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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산청군 경상남도 산청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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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 정보
◈ 산청군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가락국의 신비, 무명옷을 입게 된 사연, 선비정신을 찾아서 / ◈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문익점(1331∼1398), 민안부(생몰년 미상), 조식(1501∼1571), 오건(1521∼1574), 조종도(1537∼1597), 권도(1575∼1645), 곽종석(1846∼1919), 성철(1912∼1993) / ◈ 내 고장의 문화유산 - 단속사지 동서3층석탑, 율곡사 대웅전, 법계사 3층석탑, 내원사 석조비로자나불상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가락국의 신비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번지에는 가야 제10대 임금 구형왕의 능이라고 전하는 돌무덤이 있다. 이 무덤이 구형왕릉이란 사실은 1798년 산청의 유생 민경원이 윗편 골짜기에 있는 왕산사의 나무 궤짝에 보관되어 온 탄영의 『왕산사기』와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과 옷, 녹슨 칼과 활 등의 유품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아직까지 구형왕릉이라는 확실한 학계의 정설은 없지만 김해 김씨 문중에서 돌무덤 앞에 ‘가락국양왕릉’이라 새긴 비석과 더불어 장명등, 혼유석, 문·무인석, 돌짐승 등의 석물을 배치하였다.
 
◈ 무명옷을 입게 된 사연
단성면 사월리 106의 1번지에 있는 문익점 면화시배지는 우리나라에 처음 면화씨가 뿌려져 열매를 맺은 곳이다. 문익점이 1363년(공민왕12)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붓대롱 속에 넣어온 면화씨 10알 중 반은 그가 직접 심고, 나머지는 장인 정천익이 심었는데 그 중 한 알만이 이곳에서 싹을 틔워 온 나라로 퍼졌다고 한다. 고려말까지만 해도 면화가 없었던 우리나라에 면화의 전래는 의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 선비정신을 찾아서
시천면 사리 덕천강가에는 남명 조식이 살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산천재가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 있다. 남명 선생이 61세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생애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국정에 대한 헌책을 올린 곳으로 이 곳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산천재 뒷산에는 남명선생의 묘소가 있고 산천재에서 덕천강을 따라 5분쯤 가면 시천면 원리에 덕천서원이 있다. 덕천서원은 남명이 타계한 4년 뒤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들이 세웠으며, 그 뒤 선생의 제자인 수우당 최영경을 배향하였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문익점(1331∼1398)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배양에서 출생.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에서 귀국하면서 목화씨를 가져와 재배에 성공, 이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따뜻한 무명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 민안부(생몰년 미상)
고려말의 충신이며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 고려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켜 조선왕조 개국 후 벼슬에 응하지 않고 산음현 대포리에 은둔하였고 자손들에게도 벼슬을 하지 못하도록 경계하였다.
 
◈ 조식(1501∼1571)
호는 남명. 합천 삼가에서 태어났으나 61세 때 지리산 아래 덕산으로 옮겨와 이곳에 산천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실천 성리학의 대가로 그의 실천궁행 중심의 학풍과 선비정신은 경상우도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오건(1521∼1574)
호는 덕계. 조식의 문인 가운데 특히 학문이 뛰어났으며 이황, 김인후의 문인이기 도 하였다. 1572년 이조정랑에서 물러나 산음 덕계리로 낙향한 후 시작과 강론으로 여생을 마쳤다. 산청의 서계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 조종도(1537∼1597)
호는 대소헌 조식의 문인으로 여러 고을 현감을 거쳐서 함양군수로 있다가 병으로 사임한 뒤에 정유재란을 당하여 의병을 이끌고 황석산성으로 올라가 항전하다가 순절하였다.
 
◈ 권도(1575∼1645)
호는 동계, 정구의 문인으로 등과하여 여려 요직을 거쳐서 사헌부에 있으면서 인조왕이 원종대왕 추숭문제를 추진하자 강경하게 그 부당함을 들어서 직간함에 왕이 노하여 해남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곧 풀려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였다.
 
◈ 곽종석(1846∼1919)
단성면 사월리에서 출생. 3백여년 동안 끊어진 영남우도 학통을 재흥시켰고 많은 후진을 양성함과 아울러 조선의 유학 계보의 마지막을 장식한 거유이다. 1919년에 파리장서를 내는 등 유림계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 성철(1912∼1993)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출생. 이 시대 마지막 선승으로 추앙되고 있는 그는 59년에 걸친 엄격하고 고된 수행을 통해 불교계는 물론 속계에도 귀감이 되는 삶을 통해 숱한 일화를 남겼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보물
 
◈ 단속사지 동서3층석탑 - 제72·73호 단성면 운리
 
◈ 율곡사 대웅전 - 제374호 신등면 율현리
 
◈ 법계사 3층석탑 - 제473호 시천면 중산리
 
◈ 성화 16년 2월 13일 동복화해문기 - 제1020호 신등면 평지리
 
◈ 내원사 석조비로자나불상 - 제1021호 삼장면 대포리
 
◈ 대원사 다층석탑 - 제1112호 삼장면 유평리
 
◈ 내원사 3층석탑 - 제1113호 삼장면 대포리
 
◈ 대포리 3층석탑 - 제1114호 삼장면 대포리
 
◈ 이제 개국공신 교서 - 제1294호 단성면 남사리
 
■ 사적
 
◈ 문익점 면화시배지 - 제108호 단성면 사월리
 
◈ 전 구형왕릉 - 제214호 금서면 화계리
 
◈ 조식 유적 - 제395호 시천면 원리,사리
 
※ 기타 : 청군에는 보물 10점, 사적 3점 외에 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재 17점, 민속자료 3점, 기념물 8점, 문화재자료 21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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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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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