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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 【 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 2026.10.10. 12:53 (2026.10.10. 12:30)

동양고전 아카데미 438강 강의자료 요약(2026.10.8)

■  
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古怨別〉과 작자 孟郊 및 주요 단어(颯颯, 秋風, 愁人, 含情, 欲語, 氣先咽, 心曲, 千萬端, 天涯.. 등)과 欲語→咽→難說 ; 秋風→愁→怨→離別 등 감상 포인트에 대해서 설명 ; (2)懼의 金文과 《說文解字》의 문자학적 의미에 대하여 설명 ; (3)合體字 (招財進寶, biang, 又, 集, 龍의 사례)와 고대 숫자 1,2,3,4,9,12,36,72,360 등에 대하여 설명 ; (4)《春秋》에 대하여(歷史, 6經, 編年, 孔子와 관련성, 시대배경, 주요내용, 春秋筆法, 解說書3傳...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 (5)先秦의 異端과 朱子 시기의 異端의 차이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및 災, 禍, 殃과 墓와 墳의 차이와 「禍福無門,惟人自招」 ; 「病從口入, 禍從口出」과 《詩經》〈小旻〉「戰戰兢兢,如臨深淵, 如履薄氷」과 戰戰栗栗, 戰戰惶惶, 臨事而懼 등에 대하여 설명 ; (6)중국 佛敎 4大名山과 관련 菩薩 및 각각의 상징물, 處士와 居士 등에 대하여 설명 ; (7)神主 작성하는 법(특히 辟과 妣, 室, 匹 ; 學生과 孺人 ; 府君의 의미)하였습니다.
동양고전 아카데미 438강 강의자료 요약(2026.10.8)
 
2026년 10월 8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고원별 (古怨別)
2. 작자: 맹교(孟郊, 751~814)
맹교(孟郊)는 중국 중당(中唐) 시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는 동야(東野)입니다. 한유(韓愈)와 함께 활동하며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고, 평생을 가난과 불우함 속에서 보내며 그 고단한 삶을 시로 승화시킨 인물입니다. 시 『고원별(古怨別)』에 담긴 짙은 슬픔과 원망의 정서 역시 그의 굴곡진 삶의 배경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1. 생애와 굴곡진 삶
• 빈곤과 거듭된 낙방: 평생을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으며, 과거 시험에 수차례 낙방하여 젊은 시절 대부분을 은거와 방랑으로 보냈습니다.
• 늦깎이 급제와 말단 관직: 50세라는 매우 늦은 나이에 비로소 진사(進士)에 급제했습니다. 이때 기쁜 마음을 담아 지은 시가 유명한 『등과후(登科後)』입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율양위(溧陽尉)라는 말단 관직을 지내는 데 그쳤고, 관직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아 결국 사직하고 은거했습니다.
• 한유(韓愈)와의 교류: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한유와 깊이 교유했습니다. 한유는 맹교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 문학적 특징: '고음(苦吟)'과 '교한도수(郊寒島瘦)'
• 고음(苦吟)의 시인: 맹교는 시어 하나하나를 깎고 다듬으며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시를 짓는 '고음'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화려한 수사나 부드러운 묘사보다는 직설적이고 거칠면서도 기발한 표현을 통해 내면의 진실을 담아냈습니다.
• 교한도수(郊寒島瘦): 훗날 송나라의 소식(蘇軾)은 맹교와 후배 시인 가도(賈島)의 시풍을 묶어 "맹교의 시는 춥고(寒), 가도의 시는 파리하다(瘦)"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맹교의 시가 가난, 고독, 좌절, 세상의 냉혹함 등 춥고 쓸쓸한 분위기를 강하게 띠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명한 평가입니다.
• 날카로운 사실주의: 권력과 세속을 멀리하고 백성들의 고달픈 삶, 부조리한 현실, 인간관계의 허무함 등을 날카롭고 직설적인 시선으로 포착했습니다
 
 
* 지방 쓰는 예시
1. 조상 (부모 및 조부모) 지방 쓰는 법
아버지는 왼쪽, 어머니는 오른쪽에 적으며, 홀로 제사를 지낼 때는 중앙에 씁니다. 관직이 없는 경우 남자는 '학생(學生)', 여자는 '유인(孺人)'이라 적습니다.
 
아버지  顯考學生府君神位 - 현고학생부군신위
어머니  顯妣孺人[본관][성씨]氏神位 - 현비유인[본관][성씨]씨신위 (예: 현비유인김해김씨신위)
할아버지 顯祖考學生府君神位 - 현조고학생부군신위
할머니  顯祖妣孺人[본관][성씨]氏神位 - 현조비유인[본관][성씨]씨신위 (예: 현조비유인밀양박씨신위)
 
• 顯(현): 존경하여 모신다는 의미로 윗사람에게 씁니다.
• 考(고) / 妣(비): 돌아가신 아버지(고)와 어머니(비)를 뜻합니다.
• 府君(부군): 윗사람의 이름 대신 쓰는 존칭입니다.
 
