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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세전 (萬歲前) ◈

◇ 만세전 6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924년 8월
염상섭
1
기차가 김천역에 도착하니까, 지금쯤은 으레 서울집에 있으려니 하였던 형님이 금테모자에다 망토를 두르고 마중을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 아는 사람이나 있을까 하고 유리창 바깥을 내다보며 앉았던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서 창을 올리고 인사를 하려니까, 형님은 웃으며 창 밑으로 가까이 오더니 어떻든 내리라고 재촉을 한다. 어찌할까 하고 잠깐 망설이다가 형님이 그 동안에 내려와서 있는 것을 보든지 웃는 낯을 보든지 병인이 그리 급하지는 않은 모양이기에, 나는 허둥지둥 짐을 수습하여 가방을 창 밖으로 내주고 내려왔다. 뒤미처서 양복쟁이 하나도 창황히 따라 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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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짐을 들려 가지고 가려고 심부름꾼 아이까지 데리고 나왔었다. 출구 앞에 섰던 아이놈에게 가방을 내주고 우리들이 나가려니까, 그 밑에 바짝 다가섰던 헌병보조원이 내 뒤로 내린 양복쟁이와 수군수군하다가 형님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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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씨가 오셨어요? 오늘 저녁에 떠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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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묻는다. 형님은 웃는 낯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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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개 밤차로 올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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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거진 기계적으로 오른손이 모자의 챙에 올라가 붙었다. 부자연하고 서투른 그 모양이 나에게는 우습게 보이면서도 가엾었다. 어떻든 형님 덕에 나는 별로 승강이를 아니 당하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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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망토 밑으로 들여다보이는 도금을 물린 검정 환도 끝이 다리에 터덜거리며 부딪는 것을 왼손으로 꼭 붙들고 땅이 꺼질 듯이 살금살금 걸어 나오다가, 천천히 그 동안 경과를 이야기하여 들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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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돈 부치던 날 아침은 아주 시각을 다투는 것 같았으나 낮부터 조금씩 돌리기 시작하여 그저께 내가 내려올 때에는 위험한 고비는 넘어선 모양이지만, 지금도 마음이야 놓겠니. 워낙이 두석 달을 끌었으니까. 그러나 곧 떠나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나는 어제쯤 올 줄 알고 이틀이나 정거장에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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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형님은 차근차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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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 받던 날 밤에 떠났죠마는 오다가 신호에서 하룻밤을 묵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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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꾸며 댈까 하다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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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급한 볼일이 있기에 돈을 들여 가며 노중에서 묵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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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형님의 말소리는 차차 거칠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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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볼일은 없지만, 몸도 아프고 완행이 되어서 여간 지리하여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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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그대로 내친 길에 올 게지. 너는 그저 그게 병통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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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형님은 잠깐 눈살을 찌푸리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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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님이라는 사람은 한학으로 다져 만든 촌생원님이나 신학문에도 그리 어둡지는 않을 뿐 아니라, 우리집에는 없으면 안 될 사람이다. 부친이 합방 전후에 거진 정치열, 명예광에 달떠서 경향으로 동분서주하며 넉넉지 않은 가산을 흐지부지 축을 내어 놓은 분수로 보아서는 지금쯤 내가 유학을 하기는 고사하고 밥을 굶은 지가 벌써 오랜 일이었겠지마는, 얼마 아니 남은 것을 이 형님이 붙들고 앉아서 바자위게 꾸려 나가기 때문에 이만치라도 부지를 하게 된 것이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보통학교 훈도쯤으로 이천여 원 돈이나 모은 것을 보면 규모가 얼마나 짜인 사람인가를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존경하면서도 성미가 맞을 수는 없었다. 생각하면 우리 삼부자같이 극단으로 다른 길을 제각기 걸어 나가는 사람들은 없다. 세상에는 정치밖에 없다는 부친의 피를 받았으면서 보수적, 전형적 형님과 무이상(無理想)한 감상적, 유탕적 기분이 농후한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 세상도 고르지 못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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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학교의 시험은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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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한참 있다가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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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두고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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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무슨 소리가 나올까 보아서 우물쭈물할까 하다가 역시 이실직고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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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더면 전보를 다시 놓을 걸 그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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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시험을 중도에 폐하고 온 것을 매우 애석해하는 모양이나, 나는 전보를 다시 아니 놓아 준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잠자코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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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추후 시험이라도 봐야 하겠구나? 언제도 추후 시험인가 본다고 일찍이 나와서 돈만 들이고 성적도 좋지 못한 적이 있었지 않었니? 어떻든 문학이니 뭐니 하구 공연히 그까짓 건 하구 난대야 지금 세상에 얻다가 써먹는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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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리는 일년에 한 번이나 두어 번 귀국할 때마다 꼭 두 번씩은 듣는다. 형님한테 한 번, 아버님한테 한 번이다. 그러나 어떠한 때에는 아버님에게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열심으로 반대도 하여 보았다. 교육이라는 것은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요 기계를 제조하는 것이 아니니까, 학문을 당장에 월급푼에 써먹자고 하는 것도 아니요, ‘똥테’(나는 어느 때든지 금테를 똥테라고 불렀다) 바람에 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도 하여 드리고, 개성은 소중한 것이니까 제각기 개성에 따라서 교육을 하여야 한다는 문제를 들추어 가지고 늘 변명을 하여 왔다. 그러나 결국은 단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세계와 자기의 세계에는 통로가 전연히 두절된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마치 무덤 속과 무덤 밖이 판연히 다른 딴세상임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부자나 형제로서 할 말 이외에는, 그리고 학비 이야기 이외에는 아무 말도 입을 벌리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다. 모친이나 자기 처나 누이동생에게 하듯이만 하면 집안에 큰소리가 없을 줄 알았다. 되지 않은 이론이니 설명이니 사상발표니 하기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충돌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까 자기의 주위가 어쩐지 적막하여진 것 같고, 가정이란 것은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재워 주는 여관 같았다. 여관 중에도 제일 마음에 맞지 않는 여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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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일년 만에 만나는 첫대바기에 형님에게 또 새판으로 그러한 소리를 들으니까 불쾌하지 않을 수 없는 동시에 작년 여름에 나왔을 때에 학교 문제로 삼부자가 한참 논쟁을 하다가 ‘집구석이라고 돌아오면 이렇게들 사람을 귀찮게 굴 테면 여관으로라도 나간다’ 하고 이틀 사흘씩 친구의 집으로 공연히 떠돌아다니던 생각을 하여 보면서 잠자코 말았다. 어쩐지 마음이 쓸쓸하여지고 섭섭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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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참 동안 잠자코 걷다가, 형님 집으로 들어가는 동구까지 와서 전에 보지 못하던 일본 사람의 상점이 길가로 하나 생기고 골목 안으로 들어서서도 두 집 문에 일본 사람의 문패가 붙은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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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에 꽤 변하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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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형님을 쳐다보니까, 형님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이 태연무심히 고개만 끄덕끄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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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장을 선 형님을 따라 들어가며 작년보다도 한층더 퇴락한 대문을 쳐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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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 쓰러지게 되었는데 문간이나 좀 고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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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혼자말처럼 한마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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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살라구! 여기두 좀 있으면 일본 사람 거리가 될 테니까 이대로 붙들고 있다가 내년쯤 상당한 값에 팔아 버리랸다. 이래봬도 지금 시세루 여기가 제일 비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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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칠팔 년 전에 살 때와 비교하여서 거진 두세 곱이나 시세가 올랐다고 매우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 부산에서 본 광경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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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다른 물가는 따라서 오르지 않었나요. 전쟁 이후에 어떤 것은 삼배 사배나 올랐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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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꾸를 하며 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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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와, 작은아버지 오신다고 깡총깡총 뛰는 일곱 살짜리 딸년이 안방에서 나와서 맞았다. 