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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독립의 서 (朝鮮獨立之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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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7. 10.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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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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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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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터럭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한계로 삼는 것으로서 약탈적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 자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평화의 정신은 평등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의 상대가 된다. 따라서, 위압적인 평화는 굴욕이 될 뿐이니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한다. 실로 자유와 평화는 전인류의 요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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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류의 지식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가 몽매한 데서부터 문명으로, 쟁탈에서부터 평화로 발전하고 있음을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범위는 개인적인 데로부터 가족, 가족적인 데로부터 부락, 부락적인 것으로부터 국가, 국가적인 것에서 세계, 다시 세계적인 것에서 우주주의로 진보하는 것인데 여기서 부락주의 이전은 몽매한 시대의 티끌에 불과하니 고개를 돌려 감회를 느끼는 외에 별로 논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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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불행인지 18세기 이후의 국가주의는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국주의가 대두되고 그 수단인 군국주의를 낳음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우승 열패·약육 강식의 이론이 만고 불변의 진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국가 간에, 또는 민족 간에 죽이고 약탈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이 세상에서 안 일어나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서양의 독일이요, 동양의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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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강대국, 즉 침략국은 군함과 총포만 많으면 스스로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도의를 무시하고 정의를 짓밟는 쟁탈을 행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할 때는 세계 또는 어떤 지역의 평화를 위한다거나 쟁탈의 목적물 즉 침략을 받는 자의 행복을 위한다거나 하는 기만적인 헛소리로써 정의의 천사국으로 자처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폭력으로 조선을 합병하고 2천만 민중을 노예로 취급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선을 병합함이 동양 평화를 위함이요, 조선 민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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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는 본래부터 약자가 아니요, 강자 또한 언제까지나 강자일 수 없는 것이다. 갑자기 천하의 운수가 바뀔 때에는 침략 전쟁의 뒤꿈치를 물고 복수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니 침략은 반드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평화를 위한 전쟁이 있겠으며, 또 어찌 자기 나라의 수천 년 역사가 외국의 침략에 의해 끊기고, 몇백, 몇천만의 민족이 외국인의 학대 하에 노예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 이를 행복으로 여길 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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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가 없는 민족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피를 가진 민족으로서 어찌 영구히 남의 노에가 됨을 달게 받겠으며 나아가 독립 자존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국주의, 즉 침략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가장 흉악한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이같은 군국주의가 무궁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론보다 사실이 그렇다. 칼이 어찌 만능이며 힘을 어떻게 승리라 하겠는가. 정의가 있고 도의가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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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만을 일삼는 극악 무도한 군국주의는 독일로써 그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귀신이 곡하고 하늘이 슬퍼한 구라파 전쟁은 대략 1천만의 사상자를 내고, 몇 억의 돈을 허비한 뒤 정의와 인도를 표방하는 기치 아래 강화 조약을 성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국주의의 종말은 실로 그 빛깔이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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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유린하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노심 초사 20년간에 수백만의 청년을 수백 마일의 싸움터에 배치하고 장갑차와 비행기와 군함을 몰아 좌충 우돌, 동쪽을 찌르고 서쪽을 쳐 싸움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파리를 함락한다고 스스로 외치던 카이제르의 호언은 한때 장엄함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것은 군국주의의 결별을 뜻하는 종곡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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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호언 장담뿐이 아니라 독일의 작전 게획도 실로 탁월하였다. 휴전 회담을 하던 날까지 연합국측의 군대는 독일 국경을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하였으니 비행기는 하늘에서, 잠수함은 바다에서, 대포는 육지에서 각각 그 위력을 발휘하여 싸움터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군국주의적 낙조의 반사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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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1억만 인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세계를 손아귀에 넣을 것을 다짐하면서 세게에 선전 포고했던 독일 황제. 