2. 배우자 (남편과 아내) 지방 쓰는 법
남편의 경우, 전통 예법상 성씨(김공)를 쓰기보다는 조상과 마찬가지로 '부군(府君)'을 쓰는 것이 표준입니다. 아내의 지방은 자신과 동등하거나 아랫사람으로 보아 '현(顯)' 대신 '망(亡)'이나 '고(故)'를 씁니다.
 
남편  顯辟學生府君神位 - 현벽학생부군신위
아내  亡室孺人[본관][성씨]氏神位 - 망실유인[본관][성씨]씨신위 (또는 고실유인~ )
 
• 辟(벽) / 室(실): 남편(벽)과 아내(실)를 뜻합니다.
• 망실(亡室) / 고실(故室): 돌아가신 아내를 부르는 말입니다. 아내의 경우 남편이 제주(제사를 주관하는 사람)가 되므로, 자식이 지낼 때(현비)와 명칭이 달라집니다.
 
💡 지방 작성 시 유의사항
지방은 가로 6cm, 세로 22cm 정도의 깨끗한 백지(창호지나 한지)에 붓이나 붓펜을 사용하여 세로로 작성하며, 윗부분의 양 모서리를 조금 잘라내거나 접어서 사용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3.직함에 따른 지방 표기 예시 (아버지 기준)
생전 직위  지방 문구
장관     顯考長官府君神位 (현고장관부군신위)
시장     顯考市長府君神位 (현고시장부군신위)
서기관    顯考書記官府君神位 (현고서기관부군신위)
교장     顯考校長府君神位 (현고교장부군신위)
박사     顯考理學博士府君神位 (현고이학박사부군신위)
회사 대표   顯考代表理事府君神位 (현고대표이사부군신위)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70강(2024,11,28)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
5 - 10. 宰予晝寢。子曰:“朽木不可雕也,糞土之墻不可杇也;于予與何誅?”子曰:“始吾于人也,聽其言而信其行;今吾于人也,聽其言而觀其行。於予與改是。”
 
청대(淸代) 고증학자들과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제기되는 이 해석의 근거와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형태적 유사성으로 인한 오기 (서지학적 근거)
2. 공자의 비유와 완벽한 문맥 일치
3. 꾸짖음의 본질 변화: 게으름 vs 허영과 참람함
 
(주석)
(1) 宰予
(2) 晝寢
(3) 朽木
(4) 雕
(5) 糞土
(6) 墻 - 담, 벽
(7) 杇 - 흙 손
(8) 于 - ~에 대하여
(9) 予 - 재여
(10) 與 - 어조사, 歟와 동일
(11) 何誅 - 어찌 꾸짖겠는가, 꾸짖어 뭐 하겠는가
(12) 於 - ~때문에, 由於, 因爲
(13) 改是 - 이렇게 바꾸다
 
 

 
《史記》〈周本紀〉4 - 024
1.懼 - 금문 ▣ ▣ (후기 금문)
금문, 원래는 내심의 상태와 관련, 즉 새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心+瞿)
 
《說文解字》「恐也。從心瞿声」
두려울 공이다. 모양은 마음 심을 따르고 소리는 놀랄 구를 따른다
 
 
* 합체자 (合體字)
한자에서 합체자(合體字)는 두 개 이상의 독체자(獨體字,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글자)가 결합하여 새로운 뜻이나 발음을 만들어낸 글자를 의미합니다. 한자의 조자(造字) 원리인 육서(六書) 중에서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象形)과 기호로 나타낸 지사(指事)가 독체자라면, 회의(會意)와 형성(形聲)의 원리로 만들어진 글자들이 바로 합체자에 해당합니다.
 
합체자의 두 가지 주요 원리
합체자는 결합하는 요소들이 의미를 제공하느냐, 소리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회의자 (會意字): 뜻 + 뜻
독체자들의 의미를 결합해 새로운 제3의 의미를 도출해내는 방식입니다.
• 休 (쉴 휴): 사람(人)이 나무(木) 옆에 기대어 쉰다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조합했습니다.
• 息 (쉴 식): 코(自 - '스스로 자'의 본래 의미는 코)와 심장/마음(心)을 결합하여, 호흡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인 '쉬다'를 표현합니다.
• 明 (밝을 명): 해(日)와 달(月)이라는 밝은 두 천체를 결합하여 '밝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2. 형성자 (形聲字): 뜻(形) + 소리(聲)
한쪽은 글자의 의미 범주를 나타내는 형부(形符)가 되고, 다른 한쪽은 발음을 담당하는 성부(聲符)가 되는 결합 방식입니다. 전체 한자의 80~90% 이상을 차지할 만큼 가장 발달한 조자 원리입니다.
• 擣 (찧을 도): 손의 동작을 나타내는 재방변(扌)이 뜻을 담당하고, 목숨 수(壽)가 소리 역할을 하여 무언가를 두드리고 '찧다'라는 뜻을 명확히 합니다.
• 睦 (화목할 목): 눈(目)이 뜻을, 언덕 육(坴)이 소리를 나타내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데서 '화목하다'는 의미가 파생되었습니다.
• 江 (강 강): 물을 뜻하는 수(水/氵)가 형부, 장인 공(工)이 성부로 결합되었습니다.
 