작년에 보던 것과는 다른 상스럽지 않은 노파도 하나 있었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귀찮은 맞절을 형수와 하고 나서 조카딸의 절도 받았다. 동경에서 가져온 과자를 절값으로 내놓으니 계집애년은 겅중겅중 뛴다. 인사가 끝난 뒤에 형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 눈치로 벙벙히 앉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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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넌방에서두 나와 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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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형수를 쳐다본다. 형수는 아무 말 아니 하고 섰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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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너 가서, 건넌방 어머니 오라구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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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딸을 시키었다. 나는 어리둥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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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넌방 어머니가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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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형수를 쳐다보았으나 머리에는 즉각적으로 어느 생각이 떠올랐다. 형수는 애를 써서 헛웃음을 입가에 띄며 잠자코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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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는 이야기를 한다면서도 우환두 있구 해서 자연 이때껏 알리지를 못하였다만, 작은형수가 하나 생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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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형님이 웃는다. 단 형제가 사는 집안에 작은형수라는 말도 우습지만, 나는 대개 짐작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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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수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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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되물으니까, 윗목에 섰던 형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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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에 난 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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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풀없는 웃음을 일부러 보인다. 형수는 그 동안에 완연히 늙은 것 같았다. 눈가가 유난히 퍼래지고 이마와 눈귀에 주름이 현연히 보이었다. 형수의 말을 받아서 형님이 무어라고 입을 벌리려 할 제, 건넌방 형수가 들어오는 바람에 답쳐 버렸다. 분홍 저고리에 왜반물치마를 입고 분을 하얗게 바른 시골 새악시가, 아까 눈에 띄던 늙은 부인이 열어 주는 방문으로 살짝 들어왔다. 고작해야 열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조촐한 색시다. 이맛전이 넓고 코가 펑퍼짐한 듯하고, 이 집에서 상성이 난 아들깨나 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보아서 그러한지 뻣뻣한 치마가 앞으로 떠들썩한 것이 벌써 무에 든 것 같고, 얼굴에는 윤광이 돌아 보인다. 큰형수와 느런히 세워 놓고 보면 고식(姑息)이라 하는 것이 알맞을 것 같다. 나는 형님의 소원대로 상우례를 하였다. 두 사람의 맞절이 끝나니까 형수는 앞장을 서서 휙 나가 버렸다. 새 형수도 뒤미처 나갔다. 큰형수는 마루에 앉아서 짐을 지고 들어온 아이더러 무엇을 사오라고 분별을 하고, 새 형수와 마누라는 뜰로 내려가서 나를 위하여 점심을 차리는 모양이다. 머리도 안 빗은 조그만 늙은 아씨가 마루 끝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이 창에 붙은 유리 밖으로 마주 내어다보일 제, 시들어 가는 강국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왔다. 어쩐지 가엾어 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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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세 식구가 구순하게 사는 것이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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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벙벙히 앉았으려니까, 형님은 무슨 말을 꺼낼 듯 꺼낼 듯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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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지금 일년 만에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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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딴소리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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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방학에는 안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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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 너도 혹 짐작할지 모르겠다만, 청주 읍내에서 살던 최참봉이라면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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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형님은 목소리를 한층더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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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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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이 지금 말이 아니 되었지. 웬만큼 가졌던 것은 노름을 해서 없앴겠니마는, 최씨가 작고하기 전에 벌써 다 까불려 버렸지. 지금 데려온 저것이 그이의 둘째딸이란다. 어렸을 젠 너두 보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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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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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나는 무심코 웃었다. 최참봉이라면 내가 어렸을 때에는 우리집하고 격장에서 살던, 청주 일군은 고사하고 충청도 원판에서도 몇째 안 가는 재산가이었다. 술 잘 먹기로도 유명하고 외입깨나 하였지마는 보짱 크기로도 유명하였다. 작은형수라는 사람은 내가 소학교에 들어갈 때에 지금 마루에서 뛰어다니는 형님의 딸년만하였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여 보니까, 부엌에서 음식을 차리고 있는 노부인이 낯이 익은 법하기도 하고 일편 반갑기도 하여서 혼자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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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 마님이 최참봉의 부인이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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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어 보았다. 형님은 반색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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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참 너는 그 집에 늘 드나들며 놀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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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쩐지 가슴이 선뜩하면서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최참봉 마누라라는 이는 딸 형제밖에는 낳아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내가 어려서 놀러 가면, ‘내 아들 왔니!’ 하기도 하고, ‘내 사위 왔구나!’ 하기도 하며 퍽 귀여워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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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아, 금순아! 넌 어디루 시집가련? 저 경만이(내 아명) 집으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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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지금의 저 형수는 똥그란 눈으로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어떤 때에는 ‘응!’ 하기도 하고, 나는 시집 안 간다고 짜증을 내어 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지금 학교에 다니는 내 누이동생과는 한 살이 위든가 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두 살이 아래일 것이다. 나는 우리 남매하고 돌아다니던 십사오 년 전의 어렴풋한 기억을 머릿속에 그려 보면서 제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깨달았다. 어렸을 적 일이니까 당자도 잊어버렸을 것이요, 누이도 모르겠지마는, 저 마누라는 나를 알아볼 것이요, 실없는 소리라도 사위니 아들이니 하는 말을 하였던 것을 생각하여 본다면 마주 대면하기가 피차에 어떠할까 하고 지금부터 내가 도리어 얼굴이 간지러운 것 같다. 아무튼지 이상한 연분이다. 물론 그때만 해도 반상(班常)의 별을 몹시 차리던 시절이니까 두 집의 부모끼리는 왕래가 별로 없었고, 더구나 저편에서는 나를 데리고 실없는 소리를 하였을 뿐이지 감히 내 딸을 누구의 몫으로 데려가시오라고는 못 하였었다. 하지만, 지금 형님의 장모요 그때의 금순 어머니는 혹시 정말 나를 사위로 삼았으면 하는 공상이 있었던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기어코 우리집으로 들여보내고야 만 그 어머니의 심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형님은 잠깐 동을 떼어서 다시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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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집이 서울로 이사한 뒤에는 최참봉이 실패하고 울화에 떠서 연전에 죽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참혹하게 된 줄은 몰랐었더니, 올 여름에 산소〔墓地〕일절로 해서 청주에 들어갔다가 최씨의 큰사위를 만나니까, 장모하고 처제가 자기 집에 들어와서 사는데, 저 역시 실패를 하고 지금은 자동차깨나 부리지마는, 그것도 근자에는 세월이 없어 지탱을 해갈 수가 없는 터이요, 혼기가 넘은 처제를 처치할 가망조차 없다면서, 어떻게 한밑천을 대어 주었으면 좋을 듯이 말을 비추기에, 집에 올라가서 무슨 말 끝에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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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봉 큰사위라면 그때 우리 살 때에 혼인한 김현묵이 말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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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 보던 조그만 초립둥이를 머리에 그려 보며 듣다가 형님 말의 새치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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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그래! 그때는 열두어 살밖에 안 되었지만, 지금은 퍽 건강해지기두 하고 위인이 착실해서 조치원에서는 상당한 신용이 있지. 그래 아버지께서두 얼마간 밑천을 대어 주는 것도 좋겠지마는, 그보다도 그 처제애를 데려오는 것이 어떠냐고 하시기에 들을 때뿐이요 흐지부지하였었지. 그런데, 그 후에 아버지께서 내려오셨던 길에 김현묵이를 만나 보시고, 우리 집안이 절손이 될 지경이니 우리집으로 데려오고 싶은즉, 저편 의향을 들어 보라고 별안간 일을 버르집어 놓으시니까, 현묵이야 어떻든 인연을 맺어 놓기로만 위주니라 물론 찬성이요, 그 집안에서들도 유처취처라는 것을 매우 꺼리는 모양이나 우리 집안 내력도 알고, 그보다도 자기네 형편이 매우 급하니까 결국은 승낙을 한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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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장황히 변명삼아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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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큰아주머니만 불평이 없으시다면 잘 되었습니다그려. 어머니께서도 좋게 생각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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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태여 잘잘못을 말할 일도 아니기에 좋도록 대꾸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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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는 원래 큰형수를 미흡하게 여기시니까 말씀할 것도 없지만, 어머니께서는 처음에는 반대를 하시다가, 역시 손주새끼를 보겠다고 첩을 얻어 들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시고, 당자도 인제는 자식이라고는 나볼 가망도 없구 하니까 아무려나 하라기에, 되어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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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자코 듣기만 하였다. 