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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이성계 회군로
◈ 2. 길 할미 만난 여원치(女院峙)
아침이 밝아오자 이성계는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승전을 기원하는 맹세를 겸한 조찬을 서둘러 끝내고 왜구가 진치고 있는 황산을 향해 부랴부랴 잔뜩 낀 아침 안개를 헤치며 행군의 길을 떠났다.
이성계 회군로 (2)
길 할미 만난 女院峙
 
아침이 밝아오자 이성계는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승전을 기원하는 맹세를 겸한 조찬을 서둘러 끝내고 왜구가 진치고 있는 황산을 향해 부랴부랴 잔뜩 낀 아침 안개를 헤치며 행군의 길을 떠났다.
 
운봉은 실로 호남의 지붕이라 불러오는 높은 고원이며 남원에서 운봉으로 가자며 반드시 평지에서 고원으로 접어드는 고개 하나가 있는데 이 고개를 지금까지 여원치라 불러오고 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이성계가 고개 거의 정상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짙은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심히 가리더니 비몽사몽간에 어떤 할미(道姑)가 나타나 말하기를 “지금 급한 대로 곧장 운봉으로 발길을 옮기지 말고 반드시 저 산으로 올라가 일주일 동안 천재님께 치성을 드린 뒤에 진군하시오. 그래야만 하늘의 도움을 얻어 이길 수 있소.
 
그리고 텅 빈 사창(社倉)에 진을 치지 말고 말은 그 아래 후미진 곳이 숨기고 약간 사창을 비껴 그 옆에 군사들을 먹일 솥을 걸고 곧장 산봉우리에 올라 황산 골짜기에 숨어있는 왜놈들의 동정을 잘 살펴가며 있는 힘을 다해 싸우시오. 그래야만 저들을 물리칠 지리를 얻게 될 것이요. 또 아무리 힘센 군사라 할지라도 민심을 얻어야 이길 수 있고 더욱이 교만하고 무자비한 왜놈들을 맞상대하여 쳐부수는 데는 반드시 백성들의 인심을 얻는 일이 첫째이니 부디 추호도 민폐를 끼치지 말고 정당하게 왜놈 소탕할 일만 차근차근 하시오. 그래야 하늘이 도와서도 이기고, 산신이 돌봐서도 이길 것이요.” 라 하고 말을 마치자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자욱했던 안개도 활짝 걷히고 드디어 눈부시게 밝은 아침 햇살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럼 이 노파는 누구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노파는 본디 함양에 살았던 미모 단정한 여인이었는데 왜장 아지발도가 그녀를 희롱삼아 젖가슴에 손을 대니 칼로 자신의 젖가슴을 도려내어 자결한 ‘원귀의 화신’이었다 일러오고 있다.
 
즉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一婦怨이면 五月飛霜이라)고 왜구에게 당한 사무치는 원한을 갚기 위해 그녀는 때에 길 할미가 되어 새벽안개 속에 쌓인 채 이성계 앞에 나타나 왜구소탕의 비결을 낱낱이 알려준 것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지금까지 남원에서 운봉을 넘는 고개를 女院峙라 부르게 되었고, 노파가 가르쳐 준대로 왜구와 맞서 싸울 때에 군사들을 먹일 솥을 걸었던 곳을 鼎峰, 말을 매었던 곳을 軍馬洞이라는 지명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七日間 天祭모신 帝王峰
 
여원치 정상에 올라가 일단 진을 치고 북쪽을 바라보니 약 3킬로 지점에 마치 투구를 쓴 모양과 같이 괴이한 산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예로부터 고남 산이라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시 숨을 돌리고 난 뒤에 이성계는 그 산으로 올라가 곧장 동서 두 군데에 각각 천하대장군 한 쌍을 마을 어귀에 세우도록 하여 온갖 잡귀를 몰아내었으니 이때에 잠시 군사를 머물렀던 여원치 옆에 후미진 곳을 지금도 병모동(兵募洞)이라 불러오고 있다.
 