구조적 결합 방식
독체자들이 상하좌우 어느 위치에 배열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결합 구조를 가집니다.
 
구조 유형   설명 및 예시
좌우 구조 - 가장 흔한 형태로, 변과 방으로 나뉘어 결합합니다. (예: 語, 擣, 賜)
상하 구조 - 머리와 발의 형태로 위아래로 결합합니다. (예: 恩, 榮, 息)
포위 구조 - 한 글자가 다른 글자를 둘러싸는 형태입니다. 완전히 에워싸는 전포위(예: 國)와 일부만 감싸는 반포위(예: 間, 病)가 있습니다.
품자 구조 - 같은 독체자 3개가 모여 의미를 강하게 강조하는 형태입니다. (예: 品, 晶, 淼)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 시기에는 사물을 본뜬 독체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추상적 개념과 새로운 어휘가 늘어남에 따라 기존의 글자들을 조합하는 합체자(특히 형성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왕념손(王念孫)이나 대진(戴震) 같은 청대 고증학자들 역시 고전 텍스트의 본래 의미를 복원할 때, 이러한 합체자의 성부와 형부가 지닌 고문자학적 연원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1) 같은 2글자 : 双
2) 같은 3글자 : 雥 叒
3) 같은 4글자 : 절(𪚥)(수다스러울 절), 연할 철 (叕)
4) 뱡 (𰻞)
'뱡 자는 중국 산시성(陕西省)의 특산 요리인 '뱡뱡면(Biángbiángmiàn)'을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언 문자로, 현대에 쓰이는 한자 중 획수가 가장 많은 글자로 손꼽힙니다.
책받침(辶) 부수를 몇 획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자체 기준 57획 또는 58획으로 계산되며, 약자로 쓰이는 간체자로 변환해도 무려 42획에 달하는 엄청난 복잡성을 자랑합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는 폰트 지원 문제로 글자가 깨져(네모 칸 등)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수량을 세는 기호 외에 상징을 표시
동양 고전과 전통 철학에서 숫자는 단순한 수량을 세는 기호를 넘어, 우주의 생성 원리와 음양오행(陰陽五行), 그리고 인간 사회의 질서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말씀하신 숫자들은 모두 이러한 상수학(象數學)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 기본수: 다수(多數)와 극한(極限)의 상징
• 3 (三) - 만물의 생성과 다수의 시작:
동양에서 '3'은 단순한 셋이 아니라 '많다'는 의미를 지니는 최초의 숫자입니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의 "셋이 만물을 낳는다(三生萬物)"나, 공자(孔子) 《논어(論語)》의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에서 보듯, 3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갖춘 완전 함 이자 무리를 뜻합니다. 앞서 살펴본 품자 구조(품 品, 수정 晶 등)의 한자가 3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가득함'을 나타내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 4 (四) - 공간과 시간의 포괄:
'4'는 동서남북 사방(四方)과 춘하추동 사계(四季)를 상징하여, 평면적 공간과 시간의 척도를 완성하는 숫자입니다. 3이 질적인 '많음'이라면, 4는 물리적으로 사방을 꽉 채운 '전부'를 의미합니다.
 
• 9 (九) - 지고(至高)와 극한의 태양 수(太陽數):
음양 사상에서 홀수는 양(陽)이고 짝수는 음(陰)입니다. '9'는 1부터 9까지의 기본 숫자 중 가장 큰 양의 수이므로 '태양 수(太陽數)'라 불리며,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궁극의 한계점을 뜻합니다. 또한 음이 같은 '오랠 구(久)'와 통용되어 영원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2. 파생수: 우주의 순환과 무한한 변화 (12, 36, 72, 360)
숫자들이 곱해져 만들어진 12, 36, 72, 360은 하늘의 운행과 땅의 변화를 설명하는 역법(曆法)과 우주론적 상수입니다.
 
 
이처럼 36, 72, 360 등의 숫자는 정확한 통계적 수치 라기 보다는 "천지만물에 꽉 찬, 셀 수 없이 무한하고 다양한 섭리"를 표현하는 철학적 수사입니다.
 