그리하여 한때는 종횡 무진으로 백전 백승의 느낌마저 들게 했던 독일 황제가 하루 아침에 생명이나 하늘처럼 여기던 칼을 버리고 처량하게도 멀리 화란 한 구석에서 겨우 목숨만을 지탱하게 되었으니 이 무슨 돌변이냐. 이는 곧 카이제르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군국주의의 실패로서 통쾌함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그 개인을 위해서는 한가닥 동정을 아끼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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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합국측도 독일의 군국주의를 타파한다고 큰소리 쳤으나 그 수단과 방법은 역시 군국주의의 유물인 군함과 총포 등의 살인 도구였으니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친다는 점에서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일의 실패가 연합국의 전승을 말함이 아닌즉 많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합력하여 5년간의 지구전으로도 독일을 제압하지 못한 것은 이 또한 연합국측 준군국주의의 실패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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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연합국측의 대포가 강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의 칼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하여 전쟁이 끝나게 되었는가. 정의와 인도의 승리요, 군국주의의 실패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와 인도, 즉 평화의 신이 독일 국민과 손을 잡고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그것이 곧 전쟁 중에 일어난 독일의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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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혁명은 사회당의 손으로 이룩된 것인 만큼 그 유래가 오래고 또한 러시아 혁명의 자극을 받은 바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괄적으로 말하면, 전쟁의 쓰라림을 느끼고 군국주의의 잘못을 통감한 사람들이 전쟁을 스스로 파기하고 군국주의 칼을 분질러 그 자살을 도모함으로써 공화 혁명의 성공을 얻고 평화적인 새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연합국은 이 틈을 타 어부지리를 얻는 데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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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의 결과는 연합국뿐만 아니라 또한 독일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이번 전쟁에 독일이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면 그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설사 독일이 한때 승리를 거두었가 하더라도 반드시 연합국의 복수전쟁이 일어나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군대를 해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이 패전한 것이 아니고 승리했다고도 할 수 있는 때에 단연 굴연적인 휴전 조약을 승낙하고 강화에 응한 것은 기회를 보아 승리를 먼저 차지한 것으로서, 이번 강화 회담에서도 어느 정도의 굴욕적 조약에는 무조건 승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3월 1일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음). 따라서, 지금 보아서는 독일의 실패라 할 것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독일의 승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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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유사 이래 처음 있는 구라파 전쟁과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독일의 혁명은 19세기 이전의 군국주의, 침략주의의 전별회가 되는 동시에 20세기 이후의 정의·인도적 평화주의의 개막이 되는 것이다. 카이제르의 실패가 군국주의 국가의 머리에 철퇴를 가하고 윌슨의 강화 회담 기초 조건이 각 나라의 메마른 땅에 봄바람을 전해 주었다. 이리하여 침략자의 압박하에서 신음하던 민족은 하늘을 날 기상과 강물을 쪼갤 형세로 독립·자결을 위해 분투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독립 선언, 체코의독립, 아일랜드의 독립 선언, 조선의 독립 선언이 그것이다 (3월 1일까지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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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2. 조선 독립 선언의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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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후 자존성이 강한 조선인은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어느 한 가지 사실도 독립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동기로 말하면, 대략 세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2.1. (1)조선 민족의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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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조선의 민의를 무시하고 빙충맞은 주권자를 속여 몇몇 아부하는 무리와 더불어 합방이란 흉포한 짓을 강행하였다. 그 후로부터 조선 민족은 부끄러움을 안고 수치를 참는 동시에 분노를 터뜨리며 뜻을 길러 정신을 쇄신하고 기운을 함양하는 한편 어제의 잘못을 고쳐 새로운 길을 찾아 왔다. 그리하여 일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유학한 사람도 수만에 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독립 정부가있어 각 방면으로 원조 장려한다면 모든 문명이 유감 없이 나날이 진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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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모든 물질 문명이 완전히 구비된 후에라야 꼭 독립되는 것은 아니다. 독립할만한 자존의 기운과 정신적 준비만 있으면 충분한 것으로서 문명의 형식을 물질에서만 찾음은 칼을 들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으니 그 무엇이 어려운 일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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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항상 조선의 물질 문명이 부족한 것으로 말머리를 잡으나 조선인을 어리석게 하고 야비케 학정과 열등 교육을 폐지하지 않으면 문명의 실현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어찌 조선인의 소질이 부족한 때문이겠는가. 조선인은 당당한 독립국민의 역사와 전통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을 함께 나눌 만한 실력이 있는 것이다.
 