그리고 해발 850미터에 달하는 고남산 정상에 올라 석축으로 천제 단을 쌓도록 하고, 인근 마을 한복판 바위틈에서 천연으로 솟아나는 정화수를 떠다가 7일 동안 밤낮으로 정성껏 천제님께 치성을 드리며 지리산 신을 비롯한 팔도명산의 여러 산신까지도 불러 모아 전승을 비는 기원제를 정성껏 올렸다. 이로부터 고남산을 帝王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 밤에는 수천개비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워 불과 오륙 킬로미터 전방에 있는 왜구들에게 위압을 가했으며 한편 척후를 적진으로 밀파시켜 왜구들의 일동일정을 낱낱이 살펴오도록 하고, 황산 서북쪽에 군사를 보내 고개 마루에 크고 작은 돌들을 쌓아 아차하면 석전을 할 계획도 세우고, 휘하의 중군을 비밀히 움직여 인원에서 지리산으로 향하는 좁은 계곡에 매복토록 하는 등 철저히 대비를 차근차근 진행시켰기로 지금도 중군리(中軍里)라는 이름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결코 전투는 예상 할 수 없었다. 이성계 휘하의 군사는 고려군과 여진족을 합쳐 편성한 병력이 1천여 명에 불과한데 비하여 왜구의 숫자는 거의 열배에 가까운 대병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제를 마친 바로 그날 밤 이성계는 또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용인 즉 황산 서북쪽 고개 마루에 쌓아 둔 돌들이 울면서 말하기를 “장군님! 무엇을 망설이고 계십니까? 왜구에게 희롱 당하여 왼쪽 젖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한 여인이 길 할미로 나타나 장군님께 칠일칠성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지체하지 마옵시고 내일 당장 출정하소서.”
 
그 이튿날 간밤에 있었던 꿈을 기이하게 여긴 이성계는 새벽녘에 참모들을 집합시켜 당일의 일진을 보았다. 어느 때와 같이 이두란을 시켜 백보 앞에 투구를 놓아두고 유엽전 3개를 뽑아 쏘아보니 백발백중이었다. 매우 만족스런 결과였다. 그래 제왕봉 천제 단에서 장차 진칠 곳을 바라보니 마치 비단으로 길게 다리를 놓은 듯하여 정봉과 제왕봉 사이를 장교동(長橋洞)이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때에 훤한 앞길을 예견한 이성계 스스로가 지어 부른 이름이었다.
 
 
荒山에서의 격전
 
이성계가 제왕봉에서 칠일동안 천제을 마치고 난 뒤 군사를 이끌고 나와 진을 친 곳은 황산 줄기의 나지막한 정봉이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며 황산의 남쪽은 제법 넓은 냇물이 흘러 나가는 좁은 계곡이 있고 북쪽으로는 아영의 사창과 인풍리를 지나 함양으로 통하는 울도치가 보인다. 그리고 사창리 마을 앞 해발 500여미터 앞에는 황산에서 뻗어 내린 아담스런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 봉우리 정상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왜구들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이 한 눈 안에 그대로 들어와 적정을 훤히 관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동쪽으로는 풍천이 흐르고 그 양옆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는데, 산 아래 남쪽으로는 낮은 평지와 늪지대가 있으며 이 평지와 왜구의 진지와의 사이에는 낮은 야산줄기가 황산에서 뻗어내려 지리산을 향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세를 유심히 살펴본 이성계는 틀림없이 왜구들이 이 야산과 험준한 산속에 매복하고 있으면서 우리 군사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여기서 이성계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 뭔가를 떠올렸다. 그러나 마냥 왜구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는 일, 일단 왜구들의 동정을 정확히 살피기 위해서라도 저들을 향해 싸움을 걸기로 결단을 내렸다.
 
 
바람 불어 준 곳 引風里
 
그러나 아무리 급한 상황이더라도 왜구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 우리군사인지라 무모하게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이성계는 우선 몇 명의 장수들로 하여금 일부 군사를 이끌고 풍천이 흐르는 왼편의 평지를 향해 슬그머니 공격을 시도해보도록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 군사들은 반격해 오는 왜구에게 번번이 싸움다운 싸움 한번 걸어보지 못하고 퇴각해 왔고, 이른 진퇴를 거듭하는 동안 해는 벌써 정오를 반나절도 훨씬 넘었다.
 
더구나 바람마저 때 아닌 동풍이 불어 닥쳐 우리 군사들이 싸우기에 심히 불리해짐으로써 야산에 매복한 왜구만 움직일 뿐 막상 황산아래 숨어있는 왜구의 주력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정봉에 진지를 구축한 것이 잘못 이었던가?
 
그렇다면 앞서 ‘여원치에서 길 할미가 일러준 작전은 오히려 저들의 간사한 속임수였던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급기야 이성계는 하늘을 우러러 ‘제발 하늘이여! 저 팔랑 치에서 불어대는 바람을 돌이켜 이제 우리의 화살이 힘차게 왜구의 가슴을 찌를 수 있도록 도와 주옵 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이성계가 이처럼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난 잠시 후 일진광풍이 팔랑 치에서 힘차게 불어오더니 그 바람이 아영의 야산을 흔들어 놓을 듯 몰아치고 난 뒤에 급기야 방향을 바꾸어 왜구들이 매복해 있는 곳으로 불어 닥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런 광경을 본 이성계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우측 험한 길을 택해 매복하고 있는 왜구를 유인한 뒤 곧장 북을 울려 쏟아져 나오는 적을 향해 총공격을 명령했다.
 
