처럼 한탄 비슷한 대답을 하였을 뿐이다. 그런즉 이런 어리보기쯤야 하는 듯이 두서너 번 까불러 보다가 그자가 미리 묘책 하나를 알려 주었다.
120
“그렇게 합시다. 그까짓 것 무슨 소용 있소. 땀 한 번 배면 고만일걸. 돈푼이나 수중에 들어오거든 양복 한 벌을 허름한 것 사입어요. 그러면 더럼 안 타고 오래 입고 어디 나서든지 대우받고 좀 좋소? 여기서 조선옷 입는 사람들야 헐수할수없는 사람들이나 입지 노형 같은 젊은이가 뭘 못 해본단 말요. 그렇게 합시다.”
121
형근은 그자의 말대로 곧 귀를 기울일 수는 없었다. 일이 너무 크고 자기의 이성으로는 판단하여 결단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까닭이다.
122
그는 이럴까 저럴까 난처한 생각으로 다만,
124
하기만 하며 둥싯둥싯 그자의 뒤만 따라다녔다. 그러니까 그자는 화를 덜컥 내며,
125
“여보, 이런 데 와서는 매사에 그렇게 머뭇거리다가는 안 돼요. 여기가 어떤 덴데 그렇소, 엥? 난 모르오. 엑, 맘대로 하소.”
126
하고 홱 가버리려 하니까 형근은 약한 마음이라 하는 수 없이 그자를 다시 불러,
127
“그렇게 역정야 낼 것 무엇 있소. 좋을 대로 하십시다그려.”
128
“글쎄, 좋을 대로 누가 하지 않는댔소. 노형이 자꾸 느리배기를 부리니까 그렇지.”
131
형근은 친구에게 끌려서 어떤 앉은술집으로 들어갔다. 그 친구가 두루마기 판 것을 자기 손에 쥐어 줄 줄 알았더니 그것도 그렇게 하지 않고 첫걸음에 가는 곳은 이화(梨花)라는 여자가 술을 파는 내외 술집이었다.
132
“나만 따라오시우. 내 어여쁜 색시 구경을 시켜 줄 터이니!”
133
어깨가 으쓱하여지며 두 눈을 찡긋찡긋하는 그자의 뒤를 따라가며 어여쁜 색시라는 말을 들으니까 속으로는 당길심도 없지 않았으나 첫째 노는 계집 옆에를 가보지 못한 것은 말할 것 없고 그런 종류의 여자라면 겁부터 집어먹을 줄밖에 모르는 그는 가슴이 두근두근하여질 뿐이다.
134
“이런 데를 오면은 계집 다루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135
형근이 쭈볏쭈볏하는 것을 보고 그자는 속으로 ‘네가 아직 철이 안 났구나!’ 하는 듯이 코웃음 섞어 말을 하였다.
136
형근은 그래도 속에는 빳빳한 맛이 있어서 그자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이 창피도 하고 분하기도 하나 사실 뻗딩길 자신도 없었다. 그는 그저 우물쭈물하며 그 뒤를 따라갈 뿐이다. 그렇지만 따라가기는 하면서도 몹시 조심이 되고 조마조마한 생각이 나며 자기 몸에 창피한 곳이나 없나 하는 생각이 나서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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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앞까지 서슴지 않고 들어선 그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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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를 높여 제법 의젓하게 주인을 부르더니 서투른 기침을 하였다.
140
안방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술이 취하여 장거리의 장꾼들처럼 제각기 떠들다가 그 소리에 떠들던 것까지 뚝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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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왁자지껄하던 무딘 남자들의 거친 목소리를 좌우로 물결 헤치듯이 좍 헤치고 복판을 타고 나오는 연한 목소리는 주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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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리를 듣더니 그자의 눈은 끔뻑하여졌다. 그러더니 형근을 한 번 본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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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손님이 왔는데도…… 아무두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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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짐짓 못 들은 체하고 이번에는 더 높은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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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여자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문이 열리며 그 여자의 치맛자락이 문에 스치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148
“어서 오십시오, 저 건넌방으로 들어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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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근의 눈에는 머리를 치거슬러 빗어 왜밀칠을 하여 지르르 흐르게 하고 횟박 쓰듯 분을 바르고 값 낮은 연지를 입에다 칠하고 금니한 이 사이에서 껌을 딱딱 씹으며 나온 그 이화라는 여자가 몹시 아름다웁게 보일 뿐 아니라 지르신은 버선까지 유탕한 마음을 일으키게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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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그 손을 잡았다. 그것은 나는 이렇게 이런 이화 같은 미인과 능히 수작을 하며 손목을 잡을 만한 자격과 수단이 있다는 것을 지형근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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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라는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머리를 다시 만지면서 ‘마뜩지 않게 네가 웬 허게냐’ 하는 듯이 시덥지 않은 어조로 대답을 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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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아니라 이 친구허구 술이나 한잔 나눌까 하고 해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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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생색을 내려고 하면서 이화에게 아첨을 하려는 듯이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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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자는 슬그머니 형근을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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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소? 괜찮지. 소리 한번 시킬 터이니 들어 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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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들고 이화가 들어왔다. 형근의 눈에는 내외 술집에서 한 순배에 사오십 전 하는 술상이 얼마나 풍부하고 진미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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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 자기 집이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지낼 적에도 이러한 음식을 자기 앞에 차려 주는 것을 먹어 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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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구미가 동하기보다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 비싼 술값을 어떻게 치를까? 그는 속이 초조해지면서 겁이 났으나 나중으로 그자를 믿었다. 믿었다는 것보다는 내가 아니, 너 알아 하겠지 하는 마음이 나기는 났으나 그래도 속이 편치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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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술잔이 자기에게 돌았다. 형근은 마치 남의 집 부인을 보는 것 모양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지 못하다가 술잔을 들면서 바로 보았다.
164
형근은 그 술 붓는 여자를 이제야 비로소 똑바로 보았다 하여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165
형근은 그 여자를 보고 마치 뜻하지 아니한 곳에서 뜻한 사람을 만난 것같이 놀라지 아니치 못하였다. 반가웁다 하면 반가운 일이요, 괴변이라 하면 이런 괴변이 또 어디 있으랴.
166
그 여자는 형근의 고향에서 한동리에 자라난 여자다. 그래도 행세깨나 한다고 하여 어려서부터 규중에 들어앉아 배울 것이란 남겨 놓지 않고 배우고 읽힐 것이란 모조리 읽히더니 불행히 그가 열세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고 홀어미 혼자 그 딸을 길러 오는데 본시 청빈한 집안이라 일가 친척이 있기는 있지마는 인심이 점점 강박하여짐을 따라 돌아보는 이 없으므로 그 여자가 열네 살 되던 해 그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자기 친정 오라버니를 따라갔다.
167
어려서 이웃집에 살았으므로 서로 보고 알아서 말은 서로 하지 않았으나 낯은 서로 익었었던 것이라 지금 보니 노성은 하였으나 어렸을 때 모습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남았었다.
168
형근은 뚫어지게 자세히 보고 싶으나 피차 면구한 일이라 슬금슬금 틈을 타서 이리저리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옛날의 모습이 더욱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169
그러나 만일 참으로 이서방 댁 규수라 하면 나를 몰라볼 리가 없는데 나를 보고 그래도 기척이라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170
그는 썩 감개가 무량하여지면서 또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술상 귀퉁이에 고개만 숙이고 무슨 생각인지 정신없이 앉아 있었다.
172
“여보, 노형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슈?”
173
하며 형근을 본즉, 형근은 고개를 들다가 다시 이화를 한번 보더니 그자를 보고,
174
“뭐 별로이 생각이라고는 하지 않소이다.”
