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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티스 –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바다의 노인 네레우스와 도리스의 딸로 태어난 네레이데스 가운데 하나이며, 영웅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여러 신을 구해 준 자비로운 바다의 여신이었으나, 자신보다 위대한 아들을 낳으리라는 예언 때문에 인간 펠레우스와 혼인했다. 그녀는 아킬레우스를 죽음에서 지키려 했지만 운명을 바꾸지 못했고, 트로이 전쟁 동안 여러 차례 아들을 도우며 그의 운명을 지켜보다가 끝내 그의 장례를 치렀다.
1.1 네레우스의 딸로 태어나다
테티스는 바다의 노인이라 불린 네레우스와 오케아노스의 딸 도리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신 사이에서는 쉰 명의 딸들이 태어났고, 이들은 네레이데스라 불리며 바다의 물결과 해안, 항해하는 사람들을 돌보았다. 테티스는 그 자매들 가운데서도 여러 신화에 가장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호메로스는 그녀를 ‘은빛 발의 테티스’라 부르며 깊은 바다에서 아버지와 자매들과 함께 사는 여신으로 그렸다.
테티스의 삶은 처음부터 아킬레우스에게만 이어지지 않았다. 올림포스의 신들과도 가까웠고, 곤경에 빠진 신을 외면하지 않았다. 바다로 떨어진 헤파이스토스를 받아 주었고, 리쿠르고스에게 쫓기던 디오니소스를 품에 숨겼으며, 한때 제우스가 다른 신들에게 위협받았을 때에는 그를 구하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
그래서 테티스는 바다에 머무르는 님프이면서도 올림포스의 여러 사건과 이어져 있었다. 훗날 그녀가 아들 아킬레우스를 위해 제우스에게 호소하고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오랜 인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들을 구했던 테티스 자신에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낳을 아들이 아버지보다 위대해질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바닷속에서 네레이데스 자매들과 함께 있는 테티스
1.2 헤파이스토스를 바다에서 구하다
헤파이스토스가 아직 어린 신이었을 때, 그는 올림포스에서 바다 아래로 떨어졌다. 한 전승에서 헤라는 다리가 불편한 아들을 감추려 하여 그를 올림포스에서 내던졌다고 한다. 깊은 바다로 추락한 헤파이스토스를 발견한 것은 테티스와 오케아노스의 딸 에우리노메였다. 두 여신은 상처 입은 그를 받아 품고 다른 신들의 눈을 피해 바닷속 동굴로 데려갔다.
헤파이스토스는 그곳에서 아홉 해를 지냈다. 바깥에서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거의 알지 못했지만, 그는 동굴 속에서 불과 금속을 다루는 솜씨를 키워 갔다. 테티스와 에우리노메를 위해 브로치와 팔찌, 목걸이 같은 정교한 장신구를 만들었고, 바다의 물결이 동굴 둘레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동안 그의 손에서는 수많은 작품이 태어났다.
테티스는 버림받은 신에게 피난처를 내주었을 뿐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는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오랜 세월 뒤 아킬레우스가 갑옷을 잃고 다시 전장에 나갈 수 없게 되었을 때, 테티스는 바로 그를 찾아간다.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 준 여신이 찾아오자 헤파이스토스는 기꺼이 아들을 위한 새로운 무구를 만들어 주었다.
바다로 추락한 헤파이스토스를 받아 안는 테티스
1.3 디오니소스를 품에 숨겨 주다
트라키아의 왕 리쿠르고스는 디오니소스와 그를 따르는 무리를 적대했다. 그는 니사산에서 디오니소스를 돌보던 여인들을 몰아붙이고 지팡이로 위협하며 쫓아냈다. 위협을 받은 디오니소스는 맞서 싸우지 못하고 달아나다가 마침내 바다로 뛰어들었다. 인간 왕의 공격에 놀란 젊은 신을 깊은 물속에서 받아 준 존재가 테티스였다.
테티스는 공포에 사로잡힌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품에 숨겼다. 바다 밖에서는 리쿠르고스가 신을 몰아냈다고 생각했지만, 디오니소스는 네레우스의 딸이 지키는 깊은 바다에서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곧 신들은 리쿠르고스를 미워하게 되었고, 제우스는 그의 눈을 멀게 했다. 후대의 전승들은 이 사건 뒤 리쿠르고스의 몰락을 여러 모습으로 전한다.