3. 제왕의 상징: 구오지존(九五之尊)의 연원
황제를 일컫는 대명사인 구오지존(九五之尊)은 동양 최고(最古)의 철학서인 《주역(周易)》에서 유래했습니다.
 
《주역》의 64괘 중 첫 번째인 건괘(乾卦, ☰☰)는 하늘과 용(龍)을 상징하며, 6개의 효(爻)가 모두 양(陽)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양효(陽爻)를 '구(九)'라고 부릅니다.
 
여섯 개의 자리 중 맨 아래부터 세어 올라갈 때, 다섯 번째 자리(五)는 괘의 상단부 중심에 해당하여 군주(임금)의 자리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건괘의 다섯 번째 양효를 '구오(九五)'라고 부릅니다.
 
• 비룡재천 이견대인 (飛龍在天 利見大人):
주역 건괘의 구오 효사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입니다. 용(황제)이 마침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천하를 굽어보며 다스리는 가장 치성한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 공간적 의미 (9와 5의 결합):
숫자 1부터 9까지 늘어놓았을 때 '5'는 정중앙에 위치합니다. 즉, '9'는 최고의 높이(지존)를 뜻하고, '5'는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절정의 중용(中庸)과 황극(皇極)을 뜻합니다.
 
따라서 '구오'는 가장 높은 곳에서 천하의 중심을 잡고 있는 제왕의 절대 권력과 덕을 동시에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고, 자금성(紫禁城)의 문에 박힌 못의 개수를 가로세로 9줄씩 81개로 하거나, 황제의 건축물에 아홉 마리의 용(구룡벽)을 새기는 등 황실의 건축과 제도에 9와 5라는 숫자가 엄격하게 적용되었습니다.
 
 
(1) 두려워하다,
《詩經》〈谷風〉「將恐將懼,維予與女」
장차 두렵고, 무서울 때 오직 내가 너와 함께 한다.
(女 = 汝)
 
(2) 경계심을 가지다,
《尙書》〈呂刑〉「嗚呼!敬之哉!官伯族姓,朕言多懼,朕敬于刑,有德惟刑」
아아! 삼가해라, 관리의 우두머리와 관리들아 내 말을 많이 두려워해라.
내가 형벌을 삼가 한다. 오직 덕 있는 사람도 형벌을 신중히 한다.
 
《論語》〈述而〉「子謂顏淵曰:用之則行,舍之則藏,惟我與爾有是夫! 子路曰:子行三軍,則誰與? 子曰:暴虎馮河,死而無悔者,吾不與也。必也臨事而懼,好謀而成者也」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등용되면 나가서 일을 하고, 사직하면 은둔하라 오직 나와 너 만이 이러한 경지에 있게 된다. 자로가 말하기를 공자께서 군대를 출동하시면 누구하고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시기를 호랑이를 맨 손으로 치고 황하강을 도보로 건너고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이렇게 무모한 자는 나는 함께 가지 않겠다. 반드시 어떤 일에 임할 때 전전긍긍하며 도모하기를 좋아 하고 그리고 이루어 내는 자와 함께 한다.
 
* 夫는 어조사로 뜻이 없다.
*《논어》에 나오는 임사이구(臨事而懼)와 《시경》에 나오는 여림심연, 여리박빙(如臨深淵, 如履薄冰)은 표현의 출전만 다를 뿐, ‘어떤 일을 대할 때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극도로 조심하며 삼가는 자세’라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의미로 널리 쓰입니다.
* 戰戰兢兢 = 戰戰栗栗 = 戰戰惶惶
 