그러나 아들자식이란 그렇게도 낳고 싶은 것인지 나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무후(無後)한 것이 조상에 대한 죄라거나 부모에게 불효가 된다는 말부터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낳은 자식은 죽일 수 없으니까 남과 같이 길러 놓기는 하여야 하겠지마는, 그렇게 성화를 하면서 부친까지 나서서 서두르고 애를 쓸 것이 무엇인지? 사람이란 의외의 호사객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이 먹으면 생각이 달라질지는 모르지마는, 아들자식을 낳아서 공을 들여 길러 논다기로 그것이 어떻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요행 장수하여서 자기보다 앞서지 않을 지경이면 삿갓가마나 타고 상여 뒤에 따르리라는 것만은 분명히 예기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 다음 일이야 누가 알 일인가. 위인이 착실할 지경이면 부모가 남겨 주고 간 땅뙈기나 파서 먹다가 뒤따라 땅 속으로 굴러 들어가 버릴 것이요, 그렇지도 못하면 그나마 다 까불리고 제 몸뚱어리 하나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거기에 매달린 처자의 운명까지 잡쳐 놓을지도 모른다. 기껏 잘났대야 저 혼자 속을 썩이다가 발자취도 없이 스러질 것이며, 자칫하면 제 목숨까지가 성이 가시다고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할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종족을 연장하려는 것이 생물의 본능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족의 보전이나 연장이라는 의식으로 사람은 결혼을 원하는 것인가. 그보다도 한층 더한 충동이 더 굳세게 사람의 마음속에서 움직이지는 않는 것일까. 자식이 주줄이 있어도 첩 얻지 않던가? 그는 고사하고 절손이 무섭고 자기가 돌아간 뒤에 술 한잔이라도 부어 놓을 맏손주를 생전에 보겠다고 애를 부득부득 쓰는 부친이 가엾고, 의외로 완고인 데에 놀랐다. 사람의 관념이란 무서운 것이라고 새삼스럽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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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집에 있는 것이나 데려다가 기르셨더면 좋았죠. 에미두 죽게 되구, 저는 있는 게 도리어 귀찮을 지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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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형님의 눈치를 보았다. 나는 자기 소생을 형님에게 떼어맡겼으면 짐이 덜리어서 시원스럽겠다는 말이나, 듣는 사람에게는 양자라도 할 수 있는데 왜 유처취처까지 해서 남 못 할 일을 하였느냐고 나무라는 것같이 들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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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두 그렇지마는 너두 앞일을 생각하면 그럴 수야 있니. 그뿐 아니라 저편 처지가 말못되었으니까, 사람 하나 구하는 셈치고 어떻든 데려온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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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형님은 변명을 하였다. 나는 그 이상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람 하나 구한다는 말이 귀에 거슬리기에, 밖에서 듣지 않도록 일본말로 반대의 의사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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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형님 잘못 생각이세요. 설혹 결혼을 하여서 한 사람이 구하여졌다 하더라도 형님은 그것을 자기의 공으로 아실 것도 못 되거니와, 처음부터 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결혼을 하셨다는 것은 형님이 자기를 과대평가하신 것이죠. 또 사실상 그러한 것은 둘째, 셋째로 나오는 문제이겠지요. 누구든지 저 사람을 행복스럽게 할 사람은 이 넓은 세상에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좋은 일 같지마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불완전한 ‘사람’로서는 너무 지나친 자긍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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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잠자코 앉았는 것을 보고 나는 또다시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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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의 행복을 비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요, 그 사람의 생활을 지배하고 운명의 진로까지를 간섭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구(救)한다는 것은 이기적 충동을 떠나서 자기를 다소간 희생하게 될 것인데, 형님은 아들 낳겠다는 욕심으로 한 결혼이 아닙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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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 하여도 좋을 말을 오금을 박듯이 입바른 소리를 하고 말았다. 형님은 잠자코 듣고 앉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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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다는 사실이 이 세상에 없다 하면 너부터 굶어죽을라? 그는 고사하고 여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기어들어가면 너두 쫓아가서 붙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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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형님은 웃으면서도 덜 좋은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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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구제가 아니라 의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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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하지 않으면 너부터 굶어죽으리라는 말에 불끈해서 한마디 한 뒤에 다시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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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라 하면 당연히 할 일, 또는 하지 않아서는 안 될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자식을 나서 교육을 시키든지,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붙들어 낸다는 것을 자선적 행위라고야 할 수 없겠지요. 그는 그만두고 지금 자살하려는 사람을 붙들어 냈다 하기로 그 행위가 자선도 아니요,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도 아니죠. 다시 말하면 목숨이라든지 산다는 데에, 공통한 처지에서 자기는 사는 것을 긍정하기 때문에 생(生)을 부정하는 자를 자기의 의견에 동화시키려고 하는 행위가 즉 자살을 방지하는 노력이외다그려. 하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중심으로 하고 하는 일이 아닌가요? 하여간 소위 구제니 자선이니 하는 것을 향기 있고 아름다운 말이나 행위로 알지만, 실상은 사회가 병들었다는 반증밖에 아니 되고, 그 어느 구석에든지 이기적 충동이 있다고 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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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나 반항적 태도로 자기 의견을 한마디 꺼내 놓고야 마는 이맘때의 나로는 형님이 어떻게 듣거나 말거나 한바탕 주워섬기고 말았다. 형님은 내 이론이 되고 안 된 것을 별양 탄하고도 싶지 않고, 그저 못마땅하나 먼 데서 온 아우를 불쾌케 아니 하려는 듯이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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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같이 극단으로 나가면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겠니? 그래도 상호부조의 정신두 있어야 하고 인생의 이상이니 목적이라는 것은 없어 안 될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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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온화한 낯빛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까 문학은 배운대야 써먹을 데가 없다고 눈살을 찌푸리던 때보다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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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이상이란 것은 나는 생각해 본 일도 없습니다마는, 구태여 말하자면 자기를 위하여 산다 할까요. 하지만 결코 천박한 이기주의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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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대답을 하니까 형님은 나를 잠깐 쳐다보는 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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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야말로 이기주의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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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핀잔을 주고 싶은 것을 참아 버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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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히 차려 들여온 점심을 형제가 겸상을 하여 먹은 뒤에 나는 아랫목에 잠깐 누웠었다. 어쩐둥 잠이 들어 한잠 늘어지게 자고 나서 눈을 떠보니까, 흐린 날이 저물어 들어가는지 방 안이 한층 더 우중충하여졌다. 아까 식후에 학교에 다시 갔다가 온다던 형님은 벌써 돌아와서 건넌방에 들어가 앉았는 모양이다. 내가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는 소리를 듣고 형님은 안방으로 건너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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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올지 모르는데 술이나 한잔 먹고 떠나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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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밖에다 대고 술상을 차리라고 일렀다. 형님이 나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여간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학교에서 오다가 자기는 먹을 줄도 모르는 일본 청주를 사들고 온 것이라 한다. 나는 이것이 혼인상 대신인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여 보며 속으로 웃었다. 형님도 대작을 하기 위하여 억지로 몇 잔 한다.
99
“그런데 이번에 올러가거든 좀 집에 붙어앉아서 약 쓰는 것두 다잡아 살펴보구, 모든 것을 네가 거두어 줄 도리를 차려라.”
100
형님은 두 잔째 마시고 나서 이런 소리를 들려 주었다. 나는 잠자코 말았다. 사실 내가 약 쓰는 묘리를 알 까닭이 없는 일이다. 형님은 또 화두를 돌렸다.
101
“나두 며칠 있다가 형편 되는 대루 곧 올러가겠지만, 아버님께 산소사건은 아직도 사오 일은 더 있어야 낙착이 날 듯하다고 여쭈어라. 역시 공동묘지의 규정대로 하는 수밖에 없을 모양이야.”
102
나의 귀에는 좀 이상하게 들리었다. 내 처가 죽을 것은 기정의 사실이라 치더라도 죽기도 전에 들어갈 구멍부터 염려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들을 낳지 못하여서 성화가 난 것보다도 구성없는 짓이요 일없는 사람의 헛공사라고 생각 않을 수 없다.
103
“죽으면 묻을 데가 없을까 봐서 그러세요. 공동묘지는 고사하고 화장을 하든 수장을 하든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요? 아버지께서는 공연히 그런 걱정을 하시지만, 이 살기 어렵고 바쁜 세상에 그런 걱정까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지요.”
104
나는 이렇게 핀잔을 주듯이 역시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였다.
105
“공연히가 무에 공연히란 말이냐?”
106
형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꾸짖고 나서 말을 이었다.
107
“너두 지각이 났으면 생각을 해보렴. 총독부에서 공동묘지 제도를 설정한 것은 잘 되었든 못 되었든 하는 수 없이 쫓어간다 하더라도,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의 선산이 남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게다가 앞길이 멀지 않으신 늙은 부모가 계신데, 불행한 일이 있는 날에는 어떻게 한단 말이냐? 그래 아버님 어머님을 공동묘지에다가 모신단 말이 될 말이냐? 자식 된 도리는 그만두고라도 남이 부끄러워서 어떡한단 말이냐. 계수만 하더라도 만일에 불행한 경우를 당하면 어떻든 작은산소 아래다가 써야지 여기저기 뿔뿔이 흐트러져 있으면 그게 무슨 꼬락서니란 말이냐?”
108
형님은 매우 화가 난 모양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리 다급히 들리는 문제는 아니었다.
109
“그래 어떡하신단 말씀예요?”
110
다만 산판이나 묘위전(墓位田)이 남의 손에 들어갔다는 데에는 나도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111
“어떻든지 간에 충북 도장관과는 아버님께서도 안면이 계시고 나도 아주 모르는 터는 아니니까, 아버님 대만이라도 작은산소에 모시도록 지금부터 허가를 맡아 두고 계수도 사람의 일을 모르니까 이번에 아주 자리를 잡아 놓아 두자는 말이야. 그런데 그보다도 더 시급한 것은 큰산소하고 가운데 산소의 제절 앞의 산판을 물러 가지고 식목이라도 다시 하자는 것인데, 뭐 아주 말이 아니야, 분상이 벌거벗은 셈이요…….”