175
“허허, 그럼 왜 고개를 숙이고 계시단 말이오? 대관절 주인하고 인사나 하시우.”
176
형근은 이런 인사를 해본 일이 없으므로 속으로 몹시 조심을 하고 창피한 꼴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래서 우선 속을 가다듬느라고 서투른 기침 한 번을 하였다.
177
솜씨 있는 이화의 통성명하는 것을 받아 어색한 형근의 인사가 있은 후 형근은 이화에게 고향을 물었다.
183
“아다뿐예요. 바로 이웃해 살았는데요. 떠나온 지가 하도 오래니까, 지금도 여태 거기 사시는지요?”
184
“살지요. 그런데 당신 아버지가 당신 어려서 작고하셨지요?”
186
“알죠. 그럼 나를 혹시 못 알아보시겠소?”
187
이화는 한참이나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그래도 알아보지 못한 듯이 고개만 갸웃하고 있다.
188
“글쎄요, 퍽 많이 뵌 듯하지마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데요. ○○동리 사셨에요?”
189
“허허, 너무 오래되어서 그렇게 잊은 것도 용혹무괴한 일이지마는 이웃해 살던 사람을 몰라본단 말이오? 내가 지○○의 아들이오.”
190
이화의 눈은 동그래질 대로 동그래지며,
193
형근도 자기 신세가 이렇게 된 것을 알리기가 부끄럽다는 듯이 말이 없이 앉았고, 그자는 둘이 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194
“아, 그래 서로 알았던가? 그것 참 신소설 같군.”
195
하는 두 눈에는 질투가 숨은 웃음이 어리었다.
196
“그런데 여기는 어째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처음부터 낯은 익어 보이었으나 지주사실 줄야 꿈엔들 알았을 리가 있어요.”
197
“나 역시 그럴싸하기는 하지마는 어디 분명치가 못하니까 속으로는 반가우나 말을 못 한 거 아니오.”
198
형근은 세상을 몰랐다. 그가 고향에서 옛날에 알던 규수(지금의 창녀)를 만나 반가웁기가 한량이 없었지마는 다시 생각하니 아니꼽고 고개를 내두를 만큼 더러웠다.
199
그는 옛날 일로부터 오늘 이 자리까지 이 이화라는 창녀의 신변을 두르고 싼 환경의 물결이 어떻게 어떠한 자극과 영향을 주고 또는 질질 끌어다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해부하고 관찰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다만 단순한 직관과 박약한 추측으로 경솔한 독단을 내리어 인간을 평정(評定)하여 버릴 뿐이었다.
200
이화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았는 것도 그것이 다른 사회적으로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이화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잘못 죄악을 범행한 까닭으로 오늘 이렇게 된 것이라고밖에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201
그러한 관념으로 이화를 볼 때 형근의 눈에는 이화라는 창기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음부 독부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202
그것을 생각하면 반가웁던 생각도 어디로 가고 다만 추악한 생각뿐이 나서 그 자리에서 피해 가고 싶을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주저하던 맘, 차리려는 생각, 쭈뼛쭈뼛하던 생각은 어디로 가고 마치 죄인을 꿇어앉힌 것같이 우월감과 호기가 두 어깨와 가슴속에 가득할 뿐이었다. 그리고 창기인 이화를 꾸짖어 마음을 고쳐 주고 싶은 부질없는 친절한 마음까지 났다.
203
자기의 영락, 얼핏 말하면 타락은 어느 정도까지 당연한 일일는지 알지 못하나 첫째 돈 많고 땅 많고 입을 것 먹을 것이 많던 지○○의 외아들이 철원바닥에까지 굴러와서 노동자 중에도 그중 엉터리하고 얼리어 한 순배에 사오십 전짜리 술을 사먹으러 왔다는 것은 이화라는 여자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의외의 일이 없을 것이다.
204
자기가 이렇게 된 것을 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게 아니지마는 그 부끄러움까지 지나쳐서 지○○의 아들의 일이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205
술잔을 들고 의기 있게 자기가 계집을 기롱하는 솜씨를 보이어 상대자를 위압하려던 그자는 두 사람이 서로 동향 친구라는 이유로 자기 같은 것과는 서로 말할 여지가 없이 이상한 감격과 비극적 분위기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 분위기 속에 참가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분위기를 헤쳐 버리고 다른 기분을 만들어야 할 것을 깨닫고 말을 꺼내었다.
206
“아니, 고향 친구를 만났으면 고향 친구끼리나 반가웠지 딴사람은 술도 못 먹는담?”
207
재담 섞어 솜씨 있게 말을 한다는 것이다.
208
이화는 손님의 마음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억지로 웃음을 웃어 마음을 가라앉혀 놓은 후,
209
“천리 타향에 봉고인이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조주사 나리는 공연히 그러셔. 그만한 것은 아실 만하시면서. 약주를 처음 잡숫는 것도 아니요 세상 물정도 짐작하실 듯한데 이런 때는 왜 그리 벽창호야.”
210
이화는 생긋 웃었다. 그 웃음 하나가 조화 부른 웃음이던지 소위 조주사의 마음도 흰죽 풀어지듯 하였다.
211
“히히, 내가 벽창혼가, 이화하고 말이 하고 싶어 그랬지.”
212
“말은 넌지시 하는 말이 비싼 말이라나? 손님도 계시고 한데 무슨 말을 한단 말이오.”
214
“글쎄 물어 봐서는 무엇을 하우, 뻔히 알면서…….”
215
하고 웃음 섞인 눈으로 쨍그리고 본다.
217
“글쎄 좀 가만히 있에요. 옳지는 무슨 옳지야. 부증 난 데 먹는 가물치는 아니고. 이 손님하고 이야기 좀 하게 가만 있어.”
218
하고 고개를 형근에게 돌리려다가 잔이 빈 것을 보더니 조주사란 자에게 술을 권하였다.
220
하고, 잔이 나니까 다시 형근을 주면서,
221
“그런데 여기는 어째 오셨에요. 참 반갑습니다. 벌써 우리가 거기서 떠나서 외가로 간 지가 칠팔 년 됩니다.”
224
“나 여기 온 거야 말할 것까지 있겠소. 그런데 당신은 어째 이렇게 되었소?”
225
하며 동정한다는 듯이 눈을 아래로 깔았다. 이 소리를 듣던 조주사라는 자가,
226
“왜 어때서 그러쇼. 인제 얼마만 있으면 내 마마가 된다우.”
227
하더니 혼자 신에 겨워서 허리를 안고 웃어 댄다.
228
두 사람은 그 소리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229
“그 동안에 제가 지내 온 이야기는 다 해 무엇 하겠습니까? 안 들으시는 것이 상책이지요.”
230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여지면서 목소리가 비통하여진다.
233
“그래도 어디 이런 기회가 자주 있겠소? 만난 김이니 이야기 겸 말해 보구려. 대관절 언제 이곳으로 왔소?”
234
하니까 조주사라는 자가 가로맡아 나오면서,
235
“온 지 벌써 반년이 되나? 그렇지, 아마?”
236
하고 말고기 설익은 것 같은 얼굴을 이화에게 가까이 갖다 대며 들여다본다.
238
이화는 고개를 그자 얼굴에서 비키면서 말을 하였다. 대여섯 잔이 넘어 들어간 술이 얼근하게 돈 조주사라는 자는 자기 얼굴을 피하는 이화를 뚫어지게 보더니 다시 제 손으로 자기 뺨을 한 번 탁 치며,
239
“왜 그래, 어때 그래? 사내 같지 않아? 얼굴에 뭐 묻었어? 왜 피해.”