 
(3) 걱정하다,
《孟子》〈滕文公下〉「世衰道微,邪說暴行有作,臣弑其君者有之,子弑其父者有之。孔子懼,作《春秋》。《春秋》,天子之事也;是故孔子曰:知我者其惟《春秋》乎!罪我者其惟《春秋》乎! 聖王不作,諸侯放恣,處士横議,楊朱、墨翟之言盈天下。天下之言不歸杨,則歸墨。楊氏爲我,是無君也;墨氏兼愛,是無父也。無父無君,是禽獸也。公明儀曰:庖有肥肉,厩有肥馬;民有飢色,野有餓莩,此率獸而食人也。楊、墨之道不息,孔子之道不著,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仁義充塞,則率獸食人,人將相食。吾爲此口,閑先聖之道,距楊、墨,放淫辭,邪說者不得作。作于其心,害于其事;作于其事,害于其政。聖人復起,不易吾言矣」
"세상은 쇠락하고 도(道)는 미약해져서 사악한 주장과 포악한 행위가 일어나,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에 공자께서 걱정하시어 《춘추(春秋)》를 지으셨습니다."
"《춘추(春秋)》를 짓는 것은 천자(天子)의 일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나를 알아줄 사람도 오직 《춘추》 요, 나를 죄줄 사람도 오직 《춘추》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왕(聖王)이 나타나지 않아서 제후들이 방자하며, 벼슬하지 않은 선비(처사)들이 함부로 논의를 일삼아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학설이 천하에 가득하게 되었다. 천하의 학설이 양주에게로 쏠리지 않으면 묵적에게로 쏠린다. 양씨는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것(爲我)을 주장하니 이는 임금을 부정하는 것(無君)이요, 묵씨는 차별 없는 사랑(兼愛)을 주장하니 이는 아비를 부정하는 것(無父)이다. 아비가 없고 임금이 없으면 이는 곧 짐승이다. 공명의(公明儀)가 '부역에는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진 말이 있어도 , 백성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판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거닐고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양주와 묵적의 도가 사라지지 않고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으면, 이는 사악한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의 길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인의가 막히면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차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걱정하여, 옛 성인의 도를 지키고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며 허황된 말을 추방하여, 사악한 학설을 펴는 자들이 함부로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악한 생각이 마음에 일어나면 그 행동을 해치고, 행동에 일어나면 그 정치를 해치게 된다. 성인께서 다시 일어나시더라도 나의 이 말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 춘추(春秋)
『춘추(春秋)』는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 중 하나로, 기원전 722년(노나라 은공 원년)부터 기원전 481년(애공 14년)까지 노(魯)나라 12대 임금이 통치한 242년간의 역사를 연도와 계절에 따라 기록한 편년체 사서입니다. 본래 노나라 사관들의 기록이었으나, 공자(孔子)가 이를 바탕으로 도덕적 기준과 대의명분에 따라 새롭게 편찬했다고 전해집니다.
 
1. 역사적 맥락과 명칭의 유래
'춘추'는 본래 봄과 가을을 뜻하지만, 옛 사람들에게는 1년 사계절의 순환, 즉 '세월'과 '역사'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주(周)나라 천자의 권위가 무너지고 수많은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며 하극상이 만연하던 혼란스러운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이 책의 이름에서 중국 고대의 '춘추 시대'라는 명칭이 유래했습니다.
 
2. 핵심 사상: 춘추필법(春秋筆法)
『춘추』의 가장 큰 특징은 사건을 극도로 간결하게 기록하되,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엄격한 도덕적 평가를 담아낸 '춘추필법(春秋筆法)' 혹은 '미언대의(微言大義)'에 있습니다.
 
• 엄격한 포폄(褒貶): 공자는 명분과 질서를 어지럽힌 자를 글자를 통해 엄중히 비판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거나 무도한 군주를 시해한 경우에는 일반적인 '죽일 살(殺)' 대신 '시(弑)'를 사용하여 그 죄악을 명확히 천명했습니다. 반대로 정당한 토벌에는 '칠 벌(伐)' 등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사용했습니다.
• 존주양적(尊周攘夷): 주나라 왕실의 정통성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대의명분을 세워, 무너진 중원의 윤리와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는 정치적 이상을 담았습니다.
 
3. 간략한 본문을 보완하는 '춘추삼전(春秋三傳)'
『춘추』 본문은 "여름 5월에 정나라 백성이 단을 언에서 이겼다(夏五月, 鄭伯克段于鄢)"처럼 매우 짤막한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이면에 담긴 사건의 전말과 공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해설서인 '전(傳)'이 필수적인데, 이를 대표하는 세 가지 문헌이 춘추삼전입니다.
 
• 『좌전(左傳)』 (좌씨전): 간략한 춘추 본문 이면에 숨겨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 치열한 외교전, 전쟁의 전말을 방대하고 생생하게 기록한 서사적 역사서입니다. 당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인물들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 『공양전(公羊傳)』 & 『곡량전(穀梁傳)』: 역사적 사실의 나열보다는, 춘추 본문의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공자의 칭찬과 비판, 즉 윤리적·철학적 의미(명분론)를 치밀하게 해석하는 데 집중한 문헌들입니다.
 
4. 동양 사학과 철학에 미친 영향
『춘추』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역사를 통해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올바른 도덕적 기준을 세우려는 '감계(鑑戒, 거울삼아 경계함)'의 사학 전통을 수립했습니다. 이러한 춘추의 비판 정신과 서술 방식은 이후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비롯한 수많은 역사서 편찬에 가장 중요한 정신적 뼈대이자 서술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5. 『춘추』의 '공자 편찬설'을 의심하는 학자들
동양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춘추』의 '공자 편찬설'을 의심하는 학자들(주로 청나라 고증학파와 현대 의고파)이 제기하는 가장 강력하고 논리적인 핵심 근거 중 하나입니다.
맹자(孟子) 이래로 "공자가 춘추를 지어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지만, 공자 만년의 비극적인 연표를 살펴보면 방대한 역사서를 치밀하게 재편집할 여력이 없었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게 제기되어 왔습니다.
 