디오니소스와 테티스의 인연은 훗날 다시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유골을 담은 황금 항아리가 디오니소스가 테티스에게 준 것이며,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작품이었다고 전한다. 바다에서 구해 준 디오니소스와, 버림받았을 때 품어 준 헤파이스토스가 훗날 테티스가 아들을 떠나보내는 순간 다시 연결되는 셈이었다.
바다로 뛰어든 디오니소스를 품에 숨긴 테티스
1.4 제우스를 위기에서 구하다
어느 때 올림포스에서 제우스의 권위가 흔들린 적이 있었다. 헤라와 포세이돈, 아테나가 힘을 합쳐 제우스를 결박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다른 신들이 움직이는 가운데 테티스는 제우스의 위험을 알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는 백 개의 팔을 가진 거인 브리아레오스를 올림포스로 불러 제우스 곁에 앉게 했다.
브리아레오스는 신들 사이에서는 그 이름으로 불렸고, 인간들은 아이가이온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가 제우스 옆에 자리를 잡자 반란을 꾀하던 신들은 압도적인 힘을 두려워하여 계획을 포기했다. 제우스는 결박을 피했고 자신의 왕좌를 지킬 수 있었다. 테티스는 무기를 들고 싸운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가장 강력한 조력자를 불러 위기를 끝냈다.
이 일은 오랜 뒤 아킬레우스에게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아가멤논에게 모욕당한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에게 제우스를 찾아가 달라고 부탁하면서, 예전에 그를 구해 준 일을 상기시킨다. 테티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올림포스로 올라가 제우스에게 옛 은혜를 돌려 달라고 청하게 된다. 신들의 오래된 사건이 트로이 전쟁의 흐름과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제우스 곁에 브리아레오스를 불러 세운 테티스
2.1 아버지를 능가할 아들의 예언
테티스는 아름다운 네레이데스였고, 제우스와 포세이돈도 그녀에게 마음을 두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두 신이 테티스를 차지하려 할 무렵, 그녀가 낳을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강하고 위대한 존재가 되리라는 예언이 알려졌다. 전승에 따라 이 예언을 밝힌 존재는 테미스이기도 하고, 프로메테우스이기도 하다. 제우스에게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불길한 말이었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더 이상 테티스와의 결합을 바라지 않았다. 만일 신들의 왕이나 바다의 신이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면, 언젠가 아들이 아버지를 넘어설 위험이 있었다. 결국 테티스는 신이 아니라 인간과 혼인해야 했다. 선택된 사람은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였다. 그는 여러 모험을 겪은 영웅이었고, 신들의 호의를 받는 인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테티스가 인간과의 혼인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불사의 여신에게 인간 남편은 언젠가 늙고 죽을 존재였고, 자신이 낳을 아이도 필멸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신들의 두려움에서 시작된 예언은 이렇게 테티스의 삶을 바꾸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강한 아들을 낳으리라는 영광 대신, 그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운명으로 향하고 있었다.
테미스의 예언을 듣는 제우스와 테티스
2.2 펠레우스에게 붙잡히다
펠레우스가 테티스와 혼인하려면 먼저 그녀를 붙잡아야 했다. 그는 현명한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도움을 구했고, 케이론은 테티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절대로 손을 놓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펠레우스는 테티스가 바닷가에 나와 쉬는 때를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두 팔로 붙잡았다. 예상대로 테티스는 인간에게 붙잡혀 있기를 거부하며 곧바로 여러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테티스는 불이 되었다가 물이 되고, 사나운 짐승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 전승에 따라 사자와 뱀 같은 짐승의 모습도 나타난다. 그러나 펠레우스는 뜨거운 불길과 흘러내리는 물, 위협적인 짐승의 모습을 견디면서도 손을 풀지 않았다. 그는 케이론에게 들은 말을 기억하며 테티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마침내 테티스가 변신을 멈추고 본래의 여신 모습으로 돌아오자 펠레우스는 그녀를 놓았고, 두 사람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바다처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던 불사의 여신과 인간 영웅의 결합은 이렇게 성사되었다. 이 혼인은 테티스가 바라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곧 예언 속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가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이름 높은 영웅이 되는 아킬레우스였다.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며 펠레우스를 벗어나려는 테티스