112
분상이 벌거벗었다는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113
“그 문제가 이때껏 낙착이 안 났어요?”
114
하며 나는 또 한 잔 들었다.
115
“낙착이 다 무어냐. 뼛골은 뼛골대로 빠지고 일은 점점 안 돼가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지금 붙들어다가 징역을 시킨달 수도 없고…….”
116
하며 형님은 눈살을 찌푸린다.
117
산소 문제라는 것은 셋쨋집 종형이 문서를 위조해서 팔아먹은 것이다. 우리집이 종가는 아니나 실권은 여기서 잡고 있는, 말하자면 우리 문중 소유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몇 평이나 되는지 노름에 몰려서 두 군데의 분상만 남겨 놓고 상당히 굵은 송림째 얼러서 불과 백여 원에 팔아먹은 모양이나, 워낙 헐가로 산 것이기 때문에 당자가 좀처럼 물러 주지 않는 터이라 한다. 제절 앞에 거름을 하고 논을 풀든 밭을 갈든 그는 고사하고 이해관계로라도 물러야 할 것은 물론이다.
118
“어떻든 무를 수는 있겠죠?”
119
공동묘지에 성화가 나서 하는 것은 코웃음치는 나도 조상의 산소를 팔아먹은 데에는 분개하고 있는 터이다.
120
“글쎄, 셋째아버지께서만 증인으로 스셨으면 아무 말 없이 본전에 찾겠지마는, 번연히 자기가 관계를 하시고 내용까지 자세히 아시면서 모른다고만 하시니까 무사히 될 일두 이렇게 말썽만 되지 않겠니?”
121
“그럼 셋째아버지도 공모를 하셨던가요?”
122
“그러게 망령이 나셨단 말이지. 그나 그뿐이라던! 자식을 잘못 둬서 그랬기루서니 어찌하란 말이냐고 되레 야단만 치시니 기막히지 않니?”
123
“그럼 당자를 붙들어 내면 될 게 아녜요?”
124
“당자야 벌써 어디룬지 들구 튀었다 하더라만, 아마 요새는 들어와 있나 보더라. 일전에두 갔더니 셋째아버지가 앞장을 서서 우는 소리를 하시며 자식 하나 없는 셈 칠 테니 그놈을 붙들어다가 징역을 시키든 목을 돌려 놓든 마음대로 하고, 인제는 그 문제로 우리집에는 와야 쓸데가 없다고 하시는 것을 보면, 어디 갔다는 말은 공연한 소리요, 모두 부동이 되어서 귀찮게만 굴자는 수작 같애서 실없이 화가 나지만…….”
125
셋째삼촌이라는 이는 집의 아버지와 이복인데다가, 분재한 것을 몇 부자가 다 까불려 버린 뒤로는 한층더 말썽이 많아졌다. 언젠지 나더러도,
126
“네 형두 딱하지, 그예 징역을 시키고 나면 무에 시원할 게 있니? 돈푼 더 주고 무르면 고만 아니냐? 고까짓 것쯤 더 쓰기로 얼마나 더 잘살겠니?”
127
하며 갉죽갉죽 꼬집는 소리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머릿속까지 지끈지끈한 나는,
128
“내야 뭘 압니까. 그런 이야기는 형더러 하시죠.”
129
하며 피해 버렸었다. 원체 나는 적서(嫡庶)의 차별 관념이란 꿈에도 없건마는 머릿살 아픈 일이다.
130
“아무쪼록 구순하게 하시구려.”
131
하고 나는 말을 끊어 버렸다. 그러나 형님으로서 생각하면 단 형제뿐인데 내가 집안일에 탐탁히 의논 한마디라도 거들지 않는 것이 불만인 모양이다.
132
실쭉한 저녁을 조금 뜨고 나서, 캄캄히 어둔 뒤에 다시 짐을 지워 가지고 형님과 같이 정거장으로 나왔다. 드문드문 전등불이 반짝이는 큰길가에는 인적도 벌써 드물어 가고, 모진 바람이 쌀쌀히 부는 대로 가다가다 눈발이 차근차근하게 얼굴에 끼치었다.
133
“오늘 밤에는 꽤 쌓이겠다!”
134
형님은 이런 소리를 하며 앞서간다. 정거장 안에 들어서니까, 순사보 한 사람이 형님하고 인사를 하며 나를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았으나, 별로 조사를 하자고는 아니 한다. 지워 가지고 온 짐을 받아 가지고 형님과 아는 일본 사람 사무원이 들어오라고 권하는 대로 우리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난로 앞에 불을 쬐고 섰었다. 이삼 사무원이 우리를 돌아다보며 앉은 채 묵례를 한다. 우리들더러 들어오라고 한 사무원은,
135
“매우 춥지요? 동기방학에 나오시는군요.”
136
하며 나의 옆에 와서 말을 붙이며 불을 쬔다. 이러한 경우에 일본 사람이 조선 사람보다 친절한 때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순사나 헌병이라도 조선인보다는 일본인 편이 나은 때가 많다. 일본 순사는 눈을 부르대고 그만둘 일도, 조선 순사는 짓궂이 뺨을 갈기고 으르렁대고서야 마는 것이 보통이다. 계모시하에서 자라난 자식과 같은 몹쓸 심보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만나면 피차에 동정심이 날 때도 있지마는, 자기 자신의 처지에 스스로 불만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가 심하면 심할수록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더 밉고 보기 싫어서 그런가 보다. 혹시는 제 분풀이를 여기다가 하는 것일 것이다. 조선 사람에게 대한 조선인 관헌의 태도가 그러한 심리에서 나오는 것인지? 혹은 일본 사람은 뒤로 물러서고 시키니까 그러는지? 하여간 조선인 순사나 헌병 보조원이 더 미우면서도 불쌍도 하다.
137
사무원은 내가 일본서 왔다는 데에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자꾸 건다. 한참 주거니받거니 하며 섰으려니까, 외투에 모자우비까지 푹 뒤집어쓴 젊은 조선 사람 역부가 똥그란 유리등을 들고 창황히 들어오며 일본말로,
138
“불이 암만해도 안 켜져요.”
139
하고 울상이다. 역부의 외투에 쌓였던 하얀 눈이 훈훈한 방 안 온기에 금시로 녹아서 조그만 이슬이 반짝거리며 뚝뚝 듣는다.
140
“빠가! 안 켜지면 어떡한단 말이야. 시간은 다 되었는데.”
141
이때까지 웃는 낯으로 나하고 이야기를 하고 섰던 사무원이 눈을 부르대며 소리를 지르고 나서 저쪽 구석으로 향하더니,
142
“이서방, 오소오소, 같이 가서 켜고 와요!”
143
하며 조선말로 이서방에게 명한다. 나는 사무원의 살기가 등등한 뚱뚱한 얼굴을 바라보고 외면을 하였다. 두 역부는 다른 등에 또 불을 켜들고 허둥허둥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는 것을 보고 사무원은 픽 웃으며,
144
“허는 수 없어!”
145
하며 무책임한 이 꼴을 좀 보라는 듯이 혀를 차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따라서 웃어 보였으나, 머리로는 눈보라가 치는 속에서 신호등으로 기어올라가서 허둥거리는 두 역부의 검은 그림자를 그려 보며 익숙지 않은 일에 가엾은 생각도 난다. 조금 있으려니까 땡땡 하는 소리가 몇 번 난 뒤에 역부들이 들어왔다. 불은 켜지고 차는 조금 있다가 들어왔다. 눈이 푹푹 내리는 속을 나는 형님과 헤어져서 차에 올랐다.
146
석유불을 드문드문 켠 써늘한 기차 속은 몹시 우중충하고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외투를 벗어서 눈을 털었으나 몸은 구중중하고, 컴컴한 석유불을 볼수록 조선은 이런 덴가 싶어 새삼스레 을씨년스럽다. 하여간 난로 앞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보니 찻간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끄레발에 갈모를 우그려 쓴 촌사람 오륙 인하고 양복쟁이 서너 사람이 난로 가까이 앉고, 저편으로 떨어져서 대구에서 탔는 듯싶은 기생 같은 젊은 여자가 양색 왜증인지 보라인지 검붉은 두루마기를 입고 이리로 향하여 앉은 것이 그중에 반가워 보였다. 나는 심심파적으로 잡지를 꺼내 들었으나 불이 컴컴하여 몇 장 보다가 덮어 버렸다.
147
저편으로 중앙에 기생에게 등을 두고 앉은 사십 남짓한 신사를 바라보다가 나는 무심코 우리집에 다니는 김의관 생각이 났다. 기생하고 동행인지 혼자 가는지는 모르나 수달피 댄 훌륭한 외투를 입고 금테안경을 쓰고 버티고 앉았는 것이 돈푼 있어 보이기도 하나, 안경 너머로 이사람 저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작은 눈은 교활하여 보였다.