 

2.2. (2)세계 대세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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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두부터 전인류의 사상은 점점 새로운 빛을 띠기 시작하고 있다. 전쟁의 참화를 싫어하고 평화로운 행복을 바라고 각국이 군비를 제한하거나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국이 서로 연합하여 최고 재판소를 두고 절대적인 재판권을 주어 국제문제를 해결하며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그 밖에 세계 연방설과 세계 공화국설 등 실로 가지가지의 평화안을 제창하고 있으니 이는 모두 세계 연방설과 세계 공화국설 등 실로 가지가지의 평화안을 제창하고 있으니 이는 모두 세계 평화를 촉진하는 기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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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제국주의적 정치가의 눈으로 본다면, 이것은 일소에 붙일 일일 것이나 사실의 실현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최근 세계의 사상계에 통절한 실제적 교훈을 준 것이 구라파 전쟁과 러시아 혁명과 독일 혁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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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세에 대해서는 위에 말한 바가 있으므로 중복을 피하거니와 한 마디로 말하면, 현재로부터 미래의 대세는 침략주의의 멸망, 자존적 평화주의의 승리가 될 것이다.
 
 

2.3. (3)민족 자결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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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윌슨 씨는 독일과 강화하는 기초 조건, 즉 14개 조건을 제출하는 가운데 국제 연맹과 민족 자결을 제창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프랑스·일본과 기타 여러 나라가 내용적으로 이미 국제 연맹에 찬동하였으므로 그 본바탕, 즉 평화의 근본 문제인 민족 자결에 대해서도 물론 찬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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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각국이 찬동의 뜻을 표한 이상, 국제 연맹과 민족 자결은 윌슨 한 사람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라 세계의 공언이며, 희망의 조건이 아니라 기성의 조건이 되었다. 또한 연합국측에서 폴란드의 독립을 찬성하고, 체코의 독립을 위하여 거액의 군비와 적잖은 희생을 무릅써 가며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시베리아에 보내되 특히 미국과 일본이 크게 노력한 것은 민족 자결을 사실상 원조한 사례일 것이다. 이것이 모두 민족 자결주의 완성의 표상이니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3. 조선 독립 선언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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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라를 잃은 지 10년이 지나고 지금 독립을 선언한 민족이 독립 선언의 이유를 설명하게 되니 실로 침통함과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독립의 이유를 네 가지로 나누어 보겠다.
 
 

3.1. (1)민족 자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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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짐승은 날짐승과 어울리지 못하고 날짐승은 곤충과 함께 무리를 이루지 못한다. 같은 들짐승이라도 기린과 여우나 삵은 그 거처가 다르고 같은 날짐승 중에서도 기러기와 제비 * 참새는 그 뜻을 달리하며, 용과 뱀은 지렁이와 그 즐기는 바를 달리한다. 또한 같은 곤충 중에서도 벌과 개미는 자기 무리가 아니면 서로 배척하여 한곳에 동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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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감정이 있는 동물의 자존성에서 나온 행동으로 반드시 이해 득실을 따져 남의 침입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리가 자기 무리에 대하여 이익을 준다 해도 역시 배척하는 것이다. 이것은 배타성이 주체가 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은 무리는 저희끼리 사랑하여 자존을 누리는 까닭에 자존의 배후에는 자연히 배타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배타라 함은 자존의 범위 안에 드는 남의 간섭을 방어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존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배척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존의 범위를 넘어 남을 배척하는 것은 배척이 아니라 침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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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도 마찬가지여서 민족 간에는 자존성이 있다. 유색 인종과 무색 인종 간에 자존성이 있고 같은 종족 중에서도 각 민족의 자존성이 있어 서로 동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은 한 나라를 형성하였으나 민족적 경쟁은 실로 격렬하지 않았는가. 최근의 사실만 보더라도 청나라의 멸망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치적 혁명 때문인 것 같으나 실은 한민족과 만주족의 쟁탈에 연유한 것이다. 또한 티베트족이나 몽고족도 각각 자존을 꿈꾸며 기회만 있으면 궐기하려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아일랜드나 인도에 대한 영국의 동화 정책, 폴란드에 대한 러시아의 동화 정책, 그리고 수많은 영토에 대한 각국의 동화 정책은 어느 하나도 수포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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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서 이 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자존성은 항상 탄력성을 가져 팽창의 한도, 즉 독립자존의 길에 이르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것이니 조선의 독립을 감히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3.2. (2)조국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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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나라의 새는 남녘의 나뭇가지를 생각하고 호마는 북풍을 그리워하는 것이니 이는 그 본바탕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어찌 그 근본을 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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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을 잊지 못함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천성이며 또한 만물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류는 그 근본을 못잊을 뿐 아니라 잊고자 해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오직 군함과 총포의 수가 적은 이유 하나 때문에 남의 유린을 받아 역사가 단절됨에 이르렀으니 누가 이를 참으며 누가 이를 잊겠는가. 나라를 잃은 뒤 때때로 근심 띄운 구름, 쏟아지는 빗발 속에서도 조상의 통곡을 보고 한밤중 고요한 새벽에 천지 신명의 질책을 듣거니와 이를 능히 참는다면 어찌 다른 무엇을 참지 못할 것인가, 조선의 독립을 감히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3.3. (3)자유주의(자존주의와는 크게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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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려면 여러 가지 설이 구구하여 일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인생 생활의 목적은 참된 자유에 있는 것으로서 자유가 없는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으며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아까워할 것이 없으니 곧 생명을 바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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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조선을 합병한 후 압박에 압박을 더하여 말 한 마디, 발걸음 하나에까지 압박을 가하여 자유의 생기는 터럭만큼도 없게 되었다. 피가 없는 무생물이 아닌 이상에야 어찌 이것을 참고 견디겠는가. 한 사람이 자유를 빼앗겨도 하늘과 땅의 화기가 상처를 입는 법인데 어찌 2천만의 자유를 말살함이 이다지도 심하단 말인가. 조선의 독립을 감히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3.4. (4)세계에 대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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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자결은 세계 평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민족 자결주의가 성립되지 못하면 아무리 국제 연맹을 조직하여 평화를 보장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왜냐 하면, 민족 자결이 이룩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싸움이 잇달아 일어나 전쟁이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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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계의 책임을 조선 민족이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조선 민족의 독립 자결은 세계의 평화를 위한 것이요, 또한 동양 평화에 대해서도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것은 조선 자체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조선 민족을 몰아내고 일본 민족을 이식코자 한 때문이요, 나아가 만주와 몽고를 탐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 대륙까지 꿈꾸는 까닭이다. 이같은 일본의 야심은 누구도 다 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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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경영하려면 조선을 버리고는 달리 그 길이 없다. 그러므로 침략 정책상 조선을 유일한 생명선으로 삼는 것이니 조선의 독립은 곧 동양의 평화가 되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을 감히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
 