 
1) 공자의 말년에 비극적 연표와 육체적 한계
기원전 484년(68세) 고국 노나라로 돌아온 후, 공자의 삶은 상실과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 BC 485년경: 오랜 방랑 기간 중 아내(기관씨)가 노나라에서 먼저 세상을 떠남.
• BC 483년 (69세): 하나뿐인 아들 백어(伯魚)가 자신보다 먼저 사망하는 참척(慘慽)을 겪음.
• BC 481년 (71세): 학문적 후계자이자 가장 아꼈던 제자 안연(顔淵)이 사망 (안연의 사망 연도는 이견이 있으나 공자 만년의 가장 큰 충격으로 기록됨).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리셨다!"라며 통곡함.
• BC 480년 (72세): 또 다른 핵심 제자 자로(子路)가 위나라 내란에 휘말려 끔찍하게 전사함. 공자는 자로의 시신이 젓갈로 담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집안의 모든 젓갈을 내다 버리며 슬퍼함.
• BC 479년 (73세): 공자 서거.
 
의심파 학자들의 논거: 이렇게 불과 몇 년 사이에 아내, 아들, 수제자들을 연이어 잃고 극심한 비통함과 쇠약함에 빠진 70대 노인이, 242년 치의 역사 기록을 뒤지며 글자 하나하나에 도덕적 칭찬과 비판(미언대의, 춘추필법)을 숨겨 넣는 방대한 편찬 작업을 1~2년 만에 해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 공자 편찬설을 부정하는 주요 학설과 자료
이러한 모순을 바탕으로 춘추가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고 주장한 학자들의 주요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왕안석(王安石)의 비판: 북송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왕안석은 『춘추』를 가리켜 "조정의 단편적인 소식지(斷爛朝報)일 뿐이다"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위대한 성인 공자가 쓴 것이라기엔 문장이 너무 건조하고 기계적인 연대기에 불과하다는 직관적인 비판이었습니다.
• 청대 최술(崔述)의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 청나라 고증학파인 최술은 철저한 문헌 검증을 통해, 『춘추』는 공자가 도덕적 잣대로 뜯어고친 책이 아니라 '노나라 사관들이 기록한 공식 역사서(魯史) 원본'이 그대로 전해진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 민국 시대 고힐강(顧頡剛)과 의고파(疑古派): 1920년대 중국의 고사변(古史辨) 운동을 이끈 고힐강 등은 춘추필법(명분론) 자체가 후대 한나라 학자(동중서 등)들이 유교를 국교화하는 과정에서 공자를 신격화하기 위해 억지로 덧붙인 해석이라고 보았습니다. "공자가 춘추를 지었다"는 맹자의 기록 자체가 정치적 목적을 띤 과장이라는 것입니다.
 
3) 전통 학계의 반론: "481년은 시작한 해가 아니라 붓을 꺾은 해"
반면, 사마천의 『사기(史記)』 등을 근거로 공자 편찬설을 지지하는 전통 학계는 시간적 한계에 대해 다르게 해석합니다.
기원전 481년(노 애공 14년)은 공자가 춘추를 쓰기 '시작'한 해가 아닙니다. 기원전 484년 귀국한 이후부터 꾸준히 노나라 사관의 기록을 정리해 오고 있었는데, 기원전 481년에 상서로운 동물인 기린(麟)이 사냥꾼에게 잡혀 죽었다는 소식(획린 獲麟)을 듣게 됩니다.
공자는 쇠뿔을 달고 처참하게 죽은 기린을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하며 "나의 도가 끝났구나(吾道窮矣)"라고 절망했고, 그 충격으로 역사 기록을 중단해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춘추가 기원전 481년 기사에서 뚝 끊기는 이유, 즉 절필(絶筆)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년의 짧은 시간 동안 급하게 쓴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작업하던 중 비극적인 일들이 겹치며 미완성 상태로 작업을 멈춘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 중국 불교의 4대 명산 중 하나인 안후이성(安徽省)의 구화산(九華山)을 지장보살의 성지로 만든 인물은 놀랍게도 중국인이 아닌 신라의 왕족 출신 승려 김교각(金喬覺, 696~794) 스님입니다.
 
그는 중국 불교에서 '김지장(金地藏)'이라 불리며,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1. 신라 왕자에서 이국의 수행자로
성덕왕 대의 신라 왕족으로 태어난 그는 부귀영화를 버리고 24세의 나이에 출가했습니다. 당나라로 건너간 그는 '선청(善聽)'이라는 하얀 삽살개 한 마리만 데리고 천하를 주유하다가, 산세가 험준하고 아름다운 구화산에 매료되어 그곳의 동굴(지장고동)에 머물며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수행은 극도로 철저하여, 흰흙을 섞은 쌀로 끼니를 하고 독충이 우글거리는 산속에서 피나는 정진을 거듭했다고 전해집니다.
 