240
하고 왜가리같이 소리를 지르더니 다시 슬쩍 농을 쳐서,
241
“하하, 그럴 것 뭐 있나?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지. 잘못했네, 응, 그만두세.”
242
“무얼 잘못했어요. 글쎄 아까 말한 것 있지, 우리는 너무 말을 하면 안 된다니까 그래요, 가만히 있어요.”
245
형근은 우습기도 하고 또 심심치도 않아서 싱긋 웃다가 다시 이화를 보고,
246
“그 후에 외삼촌 댁에서 언제까지 지냈단 말이오?”
249
할 때, 조주사라는 자가 잔을 들더니 소리를 지른다.
250
“술 좀 따라! 술 먹으러 왔지 이야기하러 왔나, 퉤퉤.”
251
하고 침을 타구에 뱉더니 지형근을 보고,
252
“노형, 실례가 많소. 그렇지만 대관절 말씀요, 술이나 자셔 가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 아니오. 이야기 안 하는 나는 어떻게 하란 말씀요, 경계가 그렇지 않소.”
253
“그럴듯한 말씀요. 그럼 우리 약주를 자십시다. 오히려 내가 실례가 많습니다.”
254
“아따, 천만에 그럴 리가 있나요? 두 분 이야기에 내가 방해가 된다면 먼첨 가죠.”
255
이번에는 이화가 두 눈이 상큼하여지며,
256
“온 조주사도 미치셨소? 그게 무슨 말씀이오, 사내답지 못하게. 두 분이 오셨다가 혼자 가신다니 어디 가보시우, 가봐요. 가지 못해도 바보.”
257
하고 입을 삐죽하였다. 조주사라는 자는 바로 일어서더니 모자도 들지 않고 문 밖으로 나가려 하니까 이화가 본체만체하더니 슬쩍 뒷손으로 그자의 옷자락을 잡으며,
258
“정말요? 이거 너무 과하구려. 내가 미안하구려. 어서 들어오시우.”
259
하며 일어서서 잡으니까 형근은 숫보기 마음에 가슴이 덜렁하여,
260
“이거 정말 노하셨소? 가시려거든 같이 갑시다.”
262
“아니 놔요, 놔, 갈 터야. 그런 법이 어디 있담?”
264
조주사라는 자는 못 이기는 체하고 들어오더니 자리에 앉아 깔깔 웃으며,
265
“가기는 어디를 가, 모자도 안 쓰고…….”
266
하며 술잔을 든다. 형근은 속은 것이 분하고 속인 것이 밉살스러우나 어떻든 홀연해졌다. 이화는,
267
“정말 붙잡은 줄 아남? 한번 해본 것이지.”
268
이러는 서슬에 술이 얼마간 더 돌아갔다. 조주사는 이화에게 술을 서너 잔 권하였다. 이화는 별로 사양도 하지 아니하고 그 술을 받아먹었다.
269
형근의 머릿속에서는 이화라는 창녀가 마치 하늘에서 죄짓고 땅에서 먹구렁이 노릇을 하는, 옛날의 삼 신선 중의 하나이나 마찬가지로 자기의 지은 허물로 말미암아 이렇게 하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270
옛날에 귀한 것, 깨끗한 것, 아름다운 것은 이화 자신의 잘못으로 다 썩어지고 오늘에 남은 것은 간악한 것, 음탕한 것밖에는 없으리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즉 이화는 옛날의 ○○의 딸의 죄악의 탈을 쓴 화신(化身)이다.
271
착한 자는 언제든지 착하고, 악한 자는 언제든지 악하다. 그것은 날 적에 타고난 숙명 즉 팔자다. 이것이 그의 인생관이다.
272
그러므로 이화는 팔자를 창기로 타고났으므로 그는 언제든지 창기밖에 못 된다. 그의 가슴속에나 핏속에는 다른 것은 조금이라도 섞이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273
형근도 술기운이 돌면서 얼기설기하게 척척 쌓였던 감정이 흥분됨을 따라서 마치 초가집 장마 버섯 모양으로 떠올라오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가 아버지에게 듣던 것이나 마찬가지 교훈을 이화에게 하여 주고 어른이 아이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형이 아우에게 하여 주는 것 같은 책망과 충고를 하여 주고 싶었다. 말하자면 이웃집 부정한 처녀를 종아리 치는 듯한 심리로 이화를 보고 앉았다.
274
“왜 당신이 이런 짓을 한단 말이오?”
275
형근은 젓가락짝으로 상머리를 두들기며 엄연하고 간절한 말로 말을 하였다.
276
“당신도 당신 아버지와 당신 집안을 생각해야죠.”
277
형근의 말은 틀은 잡히지 않았으나 꾸밈이 없고 진실하고 힘이 있었다.
278
“나는 이런 데서 당신을 보는 것이 우리 누이를 보는 것보다 부끄러워요.”
279
이화의 가슴속에는 대답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방 안은 갑자기 엄숙하여졌다. 조주사라는 자는 처음에는 눈이 둥그래지더니 나중에는,
282
“언제든지 이 모양으로 있을 터이오? 그래도 어째서 마음을 고칠 수 없겠소?”
283
이화는 그 ‘마음을 고칠 수 없겠소?’ 하는 소리를 듣고 형근을 기가 막히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눈물이 그의 두 눈에 진주같이 괴었다.
284
조주사는 이화가 우는 것을 보더니 제법 점잖은 듯이,
285
“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잘 명심해 들을 것이지 울기는 무엇을 울어.”
287
“돌아가신 아버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도 더럽히는 것이거니와.”
288
하다가 형근은 이화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는 말을 그쳤다. 그는 너무 큰 감격으로 인하여 자기의 감정이 찬지 더운지 알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하던 말을 다시 이어,
289
“살아 계신 어머니 생각은 하지 않소?”
293
형근은 이화가 우는 것을 볼 때 그는 놀랐다는 것보다도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그에게 눈물이 있었을 리가 있으랴. 자기도 자기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자기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이 난 일을 당하여 본 일밖에 참으로 가슴에서 펑펑 넘쳐흐르는 눈물을 흘려 본 일이 없었다. 자기 아버지가 돌아간 것이 자기로 보아서 이 세상에서는 가장 엄숙하고 비통하고 또는 위대한 사실인 동시에, 자기가 그렇게 울어 보기도 아마 전에 없던 일이요 또다시 없을 일일 것이다. 그것은 지금이나 언제든지 그의 가슴에 속 깊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인상은 때때로 자기에게 힘있는 정열과 감격을 주어서 이상한 감정의 세례를 받는 때가 있다.
294
이화가 운다. 샘물을 손으로 막는 것처럼 막을수록 북받쳐 올라오는 울음은 형근의 가슴속으로 푹푹 사무쳐 드는 것 같았다.
295
울음은 모든 비극을 알리는 음악이니 형근은 이 비극적 장면을 볼 때 말할 수 없이 위대한 사실을 목전에 당한 것 같았다.
296
꼭 자기 아버지가 돌아갔을 적에 자기가 받은 인상이나 별다름 없이 비통하고 엄숙하였다.
297
그는 까딱하면 따라 울 뻔하였다. 코도 벌룽거리는 것을 참고 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것을 슴벅슴벅하여 참았다.
298
그러나 형근은 이화가 어째 우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옆에 있는 조주사라는 자는 이화의 어깨를 흔들면서 혀꼬부라진 소리로,
299
“글쎄, 울지 말어, 내가 다 알어, 이화의 맘을 나는 다 안단 말야. 자, 고만두고 일어나요. 공연히 그러면 무얼 해.”