148
기차가 추풍령에 와서 닿으니까, 일본 사람의 사냥꾼 한 떼가 개를 두 마리나 데리고 우중우중 들어와서 기다란 총을 여기저기다가 세우고 탄환 박힌 혁대를 끌러 논 뒤에 난로 앞으로 모여든다. 객차에 산 짐승은 아니 태우는 법인데 이 행차는 특대우인 모양이다. 하여간 개가 싫어서 나는 자리를 피하여 저편으로 가서 앉았다. 촌사람들도 비실비실 피하여서 이리저리 흩어졌다.
149
“아, 영감! 이거 웬일이쇼?”
150
누구인지 이렇게 소리를 버럭 지르는 바람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방한모를 우그려 쓴 얼금얼금한 사냥꾼 하나가 손가락 사이에는 반쯤 타다가 남은 여송연에 불을 붙이며 난로를 등을 지고 섰는 자의 말소리다. 헌 양복에 각반을 치고 일본 버선에 조선 짚신을 신은 꼴이 손에 든 여송연과는 어울리지 않으나, 동행하는 일본 사람이 난로 앞에 설 자리를 사양하는 것을 보면 일행 중에서는 지위가 높은 모양이다.
151
“그러나, 영감은 웬일이슈?”
152
수달피털을 붙인 외투를 입고 앉았던 금테안경이 앉은 채 인사를 하며 묻는다. 이 자도 그만큼 버틸 힘이 있기에 이러한 ‘똥테’ 두 동달이쯤은 되는 영감을 앉아서 인사하는 것일 거라.
153
“군청에서들 산에 가자기에 나섰더니 인제야 눈이 오시는구려.”
154
하며 얼금뱅이가 웃었다.
155
“이 바쁜 세상에 사냥은 너무 호강이신걸, 허허허. 공무 태만으로 감봉이나 되면 어쩌려우?”
156
김의관 같은 안경잡이가 한층 내려다보는 수작을 한다.
157
“영감같이 돈이나 벌려면은 세상도 바쁘지만 시골 구석에 엎뎠으니까 만사태평이외다. 한데 지금 어딜 다녀오슈?”
158
“대구에를 갔다 오는데, 이때까지 장관에게 붙들려서…….”
159
“에? 그래 그건 어떡하셨소?”
160
“그거라니?”
161
안경잡이는 딴청을 붙이는 말눈치다.
162
“아, 저 토지사건 말씀요.”
163
얼금뱅이는 주기가 도는 뻘건 얼굴이 한층더 붉어지는 듯하며 여전히 난로를 등지고 서서 묻는다.
164
“그러지 않아도 그 일절로 내려온 것인데, 계약은 성립이 되었지만 내 일이 낭패가 돼서…… 연이틀을 붙들고 놓아 주어야지. 매일 기생에 아주 멀미를 대었소. 술 잘 먹고 놀기 좋아하고 참 노당익장(老當益壯)야…….”
165
경북 도장관이라면 일본 사람이거니와, 도장관을 칭송을 하는 것인지 긴하게 보인 자랑이 더 긴해서 떠드는 것인지 알 수 없다.
166
“에! 에!”
167
하며 얼금뱅이는 감탄하는 듯 부러운 듯하게 대꾸를 하다가,
168
“그래 지금 인천으로 가시는 길인가요?”
169
하며 또 묻는다. 금테안경은 또 한번 눈살을 잠깐 찌푸리는 듯하더니 다시 얼굴빛을 고치며,
170
“내야 원래 관계 있소. 저 사람이 죄다 하니까. 한데, 영감하고 이야기하던 것은 아주 틀리는 모양이오? 어떻게 과히 무엇 하지도 않겠고, 영감 체면도 상하지 않게 할 터이니 잘 해보시구려.”
171
하며 한층 소리를 낮춰서 다정한 듯이 웃어 보인다.
172
“글쎄 나중에 기별하지요마는 어떻든 반승낙은 받았으니까 그쯤만 알아 두시구려.”
173
얼금뱅이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좌우를 한번 휙 돌아보았다. 이야기는 뚝 끊기고 얼금뱅이는 그 옆에 빈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의 수작은 어쩐지 암호를 써가며 하는 수수께끼 같으나 누가 듣든지 반짐작은 할 것이다. 첫눈에 벌써 김의관 같은 위인이라고 대중을 댄 것이 틀림없었던 것이 한편으로 유쾌도 하지마는 불하운동(拂下運動)을 다니는 놈을 도장관이 한박 먹였다는 것은 이 자의 허풍이기도 하겠지마는 사실이면 까닭수가 있는 것이리라.
174
김의관이라면, 나는 진고개 헌병사령부에 쫓아가 보던 생각을 어느 때든지 잊지 않고 있다. 우리집이 아직 시골에 있을 때에 나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와서 김의관의 집에서 중학교에 통학을 하였었다. 첩의 집에만 들어박혔던 김의관이 그때는 돈에 꿀려서 본집에 와서 있었던지, 나 있는 방과 마주 보이는 건넌방에 있었다. 그게 그해 팔월 스무날께쯤 되었었는지 빗방울이 뚝뚝 듣는 초가을날 오후이었다. 학교에서 막 돌아와서 문간에 들어서려니까 김의관 마누라가 울상을 하고 뛰어나와서 책보를 받으면서,
175
“경식이 아버지가 지금 뉘게 붙들려 가셨는데 이리 나간 모양이니 좀 쫓아가 봐주게.”
176
하며 그렇게 못마땅해하던 영감이건마는 허겁지겁이었다. 나도 깜짝 놀라서 가리키는 편으로 골목을 빠져서 달음박질을 하여 가노라니까, 양복쟁이 두 사람에게 옹위가 되어 가는 모시두루마기를 입은 김의관의 뒷모양이 눈에 띄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하나 사오 간통이나 떨어져서 살금살금 쫓아갔었다.
177
김의관이 붙들려 가는 것을 쫓아가 본 일이 이번째 두 번이다. 몇 달 전에 내가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아니 되어서다. 그때가 아마 첩과 헤어지자고 싸우고 본집으로 기어든 지 며칠 안 되던 때인 듯싶다. 어느 날 순검이 와서 위생비든가 청결비든가를 내라고 독촉을 하니까,
178
“없는 것을 어떻게 내란 말요? 이 몸이라두 가져갈 테거든 가져가구려.”
179
하고 소리소리 질러 가며 순검에게 발악을 하다가 그예 순검이 가자고 끌어내니까 문지방에 발을 버티고 아니 나가려고 한층더 발악을 하며,
180
“이놈, 이놈, 사람 죽이네. 어구, 사람 죽이네…….”
181
하고 순검에게 멱살을 붙들린 김의관은 순검보다도 더 야단을 치다가 그예 붙들려 가고야 말 제, 나는 가는 곳을 알려고 뒤쫓아 나섰었다. 그때에 나는 김의관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었다. 나는 시골 구석에서 순검이라면 환도 차고 사람 치고 잡아가는 이 세상의 제일 무서운 사람으로 알고 자라났다. 그런데 김의관은 그 제일 무서운 사람더러 이놈 저놈 하며 할 말을 다 하고 하인 부리듯이,
182
“이놈! 거기 섰거라. 누가 잘못했나 해보자!”
183
하며 안으로 들어와서 문지방에서 벗겨진 정강이에다가 밀타승을 기름에 개어 바른다, 옷을 갈아입는다, 별별 거레를 다 하고 나서 의기양양하게 순검보다 앞장을 서서 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어린 마음에 유쾌도 할 뿐 아니라 제일 무서운 사람이 제일 못나 보이고, 제일 우습던 김의관이 제일 잘나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쫓아가서 교번소에 들어가더니 거기 앉았던 일본 순검더러 무어라 무어라 몇 마디 하고 웃으며 나오는 김의관을 볼 제, 나는 이 늙은이가 이렇게도 권리가 좋은가 하고 혼자 놀랐었다.
184
그러나 이번에 붙들려 가는 것을 보니, 아무 말도 없이 올가미를 씌운 개새끼처럼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두 양복쟁이에게 끌리어가더니, 병정이 좌우에서 파수를 보고 섰는 커다란 퍼런 문으로 들어가서 자취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가던 길을 휘더듬어 급히 돌아와서 집안 식구더러 이러저러한 데더라고 가르쳐 주었었다.
185
그날 저녁부터 경식이와 행랑 아범은 하루 세 끼 밥을 나르기에 골몰하였었다. 그러더니 한 보름쯤 지나니까 한일합병이 반포되고 뒤미처서 김의관은 해쓱한 얼굴로 별안간 풀려 나왔다. 그때의 김의관은 조금도 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 줄은 나도 짐작하였었다. 그런데 반 달쯤 갇혔다가 나온 김의관은 금시 발복이 되었는지 늙은이가 양복을 몇 벌씩 새로 장만을 하고, 헤지었던 첩을 다시 불러다가 큰마누라하고 한집에 살게 하며, 매일 나가서는 술이 취하여 들어오기도 하고, 나이가 아깝게 새 양복을 찢어 가지고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 그러한 지 한 달쯤 되더니, 시골에다가 집과 땅을 장만하였으니 내려가자 하고 처첩을 다 데리고 낙향을 하여 버렸다. 그때서야 제일 무서운 사람에게도 발악을 쓰던 김의관이, 두어 달 전에, 올가미 쓴 개새끼처럼 유순히 끌려가던 까닭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었다.