이처럼 이성계 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자 그동안 매복해 움직이지 않던 왜구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성계의 추측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이성계는 이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대우전 20발과 유엽전 50발을 쏘아 일단 쏟아져 나오는 왜구들을 주춤거리게 하면서 마침 휘몰아치는 바람을 등지고 비오 듯 화살을 퍼부어댔다.
 
이렇게 되자 광풍에 힘을 얻은 화살은 왜구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트리면서 우리 군사 앞에 그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갔다. 그러나 왜구들도 만만찮아 물러서지 않고 세 차례나 기습을 감행해왔다. 이처럼 왜구의 기습은 집요한 것이었다.
 
급기야 벌어진 황산천의 대혈투, 피아간에 얽혀 진흙에 뒤범벅되어 벌인 이 격전에서 끝내 일어선 자는 정작 우리 군사들뿐이었다. 말 그대로 대승이었다. 아! 중과부적으로 어렵게만 여겨왔던 이번의 싸움이었는데 천사에 따른 지세의 힘이 이처럼 클 줄이야. 남정북벌로 산전수전 다 겪었던 백전노장 이성계로서도 처음 실감한 일이었다.
 
남원시 동면 황산 아래 자리한 이 마을은 그래서 당시 전투에서 우리 군에 절대 유리한 바람을 줄어준 곳이라는 뜻에서 인풍리라는 이름이 붙게 됐는데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달을 끌어온 곳 引月里
 
인풍리 싸움에서 대패한 왜구들이 다시 산위로 물러가 웅거한 채 요새만 굳게 지키고 있자 이성계는 우리 군사들을 풀어 요해처를 나누어 지키도록 하고, 휘하 이대중등 10여명의 군사를 독려하여 왜구들을 사정없이 올려 쳤으나 사력을 다해 대항하는 왜구에게 오히려 쫓겨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 실로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어려운 싸움이었다.
 
그 까닭은 이미 해는 서산에 기울어 날마저 어두워진데다 어떤 기발한 새 작전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성계는 다시 ‘천재님이시여! 어서 동천에 달이 뜰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라며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했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한다는 말처럼 승리의 여세를 몰아 왜구를 섬멸해야 할 판에 날이 저물어 버린다는 일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이성계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에 닿았던가. 대낮같이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오르는게 아닌가.
 
하늘은 섬 도둑떼 보다는 우리의 고려를 우리의 이성계를 도운 것이다. 이성계는 동녘에서 동그랗게 달이 돋자 군사를 정돈하고 진격나팔을 불어 총돌격을 명하니 우리 군사들은 일시에 산 정상으로 기어올라 적진으로 치달았다. 피아간 백병전이 치열해지자 이성계는 아군을 진두지휘 하면서 진격을 독려했다. 이때 적장 하나가 창을 겨눈 채 이성계의 뒤로 달려들고 있었다. 마침 이를 본 장수 이두란이 큰소리로 “영공은 뒤를 살피시요”하고 큰소리치며 말을 달렸으나 이성계는 알아듣지 못했다. 미쳐 손을 쓸 틈도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명궁 이두란은 급히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달려드는 적장의 목을 명중시켰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도 이성계는 의연히 싸움에 몰두하였다.
 
말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며 다시 말을 갈아타기를 여러번 급기야는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왜구가 쏜 화살이 이성계의 왼쪽 다리에 꽂히기도 했으나 조금도 개의치 않고 박힌 화살을 뽑아 팽개치며 더욱 세차게 왜구들을 쳐 나갔다. 숫자상으로도 월등히 우세한 왜구들이 이성계를 두어 겹으로 포위하여 위기일발의 어려움에 처했으니 이성계는 휘하 기병과 저들의 포위망을 뚫고 그 자리에서 적 8명을 베어 죽이니 왜구들도 더 이상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이성계의 기개에도 불구하고 우리 장수들 역시 지쳐있기는 왜구와 다름없이 승패는 여전히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상황에서도 이성계는 풍부한 지략과 용기로 용장다운 기백을 높이 떨치면서 결국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나갔다.
 
인월(引月)은 이처럼 때에 달이 올라 우리의 작전을 도왔던 관계로 전투가 이만큼이라도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로부터 달이 올라왔던 황산의 동쪽을 引月里라 불러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향토】 이성계 회군로
• 1. 이성계(李成桂) 황산대첩(黃山大捷) 천명(天命)으로 여겨
• 2. 길 할미 만난 여원치(女院峙)
• 3. 황산에서의 대첩
(2024.06.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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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