 

4. 조선 총독 정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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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합방한 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시정 방침은 무력 압박이라는 넉 자로 충분히 대표된다. 전후의 총독, 즉 테라우치와 하세가와로 말하면 정치적 학식이 없는 한낱 군인에 지나지 않아 조선의 총독 정치는 한마디로 말해 헌병 정치였다. 환언하면 군력 정치요, 총포 정치로서 군인의 특징을 발휘하여 군력 정치를 행함에는 유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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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조선인은 헌병이 쓴 모자의 그림자만 보아도 독사나 맹호를 본 것처럼 피하였으며, 무슨 일이나 총독 정치에 접할 때마다 자연히 5천 년 역사의 조국을 회상하며 2천만 민족의 자유를 기원하면서 사람이 안 보는 곳에서 피와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이것이 곧 합방 후 10년에 걸친 2천만 조선 민족의 생활이었다. 아아, 진실로 일본인이 인간의 마음을 가졌다면 이 같은 일을 행하고는 꿈에서나마 편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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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종교와 교육은 인류생활에 있어 특별히 중요한 일로서 어느 나라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없거늘 조선에 대해서만은 유독 종교령을 발포하여 신앙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교육으로 말하더라도 정신 교육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과학 교과서도 크게 보아 일본말 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밖의 모든 일에 대한 학정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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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인은 이같은 학정 아래 노예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도 10년 동안 조그마한 반발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순종할 뿐이었다. 이는 주위의 압력으로 반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그보다는 총독 정치를 중요시하여 반항을 일으키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총독 정치 이상으로 합병이란 근본 문제가 있었던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언제라도 합방을 깨뜨리고 독립 자존을 꾀하려는 것이 2천만 민족의 머리에 박힌 불멸의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총독 정치가 아무리 극악해도 여기에 보복을 가할 이유가 없고 아무리 완전한 정치를 한다 해도 감사의 뜻을 나타낼 까닭이 없어 결국 총독 정치는 지엽적 문제로 취급했던 까닭이다.
 
 

5. 조선 독립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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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조선 독립은 국가를 창설함이 아니라 한때 치욕을 겪었던 고유의 독립국이 다시 복구되는 독립이다. 그러므로 독립의 요소, 즉 토지 * 국민 * 정치와 조선 자체에 대해서는 만사가 구비되어 있어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리고 각국의 승인에 대해서는 원래 조선과 각국의 국제적 교류는 친선을 유지하여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바다. 더욱이 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은 정의 * 평화 * 민족 자결의 시대인즉 조선 독립을 그들이 즐겨 바랄 뿐 아니라 원조조차 아끼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일본의 승인 여부뿐이다. 그러나 일본도 승인을 꺼려하지 않을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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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인류의 사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는 것으로서 사상의 변천에 따라 사실의 변천이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사람은 실리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도 존중하는 것이다. 침략주의, 즉 공리주의 시대에는 민족 자결을 찬동하여 작고 약한 나라를 원조하는 것이 국위를 선양하는 명예가 되며 동시에 하늘에 혜택을 받는 길이 되는 것이다.
 