186
김의관은 내가 일본에 가기 전에는 자기 시골에서 학교를 세워 가지고 교장 노릇도 하고 장거리에 나와서는 정미소를 한다는 소문도 들었으나, 그 후에 나와서 들으니까 그것도 인천 가서 미두(米豆)에 다 까불리고 지금은 남의 집의 협포에 들어서 다른 첩과 산다고 한다. 지금 이 좋은 외투에 몸을 싸고 금테안경을 쓴 신사도 인천을 가느니 토지의 계약을 하였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이전에 붙들려 가보기도 하고 낙향도 하고 정미소도 하여 보다가 인천 미두에 다니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187
‘그러다가 호상차지나 하러 다니고……?’
188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하여 보고 혼자 속으로 웃으며 금테안경을 또 한번 돌려다보았다.
189
기차가 영동역에 도착하니까 사냥꾼의 일행은 내리고 승객의 한 떼가 몰려 올라왔다.
190
“눈이 이렇게 몹시 왔다가는 내일 어디 장이 서겠나? 오늘두 얼매 손인지 알 수가 없는데…….”
191
“공연히 우는 소리 말게, 누가 뺏어 가나? 허허허.”
192
하며 장꾼 같은 일행이 들어와서 자리들을 잡느라고 어수선하게 쿵쾅거리며 주거니받거니 제각기 떠들어 댄다.
193
정거장에 도착할 때마다 드나드는 순사와 헌병보조원이 차례차례로 한 번씩 휘돌아 나가자 기차는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94
내 앞에는 역시 갓에 갈모를 쓰고 우산에 수건을 매어 든 삼십 전후의 촌사람이 들어와서 앉았다. 곰방담뱃대에 엽초를 부스러뜨려서 힘껏 담고 나더니 두루마기 속에 손을 넣어서 이 주머니 저 주머니를 한참 뒤적거리다가, 내 옆에 성냥이 놓인 것을 보고,
195
“이것 잠깐만…….”
196
하며 내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갓쟁이로는 구격이 맞지 않게 손끝과 머리를 끄덕하며 빠르게 나의 눈치를 보는 것이, 분명히 내가 일본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미심쩍고 겁이 나는 눈치다. 나는 웃으며 성냥통을 집어 주었다.
197
담배를 붙이고 난 장꾼은 또 한번 고개를 끄덕하며 나에게 성냥갑을 도로 주고 나서, 인제는 안심하였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으며 나의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198
“우리 인사하십시다.”
199
하며 번잡스럽게 말을 붙인다.
200
나는 몹시 덜렁대는 위인이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하자는 대로 하였다.
201
인사를 한 뒤에 매캐하고 독한 연기를 훅훅 뿜으며,
202
“어디로 오시나요?”
203
하고 묻는다. 내가 사방모를 쓴 것을 보고 일본에서 오나 싶어 이야기가 하고 싶은 눈치다.
204
“김천서요.”
205
나는 마주 앉은 자의, 광대뼈가 내밀고 두꺼운 입술을 커다랗게 벌린 시커먼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을 하였다.
206
“고향이 거기신가요?”
207
“네에.”
208
“말소리가 다르신데요?”
209
부전부전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나는 웃어만 버렸다.
210
“어떤 학교에 다니시나요? 일본서 오시지 않으시는가요?”
211
무료한 듯이 잠자코 앉았다가 또다시 묻는다.
212
“어떻게 아슈?”
213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214
“아, 일본 갔다 오시는 분은 모두 그런 양복을 입으십디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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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궐자는 외투 위로 내다보이는 학생복 깃에 달린 금글자를 바라보고 웃었다. 일본 유학생이 더구나 합병 이후로는 신시대, 신지식의 선구인 듯이 쳐다보이는 때라, 이 촌청년도 부러운 눈으로 나를 자꾸 쳐다보며 이것저것 묻고 싶으나 무얼 물을지 몰라서 망설이는 모양 같다.
216
“당신은 무엇을 하슈?”
217
나는 대답 대신에 딴소리를 하였다.
218
“네에, 갓〔笠〕장사를 다니는 장돌뱅이입니다.”
219
그는 자비(自卑)하듯이 웃지도 않으며 자기 입으로 장돌뱅이라 한다.
220
“갓이오? 그래 요새두 갓이 잘 팔리나요?”
221
“그저 그렇지요. 촌에서들은 그래두 여전히 갓을 쓰니까요.”
222
나는 좀 의외로 생각하였다. 두 사람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나는 다시 물었다.
223
“그러나 당신부터 왜 머리는 안 깎으우? 세상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귀찮고 돈도 더 들지 않소?”
224
“웬걸요, 촌에서 머리를 깎으려면 더 폐롭고 실상 돈도 더 들죠. 게다가 머리를 깎으면 형장네들 모양으로 ‘내지어(內地語)’도 할 줄 알고 시체학문(時體學問)도 있어야지 않겠나요. 머리만 깎고 내지 사람을 만나도 말대답 하나 똑똑히 못 하면 관청에 가서든지 순사를 만나서든지 더 성이 가신 때가 많지요. 이렇게 망건을 쓰고 있으면 요보라고 해서 좀 잘못하는 게 있어도 웬만한 것은 용서를 해주니까 그것만 해도 깎을 필요가 없지 않아요.”
225
하며 껄껄 웃어 버린다.
226
“그두 그럴듯하지마는 같은 조선 사람끼리라도 머리만 깎고 양복을 입고 개화장(開化杖)을 휘두르고 하면 대접이 다른 것같이, 역시 머리라도 깎는 것이 저 사람들에게 천대를 덜 받지 않소. 언제까지든지 함부로 훌뿌리는 대로 꿉적꿉적하고 요보란 소리만 들으려우?”
227
나는 궐자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동정은 하면서도, 무어라고 하나 들어 보려고 이렇게 물었다.
228
“훌뿌리거나 요보라고 하거나 천대는 받을 때뿐이지마는, 머리나 깎고 모자를 쓰고 개화장이나 짚고 다녀 보슈. 가는 데마다 시달리고 조금만 하면 뺨따귀나 얻어맞고 유치장 구경을 한 달에 한두 번쯤은 할 테니! 당신네들은 내지어나 능통하시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놈이야 맞으면 맞았지 별수 있나요!”
229
천대를 받아도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다! 그도 그럴 것이다. 미친 체하고 떡목판에 엎드러진다는 셈으로 미친 체하고 어리광 비슷한 수작을 하거나, 스라소니 행세를 하거나 하여, 어떻든지 저편의 호감을 사고 저편을 웃기기만 하면 목전에 닥쳐오는 핍박은 면할 것이다. 속으로는 요놈 하면서라도 얼굴에만 웃는 빛을 띠면 당장의 급한 욕은 면할 것이다. 공포(恐怖), 경계(警戒), 미봉(彌縫), 가식(假飾), 굴복(屈服), 도회(韜晦), 비굴(卑屈)…… 이러한 모든 것에 숨어 사는 것이 조선 사람의 가장 유리한 생활방도요, 현명한 처세술이다. 실상 생각하면 우리의 이러한 생활철학은 오늘에 터득한 것이 아니요, 오랫동안 봉건적 성장과 관료전제 밑에서 더께가 앉고 굳어빠진 껍질이지마는, 그 껍질 속으로 점점더 파고들어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 생활이다.
230
“어떻든지 그저 내지인과 동등한 대우만 해주면 나중엔 어찌 되든지 살아갈 수 있겠죠.”
231
청년은 무엇에 쫓겨 가는 사람처럼 차 안을 휘휘 돌려다보고 나서 목소리를 한층 낮추어서 다시 말을 잇는다.
232
“가령 공동묘지만 하더라도 내지에도 그런 법률이 있다 하면 싫든 좋든 우리도 따라가는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우리의 유풍이 있지 않습니까? 대관절 내지에도 그런 법이 있나요?”
233
의외에 이 장돌뱅이도 공동묘지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아까 형님한테 한참 설법을 듣고 오는 길에 또 이러한 질문을 받고 보니, 언제 규정이 된 것이요 어떻게 시행하라는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고 싶지도 않고, 그까짓 것은 아무렇거나 상관이 없는 일이지마는, 아마 요사이 경향에서 모여 앉으면 꽤들 문젯거리, 화젯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나는 한번 껄껄 웃어 주고 싶었으나 그리할 수는 없었다.
