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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內殿)에 나아가 대광 박술희를 불러 친히 훈요(訓要)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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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듣건대 순(舜)임금은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짓다가1) 마침내 요(堯)임금으로부터 양위를 받았고2) 한(漢) 고조(高祖)는 패택에서 일어나 드디어 한 왕조를 일으켰다고 한다. 짐도 또한 미천한 가문에서 일어나 그릇되게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여름에는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지 않았으며 몸과 마음을 다하여 노력한 지 19년 만에 삼한을 통일하였다. 외람되게 왕위에 있은 지 25년이 되니, 몸은 이미 늙었으나 후손들이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고 욕심을 함부로 부려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힐까 크게 걱정된다. 이에 훈요를 지어 후세에 전하니 바라건대 아침저녁으로 살펴 길이 귀감으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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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리나라의 대업은 분명히 여러 부처가 지켜 준 데 힘을 입은 것이다. 그렇기에 선종과 교종 사원을 창건하고 주지(住持)를 파견해 불도를 닦도록 하여 각각 그 업(業)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후세에 간신이 정권을 잡아 승려의 청탁을 따르면 각자가 사원을 경영하면서 서로 바꾸고 빼앗게 될 것이니 반드시 이것을 금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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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모든 사원은 도선이 산수(山水)의 순역(順逆)을 계산하여 개창한 것이다. 도선이 말하기를, “내가 지정한 곳 외에 함부로 더 창건하면 지덕(地德)을 상하게 하여 왕업이 길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때문에 짐은 후세의 국왕•공후•후비•조신(朝臣)들이 각각 원당을 핑계로 혹여 사원을 더 창건한다면 큰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신라 말에 절을 다투어 짓더니 지덕을 손상하여 망하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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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맏아들에게 나라를 전하는 것이 비록 보편적인 예법이기는 하지만, 단주가 어질지 못하여 요가 순에게 선양한 것은 참으로 공명정대한 마음에서 나온 일이었다. 만약 원자가 어질지 못하면 그 다음 아들에게 전하고, 그 아들도 그러하거든 형제 중에서 여러 사람의 추대를 받는 자에게 전하여 주어 대통을 계승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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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우리 동방은 예부터 당나라의 풍속을 본받아 문물과 예악이 다 그 제도를 준수하여 왔으나 그 지역이 다르고 인성이 각기 다르니 분별없이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거란은 짐승과 같은 나라인지라 풍속이 같지 않고 언어도 다르니 복식 및 제도 등을 삼가 본받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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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짐은 삼한의 산천 신령의 도움에 힘입어 대업을 성취하였다. 서경은 수덕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 되며 대업을 만대에 전할 땅인 까닭에 마땅히 사중월에는 행차하여 100일 이상 머물며 안녕을 이루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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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짐이 지극히 원하는 바는 연등(燃燈)과 팔관(八關)에 있으니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것이며 팔관은 천령(天靈) 및 오악(五嶽), 명산, 대천과 용신(龍神)을 섬기는 것이다. 후세에 간사한 신하가 더하고 줄일 것을 권하는 자가 있거든 필히 그것을 금지하라. 나도 당초부터 맹세하여 회일이 나라의 기일(忌日)과 맞물리지 않게 하고 임금과 신하가 같이 즐겁게 하였으니 마땅히 삼가 뜻을 받들어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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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임금이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심히 어려우므로 그 마음을 얻고자 하려면 간언을 따르고 참소를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언을 따르면 성군이 될 것이니 참언은 꿀 같아도 믿지 않으면 스스로 그치게 된다. 또 때를 가려 백성을 부리고 요역을 가볍게 하고 부세를 적게 하며 농사일의 어려움을 안다면 저절로 민심을 얻어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은 평안해질 것이다. 옛사람이 ”좋은 미끼를 드리우면 반드시 고기가 걸려들고 상을 후하게 주면 반드시 좋은 장수가 나온다. 활을 당기면 반드시 피하는 새가 있고 인(仁)을 베푸는 정치가 있으면 반드시 선량한 백성이 모여든다”고 하였으니 상벌이 공평하면 음양이 순조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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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차현 이남과 공주강 밖은 산의 모양과 땅의 형세가 함께 개경과 반대 방향으로 뻗었는데 그 지역 사람의 마음도 또한 그러하다. 저 아래 고을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王侯), 국척(國戚)과 혼인하고 국정을 잡으면 나라를 어지럽게 하거나 나라를 병합당한 원한을 품고 임금을 시해하려 난을 일으킬 것이다. 또 일찍이 관청의 노비와 진•역(津•驛)의 잡척(雜尺)에 속하던 무리가 권세에 빌붙어 신분을 바꾸거나 종실•궁원(宮院)에 빌붙어 말을 간교하게 하여 권세를 농락하고 정사를 어지럽혀 재앙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비록 양민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벼슬을 주어 일을 맡기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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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문무백관의 녹봉은 나라의 규모를 보아 정한 것이니 함부로 늘리거나 줄여서는 안 된다. 게다가 고전(古典)에 이르기를, “공적(功績)으로써 녹(祿)을 제정할 것이며 관작(官爵)을 사사로운 정으로 다루지 말라”고 하였으니 만약 공이 없는 사람이나 친척이나 사사로이 친한 사람들로 헛되이 천록을 받게 하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비방할 뿐만 아니라, 그 본인들도 역시 복록(福祿)을 길이 누리지 못할 것이니 절실히 경계해야 한다. 또 강하고 포악한 나라와 이웃하고 있으므로 평안한 때에 위태함을 잊지 말 것이다. 병졸에게는 마땅히 보호와 구휼을 더하고 요역을 면해 줄 것이며, 매년 가을마다 용기와 기개가 빼어난 가려 편의에 따라 벼슬을 올려 주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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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째,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근심이 없는 때에 경계하고 널리 경사(經史)를 보아 옛일을 거울삼아 오늘을 경계하여야 한다. 주공(周公)3) 같은 대성(大聖)도 「무일(無逸)」 1편4)을 성왕(成王)5)에게 바쳐 경계하였으니 마땅히 이것을 그림으로 붙여 놓고 들어오고 나갈 때 보고 반성하도록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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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훈(十訓)의 끝은 다 ’중심장지’의 네 글자로 끝을 맺었는데 후대 왕들은 서로 전하며 보감(寶鑑)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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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권2, 「세가」2 태조 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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