2. 가사 한 벌로 구화산을 덮다
김교각 스님의 높은 덕을 알아본 구화산 일대의 대지주 '민공(閔公)'이 스님에게 절을 지을 땅을 시주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님이 "내 가사 한 벌을 펼칠 정도의 땅이면 족하다"라고 답하자 민공이 허락했는데, 스님이 가사를 허공에 던지자 가사가 구화산 전체 99개의 봉우리를 모두 덮어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이에 감복한 민공은 자신의 아들을 먼저 출가시켰고(도명스님), 훗날 자신도 출가하여 김교각 스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불교 회화에서 지장보살의 양옆에 서 있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민공)이 바로 이들입니다.
 
3. 지장보살의 화신: 등신불(육신불)의 기적
99세가 되던 794년, 스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내가 열반하거든 시신을 항아리에 넣고 3년 뒤에 열어보아라. 만약 썩지 않았다면 금을 입혀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입적했습니다.
3년 뒤 제자들이 항아리를 열어보니 스님의 육신은 살아생전과 다름없이 썩지 않고 가부좌를 튼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려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금쇄골명, 金鎖骨鳴)가 났는데, 불경에는 "보살의 뼈에서는 금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고 기록되어 있어 사람들은 그를 "지장보살이 현신한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의 육신은 금칠을 한 '등신불(육신불)'로 모셔졌고, 구화산은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숭고한 원력이 깃든 성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상좌부 불교(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불교의 궁극적 목표를 '개인의 해탈'에 두느냐, '일체 중생의 구제'에 두느냐에 있습니다.
참고로 '소승(小乘, 작은 수레)'이라는 명칭은 대승불교 측에서 기존 불교를 깎아내리기 위해 만든 자칭 타칭의 용어이므로, 현대 불교학에서는 역사적으로 정확하고 존중을 담은 명칭인 '상좌부(上座部, Theravada) 불교'*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두 전통이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상인 아라한과 보살을 중심으로 그 차이를 비교해 드립니다.
 
1. 상좌부 불교와 '아라한' (개인적 완성)
상좌부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과 엄격한 계율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데 집중합니다.
 
• 이상적 인간상: 아라한(阿羅漢, Arhat)
아라한은 번뇌를 완전히 끊고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무생, 無生) 경지에 이른 성자를 뜻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여 궁극의 진리에 도달한 '개인적 해탈의 완성자'입니다.
• 수행의 특징 (자력 구원): 철저한 출가(스님) 중심입니다. 개인이 엄격한 계율을 지키고 위빠사나 등의 명상을 통해 스스로의 탐진치(욕심, 분노, 어리석음)를 소멸시키는 자기 수양이 핵심입니다.
 
2. 대승불교와 '보살' (이타적 구제)
기원전 1세기경, 출가승 중심의 엘리트주의적 불교를 비판하며 "모든 중생을 함께 구제하자"는 대중 불교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큰 수레'를 뜻하는 대승(大乘, Mahayana) 불교입니다.
 
• 이상적 인간상: 보살(菩薩, Bodhisattva)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자신이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받는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남아 있다면 자신의 열반(성불)을 미루고 세상에 남아 그들을 돕는 자"로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 수행의 특징 (상구보리 하화중생):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上求菩提 下化衆生)는 원칙 아래, 출가승뿐만 아니라 재가 신도(일반인)도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육바라밀 실천과 대자비심(이타행)을 가장 중시합니다.
 
핵심 비교 요약
 
 
결론적으로 상좌부 불교가 뗏목을 스스로 만들어 타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 피안(열반)에 도달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대승불교는 커다란 배를 만들어 고통받는 모든 이를 다 태우고 함께 바다를 건너려는 거대한 서원을 뼈대로 합니다.
 
 
* 성리학
성리학(性理學)은 형성 배경과 강조하는 핵심 개념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 신유학(新儒學, Neo - Confucianism): 공자와 맹자의 원시 유학, 한나라·당나라의 훈고학(문헌 해석 중심)과 구별하여 송나라 이후 새롭게 탄생한 철학적 유학을 뜻합니다.
• 정주학(程朱學): 이 학문을 정립한 북송의 정호·정이 형제와 남송의 주자(주희)의 이름을 딴 명칭입니다.
• 도학(道學): 우주와 인간의 올바른 길[道]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 이학(理學): 만물의 근본 원리인 '이(理)'를 탐구한다는 의미입니다.
• 송명무이학(宋明理學): 송나라에서 일어나 명나라까지 이어진 학문적 흐름을 통칭합니다.
 
