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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의 동장대(東將臺)를 다르게 복원한 이유가 뭘까?
대한민국 국민이 제일 많이 가는 산은 북한산(삼각산)이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습니다. 북한산에 올라가면 이어진 산성이 있습니다. 오늘은 1925년 대홍수로 사라진 건물의 복원에 일제 강점기 때 찍은 북한산(성) 사진을 찾아봅니다.
조선의 숙종 임금은 병자호란 후 처음으로 외침에 대비하고자 산성을 축조(탕춘대성: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곽) 하거나 개축하였습니다.
▣ 북한산성 개요 1711년 돌로 쌓은 석성으로 축조, 둘레 12.7㎞, 면적 515,225㎡, 숙종 때 지은 행궁行宮은 홍수로 유실
1711년 숙종 때 쌓은 북한산성이 300년 후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되어 있는지 사진을 찾아봅니다.
1. 동장대(총 지휘소)에서 바라본 용암문 방향 북한산성 • 1911년. 노르베르트 베버 • 현재는 성벽을 따라서 등산로가 쭉 나 있고 양쪽으로 수풀이 우거져 있어서 사진과 같은 조망은 보기 어렵다.
왜 다르게 동장대를 복원했을까? • 현재 동장대는 일제 강점기 동장대와 다르게(지붕 모양과 1층 ) 1996년(서울 정도 600주년) 복원하였다. • 옛 동장대는 수원 화성 동장대(연무대)와 비슷하며, 현재 복원한 북한산 동장대는 수원 화성 장대와 비슷하다.
2. 용암문에서 바라본 북한산성 • 1911년. 노르베르트 베버 • 용암문에서 남쪽으로 뻗은 성벽을 바라본 모습. • 현대에 이르러 촬영한 사진은 인근의 보국문~대성문 사이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북한산성으로 정확히 일치하는 구도는 아니다.
3. 문수봉 • 1911년. 노르베르트 베버
• 문수봉은 북한산 의상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그 밑에 있는 문수사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 이와 비슷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에는 시간이 흐른 현재도 정상부의 바위 모습이 그대로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 백운봉 암문 • 1894~1902년 추정. 사운 이종학 기증 • 백운봉 암문에서 백운대를 오르는 길목. 100년도 더 전에 현재와 마찬가지로 안전시설물이 일부 설치돼 있던 것이 흥미롭다.
5. 대서문(大西門) • 1907년. 헤르만 산더 • 바깥에서 바라본 대서문. 오른쪽에서부터 휘돌아 성문으로 들어가는 길의 모양은 현재도 그대로다. • 예나 지금이나 북한산성 안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주 출입구로 애용되고 있다.
6.중성문(中城門) • 1907년. 헤르만 산더 • 옛 사진 속 중성문은 내성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중성문 오른쪽에 시구문(屍軀門)과 수문이 위치해 있으며 현재는 무너져 없는 수문의 모습도 보인다. 이 밖에도 오른쪽으로 북장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중성 성벽과 여장이 확인된다. 현재의 문루와 여장은 1998년 복원된 것이다.
7. 북한산성 행궁(임금의 임시 거처) • 1894~1902년 추정. 사운 이종학 기증 • 경복궁처럼 앞에는 임금이 업무를 보는 외전을 두고, 뒤에는 임금이 쉴 수 있는 내전을 배치한 행궁 전경. 현재는 등산로가 행궁지 바로 옆을 지나 남아 있는 터를 볼 수 있다.
출처 : 월간 산,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경향신문, 중앙일보
▼ 어제 비각(御製碑閣) 과 산영루(山映樓) • 어제 비각은 숙종이 북한산성 행차 후 경치에 감탄하여 남긴 시 6수가 새겨진 비석을 보호하던 곳 • 행궁은 산영루(현재 복원) 동쪽에 위치했으나 현재는 터만 남음 • 임금이 북한 산성에 행행(行幸) 하였다. 아침 일찍 떠나 서교(西郊)를 경유하여 북한 산성에 이르렀다. 서문(西門)으로 들어가 수문(水門)을 차례로 관람하고 이어 소석가현(小釋迦峴)에 올라 성(城) 안팎을 두루 보고자 하였으나 길이 험하고 닦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시단봉(柴丹峰)에만 올랐을 뿐이었다. -숙종실록 1712년 4월 12일 (숙종 38 )-
★ 북한산성을 방문한 숙종의 시 6수 - 열성어제 찬집청 편(列聖御製 撰集廳 編)-
계책 깊어 궂은 비에 새 성에 행차하여 / 計深陰雨幸新城 새벽에 남문 나서자 북소리가 울렸네 / 曉出南門鼓角鳴 수천의 날랜 기병이 어가를 호위하고 / 驍騎數千分扈蹕 훈풍에 날이 길어 여름이 되었네 / 風熏日永屬朱明
서문으로 막 들어가 머리 한 번 돌리니 / 西門初入一回頭 기상이 웅장하여 내 시름이 사라졌네 / 氣壯心雄寫我憂 지척의 도성은 견고한 금성탕지이니 / 國都咫尺金湯固 우리 백성이 한주 지킴을 어찌 버리랴 / 何棄吾民守漢州
십 리 험한 길을 지나 행궁에 이르니 / 間關十里到行宮 험준한 시단봉이 바로 동쪽에 있네 / 崒崒柴丹卽在東 노적봉 정상에는 구름이 걷히지 않고 / 露積峰頭雲未捲 백운대 위에 운무가 여전히 자욱하네 / 白雲臺上霧猶朦
저 동장대에 오르니 하늘에 오른 듯하고 / 登彼東臺若上天 깎은 듯한 봉우리들 구름에 닿아있네 / 千峰削立接雲烟 도적들이 접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니 / 寇賊非徒不敢近 원숭이도 오르면서 반드시 시름하리라 / 猿猱亦必愁攀緣
의장이 이미 먼저 귀로에 늘어서서 / 仗衛已先陳返途 성 동쪽으로 가마 나가자 산이 또 험하네 / 城東駕出亦崎嶇 천천히 걸어 두루 보니 형승이 많은데 / 徐行周覽多形勝 물 맑은 강도 있어서 흥이 외롭지 않네 / 况是淸江興不孤
도성암을 지나서 평탄한 길 만났는데 / 過刹道成逢坦路 눈 가득한 먼지에 날이 저물려 하네 / 風埃滿目日將暮 숲처럼 모인 사녀가 깃발을 바라보며 / 士女如林瞻羽旄 억울함 품고 모두 가마 앞에서 읍소하네 / 抱寃皆許駕前訴
▼ 아래 첫 사진은 일제 강점기 산영루(아래)와 어제 비각(위)이고 두 번째 사진은 고양시가 복원한 산영루
출처 : 한국 고전 종합, 고양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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