2.3 신들이 모인 혼인 잔치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은 인간과 여신의 결혼이었기에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다. 전승에서는 펠리온산에서 잔치가 열렸다고 하며, 올림포스의 신들도 두 사람의 결합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왔다. 무사이들은 노래를 불렀고 신들은 신랑과 신부에게 여러 선물을 내렸다. 인간 펠레우스의 혼례에 여러 신이 함께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이 결혼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혼인 선물 가운데에는 훗날 아킬레우스에게 이어지는 것들도 있었다. 케이론은 펠레우스에게 물푸레나무로 만든 창을 주었고, 포세이돈은 불사의 말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를 선물했다. 다른 전승에서는 아테나가 창을 다듬고 헤파이스토스가 그 창끝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창과 신성한 말들은 뒤에 아킬레우스에게 전해져 트로이 전쟁에서 그의 무기와 전차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축복으로 가득하던 혼인 잔치는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잔치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례는 뜻밖에도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연결된다. 두 사람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 그가 훗날 싸우고 죽게 될 전쟁의 씨앗이 부모의 혼인 잔치에서 이미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펠리온산에서 혼례를 올리는 테티스와 펠레우스
2.4 황금 사과가 던져지다
후대에 널리 전해진 이야기에서는 혼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분노하여 황금 사과 하나를 던졌다고 한다.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라는 뜻의 말이 적혀 있었다.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저마다 자신이 그 주인이라고 주장했고, 즐겁던 잔치는 세 여신의 다툼으로 뒤바뀌었다. 누구도 쉽게 한 여신의 손을 들어 줄 수 없었다.
제우스는 직접 심판하기를 피하고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선택을 맡겼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각자 보상을 약속했고, 그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한 아프로디테를 택했다. 그 여인이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였기에, 파리스의 선택은 헬레네의 이탈과 아카이아 군의 원정으로 이어졌다.
서사시환 《퀴프리아》의 줄거리에서도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 잔치에서 에리스가 세 여신의 경쟁을 일으킨 것으로 전하지만, 황금 사과의 세부는 후대 문헌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렇게 테티스의 혼례는 아킬레우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가 싸우고 죽게 될 전쟁과 연결되었다. 어머니의 결혼 잔치에서 시작된 다툼이 훗날 아들의 운명까지 끌어당긴 셈이었다.
혼인 잔치에 황금 사과를 던지는 에리스
3.1 위대한 아들을 낳다
펠레우스와 테티스 사이에서 아킬레우스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간이었지만 어머니는 불사의 여신이었기에, 아이의 탄생에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운명이 함께 놓여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한 전사로 성장할 아이였지만, 인간의 피를 이어받은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테티스에게 아들의 뛰어난 능력은 자랑스러운 일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닥칠 죽음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두 갈래의 운명이 놓여 있음을 알려 주었다. 트로이에 남아 싸우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젊어서 죽지만 영원한 명성을 얻게 되고, 전쟁을 떠나 프티아의 고향으로 돌아가면 위대한 명성은 잃는 대신 오래 살 수 있었다. 훗날 아킬레우스 자신도 《일리아스》에서 어머니에게 들은 이 두 운명을 이야기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는 결국 그의 선택이었다.
테티스가 바란 것은 아들이 영웅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살아남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킬레우스를 죽음에서 멀리 떼어 놓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았고, 전쟁이 다가왔을 때에도 아들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짧은 생명과 영원한 명성이 놓인 길을 택한다. 어머니가 알고 있던 두 운명 가운데 가장 두려워했던 길로 아들이 스스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아킬레우스를 품에 안은 테티스
3.2 아들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다
한 전승에서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완전한 불사의 존재로 만들려 했다. 그녀는 밤마다 아이를 불 속에 넣어 인간인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필멸의 부분을 태워 없애고, 낮에는 암브로시아를 발라 신적인 몸으로 만들었다. 이 일은 펠레우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테티스에게 불은 아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구해 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어느 날 펠레우스는 아내가 아이를 불 속에 넣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불 속에서 몸부림치는 아이를 보고 놀라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테티스가 하던 일은 중단되었다. 계획을 끝내지 못한 테티스는 펠레우스를 떠나 바다의 네레이데스에게 돌아갔다고 전한다. 이후 펠레우스는 어린 아킬레우스를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맡겨 영웅으로 자라게 했다.