'유학이 불교의 이론을 흡수하여 성리학(신유학)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동양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입니다.
표면적으로 성리학자들은 "불교는 세상을 버리고 이기적인 깨달음만 추구하는 이단"이라며 강력히 배척(배불론)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지식인들을 매료시킨 불교의 심오한 우주론(화엄종)과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심성론(선종)을 이기기 위해서는, 유학 스스로도 그에 맞먹는 형이상학적 뼈대를 갖춰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학은 불교의 철학적 사유 방식을 교묘하고 철저하게 흡수하여 유교적으로 재창조했습니다.
 
1. 한유 (당나라): 배불(排佛)과 유교적 '도통'의 창안
당나라 시대의 한유(韓愈)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행사를 맹렬히 비판한 「논불골표(論佛骨表)」를 쓸 정도로 철저한 배불론자였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성리학이 불교를 흡수하는 첫 단추를 끼운 인물입니다.
• 도통(道統)의 확립: 불교 선종(禪宗)에는 달마대사부터 혜능까지 깨달음이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법맥(法脈)'이라는 강력한 권위가 있었습니다. 한유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요 - 순 - 우 - 탕 - 문왕 - 무왕 - 주공 - 공자 - 맹자로 이어지는 유교 고유의 진리 계승 계보인 도통(道統)을 창안했습니다.
• 내면 수양의 강조: 한유와 동시대 학자인 이고(李翱)는 「복성서(復性書)」를 지어 인간의 본성(性)과 감정(情)을 논했습니다. 이는 불교가 독점하던 '마음과 본성'의 문제를 유교적 텍스트로 끌어온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정호·정이 형제 (북송): 불교 우주론의 유교적 전환
북송 시대의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는 젊은 시절 10년 넘게 불교와 노장사상에 심취했던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불교의 한계를 느끼고 유학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학문적 틀 안에는 이미 불교적 사유가 깊이 녹아 있었습니다.
• 화엄종 우주론의 흡수: 불교 화엄종의 '이치[理]와 현상[事]이 서로 걸림이 없다(이사무애)'는 형이상학적 구조를 차용하여, 유학의 핵심 개념인 '이(理, 형이상학적 원리)'와 '기(氣, 형이하학적 물질)'의 철학을 정립했습니다.
• 유교 경전의 재발견: 불교의 정교한 철학에 대항하기 위해, 실천적 윤리서에 가까웠던 『논어』, 『맹자』와 함께, 우주적 원리와 인간의 내면을 다룬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발굴해 냈습니다. 이 네 권의 책이 훗날 '사서(四書)'로 묶이는 근간이 됩니다.
 
3. 주자 (남송): 신유학의 집대성과 '정좌(靜坐)'의 도입
남송의 주희(朱熹, 주자)는 북송 학자들의 이론을 모아 성리학이라는 거대한 철학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주자는 불교를 비어있음[空]의 철학으로 규정하며 맹비난했지만, 실천 방법론에서는 불교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 선종(禪宗) 수행법의 차용: 불교 승려들이 면벽 참선(좌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듯, 주자 역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수양하는 정좌(靜坐)를 유학자의 중요한 수양법으로 도입했습니다.
• 거경궁리(居敬窮理): 다만 불교의 좌선이 세상을 등지고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주자의 수양법인 거경(居敬, 마음을 집중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은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사물의 이치를 탐구(궁리)하는 에너지원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완벽한 유교적 전환을 이루어냈습니다.
요약하자면, 당나라와 송나라의 유학자들은 지식인들의 마음을 빼앗은 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불교의 정교한 우주론과 참선 수행법이라는 '그릇'을 빌려온 뒤, 그 안에 공맹의 윤리, 가족애, 국가 경영이라는 유교의 '내용물'을 채워 넣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최고의 지적 체계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4) 두렵게 하다,
《老子》第七十四章「民不畏死,奈何以死懼之」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 죽음으로써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左傳》莊公十九年「吾懼君以兵,罪莫大焉」
내가 군사를 일으켜 군주를 위협하였으니, 이보다 더 큰 죄가 없다.
 
* 막(莫) ~ 없다.
묘(墓) : 평묘 ~ 원한이 없다
분묘 ~ 원한이 있다.
* 災와 禍, 殃의 의미
1) 災 ~ 하늘 즉 자연 재해와 관계 있다
2) 禍 ~ 사람과 관계 있다
禍從口出
病從口入
3) 殃 ~ 재화가 끼치는 영향
 
禍福無門 惟人所召
복(과 화)은 들어오는 정해진 문이 없고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부르는 것이다
 
 
(5) 질병,
《漢書》〈張安世傳〉「安世瘦懼,形于顔色」
안세(張安世)가 몸이 마르고 정신이 좀 혼돈해져서 (질병나서), 그 병색이 얼굴빛에 그대로 드러났다."
 
(6) 놀라서 어쩔 줄 모름,
《莊子》〈庚桑楚〉「老子曰:子何與人偕來之衆也?南榮趎懼然顧其後」
"노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 왔는가?' 남영주가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2026.10.8. 강의 요약: 주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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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