234
“일본에도 공동묘지야 있다우.”
235
나 역시 누가 듣지나 않는가 하고 아까부터 수상쩍게 보이던 저편 뒤로 컴컴한 구석에 금테를 한 동 두른 모자를 쓴 채 외투를 뒤집어쓰고 누웠는 일본 사람과, 김천서 나하고 같이 오른 양복쟁이 편을 돌려다보았다. 나의 말이 조금이라도 총독정치를 비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무슨 오해가 생길지 그것이 나에게는 염려되는 것이었다.
236
“정말 내지에도 공동묘지가 있에요? 하지만 행세하는 사람야 좀 다르겠죠?”
237
“그야 좀 다르겠지마는, 어떻든지 일본에서는 주로 화장을 지내기 때문에 타고 남은…… 아마 목구멍뼈라든가를 갖다가 묻고 목패든지 비석을 세운다우. 그러지 않어도 살아 있는 사람도 터전이 좁아서 땅조각이 금조각 같은데, 죽는 사람마다 넓은 터전을 차지하다가는 이 세상에는 무덤만 남고 말지 않겠소, 허허허.”
238
나는 이러한 소리를 하면서도 묘지를 간략하게 하여 지면을 축소하고 남는 땅은 누구의 손으로 들어가고 마누 하는 생각을 하여 보았다.
239
“그리구서니 자기의 부모나 처자를 죽었다구 금세루 살라야 버릴 수가 있습니까? 더구나 대대로 내려오는 제 집 산소까지를.”
240
이 사람은 나의 말이 옳다는 모양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도 그래도 반대를 한다.
241
“화장을 지낸다기루 상관이 뭐겠소. 예전에 애급이라는 나라에서는 왕후 장상의 시체는 방부제를 쓰고 나무관에 넣은 시체를 다시 석관까지에 튼튼히 넣어서 피라미드라는 큰 굴 속에 묻어 두었지만, 지금 와서는 미이라밖에는 되지 않고 만 것을 보면 죽은 송장에게 능라주의(綾羅紬衣)를 입히고 백 평, 천 평 되는 땅에다가 아무리 굳게 파묻기로 그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동상을 세우면 무얼 하고 송덕비를 세우면 무엇에 쓴다는 말이오.”
242
내 앞에 앉았는 장꾼은 무슨 소리인지 귀에 자세히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243
“녜에, 그런 것이 있에요?”
244
하고 멀거니 앉았다.
245
“하여간 부모를 생사장제(生事葬祭)에 예(禮)로써 받들어야 할 거야 더 말할 것 없지마는, 예로 하라는 것은 결국에 공경하는 마음이나 정성을 말하는 것 아니겠소? 그러니 공동묘지 법이란 난 아직 내용도 모르지마는, 그것은 별문제로 치고라도, 그 근본정신은 생각지 않고 부모나 선조의 산소 치레를 해서 외화(外華)나 자랑하고 음덕(蔭德)이나 바란다는 것도 우스운 수작이란 것을 알아야 할 거 아니겠소. 지금 우리는 공동묘지 때문에 못살게 되었소? 염통 밑에 쉬스는 줄은 모른다구, 깝살릴 것 다 깝살리고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도 죽은 뒤에 파묻힐 곳부터 염려를 하고 앉았을 때인지? 너무도 얼빠진 늦둥이 수작이 아니오? 허허허.”
246
나는 형님에게 하고 싶던 말을 장돌뱅이로 돌아다니는 이 자를 붙들고 한참 푸념을 하였다.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어쩐지 열적었다. 그러나 내가 한참 떠드는 바람에 여러 사람의 시선은 이리로 모인 모양이다. 저편에 앉았는 기생아씨도 몸을 틀고 돌려다보며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이야기를 열심으로 듣는 모양이다.
247
“나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래 형장께서도 양친이 계시겠지요? 어떻게 하실 텐가요?”
248
갓장수는 내 말은 어찌 되었든지 불평이 있으니만치 시비조로 덤빈다.
249
“되어 가는 대로 합시다.”
250
하며 나는 웃고 입을 답쳤다.
251
“그래두 누구나 부모나 조상을 위하는 것은 똑같겠죠?”
252
나는 더 말해야 쓸데가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 말 아니 하려다가, 그래도 오해를 사면 안 되겠기에 또 대꾸를 하여 주었다.
253
“글쎄 공동묘지가 좋으니 부모를 그리 모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그보다도 더 절급한 문제가 하도 많다는 말 아니오? 그 절급한 문제는 내버려두고―---산 사람 문제는 내버려두고 왜 죽은 뒤의 문제부터 기가 나서 법석이냔 말요. 아버지, 어머니가 굶어 돌아가도 공동묘지에만 장사를 안 지내면 되겠소? 당신은 몇 대조까지나 선영(先塋)을 찾는지 모르겠지마는, 가령 십 대조 이상의 묘지를 못 찾는다면 그것은 공동묘지기 때문이란 말요…….”
254
하고 나는 화를 버럭 내다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255
“그러니까 공동묘지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 문제, 앞으로의 문제, 자식의 문제를 생각하여 놓고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오.”
256
하고 나는 농쳐 버렸다.
257
“나는 모르겠습니다.”
258
하며 갓장수는 픽 웃어 버린다. 나는 잠자코 말았으나 어쩐지 불유쾌하였다. 갓장수 따위를 데리고 그러한 논란을 한 것이 점잖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남이 들으면 웃을 것 같아서 혼자 부끄러웠다.
259
두 사람이 잠자코 앉았으려니까 차는 심천(深川) 정거장엔지 도착한 모양이다. 새로운 승객도 별로 없이 조용한 속에 순사가 두리번두리번하고 뚜벅 소리를 내며 들어와서 저편 찻간으로 지나간 뒤에 조금 있으려니까, 누런 양복바지를 옹구바지로 입고 작달막한 키에 구두 끝까지 철철 내려오는 기다란 환도를 끌면서 조선 사람의 헌병보조원이 또 들어왔다. 여러 사람의 눈은 또 긴장해지며 일시에 구랄 만한 누렁저고리를 입은 조그마한 사람에게로 모이었다. 이 사람은 조그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저편서부터 차츰차츰 한 사람씩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리로 온다. 누구를 찾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공연히 가슴이 선뜩하였으나, 이 찻간에는 나를 미행하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까 안심이 되었다. 찻간 속은 괴괴하고 현병보조원의 유착한 구둣소리만 뚜벅뚜벅 난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가슴은 컴컴한 남포의 심짓불이 떨리듯이 떨리었다. 한 사람, 두 사람 낱낱이 얼굴을 들여다보고 지나친 뒤의 사람은, 자기는 아니로구나, 살았구나! 하는 가벼운 안심이 가슴에 내려앉는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양이 얼굴에 완연히 나타났다. 헌병보조원의 발자취는 점점 내 앞으로 가까워 왔다. 나는 등을 지고 돌아앉았고, 내 앞의 갓장수는 담뱃대를 든 채 헌병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앉았다. 헌병보조원은 내 곁에 와서 우뚝 선다. 나는 가슴이 뜨끔하여 무심코 쳐다보았다. 그러나 헌병보조원은 나를 본체만체하고 내 앞에 앉았는 갓장수를 한참 내려다보고 섰더니 손에 들었던 종잇조각을 펴본다. 내 가슴에서는 목이 메게 꿀떡 삼키었던 토란만한 것이 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찻간은 고작 헌병보조원―---어린 조선 청년 하나의 한마디로 괴괴하여졌다.
260
“당신, 이름이 뭐요?”
261
헌병보조원은 갓장수더러 물었다.
262
“나요? 김××예요.”
263
하며 허둥지둥 일어선다.
264
“당신이 영동(永同)서 갓을 부쳤소?”
265
“녜, 녜.”
266
“그럼 잠깐 내립시다.”
267
찻간 속은 쥐죽은 듯한 공포에서 겨우 벗어났다. 여기저기서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난다.
268
나의 앞에 앉아서 이때까지 노닥거리던 말동무는 헌병보조원의 앞을 서서 허둥지둥 차에서 내렸다.
269
그러나 문 밖으로 나간 뒤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내 앞에는 수건으로 질끈 동인 헌 우산 한 개가 의자의 구석에 기대어 섰다. 나는 유리창을 올리고 캄캄한 밖을 내다보며 소리를 쳤으나 벌써 간 곳이 없었다. 난로에 석탄을 넣으러 들어온 역부에게 그 우산을 내주면서 물어 보니, 주는 우산은 받으면서도 이편 말은 못 알아들은 듯이,
270
“나니(무엇이야)? 나니?”
271
하며 여전히 못 알아들은 체하고 일본말로 묻는 데에는 어이가 없었다. 발길로 지르고 싶었다.