아킬레우스의 불사화에는 다른 전승도 있다. 훨씬 널리 알려진 후대 이야기에서는 테티스가 아이를 스틱스강에 담갔고,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 물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고전기 초기 전승보다 훨씬 뒤에 문헌으로 확인된다. 어느 이야기에서든 중심에는 같은 바람이 놓여 있다. 테티스는 필멸의 아들을 죽음에서 떼어 놓으려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불 속의 어린 아킬레우스를 지켜보는 테티스
3.3 스키로스에 아들을 숨기다
한 전승에 따르면 트로이 원정이 준비되기 시작하자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전쟁에서 떼어 놓으려 했다. 아들이 트로이로 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티스는 어린 아킬레우스를 에게해의 스키로스섬으로 보내 리코메데스 왕의 궁전에 숨겼다. 그곳에서 아킬레우스는 여인의 옷을 입고 왕의 딸들 사이에 섞여 지내며 외부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그러나 예언자 칼카스가 아킬레우스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할 수 없다고 말하자, 아카이아인들은 그를 찾아 나섰다.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스키로스에 아킬레우스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왕궁으로 찾아갔다. 널리 전해진 이야기에서는 그가 여인들이 좋아할 장신구와 옷가지 사이에 무기를 놓아 두고, 갑자기 나팔을 울리거나 전투가 벌어진 것처럼 소란을 일으켜 궁전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고 한다.
왕의 딸들이 놀라 몸을 피하는 동안 아킬레우스는 본능적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정체가 드러났고 더 이상 왕궁에 숨어 있을 수 없었다. 테티스가 마련한 피난처는 이렇게 무너졌으며, 아킬레우스는 아카이아 영웅들의 원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아들을 죽음에서 멀리하려 했지만, 전쟁은 결국 숨겨진 영웅을 찾아내 트로이를 향한 운명의 길로 데려갔다.
왕녀들 사이에 여장한 아킬레우스를 숨긴 테티스
3.4 제우스에게 아들의 명예를 청하다
트로이 전쟁이 오래 이어지던 어느 날,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서 브리세이스를 빼앗았다. 명예를 짓밟혔다고 느낀 아킬레우스는 전투에서 물러나 바닷가에 앉아 어머니를 불렀다. 깊은 바다에서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테티스는 물결 위로 올라와 그의 곁에 앉았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짧은 생애를 말하며, 그마저 명예 없이 보내게 되었다고 슬퍼했다.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에게 제우스를 찾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오래전 테티스가 브리아레오스를 불러 제우스를 위기에서 구했던 일을 상기시키며, 이제 그 은혜를 자신을 위해 돌려받아 달라고 한 것이다. 테티스는 아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올림포스로 올라간 그녀는 제우스의 무릎을 붙잡고, 아카이아군이 고통을 겪게 하여 아킬레우스의 가치를 깨닫게 해 달라고 청했다.
제우스는 헤라가 반발할 것을 알고 망설였지만 마침내 머리를 끄덕여 약속했다. 이후 트로이군은 거세게 아카이아군을 몰아붙였고, 전쟁은 아킬레우스가 없는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테티스는 아들을 직접 싸움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명예를 되찾아 주기 위해 신들의 왕에게까지 나아갔다. 제우스의 약속 이후 아카이아군의 위기는 더욱 깊어졌고, 전쟁은 마침내 파트로클로스의 출전과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우스의 무릎을 붙잡고 간청하는 테티스
4.1 아들의 울음을 듣고 바다에서 나오다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킬레우스는 땅에 쓰러져 울부짖었다. 그의 비탄은 바다 깊은 곳까지 전해졌고, 테티스는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네레이데스 자매들과 함께 바다에서 올라와 아킬레우스 곁으로 갔다. 테티스가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아킬레우스는 가장 사랑한 벗을 잃었다며 헥토르에게 복수하겠다고 말했다.
테티스는 아들의 결심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헥토르가 죽은 뒤에는 곧 아킬레우스의 죽음도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파트로클로스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분노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버리더라도 헥토르를 죽이고 친구의 원수를 갚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는 더 이상 그 선택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당장 아킬레우스에게는 다시 싸울 갑옷조차 없었다. 파트로클로스가 입고 나간 기존의 무구는 헥토르가 빼앗아 차지한 상태였다. 테티스는 아들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전장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바다의 자매들을 아버지 네레우스에게 돌려보낸 뒤, 홀로 올림포스의 헤파이스토스를 찾아 길을 떠났다.
