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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정보
◈ 중구의 생활문화자원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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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활문화자원

 

1.1. 전통생활민속

◈수표교 다리밟기 조선시대 개천(청계천)의 7개 석조 다리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다리였다. 정월 대보름이면 다리밟기가 성행하였는데 그 중 수표교 다리밟기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다리밟기는 정월보름날밤 시내에 놓은 다리를 밟으면 일년내내 다리에 병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주로 남자들이 많이 건넜다. 지금도 주민들이 정월대보름이면 수표교 다리밟기를 하고 있다.
 
 

1.2. 구전설화

◈숭례문(崇禮門)의 현판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의 편액글자는 조선 3대 왕인 태종대왕의 첫째 왕자인 양녕대군의 글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양녕대군이 쓴 액자가 없어지자 누군가 새로 현판을 써서 달았다. 그러나 다는 족족 떨어져서 사라졌다. 사람들이 괴이한 변고라고 의아해 하던 어느날 밤 남대문을 향해 서광이 번쩍거렸다. 광해군 때 청파 배다리에 있는 웅덩이에 서기가 비쳐서 그 웅덩이를 파는데 양녕대군이 친히 쓴 숭례문의 현판이 나왔다. 이 현판을 달았더니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숭례문의 현판은 그 현판이라고 한다.
 
◈회현동에서 성공한 동래 정씨 회현동 1가 14번지에 있는 정씨집 터는 동래 정씨(東萊鄭氏) 터이다. 중종때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집 앞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르기를 ‘이 나무에 서각대(鼠角帶) 열둘을 걸게 되리라’ 하더니 드디어 그 집안에서 정승 12명이 배출되었다. 동래 정씨를 서울에서 ‘회동 정씨(會洞 鄭氏)’라 별칭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남산골 샌님의 나막신, 역적바라기 남산골 샌님은 그냥 얼어 죽어도 곁불은 안쬐고, 또 짚신을 삼을 수 없으니까 굽이 닳아 없어진 나막신을 신고 다닌다고 한다. ‘남산골 샌님 역적바라듯 한다’는 말은 조선 때 당쟁에 한쪽이 역적으로 몰리면 그 다음에 조정에서 쓸 사람은 남산골 샌님 밖에 없기 때문에 남산골 역적 바라듯 한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남산골 샌님이라는 말은 가난에 오기만 남은 선비를 비아냥거릴 때에 쓰였다고 하나 ‘남산골 샌님이 원님 하나 내지는 못해도, 뗄 권리는 있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이것은 남산 기슭에 청렴과 결백으로 살았던 선비들에게 했던 홀대가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산골 샌님의 별명을 ‘남산골 딸각발이’라고 한 것은 가난한 선비들이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고 해서 생긴 말로 청렴과 결백 지조를 생명으로 한 선비들의 모습을 가리킨다. 일석 이희승의 『딸각발이』라는 수필이 유명하다.
 
 

1.3. 주민의 종교생활

명칭 소재지
천주교 명동성당 명동2가 1-8
약현성당 중림동 149-2
성공회 서울 성공회 성당 정동 3
기독교 정동교회 정동 32-1
상동교회 남창동 1-1
영락교회 저동2가 79
불교 충정사 필동2가 84-1
 
전통적인 마을신앙으로는 과거 광희문(수구문) 밖의 신당동 지역에 신당이 많이 있었으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없어지고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가 중구의 종교로 그 자리를 메워가고 있다. 특히 명동성당은 한국의 민중·민주 항쟁사와도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 현재는 사찰 13개소, 교회 71개소, 천주교 7개소, 성공회 1개소 등이 있다.
 
 

1.4. 주민의 생활권역

◈남대문 상가지역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전통 재래시장으로 1964년 10월 10일 서울 남대문시장주식회사로 출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위치하여 전국 각지의 소매상인과 일반시민이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루고, 도·소매업 기능을 겸하고 있다. 1만 5천여 개의 점포에 다양한 각종 상품을 고루 갖춘 세계 최고, 최대의 민속시장의 하나로 하루 이용객만 50여 만 명에 외국인 이용객도 1만여 명에 이른다.
 
◈명동거리 조선시대 한성부 5부 49방의 하나인 명례방에서 1946년 명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0년대 후반 쇼핑 중심지역에서 1960년대 문인의 거리, 금융타운으로 유명하며 특히 1970년대 통기타와 청바지 문화로 통칭되는 낭만의 거리였다. 지금은 명동상가의 상품을 널리 홍보하고, 많은 고객유치를 위하여 상인과 시민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명동축제’ 행사가 1982년부터 봄, 가을 연 2회에 걸쳐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주민밀집지역 신당동 광희문 밖에 위치한 이곳은 신당(神堂)이라는 명칭에서 유래 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된 이곳은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신당 6동 현대아파트, 신당 4동의 동아·삼성아파트, 신당 3동의 남산타운 등 대단위 아파트 타운이 형성, 주거 환경이 개선되어 중구를 대표하는 주민 밀집지역으로 교통, 시장 등 기반시설이 편리한 주거지역이다.
 
 

1.5. 지역의 별미음식

◈장충동 족발 장충동 족발은 한국전쟁 이후 동물성 젤라틴이 많아 찜을 만들기가 어려운 양이나 돼지족발에 갖은 양념을 첨가해 찜을 효과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특히 과거 유일한 실내체육관이던 이곳에서 레슬링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선수와 관중들에게 값싸고 맛있는 족발찜은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장충동1가 일대의 족발거리는 전국 어디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중구의 장충동이 맛의 원조이다.
 
◈신당동 떡볶이 한국전쟁 이후 신당동 떡볶이는 개천이 복개되기 전 개천가에서 연탄화덕에 좌판을 벌이면서부터이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떡과 종이처럼 얇은 어묵, 갖은 야채, 거기다 신당동 떡볶이 가게들만의 독특한 비법이 담긴 양념 고추장을 넣고 입맛에 따라 추가로 쫄면, 라면, 만두, 계란 등을 주문해 커다란 냄비에 넣는다. 기본으로 나오는 양배추, 당근, 양파를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 햄 등 입맛에 맞는 고명을 더 얹어서 끓이면 된다. 현재 떡볶이 거리로 선정되어 10월 중 축제가 열리고 있다.
※ 이외에도 명동칼국수, 오장동 함흥냉면 등 별미음식이 유명하다.
 
 

1.6.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인현동 출판인쇄골목 옛부터 중구에는 주자소가 있어 금속활자를 만들었던 탓인지 명보극장에서 마른내길을 따라 중구청에 이르는 1.5㎞ 구간의 인현동 거리는 종이와 잉크냄새, 기계소리가 한데 어울려 생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출판사, 인쇄소, 지업사 등이 빼곡이 들어찬 국내 최대의 출판·인쇄 (전국의 70%) 골목이다. 등록된 출판사만도 1,000여개, 인쇄소가 300여개소가 된다.
서울특별시 중구 정보
• 중구의 역사문화자원
• 중구의 생활문화자원
• 중구의 예술문화자원
(2005.06.03.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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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