272
자정이나 넘은 뒤에 차는 대전에 와서 닿았다. 김의관 같은 금테안경 채비의 하이칼라 신사는 커다란 가죽가방에 담요를 비끄러매어서 옆에 놓았던 것을 앞에 앉았던 사람에게 들려 가지고 내려갔다. 그러나 기생은 내리지 않는다.
273
얼마나 정거하느냐고 소제하는 역부더러 물어 보니까, 삼십 분 동안이라고 멱따는 소리를 꽥 지르고 달아난다. 나는 하도 심심하기에 모자를 집어 쓰고 차에서 내려서 플랫폼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갔다. 그 동안에 눈이 서너 치나 쌓인 모양이다. 지금은 뜸하나 뼈에 저린 밤바람이 모가지를 자라목처럼 오그라뜨리었다. 맨 끝에 달린 찻간 앞까지 오니까 불을 환하게 켠 차장실 속에 얼굴이 해끄무레한 두 청년이 검정 방한모에 소매통이 좁은 옥색 두루마기를 입고, 누런 양복을 입은 헌병과 마주 서서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환히 보이었다. 얼굴 모습이 같은 것을 보면 두 청년은 형제 같고, 헌병 가슴에 권총을 단 줄이 늘어진 것을 보면 보조원이 아니요 이것이 분명하다. 나는 창 밑으로 가까이 가보니까 세 사람은 여전히 웃으며 무어라고 속살거린다. 그러나 그 청년들의 어설프게 웃는 낯빛과 입술이 경련적으로 위로 뒤틀린 것은 공포 그것 같았다.
274
‘스파이는 아니군!’
275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는 발길을 돌이켜 목책으로 막은 입구 앞으로 가서 내 손으로 열고 나갔다. 아무도 막지 않고 좌우편으로 눈발이 쳐들어 오는 휑뎅그레한 속으로 한가운데에 난로랍시고 놓고 그 가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섰다.
276
‘대합실도 없이 이런 벌판에 세워 둘 지경이면 어서 찻간으로 들여보낼 일이지!’
277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난로 옆을 흘끗 보려니까 결박을 지은 범인이 댓 사람이나 오르르 떨며 나무의자에 걸터앉고, 그 옆에는 순사가 셋이서 지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무심코 외면을 하였다. 그 중에는 머리를 파발을 하고 땟덩이가 된 치마저고리의 매무시까지 흘러내린 젊은 여편네도 역시 포승을 지어서 앉아 있다. 부끄럽지도 않은지 나를 부러워하는 듯한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인다. 자세히 보니 등뒤에는 쌕쌕 자는 아이가 매달렸다. 여자의 이런 꼴을 처음 보는 나는 가슴이 선뜩하며 멀거니 얼이 빠져 섰었다. 나는 흉악한 꿈을 꾸며 가위에 눌린 것 같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한참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쳤다.
278
정거장 문 밖으로 나서서 눈을 바삭바삭 밟으며 큰길 거리로 나가니까 칠 년 전에 일본으로 달아날 제, 오정때 대전에 내려서 점심을 사먹던 그 집이 어디인지 방면도 알 수 없이 시가가 변하였다. 길 맞은편으로 쭉 늘어선 것은 빈지를 들였으나 모두가 신축한 일본 사람 상점이다. 우동을 파는 구루마가 쩔렁쩔렁 흔드는 요령 소리만이 괴괴한 거리에 처량하다. 열네다섯쯤에 말도 모르고 단신 일본으로 공부 간다는 데에 호기심이 있었던지 친절히 대접을 해주던, 그때의 그 주막집 주인 내외가 그립다.
279
다시 돌쳐 들어오며 보니, 찻간에서 무슨 대수색을 하는지 승객들은 아직도 아니 들여보내고, 결박을 지은 여자는 업은 아이가 깨어서 보채니까 일어서서 서성거린다.
280
‘젖이나 먹이라고 좀 풀어 줄 일이지.’
281
하는 생각을 하니 곁에 시퍼렇게 얼어서 앉은 수사가 불쌍하다가도 밉살맞다. 목책 안으로 들어오며 건너다보니까 차장실 속에 있던 두 청년과 헌병도 여전히 이야기를 하고 섰다. 나는 까닭 없이 처량한 생각이 가슴에 복받쳐 오르면서 한편으로는 무시무시한 공기에 몸이 떨린다.
282
젊은 사람들의 얼굴까지 시든 배춧잎 같고 주눅이 들어서 멀거니 앉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빌붙는 듯한 천한 웃음이나 ‘헤에’ 하고 싱겁게 웃는 그 표정을 보면 가엾기도 하고, 분이 치밀어 올라와서 소리라도 버럭 질렀으면 시원할 것 같다.
283
‘이게 산다는 꼴인가? 모두 뒈져 버려라!’
284
찻간 안으로 들어오며 나는 혼자 속으로 외쳤다.
285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
286
나는 모자를 벗어서 앉았던 자리 위에 던지고 난로 앞으로 가서 몸을 녹이며 섰었다. 난로는 꽤 달았다. 뱀의 혀 같은 빨간 불길이 난로 문 틈으로 날름날름 내다보인다. 찻간 안의 공기는 담배연기와 석탄재의 먼지로 흐릿하면서도 쌀쌀하다. 우중충한 남폿불은 웅크리고 자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지키는 것 같으나 묵직하고도 고요한 압력으로 지그시 내리누르는 것 같다. 나는 한번 휘 돌려다보며,
287
‘공동묘지다! 공동묘지 속에서 살면서 죽어서 공동묘지에 갈까 봐 애가 말라하는 갸륵한 백성들이다!’
288
하고 혼자 코웃음을 쳤다.
289
‘공동묘지 속에서 사니까 죽어서나 시원스런 데 가서 파묻히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하여간에 구더기가 득시글득시글하는 무덤 속이다. 모두가 구더기다. 너도 구더기, 나도 구더기다. 그 속에서도 진화론적 모든 조건은 한 초 동안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겠지! 생존경쟁이 있고 자연도태가 있고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하고 으르렁댈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구더기의 낱낱이 해체가 되어서 원소가 되고 흙이 되어서 내 입으로 들어가고 네 코로 들어갔다가, 네나 내나 거꾸러지면 미구에 또 구더기가 되어서 원소가 되거나 흙이 될 것이다. 에잇! 뒈져라! 움도 싹도 없이 스러져 버려라! 망할 대로 망해 버려라! 사태가 나든지 망해 버리든지 양단간에 끝장이 나고 보면 그 중에서 혹은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나은 놈이 생길지도 모를 것이다.’
290
나는 차가 떠나기 전에 자기 자리로 와서 드러누웠다. 어느덧 난로 옆으로 등 너머에 와서 누운 기생의 머리에서 가끔가끔 끼쳐 오는 머릿내와 향긋한 기름내, 분내를 코로 은은히 맡아 가며 눈을 감고 누웠었다.
291
‘이것도 구더기 썩는 냄새이기는 일반이다!’
292
나는 이런 생각을 하여 보면서도 코를 막으려고는 아니 하였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잠이 소르르 왔다.
293
몇 번이나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편치 못한 잠을 잔 둥 만 둥하고 눈을 떠보니까 긴긴밤도 흐지부지 훤히 밝았다. 으스스하기에 난로 앞으로 가서 불을 쪼이며 옆사람더러 물어 보니 시흥(始興)에서 떠났다 한다.
294
인제는 서울도 다 왔구나!고 생각하니, 그래도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영등포를 지나서 한강 철교를 건널 때에는 대리석으로 은구를 놓은 듯한, 사람 그림자라고는 없는 빙판을 바라보고 무심코 기지개를 켜며 두 다리를 쭉 뻗었다. 용산역에까지 오니까 뒤의 기생이 일어나서 매무시를 만적거리고 곧 내릴 사람같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차가 떠나려고 호각을 부는 소리를 듣고서 그대로 앉아 버렸다. 서울이 처음 길이라 마음이 불안해서 무엇을 물어 보려고 그리하는지 수상하다. 내가 자기 자리로 와서 선반에서 짐을 내려놓고 내릴 채비를 차리는 동안에도 일거일동을 눈으로 좇으면서 무슨 말을 붙일 듯 붙일 듯하다가 입을 벌리지 못하고 마는 모양이다. 서울에 내려서 찾아갈 길을 묻자든지 무슨 까닭이 있는 것 같아서 이편에서 먼저 입을 벌리고 싶었으나, 대학 제복 제모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모른 척해 버렸다.
295
기차는 남대문에 도착하였다. 집에서 나온 큰집 종형님과 짐을 나누어 들고 나와서 인력거를 타다가 보니, 그 기생은 길 잃은 아이처럼 길체로 비켜 서서 우두커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걱정 아니 하여도 저 찾아갈 데로 찾아가겠지마는, 어떤 사정인지 이 추운 아침에 가엾어 보였다.
【 】만세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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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萬歲前)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2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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