300
형근은 속으로 알기는 무엇을 안다누. 무슨 깊은 의미가 있나 하는 궁금한 생각이 나나 속으로 참고 여태까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 있다가 이화의 어깨를 조주사란 자 모양으로 흔들어 보며,
301
“글쎄, 울지 마쇼. 그만 그치쇼. 울지 말아요.”
302
하였으나 들은 체 만 체하고 엎드려 느껴 울 뿐이다.
303
형근은 나중에는 민망한 생각이 나서 말없이 앉았으려니까 조주사라는 자는 일껏 흥취 있게 놀 것이 깨어져서 분한 생각이 나서 혼자말처럼,
304
“울기는 왜 쪽쪽 울어 재수없게, 응! 쯧쯧.”
305
혼자말같이 중얼거리며 화증을 내고 앉아 있다.
306
얼마 있다가 이화는 일어서서 아무 말도 없이 얼굴을 외면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307
조주사란 자는 형근을 보더니 눈짓을 하며,
309
하고 입맛을 다셨다. 생각하니 더 앉았어야 재미도 없을 것이요, 또 재미있게 하자면 주머니 속 관계도 있음이다.
310
형근은 이마를 기둥에 받은 듯이 웬일인지 알 수가 없어서 멀거니 앉았다가 그대로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312
하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형근은 알 수가 없다. 어째서 창기인 이화의 눈에서 눈물이 났으랴?
313
얼마 있다가 이화는 손을 씻고 들어오며 머리 단장을 다시 하였다. 조주사라는 자는 일어서며 셈을 하였다.
314
“왜 그렇게 가세요. 제가 너무 실례를 해서 그러세요.”
315
하며 미안해한다. 조주사라는 자는 입에 달린 치사로,
316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다음에 또 오지.”
317
하며 마루에서 내려섰다. 형근은 여전히 큰 수수께끼를 품고 조주사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318
조주사는 문 밖에 나섰다. 형근이 마당에서 중문으로 나갈 때 이화는 넌지시,
320
하였다. 형근은 대답을 한 둥 만 둥 바깥으로 나왔다. 조주사는 형근을 보더니,
322
하며 입을 찡그린다. 형근은 재미가 있고 없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이화의 눈물이 해석할 수가 없어서,
324
하고 물으니까, 조주사라는 자는 손가락질을 하며 혀끝을 채고,
325
“허는 수 없어. 으레 그런 계집들이란 그런 것이 아뇨? 아마 노형이 전에 잘살았다니까 지금도 전 같은 줄 알고 그러는 게지.”
327
“암, 어떻게 그런 데서 구해나 줄까 하구 그러는 게 아뇨.”
335
하고 어슬렁어슬렁 술에 풀린 다리를 좌우로 내놓으며 큰길거리를 지나갔다.
336
길가에는 전기등으로 휘황히 차린 드팀전, 잡화상, 더구나 자기의 평생 한번 가져 보고 싶은 자전거가 수십 대 느런히 놓인 것이 눈에 어른어른하여 불 같은 호기심이 일어나서 그 앞에 서서 그것을 구경도 하다가 다시 돌아서며,
337
“내 돈만 모으면 꼭 한 개 사서 두고 탈 터이야.”
338
하며 그는 주먹을 쥐며 결심을 하고 머릿속으로는 자기 시골에서 때때 자전거 타고 다니는 면서기를 보고 부러워하던 생각을 하였다.
339
그는 혼자 자전거 공상을 하다가 그것이 어느덧 변하였는지 양복 입은 면서기가 되었다가, 다시 돈을 많이 가진 촌부자가 되었다가, 그러다가 발부리가 돌을 차는 바람에 다시 지금 철원 와서 노동하려는 지형근이가 되었다.
340
그는 훗훗한 남풍이 빙그르 자기를 싸고도는 큰길을 지내 놓고 골목길로 들어서다가 어떤 촌색시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깜박 잊어버렸던 이화가 다시 눈앞에 보였다.
341
그는 술기운이 젊은 피를 태우는 번뇌스러운 감정 속에 그 이화를 다시 생각하였다.
342
‘조주사 말이 참말이라 하면 이화에게도 어딘지 사람다운 곳이 남아 있었던 것이지. 그러나 만리 타향에서 옛 사람을 만났지만 시운이 글렀으니 낸들 어찌하나.’
343
하며 개탄하는 맘으로 얼마를 걸어가다가,
344
‘그러나 누가 창기 여자의 울음을 곧이 생각을 한담. 모두 못 믿을 것이지.’
345
바로 세상 경험이 풍부한 사람처럼 점잖게 결정을 하고 앞에 누가 있는 사람처럼 고개와 손을 내흔들었다.
346
그는 움에 왔다. 옆에 무성한 풀 냄새가 움을 덮은 진흙 냄새와 함께 답답하게 가슴을 누른다.
347
노동자들은 웃통 아랫도리를 벗은 채 거적대기들을 깔고 즐비하게 드러누워서들 혹은 코를 골기도 하고 혹은 돈 타령도 하고 혹은 일어나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 단소도 분다. 한 모퉁이에는 고춧가루를 태우는 것같이 눈을 뜰 수 없는 풀로 모깃불을 놓았다.
348
그는 여러 사람 있는 틈을 지나갔으나 자기를 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349
그 중에 키 크고 수염 많이 나고 얼굴 검고 눈이 부리부리한 사람이,
350
“허허, 대단히 좋으시구려. 연일 약주만 잡수시니. 조주사만 친구고 우리 같은 사람은 친구가 못 된단 말요. 그런 데는 따돌리고 다니니. 허, 젊은 친구가 그런 데 맛을 붙여서는…….”
351
빈정대는 어조로 말을 하니 형근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서 주저주저 어색하다가,
353
하였으나 맨 나중에 ‘젊은 친구가’ 하고 누구를 타이르는 것 같은 것이 주제넘은 것 같아서 혼자 속으로 알아 두었다.
354
그는 바깥에 좀 앉아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났었으나 그자의 말이 비위를 거슬리므로 그대로 움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355
움 속은 흙내에 사람의 땀내, 감발에서 나는 악취가 더운 기운에 섞여서 일종의 말할 수 없는 냄새를 낸다. 즉 여우의 굴에서 노린내가 나는 것같이 사람 중에서도 노동자 굴에서 노동자내가 나는 것이다.
356
그는 불과 몇 마장 떨어져 있지 않은 이화 집과 지금 자기가 들어온 이 움 속과의 차이가 너무 현격한 데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357
이화는 일개 창부다. 자기는 그래도 그렇지 않은 집 자손으로 힘들여 돈을 벌려는 사람이다. 그 차이가 너무 과한 데 그는 의혹이 없지 않았다.
360
하고 나서는 사람은 자기 동향 친구였다.
361
“난 길이나 잊어버리지 않았나 하고 한참 걱정을 하였네그려. 그래서 각처로 찾아다녔지. 대관절 저녁이나 먹었나?”
362
형근은 웬일인지 이화의 집에 갔었단 말 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는 그 말을 하면 그 동향 친구가 반드시 자기를 꾸짖을 것 같고 또 이화의 집 갔던 것이 더구나 옷을 팔아서까지 갔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분수에 넘치는 경솔한 짓 같았다.
367
잠깐 말을 입 속에다 넣고 우물우물하다가,
368
“그래서 또 한잔 먹지 않았나. 자네하고 같이 가지 못한 것이 대단히 미안하데마는 어디 있어야지…….”
369
동향 친구는 형근의 말에 거짓이야 있을 리 없으리라 믿는 듯이,
370
“인제는 고만 다니게. 여기가 어떤 덴 줄 아나? 조주산지 그자하고 다니지 말게. 사람 사귀기도 몹시 어려우이.”