네레이데스와 함께 슬퍼하는 아킬레우스에게 온 테티스
4.2 헤파이스토스에게 새 갑옷을 청하다
테티스가 헤파이스토스의 궁전에 도착하자 그는 오래전의 은혜를 곧바로 떠올렸다. 자신이 올림포스에서 떨어져 고통받을 때 테티스와 에우리노메가 받아 주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 은인의 아들이 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무구가 필요했다. 헤파이스토스는 테티스의 부탁을 듣고 작업장으로 들어가 거대한 풀무와 모루 앞에서 밤새 일을 시작했다.
그가 가장 공들여 만든 것은 아킬레우스의 방패였다. 방패에는 하늘과 땅과 바다, 해와 달과 별들이 새겨졌고, 평화로운 도시와 전쟁 중인 도시, 밭을 가는 사람들과 추수하는 사람들, 포도밭과 목축,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차례로 들어갔다. 가장자리에는 세상을 둘러싼 오케아노스의 흐름이 놓였다. 이어 빛나는 흉갑과 투구, 정강이받이까지 완성되었다.
작업을 마친 헤파이스토스는 완성된 무구를 테티스 앞에 놓았다. 테티스는 그것을 받아 눈 덮인 올림포스에서 아카이아 진영으로 내려왔다. 새벽이 밝을 무렵 그녀는 아들의 앞에 빛나는 갑옷을 내려놓았다. 과거 자신이 바다에서 구했던 신의 손으로 만들어진 무구가 이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아들의 몸을 감싸게 된 것이다. 새 무구를 받아 든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이 상할 것을 걱정하자, 테티스는 암브로시아와 붉은 넥타르를 파트로클로스의 콧구멍으로 흘려 넣어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지켜 주었다.
새 무구를 아킬레우스에게 건네는 테티스
4.3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돌아오다
새 무구를 입은 아킬레우스는 전장으로 돌아가 헥토르를 죽였다. 그러나 분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대한 원한을 풀려 했다. 트로이인들은 성벽 위에서 이를 바라보며 슬퍼했고, 올림포스의 신들 사이에서도 헥토르의 시신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제우스는 테티스를 올림포스로 불렀다. 그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는 데 신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아들에게 몸값을 받고 시신을 프리아모스에게 돌려주라고 명하라고 했다. 테티스는 다시 인간의 전쟁터로 내려와 슬픔에 잠긴 아들 곁에 앉았다. 그리고 오래 울고만 있지 말라며 제우스의 뜻을 그대로 전했다.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신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답했다. 얼마 뒤 프리아모스가 직접 아카이아 진영을 찾아와 아들의 시신을 돌려 달라고 간청했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내주었다. 테티스는 아들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일리아스》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제우스의 뜻과 아킬레우스 사이를 잇는 존재로 남았다. 그리고 그녀가 이미 알고 있던 아들의 죽음은 이제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헥토르의 시신 반환을 아킬레우스에게 전하는 테티스
4.4 아킬레우스의 장례를 치르다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에서 끝나지만, 아킬레우스 역시 트로이가 함락되기 전에 죽음을 맞는다. 그의 최후에는 여러 전승이 전한다. 서사시환의 《아이티오피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군을 추격하다 파리스와 아폴론에게 죽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들이 쓰러지자 테티스는 네레이데스와 무사이들과 함께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 전승에서는 테티스가 아들의 몸을 화장대에서 거두어 레우케, 곧 ‘흰 섬’으로 옮겼다고도 한다.
한편 《오디세이아》 제24권에는 이와 다른 장례 전승이 전해진다. 네레이데스가 시신 둘레에서 울고 아홉 무사이가 장송가를 불렀으며, 신들과 인간들은 열이레 동안 그를 애도했다. 열여드레째에는 시신을 화장하고 남은 뼈를 포도주와 향유로 씻어 황금 항아리에 담았다. 그 항아리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들고 디오니소스가 테티스에게 준 것으로, 파트로클로스의 유골도 함께 그 안에 놓였다.
아카이아인들은 헬레스폰토스가 바라보이는 해안에 멀리서도 보이는 큰 봉분을 세웠다. 테티스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위한 장례 경기에 신들에게 받은 귀한 물건들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아들을 불사로 만들려 하고, 스키로스에 숨기고, 제우스에게 간청하며, 새 갑옷까지 마련했던 모든 노력도 결국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불사의 여신 테티스의 이야기는 그렇게 필멸의 아들을 직접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마무리된다.
아킬레우스의 장례에서 애도하는 테티스와 네레이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