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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찾은 삶의 질문덕이야기의 지식창고 2026.07.07. 22:47 (2026.07.07. 22:15)

굴레를 끊는다는 것 - 《오레스테이아》를 읽고

 
《오레스테이아》는 신이 인간을 대신하여 정의를 완성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스킬로스는 그리스 신화를 통해 자신의 시대가 나아갈 새로운 질서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어떤 질서를 선택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신화를 다시 읽으며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굴레를 끊는다는 것
- 《오레스테이아》를 읽고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되갚고 싶어진다. 자신이 받은 고통만큼 상대도 같은 고통을 겪어야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복수는 가장 오래된 정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상처는 다시 새로운 상처를 만든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는 이 끝나지 않는 복수의 굴레를 통해 인간은 어떻게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오레스테이아》는 아이스킬로스가 남긴 유일한 완전한 비극 3부작으로,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의 세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인 ‘오레스테이아(Oresteia)’는 주인공 오레스테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한 가문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인 동시에, 사적인 복수에서 공적인 질서로 나아가는 문명의 전환을 그린 작품이다.
 
비극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아가멤논은 전쟁을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키고, 그 대가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한다. 오레스테스는 다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고, 누구나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었다. 그러나 누구의 정의도 복수를 끝내지 못했다. 정의는 또 다른 정의와 충돌했고, 복수는 세대를 넘어 반복되었다.
 
이 굴레를 끊은 것은 오레스테스가 아니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아니었고, 복수의 여신들도 아니었다. 아테나는 오레스테스를 재판에 세우고, 공동체가 함께 판단하는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그리고 판결이 끝난 뒤에는 복수의 여신들을 설득하여 도시를 지키는 자비로운 여신으로 받아들인다. 복수는 더 강한 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끝이 난다.
 
아이스킬로스가 살던 시대는 아테네 민주정이 성장하던 시기였다. 그는 오래된 그리스 신화를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했다. 복수가 아니라 재판을,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숙의를 선택하도록 신화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신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공론은 때때로 감정과 여론에 휩쓸리고, 서로를 단죄하는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흐르기도 한다. 물론 재판 역시 완전하지 않으며, 어떤 제도도 완벽한 정의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실을 확인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함께 숙고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정의를 향해 나아가려 한다. 완전한 정의는 없을지라도, 함께 만들어 가는 질서는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아이스킬로스가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당대의 대안을 제시했듯,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어떤 질서를 선택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분노를 달랠 새로운 대상을 찾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고전을 다시 읽으며 우리 시대에 맞는 성숙한 공적 질서를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 2026.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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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