371
형근은 실쭉하여지며 대답이 없었다. 속으로 생각에 대체로는 그 친구의 말이 옳은 말이지마는 조주사 같은 친구와 사귀지 말라는 데는 도리어 동향 친구에게 질투가 있는가 하여 적지않이 불목이 있었으나 말로는 나타내지 않았다.
372
그는 말이 없이 한 귀퉁이를 비비고 드러누웠다.
373
일부러 눈을 감아 오지 않는 잠을 청하나 찌는 듯이 무더운 기운이 코 속에 꽉차서 잠은 오지 아니하고 답답한 생각에 마음이 바깥으로 나간다.
374
그는 지금 돈 아는 동물들이 늘비하게 드러누워 있는 곳에서 생각은 이화에게서 멀리하여지지 아니한다. 그는 어두움 속에서 끊이는 듯 이으는 듯 애소하는 듯 우는 듯한 단소 소리가 움 밖에서부터 청아하게 이 움 속으로 흘러들어와 자기의 몸과 혼을 스치고 지나갈 때 그의 피는 공연히 타는 것 같아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고요한 꿈에서 소요하는 것같이 흐르는 듯하고 녹은 듯한 정조에 잠길 때도 있다가, 또는 미쳐 날뛰는 파도 위에 한 조각 배를 띄운 듯이 무서웁게 흔들리는 정열에 마음을 어떻게 진정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기도 하였다.
375
그는 하는 수 없이 일어섰다. 몸을 털고 나왔다. 그는 움을 뒤 두고 들로 나왔다가 뒷산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앉았다가 섰다가 하였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풀에는 이슬이 다락다락하였다.
377
이튿날 아침에 해가 동산에 솟았다. 생명 있는 태양이다. 언제든지 절대의 뜨거움과 광명으로 싼 생명을 가진 태양이다. 태양이 없는 곳에 생명이 없다.
378
구릿빛 햇발이 온돌방을 비추고 그것이 또한 거짓이 없고 편협함이 없이 이 말하는 구더기 같은 노동자들이 모인 곳에 그의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었다.
379
형근이 일어나던 맡에 세수를 하였다. 그는 세수를 하고 아침 안개가 낀 넓은 벌판을 내다보고 호호탕탕한 기운을 모조리 들이마실 듯이 가슴을 벌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또 한번 넓은 들에서 이삭이 패어 가는 벼 위에 가득히 내리쪼인 햇볕이 눈부시게 반사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기운이 자기 몸에 가득 차는 것 같아서 두 팔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380
형근은 여러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밥 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조밥을 사기 사발에 눌러 담고 그 위에 외지 한 쪽씩 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쪽 두 개씩 놓는 것이 그들의 양식이니 그나마 잘못하면 차례가 못 가거나 양에 차지 않아서 투덜대게 되는 것이니, 형근의 신조는 어떻든 이런 곳이나 이런 밥을 달게 여기고 부지런히 일만 하고 얼마만 신고(辛苦)하면 그만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였다.
381
형근도 남과 같이 밥을 기다렸다. 어저께와 그저께 같이 술을 먹고 지내던 두서너 사람도 옆에 있었다.
382
그러나 그들은 수상스러웁게 자기를 두서너 번 쳐다보더니,
384
하고 말이 공손하여졌다. 형근은 따라서,
386
하였다. 세상 사람도 모두 자기같이 은근하고 친절하였다.
387
“미안한 말씀이지마는 돈 가지신 것 있거든 이십 전만 취하실 수 없겠소.”
388
형근은 그 말하는 사람보다 자기가 더욱 미안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자기가 남더러 돈 취해 달랠 적 모양으로 그도 무안하리라 하였다.
389
그래서 그는 주머니를 뒤졌다. 형근은 어저께 술집에서 남은 돈 이십 전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서슴지 않고 내주었다.
390
“예, 여기 마침 이십 전이 남았구려. 자, 옜소이다.”
391
하고 신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꾸어 주었다. 속으로는 이따가 주겠지 하였다.
393
“고맙소이다. 이따 저녁에 갚으리다.”
394
하고는 옆엣사람과 수군거리며 저리로 가버린다.
395
형근은 한참이나 앉아서 밥을 기다리려니까 배가 고파 왔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보니까 그들도 일하러 가는 사람 같지는 않게 배포 유하게 앉아서 이야기들을 한다. 한옆에서는 어떤 자가 다른 어떤 사람더러 오 전짜리 단풍표 담배 한 개를 달라거니 안 주겠거니 하고 싸움이 일어나서 부산하다.
397
“여보게, 밥이 다 되었네. 밥 먹으러 가세.”
403
“밥값이라니가 무어야? 누가 거저 밥 준다던가? 십오 전씩야.”
404
형근은 기가 막혔다. 오던 날부터 술 먹느라고 그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밀어 맡기면 될 줄 알았고, 또 그자들도 염려 말아, 염려 말아 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십 전까지 아침에 뺏긴 것을 생각하니 허무하다.
406
“그럼, 누가 밥값까지 낸다던가? 어림없네.”
407
동향 친구는 그래도 주머니에 돈이 얼마 남았을 줄 알고서,
409
형근은 덜렁 가슴이 내려앉아서 동향 친구를 붙잡고 돈이 한푼도 없는 이야기를 하였다.
410
동향 친구라는 사람은 친구라고 하느니보다 형근 집에 은혜를 입은 사람이니, 같은 양반으로 형근네는 돈푼이나 있고 할 때 그 친구의 아버지가 빚진 것이 있었으나 그것을 갚지 못하여 심뇌하는 것을 형근의 아버지가 알고 호협한 생각에 그대로 탕감을 해준 일이 있다.
411
지금은 그 아들들이 서로 만났지만 선대의 일들을 서로 가슴속에는 넣어 둔 터이라 그 친구는 형근을 그리 괄시를 하지 않는다.
413
그 친구와 밥을 먹었다. 그나마 형근은 신셋밥 같아서 먹고 나서도 몹시 미안하였다.
414
아침을 먹더니 그 친구가 형근을 보고 이르는 말이,
415
“누가 어디를 가자거나, 일구녕이 있다거나 도무지 듣지 말게.”
417
그는 공연히 왔다갔다하며 혼자 심심히 지낼 뿐이다. 조주사가 오늘은 꼭 올 터인데 어제 어디서 자고 아니 오노 하며 오정이 넘어 해가 두시나 되도록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418
그는 한옆으로 밥 먹을 구멍이 얼핏 생겼으면 좋을 텐데 하는 걱정과 또 조주사나 왔으면 모든 것을 의논하여 보겠다 하고 기다리는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또 한 가지는 이화의 울던 꼴이 생각나고 또는 은근히 한번 오라고 하던 말이 어떻게 박여 들렸는지 잊을 수가 없다. 그나마 하룻밤 하루낮이 지나고 나니까 부썩 마음이 그리로 키어서 못 견디겠다.
419
그는 앞산에 올라가서 이화의 집이라도 가리켜 보려는 듯이 부리나케 올라갔다. 그러나 서투른 눈에 복잡해 보이는 시가가 방위도 잘 알 수 없고 어디쯤인지도 몰라서 동에서 떴다가 서에서 지는 해만 공연히 쳐다보며, ‘동서남북’만 외울 뿐, 나중에는 고향이나 바라본다고 남쪽만 내다보다가 그대로 풀밭에서 멀거니 있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420
잠을 깨고 나니 벌써 해가 서쪽에 기울려 하였다. 그는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서 허둥지둥 움을 향하여 왔다.