57
만일 일본이 침략주의를 여전히 계속하여 조선의 독립을 부인하면, 아는 동양 또는 세계 평화를 교란하는 일로서 아마도 미 * 일, 중 * 일 전쟁을 위시하여 세계적 연합 전쟁을 유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일본에 가담할 자는 영국(영 * 일 동맹 관계뿐 아니라 영국의 영토 문제로) 정도가 될는지도 의문이니 어찌 실패를 면할 것인가. 제 2의 독일 될 뿐으로 일본의 무력이 독일에 비하여 크게 부족됨은 일본인 자신도 수긍하리라. 그러므로 지금의 대세를 역행치 못할 것은 명백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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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이 조선 민족을 몰아내고 일본 민족을 이식하려는 몽상적인 식민 정책도 절대 불가능하다. 중국에 대한 경영도 중국 자체의 반항뿐 아니라 각국에서도 긍정할 까닭이 전혀 없으니 식민 정책으로나 조선을 중국 경영의 징검다리고 이용하려는 정책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은 무엇이 아까워 조선의 독립 승인을 거절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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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넓은 도량으로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고 일본인이 구두선처럼 외는 중 * 일 친선을 진정 발휘하면 동양 평화의 맹주를 일본 아닌 누구에게서 찾겠는가. 그리하면 20세기 초두 세계적으로 천만 년 미래의 평화스런 행복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천사국이 서반구의 미국과 동반구의 일본이 있게 되니 이 아니 영예겠는가. 동양인의 얼굴을 빛냄이 과연 얼마나 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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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앞장서서 승인하면 조선인은 일본인에 대하여 가졌던 합방의 원한을 잊고 깊은 감사를 표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문명이 일본에 미치지 못함은 사실인즉 독립한 후에 문명을 수입하려면 일본을 외면하고는 달리 길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양 문명을 직수입하는 것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길이 멀고 내왕이 불편하며 언어 문자나 경제상 곤란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말하면 부산 해협이 불과 10여 시간의 항로요, 조선인 가운데 일본 말과 글을 깨우친 사람이 많으므로 문명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면 두 나라의 친선은 실로 아교나 칠같이 긴밀한 것이니 동양 평화를 위해 얼마나 좋은 복이 되겠는가. 일본인은 결코 세계 대세에 반하여 스스로 손해를 초래할 침략주의를 계속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고 동양 평화의 맹주가 되기 위해 우선 조선의 독립을 앞장서서 승인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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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번에 일본이 조선 독립을 부인하고 현상 유지가 된다 하여도 인심은 물과 같아서 막을수록 흐르는 것이니 조선의 독립은 산 위에서 굴러내리는 둥근 돌과 같이 목적지에 이르지 않으면 그 기세가 멎지 않을 것이다. 만일 조선 독립이 10년 후에 온다면 그 동안 일본이 조선에서 얻는 이익이 얼마나 될 것인가. 물질상의 이익은 수지상 많은 여측을 남겨 일본 국고에 기여함이 쉽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조선에 있는 일본인의 관리나 기타 월급 생활하는 자의 봉급 정도일 것이니 그렇다면 그 노력과 자본을 상쇄하면 순이익은 실로 적은 액수에 지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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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선 독립 후 일본인의 식민은 귀국치 않으면 국적을 옮겨 조선인이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10년간에 걸친 적은 액수의 소득을 탐내어 세계 평화의 대세를 손상하고 2천만 민족의 고통을 더하게 함이 어찌 국가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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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일본인은 기억하라. 청 * 일 전쟁 후의 시모노세끼 조약과 노 * 일 전쟁 후의 포츠머드 조약 가운데서 조선 독립을 보장한 것은 무슨 의협이며, 그 두 조약의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곧 절개를 바꾸고 지조를 꺾어 궤변과 폭력으로 조선의 독립을 유린함은 또 그 무슨 배신인가. 지난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앞일을 위하여 간언하노라. 지금은 평화의 일념이 가히 세계를 상서롭게 하려는 때이니 일본은 모름지기 노력할 것이로다.
【원문】조선독립의 서 (朝鮮獨立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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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운(韓龍雲) [저자]
 
  191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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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