421
그는 밥 먹을 시간이 늦은 것도 늦은 것이려니와 조주사가 일할 자리를 얻어 가지고 와서 자기를 찾다가 그대로 가지 아니하였나 하는 걱정이 있음이었다.
422
그는 때늦은 찬밥을 사먹고 옆엣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조주사는 다녀가지 않았다 하였다.
423
그렇게 지내기를 닷새를 넘고 열흘이 넘었다.
424
조주사라는 자를 장거리에서 한두 번 만났으나 코웃음을 치고 우물쭈물 얼렁얼렁하고 홱 피해 버릴 뿐이요 전과는 딴판이요, 동향 친구는 사람이 입이 무거워서 말은 아니 하지마는 그래도 기색이 좋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그 더운 염천에 그 지저분한 곳에서 여벌 옷 한 벌을 입고 지내려니까 온몸에서 땀내가 터지게 나고 옷이 척척 달라붙어서 거북하고 끈적끈적하기 짝이 없다.
425
그는 비로소 사람 많이 사는 데 인심 강박한 것을 알았다.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힘써 주는 이 없고 더구나 서로 으르렁대고 뺏어먹으려고 하는 것뿐인 것을 알았다.
426
그뿐 아니라 그는 지금까지 시골서는 양반이었고 행세하는 사람이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일 군에서 누구라면 알아주기는 하였으나 지금 여기 와서는 지형근의 존재가 없다. 그뿐이면 오히려 예사이지마는 입을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남의 것을 빌어먹다시피 하는 사람이 된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자기가 불쌍하니보다도 웬일인지 가슴에서 무서운 생각이 날 뿐이다.
427
자기가 이화를 보고 그 계집이 창기가 된 것을 비웃었으나 그는 오늘에 거의 비렁뱅이가 된 것을 생각하고 눈이 아플 만큼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428
그러나 이곳에 온 지 열흘이 넘도록 그는 일이라고는 붙들어 보지를 못하였다.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와 같이 잠을 자는 축에도 십여 명이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는 이상해서 하루는 물었다.
430
그들은 서로 얼굴들을 보더니 그 중 한 사람이,
431
“그렇소, 요새는 여름이 되어서 전황한 까닭에 일본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우. 그래 일자리가 퍽 드물죠. 그렇지만 가을만 되면 좀 괜찮죠.”
432
“가을에는 일본 사람들이 돈을 풀어 놓나요?”
433
“풀다뿐요? 작년 가을에도 여기 수만금 떨어졌소. 오죽해야 돈 소내기가 온다 했소.”
437
“가을까지만 기다리시우. 그때는 괜찮으시리다. 저것 좀.”
439
“저것 놓는 데도 돈이 산더미같이 들었소. 지긋지긋합디다.”
440
형근은 말에 배가 불러서 공연히 좋았다. 속으로 가을만 되면 태산만큼은 그만두고라도 그 한 모퉁이쯤은 생기려니 하고 혼자 좋았다.
441
돈 생기는 생각만 하면 이화 생각이 난다. 이화 생각이 나면 이화 집에 가고 싶다. 젊은 가슴은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듯한 부질없는 정열로 해서 애를 쓴다.
442
그는 밤중만 되면 이화 집 앞을 돌아온다. 갈 적에는 혹시 이화의 그림자라도 보았으면 하고 가기는 가지마는 어찌 그런 일에 그러한 공교로움이 있을 리가 있으랴.
443
갔다가는 헛되이 돌아오고 돌아올 때에는 스스로 다시 안 가기를 맹세한다. 맹세만 할 뿐이 아니라 이화를 멸시하고 욕하고 침뱉었다.
444
그러나 그 이튿날이 되면은 아니 가려 하다가도 자연히 발길이 그쪽으로 향하여져서 으레 허행일 것을 알면서도 다녀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445
하루는 전처럼 그 집 앞을 지나다가 그 집을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여간한 대담한 짓이 아니었다. 그는 발길을 돌이켜 누가 쫓아서 나오는 것처럼 머리끝이 으쓱하여 나와서 집 모퉁이를 돌아서며 다시 한번 훌쩍 돌아볼 제 마침 그 집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446
그 사람은 다시 말할 것 없는 조주사였다. 형근의 얼굴에는 갑자기 질투의 뜨거운 피가 올라오더니 두 눈에서 번개 같은 불이 솟는 것 같았다.
447
만일 자기 손에 날카로운 칼이 있다 하면 당장에 조주사를 죽여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죽어 버릴 것 같았다.
448
그는 그날 종일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는 부질없이 몸에 힘이 오르고 엉터리없는 결심과 용기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449
그는 내일은 내 모가지가 달아나더라도 이화를 만나 보리라 하였다.
450
그러나 만나 볼 도리는 없었다. 자기의 주제를 둘러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날 뿐이요, 주머니에는 가을에나 들어올 돈이 아직 한푼도 없다.
453
그러나 비행기를 탄 사람이 바깥을 보지 않고는 떴는지 안 떴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형근은 뜬 것 같기는 하나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454
혹간 냉정히 자기가 자기를 보려다가도 조주사가 생각날 적에는 그는 조주사와 이화는 볼지라도 자기는 볼 수가 없었다.
455
그는 돈을 얻을 도리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위 위에서 물을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456
빈궁은 죄악을 만든다는 말이 진리가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형근은 무슨 분수 이외의 도리가 있다 하면 해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되었다.
457
그는 동향 친구를 또 생각하였다. 동향 친구는 그 동안 근근이 저축한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쇠사슬로 얽어 놓은 가죽지갑 속에 있는 것을 일전에 무엇을 찾느라고 꺼내는 것을 보았다.
459
‘그렇지만 염치가 어떻게 돈까지 꾸어 달라노?’
461
‘돈은 또 무엇에 쓰느냐고 하면 대답할 말도 없지.’
463
‘그렇지만 내 말이면 제가 돈 몇 환쯤 안 취해 주지는 못하렷다.’
464
이렇게 혼자 궁리는 하나 맘뿐이요 몸으로는 할 것 같지는 않다.
465
그는 또 당장에 단념을 하여 버리는 것이 옳은 듯이,
466
‘에 고만두어라, 내 마음이 비뚤어 가기 시작을 하는 것이야.’
467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빙빙 돌아다녔다. 그날 저녁 동향 친구는 형근을 찾았다.
469
하고 형근에게 달려들 듯하였다. 형근은 너무 의외의 일이라 가슴이 공연히 설렁 내려앉더니 두근두근하며 손끝이 떨린다.
471
“글쎄 이리 오게. 떠들면 여러 사람 와 덤비네.”
472
“모레는 김화(金化)로 가세. 내가 오늘 거기 십장에게 자네 일까지 부탁을 하여 놓았으니까 염려 없네. 금전도 퍽 후하고 일도 그리 되지 않은 것이야.”
473
형근은 좋은 소식은 좋은 소식이나 또는 마음 한 귀퉁이가 서운하다.
478
“무얼, 얼마 된다고. 한나절이면 갈걸.”
479
두 사람은 모레 같이 떠나기로 약조를 하였다. 형근은 감사스러운 중에도 무정스러운 감정으로 공연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허둥지둥 엉덩이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저녁을 먹었다.
480
저녁을 먹은 뒤에 그는 움 앞에 다시 앉았었다. 이화는 다시 한번 보지도 못하는구나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꼭 한 번 오라고 하였으니 의리상으로라도 한 번은 가보아야 할 터인데―---하다가 그대로 생각나는 것은 동향 친구 주머니 속에 있는 지전조각이었다.
481
‘내가 입으로 말을 할 수야 있나? 죽어도 그것은 할 수가 없지.’
482
말을 하는 입내만 내어 보아도 쭈뼛쭈뼛하여지는 것 같다.
483
‘인제야 일할 구녕이 생겼으니까 나중에 갚는 것도 걱정이 없어졌으니까.’
484
으쓱한 생각에 마음이 느긋하여졌다. 이화를 찾아가는 것도 그다지 부끄러울 것 없을 것 같았다.
485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려면 권도라는 것도 있는 법이지마는 나 같아서야 어디 살아갈 수가 있어야지…….’
486
해가 넘어가고 날이 어둑어둑하여지니까 공연히 마음이 처량하여지면서 쓸쓸하다. 오늘 저녁이 아니면 내일 저녁밖에 없는데 하며 담배를 붙여 물고 한바퀴 휘돌아왔다.
487
와서 보니까 본시 술을 많이 먹지 못하는 동향 친구가 어디선지 술이 잔뜩 취하여 저쪽에다가 거적을 깔고 외따로이 누워 있다.
489
하고 곁으로 가보니까 그는 세상을 모르고 잔다.
490
그의 가슴은 웬일인지 무슨 예감을 받은 사람처럼 떨리더니 그의머릿속에 번개같이 일어나는 충동이 있다. 마치 어여쁜 여자가 외로이 누운 그 곁에 선 젊은 남자가 받는 충동이나 마찬가지로 주머니에 돈을 지닌 사람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의식을 잃어버리고 누운 것을 본 형근은, 더구나 돈에 대하여 목전에 절실한 필요를 느끼는 그는 무서운 죄악의 충동을 느끼었다.
491
그러나 그는 그 찰나에 자기가 의식지 못하던 죄악의 충동을 일으킨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를 깨물며 주먹을 쥐고 울 듯이 고개를 내젓고 마음속 깊이깊이 뜨거운 후회로 자기를 깨달았다.
492
그는 그러한 마음을 한때라도 다정한 친구에게 일으킨 것이 그에게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미안하였다.
494
“여보게, 이슬 맞으면 해로우이, 들어가세.”
497
하며 다시 얼굴을 하늘로 두고 뒤쳐 드러누우며 그는 풀무같이 숨을 쉬면서 드르렁드르렁 코청이 떨어지듯이 숨을 쉬었다.
499
형근은 그래도 다시 가까이 가서 몸을 추스르려 할 때 그 동향 친구의 지갑이 어디 들어 있는지 그것부터 먼저 보지 아니치 못하였다.
500
그는 동향 친구를 일으켜 겨드랑이를 부축하였다. 동향 친구는 세상을 몰랐었다. 그러나 눈을 한 번 떠서 형근을 보더니 안심하는 듯이 다시 까부라졌다.
501
형근의 손은 그 동향 친구의 지갑에 닿았다. 그는 맥이 풀려서 지갑을 꺼내기는 고사하고 친구까지 땅에 떨어뜨릴 뻔하였다.
502
그는 다시 팔에 힘을 주어 움 속까지 그를 끌고 들어갔다. 바깥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이 꼴을 보며 저희들끼리 떠들었으나 거들어 주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움 속에 들어오더니 아무도 없으므로 별로이 보는 이가 없었다.
503
형근은 그 컴컴한 움 속에서 그 친구를 든 채 얼마간 섰었다. 내려놓지도 않고 눕히지도 않고 그는 무서운 시련의 기로에서 방황하였다.
504
그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며 친구를 눕히는 서슬에 지갑을 뺐다. 그의 손은 이상한 쾌감과 함께 손아귀가 뿌듯한 것을 깨달았다.
505
그는 친구를 뉘고 달음박질해 나왔다. 그는 사람 적은 곳에 가서 그것을 열지도 못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다시 시원한 가운데에서도 무서움을 품고 그것을 펴지도 못하고 열지도 못하다가 다시 저쪽으로 갔다.
506
그는 그대로 그것을 손에 움켜쥔 채 공연히 망설이다가 이화 집을 향하여 갔다.
507
그는 가는 길 으슥한 곳에서 그것을 펴보았다. 그는 그것을 펴보다가 마치 무슨 기운에 눌리는 사람같이 가슴이 설렁하여지며 눈이 등잔만하여지더니 뒤로 물러서,
509
하였다. 그의 손에는 시퍼런 십 원짜리 석 장이 묻어 나왔다.
511
그는 그대로 서서 오도가도 못 하였다.
512
자기가 요구하던 것은 그것의 몇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보기만 해도 무서울 만큼 많은 돈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에 도로 갖다 줄 수도 없고 또 그대로 있을 수도 없다. 그는 한참이나 떨리는 손을 진정치 못하다가 그대로 눌러 생각해 버렸다. 술 깨기 전에 갖다가 주지, 그리고 쓴 것은 말을 하면 되겠지.
513
그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이화 집 문간에 왔다.
514
그는 전번에 왔을 적이나 별로이 틀림없는 수줍음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515
그는 술을 청했다. 술을 청하는 것보다도 이화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래채 조용한 방에서 분명히 이화의 목소리로 소리를 하는 모양인데 나오지를 않고 다른 여자가 나와 맞았다.
516
방은 전에 그 방이다. 발을 늘여서 안에 있는 것이 바깥에서 보인다.
517
그는 기대가 틀어진 것에 낙심을 하고 어떻든 술을 청하였다.
518
그새 여자가 들고 들어오며 형근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524
“술도 급하지만 나는 이화를 좀 보러 왔소.”
528
“저는 인물이 못생겼죠? 언젯적부터 이화와 가까우시던가요?”
529
형근은 자기는 좀 점잖이 말을 하는데 그 계집이 실없이 하니까 속으로 화는 나지만 위엄을 보일 수가 없다.
530
“이화가 어디 갔소? 잠깐 보자는 이가 있다고 하구려.”
531
그 계집은 문을 열고 나가더니 온 집안이 다 들리게,
532
“이화 언니! 이화 언니! 당신 나지미(단골 손님) 왔소. 어서 나오.”
534
이화는 무슨 영문을 모르는 듯이 어떤 손님과 자별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서,
535
“무어야? 얘가 왜 이래, 실성을 했나?”
536
하고 형근의 앉아 있는 방을 올려다보고는,
538
싱겁게 혼자말을 하고 다시 돌아앉으니까 함께 한방에 있던 젊은 사람(면서기 같은)이 마주 기웃하고 내다보더니,
541
“온 이주사도, 아무렇기로 내가…….”
543
“글쎄, 꼭 봐야 하겠다니 좀 가봐요.”
545
“나를 그렇게 봐서 무엇을 한다더냐?”
546
하고 이주사라는 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 그의 눈앞을 졸이는 모양이다.
547
“가봐 주지. 그것도 적선인데. 내 앞이 되어서 몹시 어려워하는 모양이로군. 그럴 것 무엇 있나?”
548
“온 말씀을 해두 왜 그렇게 하시우. 누구는 끈에 맨 돌멩입디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지내지, 몇십 년 사는 인생이라구.”
551
이러는 동안에 형근은 아무도 없는 빈방에 혼자 앉아 술상만 대하고 있으려니까 싱거웁고 갑갑하고 역심이 나서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다. 그뿐이면 고만이게 이화라는 년은 다른 놈하고 앉아서 자기 방을 넘성 쳐다보는 것이 마치 창살 속에 넣어 놓은 청국 사람의 원숭이같이 대접을 하는 것 같아서 속으로 분하고 아니꼬운 증이 나며,
552
‘천생 타고난 기질을 어떻게 하니? 창기는 판에 박은 창기년이다.’
553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데, 자기 방 계집이 쭈르르 다녀오더니,
556
“과일 잡숫고 싶지 않으세요. 과일 좀 들여 오죠. 이화도 오거든 같이 먹게요.”
557
하더니 제멋대로 이것저것 들여다 놓고 먹어 댄다.
558
아무리 기다려도 이화는 오지 아니한다. 여전히 아랫방에서 그자와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형근은 혼자서 술을 먹을 수가 없어서 그 계집과 서로 대작을 하였다. 그 계집은 어수룩하고 아직 경험 없는 것을 알아채고 어떻게 해서든지 형근의 주머니를 알겨 낼 생각이다. 주제를 보아서 아직 극단의 수단을 내어놓지 않는다.
559
한 시간이 지나갔다. 형근은 다시 그 계집에게 이화를 불러 달라고 청을 하였다. 그 계집은 술잔이나 들어가더니 형근의 말을 안 듣고 요리 핑계 조리 핑계 한다. 형근도 술잔이나 들어가니까 객기가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564
윗방에서 왁자하는 것이 자기 때문인 것을 알아챈 이화는 문을 열고 나왔다.
566
면서기는 어느덧 술이 곤죽이 되어 드러누웠다가 이화의 치마를 잡았다.
569
이화는 팩한 성미에 흉허물없는 것만 믿고 치마를 뿌리쳤다.
570
“안 되기는 왜 안 돼요, 잠깐 다녀온다는데. 누가 삼십육계를 하나?”
571
면서기는 노했다. 그대로 일어섰다. 이화는 형근의 방으로 안 들어가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572
술취한 면서기는 다짜고짜로 형근의 방 발을 집어던졌다.
573
“이놈아! 이런 건방진 자식이 술잔이나 먹으려거든 국으로 먹으러 다녀. 너 이화는 봐서 무엇 할 모양이냐? 상판 생긴 것하고 그래도 무엇을 달았다고 계집 맛은 알아서. 놈 계집 궁둥이 따라다닐 만하다.”
575
“이놈아, 왜 눈깔을 오랑케 뜨고 보니?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니, 에 튀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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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이화 어디 갔니? 응, 이화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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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통이다. 온 집안 사람이며 술 먹으러 온 사람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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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는 이 소리를 듣더니 뛰어나오며 면서기를 달래고 형근에게 연해 눈짓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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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주사 나리, 이게 무슨 짓요. 약주 취했소. 어서 저 방으로 가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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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 미안합니다. 점잖으신 이가 약주가 취해서 그러신 것을 서로 참으시지. 그렇죠? 어서 약주나 자시지요.”
583
면서기는 그래도 여전히 형근을 보고 놀려 댄다.
584
“이놈아, 네가 이놈 노동자가 감히 누구 앞에서 그 따위 짓을 해? 흥.”
585
형근의 인습 관념에 젖어 있는 젊은 피는 끓었다. 그는 결코 자기가 노동자는 아니다. 양반의 자식이요 행세하는 사람이다. 몸은 비록 흙 속에 파묻혔으나 마음과 기운은 살았다.
587
형근에게는 그 외에 더 큰 모욕이 없었다. 그는 면서기를 향하여 기운에 타는 두 눈을 부릅떴다.
588
“그래 이놈아, 네가 노동자가 아니고 무엇야?”
589
“글쎄, 그만들 두세요. 제발 저 방으로 가시우.”
590
하며 이화는 가운데 들어섰다. 형근은 이화를 뿌리쳤다.
593
하는 소리가 입으로 나오지는 아니하였으나 그의 온 전신을 귀퉁이 귀퉁이 속속들이 울리는 것 같았다.
594
형근은 이화를 뿌리치던 손으로 이주사라는 자의 따귀를 보기 좋게 붙이니까 그대로 땅에 나가 뒹굴었다.
596
하더니 면서기는 윗옷을 벗고 덤비었다.
598
하고 주먹을 들고 덤비려고 사릴 제 옆엣방에서도 툭 튀어 나오고 대문에서도 쑥 들어서는 사람들의 눈은 횃불같이 타면서 형근을 훑어보더니 다시 이주사를 보고,
599
“다치지나 않았소? 대관절 어찌 된 일요? 말을 좀 하시구려.”
600
옆에 섰던 이화도 말을 아니 하고 그 계집도 말이 없다.
602
하며 형근을 보더니 그 중에 구척같이 키가 크고 수염이 더부룩한 자가 들어서더니,
603
“여보 이 친구, 젊은 친구가 술잔이나 먹었으면 곱게 삭일 일이지 누구에게다 손찌검하고…… 흥, 맛 좀 보련.”
604
하더니 넉가래 같은 손이 보기 좋게 따귀를 붙이는데 눈에서 불이 나며 입에서는 에구구 소리가 저절로 난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볼따구니만 쥐고 있다.
605
그러려니까 연신 번갈아 가며 주먹과 발길이 들어오는데 정신이 아뜩아뜩하고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는 에구구 소리만 지르면서,
608
“이놈아, 잔말 말어. 너도 세상 맛을 좀 알아야 하겠다.”
609
하고 한 개 더 붙인다. 옷은 갈가리 찢어지고 얼굴에서는 피가 흐른다.
610
이화는 후닥닥거리는 서슬에 마루 끝에 서서,
611
“여보, 박서방, 가서 순사를 불러 오. 야단났소. 그저 그만두시라니까 그러는구려.”
612
할 때 형근은 순사라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제 그는 꿈에서 깬 것같이 정신이 났다.
614
하고 얻어맞는 중에서도 온 기운을 다 내었다. 초자연의 기운은 그를 거기서 뛰어 여러 사람을 헤치고 문 밖으로 뛰어나갈 수 있게 하였다.
615
그는 눈 딱 감고 뛰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문간에 나가자 그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형근은 그것도 못 보았다. 들어오던 사람은 형근을 보더니 재빠르게 뒤를 따랐다.
616
형근의 다리는 마치 언덕비탈을 몰려 내려가다 다리의 풀이 빠진 사람처럼 곤두박질을 할 듯하였다.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집이나 사람이나 전깃불이 별똥 떨어지듯이 휙휙 지나갈 뿐이다.
619
달아나며 이 소리를 귓결에 들은 그는,
621
‘그러면 나를 쫓아오는 것이 아닌 게지.’
622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기가 지금 어째 도망을 하는지 그 본능은 있었을지언정 의식은 없었던 모양이다.
627
그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그 자리에 기진해 자빠져서 기운을 잃었다.
628
경관과 형사는 그놈을 뒤져 동향 친구에게 지갑을 보이고,
629
“당신이 찾던 것이 이것이오? 꼭 틀림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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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어. 물건을 찾으면 그만이지. 맞느냐 말야.”
637
“그런 줄 알았더면 경찰서에도 알리지 않는걸.”
639
“여보게 형근이, 정신 차려. 일어나서 말이나 좀 하게. 속시원하게. 도무지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641
형근은 아직까지도 깨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있다.
643
형근은 그날로 경찰서 구류간에서 잤다. 어려운 취조가 끝난 뒤에 형근은 검사국으로 넘어갔다. 그 이튿날 신문에는 아래와 같은 신문 기사가 났다.
644
○○○출생으로 철원군 ○○○리에서 노동을 하는 지형근(池亨根) (○○) 지난 ○월 ○일 자기 동향 친구의 주머니에 있는 삼십 원을 그 친구가 술이 취하여 자는 틈을 타서 절취하여다가 ○○리 이화라는 술집에서 호유하다가 철원 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취조를 마치고 검사국으로 압송하였다더라.
645
ig;조선문단(朝鮮文壇)》, 1926.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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